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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해외 선교사님들, 유학생들, 그리고 이글을 읽는 하나님 자녀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충만히 임하시기를기원합니다 이번에는 추석을 맞이하면서 가족중 조상제사 를 드리는 신자 여러분에게
다소라도 도움을 드리고저 글을 올 립니다 저의 칼럼 < 왜기독교만이 유일한 참종교인가 >의 끝부분을
함께 읽어 보시면더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조상제사는 왜 폐지해야 하나 ?
오늘날 교회와 신학의 동향을 보면 모든 것을 인간과 우리의 삶의 형편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처지를 개선시키는 데 이용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고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형편에 따라서 성경도 이해하고 하나님도 이용하려는 경향이 천주교와 자유주의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복음주의 운동 안에서도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제사문제는 하나님의 문제로 나타났지만 이것과 연관되어서 복음과 문화와의 관계와 복음과 우리 삶의 형편과의 관계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전통적인 조상제사는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를 성경과 역사적 근거에 의해 논하고자 한다
I. 한국 조상제사는 우리 고유의 전통이 아니다
질문: 조상제사는 우리나라 고유의 풍습인데 왜 반대를 하는가 ?
답변 : 조상제사는 우리나라 고유의 풍습이 아니고 충국의 픙습이다 고대 중국 은나라에서 조갑이란 왕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자기 조상을 신처럼 숭상하기 위해 만든 것이 유교를 통해 이조시대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온 풍습이다 우리나라 이조 이전에 조상제사는 없었다
한국 제사는 한국고유 풍습이 아니라 중국의 풍속이었다 본래 우리 조상들이 옛날부터 해오던 전통이 아니고 13세기 이후에 그것도 억지로 왕가에서 제사를 지내라는 강요에 의해 생겨난 풍속이다 이것은 인간 본성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본래 한국사람이 해오던 버릇도 아니다 단지 유교에서 들어온 풍속, 그것을 정착시킨 것에 불과하다 제사지내는 것이 이조 오백 년 동안에 지켜져 내려온 우리의 전통의식일 뿐이란 점이다. 오백 년만이 우리 나라 역사가 아니고 단군으로부터 시작해서 4천 년이 훨씬 넘는데 오백 년 동안만의 것이 우리나라 전통의식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신라 시대, 고구려 시대나 고려 시대에 조상에게 제사지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이것은 유교에서 온 것이고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중국 전통의식인 것이다. 대만 박물관에 있는 갑골문자를 연구해보면 제사는 중국에서 오래전에 시행되었다 조상이란 말자체가 제사와 관련되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제사않지내는 놈은 상놈이다 “란 말은 양반은 되놈( 중국놈)이다 ” 란 말과 같은 것이다 ( 손봉호 박사)
보충설명
제사는 어디로부터부터 유래되었는가?
세계 여러민족 가운데 제사를 지내는 민족이 몇군데 있다 그중 제사를 가장 성대하게 지내는 곳은 원시적인 아프리카이다 이제 한국,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외에 제사지내는 민족
은 없다
조상숭배, 조상제사의 기원은 중국 고대 은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은나라 왕의 된 조갑은 첫 번째로 제례문화를 정비하였다 이전에 있던 모든 토템 즉 황하신, 천신등에 대한 제례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직계 혈족들의 제례를 강화하였다 이것은 유교문화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유교문화의 핵심은 조상제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교의 다른 경전에서는 찾을수 없고 갑골문을 통해서만 확인할수 있다 조갑은 조상신은 전쟁, 농사, 날씨, 질병을 통제하는 전천후적 존재로 만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 위상 강화를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그는 조상들의 족보를 재 수정했고 조상제사를 정례화했다 자신의 조상이 모든 토템과 샤머니즘적 숭배 대상들을 초월한 존재임을 과시하기 위해 거듭 제사를 드리고 자신의 족보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거듭되는 조상제사를 통해 조상신은 권위가 축적되어갔다 여기서 유교문ㄹ화의 족보만들기, 족보캐기등이 비롯되었다 또한 자기의 혈통의 우월의식도 여기에 뿌리를 둔다 조갑이 이런 조치-조상신 숭배, 조상제사는 훗날 공자에 의해 유교문화의 단초로 사용된다
공자 이전에는 중국에서 夏나라에서 , 그리고 商나라에서 정식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당시에는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고 뛰어난 황제에게 제사를 지냈다 조상이 훌륭해서 제사지낸 것이 아니고 황제가 훌륭해서 지낸 것이다
그후 세습제가 시작되면서부터 훌륭한 임금들에게만 제사를 드리던 것을 이제 자기 아버지가 훌륭하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제사를 지내야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레서 그때부터 자기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정말 조상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자기 위치가 더 든든해지기 위한 방편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초기에는 왕실에서 황제들만 제사를 지냈는데 그후 제후 (소국가의 제후) 들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제상들도 지냈고 춘추전국 시대에는 모든 질서가 무너지면서 평민들이 “왕들의 조사만 훌륭하냐? 우리 조상도 훌륭하다” 고 생각하였다 왕의 허락도 없이 평민도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결국 왕조 계승을 강조한 것의 결과이었다 제사 지낼 때 소위 명당이라는 곳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은 제사의 권위나 왕실의 권우를 세우기 위한 것 었다 그 후 중국에서 이론적인 뒷받침으로 제사를 강조하게 된 것은 훨씬 후대인 송나라 때부터이다 송나라 때 유교학자인 주희(혹은 주자라고 함 주후1130-1200년 유교 불교, 도교의 영향을 받아 받은 유교철학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을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라고 하고 서양사람들은 대개 Neo-Confucianism 즉 신유교라고 한다)가 처음으로 조상에게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 강조하고 그것이 하나의 철학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라나 고구려 때에 모든 왕이 아니고 특수한 왕에게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삼구기대, 고려시대에 와서 불교가 성행하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일이 없다 오늘날도 불교 국가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우리나라 절에 가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무속과 불교가 섞여서 후대에 생겨난 특수한 상황이고 본래 불교국에서는 제사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가 성행할 때가지는 제사문제가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그런다가 고려말 중국에서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영향을 받게되었다 중국에서 주희에 의해 시작된 성리학이 우리나라 들어오기 전에 이미 유교가 있었지만 그 때 유교는 성리학의 유교와 다른 것이었다
성리학은 주후 13세기 고려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대표적인 학자는 정몽주 ,이색등이다 이사람들은 주자의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면서 동시에 사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 사당이라는 것은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그때도 역시 주상에게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뛰어난 인물들만을 위해 사당을 만들었다 이것은 자손들이 자기 조상이 상당히 뛰어난 인물이록 생각을 했을 때 사당을 지었다 그런데 이것도 모든 사람의 것을 다 지은 것이 아니라 기록에 의하면 이인실, 조인규, 신우, 정인, 박공 이런 사람들만 사당이 고려말기에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그때는 왕가에서도 왕에게 제사를 지낸일이 없다
그후 조선이 건국되면서 이태조는 나라의 종교를 고려의 불교로부터 성리학으로 바꿨다 이태조는 고려와 새왕조와의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고려의 불교를 무리쳤다 성리학 유교를 조선의 종교로 만들었다 그래서 주자가 강조한 조상의 제사를 이태조가 장려하기 시작했다 세종대에는 상당한 제사가 퍼져 심지어 서민들에게도 집집마다 가묘가 있었다고 한다 또 집안에는 사당이 있었고 방 앞에다 신주를 모시고 거기에다 절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조정에서 제사를 장려할 때 평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세종 때에 거의 모든 민가에 다 가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후 훨씬 뒤인 성종때 가서는 오히려 세종 때보다 제사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는 기록이 있다 집집마다 신주는 있되 한 쪽 구석에 처박아두어 쓸모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가에서는 제사를 강조하였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한편 중국에서는 주나라 때부터 상당히 제사가 성행하였는데 주상 앞에 신주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것이 아니라 종손을 앉혀 놓고 제사를 지냈다 그 종손이 선조들의 영혼의 대변자라고 생각을 했다 진나라, 한나라 에는 금지시켰다
II. 유교의 특징
질문 : 조상제사는 유교의 중요한 예식이다 왜 기독교는 남의 종교 의식을 비난하고 반대하는가? 기독교인들은 배타적이고 관용하지 못하다
답변 : 남의 종교 의식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유교의 조상제사가 기독교 경전에서 금지하는 것을 기독교인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배타적이고 비관영한 것은 진리와 거짓, 선과 악 ,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서는 성립될수 없는 것이다. 진리는 원래 배타성이 있다 거짓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수도가 파리 한군데 뿌이라고 말한다고 비관용적이라고 비판할수 없다
보충자료
1. 조산숭배와 유교의 기원
은나라의 조갑의 자기 조상의 신격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주위에는 200여개 부족이 있었는데 지금부터 3500여년 전에 중원을 차지한 은나라 조갑ㅇ은 주위부족들로 시기와 질투를 한몸에 받게되었다 자기 조상만 최고라는 억지에 보다못한 여러부족이 연합하여 은나를 깨부수는데 이 연합에 앞장선 부족이 바로 주나라이었다 주나라 왕 武 는 은나라 왕 주紂 를 물리쳤다 후개 유교사가들은 은나라 왕 주를 폭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당시 은나라가 패망한 이유는 조상강조로 인한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외교분위기와 동이족과의 지속적인 전쟁으로 국력이 약화된 까닭이다 주나라가 패망국 은나라에서 취한 조치중 특이한 것은 은나라의 제례문화를 살려둔 것이다 고대 사회의 최대현안은 제례와 전쟁이었다 제례가 전쟁보다 더중요하다 전쟁의 승패가 제롈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원의 패자가된 지금 수많은 외교 ,전쟁, 농업등에 따르는 제례를 관장해야하기에 은나라 제례문화 전문가들을 살려두었던 것이다
유교의 儒 란 고대농업문화시대에 없어서는 않될 비를 관리하는 남자였다 무당이다 왕의 정치적 고민을 주술적으로 해결해주는 해결사이었다 유는 은나라출신의 무당들로 주나라 제례문화를 관리하였는데 그들이 하는 일중 농업과 관련이 깊은 "비"를 들어 문자의 상징으로 삼았다 유는 또한 고대 관리와 행정을 담당하는 일종의 공무원으로도 볼수 있다 주나라에서 자리를 얻은 이들이 처음 착수한 일은 주나라 족보를 체계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조상숭배의 냄새를 없앴다 그들은 제례 대상을 둘로 나누었다 주나라 왕실 족보를 들어 숭배하는 것과 타부족과 함께 숭배할수 있는 존재 天 을 대체의 절대신으로 제시하였다 모든 종족의 토템이나 조상신을 초월하는 존재가 하늘인데 유일하게 주나라 왕만이 하늘의 아들 즉 天子이다 그는 정치적인 존재이자 종교적인 존재이었다 초법의 권한 행사를 하는 문화적 면죄부가 바로 이때 주어졌다 이영향을 받은 한국 중국 일본도 준법정신은 낙제이다 초월자 의 아들 천자는 자신의 아들들을 각 지역의 정치책임자로 내어보냈는데 이것이 지역의 제후들이다 . 동양사회의 뿌리깊은 혈연주의가 시작된것이다 문제는 보낼 남자는 많아야 하는데 한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은 너무 적어 축접제도를 만든것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을 비참한 사람의 왜곡으로 몰아넣은 이들은 몇몇 유들의 비굴한 처세 때문이다 공자는 바로 이 유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다 공자는 주나라 종법제도에 크게 심취되었다 그주나라 종법제도가 완벽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주나라 역사적 정치적인 사건들을 미화하였다 그는 의도적으로 엉뚱한 말을 했다 검증이 불가능한 과거인물을 내세워 처음부터 논쟁의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聖人들로 불리우는 이들 인물들은 검중불가한 인물들이다 존재하지 않는 허구속의 가치를 공자는 열심히 전파하였다 본질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의 가치를, 왜곡된 가치를 추구했던 공자와 그제자들은 모두가 과거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모든 역사들을 왜곡하고 미화하지 않으면 않되게 되었다 이과거는 단순한 역사의 과거가 아니라 매우 위험한 과거이었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별볼일 없어보이던 공자의 교훈 몇마디는 참으로 기막힌 반전을 통하여 동양사회의 주류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인간을 속박하게 만들었다 (김경래 교수)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유교는 주희에 의해 만들어진 주자학이다 조선이라는 칠판에 한번 그어진 주자학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고, 지우개로 지우면 지울수록 더욱더 지저분해지고 말았다. 후대의 중국 학자들조차 “윤리와 과학을 혼란스럽도록 뒤섞어놓은 사상” 으로 평가하는 주자학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조선 왕조의 기틀로 자리매김 되면서 커다란 재앙을 잉태하게 된다.
