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복 받을 사람의 삶
성경 : 시1:1-6
복의 개념은 현세적 물질적 복과 내세적 영적복으로 나눌 수 있다.
‘현세적 물질적’ 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명기 28:1-14의 말씀이며,
복 받을 조건의 단서는 1,2절에서 말씀하듯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복을 받고,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과 짐승의 새끼 등,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으며, 들어가도 나가도 복이요 창고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은 복은 현세의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우리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추구하는 일시적인 복이다.
‘내세적 영적복’은 구약성경에서보다 신약에서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마태복음 5장 팔복에 대한 복의 개념 또한 현세적 물질적인 복보다 내세적이고 영적인 복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다.
이 내세적 영적복은 성도가 누릴 영원하며 절대적인 복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복의 전제 조건은 롬10:9에 말씀하고 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믿음을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다.
하여간 물질적복이든 영적복이든 간에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올바를 관계를 정립할 때에야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가 물직적 복을 받을 수도 있으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자가 불의의 재난과 경제적 궁핍이 찾아올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악인의 형통함은 순간 사라지게 될것이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자의 고난은 연단의 방편으로 내세의 더 큰 복으로 연결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나오면 다 복 받는 줄로만 잘못 알고 있는데,
우리는 보이는 복의 한계를 넘어서 보이지 않는 내세적 복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그 복을 소망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복의 주도권자는 분명히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잠8:32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시34:8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렘17:7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러면 우리는 복을 받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 알수 있다.
복 받을 사람의 삶은~
1.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삶이다.
“악인의 꾀” 히브리어 레쉬임 이는 규정된 법에 저촉되는 범법 행위를 한자로서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죄를 짓는 자를 가리킨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지, 욕심 등에 따라 육의 욕정에 끌리는 대로 살면서 행복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이다. 한마디로 인본주의적 방법으로 복을 추구하는 것이 “악인의 꾀”인 것이다.
오늘 본문 4,5절에 “악인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라고 말한다.
여기서 “겨”는 알곡과 달리 쓸모 없음을 성경을 통해 우린 잘 알고 있다.
렘23:28에 이 겨는 거짓선지자의 몽사에 비유하고 있다.
눅3: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여기서 쭉정이는 겨를 말하는데 이 쭉정이는 결과적으로 “꺼지지 않는 불” 곧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 5,6절에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악인의 길은 곧 망한 길인 것이다.
사57:20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솟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여기서 악은은 안정치 못하고 요동하는 바다로서 바람에 나는 겨와 상통한다.
시36:1에 악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악인을 좇아 함께 걸어가지 않는것 이것이 바로 “복 받을 자의 삶”인 것이다.
복받을 사람의 삶~
2.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삶입니다.
죄인은 히브리어 핫타임, 이는 문자적으로 목표물을 맞추지 못하는 자 또는 길을 잘못 들어서서 엇길로 빠진자를 의미 한다.
이는 행동으로 분명한 죄를 짓는 사람을 뜻한다.
위에서 언급한 악인은 삶의 태도가 그릇된 자를 가리킨다면,
여기서 죄인은 삶의 목표나 방법이 그릇된 자를 가리킨다 할 수 있다.
본문 5절에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의인의 회중”이란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구별된 성도들의 모임 혹은 그들이 모이는 장소를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모임에 들지 못한다는 것은 곧 저주를 의미했다.
이처럼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마25:30 말씀과 같이 천국에서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죄인과 함께 사귀지 않는 자가 복 받을 자로서의 자격을 갖춘자임을 우린 깨닫고 그 깨닫는 바를 결단하고 그 결단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
복 받을 사람의 삶~
3.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삶입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는 죄의 정상이다.
오늘 설교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는 죄악의 점진성을 나타내 보인다.
(악인의 꾀를) “좇다” - (죄인의 길에) “서다” -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다”
처음에는 죄에 미혹 당해서 그 다음은 죄와 벗하다가 결과적으로는 죄악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죄를 처음에는 마음으로 짓고 그 다음은 행동으로 그 다음은 행동이 굳어져 습관적으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볼때 우리는 아예 처음부터 죄와 경계햐야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오만한 자”는 히브리어 레침, 이는 조롱하는 자, 비웃는 자를 가리킨다.
이는 신본주의적 방법으로 사는 삶을 비웃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을 모독하고 훼방하는 자를 뜻한다.
시10: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사14:12 이하~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지극히 높은자와 비기리라 하며 죄의 정상까지 올라옴으로 그만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찍히고 말았다.
그러므로 복 받을 자는 결코 교만한 자를 따르거나 사귀거나 함께 동거하지 않는자들이다.
복 받을 사람의 삶, 보다 적극적인 삶으로~
4. 말씀을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즐거워하는’은 히브리어 헤페추, 사랑하다(창34:19), 기뻐하다(민14:8), 욕망을 가지다 라는 뜻의 동사 ‘하페츠’에서 온 단어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즐거워하여’는 말씀을 깊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모하듯이 사랑하는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그 사랑이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 사랑 또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 행동은 바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여기서 ‘묵상하다’는 히브리어 ‘하가’로 말하다 중얼거리다, 계획하다의 뜻을 가진다.
말씀을 작은 소리로 암송하며, 그 뜻을 이해하며, 그 말씀이 주는 교훈이 실제 삶속에 나타나도록 계획해야 한다.
시71:24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시63:6에서도 다윗왕은 밤중에 주를 묵상 할 때에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수1: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데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맺음말~
복 받을 사람의 삶은~
첫째,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삶
둘째,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삶,
셋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삶,
넷째, 말씀을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은 본문 3절에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어떠한지 예레미아 17장8절에서 더 자세히 말하고 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본문 3절에선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창세기 39장에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그는 범사가 행통했다.
열왕기하 18장7절에 히스기아 왕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복 받을 사람의 삶을 사는 자는 분명 의인의 길을 가는 자들이다.
그래서 본문 6절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로 시편1편의 말씀을 끝맺고 있다.
우리 모두 복 받을 사람의 삶을, 의인의 삶을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첫댓글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주께영광입니다 ~
감사합니다.
은혜를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