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J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아시다시피 마르고 허약해 보이는 호이스가 UFC라는 유혈이 낭자한 무규칙 격투대회에서 거구의 상대를 연속으로 격파했기 때문이다. 그레이시 일족은 이와 같은 효과를 미리 예상하고 호이스를 가문의 자객으로 대회에 출전시킨 것인데, 이런 방식이 대중에게 통한다는 것을 이미 수십년간의 경험으로 체득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초가 카를로스 그레이시였다.
일반적으로 그레이시 주짓수는 어렸을적 너무나 허약했던 엘리오가 자신의 몸에 맞게 고안해 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엘리오뿐 아니라 엘리오의 스승인 카를로스도 그리고 그 스승인 마에다 미츠요도 건장한 체격이 아니었다. 특히 카를로스는 사진에서 보면 알다시피 가문에서 제일 허약한 체구였고 몸무게도 엘리오보다 적게 나갔었다.(左.UFC 2에서 제이슨 델루샤에게 암바를 거는 호이스 그레이시)
그렇지만 마에다의 실전 주짓수를 전수받은 카를로스로서는 이 기술로 자신보다 강한 거구의 상대를 이길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카를로스 jr에게 주짓수를 배운 장 자크 마차도는 이런 말을 했다.‘그라운드는 나의 대양. 나는 상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영조차 할 줄 모른다.’
이처럼 주짓수가 중력의 법칙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그라운드 기술이라는 점이 그레이시 일족에게 이득으로 작용했다. 만약 마에다 미츠요가 주짓수가 아니라 가라테를 전수했다면 카를로스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습득했다 해도 그 신체적인 한계로 인해‘챌린지’가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타격기술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도 신체적인 환경에 매우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50킬로그램대의 카를로스가 백킬로그램의 단련된 거구들을 타격전만으로 무패의 행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우스개 소리로 정말 장풍이라도 필요할지 모른다. 그래서 교쿠신 가라테를 창시한 최배달 관장은 실전 대결과 더불어 벽돌을 부수고 소뿔을 자르는 등의 격파를 개발했던 것이다.‘내 주먹이 돌보다 강하니 덤빌 엄두도 내지 마라!’라는 의미로 말이다. 전성기때 75킬로그램의 최영의 관장도 미국에서 거구의 프로레슬러를 이기기 위해 눈찌르기와 고환차기까지해서 관중들에게 린치를 당할 뻔할 정도였는데 카를로스나 엘리오 같은 약골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브라질의 싸움꾼들과 무술인들은 UFC초기의 무술인들처럼 전혀 그라운드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경험이 있는 그래플러라 하더라도 조르기와 관절기는 생소한 탓에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카를로스는 1920년대 초창기부터 작고 허약한 체구로 거구들을 연속적으로 격파하면서 신문에 광고까지 냈고 이 때문에 브라질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레이시 주짓수의 개조(開祖)인 카를로스는 실력뿐 아니라 두뇌도 뛰어난 모양으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는데 소질이 있었고 그 스스로도 기술과 더불어 식이요법까지 개발했다. 이른바‘그레이시 다이어트’라는 식이요법이 그것이다.
