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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웨덴의 왼쇠핑에서 하루를 묵고 차를 타고 보튼호수를 끼고 해안선을 따라 오레순 해협의 진주라 불리우는 헬싱보리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카페리호를 타고 덴마크의 헬싱괴르(helsingor)로 출발을 하였는데 헬싱보리에서 헬싱괴르까지는 육안으로도 어렴풋이 헬싱괴르가 보이는 정도이니까 카페리호로 20분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그런 거리에 있었다 동서부 유럽 여행에서 정밀공업의 최첨단들의 제품들이 덴마크에서 생산한 것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부픈 가슴을 안고 덴마크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떠한 나라인가를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항해를 하여 헬싱괴르에 도착을 했다
덴마크편(THE KINGDOM OF DENMARK)
◉ 인구 : 5,556,452명 (2013), 109위 전체순위
◉ 면적 : 43,098km2(한반도의1/5)
◉ 수도 : 코펜하겐 (인구 50만명,수도권포함 137만명)
◉ 언어 : 덴마크어(공용어)/덴마크어,영어,독일어[상용어]
◉ 화폐 : DANISH KRONER
◉ 위치 : 북해와 발트해 사이에 위치, 반도 및 592개 섬으로 구성
◉ 민족 : 전체 인구의 96%가 북게르만계의 데인족
◉ 종교 : 덴마크 루터복음교 87%
◉ 정부형태 : 입헌군주제,내각책임제
◉ 경상GDP : 3472억2100만 달러 (2014), 33위 전체순위
◉ 1인당GDP : 6만1888 달러 (2014), 7위 전체순위
◉ 기후 : 덴마크는 북위 55도 선상에 위치한 북구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겨울에는 멕시코만류의 영향으로 4월에서 5월은 온화하며 여름의 평균기온은 20도C내외로 따뜻하나 연중 바람이 많고 특히 겨울에는 비와 바람이 많으며 하루에도 여러번 기후가 변화한다.
봄은 3월부터4월까지로 밤은 몹시 추우며 날씨의 변화가 심하며 때때로 비가 내린다.
여름은 5월부터 9월까지로 평균적으로 온화한 기후를 보이나 가끔 더위가 엄습하며 소나기도 내린다.
가을은 9월부터 11월까지로 냉랭한 기온을 나타내며 수시로 비와 바람이 분다.
겨울은 11월부터 3월까지로 낮은 기온을 보이나 혹독한 추위는 없다.
연평균 강우량은 664mm 정도이며 비가 오는 날은 연간 약 160일정도이다.
하절기는 건기에 해당하며 습도가 낮아 우리나라처럼 무덥지 않다.
※ 북유럽의 나라중 가장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치령인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를 제외하면 4개국 중 가장 작은 나라이다. 과거 북유럽 최초의 기독교화 봉건제 영토의 일부 도입, 종교개혁,나치독일에 의한 중립 침범과 점령, 제2차 세계대전 후의 NATO 가맹, 북유럽의 유일의 EC(EU의 전신)을 이루어낸 나라로서 1인당 GNP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선진적인 사회 보장제도를 갖춘 복지국가이다.안데르센,키에르케고르,토르발드센 등 예술가들을 배출해 북유럽의 예술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 2012년에 발표된 유엔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56개국을 대상으로 한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가 덴마크였다. 미국은 11위, 일본은 44위였고, 한국은 56위를 했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물었다. “요즘 걱정거리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거의 모든 사람들의 답이 일치했다. “별로 걱정거리가 없습니다."
덴마크인들에게 또 물었다.
“당신은 행복하게 살고 있나요?”
100%가 머뭇거림 없이 대답한다.
“그렇다.”
덴마크가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1. 자유 : 7학년까지 시험도 등수도 없다 덴마크의 초등학교는 우리의 중학교 과정을 포함해 9학년인데 7학년까지는 점수를 메기는 시험이 없고 등수도 없다. 공부를 잘한다고 상을 주는 일도 없다.공부를 잘하는 것은 여러 가지 능력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고 학생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고등학생들도 대학에 갈지 안 갈지, 무슨 학과를 갈지도 걱정 없고 느긋하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어떤 압력도 받지 않고 자신의 앞날은 스스로 찾는다.