깊고 깊은 숲과 물이 지속되는 짱시는 중국에서도 역대로 가장 가난하고 숲이 깊은 지역이다. 주자는 왜 이런 깊은 곳으로 내려와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중원에 거주하던 송나라가 여진족인 금나라에게 땅을 빼앗기면서 지세가 험한 그곳으로 숨어온 까닭이었다. 따라서 송나라의 최대 이슈는 오랑캐를 몰아내고 정통의 왕업을 잇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존왕양이로, 이런 특성 때문에 주자학을 송학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정치적 좌절, 깊은산, 지금도 밤이면 별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중국의 내륙 지역, 이곳에서 사색의 익숙한 사내 주자는 무엇을 했을까? 그는 이런 독백을 하고 있다.
“맑고 높은 기를 받은 사람은 귀한 사람이 되고, 맑고 두터운 기를 받은 사람은 부자가 된다. 그러나 약하고 얇으며 흐린 기를 받은 사람은 어리석고 불초한 사람이 되고,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이 되며 일찍 죽게 된다.” 너무도 허망하다. 한 사내의 한밤중의 사색이 만든 에세이 몇편을 두고 우리는 조선 500년 동안 허송세월을 했던 것이다. 그가 주해를 달았던 경서들을 가만히 보노라면 이러한 자신의 공상을 경서에 ‘덮어쓰기’ 한 냄새가 물씬하다.
스스로 땅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계를 보았어야 했을 세월을 그렇게 허송세월로 다 날려버리고 만 것이었다. 한 사나이가 만들어낸 잘못된 공식을 붙들고 500년이나 한반도의 문제와 삶을 풀어본 것이었다. 그리고 그 500년 만에 얻은 결론은 ‘나라가 망한다’ 였다.
이조 초기. 정도전에 의해 주자학으로 시작된 나라에서 주자학을 비판하는 것은 체제비판 아닌가? 그것은 바로 주류에서 밀려나는 것을 의미하고 잘못 엮이면 삼족이 멸망하는 역적의 누명까지 뒤집어쓸 수 있는 무서운 재앙의 시작이 아닌가? 실제로 수많은 사화들이 유교와 주자학의 해석 논쟁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더구나 주자학의 정치적 이슈였던 ‘존왕양이’ 사상은 조선시대 내내 왕실과 사대부들을 지배해 쇄국정책으로 이어졌고, 나라가 망하는 불행을 자초하기에 이르지 않았는가?
2. 공자의 신앙
이러한 인본주의적 동향 속에서 당시 타락한 지도자들 밑에서 기근과 홍수와 질병까지 돌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지도해야하는 "법무장관"으로서 공자의 본래적인 관심은 인륜과 정치윤리에 있었다. 그는 재래 종교들에 대한 비판이나 거절이 아니라 수용적인 입장에 선 윤리철학적 지도자였기 때문에, 그의 효도윤리는 무속신앙과 자연신앙과 혼합되어 있었다. 공자는 그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 지혜이며,능히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능히 귀신을 섬기겠는가? 생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라는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한듯 하지만.,그가 귀신 숭배를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제사할 귀신(대상)을 바로 알고 제사할 것과,제사할 때는 반드시 재계(몸과 마음을 깨끗히 함)하고 의복과 음식과 거처지까지도 구별하였다. 논어에는 공자가 식사 전에 반드시 고수레(음식 일부분을 떼어던짐) 조복을 입고 동쪽 섬돌에 서 있었다는 것과),붉고 뿔이 반듯한 송아지를 산천의 신이 받지 않겠느냐 는 희생제에 대한 관심과 그의 자연신앙이 진술되어 있다.
유교는 조상숭배의 바탕이 되는 효를 중시한다 유교에서 효를 핵심사상인 仁을 실현하는 근본으로 여기며 인간 행위의 기초, 최후 선, 모든 덕의 으뜸으로 본다 이 효에의해 사람됨이 평가된다 효의 근본 정신은 감사의 보답이다
효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크게 네가지로 집약할수 있다
(1). 부모에게 전수받은 신체를 잘 보전하는 것이다 부모의 생명력과 정신은 자녀를 통해 전수되고 지속되고 확충됨으로 부모의 생명력을 지속시키고 부모에게 보은 보본의 제사를 지낼수 있ㄴ느 후손이 없는 것은 최대의 불효이다
(2). 부모를 봉양하고그뜻을 받들고 공경하는 것이다
(3). 도를 행하여 떳떳한 인간이 ㄷ됨으로 이름을 빛내고 부모께 영광을 드림과 함께 형제간 우애있게 지내는 것이다
(4).부모 돌아가신 후에도 장례와 제사를 통해 보본과 보은의 효를 계속하는 것이다
3. 유교의 과거문화가 남긴 폐해
공자는 이상적인 말을 했지만 인간의 욕망과 죄악성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유교의 과거문화로 한국은 오래동안 미래를 보는 눈을 갖지 못했다 종갓집 며느리는 새해가 다가오면 그해 지내야할 제삿날 달력 날짜부터 헤아려 달력 에 수십개 동그라미를 그려놓는다 이미 새로은 1년은 과거로 가득차 버린다 자기 인생도 없고 미래 없었다
한일 합방 때 일본에 나라를 내준 이들은 전형적인 유교관리들이었다 이들에게 나라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속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집단의 이익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결과 법을 초월한 이들 힘의 남용이 나라전체를 부식시키고 마침내 붕괘의 시점에서 나라를 통으로 일본에 내주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총도 한번 쏘보지 못하고 그냥 고스란히 나라를 내주었다
유교는 온고지신을 가르친다 溫故知新=옛것을 익혀 새로은 것을 안다는 말이다
유교문화는 과거지향적이다 과거문화가 만들어낸 폐해는 다음과 같다
(1). 미래를 지향하는 우리 발목을 잡았다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게 하였다
(2). 과거조상 남성문화를 강조하여 여성차별을 심화시켰다
(3). 주검숭배 문화, 이른바 독특한 상례문화 를 만들었다 한국 수많은 당쟁이 바로 상례를 중심으로 전개되였다. 무덤은 후손들의 길흉을 죄우하기도 한다 , 주검의 치장문화는 미신과 허례허식 그자체이다
(4). 시신을 너무 숭배하고 매장을 중요시하기에 헌혈, 장기기증같은 몸 나누기 운동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유교의 禮는 더욱 화려한 분묘 치장문화로 발전하였고 나중에는 급기야 풍수지리설까지 끌어드렸다 묘자리 쟁탈전이란 희한한 풍토를 낳았다
유교를 종교화한 윤리, 윤리화한 종교 또는 天祖숭배의 二神 종교라고 한다
III. 조상숭배, 조상제사의 본질
질문 : 조상제사는 효도를 실천하는 참 좋은 것이다 계속 이어지고 발전되어야 할 풍습이다
답변 : 조상 제사는 이 시대와 미래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사상이다 기독교사상과 전혀 다른 사상이다 조상제사의 폐해는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이제 조상제사를 통해 효도를 한다는 것은 이 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기독교인에게 가족이란 명분으로, 미풍양속이란 명분으로 강요하는 것은 종교탄압이다
보충 자료
조상숭배 : 조상숭배란 효 사상을 바탕으로 생명의 근본이신 선조께 끊임없이 감사의 복답을 드리는 유교의 報本 행위이다
1. 제사의 의미와 기원
본래 인간은 하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일찍부터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 한계란 바로 자기의 정체를 자신이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종교이며 제사의식이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주 일찍부터,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인간과 제사는 떼어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 종교와 제사의식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의 한계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으며, 또한 어떤 절대자에게 의지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제사란 신명을 받들어 복을 빌고자 하는 의례(儀禮)이다. 그러므로 유교의 신념 속에서 제사는 인간의 생명과 삶의 근원이 되는 모든 신적 존재에게 드려지는 것이다.
공자의 저서에서 보듯 제례전문가였던 공자는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조상제사를 이용했다. 조갑이 조상제사를 왕권수호에 이용했듯 공자는 자신의 예교적 사상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상제사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제사의 종교적 의미들 속에 효라는 의미가 하나 더해진 것이지 효라는 의미가 더해졌다고 다른 종교적인 의미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즉 조상제사에 효라는 의미가 더해졌다고 조상제사가 비종교적인 의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도 이분법적인 해석은 금물이다. 조상제사가 효도라면 종교적이 아니다. 즉 종교적이라는 말과 효라는 말을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여겨서 이것이면 저것이 아니라는 사고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공자는 효를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킨 장본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종교적인 국민의례 그리고 종교적인 효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 조상제사의 사상적 배경들
(1). 철학으로 본 조상제사
제사는 시간관과 관계가 있다.성 어거스틴은 시간이 돈다고 하는 것은 이방인들의 관점이고, 시간이 바로 간다는 것은 우리 기독교가 보는 시간관이라고 하였다. 전자를 순환적 시간관, 후자를 선적 시간관이라고 한다. 이방인은 순환적인 시간관은 항상 과거지향적이기 때문에 과거가 중요하고, 직선적인 시간관은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에 미래가 중요하다. 그래서 유교도 과거지향적인 종교라는 것이다. 첫째, 유교는 순환적인 역사관 혹은 시간관을 가지고 있다. . 유교는 과거지향적 역사관을 가진다. 유교에 있어서 요 임금과 순 임금 때를 가장 위대한 시대라 하여 그때를 유교에 있어서 이상 세계라 한다.
이처럼 요 임금, 순 임금이 강조된 것은 공자가 그렇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과거를 좋아한 것을 논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나는 지식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옛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정성을 다해 찾고 있다” 라고 말하였다. 무엇이든지 새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공자의 영향은 우리나라에도 파급되었다.
세종대왕 당시 그때의 임금은 지금의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만리의 상소가 인정되어 이 상소 때문에 근 500년 동안이나 세계 최고 우수한 문자인 한글이 사용되지 못하고, 언문이라 하여 부녀자.천한 사람들에게만 일부 사용되어지게 되었다. 최 만리의 상소가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공자의 과거지향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지향적 사고방식이 조선에 끼친 부정적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조상 숭배도 유교의 과거지향적 사고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 조상을 숭배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조상이 위대했기 때문이고 더 위대한 이유는 옛날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형은 반드시 동생보다 낫고 아버지는 반드시 아들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스승은 그 제자보다 나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가끔 제자가 스승보다 나으면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당연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제자가 더 나아야 사회가 발전하지 않겠는가? . 다행이도 이런 시간관이 우리 나라에서는 많이 바뀌어져 우리 사회가 많이 진취적이 되어가고 있다. 만약에 이것을 계속 붙들고 있는다면 우리 사회는 계속 후진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다.
