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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새벽기도회(1) *주제:‘사랑’ 2008년 9월1일(월)-5일(금)
2008.9.1(월) 새벽5시
*제목: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본문: 요한일서 4: 7- 21
요한일서 4장은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서의 두 가지 특징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1-6절로서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에 속한 미혹의 영, 즉 적그리스도의 영과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여 미혹을 받지 않는 자입니다.
둘째는 7-21절로서 하나님의 자녀는 서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결국 이 두 가지 특징을 통하여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자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우리가 왜 사랑해야 하는가?(7-16절)
오늘 본문은 우리가 왜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7-8절).
8절 하반 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자는 당연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동참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신 사건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9-11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사랑은 무자격자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우리 죄를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5:6-10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은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있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아무 자격도 가지고 있지 못한 자입니다. 우리가 죄인일 때에, 무자격자일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자신의 독생자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주시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는 것으로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두 개가 아닌 하나인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도 화목제물로 주셨습니다. 요한사도는 9-11절을 보면 '이렇게', '여기', '이같이 나타났다'하면서 하나님의 그 고귀하고 큰 사랑에 대한 벅찬 감동을 고백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값없이 대가 없이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선물로, 은총으로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였은즉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12-16절).
즉,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습니까?
12절을 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드러납니다.
요13:35절을 보면 불신자 역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제자인지 알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즉,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까?
즉, 언제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까?
14-15절을 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할 때 거하십니다.
14-15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중생과 성령 받음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중생과 회심 이후에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 및 회심과 동시에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고전12:3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롬8:9절을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깨닫게 됩니다. 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벅차고 놀라운 감동입니까? 이런 감동과 기쁨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높이며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용과 실천)
- 예수 믿고 구원받은(회심) 후 내게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는가?
-최근에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무엇인가?
특별새벽기도회(2) *주제: ‘사랑’ 2008년 9월1일(월)-5일(금)
2008.9.2(화) 새벽5시
*고린도전서 13:1-3
*제목: 사랑의 본질(1) / 사랑이 없으면...아무 유익이 없다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이루기 위해서 사랑의 부재, 성질과 중요성에 대해서 제시합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3절은 은사의 목적을 설명하는 의미에서,
사랑이 없으면 그것들이 존재의 의의(意義)를 가지지 못한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은사(恩賜)를 오용(誤用)하며 사랑은 없이 그것들 자체를 중대시하며 자랑하였습니다. 여기 본문에 있는 방언이나 예언 같은 것은 그때 초대 교회에 있었던 초자연적인 은사였습니다. 그들이 그 은사를 사랑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고전 13장의 사랑은 12장과 14장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습니다. 더욱 큰 은사(12장), 사랑없는 말은 필요가 없음(14장)으로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어떤 분이 고전13장을 며느리의 사랑 장으로 각색한 내용이다.
“내가 애교 있는 말로 시어머니에게 가끔 전화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시어머니 다루는 비결과 심리학의 많은 지식을 알고 믿음이 있어 교회에서 집사가 되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시어머니를 위하여 크리스마스카드라도 보내드리고 생신에 다소의 용돈을 보낸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시어머니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아들 생각만 할지라도 오래 참고, 사랑은 시어머니가 심한 말을 하고 눈을 흘길지라도 온유하게 대하며, 남편이 시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 드릴지라도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의 젊음을 시어머니에게 자랑하지 아니하며, 많이 배웠다고 교만하지 아니하며, 현대 여성이라는 점을 내세워 시어머니에게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내가 번 돈이라고 자기의 유익만 구치 아니하며, 신경을 건드려도 성내지 아니하며, “이젠 저 세상으로 가실 때도 되었는데”하는 따위의 악한 생각을 아니하며 맹목적인 사랑으로 아이들의 버릇을 나쁘게 하는 따위의 일이 있을 때 어물어물 넘어가지 않고 원칙(진리) 위에 서며, 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와도 모든 것을 참으며, 개운치 않은 일이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믿으며, 시중하기 힘겨울지라도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세상의 학설이나 평가 기준은 폐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준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고 여러 사람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으리라. 사랑이 부족했을 때는 어렸을 때와 같아서 말하는 것도 유치하고 깨닫는 것도 미숙하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장성한 사랑을 가질 때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나느니라. 내 사랑이 모자랄 때는 시어머니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온전한 사랑을 품으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마주보듯이 완전하게 볼 것이며,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잘 아시는 것같이 내가 시어머니를 잘 알게 될 것이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어떤 분이 이런 좋은 말 “아무리 작은 선물이라도 애정이 담기면 큰 선물이 된다.”
