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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역사, 문화, 사회 1975년 패망월남(="자유월남")의 보트 피플(Boat People)이 어떤 사람들이죠? - "보트 피플"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
정론직필 추천 65 조회 3,178 14.06.09 22:42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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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6.09 23:15

    첫댓글 (__)

  • 14.06.10 00:02

    당시 신문.방송에서 많은 보트피플을 동남아 해적들이 금품 다 뺏고 남자들은 그 자리에서 살해되거나 산채로 바다에 던지고 여자들은 모두 성폭행 하는 등 목불인견의 참상이 빚어 졋다고 보도 하던데 그 보트피플들이 금품을 많이 갖고 나와서 약탈의 표적이 되었겠죠.당시 동남아 해적들이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고 합니다.

  • 14.06.10 01:47

    사는 것도 바쁜데,,왜이리 공부해야 할것이 많은지 모르겠네요...내일 조목조목 숙제하렵니다.
    내용이 처절하군요..도데체 베트남전으로 죽어나간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4.06.11 09:08

    맞습니다..인터넷에서 눈팅하며 공감하는 대부분의사람들이 좌빨이 아니지요..외세를 배격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우익정도되겠는데 친미 친일분자들이 우익을 자처하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네요..좌익사상을 갖는다는것은 아무나 할수있는게 아니라 생각합니다..그들은 자기의 모든걸 민족을 위해 다 내어놓은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람들입니다..아름다운 사람들이지요..우리들이야 기껏해야 우익정도나 될까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4.06.10 13:21

    그 더러운 오물을 왜 먹어요 ? 우웩 ! ~~그냥 분쇄기로 갈아서 사료로나 ~~ㅋ

  • 작성자 14.06.10 06:42

    109만여명의 난민이 나라없는 민족이 되어 구사일생으로 보트를 타고 도망쳤다.
    ----------

    당시 몇천만명의 인구였을 남베트남 티우 정권 하의 사람들 중에
    왜 하필이면 고작해서 100만명 정도만이 그와같이 보트 피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어려움을 자초했던 것일까요?

    그 나머지 대부분의 몇천만명의 남베트남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와같이 극단적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적화통일된 베트남에
    머물렀던 것일까요? 그리고 그들은 모두 공산당에게 처형당했던 것일까요?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음을 오늘날의 베트남을 보면
    우리는 잘 알 수 있지요.

  • 14.06.10 10:21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분단된 한국이 미국의 조종(?)으로 어떻게 사는가?
    부패타락하면 어떤 종말일가?

  • 14.06.10 12:44

    미국은 왜 전쟁에 꼭 낄까요
    자국민들이나 잘 돌보지...

  • 14.06.10 13:14

    형광색 글이 눈이 따가운데,,,,순수 빨강으로 ~~~

  • 14.06.10 16:57

    보트피플의 정체는 여러종류가 있을겁니다.
    매국노 부역자들, 인민들을 악랄하게 착취하던 사람들, 그리고 단지 자유를 찿기 위해서 등등...

    이중에 자유를 찿기 위해서 떠난 사람들을 주목해야 할것 같습니다.
    그 대부분이 먹고 살기도 힘든 서민들인것 같던데, 그들에게 자유는 무엇일까요?
    자유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치적인 자유를 말함이고, 정치적인 자유가 없으면, 경제적인 자유도 확보될수 없는것이죠.

    그런데 그들의 머리속엔 정치적인 자유,는 아에 없었고 경제적인 자유,만 있었던거죠. 즉 돈과 먹을것,의 자유,
    즉 자본주의는 돈과 먹을것,에 대한 충분한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사상적인 관념이 자리잡은 결과 일겁니다.

  • 14.06.10 17:24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유'에 대한 개념이 항상 경제적인 자유로 강제 당합니다. 언론에 의해서..
    그러면서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아주 저질스럽게 묘사하죠. 언론이..
    실제로도 저질스러운 식민지 정치인들 이지만, 식민지가 아닌곳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이렇게 자유에 대한 본질을 숨기고, 그릇된 사고(생각)를 주입해서, 자본가들의 착취에는 순응하면서도,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정도로 극단적인 거부감과 두려움이 뼈속까지 심어진거죠.
    중동에 어뢘쥐, 자유 시리아군, 천안문 사태, 서북 청년단,등등의 성격들도 이와 무관치 않는것이고,
    이땅에 많은 사람들도 이런 범주에 들어 있을것 같습니다.