이것은 호이스와 힉슨을 통해 더욱 유명해졌는데 요가와 더불어 그레이시는 뭔가 다르다는 신비주의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그러나 요가와 식이요법은 단지 신비주의를 위한 것이거나 겉멋을 부리기 의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수십년간‘챌린지’를 계속한 경험의 산물로써, 긴장과 피로를 이완시키고 안정적인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호리온의 말처럼 시도 때도 없이 도장에 무뢰한이 찾아와 도전을 신청하는데 위통이나 치통, 두통이 있다면 정상적인 컨디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뒤 왼쪽부터 페드로 발렌티,힐리온,호일러,힉슨,호이스,홀커. 앞 왼쪽부터 카를로스 마차도,하이론,헤너,호리온,할렉,헨조,헬슨
그레이시 다이어트란 기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음식을 혼합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들어 탄수화물의 감자와 파스타를 같이 먹지 않고 설탕, 소금, 조미료와 붉은 고기를 되도록 피한다. 우유는 어린이만 먹이고 청량음료는 절대 마시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그레이시 사람들에 주장에 의하면 이런 방식이 그레이시 파이터 특유의 체력과 유연성, 지구력을 길러주는데 특효약이라는 것이다. 호이스가 UFC 토너먼트 시합을 끝마쳤을 때 전혀 피곤해 하지 않은점, 엘리오 그레이시가 43살 때 논스톱으로 3시간 45분이나 시합을 한 것이 모두 그레이시 다이어트의 효과를 증명하는 예라고 말한다. 이것이 격투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검증이 되지는 않았지만 카를로스가 94세, 엘리오도 90세가 넘도록 무병장수하고 있으니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게다가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으니 이 식이요법은 그레이시 주짓수라는 상품의 가치를 더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무술이 강하다는 평판을 얻고 유파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강함의 증명’이 요구된다. 그리고 2대 3대 훌륭한 계승자와 우수한 후배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언제적 이야기인지도 모를 창시자와 스승의‘챌린지’로 현재 유파의 강함을 증명하는 증거로 내세우는 무술이 꽤 많다. 이런 점에 있어서 그레이시 주짓수는 무술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할 정도의 무술이다. 카를로스만 해도 3명 이상의 부인을 통해 21명의 자식과 106명의 손자, 증손자는 128명에 이른다. 이들이 거의 대부분이 주짓수를 연습하고 높은 수준에 오른 마스터급도 상당히 많다. 엘리오도 부인이 다섯명에 이른다고 한다. 역시 자식들 중 상당수가 주짓수 선수이자 마스터이다. 한마디로 그레이시 일족 대부분이 브라질리안 주짓수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카를로스가 은퇴하고 엘리오가‘챌린지’의 바톤을 이어받아 주짓수를 세상에 알렸는데, 이런 엘리오의 적은 아이러니하게도 내부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레이시 주짓수란 기술은 상대가 그라운드와 서브미션을 모른다는 전제하에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도 주짓수를 오래 수련한데다 기술수준도 높고 힘이 세다면? 기술수준이 아무리 높은 엘리오도 상대를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일이 1957년에 일어났는데, 브라질 YMCA본부에서 그레이시 주짓수를 12년이상 수련한 발데마르 산타나와 43세의 엘리오가 발레투도로 싸우게 된 것이다. 3시간이 넘는 혈투끝에 발데마르가 엘리오의 머리를 걷어찼고 경기는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엘리오는 공식적인‘챌린지’에서 은퇴하였다.(右.엘리오 그레이시와 반데마르 산타나와의 승부)
다행스럽게도 그레이시 가문에는 엘리오의 뒤를 이을 자객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를로스와 엘리오가 각기 수십명의 자녀들을 합숙시키며 어렸을 때부터 연습을 시켜왔기 때문이었다. 카우손은 카를로스의 첫번째 부인의 장남이었다. 이런 카우손에게 그레이시 주짓수의 정통성은 자신에게 있다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랜 친구였던 발데마르 산타나와 무규칙으로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는 18살 때부터 발레투도를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가 지향하는 것은 오로지 발레투도를 위한 주짓수이다. 데뷔전에서 그는 유클리데스 페레이라에게 패배했는데 심판의 판정이 잘 못된 것이라고 말하며 아직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왠만하면 시합에 져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그레이시의 특징이지만, 카우손은‘다른 그레이시에 비해(엘리오를 지칭) 나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누구와도 싸우고 누구에게도 비밀없이 기술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며 이것이 좋은 선수를 배출하는 비결이라 말한다.
