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열리는 창
이해인
<詩(시)의 창>
용서의 기쁨
산다는 것은
날마다 새롭게 용서하는 용기
용서받는 겸손이라고
일기에 썼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는 것은
용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기쁨이 없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직이 고백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네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마음에 드는 사람분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ㅡ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하늘문 가까이 이룰 수 있겠지요
수백 번 입으로 외우는 기도보다
한 번 크게 용서하는 행동이
더 힘있는 기도일 때도 많습니다
누가 나를 무시하고 오해해도
용서할 수 있기를
누가 나를 속이고 모욕해도
용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청하며 무릎을 끓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용서하는 기쁨
용서받는 기쁨입니다
<44족~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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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꽃씨
엄마가 꽃씨를 받아
하얀 봉투에 넣어
편지 대신 보내던 날
이미 나의 마음엔
꽃밭 하나가 생겼습니다
흙 속에 꽃씨를 묻고
나의 기다림도 익어서 터질 무렵
마침내 나의 뜨락엔
환한 얼굴들이 웃으며
나를 불러세웠습니다
연분홍 접시꽃
진분홍 분꽃
빨간 봉숭아꽃
꽃들은 저마다
할 이야기가 많은 듯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리 바삐 사느냐고
핀잔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보내준
꽃씨에서 탄생한 꽃들이 질 무렵
나는 다시 꽃씨를 받아
벗들에게 선물로 주겠습니다
꽃씨의 돌고 도는 여행처럼
사랑 또한 돌고 도는 것임을
엄마의 마음으로 알아듣고
꽃물이 든 기도를 바치면서
한 그루 꽃나무가 되겠습니다
<46쪽~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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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뒤 어느날
은행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가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비에 쓰러졌던 꽃나무들이
열심히 일어서며 살아갈 궁리를 합니다
흙의 향기 피어오르는 따뜻한 밭에서는
감자가 익어가는 소리
엄마가 부엌에서 간장을 달이시고
나는 쓰린 눈을 비비며 파를 다듬습니다
비온 뒤 햇살이 찾아준 밝은 웃음을 나누고 싶어
아아 아아 감탄사만 되풀이해도 행복합니다
마음이여 일어서라 꽃처럼 일어서라
기도처럼 외워보는 비온 뒤의 고마운 날
나의 삶도 이제는
피아노소리 가득한 음악으로 일어서네요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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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선물
아침엔 바이올린 선율로
한낮엔 피아노 선율로
저녁엔 첼로의 선율로
나에게 오는 시간들은
오늘도 처음의 선물
고맙다 고맙다 인사하는 동안
행복이 살짝 문을 열고 들어오네
나를 잊을 수 없다 하네
아프고 힘들었던 지난날의 시간들도
어느새 흰 나비로 날아와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
'감사하세요, 오늘을'
'사랑하세요, 오늘을'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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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시월
제가
숙제를
시작해놓고
게으름을 피었답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나와의 약속을
못지켜 저를
용서하는 맘을
가져보는
하루보내렵니다
가을걷이
어제 처음 시작하였고요
오늘은
일이 없네요
눈부신 햇살이 고운
시월 두번째 화요일 아침
요즘
우리 명랑 구름 수녀님
모습도 뵐 수 있어
참 좋은
가을날들입니다
부디
곱디 고운 햇살처럼
고운 모습으로
건강하세요
2010년 10월12일
철없는 농부의 아내
조
윤주
첫댓글 용서로 얻는 평화와 용서를 받고 얻는 평화! 어느것이 더 아름다울까 생각해 보는 가을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