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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동이족의 대이동’이라는 글을 연재하다가 글쓰기를 중단한지가 벌써 6개월이 지났군요.궁금하신 회원님들이 있을 것 같아서 글쓰기를 중단한 배경을 간단하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글을 쓰면 가급적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도록 여러 카페에 스크랩하여 올립니다. 지난 3월 ‘동이족의 대이동(제4회) <백제인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글을 네이버 카페인 부흥에 올렸습니다. 부흥은 회원수가 6만 명에 달할 정도로 네이버의 대표적인 역사카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글을 올리자마자 운영진들이 제 글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저는 카페지기에게 공개적으로 제 글이 삭제된 이유와 제 글을 되돌려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묵묵부답이었습니다.
회원님들도 아시겠지만 저는 글을 쓸 때 항상 우리나라와 중국의 정사서나 그에 준하는 비중을 지닌 사료들을 토대로 글을 씁니다. 그런데 부흥 카페에는 제가 글을 올리면 환빠라는 비아냥의 댓글이 많이 달립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지식만으로는 제 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카페 활동만으로는 한계를 절감하고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책 한권 내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더군요. 지난 6개월 동안 고생 좀 했습니다. 하지만 출간된 책을 보니 참으로 흐뭇합니다. 책이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박근혜 대통령님과 각 시도 교육감님 등 우리나라 교육정책에 관련이 있는 분들께 1권씩 송부하였습니다.
앞으로 계속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통설의 문제점을 질의하여 하루속히 학생들이 중화 사대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에 왜곡되지 아니한 역사책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제가 위의 단체들에 질의하는 내용과 답변 받은 내용들은 모두 카페에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고조선으로 가는 길을 송부하면서 같이 동봉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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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본인은 한민족의 상고사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재야사학자 김봉렬입니다. 일찍이 고려 말의 대학자인 이암 선생은 “나라는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역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민족 역사의 뿌리에 해당하는 고조선의 역사가 중화 사대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에 의하여 심하게 왜곡․축소되어 있습니다.
고조선 역사의 최대 쟁점은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와 한사군의 위치가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왕검성과 한사군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사료는 사기 「조선열전」입니다. 사기 「조선열전」은 기원전 108년 한 무제의 고조선 침략전쟁을 기록한 것입니다.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은 쌍방간 수만 명의 병력을 동원한 대규모 전쟁이었으며,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배경으로 1년 이상 지속된 장기전이었습니다.
사기 「조선열전」을 기록한 사마천은 당시 한나라의 사관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을 직접 목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한 전쟁의 전모를 그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을 통하여 왕검성의 위치와 한사군의 위치 등을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기 「조선열전」의 본문과 주석들을 검토해보면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은 현 중국 하북성 북경 일대에 위치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한사군의 위치도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위치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강단사학계에서는 왕검성의 위치를 한반도 평양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중심지를 무려 3천여 리나 동쪽으로 왜곡․축소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은 지난 2014년 6월 17일 국사편찬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여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을 토대로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가 현 중국 하북성 북경 일대임을 밝히고 통설의 문제점과 시정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고조선에 관련된 그 동안의 통설은 고조선의 영역이나 위상 등을 상당히 축소시킨 측면이 있으며, 그 결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부합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로 생각됩니다.”