(2)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본 제사
조상숭배는 또한 자연주의적인 세계관과 관계되어 있다. 자연주의에서는 인간은 조그마한 우주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근사록에 인용이 되어 있는 정 이천도 “후손의 선조가 있어야 함은 자연의 이치다. 나무에, 바로 올라가는 줄기가 있고 그 가지가 있음과 같다” 라고 말하고 또 “조상에서 제물을 드려 보응하는 것은 인간의 본심에 마땅하다. 성현들이 덕을 세우기 위하여 제례를 시작했다. 늑대나 물개조차도 제사를 지낸다” 라고 적혀져 있다. 이것은 늑대나 물개가 어떻게 제사를 지내는지 모르지만 그 늑대나 물개도 제사를 지내는데 하물며 사람이 제사를 안 지내서야 되겠느냐? 하는 것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는 말이다.
자연주의 종교에서는 사람이 자연만 순응하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기독교는 자연주의 종교가 아니고 계시의 종교이다. 자연종교는 계시가 없어도 사람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만 계시 종교는 자연으로 그대로 두면 멸망할 수 밖에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시를 주신 것이다. 기독교는 오히려 반 자연주의적인 종교다. 인간을 스스로 놓아두면 구원을 길을 깨달을 수 없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대로 두면 멸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시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께서 자연적으로 썩어가는 우리들을 구원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였다고 가르친다.일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에 우리나라에 터널 하나 없었다. 땅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를 살려주는 자연에다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배은망덕의 행위였다. 우리 기독교는 자연주의종교가 아니고 오늘날 우리의 사고방식도 자연주의가 아니가.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이미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주의에 근거한 조상숭배를 계속 주장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3). 계급주의에서 본 제사
제사는 사실상 계급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처음에 제사지낼 때 아주 훌륭한 가문들만 제사를 지내게 했다. 왕이나 제후나 혹은 충신이나 그런 부류에게만 제사를 지내게 했다. 주자의 근사록에 정 이천이 쓴 것을 보면 “제사를 지내야만 궁중의 위대한 신하가 나온다” 라고 되어 있다. 그것은 제사를 지냄으로써 훌륭한 가문과 훌륭하지 못한 가문을 구별할 수 있고 그래서 좋은 가문이 유지되어야 궁중에서 훌륭한 신하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이론이다. 그래서 주나라 때에, 황제는 일곱 개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주후들 가운데 큰 제후들은 다섯 개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그 다음 태후들, 그보다 조금 작은 제후들은 세 개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제상들은 두 개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그 다음에 관원들, 스승들은 한 개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평민들은 사당을 짓지 말고 무덤에 가서 제사를 지내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이 주나라 때는 상당히 유지되다가 춘추전국시대에 와서 이 질서가 깨짐으로 모두가 다 제마음대로 사당을 짓기 시작하여 결국 제사가 일반화되었다. 본래 제사나 족보라는 것은 모두 계급 사회를 반영한다. 족보를 만드는 이유도 양반자랑과 관계가 있다. 조상숭배도 사실상 역사적으로 보면 이 계급사회와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와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종이나 자유자나 놓인 자나 매인 자나 구별이 없다고 가르친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족보를 기리는 것과 상통하고 배후에는 오늘날 평등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계급사회의 사고방식이 숨겨져 있다.
3. 조상 제사 벙법
조상제사의 예식절차 : 대체로 네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마음을 집중시키고 신령의 임재를 위해 준비하는 개식의 의식
재계 齋戒 : 마음과 정성을 모으는 것
진설 陳設 : 정성된 음식을 차려놓는 것
참신 參神 : 신위神位나 지방紙榜을 모시고 인사를 드림 절을 함
강신 降神 : 향을 피우고 술을 모사에 부음으로 신령의 임재를 여실하게 한다
2. 제물을 올리면서 흠향하고 간청하는 의식
진찬 進饌 : 정성된 음식을 올림
헌주 獻爵 : 술을 올림
독축 讀祝 : 제물을 흠향하라고 간청함
유식 侑食 : 생시 음식을 권하듯이 흠향을 권함
3. 신령이 흠향하고 강복降福하는 의식
개문 闔門 : 신령이 흠향하도록 문들을 닫는다
헌다 獻茶 : 다시들어가서 차나 숭늉을 드린다
수조 受胙 : 제물의 일부를 祭主에게 먹도록 함
이성 利成 : 신령의 흠향이 끝났음을 알리는 것
4. 제물을 나누어 먹음
사신 辭神 : 작별인사를 올리는것
납주 納主 : 신위는 사당에 모시고 지방은 불태운다
음복 飮福 : 제물을 나누어 먹음
이상의 제사법을 살펴보건데 누가 무어라해도 조상제사는 신령에게 하는 종교적 행위이다
조상제사의 효과는 신령과 교감하고 복을 받는 것 , 뿌리의식을 고취시키고 소속감을 강화시키는 것등이다 제사의 중심이 되는 신주의 의미는 죽은이의 신상神像과 혼을 떠돌아다니게 하지 않고 혼이 의지하고 쉴 의빙처依憑處이다 신령과의 교감내지 신령의 흠향은 오직 자손들이 정성 여하에 달려있다
한국의 조상숭배
일정한 시기마다 지내는 조상들에 대한 제사는 집안의 매우 중요한 일로 여겨졌다.
사당은 가정생활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가정사는 대부분 사당 앞에서 행해졌으며 집안의 대소사는 먼저 사당에 계신 조상에게 알린 다음에 이루어졌다. 아침마다 사당에 문안을 드렸으며, 청명(淸明)·한식(寒食)·중추절(仲秋節)·중양절(重陽節) 등의 명절 때가 되면 새로운 음식을 올리는 신례(新禮)를 지냈다. 이러한 사당제(四堂祭) 외에도 계절마다 중월(仲月)인 2·5·8·11월에 지내는 사시제(四時祭), 9월에 부모에게 올리는 미제(彌祭)와 기제(忌祭), 차례(茶禮), 묘제(墓祭) 등의 제례가 있었다.지금도 중요하게 행해지고 있는 유교의 조상제례에는 크게 기제·차례·묘제의 3가지가 있다. 기제는 장손의 부(父)·조(祖)·증조(曾祖)·고조(高祖) 등 직계 4대조에 해당하는 조상들과 그 정식 배우자들의 기일에 지내는 제사를 말하는 것으로, 대개 죽은 날 자정에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IV. 조상제사는 문화습관아닌 종교행사요 우상숭배이다
질문 : 조상제사는 오래된 문화적 생활 습관이지 종교행사가 아니다 종교행사가 아닌 것을 우상숭배 운운 하는 것은 말도 않된다
답변 : 조상제사는 문화습관아닌 종교행사요 우상숭배이다
"조상제사가 종교적이다. 아니다라는 질문이나 토론은 어찌보면 우문우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사’라는 용어자체가 종교적 용어이고 종교학자들이 말하듯이 제사의식의 형식과 내용 자체가 사자의 영혼을 부르는 전형적인 초혼의식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 외에 다른 영적존재에게 기도하고 경배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한국의 개신교도 예배면 예배, 제사면 제사 용어 그자체로 모두 종교적인 것이지 어떤 특별한 예배와 제사는 비종교적인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조상 제사를 명백한 우상 숭배라고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제사에서는 신주를 3년 모신 후에 묘로 옮기는데 이는 조상을 귀신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우상 숭배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조상 제사는 조령이 재해나 재앙을 막아준다는 의식으로 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효의 연장이 아니라, 하나의 신앙 형태로서 액운을 막기 위해 제사 드리는 것이다. 효경에서 말하는 제사는 세가지 즉 숭배의 의식, 조상을 귀신으로 믿는 의식, 재앙을 면하는 개념을 포함한다. 따라서 조상 제사는 사후의 존재를 귀신으로 숭배하는 것이며, 이것은 비인격체이므로 죽은 자와 산 자는 서로 대화하거나 교통할 수 없기에 명백한 우상 숭배라고 하였다
질문 : 현대인들은 제사를 조상숭배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기념하는 것으로 생전과 같이 사진을 걸어 놓고 절하는데, 이런 것도 우상숭배가 되는 가 ?
답변 : 제사를 조상숭배로 생각하지 않고 기념한다는 것은 제사가 아니고 기념이기 때문에 말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기념한다고 하면서 제사라고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의 제사라고 하는 것에는 조상숭배의 개념이 들어 있다. 성겨에는 하나님이 십계명을 통해서 절하지 말라고 하셨다
“기독교적 신앙에서 절이라는 것은 반드시 인격적인 상대에 대하여 하는 것이다. 즉 동물은 살아 있어도 인격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절을 하지 않듯이 죽은 조상도 비인격이기 때문에 절을 해서는 안된다. 만일 제삿날 제사상 앞에 절을 해도 무방하다고 말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는 신학적인 근거가 희박한 목회자라고 생각한다” (최해일)
“이제와서 제사를 지내되 지방을 써놓지 않으면 우상숭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은 기독교의 토착화가 아니라 시대 역행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제사를 중요시하는 유교에서도 점차 간소화되고 있는데 기독교에서 음식 차려 놓고 절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질문 : 제사에서 음식, 제사행위는 오직 상징일 뿐이며 실제적인 의미가 없는데도 우상 운운은 타당하지 않다
답변 : 영혼이 않 온다거나 조상의 영혼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거나 하면서 제사음식이나 제사의식들은 상징일 뿐 아무 영적인,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결론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먼저 주장은 조상제사 의식은 상징적인 것이니깐 조상제사를 효의 고양을 위해 종교의식이 아닌 전례의 좋은 풍습이요 시민의례로 계승하자고 하고 뒤의 주장은 헛된 짓이니 폐지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종교적 상징행위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오는 것이다. 제물은 제사가 끝난 후 산 사람들이 먹어서 없어질 뿐이다. 모든 제사에서 제물의 진설과 여러 종교적 행위들은 상징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징적인 행위들이 종교적인 행위인 것이다. 즉 종교의식은 당연히 상징적 의식들의 결합이다. 그러므로 조상제사는 효도의 상징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당연히 종교적인 상징적인 행위인 것이다.
절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자면 같은 절이지만 이 절을 웃어른을 만났을 때나 명절날 하는 것은 비종교적인 공경의 시민예절이나 이것을 제사에서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또는 효도로써 하는 것은 종교적 상징행위이다. 집에서 살아있는 부모에게 간청하고 부탁하는 것은 비종교적인 행위이지만 죽은 부모에게 간청하고 부탁하는 것은 기도요 제사요 종교적 상징행위인 것이다.
보충자료 (유교가 종교요 우상숭배이다)
1. 유교문헌
효경에 나타난 개념을 정리해 보면 첫째로 제사는 숭배의 형식으로 나타나 있다. 그것은 다분히 신앙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둘째는, 조상을 귀신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셋째로, 재액이나 재앙을 면하는 수단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최소한도 이 세 가지가 제사 속에는 분명히 들어가 있다.
유교식 제사에는 일상의 반상 차람과 큰 차이가 없다. 그 이유는 유교식 제사는 죽은 조상을 위해 마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우리의 유교식 제사는 분명하게 조상신은 살아있는 신으로 여기고 섬기는 것이다. 이런데 어찌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주영하 교수는 유교식 제사의 순서를 이렇게 설명한다.
