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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0 기상.
오늘 1박2일의 페어리메도우 트레킹 때 가지고 갈 집사람의 배낭에, 나와 집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넣고,
내일 길기트에서 출발하는 나트코버스에 싣고 올 내 배낭에, 두 사람의 나머지 물품을 넣는 등 배낭정리를 한다.
- 호텔식당에서 아침식사 후 (7:00), 짧은 시간이나마 길기트 시내를 돌아보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8:30).
선선한 날씨의 훈자와 달리 길기트에서는 벌써부터 무더위가 느껴지는 기후이다.
- 외국인여행객으로서 길기트에서는 신중히 행동해야할 필요성을 느껴, 길거리 풍경이나 사람들을 사진찍는 걸 자제하면서
로타리쪽으로 걸어간다.
길거리나 건물 앞에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나 일반 평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동소총을 소지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어,
그렇잖아도 조심스러운 여행객들을 더욱 위축되게 만드는 시내 분위기이다.
(시내 로타리에서)
- 여행책자나 여행기에서 보아온, 길기트의 대표적인 배낭여행자 게스트하우스인 '마디나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해보고자,
경찰이나 현지인들에게 물어서 찾아가던 중에, 한 젊은이가 다가와 자신이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젊은이도 잘 알지 못하는지 여러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우리를 데리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다.
이 사람의 호의가 고맙기도 하지만 어쩐지 염려스러운 생각도 들어, 우리가 직접 찾아가겠다고 한 후에 헤어졌다.
- 마디나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니, 길기트 시내에서 느꼈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배낭여행자들의 자유스러움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친절한 종업원의 안내로 방과 정원 등을 둘러본 후에, 이곳의 주인장인 야굽을 만났다.
한국 여행객들과 가깝다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인장이나 종업원들이 우리가 한국인인 걸 알고 더욱 반기는
표정들인 것 같다.
중국 여성배낭자 몇명이 차를 마시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의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가라는 야굽의 진심어린 듯한 호의를,
페어리메도우 트레킹 때문에 돌아가야겠다고 말하며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다음에 길기트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한번 머루르고 싶은 분위기의 게스트하우스이다.
-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트레킹 때 먹기 위해 오이를 몇개 사왔다.
(마디나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인 야굽과 함께 - 책자 사진에서 봤던 몇년전의 호남형 얼굴에 비하면, 많이 늙어보여 약간 놀랐다)
(오이를 사는 중)
- 18명의 일행 중에서 복마니님을 포함해 3명은 길기트에 잔류하고, 페어리메도우 트레킹을 위해 15명이 대절버스에 올라
호텔을 출발한다 (10:00).
- 며칠전에 트레킹이 염려스러운 회원께서 나에게, '이번 여행 중에 꼭 가봐야할 트레킹코스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 역시 초행길이긴 하나, '내 생각에 이번 파키스탄 여행의 꽃은 페어리메도우 트레킹일 것 같다'라고 답했다.
- 라이코트브리지에서 젤마을까지 가는 산 절벽길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심장병이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회원은 재고해달라는
케이씨대장님의 엄포(?)도 있어서인지, 여러분의 회원께서 트레킹에 참가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길기트를 떠나는
대절버스에는 대부분의 회원께서 동승하게 되었다.
(길기트에서 라이코트브리지까지 가는 지도)
- 길기트의 버스터미날을 지나 길기트강을 따라 달리던 중에, 스카르두로부터 흘러오는 인더스강을 만나 길기트강은
인더스강에 합류하게 되고, 이제부터 우리는 인더스강을 따라 내려간다.
- 사고가 났기 때문인지 많은 차들이 멈추어 서있고, 승객들이 차 밖으로 나와 있다.
우리들도 차에서 내려 사고현장으로 가 사진도 찍어보고, 주변풍경도 감상해보는 등 느긋한 마음으로 도로가 정리되길
기다리다가, 약 30분 후에 다시 출발한다.
(차들이 멈추어 있다)
(인더스강이 흐른다)
(사고 현장)
- 길기트를 떠난지 3시간 후에 라이코트브리지에 도착했다 (오후 1:00).