  • 14.06.10 17:47

    님의 말씀에 일정부분 동의는 합니다. "정치 의자유 기반위에 경제의 자유가 확보된다. "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경제관념이 확립된 인텔리 서민 이라는말씀인것 같은데... 과연 매국매족 매판자본가 밑에서 생활했던게 원인으로 정치적박해를 피해 보트피폴 행렬에 동참했을까요?? 통일되기전에 도피? 할수있는 시간도 충분했을 텐데 ,,,, 부역에동조한 냄새가 날까봐서 미리겁먹은것 아닌가요? 딴지걸마음으로 댓글단것이 아님을 넓은아량으로 봐주십시요 . 꾸벅

  • 14.06.10 18:35

    @변화무쌍태양 제가 말한 대상은 순수한 서민들, 먹고살기가 정말 힘든 사람들의 생각을 말한거죠.
    물론 서북 청년단등, 경제적인 부와 종교적인 관점이 포함된 경우에도 사상적인 관념은 동일할겁니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된 서민들 일지라도, 그 쇄뇌의 대상에서 예외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부족해서, 더 쉽게 쇄뇌 되고, 맹목적으로 자본주의를 찬양하죠.
    그들은 현재 상태가 서민이고, 평생을 열심히 살아도 서민에서 벋어날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머리속 에는,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부자가 될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 14.06.10 19:15

    @역사나무 그들이 주체적으로 "자유'와 "사상"을 정립해서 자유에의 의지에 따라 행동했다고 보기는 어려운게 아닌가 봅니다. 어쩌다 전쟁와중에 좌우의 대립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어느 한편에 있어야 했고, 그 편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사회적 공포가 조성되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신천지를 향해 배에 올라타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봅니다.
    님의 글이 늘 마음에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 14.06.10 19:40

    @석림 그들의 '자유'는 자유(자본)언론이 쇄뇌시킨 가치관 내 에서의 자유입니다. 주체적일 턱이 없겠죠.
    베트남을 서세가 점령한 역사는 우리보다 훨씬더 길고, 그많큼 쇄뇌의 역사도 더 길다고 볼수있죠.

    "자본주의는 돈과 먹을것,에 대한 충분한 자유를 보장해준다"
    이말을 우리 카페 회원님들은 이렇게 해석 합니다.
    "자본주의는 먹을것을 안먹고(못먹고) 굶어서 죽을수 있는 자유를 충분하게 보장해준다." 고...
    과분한 칭찬 고맙습니다.

  • 14.06.10 18:45

    어차피 천민자본주의 아래서도 못살았는데. "공산통일은 이보다더 생활이 끔찍할것이다 " 로 읽혀집니다. 통일세력의 사이공 함락시 연도에서서 환호했던 사람들은 어떤부류에 속해있던 사람들일까요? 이래저래못사는 무자산가들이 공산주의는 공포의 대상이니까 우선국외 로 도피하고보자 ?

  • 14.06.10 19:22

    이땅에서도 해방후에 맥아더가 인천으로 입성할때, 쌍수를 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환영하러 나갔다가 이에 놀란 미군들의 총탄 세례에 비명횡사한 사람들이 있었죠.
    또 이넘이나 저넘이나 어차피 사람사는 세상사는 비슷 하다는걸 은연중에 파악한 부류거나,
    깨어있는 지성으로 배트공을 환영한 사람들이 섞여있었던 것일겁니다.

    그리고 쇄뇌당해서 공산당이 무조건 두렵고 무서운 사람들은,
    "이래저래 못사는거" 이런 논리적인 생각을 못합니다.
    그냥 무서우니까 일단 도망가기 바뿐거죠.

  • 14.06.10 19:48

    @역사나무 조선반도 해방정국 상황에서 설문조사인지. 리서치 에서는 우리 민초들의 문맹률이 꽤높은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사회주의형 국가 성립을 70 퍼쎄트가 찬성했을까요? 해방정국 소용돌이 한파속에서 입에풀칠하기도 버거웠을텐데, 언제 공산 아니사회주의에 물들었을까요 ? 해방후 각지의 인민위원회가 그토록 막강한 무소불의의 권력 기관이었나요 아니면. 어디서 세뇌되고 물들었을까요

  • 14.06.10 21:09

    @변화무쌍태양 해방정국에는 사회적인 가치관이 지금처럼 혼탁하지는 않았을겁니다.
    일제 순사는 나뿐놈들이였고, 조선인중 민초들은 착한 사람들이고, 부역자들은 처죽일놈 이였을것이고,
    착한 민초들 사이에서는 인정과 양심들이 살아있었을 겁니다. 7~80년대 까지도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그 민초들은 절대로 무식하지 않았습니다.
    저 깊은 산골 작은 마을까지 서당이 있는곳도 많았지요.
    그렇게 일제시대 독립운동은 특정인만이 하던것이 아니고,
    풀뿌리 민초들의 손발이 움직였던 총체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인민위원회가 빠르게 결성된 배경이고,
    빨지산토벌, 양민학살의 원인이 된것이죠.
    승자가 기록한 역사에서는 배울게 별로 없을겁

  • 14.06.10 22:09

    어쨌거나 역사의 변곡점은 빛나지않는 잡초같은 민초들의 힘겨운투쟁의 산물 이라는것과, 언제나 변할수 밖에없는 유연한신념은 기회주의자의 소산 이라는데..어느나라든지 혁명은밑으로부터 발원한다지요. 승자가기록한역사에서는 배울게 별로없다고 하셨는데 ,,,,, 저의생각은 " 역사는 승리한자의기록이 아니라 기록을남긴자의역사다" 라고봅니다. 비로써 민초들의 역량을 높게 평가해 주셔서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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