라는 내용과 더불어 1년 이내에 문제점을 시정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은 바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질의한 내용과 답변 내용은 첨부 문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답변처럼 “고조선에 관련된 그 동안의 통설이 고조선의 영역이나 위상 등을 상당히 축소시킨 측면이 있으며, 그 결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부합되는 측면이 있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주지하다시피 동북공정은 한반도에 유사시 중국이 북한지역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명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한민족의 앞 길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일보다 더 국익에 우선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루속히 청소년들이 중화 사대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에 왜곡되지 아니한 자주사관에 입각한 역사책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필자는 고조선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통하여 고조선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한민족 상고사의 핵심쟁점들을 모두 밝혔습니다. 이 책이 한민족의 상고사를 올바로 밝히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아래와 같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비롯하여 각 시도 교육감님 등 교육정책에 관련이 있는 분들께 1부씩 송부합니다. 국정운영과 교육정책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 아 래 -
박근혜 대통령님, 정의화 국회의장님, 양승태 대법원장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님, 이주영 국회 동북아특위 위원장님, 황우여 교육부장관님,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님,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님,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님,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님, 이청연 인천시교육감님, 민병희 강원도교육감님, 김병우 충북도교육감님, 김지철 충남도교육감님, 설동호 대전시교육감님, 이영우 경북도교육감님, 우동기 대구시교육감님, 박종훈 경남도교육감님, 김석준 부산시교육감님, 김복만 울산시교육감님, 장휘국 광주시교육감님, 김승환 전북도교육감님, 장만채 전남도교육감님, 이석문 제주도교육감님, 박원순 서울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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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문서 1> 필자의 질의 내용
안녕하세요. 국사편찬위원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본인은 한민족 상고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민족 상고사의 최대 쟁점은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와 한사군의 위치일 것입니다.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현존하는 최고의 사료는 『사기』‘조선열전’ 입니다.
『사기』‘조선열전’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배경으로 1년 여 동안 벌어졌던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을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이 직접 목격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더불어 『사기』‘조선열전’에는 여러 저명한 학자들의 주옥같은 주석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들 기록을 통하여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와 한사군의 위치 등을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본인은 『사기』 ‘조선열전’의 왕험성에 달린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는 신찬의 주석을 통하여 지극히 상식적인 방법으로 왕검성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신찬은 서진(西晉, 265~316) 시대 사람이므로 신찬이 말하는 낙랑군은 서진의 평주에 소속된 낙랑군입니다. 서진시대의 중국 정사인 『진서晉書』‘지리지’는 낙랑군이 소속된 평주의 위치를 ‘우공의 기주지역이며, 주나라의 유주이며, 한나라의 우북평군에 속했다’고 하였습니다. 상고사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진서晉書』‘지리지’가 말하는 평주의 위치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찬이 말한 낙랑군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또 『진서晉書』‘지리지’에 의하면 낙랑군에는 조선현, 둔유현, 혼미현, 수성현, 누방현, 사망현 등의 6개현이 있었습니다. 이들 현들의 명칭을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서 찾아보면, 다행히도 수성현遂城縣의 지명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현遂城縣입니다. 『진서晉書』‘지리지’의 낙랑군 수성현에는 ‘진나라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는 기록이 부기되어 있고, 『진서晉書』‘지리지’와 동시대 사서인 『태강지리지』도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다.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 하였습니다.
