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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제품(四聖諦品) ▣
⊙ 합론
사종의 성제의 뜻이 모두 다 섭(攝)한 연고이니 일체 세간의 고집(古集)을 여의지 아니하고 일체 출세간의 멸도를 여의자 아니함을 밝힘이니 모든 고통을 다 멸함이 이름이 멸제가 되고 열반을 멸진함이 이름이 도제가 되나니 삼승(三乘: 성문 연각 보살)의 열반승을 얻는 것은 얻을 것이 있거니와 이 대열반은 가히 얻을 게 없음이 이름이 도제가 됨이라. 보살은 많이 정토에 날새 또 정토는 여타방(餘他方)에 있다. 미루어 또 이르되 혹(惑)에 머물러 중생을 이롭게 하는 연고라 한다.
1. 사성제(四聖諦)의 진실을 말하노라
경문 그 때 문수사리 보살마하살이 여러 보살에게 말하였다.
"여러 불자들이여, 고(苦)성제는 이 사바세계 가운데서 혹은 죄라하고 혹은 핍박이라 하고 혹은 변이라 하고 혹은 반연(攀緣)이라 하고 혹은 취(趣)라 하고 혹은 의근(依根)이라 하고 혹은 허광이라 하고 혹은 옹창처(癰瘡處)라 하고 혹은 우부행(愚夫行)이라 하느니라."
"여러 불자들이여, 고집(苦集) 성제는 이 사바세계의 가운데서 혹은 계박(繫縛)이라 하고, 혹은 괴멸이라 하고, 혹은 어떤 사람은 애착이라 하고 혹은 망각념이라 한다."
"여러 불자들이여. 고멸(苦滅) 선제는 이 사바세계는 혹은 무쟁(無諍)이라 하고, 혹은 이진(離塵)이라 하고, 혹은 적정이라 하고, 혹은 무상(無相)이라 하고, 혹은 멸이라 하고, 혹은 무자성(無自性)이라 하느니라. 또한 체진실(體眞實)이라 하고, 혹은 주자성(住自性)이라 하느니라."
"여러 불자들이여, 고멸도 성제는 이 사바세계의 가운데 혹은 일승이라 하고 혹은 취적(趣寂)이라 하고, 혹은 인도(引導)라 하고, 혹은 구경무변별(究竟無分別)이라 하고, 혹은 평등이라 하고, 혹은 수성의(隨聖意)라 하고, 혹은 선인행이라 하느니라."
"여러 불자들이여, 이 사바세계의 사성제를 말하는데 이러한 사백억십천(四百億十千)가지의 이름이 있으니 중생의 이름을 따라 다 하여금 조복케 하느니라."
⊙ 합론
법화경에 "성문을 위하여 사제법을 설하고 연각을 위하여 십이 연기를 설하고 보살을 위하여 욕바라밀을 설하고 또 여래의 수시(隨時) 설법이니라" 하고, 영락경에서 사제(四締) 법문과 십이연기 설법을 하신 것은 각각 스스로 도 얻음이 차별함을 밝힘이니, 구승법(九乘法)을 설한 것은 성문의 성문승이요, 성문의 연각승이요, 성문의 보살승이라. 이와 같이 한 가지 사제와 십이연기법을 관하여 각각 스스로 도 얻음이 같지 아니함일새, 이와 같이 삼승 가운데 각각 삼통(三通)이 있음일새 구통이 됨이라.
2. 북방풍일세계(北方豊溢世界)의 사성제
경문 "여러 불자들이여, 이 사바세계에서 고성제라 하는 것은 풍일세계 가운데에서 혹은 이름이 애념처이며, 혹은 험해근(險害根)이며, 이름이 유해분(有海分)이며, 혹은 이름이 적집성(積集性)이며, 혹은 차별근이며, 혹은 수소성(數所成)이니라."
3. 멸성제(滅聖諦) 그 깨달음의 세계
"여러 불자들이여, 멸성제라 하는 것은 저 풍일세계(豊溢世界) 가운데 이름이 상속단(相續斷)이며, 이름이 개현(開顯)이며, 이름이 무문자(無文字)이며, 이름이 무소수(無所修)이며, 이름이 무소견(無所見)이며, 이름이 안은거(安隱去)이며, 이름이 무소작(無所作)이며, 이름이 적멸(寂滅)이며, 이름이 이소진(已燒盡)이며, 이름이 사중담(捨重擔)이며, 이름이 이제괴(已除壞)니라."