얼마를 주는가 보다, 어떻게 사랑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많이 주는가 보다. 어떤 자세로 주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어떤 전도자가 길을 지나가다가 구걸하는 걸인 앞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자동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때마침 그에게는 한 푼의 돈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차마 그는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연민 때문에 손을 내밀어 걸인의 손을 따뜻하게 쥐어주면서 말했습니다. “형제여, 죄송하게도 제 주머니에는 전혀 돈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그때 길가의 걸인은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은 지금까지 나에게 적선한 모든 사람들보다 가장 값진 선물을 주셨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의 액수가 아니라, 사랑 입니다. 얼마를 주는가 보다, 어떻게 사랑하는가가 훨씬 중요합니다. 얼마나 주는가 보다. 어떤 자세로 주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바울은 사랑의 위대성과 우월성을 오늘 본문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사랑이 최고라는 주제송입니다. 기술적 재능보다 사랑의 성품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은사보다 인격적 열매가 더 중요하고, 사업보다 사랑이 우선이며, 사역보다 사랑이 우선입니다.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느냐보다, 얼마나 사랑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말을 잘하고, 지식이 탁월하고, 믿음이 좋고, 순교적 사명감으로 살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디 신학교장 스위팅 박사는 고전13장을 방정식으로 <인생-사랑=0> 사랑이 없는 그 어떤 봉사나 활동은 결국 무의미합니다.
세계적인 억만장자 오나시스가 죽었을 때 ‘타임지’에 “금세기 최후의 부자 중 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그는 21살에 벌써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죽을 때 침대 곁에 있어준 사람은 딸 크리스티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그에겐 재산은 있었지만 사랑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매우 대칭적인 설명을 합니다. 사람의 방언과 하늘의 말을 하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고, 내게 있는 모든 것, 곧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내 몸까지 불살라 바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무효라는 선언입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한평생 봉사했어도 사랑 없이 했다면 무효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사랑=0>입니다. 무의미, 무가치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최우선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1) 말보다 사랑을 우선하라.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웅변의 은사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들은 연설장에서 웅변가의 말을 듣는 것을 즐겼습니다. 데모스테네스, 소포클레스, 유리피데스 같은 달변가들이 당대의 우상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방언의 은사를 과시했습니다.
방언 못하는 사람들을 괄시했습니다. 즉 말 잘하는 사람을 우상화하고 영웅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랑이 없는 달변이나 웅변은 혼란과 분열만을 초래합니다. 말로 한몫 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말로 사람을 홀렸기 때문에 결국 시험거리만 초래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험 들고 상처 받는 요인은? 말 때문입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 가시 돋친 말, 덕스럽지 못한 말 때문입니다. 말보다 사랑을 최우선해야 합니다.
말 속에 사랑이 있어야 마음에 감동을 줍니다. 바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고전 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어떻습니까? 당신의 말은 허공을 치는 잡음입니까, 가슴을 움직이는 사랑의 화음입니까?
모세는 언변이 부족했어도 사랑으로 이스라엘 300만 군중을 인솔할 수 있었고, 사도 요한은 과묵한 사람이었으나 사랑의 리더십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보다 사랑이 앞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지식보다 사랑을 우선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C는 신지식 시대입니다. 그래서 날카로운 예지와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해박한 지식이 사람을 감동시키지는 못합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사랑이 없는 지식은 살 없는 뼈와 같다.” 사랑 없는 지식은 차갑고 냉혹할 뿐입니다.
고전 8:1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지식이 많다보면 결국 자기 자신만을 드러내기 쉽고, 사랑이 넘칠수록 남을 높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머리중심(head)의 사람 보다 가슴중심(heart)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식이 모자라서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하지 않고, 사랑이 없어서 사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차가운 이성의 사람보다 따뜻한 감성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믿음보다 사랑을 우선해야 합니다.
성경에 믿음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깁니까?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고, 기도응답을 받고, 기적을 일으킵니다. 2절에서도 믿음의 위력을 ‘산을 옮길만한 믿음’ 탁월한 믿음입니다. 태산 같이 어려운 문제도 믿음으로 거뜬히 풀어 가는 능력, 얼마나 우러러 보입니까? 그런데 믿음 일변도의 사람일수록 믿음이 약한 사람을 무시할 수가 있습니다. 실력이 탁월하다보니 이해심보다는 정죄의식이 강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믿음도 좋고 실력도 있다 보니 너무 쉽게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경향은 없는지? 본문은 경고합니다.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처음에는 믿음의 훈련을 시키시다가, 성숙의 단계에서는 사랑의 심성교육을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대신하여 양들을 잘 먹이고 보살피는 사랑의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요21장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의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랑의 사람으로 성화되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4) 사명보다 사랑을 우선하라.