현 하북성 보정시 수성현遂城縣에도 중국 고지도인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와 『기주협우갈석도』 등을 통하여 이 지역에 갈석산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또 송나라에서 편찬된 사서인 『무경총요』와 『태평환우기』를 통하여 이곳 수성현이 진나라 만리장성이 시작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현이 『진서晉書』‘지리지’에 기록된 낙랑군 수성현遂城縣과 동일한 곳이며, 이곳이 신찬이 말하는 낙랑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는 신찬의 설에 의하면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은 당연히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또 『사기』‘조선열전’의 조선에 달린 “조선에는 습수ㆍ열수ㆍ산수가 있다” 는 장안의 주석을 통하여도 왕검성의 위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 고지도인 『우적도』에 의하면 습수는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을 흐르는 영정하 입니다. 그리고 『산해경』 ‘해내북경’의 “조선은 열양의 동쪽으로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있다.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는 구절과 “조선은 지금의 낙랑현으로 기자를 봉한 땅이다. 열列은 또한 물 이름이다. 지금 대방에 있는데 대방에는 열구현이 있다”는 곽박의 주석을 통하여 열수는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을 흐르는 호타하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지역을 흐르는 세 강물 중 산수는 기록이 없어서 찾지 못하였으나, 습수와 열수 두 강물만으로도 조선의 중심지역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사기』‘조선열전’에서 한나라 사신 섭하가 전송 나온 조선의 비왕 장을 살해한 후 바로 패수를 건너 달려 들어간 요새에 대하여 『사기정의』는 “평주 유림관으로 들어갔다”고 주석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도 왕검성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의하면 패수와 평주 유림관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평주가 어디인지 『사기정의』의 『사기』‘권2 하본기’ 의 기주에 대한 주석을 보면 “.....(황하)가 평주 갈석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기정의』가 말하는 평주는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갈석산(낭아산) 부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도 패수와 왕검성의 위치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기』‘조선열전’에서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는 신찬의 설과, “조선에는 습수ㆍ열수ㆍ산수가 있다” 는 장안의 설, 그리고 “평주 유림관으로 들어갔다”는 『사기정의』의 주석에 의하면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은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기』‘조선열전’의 그 어디에도 왕검성이 한반도 평양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귀 국사편찬위원회의 『사기』‘조선열전’ 왕검성 해설을 보면, 왕검성을 현 한반도 평양으로 비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강단사학계의 통설로 불리는 한민족의 상고사는 크게 왜곡 축소되어 있습니다. 왕검성을 비롯한 한나라 낙랑군이 한반도 평양에 존재했다는 학계의 통설은 일제가 한반도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역사왜곡한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왜곡된 일제의 식민사관은 오늘날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 근거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본인도 학창시절에 영문도 모르고 한나라 낙랑군은 한반도 평양에 있었다고 달달 외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한나라 낙랑군이 한반도 평양에 설치되었다는 강단사학계의 통설이 잘못된 것이라면 오늘도 교육현장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로 중국 동북공정의 동조자를 양산하고 있는 꼴이 됩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본인은 국사편찬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립니다.
1. 『사기』‘조선열전’의 왕험성에 달린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는 신찬의 주석에 따라 왕검성의 위치를 찾아보면, 신찬이 서진(西晉, 265~316) 시대 사람이므로 신찬이 말하는 낙랑군은 서진의 평주에 소속된 낙랑군이며, 서진시대의 중국 정사인 『진서晉書』‘지리지’는 낙랑군이 소속된 평주의 위치를 ‘우공의 기주지역이며, 주나라의 유주이며, 한나라의 우북평군에 속했다’고 하였습니다. 『진서』‘지리지’에 기록된 평주의 위치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찬이 말하는 낙랑군은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귀 단체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2. 『사기』‘조선열전’의 조선에 달린 “조선에는 습수ㆍ열수ㆍ산수가 있다” 는 장안의 주석에 따라 조선의 위치를 찾아보면, 중국 고지도인 『우적도』에 의하면 습수는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을 흐르는 영정하입니다. 또 『산해경』 ‘해내북경’의 “조선은 열양의 동쪽으로 바다의 북쪽, 산의 남쪽에 있다.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는 구절과 “조선은 지금의 낙랑현으로 기자를 봉한 땅이다. 열列은 또한 물 이름이다. 지금 대방에 있는데 대방에는 열구현이 있다”는 곽박의 주석에 의하면 열수는 현 중국 하북성 지역을 흐르는 호타하입니다. 습수와 열수가 모두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있고, 산수도 이들 강물과 하류에서 만나는 강물이므로 습수 ․ 열수 ․ 산수는 모두 현 중국 하북성 지역에 있었으며, 이곳이 위만조선의 주 강역이라고 보는데 이에 대한 귀 단체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3. 『사기』‘조선열전’에서 한나라 사신 섭하가 전송 나온 조선의 비왕 장을 살해한 후 바로 패수를 건너 달려 들어간 요새에 대하여 『사기정의』는 “평주 유림관으로 들어갔다”고 주석하였고, 『사기정의』의 『사기』‘권2 하본기’ 의 기주에 대한 주석을 보면 “.....