"유교식 제사는 일정한 순서에 따라 신령을 모시고 보내 드린다. 먼저 신령을 부르기 위해 향을 피운다. 신령이 내려오면 제상을 중심으로 음식을 대접한다. 조상 중기 이황은 사람이 살아서는 좌를 숭상하고 죽으면 우를 숭상한다고 했다. 그래서 일상의 상차림과 달리 밥이 오른쪽에 탕이 왼쪽에 놓인다. ......명절 제사에는 신령이 식사하는 동안 묵념을 한다. 그 후 신령이 돌아가고 사람들은 신령이 남긴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음으로써 신령과 하나가 되는 교감의 시간을 갖는다"[주영하 pp265-266]
주영하 교수는 한국인이 지닌 신령관은 조상 신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우리의 유교식 제사는 분명하게 조상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런한 증거는 매우 많다. 제상에 빨간 김치는 올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귀신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팥떡은 반드시 올려놓는다. 왜 그런가? 그 역시 신령이 좋아해서이다.
2. 한국 유교가 종교임을 인정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천주교와 서구의 다양한 사상의 영향으로 유교의 비종교성을 그리도 주장하던 유가들이 스스로 유교의 비종교성을 포기하고 유교를 종교법인화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신도를 비종교법인화 해 신사참배가 국가의례라면 강요하던 일제가 패망 후 신도를 다시 종교법인화 하여 신사참배가 다시 종교행사가 되었다는 것은 유교의 종교법인화와 함께 조상제사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제사에는 초혼 행위가 있다
조상제사에는 바늗시 초혼행위가 있다 초혼행위는 구약에서 금지된 것이었고 이런 행위를 하는 신접한 자, 무당은 죽이도록 되어있었다. 성경에서 산 인간이 죽은 자를 다시 만나는 사건은 죽은 영혼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한 예수님처럼 육체를 가진 부활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활하지 않고는 다시 산 자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저에는 사자와의 영적교류 즉 초혼의식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개신교는 부활의 종교이지 초혼술이나 강복술의 종교가 아니다.
우상숭배는 모르고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또 모르고 하는 것도 아니다. 학생이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놀듯이, 사기꾼이 범죄인 줄 알면서 사기를 치듯이, 공직자가 불법인 줄 알면서 뇌물을 받듯이, 돼지머리가 돼지머리인 줄 알면서 절을 하 듯이 그들은 부패한 마음에 알면서 한다. 또 이렇게 거짓인 줄 알면서 하다가 하나님의 저주로 악한 영이 임하고 악한 영의 역사로 그것을 진짜라고 믿게 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해 다른 모든 우상숭배에서 귀신이 자신이 그 우상의 신이라고 속이며 나타나듯이 조상제사에서도 귀신이 자신이 조상이라고 속이면서 나타난다. 어쨌든 공자에 대한 제사에서 공자의 존재가 아주 없어져서 무로 돌아갔다고 여기면서 무에게 경배를 드리고 무를 인격적인 존재처럼 종교적 초혼의식으로 기리는 것은 분명 허황된 것이요 우상숭배인 것이다.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하지 다른 존재들이나 무적 존재들에게 영광과 경배를 돌려서는 안된다.
4. 제사할 때 악한 영들은 몰려온다
(1) 김해경 목사 ( 전 단군교 교주, 무당 ) 의 증언
악령이 즐거워하는 일들은 제사 지내는 곳에 모여들어 차려놓은 음식을 흠향하는 일이다 그리고 귀신은 이상하게도 절을 받기를 좋아한다 사탄의 영, 악령 가운데는 세상에 살 때 배부르게 음식을 먹지 못한 사람이 죽어서 원한이 되어 음식을 탐하는 영도 있다. 이런 영들은 초상집에서 사람의 곡소리를 듣고 모여든다. 기독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울지 말라고 하는데 다른 뜻도 있겠지만 울음소리를 듣고 먹지 못하고 죽은 영들이 모여들이 십상이기 때문에 그러한 주의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초상집에는 시체가 있고 시신을 문상 온 사람들과 기름 냄새와 여러 가지 음식물 냄새가 며칠 동안 계속되므로 멀리 있는 곳의 영까지도 그 냄새를 맡고 모여든다. 특히 울음소리는 영들을 불러 모으는 촉진제가 된다. 배고픈 영들은 분명 음식물의 기운을 먹는다. 옛날에는 우리네 풍습을 보면 사람이 죽으면 3년 동안 상청을 차리고 아침 저녁으로 음식을 올린다. 만약 그 밥을 한 사람이 계속 먹으면 병이 생기거나 원인 불명의 일로 인해 3년 안에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쁜 영들이 상청에 올린 제삿법에 있는 진짜 기운인 영양분을 먹어버렸기 때문에 음식들은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 영양분도 없는 밥을 먹었고 나쁜 영들이 먹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당들이 굿할 때 보면 진수성찬을 차렸는데 첫마디가 “괘씸하다. 왜 이리 먹을 음식이 적으냐! 너희들은 잘먹고 살면서...” 라고 한다. 조상을 빙자한 귀신 대하기를 우습게 한다거나 소홀히 한다면서 호통을 친다. 바로 굿하는 곳에 오는 영도 음식을 탐하는 나쁜 영이고, 그런 소리를 하는 무당에게도 악령이 있기 때문이다.
굿하고 난 다음 제물로 올린 음식을 먹어보면 밥 같은 경우는 찰진 맛이 없고 심하게 표현을 한다면 모래알이나 톱밥을 씹는 맛이 난다. 좋은 영은 절대로 음식물을 탐하지 않는다.
고사도 마찬가지이다. 고사를 아주 잘 지키는 사람들의 직업을 보면 대게 유흥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요정이나 식당을 하는 사람들인데, 요정에서는 음식과 장구소리나, 북소리, 타악기소리 같은 것들과 사람들의 신명나는 노래소리가 있다. 유계를 떠도는 영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 소리와 음식이 있는 장소이다. 유계를 떠도는 영들, 쉽게 말해 잡귀들이 이런 소리와 음식물을 보고서 모여든다. 이런 잡귀들은 계속적으로 이런 곳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나쁜 짓을 하기도 하는데, 원인불명의 병이나 사고, 화재 등을 일으킨다. 이런 일이 생기면 무당을 찾게 되고, 그럴 때마다 귀신을 위해서 고사나 푸닥거리를 하게 되며 주인은 악귀가 접하게 되고 무당이 되거나 반무당이 되는 경우가 많다.
술장사를 오래 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무당 냄새가 나는 것은 이런 푸닥거리나 고사 등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를 사귀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친구를 사귀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 박효진 장로 ( 전 서울구치소 경비교도대 대대장)의 증언
"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제사를 지내기가 죽기보다 더 싫어졌다는 것은 나에게는 커다란 의문점이었고, 훗날 청송감호소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명확한 해답을 얻기까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 숙제였다. 왜 우리 기독교는 제사문제를 그토록 극단적으로 평가하는가? 왜 우리 나라의 제사를 꼭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이나 이방신에 대한 제사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한국 전통문화로서 조상에 대한 경애와 뿌리 찾기의 한 방편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까?
한번 시작한 불신과 회의는 좀처럼 꺼질 줄 모르고 내 가슴 깊은 곳에 고집스러운 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기쁨의 노래가 점점 사라지고, 신앙의 열정이 식기 시작했으며, 목사님의 피를 토하는 설교마저 마음에 와닿는 강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한 영적 침체와 스트레스가 극한에 다다른 어느날, 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놀라운 해답을 주셨다.
그날 나는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믿음의 동역자 한 사람과 밤 늦도록 기도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새벽 1시를 넘긴 무렵이었다. 텅 빈 도로 한중앙을 같이 걸어오던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간증으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은혜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옹기도마 앞을 지나쳐 오는 순간에 썩는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엄청난 악취였다. 마치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한 장소에 모아 놓고 태우는 듯했다. 동역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인 무언의 교감. 옹기도마 안에서 틀림없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봅시다!” 옹기도마 안으로 들어갈수록 독한 냄새는 한층 더 코를 찔렀다. 사냥개처럼 냄새를 따라 걸어 들어가는 우리 눈앞에 이윽고 환하게 불이 켜진 집이 나타났다. 활짝 열린 대문, 환한 전등불 아래 대청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제사지내는 집이 분명했다. “더 가까이 가볼까요?” “예, 그랍시더.”
사람들은 빨랫줄을 풀어 마당에 늘어놓고 제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제상 위에는 갖가지 제물들이 진설되어 있었고, 제상 중앙에는 지방과 함께 돌아가신 내외분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다소 긴장하며 다시 한번 대청 안을 살펴본 순간!
나는 그때까지 귀신이나 악령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에 익숙해 있었으므로 영적 존재도 동일한 범주에 국한시켜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앞에는 기상천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상 위는 물론이고 제상 아래에도, 천장에도 빌로드처럼 진한 흑색의 영체들이 온통 북적대고 있었다. 혹시 잘못 보았으나 싶어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다 마찬가지였다. 수백을 헤아리는 엄청난 귀신떼들이 온집을 누비고 있었다. 육신을 가진 제한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여서인지 그들은 마치 공간이동하듯이 제상의 위아래를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들은 흡사 여름날 강물 속의 숱한 피라미떼처럼 한꺼번에 무리를 지어 종횡으로 방향을 바꾸어가면서 사람들의 몸속에까지 들락거렸다. 수백의 떼거리들이 사람의 입으로 한꺼번에 들락거렸다. 수백의 떼거리들이 사람의 입으로 한꺼번에 들어가 그의 온몸을 휘젓고 다니다가 옆구리로 빠져나오질 않나, 다시 제상 위로 올라가 제물들을 밟아대면서 춤을 추다가 허공을 빙글빙글 맴돌질 않나,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놀란 것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오늘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기에도 섬뜩한 귀신들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북적대고 있을 뿐 정작 제사를 받는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순간 내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셨다.
‘지금 네가 보는 것이 바로 사단의 실체이며 귀신의 실상이다. 인간의 영은 육신을 떠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는 그 날까지 임의로 이 세상을 들락거릴 수 없다. 영계에 들어간 인간의 영이 제삿날이라고 외출하여 제사상 앞에 찾아온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일뿐!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 윗대 조상님들도 죽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 낙원과 음부로 구분되어 들어간다. 제삿날에 후손들이 벌여놓은 이 제사상에는 조상의 영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네 눈에 보이는 더 더러운 귀신들이 대신 몰려들어 무지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외에는 그 어느 제사라도 귀신들의 놀이터요, 인간을 더럽히는 사탄의 유희임을 알라!’
짧은 시간에 내 마음이 정리되고 있었다. 성령님의 놀라운 가르치심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전율했다. 그랬구나! 내가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그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살펴보시며 나를 사랑하셔서 저 더러운 제사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셨구나. 나는 아내에게 진 빛을 갚아보겠다는 단순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교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나를 구원해 주시려는 구원의 경륜 안에서 인도하시고 보호해주신 결과였구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지내도 괜찮다는데 왜 기독교에서만 그렇게 기를 쓰고 안된다는지 모르겠어요. 제사만 지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교회에 갈 텐데.”