기독교 신앙의 최고 수준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헌신입니다. 본문 3절을 보면 구제와 순교입니다. 구제는 헬라어 ‘조각내어 준다.’는 뜻입니다. 자기 재산을 조각내어 자선기금으로 쓰는 선행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랑 없는 선심은 받는 자에게 모욕감을 안겨주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선물을 주면서도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구제행위를 칭찬하지 않고, 꾸짖으신 이유가 무엇일까?(마태 6:2)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선사업을 나팔 부는 외식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주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주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얼마를 주는가 보다, 어떻게 사랑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돈의 액수가 아니라, 사랑의 감정입니다. 사랑은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기독교의 최고 영광은 사명감에 불타 자기 목숨까지 바치는 순교적 삶입니다.
그러나 자기 몸을 불사를 만큼 한평생 헌신 봉사하고 살았어도 사랑 없다면 그것은 무효입니. 내 인생의 모든 것인 몸까지 불사르는 순교를 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모든”이라는 말을 거듭 4번씩 강조합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내 걸만큼 사명감으로 살아도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명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즉 사랑이 결핍되어 있으면 “전부(全部)를 전무(全無)하게 만들뿐입니다.”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인생-사랑=0>입니다.
그러므로 매순간 내 가슴의 근본 동기가 무엇인가를 물어야한다.
웅변과 달변의 사람은 잠깐 동안 인기가 있을지 모르나, 사랑의 사람만이 영원합니다.
말은 사람을 홀릴 수 있으나, 사랑은 사람의 가슴을 터치해줍니다.
혹시 나의 주도적인 믿음과 실력 때문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무시하는 감정은 없는지요.
믿음은 시작이나, 사랑은 완성입니다. 당신의 해박한 지식으로 상대방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당신이 아무리 사명감이 투철하여 목적지향적 삶을 살아도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최우선해야 합니다.
(적용과 실천)
- 만약 우리 삶 속에서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인생-사랑=0] 이 방정식을 깊이 묵상해 봅시다!
특별새벽기도회(3) *주제: ‘사랑’ 2008년 9월1일(월)-5일(금)
2008.9.3(수)
*고린도전서 13:4-7
*제목: 사랑의 본질(2) / 사랑은?(특징)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 먼저 사랑은 먼저 오래 참습니다(patient, suffereth long)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이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해서도 필요합니다. Why me!라고 외치듯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할 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게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음으로 상실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셨습니다.(고전 11:33). 서로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은 아름다운 미덕입니다.
*어느 성도님 집에 가훈이: ‘이것까지 참으라!’
*눅22: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2) 사랑은 온유합니다.
남에게 부드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거친 것이 아니라 부드러움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서 부드러움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드러운 사랑을 멸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연인들은 노예근성이 있기 때문에 온유한 사람을 무시하게 된다.
사랑은 온유합니다. 그러나 부드러움에는 언제든지 꺾이지 않는 강함이 있습니다.
*온유한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마5장)
온유한 자?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
“온유란 외형적인 폭력이나 잔임함의 반대어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그 고통을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자세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예) 회당장 야이로의 딸...........예수님은 기다리게 하심.
3)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질투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체의 잘됨을 시기하지 않고 함께 기뻐하게 됩니다. 시기는 비교하는 마음에서 옵니다. 비교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십시오. 상대방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귀중한 하나님의 유일한 자녀이기 때문이다.
4)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하지 말아야할 이유는 나의 나됨이 주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나됨은 이웃의 도움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랑하지 않는 사람의 입술에는 감사가 넘칩니다.
항상 하나님을 앞세우고, 친구를 앞세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에 의해서 세움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세워주셔야 합니다.
5)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자랑하지 않음과 교만하지 않음은 일맥상통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높이 생각하지 않음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만 악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합니다. 하와의 교만이 선악과를 먹게 하여 결국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교만은 넘어짐의 선봉장입니다.
교만하지 않도록 자신을 말씀 앞에 늘 살피십시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아름다운 미덕은 겸손입니다.