(황하)가 평주 갈석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기정의』가 말하는 평주는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에 위치한 갈석산(낭아산) 부근이며, 평주 유림관과 패수 및 왕검성의 위치도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일대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귀 단체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4. 본인이 첨부한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 고찰>에서 인용하였듯이, 송나라에서 편찬된 사서인 『무경총요武經總要』와『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 의하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현이 진나라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분명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즉 이곳 수성현이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이 있던 곳입니다. 귀 단체에서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어디라고 보는지, 그리고 현재 중국은 『중국역사지도집』에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까지 그리는 엄청난 역사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귀 단체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위에서 본인이 제기한 사항들은 비단 지나간 역사가 아닙니다. 고구려 역사를 살펴보면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공격하기 전 기회 있을 때마다, “요동은 중국 땅이다”는 말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구려를 침공하여 멸망시켰습니다. 오늘날 중국이 진나라 만리장성을 한반도 평양까지 그려놓고 자국민과 세계에 홍보를 강화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한민국이 중국의 역사왜곡과 동북공정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기』‘조선열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인이 운영하는 다음카페의 고조선 항목에서 (http://cafe.daum.net/mago-net) 『사기』‘조선열전’을 9회에 걸쳐 귀 단체의 해설과 본인이 연구한 바를 비교하여 연재하였으니 참고 바랍니다. 끝으로 본인의 위 질문에 대하여 신속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기대합니다.
첨부문서 :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 고찰>
신청번호 : 1AA-1406-086612
2014년 6월 17일 12시 27분에 민원 접수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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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문서 2> 국사편찬위원회의 답변 내용
처리기관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 기획협력실
처리결과
(답변내용) 안녕하십니까.
먼저 본 위원회에 관심을 가져주신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오신 자료를 신중하게 검토해 보았습니다.
우선 본 위원회는 어떤 역사적 문제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기관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선생님께서 가장 잘 아시겠지만, 고조선에 관련된 사항은 그동안 수많은 학문적 논쟁이 전개되어온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주제입니다.
그동안 본 위원회에서 해당 주제와 관련해 펴낸 논저들은 본 위원회의 견해가 아니며,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를 수용한 것입니다.
물론 그것들은 발간 당시의 학문적 수준을 반영한 것이므로 지금 보면 미흡하거나 보완되어야 할 측면도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선생님께서 자세하게 지적하셨듯이, 이른바 통설과는 다른 견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은 학문적 논의와 검토를 거쳐야 하는 것이지 국민신문고 등의 민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최근 상고사에 관련된 관심이 크게 증폭되어 기존의 학설과 다른 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동북아역사재단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서 해당 주제를 새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강구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무적인 움직임에 따라 해당 문제에는 앞으로 상당히 중요한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본 위원회의 판단으로는 그런 결과를 일단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도 그런 연구에 충분히 기여하실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요컨대 첫머리에서 말씀드린대로 본 위원회는 어떤 역사적 논쟁에 관련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므로 선생님께서 질의하신 사항에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려움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런 본 위원회의 입장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모쪼록 선생님의 연구가 곧 인정될 수 있기를 희망하오며, 늘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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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문서 3> 필자의 재질의 내용
귀 단체의 답변이 매우 불만족스럽습니다. 다시 한번 본인의 질의사항에 대한 성의있는 답변을 기대합니다.
『사료의 수집ㆍ편찬 및 한국사의 보급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제1조(목적)에서 “ 이 법은 우리나라의 역사(이하 "한국사"라 한다)를 연구하고 그 체계를 정립함에 필요한 각종 사료의 조사·수집·보존·편찬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사의 연구·편찬·연수·보급을 원활하게 하여, 한국사 연구의 심화와 체계적인 발전 및 국민의 역사인식 고양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하였고, 제4조(국사편찬위원회의 설치)에서 “한국사 연구의 심화와 체계적인 발전을 위하여 교육부장관 소속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고 하였습니다.
