가짜 일본(新일본)이 자신을 ‘일본’으로 포장하기 위해서는 진짜 일본(舊일본)을 없애야만 하며, 이를 위해 진짜 일본정부였던 南京(에도)幕府를 침략하기 시작합니다. 1858~1869년 동안 전근대수준의 南京(에도)幕府의 일본군과 삿쵸도비의 근대화된 왜구(倭寇)가 서로 전쟁을 벌였으며, 南京(에도)은 1867년 12월에 함락됩니다. 이는 1868년 1월에 에도 바쿠후 군의 최종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왜구들이 난징을 함락, 입성하여 제15대 왕 겸 정이대장군 德川慶喜(도쿠가와 요시노부)를 폐위하면서, 1869년에 삿쵸도비(薩長土肥)의 일본정복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를 기존 일본사에서는 “바쿠후(幕府)의 권력이 만세일계(萬歲一系) 덴노헤이카(天皇陛下)께 되돌려졌다.”는 의미에서 대정봉환(大政奉還)이라 일컽고 있습니다.
게다가 에도 바쿠후의 일본(舊일본)은 1866년의 병인양요(일본-프랑스간 전쟁으로서 프랑스군이 일본의 수도였던, 난징일대를 침략, 조선조정에서는 제후국 일본에 군사를 지원해 줌.)로 국력이 상당히 손실된 상태였기 때문에 근대적인 삿쵸도비 토후국연합군과 싸울 여력이 부족하기도 했습니다.
먼저 舊일본의 수도 영해부(寧海府=東京=江華=江寧=江戶)를 1868년에 함락하고 일본왕실 德川(도쿠가와)氏가문의 엄청난 재물을 전리품으로 획득하여, 척박한 일본열도의 자원수급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국가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日本列島를 축으로 대륙의 동남 해안 지방을 석권, 강점(强占)하였으며, 이른바 다이묘(大名)로 기록되고 있는, (조선황제의 신하(臣下)인 舊일본 정권이 임명한) 여러 小제후들을 모두 항복시켰습니다. 이를 이른바 폐번치현(廢藩置縣), 판적봉환(版籍奉還)으로 포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역사는 “尊王攘夷(손노죠이)를 앞세운 薩摩(사쓰마), 長州(조슈)가 미국의 페리제독 함대에 의해 강제 개항(開港)한 바쿠후와 대립하다가 사쓰에이(薩英)전쟁, 조슈의 4개국과의 전쟁을 거치며 존왕개국으로 노선을 변경하여 단2년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근대적인 무장을 하여 바쿠후를 토벌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薩摩(사쓰마), 長州(조슈)가 영국, 미국 등의 함대를 공격했을 때, 이를 조선의 도발로 간주하지 않고, 薩摩(사쓰마), 長州(조슈)의 도발로 간주함으로써 조선과 薩摩(사쓰마), 長州(조슈)를 분리하여 대응하였으며, 이들을 굴복시킨 후 이들의 배후에서 이들을 대(對)조선(朝鮮)투견(鬪犬)으로 만들고자 신무기를 쥐어준 결과입니다. 때문에 단2년 사이에 신무기를 도입한 사쓰마(薩摩)+조슈(長州) 및 이들보다 먼저 영미세력의 하수인이 된 도사(土佐)가 가세한 연합군이 재래무기로 상대한 舊일본을 손쉽게 전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는 미국이 80년대에 알카에다와 탈레반 같은 반군세력에게 무기와 돈을 지원하여 키워놓아 각각 미국 본국을 공격하고,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전복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존왕(尊王)이라는 단어자체가 모순인데, 막부가 삿쵸도비 토후들의 전쟁에서 패하며 멸망당한 후 明治(메이지)를 앞세운 삿쵸도비 토후국련합이 영미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근대적인 역사학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연히 삿쵸도비 중심의 승자의 역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京都(교토)의 황실과 江戶(에도)의 막부의 대결로 윤색할 때, ‘존왕(尊王)’이라 한 것입니다. )
이렇게 薩長土肥 土侯國聯合(삿쵸도비 토후국 련합)이 舊일본의 수도를 점거하고 스스로 일본을 僭稱(참칭)한 후, 이들 삿쵸도비의 대부(大父)라 할 수 있는 미국은 南京(에도) 강 건너편의 조선본토에 대한 침략을 개시합니다. 이 전쟁이 바로 신미양요인데, 조선의 방어성공으로 끝났지만, 사실 이 전쟁은 이미 德川氏(도쿠가와가문)가 괴멸되어 타격을 입은 상태인 조선 동남부의 성채, 포대 등과 군사력에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힌 전쟁이었습니다. 신미양요는 영미동맹이 조선의 방어력 약화를 노린 것으로 이들의 의도대로 되었습니다.