다리 부근 나무그늘 밑에서 라면을 끟여 점심식사를 한 후에, 주위에 있는 조그만 매점에서 간식을 사먹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라이코트브리지 - 얼마후에 앞에 보이는 집 마당에서는, 무슬림 몇명이 양탄자를 깔아놓고 예배를 드린다)
(라면을 끓이는 중)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짚차들)
(샹그릴라호텔)
- 짚차 3대에 회원들 5명씩 분승하여, 샹그릴라호텔 앞을 출발해 페어리메도우 트레킹 시작지점인 타토마을로 향한다
(오후 2:00).
어제 길기트에서 짚차를 대절해 날타르밸리를 다녀온 5명과 운전기사, 마부겸 롯지 종업원으로 보이는 젊은이 등 7명이
탄 차가 선두로 출발한다.
(*) 페어리메도우 (Fairy Meadow, 요정의 초원) :
- 1932년 낭가파르바트 독일 원정대가 붙여준 이름으로, 페어리메도우 트레킹코스는 파키스탄의 여러 트레킹 중에서
쉬운 편으로, 배낭여행자들도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다.
- 젤 (2,666m)에서 페어리메도우 (3,306m)까지는 5.5km 거리로 표고는 640m 올라가게 되며, 전나무와 삼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지고 2시간~3시간이 소요된다.
- 페어리메도우에서는, 무려 5천미터나 치솟은 낭가파르바트 (8,125m) 남면의 웅장함과 라이코트빙하, 아름다운
고산초원 등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낭가파르바트 (Nanga Parbat) :
- 높이 8,125m로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산으로서, 낭가파르바트는 산스크리트어로 '벌거벗은 산'을 의미하는데,
산이 수직으로 치솟아 눈과 얼음이 붙지 않은 생김새에서 따온 이름이며, 이 지역 원주민들은 '산들의 왕'을 뜻하는
디아미르 (Diamir)라고 부른다.
- 낭가파르바트는 히말라야산맥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하며, 히말라야산맥은 낭가파르바트를 마지막으로 인더스강에
끊겨 그 맥을 다하고, 인더스강을 넘어서 북동쪽으로 카라코람산맥과 북서쪽으로 힌두쿠시산맥이 위치한다.
- 1895년 영국의 머메리가 첫등정 시도를 하였으나 실종된 이후, 독일은 1932년 이래 집요하게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매달렸고, 무려 31명의 희생자를 제물로 삼고나서야, 1953년 독일, 오스트리아 등반대원인 헤르만 불이 초등에
성공하였다.
- 오은선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산악인인 고미영이, 2009.7.10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8천미터급의
14좌 중에서 총11좌 등정에 성공했으나, 다음날 11일 하산하던 중 목숨을 잃었다.
(페어리메도우 트레킹 안내도) (* 출처 : 투어인케이씨 카페)
- 라이코트브리지에서 타토마을까지의 산길은 페어리메도우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하는 통과의례로, 험하고
아찔하기로 악명높은 길이다.
- 이 길을 만든건 타토마을 주민들로서, 약 24년 전부터 라이코트계곡의 험한 절벽에 길을 냈는데, 절벽을 따라서 일부를
도려내듯이 깎아내고, 그 돌로 벽돌을 다듬어서 차 한대가 다닐 수 있도록 절벽 옆에 차곡차곡 쌓았다고 한다.
- 출발한지 얼마까지는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라이코트계곡 안쪽으로 들어서면서부터 험한 길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계곡 절벽은 너무 깊고 위험해 내려다보기만 해도 어질어질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 아찔한 절벽길을 올라가던 짚차가, 차 앞을 걸어가고 있던 현지인들 앞에 서더니, 웬 여자아이를 태우자고 한다.
동승한 젊은이 얘기로는, 부모와 같이 타토마을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중인데, 애가 너무 기진해서 마을까지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더란다.
이 소녀를 뒷좌석 중간에 앉히고 올라가며 이름 등을 물어봐도, 눈을 감은 채 병자처럼 맥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젊은이에게 애가 어디 아픈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허기져서 기운이 없어서라고 한다.