어쨌든 카우손은 산타나와 6번 싸워 4번은 이기고 2번은 비기며 엘리오의 복수에 성공한다. 이후 그는 60년대 브라질에서 가장 강한 파이터로 활약하게 되는데, 지난 칼럼에 실은 BJJ계보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 MMA에서 활약하는 브라질 주짓수 선수는 거의 대부분 카우손과 카를로스 주니어의 제자라고 보면 된다. 카우손의 제자를 보면 마리오 스페히,무릴로 부스테만테,비토 베우포드 에서부터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히카르도 아로나, BJ 펜이라는 그야말로 거물급들로 즐비하다. 카를로스 주니어는 카를로스의 세번째 부인의 장남인데 유명한 ‘그레이시 바하(바라)’라는 아카데미의 설립자로도 유명하다. 여기에서 헨조, 하우프, 하이언, 호드리고, 알메이다, 쉠브리등 탑 파이터들이 쏟아져 나왔다.(左.홀스 그레이시와 카우손 그레이시의 연습)
엘리오 이후에는 카우손을 포함해 신체적으로 강하고 재능있는 인물들이 뒤를 잇게 되는데,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에는 카를로스의 두번째 부인의 아들인 칼레이 그레이시가 67년에 출범한 브라질 주짓수 협회의 주최하에 열린 대회에서 무패의 행진을 이어간다. 그 후 홀스 그레이시 부터는‘챌린지’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도 영역을 확대하게 된다. 홀스는 카를로스의 4번째 부인의 아들인데 어렸을적 엘리오에 의해 양육되었다. 카우손은 힉슨과 비교해 누가 가문의 역대 최강자 였느냐는 질문에 홀스가 단연 최고였으며, 기술적으로도 매우 수준이 높았고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힉슨도 홀스야 말로 자신보다 더 강했다고 말했을 정도다.(右.홀스 그레이시)
홀스는 70년대 BJJ뿐 아니라 삼보, 그레코로망 레슬링등 브라질에서 열렸던 대부분의 그래플링 대회에 나가 연승하며 브라질 전역에 이름을 날렸다. 마우리시오 고메즈는 생전의 홀스가 유명인 홀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홀스는 1982년 행글라이딩 사고로 사망하였는데, 이때까지 어떤‘챌린지’에서도 무패였다고 전해진다. 홀스이후 80년대부터는 엘리오의 아들 힉슨 그레이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힉슨은 스무살 때인 81년에는 길거리 싸움 140전 무패의 거구(190cm에 117kg)의 유명 파이터 줄루와 발레투도로 싸워서 이기면서 명성을 쌓아 나가기 시작한다.
시대가 발전하고 캠코더처럼 쉽게 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영상기기가 등장하자, 그레이시 가문은 이것을‘챌린지’를 홍보할만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힉슨과 줄루와의 유명한 시합도 이렇게 기록되어 알려지는데, 이 영상물은‘그레이시 액션비디오’라 불렸다.‘그레이시 액션비디오’는 90년대의 UFC를 비롯한 이종격투대회 이전 그레이시 가문의‘챌린지’를 말이 아닌 눈으로 전세계에 확인시킬 수 있었던 놀라운 도구였다. 게다가 이 영상물은 겉으로 보기에 비쩍 말라서 별 힘이 없어 보이는 호리온이나 호이스 같은 사람이 미국에서 자신의 강함을 아주 쉽게 증명해 보일 수 있었던 물건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호리온이 UFC를 만들기 위한 스폰서를 구하는 데에 이 비디오도 큰 역할을 했다.
[사진] 엘리오의 지도아래 힉슨과 홀스가 삼보시합을 하고 있다
450전 무패의 신화적인 파이터라는 힉슨 그레이시의 전설도 이 비디오로 인해 신뢰를 받은 면이 크다. 액션 비디오에 보면 힉슨이 13살 때 1분만에 이십대의 가라테 선수를 이기거나 30초만에 러시안 유도 챔피언을 이겨버리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과연 힉슨이라면 450전 무패도 거짓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장삿속에 밝은 호리온은 교습 비디오와 함께 액션비디오도 함께 팔아서 큰 돈을 만지기도 했다. 그만큼 이 비디오는 그레이시 가문에 여러모로 든든한 아군 역할을 했다.