위 법률에 의하면 『국사편찬위원회』의 설치 목적이 ‘한국사 연구의 심화와 체계적인 발전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귀 단체의 홈페이지에 실린 유영익 위원장의 인사말에서도 “우리나라 최고 국사연구기관으로서 우리 위원회는 국민과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대한민국 법률로써 정한 우리나라 최고의 국사연구기관입니다. 본인이 건의사항과 첨부한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 고찰>에서 언급하였듯이 한민족의 상고사가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심하게 축소‧왜곡되어 있다면 『국사편찬위원회』는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한나라 낙랑군이 한반도 평양에 설치되었다는 강단사학계의 통설이 잘못된 것이라면 오늘도 교육현장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로 중국 동북공정의 동조자를 양산하고 있는 꼴이 됩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귀 단체의 답변에서 “고조선에 관련된 사항은 그동안 수많은 학문적 논쟁이 전개되어온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주제입니다. 그동안 본 위원회에서 해당 주제와 관련해 펴낸 논저들은 본 위원회의 견해가 아니며,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를 수용한 것입니다.” 하였는데,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정녕 이것이 ‘우리나라 최고의 국사연구기관’이자 ‘한국사 연구의 심화와 체계적인 발전을 위하여’ 대한민국 법률로써 설치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할 말입니까?
그리고 “본 위원회는 어떤 역사적 논쟁에 관련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므로 선생님께서 질의하신 사항에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려움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하셨는데, 본인의 질의사항을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본인은 ‘어떤 역사적 논쟁에 관련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달라고 질의한 것이 아닙니다. 본인은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의 위치와 관련하여 『사기』‘조선열전’에 나타난 구체적인 사료를 통하여 그 위치를 제시하였고, ‘우리나라 최고의 국사연구기관’인 귀 단체에서는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구체적인 답변을 듣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 한번 본인의 질의사항에 대한 성의있는 답변을 기대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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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문서 4> 국사편찬위원회의 재답변 내용
2014.06.26. 10:23:30 처리결과
(답변내용) 안녕하십니까.
먼저 흡족하지 못한 답변을 드린 것을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앞서와 비슷한 취지의 답변을 다시 드릴 수밖에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본 위원회에서 펴낸 연구물들은 본 위원회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니라 당시 학계의 주류적 견해를 반영한 것입니다. 물론 이른바 통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학계의 주류적 견해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여러 경로로 다양하고 강력하게 주장되고 있습니다.
또한 해당 저작이 출판된 시기의 학문적 견해이므로 그뒤 진척된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한계 또한 지적할 수 있습니다.
깊은 연구를 통해 선생님께서 더욱 잘 알고 계시겠지만, 해당 사안은 매우 민감하며 복잡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더욱 신중한 학문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고조선에 관련된 그동안의 통설은 고조선의 영역이나 위상 등을 상당히 축소시킨 측면이 있으며, 그 결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부합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로 생각됩니다.