이 말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제사라는 것이다. 더럽고 사악한 귀신들은 제사라는 걸림돌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옹기도마 제삿집 문 앞에서 목도한 현실을 바탕으로 이 거대한 비밀의 세계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성경이 밝히고 있듯이 귀신은 거짓과 기만의 천재들이다.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과 전통과 충효의 아름다운 사상을 이용하여 하나의 계략을 만들었다. 곧 조상을 잘 섬겨야 한다는 인간의 근본 윤리를 이용하여 제사라는 의식을 만든 것이다. 그들은 ‘제사를 지내는 자리에 조상의 혼백이 오신다’ 는 거짓 사상을 심어놓고는 누구보다 조상을 잘 섬기기를 원하는 백성들의 제사자리에 자신들이 찾아와 지옥의 동반자로 사로잡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엑소시스트들이 접신하는 귀신들은 어김없이 조상신들이다. 특히 그 귀신들은 그 가문과 가정의 모든 것들을 그야말로 ‘귀신같이’ ,‘족집게처럼’ 알아맞춤으로써 영물인 귀신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들이므로 인간역사의 과거를 알아맞출 수 있다.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옭아맨다. 그런데 미국이나 서구 쪽의 영매들이 접신하는 귀신들 중에는 ‘조상’ 이라고 자칭하는 것들이 거의 없고, 대부분 친하게 지내다가 먼저 죽은 ‘친구’를 빙자하여 나타난다. 그네들의 의식세계에서는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보다는 친한 친구와의 우정이 더 깊고 우월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 쪽에는 조상이나 친구가 아니라 ‘장군신’ 이 나타난다. 중국인들에게는 장군 숭배사상이 있어서 가는 곳마다 관우, 유비, 조자룡 등 장군들의 사당을 지어놓고 숭배하기 때문에 귀신들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귀신들은 어느 나라 , 어느 민족, 어느 개인 할 것 없이 그들이 노리는 대상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치고 들어와서 그곳에 영적 갈고리를 꿰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효도 사상은 극히 칭찬받아야 하고 장려되어야 할 미덕 중의 미덕이다. 그러나 귀신들이 이것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지 못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안 이상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 개인적인 체험을 덧붙인 것이다. 이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전10;20)
어찌됐던 간에 실제 조상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많은 영적인 체험을 한다. 조상의 영혼이 오는 것을 영적으로 체험하고 조상의 도움을 요청한다. 어떤 이는 제사를 받아먹으러 온 아버지의 영혼이 호랑이로 보이고 제사하는 자식은 개로 보였다고 한다. 또 기독교인이 있어서 조상의 영혼이 못 들어온다고 다툼이 있었다고도 한다. 아무리 일부학자들이 조상제사에서는 조상의 영혼이 오지 않는다고 주장해도 제사에서 영적인 체험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현실감이 떨어진 탁상공론처럼 보일 뿐이다.
5. 기 타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기에 귀신이 역사한다. 다시 말해 성경 말씀에 위배된, 자기 마음속에 상상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바로 이것이 우상 숭배다. 또 거짓을 쫓는 것, 거짓인 줄 알면서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우상숭배인 것이다. 우리가 이런 우상숭배를 행할 때 하나님의 저주로 귀신이 우리에게 임한다. 우리가 참 신인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성령이 임하듯이 우리가 거짓 것들에게 아무가치도 없는 것들(나무, 돌 등)에게 경배할 때 귀신은 우리에게 임한다. 거짓 영들, 악한 영들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무신론의 대변자들 같아서 영적인 것을 언급하는 것을 비학문적인 것으로 여기고 터부시하고 두려워한다. 무당이 작두위에서 춤추는 것을 보고 또 이 일이 어떻게 판단되던 간에 할렐루야 기도원 원장이 암을 손으로 꺼내는 것을 보라 우리가 찾고자 하고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작은 노력만으로도 쉽게 기적을 보면 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어떤 영화에서 어머니와 아들 단둘이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에 장사지내지 않고 침대에 눕혀 놓고 산 사람처럼 매일 인사를 하고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는 괴기스러운 영화를 본 일이 있다. 이 사람은 제정신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유교의 제사에서도 죽은 부모를 살아 있는 것처럼 인사를 하고 절을 하고 복을 달라고, 지켜달라고 축문을 읽고 음식까지 차려놓고 드시라 하는 것이 과연 효도인가? 아니면 정신병인가? 그러므로 이러한 종교적 상징행위들(齊戒, 設位, 降神禮, 焚香, 獻酌, 再拜, 讀祝, 再拜, 侑食, 啓門, 辭神, 徹, 飮福)로 치러지는 조상제사가 우상숭배요 종교적 신앙행위가 아니라면 이러한 제사행위는 효가 아니라 미친 짓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위대한 조상에 대한 추모는 종교적인 의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에게, 조상의 영혼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없는 존재에게, 성경적으로 진리가 아닌 거짓 존재에게 돌리며 허황된 거짓 숭배행위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특징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거짓을 좇는 우상숭배행위에는 하나님의 저주로 마귀가 임하고 역사한다. 즉 조상제사를 행하면 거기에는 마귀의 영이 역사하는 것이다.
V. 미풍양속이 아닌 폐해만 가져온 악습이다
질문 : 조상제사는 우리 고유의 미풍 양속인데 반대하는 이유를 알수 없다
답변 : 조상제사의 폐해는 이조역사에서 잘 나타나 있다 형식과 허례, 명분을 중시하는 조상제사는 무서운 사색당쟁, 참혹한 사화를 불러 왔다
유교적 관혼상제례는 단순한 통과의례의 네 매듭이 아니다. 이 의례 속에는 유교적 봉건주의 사회를 유지하려는 교묘한 문화제국주의적 지배 이념이 들어 있다. 이 의례를 통하여 중국을 중심한 변방국들을 복속시켜 모화사대주의를 수립하려 했고, 이 의례를 통하여 남존여비, 계급주의, 관존민비, 처첩제도의 확립, 적서차별을 조장하였다. 이러한 예들을 옛 예서인 [예기]를 비롯한 관혼상제례에서 찾아볼수 있다.
조상제사의 근본적인 명분은 효도이다 그러나 어찌된일인지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의 윗어른 존경심이 아시아 여러나라와 세계 선진국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드 멜로의 연구결과를 음미해 보자
“ 착한 사람을 만들려는 종교는 사람을 나쁘게 만들지만 자유로 초대하는 종교는 사람을 착하게 만든다 그것은 자유로움이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내적 갈등을 다 부수어버리기 때문이다 ” 드 멜로 < 깨어 나십시오 >
보충 자료
1. 공자는 벌써 조상 제사의 폐단을 예견하였다
공자가어에 의하면 공자에게 어떤 사람이 묻기를 “자손이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하면 망령이 와서 흠양하느냐 흠양하지 않느냐” 고 알기를 원했다고 한다.
거기 대하여 공자는 아무 단안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의미는 공자가 만일 조상의 혼령이 와서 흠양한다 하면 후세의 효자가 제사를 성대히 해서 패가파산을 할까 염려함이요 또 만일 돌아가신 조상의 혼령이 한번 떠난 후에는 다시 와서 흠양하는 일이 없다고 하면 후세의 불효자가 아주 그 근본을 잊어버릴까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2. 조상제사는 죽은 조상을 위한다는 구실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경향이 많다
제사 제도의 시작이 부모나 조상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어떤 사람이 풍수를 데리고 자기 아버지 묘를 쓰려고 갔는데 여기에 묘를 쓴 사람의 손자는 정승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할아버지를 거기에 갖다 묻고 자기 아버지는 다른 데 갖다 묻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대게 살아 생전에 부모 속 많이 썩인 사람이 제사는 더 극성으로 지내게 되는데 정말 부모를 사랑해서 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의 체면이나 복을위해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당히 이기주의적인 요소가 내포되어있다.
3. 조상제사는 기족이기주의, 문중의 명예를 추구하는 봉건주의적 사상이 농후하다
조상제사는 자기 문중의 번영을 자랑하기 위한 의미도 있다. 옛날 성현들이 상례와 제례를 제정하는 근본 목적과 멀어지면서 후세에 이르러 상례와 제례를 지키는 뜻이 자기 문중의 영예를 구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초상 때에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자녀들이 울다가 여러날 울기에는 기력이 부족하면 돈을 주고 울음꾼을 사다가 곡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은 자기 문중을 자랑하기 위함이요 허례 허식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제사 때 음식을 잘 차려서 손님 대접하는 것으로 부모에게 대한 효성을 평하기 때문에 가세에 지나친 제사비용을 쓴다든지 분묘를 잘 가꾸고 상석과 비석을 호화롭게 세우고 묘지를 지나치게 단장하는 것은 돌아가신 부모를 위한다기보다 문중을 자랑하려는 명예심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기 문중만을 숭상하는 경향은 뭐운 당쟁과 사화를 불러왔다 처음에는 왕가에서 의도적으로 장려했던 제사는 그 후 점점 성행하게 되어 나중에는 제사를 어덯게 지내야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선비들 사이에 큰 논쟁이 되어 사화라는 역사적으로 참혹한 흔적을 남겼다 문제의 발단은 국보가 죽었을 때 상복을 1년 입어야 하느냐 3년을 입어야 하는 것으로 결국은 사람을 죽이는 비극적인 일이 생겼다 그다음에는 서원문제가 생겼다 서원은 글을 가르치는 동시에 위대한 선비들에게 제사를 자내는 곳이었다 사화가 심할 때는 서원을 중심으로 많은 싸움이 일어났기에 대원군은 서원이 나라를 망친다고 하여 몇몇 유명한 곳만 남기고 모두 불태웠다 이것을 볼 때 제사문제의 폐단이 어느 정도이었는지 알 수 있다
4. 유교 조상제사 남긴 유산 (윤태림 박사)
(1). 계층의식을 심화시켰다
높은자와 권위있는 자, 윗사람에게 무조건 복종만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 인륜적 질서를 존중하였다 양반, 중서, 상인, 천인의 엄격한 구별은 인도 카스트제도와 다를바가 없었다 서자는 직업선택, 곤리등용 거주의 자유까지 제한을 당했다
천인에게는 천인 자유가 전혀 없었다 유교윤리란 오직 통치자를 위한 윤리이다 피지배자의 무조건 굴복을 요구하는 정치적인 도덕이다 권력자가 자기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윤리이다 개인의 자유보다 권위를 앞세운다 인간은 오직 수직적 관계에서만 파악된다 개인의 자아발전의 길은 막혀있다. 인간 가치는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 오직 신분, 형식적 예절을 지키는데 있다 신분관계를 중시한다 내신분과 관계 없는 사람은 전혀 관심이 없다 길거리에서 강탈을 당해도 나와 관계 없기에 상관하지 않는다 수족을 놀리는 것을 싫어하고 독서그룹이 되기를 원한다 제왕이 민중 전부를 다스린다 孝悌도 형식적인 예절이지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이 아니다 유교윤리란 정치에서 발단하여 정치에로 귀착한다
(2). 가족단위 중심의 사회 파벌의식 고취
유교사회는 문벌가승(門閥家乘)의 사회이다 영반귀족은 사회적 특권이 계승된다 그 자손들은 납세, 부역, 병역의 특전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족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양반과 사놈의 결혼은 금지된다 유교사회에서 한국인들은 국가라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가족이 우선이다 가문이 먼저이다 공동체 의식보다는 가문, 가족 단위 사상이 앞선다
(3). 가학적 괸리와 피학적 민중 구조 탄생
유교문화에서는 벼슬이 아주 중요하다 일단 관리가 되면 민중을 지배한다 악한 곤라는 말할수 없이 가난한 백성들 힘없는 백성들을 수탈한다 정치는 민중과 완전 분리되어 있다 지배층가지 규율하는 객관적인 법체제가 없다 있어도 잘지켜지지 않는다 지나친 형식과 규권위만 앞세우기에 오히려 부조리가 판을 친다
(4), 사리분석보다는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서구사회는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한다 유교는 독서인을 만들어 관리만 되려고 한다 관리가 되면 권력, 금력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는 유교라 자연에 도전 정신이 없다 역사상 자연에 도전하는 민족은 살고 자연에 굴종하는 민족은 발전이 없었다 자연속에서 만족하는 민족은 발전이 없었다 우리 조상이 사색당쟁, 형식적 예에 치중할 고 허송세월을 보낼 때 서구인들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모험을 감행하였다 자연에 도전하였다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연장자, 윗사람 의견을 무조건 맹종한다 애매한 비합리성이 오히려 멋이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5). 권위에 무조건 굴종한다
권위를 중시한다 과거를 중시한다 권위에 복종한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다 이런 유교사상은 필연적으로 기회주의적 사고, 부정적 심성의 발달, 가족이기주의, 조상숭배 사상으로 연결된다
(6).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발달
양반은 얼어죽어도 겻불을 않쬔다 내용보다 형식을 중시한다 실질보다 외혀을 숭상한다 체면이 중요하다 서양문화는 죄악감의 문화이다 동양문화 특히 한국문화는 체면의 문화이다 그래서 일본은 제2 차 대전 중 잘못을 저질렀다 사과의 말한마디면 되는데 하지 못한다 자식을 재산을 파라가면서도 공부시켜 일류대학을 보내 출세시키려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체면 때문이다 서양의 죄의 문화가 체면문화를 정복하였다
7). 미래보다 과거를 중요시한다
유교는 과거 지향적 사고를 지닌다 미래를 보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거부한다 가계를 중시하고 족보를 귀히 여기며 조상을 즉은 후에도 숭배하는 사상은 모드 과거지향주의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이조시대 족보는 이력서와 마찬가지이다 무슨일을 어덯게하고 살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자손이고 어마나 사서오경을 많이 읽었느냐가 중요한다
(8). 현세 중심적 사고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는 속담이 이를 잘 나타낸다 저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나 사상이 희박하다 공자는 이세상일도 잘모르는데 어덯게 저세상일을 알겠느냐고 말했다
이생에서 어덯해서든지 잘살아보고 출세하려고 한다 자손 번성이 복중의 복이다 가문의 최대 의무이다 영생과 구원을 위한 노래는 거의 없다 영원한 세계를 생각하지 않고 현세의 실정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에게서 심오한 사상이 나올수 없다
조선 말기에 와서야 사람들이 제사의 폐단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조선 말기에 많은 유하자들 가운데 선각자들이 가독교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이 유교가 우리나라 풍속이 아니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일 유교가 한국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아마도 조선 말기에 이승훈, 안창호, 서재필 ,이승만, 남궁억같은 위대한 선각자들이 기독교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의 유교, 특히 제사와 관련되어 있던 폐습이 우리나라를 약화시켰다는 것을 빨리 깨들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위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유교 사고방식과 풍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는 도저히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깊이 깨닫고 특히 안창호 같은 분은 이를 굉장히 강조하였다
성리학의 유교가 우리민족에게 가져다 준 것은 나라가 일본에게 망한 것이었다
VI. 천주교는 왜 제사를 허용하는가
질문 :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천주교는 제사를 허용하는데 왜 구지 개신교만 제사를 반대하는가?