다음 1875년 운요호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조살전쟁(朝薩戰爭= 丙子倭亂)에서 (한수(漢水)의 한중부근에 위치한 양쯔강 수계의 장안성(長安城) 외항(外港)으로 추정되는) 제물포까지 침략당하면서, 수도인 장안을 위협할 지경에 이르자, 조선조정에서는 삿쵸도비 토후국연합(薩長土肥 土侯國聯合)과 1876년 2월에 굴욕적인 조일수호통상조규를 (삿쵸도비의 양경이 되어버린)지금의 남경에서 맺게 됩니다.
삿쵸도비 토후국 련합은 舊일본을 강점하고 여기서 다시 서북진하여, 조선에 전쟁을 걸어 1876년에 강화도(지금의 난징(南京), 진장(鎭江)에서 강제로 문호를 개방케 한 과정은 너무나 완전무결하게 신속, 기민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미리 조선의 성과 포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영국이 일본의 배후에서 무기와 기술, 전술을 전수해주며 조종했기 때문입니다.
영미동맹:
19세기당시 세계최강대국 영국과 영국의 상류층들이 세운 미국의 연합세력이다. 여기에 삿쵸도비토후국련합(薩長土肥土侯國聯合 = 新일본)을 끼워넣어 영미일동맹이 형성되는데 이들의 연합은 삿쵸도비토후국련합(新일본)을 선봉에 세워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한다. 영국과 미국은 아메리카대륙에서는 서로를 적대했지만 아메리카대륙 밖에서는 언제나 함께 움직였다.
이는 제1,2차 세계대전에서는 물론 현대의 아프간전쟁, 이라크전쟁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현대 미국 월가를 장악하고 있고, 수많은 미국상류층의 유학생을 받아주고 있는 영국왕실-귀족들은 미국건국부터 2008년 현재까지 아쉬케나짐과 더불어 미국을 장악한 양대 세력인 바 세계최강국 미국이 왕이라면, 영국은 대왕대비격으로 지금도 세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나라이다.
현대에 영미동맹은 영미법, 영미식신자유주의, 영어 및 영어문화보급, 영미군사동맹 등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방위에 걸쳐 세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그 영향력은 영국에서 발원한 신자유주의가 미국에 전파된 후 미국에 의해 세계로 퍼지면서 자본의 흐름에 발맞춰 증대되고 있다.
제국주의시대에 新일본을 여기에 끼워 영미일동맹을 구축하였고, 태평양전쟁 당시를 제외하고 계속 그 동맹이 이어져오고 있으나 제2차세계대전에서 보듯 新일본은 영미세력에 의해 조선을 공격하도록 이용되고, 이후 적당한 때 짓밟히는 등 영미세력과 일본의 동맹은 일본에 대한 불평등동맹일 뿐이다.
첫댓글 아주 잘 읽었습니다. 이탄님 칼럼을 하시는게 어떠신가요?
력저 감사드립니다
일본에 대해서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시리즈로 끝까지 밝혀 내주시길 기원드립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3.27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