안쓰러운 마음에 일행들이 물과 과자 등을 건네주자, 탈진상태라 그런지 물만 계속 마실 뿐 과자는 먹지를 않는다.
좀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몇마디 말을 건네보았으나 만사가 힘겹고 귀찮은 표정을 짓길래, 조용히 쉬라고 토닥여준다.
(소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 평생 지나가본 길 중에서 가장 험난한 길을 올라가며 사진찍을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행여 짚차 밖으로 튕겨져나가 저 아득한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들은 차 안에 있는 손잡이와 쇠막대 등을 꽉 붙잡고 앞만 응시하고 있다.
- 그런데 이 위험한 길을 운전하고 있는 운전기사의 여러 행동이, 일행들을 매우 불안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면만 바라보고 운전해도 염려스러울 판에, 뒤에 있는 젊은이와 말을 하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뒤로
돌리기도 하면서, 때때로 한 손으로 운전을 하는 게 아닌가?
- 잡담은 집어치우고 운전이나 정신집중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행여 운전기사의 심사를 거슬리면 더 위험해질 것 같아, 우리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 듯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조용히 있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기사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짓다가, 우리끼리 주고 받는다.
'너 이놈, 어디 차에서 내려 두고 보자.'..
- 짚차 엔진소리와 자동차 바퀴들이 길 위의 자갈들과 맞부딪히며 내는 요란한 소리가 그치고 차가 정차하더니, 자동차 본넷을
열어 과열된 엔진을 식히고 냉각수를 채운다.
- 우리도 차에서 내려 심호흡도 하고 몸도 풀어본 후에, 주위의 황량하고 아슬아슬한 풍광들을 카메라에 담아보며, 짐짓 서로
여유로운 말도 나눠본다.
'그래도 우리가 어제 날타르밸리에서 오프로드 경험을 제대로 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오금이 덜 저리는 거 아닌가 모르겄네'..
'운전기사가 옆이나 뒤를 돌아보며 얘기를 나누고 여러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 같지만, 진짜 위험한 구간에서는 자기도 바짝
긴장하면서 운전에 열중하는 것 같더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짚차가 이 길을 오고 갔을 터인데, 저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은 관광객이 있었다면 이렇게 운행을 할 수
있겠는가?'.. 등등
(첫번째 정차 중에. 자동차 본넷을 열어 엔진을 식히고 있다 - 가운데가 운전기사, 오른쪽은 마부겸 롯지종업원인 듯한 젊은이)
(뒷차가 오고있는 중)
(두번째 정차 장소에서)
(맨 오른쪽이 숙소 관리인인 쇼것이다)
- 절벽길을 올라오며 차의 과열된 엔진을 식히고 냉각수를 보충하기 위해 두번을 정차한 후에, 타토마을에 도착했다 (오후 3:40).
라이코트브리지로부터 1시간40분이 소요된 셈이다.
오는 도중에 태어준 소녀를 마을 입구에 내려준다.
- 타토마을에서 좀더 올라가면 트레킹 시작지점인 젤이 나오는데, 계곡물이 넘쳐흘러 찻길이 엉망이 된 상태라, 일행들 모두
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간다.
(타토마을 입구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는 중)
(마을 풍경)
(짚차 종점)
- 짚차 종점에서 운전기사와 작별을 하고, 언덕을 내려가 계곡을 건너서 얼마를 올라가 트레킹 시작지점인 젤에 도착하니,
통나무집이 몇 채 있고 마부와 말 몇마리가 대기하고 있다.
- 걸어서 올라가는 회원과 말을 타고 가는 회원으로 나뉘어, 오늘의 페어리메도우 트레킹이 시작된다 (말값은 1,300루피).
나와 집사람은 걸어가기로 한다.
(언덕길을 내려가)
(나무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계곡을 건너는 중)
- 젤 (Jhel, 2666m)에서부터 페어리메도우(3306m)까지는, 약 5.5km 거리로 표고 640m를 올라가게 되는 트레킹코스이다.
산길은 전나무와 삼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숲길로, 걷기에 그리 어렵지않은 평탄한 길이다.