답변 : 우라날 천주교는 과거 천주교신자들이 조상제사를 거주하였ㄱ에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1715년과 1742년 두차례에 걸쳐 로마교황청은 조상제사가 성경과 교리에 위반되는 미신적이고 우상숭배이기 때문에 금지시킨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39년 교황청은 조상제사의 극히일부 행위만 금지하고 전면 허용하였다 일본 신사참배도 일본 요청에 의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허용하였다 (당시 2차대전중 이태리와 일본은 동맹국이었다) 이로써 약 80여년간 좡제사로 죽은 1만여명의 순교자들은 개죽음을 하게 된 것이다
교황청이 조상제사를 허용한 이유는 과거에는 제사자들이 미신적으로 제사드렸으나 이제 현대에 와서는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나 미신이 아닌 고유의 미풍양속으로 생각하고 지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기가막힐 이론이다 과거 2백년 저에 한남자가 바람을 피웠다 첩을 얻기 위해서이다 교횡청은 그것이 십게명에 ,교리에 위반되기에 금지시켰는데 (당시는 축첩제도가 있었음) 지금은 남자가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바람을 피운다고 하니끼 허용할 수 있는가? 바람피우는 행위 자체가 악한 것이다 죽은 조상에게 성경이 금하는 절하는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이다 로마천주교는 성경의 가름침 ,하나님 명령보다 시대 형편을 더 소중히 여긴다
보충자료
1. 조선천주교회의 제사행위 금지
조선천주교회는 1791년 윤지충과 권성연등이 조상제살르 폐지하여 발단된 신해박해를 필두로 100여녀간 1민여명의 순교자를 배출하였느데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조상제사이었다 로마교황청의 제사금령은 조선교회의 신앙의 순수성과 절대성을 강화시켰다
(가) 중국 의례논쟁(儀禮論爭)과 교황청의 금령 :
중국에서의 소위 의례논쟁이란 그리스도교의 신(神, 라틴말의 Deus)에 해당하는 중국말 용어가 무엇이며 선조와 공자에게 드리는 유교식 제사와 존경의식을 허용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 약 100년간 벌였던 쟁론을 말한다.
16세기 말엽 중국 선교에 임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와 그의 동료 예수회원들은 주로 지식층을 상대로 전교를 하였고 높은 수준의 유교문화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배치되지 않는 한 받아들이고 조화하려는 문화적 적응주의(適應主義)내지 보유론적(補儒論的) 입장을 취하였다. 그래서 선조와 공자에게 드리는 제사나 존경의식에 대해서도 그 본래 의미를 파악하여 자녀나 제자가 부모와 스승에게 드리는 효도와 존경의 표현이라고 해석, 허용하였다. 그러나 예수회보다 반세기 늦게 중국에 들어온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예수회의 적응주의적 선교 방침을 비난하면서 조상제사와 공자 공경의식을 미신적 행위라고 반대하였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게 된 데는 선교 방침의 차이도 있었지만 이들이 접촉한 사람들이 예수회와는 달리 주로 시골의 서민층이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시골사람들이 거행하던 조상숭배 제사나 공자 공경의식에는 민간신앙의 영향으로 미신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의례논쟁의 발단은 1643년 도미니코회원 모랄레스(Morales)가 예수회의 선교 방침에 반대하여 17개항의 문제를 교황청에 제기함으로써 일어난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1645년 모랄레스가 제기한 행위들을 금하는 훈령을 내렸다
오랜 연구와 검토 끝에 교황 글레멘스 11세는 1715년 3월 19일 칙서 를 통해 제기된 의례에 대한 금지령을 내렸다.즉 그리스도교의 신의 명칭으로는 천주(天主) 이외에 천(天)이나 상제(上帝) 등의 다른 용어를 사용할 수 없으며, 조상숭배 제사와 공장 공경의식을 금하며, 또한 조상의 위패도 금하나 다만 신위(神位)라는 글자 없이 이름만 써서 모시는 것은 허용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1742년 7월 11일 칙서 를 통해 글레멘스 11세의 칙서를 재천명하면서 모든 선교사에게 칙서 준수를 서약하도록 명하고 이에 불복하는 자는 엄한 벌과 함께 중국에서 추방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이 문제에 대한 일체의 논란을 금함으로써 파란만장했던 1세기간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의례문제에 대한 교황청의 판단기준은 그 근본의미가 무엇이냐는 관점에서보다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병행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으며, 금지령을 내린 이유는 당시 중국인의 종교 심성으로 볼 때 이 의식들이 미신과 혼합되어 있어서 미신적 요소를 분리해 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 조선 천주교회가 조상제사를 금지한 이유 :
(1). 천주교는 성실을 宗旨 로 삼는데 흠향할수도 없는 죽은이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는 것은 성실의 도에 어긋나는 허례요 가식이다 윤지충은 말하기를 잠자는 자가 음식먹을수 없듯이 죽은자는 제물을 흠향할수 없다 더욱이 음식은 육신의 양식이지 영혼의 양식이 아니기에 조상제사는 허위라고 역설하였다
(2). 사람이 죽으면 천당, 지옥 ,연옥 한곳에 가는데 그곳에 간 영혼들은 이 세상에 다시 올수 없다 대신 간교한 마귀가 와서 흠향하므로 조상제사는 혼잡일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악마를 섬기는 미신행위이다 마귀는 간악한 영물이기에 제사마저도 이용하여 유혹과 타락의 도구로 삼는다 속인다 조상제사는 명색은 선조를 섬긴다고하지만 실제로는 악마를 섬기는 미신행위다 이렇게 마귀를 섬기는 자는 천주를 섬길수 없으며 결국 지옥에 떨어진다
(3.) 제사는 유일하신 참신이신 절대자 천주에게만 드려야 한다 천주외에 어떤 다른 존재에게 드린다면 그것은 참례(僭禮: 참람한, 모욕적인 예)요 범죄행위이다 십계면 중 가장 으ㄸ,ㅁ되는 첫째 계명 천주만을 만유위에 공경하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천주에게는 欽崇의 예를 드리고 다른존재에는 공경을 드리라고 가르친다(마리아 공경은 특별 공경이다 성인공경은 보통 공경이다) 제사는 흠숭이다 천주에게 드릴 흠숭이므로 제사사 아무리 부모공경을 한다느 순수한 의도가 있더라도 천주에게 범죄행위가 된다
(4). 신주는 자손의 골육 생명과 아무관련이 없다 나무조각에 불과하다 조상의 혼이 깃드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마땅히 버려야 한다. (정하상이 <상제상서>에서 언급)
"부모의 호칭이 얼머나 중요하고 큰 것인데 목수가 만들어 분칠을 하고 먹으로 쓴 것을 보고 어찌 부모라고 할수 있겠는가 ? "
2. 천주교 제사허용
1939년 12월 8일 교황청은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통해 공자 공경 의식을 전면허용하고 조상제사에서도 한두가지 제외하고 모두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1940년 7월 한국주교단은 <조선8교구 모든 감목의 교서>를 발표하여 조상제사에 대한 교황청의 허용조치를 공포하였다 허용이유는 교회의 도리는 만세불변하는 진리이며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현대인의 정신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58년 한국주교단은 <한국교회 공동 짇호서>를 통해 시체나 위폐 앞에서 절하는 것을 허용하고 향을 피우고 음식을 드리는 것을 허용했다
1984년 천주교회창설 200주년을 맞아 1962년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천주교회 지도자들은 금지되었던 지방을 모시고 축문을 읽는 것도 허용했다 2002년 10월 한국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제사는 각 가정에 따라 그풍습과 규례대로 폭넓게 허용하였다 그 이유는 제사금지가 아시아 복음 전파에 지장이 된다는 것이다
3. 교황 비오 11세는 1935년 공자 존경의식을 허용하였다. 또한 1년 후인 1936년에는 일본의 신사참배(神社參拜)를 허용하면서 지금까지 금지되었던 혼인, 장례, 그 밖의 사회 풍습 등에 대해서도 폭 넓은 허용조치를 취함으로써 적응주의원칙이 교회의 확고한 선교정책임을 드러냈다. 더 나아가 비오 12세는 1939년 12월 8일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을 통해 공자 존경의식을 행할 수 있다고 전면적으로 허용했으며, 선조 공경의식에 있어서는 “시체나 죽은 이의 상 또는 단순히 이름이 기록된 위패 앞에 머리를 숙임과 기타 민간적 예모를 표시함이 가하고 타당한 일이다”라고 함으로써 비록 전면적인 허용은 아닐지라도 상당히 관용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조치를 취한 이유는 시대 변천에 따라 풍속도 변하고 사람들의 정신도 변해서 과거에는 미신적이던 예식이 현재에 와서는 다만 존경과 효성을 표하기 위한 민간적 예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교가 2차대전이 일어나던 바로 20세기 초엽에 와서 새로운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1939년 로마 교황청이 새로운 입장을 표명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새로운 입장은 정치적인 이유가 다분히 있엇던 것으로 이탈리아와 일본이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일본의 압력에 의해서 로마 교황청이 신사참배나 조상숭배 의식은 종교적 의미가 없는 하나의 시민적인 행사라고 발표하게 되었다. 1939년 12월 18일 로마 교황 피우스 12세는 교서를 통해 현대에 와서는 과거의 전통적인 습관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유교에서 조상숭배하는 것은 하나의 시민적 의식일 뿐, 종교적인 의식은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조상에 대한 효의 표시로 간주해야 된다고 했다. 이것으로 지난 80년 동안 만여 명의 순교자는 헛 죽음한 것이 되어 버렸다. 이렇듯 교황이 한번 안된다고 하면 그것을 반대했고 또 교황이 괜찮다고 하면 그것을 진리처럼 받아들였다. 1939년 교황의 교서로 말미암아 로마 가톨릭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어졌다. 사실 이것이 본래 가톨릭 신학과 맞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 교황청이 그런 발표를 하자마자 그 이듬해에 일본 통치하에 있던 한국 가톨릭교는 1940년 신사참배는 말할 것도 없고 조상 숭배는 하나의 시민적 의식에 불과하다고 표명하였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인 조상 숭배를 허용하게 되었고 시체 앞에서, 무덤 앞에서, 그리고 죽은 사람의 사진 앞에서 절하는 것과 제사지낼 때 향 피우는 것과 음식 차려 놓는 것 등 모든 것을 정당한 것으로 허용하게 되었다. 1965년부터 열렸던 제 2차 바티칸공회에서도 이와 같은 전통적인 의식을 용납하는 태도를 취했다.