그레이시 액션 비디오에서는 힉슨이 루타 리브레(LUTA LIVRE) 의 최강자 우고 듀와르치를 상대로 해변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브라질에는 대표적으로 세개의 무술이 존재하는데, 첫번째가 브라질리안 주짓수고 두번째가 카포에이라, 그리고 루타 리브레가 있다. 루타 리브레는 주짓수처럼 서브미션 그래플링이며 60년전 마스터 타투라는 사람이 그레코로망 레슬링과 관절기를 섞어 루타 리브레를 창시했다고 전해진다. 루타 리브레는 포루투갈어로‘자유롭게 싸우는 기술’을 의미하고 BJJ와 다르게 맨몸으로 수련하고 전문적으로 타격도 연습한다. 이름만큼 발레투도를 지향하는 무술이라 예전에는 벽앞에 선수를 세워 놓고 다른 사람이 주먹으로 쳐서 내성을 기르는 무서운 훈련법도 행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비슷한 성격의 루타 리브레와 BJJ는 발레투도등의‘챌린지’에서 서로 부딪히는 경우가 많아서 예로부터 앙숙지간으로 유명하다.
[사진] 힉슨 그레이시와 줄루의 발레투도 승부
힉슨과 해변에서 싸운 우고 듀와르치는 루타 리브레의 제왕이라고 불렸던 파이터다. 체격이나 체중도 헤비급인데다 번개 같은 태클로 마운트 포지션을 빼앗고 안면에 펀치를 퍼붇는 것을 장기로 삼는 선수다. 이 때문에 우고를 가리켜‘세계에서 가장 빠른 격투가’라고도 한다. 루타 리브레 연합의 회장까지 맡았던 사람인데 아쉽게도 그는 장렬한 패배로 더 기억되는 선수다. 우선 그레이시 액션 비디오에서 힉슨에게 얻어 터지는 장면으로 유명하고 UFC에서는 탱크 애봇에게 처절하게 얻어 터지는 수모를 당했기 때문이다. 우고는 해변에서의 싸움이후 친구들을 데리고 힉슨의 도장으로 가서 또다시 도전했는데, 도장 바닥이 아니라 주차장에서 10분동안이나 힉슨에게 얻어 터지고 말았다. 루타 리브레의 얼굴인 우고가 힉슨에게 지고 UFC에서 탱크 애봇에게 패했다고 루타 리브레가 약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BJJ도 스포츠 주짓수 시합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 선수가 이종격투 경기에서 변변찮은 파이팅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루타 리브레 출신의 파이터로는‘거리의 제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힉슨도 슬슬 피해다녔다고 하는 마르코 후아스가 있다. 그런데 후아스는 우고와 달리 루타 리브레만 익힌게 아니라 유도, 카포에이라, 태권도, 복싱, 무에타이등 여러 무술을 골고루 익혔다. 그는 그레이시 주짓수도 약간 익혔는데 BJJ와 연속으로 싸워서 이겨나가는 탓에 쫓겨나고 말았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너무 강해서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터라 이러저리 옮겨다니며 시합을 했다.’라고 한다. 힉슨에게도 몇번 도전했지만 응하지 않은 탓에 ‘힉슨이 후아스를 피해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올 정도였다. 마르코 후아스는 무에타이 브라질 헤비급 챔피언 출신으로 매우 강력한 타격 테크닉을 소유했고 그라운드에서는 루타 리브레의 기술로 싸우는 올라운드 파이터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후아스 발레투도라는 무술을 창시했는데, UFC7에서는 부상으로 1%의 실력도 내지 못했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토너먼트 챔피어언이 되기도 했다. 제자로는 UFC에서 챔피언이자 최고수준의 타격으로 유명한 페드로 히조가 있다.