- 케이씨대장님과 나는 일행들의 후미에서 걸어간다.
2시간 정도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낭가파르바트 베이스캠프로 직진하는 길과 페어리메도우로 향하는 오른쪽 길로 나눠진다.
오른쪽 방향으로 들어서서 언덕길을 오르니, 조그만 나무판으로 만든 숙소 간판들이 세워져있고, 석양빛에 물들어가고 있는
낭가파르바트와 라이코트빙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숙소 안내 간판들)
(일몰 무렵의 낭가파르바트와 라이코트빙하)
- 젤에서부터 약 2시간 40분을 걸어, 일행 중 마지막으로 숙소인 '라이코트 사라이'에 도착했다 (오후 6:50).
- 숙소 바로 앞에는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산봉우리인 낭가파르바트의 하얀 설벽과 시커먼 라이코트빙하가 보이고,
주위로는 전나무와 히말라야 삼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곱게 자란 풀들이 잔디처럼 깔려있는 곳곳에 통나무집들이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페어리메도우에 들어선 것이다.
- 1932년 이곳을 처음 찾은 독일 원정대는, 황량한 산과 계곡 안쪽에 마치 천상의 정원과 같은 이러한 멋진 풍경이 있는 것을 보고,
아마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이곳을 왜 '요정의 초원'이라고 명명하였는지 이해가 된다.
- 젤에서 단 3시간 정도를 걸어와서, 바로 눈 앞에 5,000m를 치솟은 8,000m급 설산을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다는 게,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
라이코트브리지에서 험한 절벽길을 짚차로 1시간30여분을 올라왔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숙소인 라이코트 사라이)
(페어리메도우에서 파키스탄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 숙소 앞 초원에는 모닥불이 피워지고, 회원들이 가위 바위 보를 하여 통나무집을 선택한다.
숙소 관리인에 의하면, 금년들어 우리가 첫 단체손님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배정된 통나무집 안에 들어가보니, 종업원들이 청소를 했을 터인데도 먼지투성이 상태라, 집사람이 한참동안
먼지를 닦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높은 곳에 이러한 숙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 이곳은 3,300m의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해가 지면 금방 추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늘 해발 1,500m인 길기트에서 표고 1,800m를 올라왔으므로, 고산증에 대해 유의해야 한다.
어떤 회원께서는 벌써 고산증세를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숙소 앞 초원에 모닥불을 피웠다)
(통나무 숙소 앞에서)
(가위 바위 보로 통나무집을 고르는 중)
- 밤 8시경 숙소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뽕술을 몇잔 마셨더니, 고산이기 때문인지 취기가 금방 오른다.
- 저녁식사 후에 초원으로 이동하여, 모닥불 주위에 앉아 얘기들을 나누다가 노래가 나오기 시작하고, 얼마후에는 숙소 종업원들도
모두 모이게 된다.
숙소 대장격인 관리인과 노래 국가대항전을 벌이기로 하여, 우리들이 한 곡조 뽑은 후에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한 곡조 부르고,
계속 돌아가며 한국 노래와 파키스탄 노래가 초원에 울려퍼진다.
- 숙소 종업원들이 플라스틱 대형 물통을 가지고 나와 노래 장단을 맞추고, 큼지막한 히말라야 삼나무 장작이 모닥불에 연신
던져지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노래 선곡에 어려움을 겪던 한국팀에게, 한 회원의 스마트폰에서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노래가 나오자
판세는 다시 한국쪽으로 기울게 된다.
여세를 몰아 우리는 '빨간 마후라'와 '사나이로 태어나서' 등을 연달아 목이 터져라 합창하자, 파키스탄팀들도 자기네 군가를
정신없이 합창하기 시작한다.
('청춘을 돌려다오'는 이후 여행내내 우리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 흥이 도도해진 우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고서 모닥불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강강수월래 춤사위는 일순간 파키스탄 전통춤이 되었다가, 어느새 국적도 없는 막춤으로 이어지고 있다.