6)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남에 대한 예의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의는 존중과 질서와 같습니다. 그래서 예의는 윗사람에 대한 예의와 아랫사람에 대한 예의, 동년에 대한 예의가 각각 있습니다.
동양문화는 특별히 예의가 발달된 문화입니다. 동양의 예의를 따라서 행동한다면 좋은 예법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예의가 중시되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예의를 지키십시오. 특히 부부간에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이 부부의 도리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무례한 사람은 사랑과 거리가 멉니다.
- 시간 잘 지키는 예의 - 인사를 잘 합시다. - 모두에게 친절 합시다.
7)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음은 그리스도인의 헌신된 자세입니다. 상대방이 듣고자 하는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를 위한 행동을 자기를 해하려는 행동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음으로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끊이지 않고 계속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8)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온유한 자와 일맥상통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온유함을 잃지 않는 것으로 극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마음의 평정심을 매우 중요한 설득력의 근원으로 보았습니다. 수사학을 위해서는 마음의 평정심이 중요하였습니다. 분노를 다스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화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9) 사랑은 악한 것,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악함을 마음속에 품는 것은 매우 좋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심령에 어떠한 악도 포함되어 있지 않아야 합니다. 악을 품고서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악은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10) 사랑은 불의에서 떠나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의인은 악인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 그것은 악을 품고 있으며 불의를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악으로 더럽혀지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악을 간과하거나 본질을 잃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사랑은 늘 진리 편에 서 있습니다.
11)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always perseveres, endureth all things)
4절의 인내와 오래 참음이 약간은 구별되지만 동일하게 참음이다. 마치 팔복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와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가 천국을 소유함으로 시작함과 마침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마 5:3-10). patient와 perseveres의 차이는 시간의 정도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perseveres는 끝까지 참는 인내를 의미하고, patient는 현재에 참는 인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적용과 실천)
- 위 11가지 중 내가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 나는 얼마나 참고, 얼마나 믿으며, 얼마나 바라며, 얼마나 견딥니까?
특별새벽기도회(4) *주제: ‘사랑’ 2008년 9월1일(월)-5일(금)
2008.9.4(목)
*고린도전서 13:8-12
*제목: 사랑의 가치(최고의 가치) / 사랑의 영원성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두 쌍둥이가 왼쪽 아이는 몸이 안 좋아서 인큐베이터 속에서...혼자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긴 한 간호사는 병원의 수칙을 어기며....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 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러자 건강한 오른쪽 아이가 자신의 팔을 뻗어, 아파하는 아이를 포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왼쪽아이의 심장 박동도, 체온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오고....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이기기에 사랑보다 큰 힘은 없습니다. 사랑보다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는 일 안아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리고 안아주고 사랑하십시오. 이번 새벽기도회를 통해 우리 안에 이러한 사랑이 넘쳐나길 원합니다.
1. 사랑의 영원성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대 철학자들은 “영원한 것이란 없다”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1) 세상 것들은 없어집니다.
‘폐한다’ ‘없어진다’는 단어는 ‘실패하다’란 뜻입니다.(펲토) 이 단어에는 본래 두 가지 장면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형편없는 배우가 야유를 받아 무대에서 쫓겨나는 장면입니다. 사랑은 이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영원의 무대 위에서 언제까지나 살아있습니다.
또 다른 장면은 꽃이 시들어 꽃잎이 떨어지는 장면입니다. 사랑은 결코 제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예) 모래 위에 집을 집, 반석 위에 지은 집........비교 ‘무너진다’(펲토)
하나님의 사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없어집니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베드로는 인간의 유한성을 단호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벧전1:24-25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2) 영적 은사들도 없어집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영적 은사들은 일정 기간을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공급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은 영원 하고 영원하고 영원합니다. 예언과 지식은 그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더 이상 필요 없게 됩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바울은 또 한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영적 은사들은 일시적인 것일 뿐아니라 또한 불완전한 것입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바울은 우리에게 영적 은사들은 부분적이라는 것, 즉 단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부분적인 것들이 완전하게 될 것이고, 그날에는 사랑만이 남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영적 은사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바로 바울이 사랑을 최고의 은사로 강조한 이유일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몸 안의 모든 지체들에게 똑같이 최고의 은사인 것입니다. 이 사랑의 은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지는 것입니다.