그런 문제는 최근 강력하게 지적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여러 기관에서 해당 사안을 본격적으로 다시 검토하는 작업이 수행되고 있습니다. 그 연구 결과는 늦어도 내년까지는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본 위원회에서도 해당 문제에 더욱 유념해 고조선 연구가 더욱 진전되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본 위원회와 본 담당자의 이런 입장을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끝>
첫댓글 1. 카오스입니다.....먼저, 사람님께서 <고조선으로 가는 길>을 출간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꼭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군말이긴 하지만,...우선, 사람님께서 '재야사학자 김봉렬'이라고 실명을 공개할 정도로 역사지식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는 모습이 참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카오스는 비록 '동아시아사의 빅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그 내용(?) 때문에 '실명공개'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眞正(진정=진실만이정당하다)'과 '카오스(빅뱅이전의원형)'로만 남아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2. 그런데,... (카오스가 아직 사람님의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사람님께선 ‘한사군재하북성설’을 주장하신 것으로 보이는데,...이제부터는 ‘하북성에 한사군이 존재했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추적하셔야 할 것으로 봅니다. 아마 지금까지의 역경 보다는 차원이 다른 과정이 사람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겸허하고 공평정대한 마음으로 그간 보아오신 사료들을 다시 꼼꼼히 재검토해 보셔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꼭 우리고대사를 학문적으로 접근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는 자칫 학문의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어쨋든, 결과적으로 본다면, ‘한사군재하북성설’은 ‘한사군재평양설’을 부정하기 위한 1차적인 징검다리일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가 결코 ‘眞實(實史)’이 아니므로 기존통설[‘한사군재평양설’포함]을 구축해 온 수많은 강단사학자들의 ‘가벼운 잽’ 하나로도 사람님의 주장을 쉽게 무력화 시킬 수 있다고 보이며, 아마 그들의 핵심적인 지적을 쉽게 답하시기 어려우실 것으로 보입니다. 즉, 그만큼 ‘기존통설[한사군재평양설포함]의 왜곡성’은 뿌리가 깊고 또 튼튼해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그들의 공격을 견디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4. 그 결과 사람님께서 지금까지의 많은 재야사학자분들과 같은 ‘좌절의 전철’을 겪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므로 부디, ‘하북성에 한사군이 존재했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고 : 지금까지 사람님이 보아오신 ‘역사사료’로도 충분합니다....해석의 방향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즉, 모든 현존 역사사료는 당대의 최고한문학자들이 당대의 최고권력자들의 비호아래 ‘학자적 양심과 사명감’을 가지고서 쓴 것들입니다. 카오스는 그분들의 한문실력이나 IQ가 현대인들보다 더 높다고 보므로 사람님께서도 참조로 하시기 바랍니다.]
5. 어쨋든,... 이제 사람님께서 ‘새로운 역사의 세계[동아시아사의 빅뱅]’로도 좀 더 접근하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원하신다면, 카오스도 미력이나마 돕고자 합니다.
‘하북성에 한사군이 존재했었던 적이 없었다’를 꼭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더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카오스님 오랫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카오스님의 새로운 역사의 세계(동아시아사의 빅뱅)의 보따리는 언제 풀어놓으실지 궁금합니다. 제 주장은 이미 이 카페를 통해서도 많이 소개하였기 때문에 카오스님도 잘 아시리라 봅니다. 카오스님도 보따리를 풀어놓으셔야 서로 토론이 될 듯합니다.
사람이 하늘이다님께서 섭하의 비왕 장 살해후 도주로로 비정하신 도마관(倒馬關) 협로의 북서쪽 끝에 놀랍게도 유수림(楡樹林)이라는 지명이 현존합니다. 나무 수(樹)자를 생략하거나 더해도 '느릅나무 숲' 이라는 뜻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과 그 지명이 다른곳도 아니고 7~8km 길이의 협로 북서쪽 출구 지점의 당하(唐河) 바로 옆 서남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곳이 곧 섭하가 달려들어간 요새, 즉 평주 유림관(楡林關)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유수림 마을의 좌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www.google.com.au/maps/@39.1321402,114.5841937,15z
반갑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자료를 찾으셨군요. 옛날에는 느릅나무(楡)를 심어서 성채로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곳이 평주 유림관이라는 견해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자료를 찾을 수 있었는지... 지리에 대해서 많이 연구하는 분이신가요? 앞으로도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사람이 하늘이다 네 안녕하세요. 님의 조선열전 해설 논문을 위성지도를 보며 이해하려 하던 중 유수림이란 지명이 눈에 들어왔네요. 고조선사에 관심만 많은데, 님의 노고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