-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는 히말라야산맥의 서쪽 끝자락에서, 8,125m 낭가파르바트 설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3,306m
요정의 초원에서, 히말라야 삼나무 장작은 자신의 몸을 사르며 모닥불을 피우고 있고, 머나먼 한반도에서 이곳까지 찾아온
우리들은 파키스탄 친구들과 어울려 깊어가는 이 밤을 즐기고 있다.
(모닥불 피워 놓고)
- 페어리메도우에서 2시간 이상 광란의 밤을 보낸 후, 통나무집으로 들어와 취침 준비를 한다.
찬물로 양치질과 세수만 간단히 하고, 추위에 대비해 가져온 내복과 파카 등 모든 옷들을 껴입고서 잠자리에 들어간다.
집사람은 가져온 침낭을 깨끗하지 못한 침구 대용으로 이용하고, 나는 방안에 비치된 이불을 모두 덮고서, 낭가파르바트
요정의 품 안에 안겨 눈을 감는다 (밤 11:30).
((*))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 (Eight Thousanders) :
- 좁은 의미의 히말라야산맥에 10개봉, 카라코람산맥에 4개봉 (K2, 가셔브룸1, 가셔브룸2, 브로드피크)이 있다.
- 그러나 광의의 히말라야산맥에 8천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14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8천미터 이상의 높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14좌 리스트에 끼지 못하고 위성봉 취급을 받고 있는 봉우리들이 있는데,
로체샤르(8,400m)와 칸첸중가 남봉(8,476m)이나 얄룽캉(칸첸중가 서봉. 8,505m) 등이 그것이다.
히말라야의 어떤 봉우리를 하나의 독립봉으로 판단하는 데는 특별히 객관적 기준이 없으며, 그저 보는 사람들의
주관에 의해 결정되었을 뿐이다.
두 개의 고봉이 나란히 있는 경우, 두 봉간의 거리나 콜(col,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안부)의 깊이 등으로 낮은 쪽을
독립봉인지 돌출봉인지를 결정하게 되는데, 그 거리나 깊이에 대해 약속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 인류의 히말라야에 대한 도전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으나, 1950년 프랑스 원정대가 최초로 8천미터급 봉우리인
안나푸르나를 초등하였다.
이후 1953년 영국 원정대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데 이어, 다른 봉우리들도 계속 등정이 이루어졌으며,
중국 원정대가 1954년에 14번째 봉우리인 시샤팡마를 초등함으로써, 14좌 모두 인류에 의해 등정되기에 이른다.
- 이탈리아 산악인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1970년 낭가파르바트를 시작으로 1986년 로체에 오르면서, '인류 최초 8천미터급
14좌 완등'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우리나라의 산악인은, 박영석 (1993~2001), 엄홍길 (1988~2001), 한왕용 (1994~2003) 등 3명이다.
그리고 오은선이 여성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했다고 (1997~2010) 주장했으나, 칸첸중가 등정이 논란중에 있다.
(히말라야 8천미터급 14좌 분포 개념도) (* 출처 : 서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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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월에는 장사가 없는 법(길기트 게스트하우스 늙어 보인다고 하니) 변하게 마련이지요
우리의 여행도 체력이 될때 여행의 즐거움을 찾는게 중요하지요..아마 10년,15년후에는 어떤 느낌이 가지실지
옛 속담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가 있듯이 지나간 세월은 아쉬워 말고
지금 웃을수 있다면 행복이고 웃을수 없다면 불행입니다.
매일 매일 항상 웃는일(행복만땅)만 가득하시길 응원합니다.
여행이란 가슴이 떨릴 때 해야지, 발이 떨릴 때에는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ㅎㅎ
체력이 바닥나서 남은 3명중 한명인데 같이 못간게 아쉽긴 하네요 ㅎ
잘읽었습니다
달마님이 참가 안하셔서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근디, 달마대사님도 체력이 바닥나나유?
혹시, 전날 밤새도록 뽕술을 드신 건 아닌지 모르겠네유.
낭가파르밧 끝자락에서 하루밤 자는 행운도 있네요.여기도 저기도 빙하천지...파키스탄의 유혹에 빠져듭니다.
파키스탄 북부지역 트레킹에서, 검은색, 회색, 흰색 등 각양각색의 빙하를 실컷 보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