2. 안정 : 병원진료비 전액 무료, 실직하면 2년간 정부에서 급여 덴마크는 사회안전망이 아주 촘촘하게 잘 되어 있다. 덴마크는 병원 진료비가 전부 무료이고 개인별로 주치의가 정해진다. 교육비도 전액 무료다. 대학등록금도 공짜이고 대학생이 되면 매달 우리 돈으로 약 120만 원씩을 생활비로 받는다. 직장인은 실직해도 걱정이 없고 2년까지는 정부에서 예전 월급 수준으로 보조해주고 그 기간에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을 정부가 도와준다. 이런 사회복지시스템이 창의적 도전을 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3. 평등 : 택시기사와 의사가 함께 어울린다 덴마크 사람들이 큰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평등사회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빈부격차는 적고 직업의 귀천도 느껴지지 않는다. 덴마크 국회들은 손님이 오면 본인이 방문객 접수대에 내려와서 손님을 맞이하고 자그마한 자신의 방에서 손수 음료수를 대접한다. 국회의원은 특별한 직업이 아니다. 택시기사들도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의사, 변호사 친구들과도 주눅 들지 않고 잘 어울리며 살아간다.
4. 신뢰 : 월급의 50%가 넘는 세금을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 덴마크 9년간 같은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친다. 덴마크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대단하다. 교사는 단순히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홈닥터와 같은 존재다. 덴마크 사람들은 자기월급의 50% 전후를 세금으로 내면서도 “세금이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은 오랫동안 정부와 시민들 사이에 형성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5. 이웃 : 의지할 수 있는 동네친구가 있다 덴마크인들은 외롭지 않다.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지에 대해 별 걱정이 없었다. 이웃끼리 다 연락을 해서 오늘은 어느 부모가 아이들을 돌볼 것인가를 정한다. 서로 친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세계에서 사람들간의 조직률이 가장 높은 곳이 덴마크인데 이런 이웃공동체들이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하고 행복감을 높여주는 한 요소다.
6. 환경 : 코펜하겐 직장인 35%가 자전거로 출퇴근 덴마크는 자전거의 나라다. 코펜하겐의 직장인 중에 약 35%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이동거리 5킬로미터 미만을 따지면 59%나 자전거를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비만인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덴마크 정부는 자전거도로를 확장하고 있고 지금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광역 자전거도로를 만들고 있다. 공해 없는 나라, 건강한 나라가 덴 마크 국민들의 행복을 높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자전거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사람 잘못으로 판정한다 그러기 때문에 자전거 도로를 함부로 보행해서는 절대로 않된다.
◆ 코펜하겐(Copenhagen)
덴마크어로는 쾨벤하운(København)이라고 한다. 셸란섬의 북동안에 있는 무역항으로 대안에 있는 스웨덴의 말뫼 사이에는 철도연락선이 오간다. 코펜하겐의 기원은 오래며, 1043년에는 하운(Havn)또는 하프니아(Hafnia:항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1167년에 최초로 성채가 축조된 뒤에 발전하여 13세기 중엽에는 수륙 교통의 요지를 차지하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쾨벤하운(去來港)이라고 하였다. 13~16세기에 한자동맹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1422년 도시권을 획득하였고, 1443년 이후 덴마크의 도시가 되었다. 1658∼1659년 스웨덴의 공격을 받았으며, 1660년에는 이곳에서 코펜하겐 조약이 체결되었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1801년과 1807년, H.파커와 H.넬슨이 이끄는 영국함대의 포격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1940∼1945년에 독일군의 지배를 받았고, 연합국의 폭격으로 항구와 조선구(造船區)가 파괴되었으나 시가지의 피해는 없었다. 구(舊)시역의 중심은 사각형 광장 콩겐스뉘토르이며,인접한 카를로텐보르궁전은 17세기의 건조물로 현재는 왕립미술협회이다. 해안 가까이에 현(現)왕궁인 아말리엔보르궁전, 가로를 사이에 두고 ‘대리석의 가람’이라는 프레데릭스교회, 그 남쪽에 좀 떨어져서 왕립극장·니콜라이 교회 등이 있고, 도심부의 남단에 중앙역·티볼리 공원·시청사 등이 있다. 왕궁의 북쪽에는 별 모양으로 해자(垓子)를 두른 성채가 있고, 그 해안에 H.C.안데르센의 동화로 유명한 인어상(人魚像)이 있다.