3)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어제도 말씀 드린 것처럼 고전13장 사랑 장에 나오는 모든 사랑의 속성을 의인화하면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한은 “이 세상은 다 지나간다”(요일2:17) 기업도 스러집니다. 정부도 망합니다. 명성도 없어집니다. 친구도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건강도 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갑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것만이 예외일 뿐입니다.
“이 말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희망입니다.”(골1;27)
제자들도 넘어졌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넘어졌습니다. 도마도 넘어졌습니다.
제자들이 실패했어도 그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엔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변함없는 그분의 사랑이 제자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요21장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회복 / 도마의 고백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바로 이것이니라”(요15:17)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 만큼 그분을 알게 됩니다.
왜 그분을 알아야 합니까?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나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란 존재를 바로 알고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서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세워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나를 사랑하며 나를 알게 됩니다.
나의 가치와 나의 존귀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나를 알고 나를 사랑할 때 우리는 이웃을 소중함을 깨닫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은 결국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시작되며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적용과 실천)
- 결국 없어지고 마는 이 세상 것에 나는 너무 집착하고 있지는 않는가?
- 사랑만이 영원한데 나는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가정에서)
특별새벽기도회(5) *주제: ‘사랑’ 2008년 9월1일(월)-5일(금)
2008.9.5(금)
*본 문: 고린도전서 13:13 (찬송가404, 511장)
*제 목: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사랑의 우월성)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사랑에는 2가지 욕망의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주고 싶다는 욕망, 둘째는 빼앗고 싶다는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랑에는 조건 없는 헌신적인 사랑이 있는가 하면 조건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희생적인 사랑이 있는가 하면 이기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가 베풀어야 할 사랑은 주는 사랑이고, 조건 없는 사랑이고, 헌신적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대부분이 품앗이 사랑이고,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희생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로 죽을 우리를 대신해서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 인간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셨고 희생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정말 마음에 와 닿습니까? 그러면 우리 안에 이 사랑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2. 사랑의 우월성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인생이란 아무리 길어봤자 결국 일장춘몽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무상함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욥은 “생명이 단 한 번의 호흡이다”(욥7:6)
시편 기자는 “인생은 그 사는 날이 풀과 같고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다. 바람이 불면 그 꽃은 떨어져서 다시 볼 수 없으나”(시편103:15-16) 야고보는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약4:14)
우리의 인생이 비록 짧지만 단 한번 밖에 없기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최선의 인생을 선택해야 합니다. 인생의 종점에 다다라 그제서야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은 명백히 못 박고 있습니다. 가장 뛰어난 인생의 목표는 오직 하나 사랑뿐이라고!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추구의 제목입니다. 감히 무엇을 여기에 견주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사랑에 대한 위대한 메시지를 맺으면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3가지 위대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 믿음
“그러므로 믿음은 ........항상 남아 있을 것이며”(고전13:13)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우리 각자는 죄사함을 위하여 그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 죄를 위한 하나님의 해결책을 그리스도 안에서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친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요14:6)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작만 믿음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도 믿음으로 됩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이 없이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도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도 집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 안에서 성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2) 소망(희망)
“그러므로 소망은 ........항상 남아 있을 것이며”(고전13:13)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반적으로 ‘희망’이라는 말을 ‘바래다’ ‘간절히 갈망하다’라는 의미로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일자리 좀 생겼으면 좋겠어” 혹은 “시험에 합격하면 좋겠어”
성경에서 희망(소망)이라는 말은 믿음 내지 신뢰와 상관이 있습니다. 그 근본 개념은 어떤 대상을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욥은 엄청난 고난과 상실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록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할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욥13:15)
*롬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성경은 희망, 소망의 책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하나는 우리로 소망 가운데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사시도록 계속해서 허ㅗ락해드린다면 그분은 우리 안에 소망이 넘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윌리엄 캐리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성경은 우리를 소망(희망)으로 흥분 시킵니다.
3) 사랑
“그 중에 제일 큰 것은 사랑입니다.”(고전13:13)
신약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55번 이상 나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의 우월성을 거듭 말해줍니다. 사랑의 계명을 말해주는 구절을 몇 가지만 뽑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22:37-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고전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갈5:13-14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는 소중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이 셋 가운데 가장 크고 뛰어난 것은 사랑입니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5일간 우리는 사랑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찬송가 404장에는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라고 찬양합니다.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5일 동안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고작 그 사랑의 원리만 배울 뿐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배우고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말씀들이 우리 머리에만 머물지 말고 가슴에 뜨겁게 와 닿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적용과 실천)
- 좀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가 순종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가정과 교회에 넘쳐나길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