4. 조상제도의 허용에 따르는 심각한 문제점 (2000년 11월 9일자 동아일보 기사)
김대건과 안중근은 어디로 갈 것인가? [한국 천주교의 조상제사 허용에 대하여]
2000년 11월 9일자 동아일보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기사가 실렸다. 이름하여 한국 천주교의 양심선언 즉 과거사 문제에 대하여 우리 민족 앞에 고백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9∼11일 경남 양산 정하상 바오로 영성관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한국 천주교회 과거사 반성문제 등을 논의한다. 주교회의는 이번 총회에서 사목연구소 산하 역사신학위원회가 제출한 한국교회 과거사 반성문건을 검토한 뒤 합의가 이뤄지면 A4용지 2장분량의 담화문 형식으로 이를 발표할 계획이다.
담화문은 개별사건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지만 조상제사 금지, 병인양요, 안중근 의사 의거의 ‘살인’ 규정, 신사참배 허용 등에 대해 포괄적인 참회의 뜻을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올해 대희년을 맞아 3월 12일 전세계를 향해 가톨릭 교회가 2000년 역사에서 잘못한 일에 대해 고백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해 교회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 천주교의 지난 행태를 보면 당연히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미 알려 진 대로 일제 신사 참배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던 천주교이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신사참배를 로마 교황청이 우상숭배가 아니라 하여 일제에 앞잡이 노릇을 하였던 천주교가 어느새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성지로 떠받들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일이다. 한국 천주교만큼 간 큰 친일파가 어디 있었던가? 그러나 이러한 천주교가 자신의 과거사를 솔직하게 고백하겠다고 하니 기쁘게 받아 들일만 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참으로 우려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본다. 두 가지의 문제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는 그들의 고백에서 볼 수 있듯이 안중근의사의 문제이다. 천주교는 천주교신자인 안중근을 살인마로 정죄하였다. 그러므로 천주교의 교리대로라면 그는 지금 지옥에 있다. 그런데 이제서야 그에 대한 죄목을 풀어 준다는 것이다. 이제야 안중근은 천국으로 가는 것인가? 참으로 개도 웃을 일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바로 조상제사의 문제이다. 이것에 대하여 천주교는 조상제사를 금지한 것을 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조상제사는 더 이상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금함으로 우리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해쳤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유교식으로 제사를 드린 역사는 얼마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나라 고유의 문화가 아니라 사대주의 문화의 토착화인 것이다. 이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의 문화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고 동시에 누구도 조상제사를 조상신에게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 스스로 이러한 조상신을 섬기는 제사를 우상과 상관없다고 하는 것인가? 성인으로 떠받드는 김대건은 조상제사를 반대하다가 순교를 당했다 그 외 과거 천주교신자들은 80여년동안 1만명 이상이 교황청 명령대로 조상제사를 반대하다 순교를 당했다 김대건신부는 이로인해 성인 반열에 섰는데 이제 조상제사를 반대하고 금지하는 것은 죄가 된다고 하니 김대건은 지금 천국에 있다가 지옥으로 옮겨지고 있다
VII. 부모세대가 죽으면 시대가 변할 때 그때 페지해도 된다는 이론
질문 : 시대가 변하면 신세대는 어차피 조상제사를 않지킬 가능성도 많다 그러나 얼마 살지 못할 부모님들이 오래 지켜온 조상제사는 부모들 돌아가실 때까지만이라도 지키는 것이좋다
답변 : 이런 사상은 전통적인 동양의 사상, 유교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유교는 주로 통치자와 어른만을 위한 도덕이다 자녀들, 후세를 위한 윤리가 아니다 조상이 아무리 나쁜 것을 행하여 자신들과 후손들이 막대한 피해와 재앙을 가져와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옛것은 무조건 좋고 선배는 다 옳은 것이다 왜 조상제사의 허례허식과 모순등 나쁜 점을 개선하고 후손들에게 유익하고 복을 받을 길을 모색하려는 생각을 하지못하는가? 잘못된 유교사상에 오래동안 젖어있기 때문이다 유교문화에서 자식사랑은 진정 자식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조상들의 명예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후손들은 겉으로만 효도를 하지 진심으로 효도할 마음이 없다 아시아 나라 중, 그리고 선진 국 여러나라중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웃어른 존경심이 최하위권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조시대에 효자문을 세운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잘못된 사상이나 풍습은 즉시 버리고 고쳐야 내일에 희망이 있다 유교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이런 진취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직 과거를 고집한다 (과거 우리나라 개화기 때 선각자들은 과감히 구습을 청산하고 모험심을 갖고 결단하여 자녀를 해외에 유학보냈다 그 유학생들이 결국 우리나라 근대화에 초석들이 되었다 )
몸 안에 독이 들어 있어 점점 퍼지면 나중에 수습하고 고치기 어렵다 기 어렵다 부모와 후손들에게 해가 되는 악습은 즉시 잘라버려야 가정이나 국가나 유익이 있다
VIII, 제사를 반대하는(폐지되어야할) 이유
기독교가 조상제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 조상제사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고등종교마다 경전이 있다 교인들은 그 경전을 진리로 믿고 따른다 성경은 기독교 경전이다 성경은 죽은 영혼에게 절하는 것과 제사는 것을 금한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20장 5절에 아무형상이든지 거기에 절하지 말라고 하였다 제사상을 차례놓고 절을 하면 귀신들이 와서 절을 받는다 이런 성경의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거역하고 제사를 지내고 절을 하라는 것은 기독교신앙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사는 하나님에게만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대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된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엄격하게 금하고 심판하신다
2. 조상제사는 조상과 자녀를 위하는 일이 아니요 귀신들만 좋아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싫어하시는 행위이다
성경에 조상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했기에 조상제사를 드릴수가 없는 것이다 신약성경 고린도 전서 10장 20절에 이방인(이스라엘 이외의 민족)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라고 말씀하였다 누가 무어래도 하나님이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면 그런 것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알수 있는 것이 아니요 믿음과 체험을 통해서 안다 하나님은 조상제사를 극히 싫어하시므로 제사를 드리는자의 후손에게 복을 주실수 없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죽은 혼과의 교제나 접촉을 시도하는 일을 금지한다(삼상28:1-25 레위기 20:6).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한 제사와 기도를 금하고 있다(사8:19). 우리의 구원은 십자가위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므로 죽은 자의 구원을 위한 기도나 미사는 아무 소용이 없다. 소위, 연옥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리아와 성자들이 중보기도 한다는 사상은 성경의 지원을 받지 못하므로 거부되어야 한다.
3. 조상제사에 참석하면 기독교인들은 그 영혼이 눌리고 신앙에 막대한 손해가 온다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굳게 믿고 기도하는 기독교인들은 조상제사에 참석하면 영혼이 눌린다 마음이 괴롭고 답답하다 짜증이 난다. 평소에 신앙도 흔들리고 몸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제사는 귀신에게 드리는 것이므로 우리 신앙과 영혼에 좋을 리가 없다.우리 신앙을 후퇴시키고 가족간 불신과 미움을 싹트게 한다 죽은 조상에게 절을 하라는 것은 기독교신앙을 포기하라는 것이기에 기독교인들은 조상 제사 를 거부할수 밖에 없고 그때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4. 조상제사는 조상들의 영혼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이며 후손들이 저주받을 짓이다
부모가 일단 돌아가시면 지옥을 가든지 천국(낙원)을 가든지 둘 중 하나이다 지옥에 간 조상 영혼은 절통해하며 후손들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 신약성경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31절을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천국에 간 부모들은 후손들이 하나님을 더 잘섬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 복받고 살기를 기도하실 것이다 그런데 조상제사하는 사람들은 그 후손이 저주를 받는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20장 5절) 인류역사를 살펴보아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었고 또한 이루어질 것이다 조상제사에 대해 오래동안 연구한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제사를 자주 오래드린 많은 종가집 후손들에게는 대체로 많은 재앙이 있다고 한다 갑자기 죽거나 큰 수슬을 하거나 (무당 후손은 반드시 나쁘게 된다)잘 되는 일이없다고 한다
5. 국가적으로도 이득되는 것이 없는 폐기되어야 할 풍습이다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곳은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지역과 유교권뿐이다. 모든 고등 종교는 제사 지내는 법이 없다. 유교만은 예외인데 그것도 유교 자체의 정신이라기보다 원시 종교와 연결되어 나타난 것이다. 다른 지역에는 조상제사라는 것이 없다.
미국, 카나다등의 유명한 텔레비존 방송국에서는 어쩌다 한번씩 한국 조상제사모습을 방영한다 동시에 아프리카에서 제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도 원시사회 풍습이 남아있고 이를 지킨다고 하면서 결국 한국 문화의 원시성을 선전한다 이런 보도는 다분이 국제경제 경쟁이 치열한 이 시대에 한국을 폄하하기 위한 의도도 있다고 보나 우리가 사실 핑계할수 없는 부분도 많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는 김정윤 선교사 (연세대 제정 언더우드 선교사 대상 수상자)는 미국에 있을 때 여러 외국 사람들에게 제사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고 곤혹을 치룬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말했다 조상제사는 이 시대의 흐름과는 전혀맞지 않고 오히려 국가적으로도 손해만 가져오는 폐습의 하나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88 올림픽 때도 식전 식후 행사에서 수천년을 내려온 일체 무속적인 것은 제거하지 않았는가 ? 제사를 지내는 나라들 거의 대부분이 가난한 후진국들이다
6. 세계 온 인류가 구원을 받고 복을 받는 복음전도에도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조상 제사를 허용하는 것이 반드시 선교를 잘되게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조상 제사가 기독교 선교 현장에서 많은 갈등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 제사를 결국 수용한 천주교보다 아직도 금지하고 있는 개신교가, 그리고 조상 제사를 허용한 진보적인 교회보다 그렇지 않은 보수적 교회가 더욱 성장한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태국등 선교사가 조상제사를 허용한 나라들은 교회가 부흥되지 못하고 신자들의 신앙도 견고하지 못하다 중국 복음화에 가장 큰 장애물은 이 Chinesness라 할 수 있다. 물론 문화나 전통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중국인이 그 중국적인 것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은 그 문화적인 것, 종교적인것, 전통적인 것 위에 복음으로 2층집을 짓자는 것이다. 그럴 때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상 제사가 기독교 선교에 방해가 된다는 단선적인 논리를 지양하고, 조상 제사에서 기독교가 수용할 수 없는 요소들과 수용할 수 있는 면들을 분리해서, 기독교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한국 전통 문화의 긍정적 요소들을 수용해야할 것이다.