시내에는 녹지가 많으며 유서 깊은 궁전·교회 등의 건축물이 많아 유럽에서도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미술관·박물관이 많고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학회·연구기관의 본부가 있다. 대안의 아마게르섬에는 조선소와 철공장 등이 있다. 공업은 도자기·낙농제품·화학·섬유 등의 제조업이 활발하며 가구·피아노 등도 유명하다.
카페리호를 타고 스웨덴의 헬싱보리를 바라본 전경
차량과함께 이배를 타고 덴마크 헬싱괴르로 향하고 있다
페리호에서 바라다본 덴마크 헬싱괴르의 전경
크론보르 성 - Kronborg Slot
헬싱괴르(Helsongør) 시에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고성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무대로 유명한 곳이다.
한적한 바닷가 언덕 위에 서 있는 성은 웅장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왠지 외롭고 칙칙하다는 느낌을 준다.
견고한 수비벽에 외곽보루까지 딸린 철옹성 같은 모습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누구나 너무나 잘 아는 햄릿의 비극의 잔영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햄릿의 무대였다는 이유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 역사적인 의의도 큰 곳이다.
맑은 날이면 바다 건너 스웨덴이 보이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16~18세기 북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성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574년 프레데릭 2세(Frederick II) 때이다.
1585년 웅장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공되었으나, 1629년 화재로 예배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IV)의 재건으로 1639년에 옛모습을 되찾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한 탓에 여러 차례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 때마다 보수 과정을 거쳐 1924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1658년 스웨덴의 침공으로 성이 함락된 뒤, 방어시설로서의 기능이 대폭 강화되었다.
견고한 수비벽에 외곽의 망루까지 덧붙여지면서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은 이미지를 굳혔다.
성 내부에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된 방들을 볼 수 있다.
특히 62미터에 이르는 대형 연회장이 인상적이다. 왕과 왕비의 침실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방이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높은 첨탑이 눈길을 끄는 예배당은 과거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지하에는 홀러 단스크(Holger Danske)의 동상이 있다. 평소에는 잠을 자고 있다가 덴마크가 중대한 위기에 빠지면 잠에서 깨어 나라를 구한다는 전설 속의 영웅이다.
전설에서처럼 팔짱을 낀 채 앉아 잠자는 모습이다. 성 안에는 또한 덴마크 해양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희곡 <햄릿>의 무대가 된 곳이긴 하지만 햄릿을 연상시키는 것들은 많지 않다.
햄릿이 아버지의 망령을 본 곳으로 설정된 망루와 햄릿 연극시 사용되었던 의상을 포함한 각종 소품들을 전시한 전시실 정도다.
여름에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상연되고, 덴마크 국왕 부부의 은혼식 같은 중요한 왕실 행사가 열린다.
스칸디나비아에 있는 한적한 고성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해마다 2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발돋움했다.
크론보르성에서 사진 촬영좀 하자 했드니 ok
북유럽사람들은 그래도 영어를 잘 하는 편이다
동,서,남유럽지역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영어를 잘 안쓰는데 독일어는 어느곳을 가든지 통용이된다
크론보르성 호수에서
코펜하겐 시내에 들어왔다
시내 중심가에서 시민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코펜하겐 시청
1905년 건축된 붉은 벽돌의 중세풍 건물로, 내·외부가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정면 입구에 있는 상은 코펜하겐의 창설자 압살론 주교이고, 내부에는 옌스 올센이 설계한 독특한 천체시계, 안데르센의 상 등이 있다.
높이 106m의 탑 위에 오르면 코펜하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탑의 종은 15분마다 시간을 알려준다.
안데르센의 동상
코펜하겐 근처 오덴세 출생. 가난한 양화점의 아들로 아버지는 문학을 좋아하여 어린 아들에게 《아라비안 나이트》나 극작가 호르베아의 작품 등을 들려주었으며,
어머니는 루터교의 신앙을 교육하였다.
소년 안데르센은 아버지로부터 시적 재능을, 할머니로부터 공상(空想)을, 어머니로부터 신앙심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15세 때 배우가 되려고 무일푼 단신(單身)으로 코펜하겐으로 갔으나, 피나는 노력의 보람도 없이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몇 번인가 절망의 늪에 빠졌지만, 당시 유망한 정치가이며 안데르센의 평생 은인인 요나스콜린의 도움으로 슬라겔세와 헬싱고르의 라틴어 학교에서 공부하고,
마침내 코펜하겐의 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학시절부터 시작(詩作)에 뜻을 두어 일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었다. 1833년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과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즉흥시Improvisatoren》(1835)가 독일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그의 문명이 유럽 전체에 퍼졌다.