[사진] 프라이드에서 게리 굳리지에게 힐훅을 거는 마르코 후아스
BJJ와 루타 리브레간의 불화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그레이시 가문의 악동으로 유명한 하이언 그레이시는 루타 리브레의 정상급 선수인 에우지뇨 타데우와 몇번이나 충돌했고 언젠가는 디스코테크에서 말싸움을 벌여 타데우가 총으로 하이언을 쏘려고 한적도 있다. 그 후에는 하이언이 타데우의 제자를 폭행하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타데우가 하이언의 동료를 칼로 찔러버리는 사건도 있었을 정도였다. 타데우는 유달리 그레이시측과 사이가 안좋은데 하이언의 형인 하우프나 사촌 호일러도 타데우라면 이를 간다. 이런 갈등이 계속되다 97년에는 브라질에서 열린 발레투도 시합인‘펜타곤 컴뱃’에서 하이언의 형인 헨조 그레이시가 타데우가 시합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합중 구석으로 몰린 헨조의 머리를 타데우측 세컨이 걷어차면서 이것을 계기로 경기장에서 그레이시 측과 루타 리브레간의 집단 난투극으로 번졌다. 브라질에서는 과거에도 이처럼 유파끼리의 신경전이 난투극으로 이어진 경우가 있는데 이 때문에 리오 데 자네이로등에서 발레투도가 금지되기도 했다. 어쨌든 그레이시 주짓수와 다른 무술간의 반목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사진] 시합전 눈싸움을 하는 헨조 그레이시와 에우지뇨 타데우
어떻게 BJJ가 MMA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무술이 되었는가에 대해, 어떤 무술이 강하다고 평가 받고 길은 매우 험난하고 오랜 경험을 통한 노하우를 필요로 하다고 서두를 뗀 적이 있다. 그레이시 주짓수는 기술적인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이토록 오랜시간 다른 무술과의‘챌린지’로 경험을 쌓고 우수한 격투가를 길러 오늘에 이르게된 것이다. 그야말로 험난한 여정이 아닐 수가 없다.
[사진] 그레이시 특유의 입장 퍼포먼스인 그레이시 트레인
세계 이종격투경기의 시작인 UFC는 이처럼 그레이시 가문이 BJJ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미국에서 만들어진‘챌린지’의 무대였다. 결론적으로 BJJ가 MMA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무술이자 세계최강의 유파라는 명성을 얻게 된 원인을 꼽자면. 첫째, BJJ가 마에다 미츠요에 의해 개발된 우수한 서브미션 그래플링(Submission Grappling) 이었다는 점이다. 후세의 노력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레이시 주짓수는 출발부터‘강한무술’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전수자 마에다가 1000전 이상의 이종격투경험이 있었던 불세출의 무술가인데다, 전수한 기술이 실전에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지 않고도 실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서브미션 그래플링이란점이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했듯이 만약 마에다가 타격기를 전수했다면 왜소한 카를로스나 엘리오가 무패행진이 가능할리도 없었고 피를 보지 않고 많은 횟수의‘챌린지’를 완수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두번째는 카를로스, 엘리오, 카우손으로 이어지는 훌륭한 스승과 우수한 후배들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기술개발을 지속한 것이다. 20세기초 스포츠를 지향해서 실전기술을 상당수 제외한 유도나 레슬링의 길을 따르지 않고, 6~70년대 동양무술의 신비주의를 쫓지 않은 점이 그 예이다.
세번째는 BJJ의 강함을 증명하는 것을 여러 세대에 걸쳐 게을리하지 않은 점이다. 선대의 활약과 영웅담에 안주하지 않고‘챌린지’를 계속한 것이 오늘날의 BJJ를 있게한 가장 큰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네번째는 환경적으로 행운이 따라서이다. 발레투도를 가능하게 만든 브라질의 특성과 캠코더등 현대문명의 발전, 그리고 호리온이 때마침 동양무술붐이 내리막길을 걸을 때 미국에서 이종격투대회를 열수 있었던 점도 BJJ가 세계적인 무술로 성장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브라질에서 최초의 그레이시 주짓수 도장이 열린지 내년으로 80년이 된다. 그레이시 일족이 줄줄이 서로 어깨에 손을 얹는 입장 퍼포먼스인‘그레이시 트레인(Gracie Train)’처럼 이들의‘챌린지’가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한 이종격투대회 역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정말 좋은 자료 감사 !! 힉슨이 홀스를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죠~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