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입만 달랑! " >
-정 영 인-
오늘은 월목회(月木會) 회원 전원이 ‘전공선사(電空先士 ; 전철을 공짜로 먼저 타는 선비)’
기념으로 춘천 나들이 가는 날이다.
회원 100%가 전공선사증(電空先士證)을 다 받았다.
정식 명칭은 ‘시니어 프리패스(교통 우대카드)’이고,
내가 이름 지은 속칭은 ‘전공선사증’이다.
나도 난생 처음으로 전공선사증의 위력을 몸소 체험을 해보는 날이기도 하다.
요즈음 시니어들이 그렇게 몰려든다는 호반의 도시 춘천,
그리고 춘천 막국수와 닭갈비의 본 고장으로!
부개역에 가서 우선 버스 교통비를 충전하기로 한다.
화면에 나오는 매뉴얼대로 하고서 밑에 있는 구멍에
만원을 넣으니 아무리 넣으려 해도 안 들어간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옆에서 충전하던 여고생이
“할아버지, 오른쪽 옆에 있는 돈 넣는 곳에다 넣어야 해요.”
과연 가르쳐주는 대로 그리 하니 그리 되었다.
이게 초장부터 무슨 망신인가.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니,
“
야, 너는 제 구멍도 못 찾으니 무슨 전공선사냐? 어리바리하게시리.”
온수역에 모여 7호선을 탄다. 도합 8명이다.
가만히 보니 가방을 멘 친구가 4명, 입만 달랑 가지고 온 사람이 4명!
4명은 회원들을 위해 먹을 것, 마실 것을 챙겨왔지만,
4명은 달랑 입만 달고 왔다.
상봉역에서 환승해 춘천을 간다.
전철 안은 전공선사들과 아줌마들로 득시글댄다.
공짜 인생과 돈 내는 아줌마들로 대비가 된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도 아줌마 전성시대가 도래하였다.
엊그제 가본 보리밥집도 4/5가 아줌마 천지였다.
남자들은 돈 벌러 가고 여지들은 먹으러 다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춘천에서 소양강댐으로 가 청평사로 유람선을 탄다.
유람선 안에서 회장이 가져온 삶은 계란과 귤은 허기진 배를 맛있게 채운다.
청평사(淸平寺) 가는 길목 주막에서 우선 목을 축인다.
묵직한 배낭의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회장은 삶은 달걀과 귤을, 수길이는 양주와 폭탄주할 맥주,
석기는 10년차 인삼주와 데쳐서 보온도시락에 담아온 주꾸미를,
그리고 원명이는 매실주와 사과를!
가게 안의 바위 상은 금세 그들먹해진다.
거기다가 빙어튀김과 뜨끈한 어묵이 함께 뛰니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거기다가 술은 위스키, 인삼주, 매실주, 맥주에 다들 주거니 받거니 알딸딸해진다.
입만 달랑 가져온 우리는 좀 그렇다. 기선이 말이 가관이다.
“
기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노래 잘 부르는 시우는 미안함을 ‘소양강 처녀’로 때우고,
정일이는 총무 일로 열심히 때우고,
기선이는 시골 할머니 냉이 한 봉다리 사주고.
나만 뻘쭘하기 하지만, 어줍지 않은 글 몇 줄로 대신할 거나.
춘천으로 다시 돌아와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막국수와 닭갈비로 채운다.
생각보다는 맛이 둘 다 영 아니었다. 회원들이 다 그렇단다.
춘천, 상봉, 용산을 거쳐 밤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내닫는다.
게다가 경로석에 앉을 자격을 행사하면서 말이다.
늘그막에 이런 시간들을 가질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기쁘다.
그리고 마음 씀씀이에 고맙다. 우리 어부인은 고작 한다는 말이
“비가 올 줄 모르니, 우산 챙겨 가요.”
그렇지만 막상 전철을 공짜로 타니 기분이 째지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공짜는 다 좋은 것이어.’
기선이가 부득불 나눠준 냉이나물을 아침에 무쳐 먹으니
봄냄새와 봄기운이 입안에 가득하다.
전공선사증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노인복지 제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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