같은 해에 내놓은 최초의 《동화집》은 동화작가로서의 생애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그 후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안데르센 동화집》이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각 가정에서 기다리는 선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동화 창작은 1870년경까지 계속하여 모두 130편 이상에 달한다.
안데르센 동화의 특색은 그의 서정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그리고 따스한 휴머니즘에 있다.
《인어 공주》 《미운 오리새끼》 《벌거숭이 임금님》 등 아동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수많은 걸작 동화를 남겼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대부분의 생애를 해외여행으로 보냈다.
그가 가장 즐겨 체류하던 나라는 독일과 이탈리아였으며, 교우범위도 매우 광범위하여 국내외의 시인 ·문학자 ·미술가는 물론 왕후(王侯)와 저명한 정치가에까지 미쳤다.
그 가운데서도 그에게 가장 깊은 정신적 영향을 준 것은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불리는 제니 린더와의 교제였다.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은 연애까지는 진전되지 않은 채 안데르센으로 하여금 깊은 체념에 빠지게 하였다.
《즉흥시인》에 이어 내놓은 《가난한 바이올리니스트 Kun en Spillemand》(1837) 《그림 없는 그림책 Billedbog uden Billeder》(1840)은 그의 많은 작품 중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널리 애독되는 명작들이다.
시청앞광장이다
광장에 있는 팔래스호텔앞에서 군악대가 행진하면서 연주하고 있다
여기 보이는 두분이 덴마크에서 우리를 가이드한 현지 안내인이다
크리스티안보르궁전
18세기 말까지 왕실의 거처였으나, 1794년 화재로 아말리엔보르 궁전으로 왕실이 옮겨갔다.
1828년에 새로운 궁전이 지어졌지만 프레드릭 6세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고 별장처럼 사용하였다.
그 후 다시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불탔으며 현재의 궁전은 20세기 초에 지어진 것이다.
건물은 코펜하겐의 창설자 압살론 주교가 1167년에 세운 성채터 위에 있다
루핀(lupine), 루피너스(lupinus), 층층이부채꽃 - 미국 ,아프리카, 지중해연안이 원산지라고 되여있는데 종류와 색갈도 다양하다
북유럽지역에도 많이 분포되여있다.
장관에 임명이 되면 자전거를 지급한다
자가용 대용으로 자전거가 교통수단이다
이 자전거가 장관용으로 지급된 것이다
니하운 운하
아말리엔보그성 궁전-매우 검소한 궁전으로 위병들이 서있지 않다면 궁전임을 알수 없는 소박한 성
오페라하우스
게피온분수대
게피온은 덴마크의 수호이자 여신이다
스웨덴의 대지를 4마리 황소로 떼어내어 바다로 끌고 가서 섬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코펜하겐이 있는 셀란섬이다
이 분수는 1908년 제1차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덴마크의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인어공주상
코펜하겐의 상징으로 인데르센의 (인어공주)에서 영감을 얻은 조각가 에릭센이 자신의 부인을 모델로 하여 1913년에 만들어졌다
그동안 머리와 팔이 잘려나가고 페인트를 뒤집어 쓰는등 여러차례 수난을 겪었다
덴마크 관광을 마치고 DFDS seaways 유람선을 타고 노르웨이 오슬로로 향하고있다
한 10시간은 가야할 판이다
이 배는 핀란드에서 스웨덴으로 이동하였든 실자라인과 비슷한 유람선이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코펜하겐항구 모습
풍력발전기가 유독 덴마크에선 많이 보인다
대단히 검소하고 소박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요트인줄 알았는데 어선이다
이제 잠자고 나면 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하여 있겠지
첫댓글 상세한 정보와 안내로 공부도 하고 좋은 사진 작품들 감상 잘 했습니다.
정성들여 편집하여 올리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코펜하겐 본문 사진 배꼽만 보이네요.
공천형! 방문한 나라의 실정을 일목요연하게 표현 하려하니 그것도 그리 쉬운일이 아니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