7 기타 문제 :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 폐단이요 형식적인 의례이다 이런 허례허식의 문화를 가지고는 선진국으로 집입하기 힘들다
대개 제사를 열심히 지내는 사람들 가운데는 부모님 생전에 대단히 고생을 많이 시켰기 때문에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제사지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 지금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갑자생, 을축졸 해야지 1917년생, 1945년졸 하는 것은 좀 이상하게 들린다. 동양귀신한테 서양연대를 써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양력 설로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놈들이 하는 짓이다. 양력설에 어떻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가? 동양귀신이 양력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니까 양력설에 지내는 제사는 헛제사이다.
(나) 신주, 지방에 쓰는 ‘현고처사부군신위’ 라는 것은 원래 한문으로 써야 한다. 사실상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의미조차 모르고 쓰고 있고 설령 쓴다 할지라도 그나마 한자를 몰라 한글로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옛날에 한글로 지방을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조상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보았다. 귀신들은 한글을 읽을 수가 없다. 한국 유령도 한문밖에 읽지 못한다. 글씨뿐 아니라 지방 접는 것에 있어서도 아무렇게나 할 수 없다. 옛날 상놈은 모르기 때문에 이무렇게나 접었다고 하는데, 오늘날 제사를 지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놈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중국 풍속을 유지함으로 일어나는 부조리들이다.
(다) 대가족 제도가 조상 숭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했었다. 이것은 씨족 중심 사회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대가족제도가 현대에 와서는 점점 약화되어 가고 자녀들과 뿔뿔이 흩어져 살아서 제삿날에 모이기조차 아주 힘들게 되었다. 설사 모인다 해도 오랫동안 따로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사촌들끼리 별로 뜻도 안맞고, 동서들끼리 서로 서먹서먹하여서 아예 모이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 혼자 앉아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의 영혼이 정말 온다면 매우 섭섭해 할 것이다.
(라) 생활 형태의 변화와 제사의 문제점
현대에 와서는 하부 계층 사람들이 상부 계층 사람보다 더 많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것은 문명의 이기로 자기중심적 생활 양상을 띠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자기에게 초점을 맞추다가 심지어는 제사를 간소화시키기도 한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제사는 진정한 의미에 제사가 아니다. 또 제사에서 사용되는 그릇이나 상에 있어서 요즘에는 격식을 차리는 집이 드믈고 심지어는 빌려다가 제사를 지내기까지 한다. 이로 보아 제사에 대한 관심과 의미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대의 교체에 따라 젊은 층이 복잡한 제사의 절차와 순서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모순 속에서 행하여지는 것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사상도 본래는 아무렇게나 차리는 것이 아니다. 모르고 제사지내기보다는 차라리 지내지 않는 것이 좋다.
IX 기독교신자의 처세
1.. 조상숭배 행위에서 기독교가 이어 취할 수 있는 문화적 요소들
(1) 부모에 대한 공경.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과 행위를 가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孝의 윤리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조화될 수 있다.
(2) 세상을 떠난 조상에 대한 추모, 문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조상에 대한 공경인데, 우리는 그들을 신령으로 여겨 제사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우리를 세상에 내시고, 양육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들의 생전의 삶에 대하여 추모할 수 있다. 특별히 조상이 남긴 신앙의 모본과 교훈을 되새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3) 성묘, 우리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 성묘하며, 부활의 소망을 일깨움도 유익하다고 본다. 그러나 성묘의 경우 우리는 유교나 불교 혹은 무속의 복잡한 체계를 믿지 않으므로 삼우제(三虞祭) 등과 같이 날짜에 매일 필요는 없다. 집례를 엄숙히 거행하고 묘를 돌보는 일은 세상떠난 분에 대한 존경의 행위로 옳게 받아드려야 한다.
2. 가족의 조상제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처세 원칙
(1) 인간적인 도리는 최대한으로 잘해야 한다. 남편에게든지, 또는 시부모에게든지, 친척에게 인간적인 도리는 더 잘하라. 상대방을 정죄하지 않고 미움의 감정을 품지 않으면서(미워하면 마귀가 더 공격을 한다) 자기의 신앙을 겸손하고 진실하게 유지해야 한다. 제사날이나 명절에 어쩔수 없이 참석해야할 경우 미리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2) 신앙을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말라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여 사람의 형편이나 주장을 따라가면 않된다 그것은 기독교인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말세에 마귀는 교묘하게 별별 이론을 다 내세우며 믿는자라도 타락시키려 우는 사자같이 돌아다니고 역하고 있다
차선책은 최선의 최대 적이다 적군이 처들어 오는 전방의 병사가 초소를 지키는 것은 최선책이다 부모님이 아프다고 병문안 가는 것은 차선이다 차선을 지키려다가는 적군이 쳐들어와서 부모도 본인도 다 죽는다 차선이 있다고 타협하면 우리 신앙은 죽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형편과 잘못된 시대사상을 좇아가면 가족들의 구원은 그만큼 늦어진다 죽어도 내 믿음 배반하지 말라 목숨을 걸고 지킬 때 내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도 그만큼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당장 해결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수년간 과도기적 기간이 필요한데 그동안 고통을 감수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불평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3. 주님을 위해 핍박과 고난을 잘 견디어야 한다
조상제사 반대로 인해 오는 고통을 기쁘게 여기고 감사하며 기도함으로서 궁극적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 가족과의 유대관계를 비신자라 해서 절대로 무시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바 사랑을 우리 친족에게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제사를 지내지 않을 때 받는 모든 비판을 그것으로 보응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로 우리를 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자는 복이 있다고 주님은 가르치셨다
당신의 눈물어린 기도와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핍박을 감수할 때 당신은 지옥가는 영혼을 살리게 되고 하늘나라에서 상급은 커지는 것이다 죄가 전혀 없으신 주님도 억울하게 모함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지 않았는가?
X. 결 론
우리 한국 교회는 복음주의적, 개혁주의 장로교주의적인 전통을 받아들여 지난 백여 년 동안 많은 문제 속에서도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과거의 유교적인 습관과 전통을 기독교적으로 뒤바꾸어 놓고 기독교 문화를 창조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 그 반면에 대부분의 아시아 교회들은 자기 자신의 전통문화에 집착하여 복음의 능력을 강하게 경험하지 못하고 또 교회가 활발하게 발전하지 못하는 실정에 있다. 새 시대에서 가정과 국가가 잘되는 길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조상제사를 폐지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다 한국적인 것은 무조건 좋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다 한국적인 것, 토착화, 이것은 위험이다. 문화의 탈을 쓰고 교묘히 올바른 신학이 왜곡된다 문화로 말씀을 감쌀 때에는 말씀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좋은 전통문화도 살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조상추모와 형제간의 우애를 도모하는 방법은 성령에 능력으로 거듭나고 굳건한 신앙을 유지하고 구습을 버리고 새세대들에게 맞게 의식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개신교 신자들은 부모기일이나 명절 때 추도(모)예배를 드린다 추도라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추모, 부모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평소에 끼치신 덕과 여러 가지 면을 깊이 생각하여 감사하는 것이고, 예배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바치는 하나의 식이다. 추도예배라고 해서 부모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을 주신 것, 그리고 부모님을 통해서 내가 존재하게 된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깊이 감사하는 것이 추도예배이다. 전통적인 제사와 기독교의 추도식(예배)이 다른 점은, 제사는 고인에게 드리는 것이요, 추도식은 고인을 추모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대상과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 때문이다.
추도식은 전통 의례의 기제에 해당하게 생각하여 돌아가신 이를 부모에 한정하고 있지만 신년 초 하룻날, 한식절, 또는 추석절에 추도식을 거행하는 것도 무방하다.
추도식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 여기서도 간소화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들이 둘러 앉아 식탁의 친교를 나누는 상을 차려 놓고 그때에 조상을 추모하는 간단하면서도 정중한 예식을 갖추면 된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복을 받게 하자 할렐루야 !
너는 나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 3-6 )
대저 이방인(이스라엘 이외의 민족)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린도 전서 10장 20절)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마태8:21-22)
참고문헌
1. 조상제사에 관한 문헌
이종윤 편 < 한국교회와 제사문제 > 도서출판 엠마오
임택진 < 기독교 가정의례준칙 > 한국문서선교회
오세종 < 의례 신학 > 삼필문화사
박효진 <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 > 홍성사
박근원 < 기독교와 관혼상제 > 전망사
김혜경 < 주여 사탄의 왕관을 벗었나이다 > 홍성사
김혜경 < 목사님, 도사님 > 홍성사
문화체육부 편 < 한국종교의 의식과 예절 > 화산문화
기독교사상사 < 기독교사상 > 1998년 10월호
<기독교 대백과 사전> 기독교문사
2. 유교에 관한 문헌
삼성출판사 < 한국의 유학사상 > 삼성출판사
삼성출판사 < 논어 중용, 맹자, 대학 >
고대민족 문화연구소 < 한국 문화사 대계 >
양우당 < 논어 맹자 >
이규태 < 한국인의 의식구조 > 신원
김경일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바다출판사
최병철 <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 시아 출판
한국정신문화뤈 (효사상과 미래사회 >
윤호진 < 효행록 > 경인문화사
보경문화사 <예기 >
3. 천주교
토마스 아퀴나스 < 신학대전 요약 > 카톨릭대학 출판사
한국천주교중아위원회 편 <제2차바티칸 공의회 문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해설총서> 성바오로 출판사
<한국카톨릭 대사전> 한국교회사 연구소
로레인 뵈트너 박사 < 로마커톨릭 사상 평가 > 기독교문서선교회
김영배 신부 < 그건 이렇습니다 > 성바오로출판사
윤형중 < 상해천주교 요리 > 카톨릭 출판사
박도식 신부 < 천주교 교리 > 카톨릭 출판사
이종천 < 카톨릭비판에 답한다 > 성모출판사
4. 기타
이규태 < 한국인의 의식구조> 신원문화사
메릴린 히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 베다니 출판사
김인수 < 한국교회사 > 한국장로교출판사
민경배 < 한국교회사 > CLSK
유동식 외 1인 < 한국종교사상사 >
윌리스턴 워커 < 기독교회사 >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윤태림 < 한국인 > 현암사
윤병주 < 종교심리학 > 서광사
심수명 < 인생을 축제처럼 > 도서출판 다채움
요하임바라 < 비교종교학 > 민음사
황보갑 < 비교종교학 > 기분
이윤호 <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개 끊어라 > 베다니 출판사
<기독교 사상사> 1994년 9월호
< 기독교사상사 > 1996년 12월 호
주겅형 < 우리문화의 수수꺼끼 >한겨레신문사
이병도 < 한국사 > 진단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