4. 도성제(道聖諦) 강가에 피어난 꽃
"여러 불자들이여, 고집멸도성제라 하는 것은 저 풍일세계 가운데에서 이름이 적멸행이며, 이름이 출리행이며, 이름이 근수증(勤修證)이며, 이름이 안은거(安隱去)이며, 이름이 무량수이며, 이름이 선료지(善了知)이며, 이름이 구경도이며, 이름이 난수습(難修習)이며, 이름이 지피안(至彼岸)이며, 이름이 무능승(無能勝)이니라."
☞ 해설
고멸(苦滅)이라 하는 것은 고가 무쟁(無諍) 번뇌(煩惱)가 됨이라. 혹(惑)을 없애 버리고 오직 청정을 닦아서 간직함이 고를 여읨이라 합니다. 집성제는 모든 고의 모집(募集)이니 고통을 여의는 것은 일체 세간의 일어나는 일들은 다 모여서 생기는 것을 알아서 관(觀)하여 아는 것을 말함이라.
목수가 지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목수는 흙이 필요하고 나무가 필요하고 못도 필요하고 시멘트도 필요하고 온갖 것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집은 원래 없던 것이었으나 목수가 여러 가지로 모아서 집을 만들었으니 그것은 모았다는(集) 것을 아는 것입니다.
고집멸도를 왜 사성제라 하는가. 네 가지이기 때문에 사(四)요, 성(聖)이라는 것은 성스러움이니 이것은 참으로 깨달아야 될 문제이기 때문에 성이라 한 것입니다. 만약 부처님이 이것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 나아가야 할 지를 모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聖)이라 한 것입니다.
제(諦)란 음으로는 체(諦)이나 여기에서는 음운상 제라고 읽는데, 체(諦)는 진실한 것, 또는 진리를 말합니다. 범어로는 Satya라 하며, 유일한 진리를 체(諦)라 하는데 사제(四諦) 또는 사성제(四聖諦)라고도 합니다. 앞의 둘의 고(苦)와, 집(集)은 미망에 들어 있는 중생상의 모습이며, 뒤의 멸과 도는 깨달은 증오(證悟)의 세계입니다.
♧ 조문도석사가야(朝聞道夕死可也)
미국의 인류학자 앨빈 토플러는 말하기를, "인류가 살기 위하여는 다시 정신적인 삶을 찾아야 된다. 만약 정신적인 것을 찾지 못하면 인류는 멸망할 지도 모른다." 하였습니다.
지구과학자들은 지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약 45억년, 그러니까 지구의 나이는 45억 살이라고 합니다. 또한 달의 나이도 지구의 나이와 비슷하며, 달이 지구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해왕성이라든가 토성·수성·금성·화성들도 모두가 지구의 나이와 같거나 훨씬 이전이거나 또는 10억 년 정도밖에 안 되는 것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구만이 생물이 살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환경 덕분입니다. 적합한 기후와 토질, 수분과 온도 등 생물이 살 수 있는 조건들을 지구는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의 생물 가운데 동물이 살기 시작한 것은 수억 에서 수십억 년을 흘렀습니다. 그런 가운데 인간은 없었다고 합니다. 미생물이 처음으로 살았으니 미생물이 지구를 지배하는 그런 세상인 셈입니다. 미생물은 생명체는 생명체이되 아직 생명이라 말할 수 없는 그런 생물체를 뜻합니다.
그 후 한량없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십억 년 정도는 흘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생물들만이 사는 세상에 비로소 생물이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세포생물이 아니라 단세포적인 생물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겨우 녹말을 만들어 내고 색소가 있는 그런 것들이 살면서 또 수 억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지구는 홍적기, 또는 시생대 그리고 빙하기를 거쳤습니다. 빙하기도 제 1, 제 2의 빙하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지구는 아무도 없는, 그러니까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수십억 년을 훌쩍 보낸 것입니다.
그 후 지구에는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산소가 발생한다든가 이산화탄소가 생겨난다든가, 디옥시리보핵산(DNA) 리보핵산(RNA)의 발생이 그것입니다. 왜 이런 물질이 생겨 났는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은 생명공학도가 모르는 것이나 내가 모르는 것이나 여러분들이 모르는 것이 다 똑같습니다. 다만 아는 것은 오래 전에 지구가 만들어졌다는 것만을 압니다. 그것도 지구가 왜 만들어져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지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와 질량, 공전속도, 뭐 이런 것들은 대략 과학자들이 다 알아냈으나 왜? 라는 것에 있어서 모르기는 우리와 똑같습니다. 달의 질량과 화성, 목성, 수성 등 모든 별들의 질량과 자전과 공전의 주기가 각각 다릅니다.
우리들이 사는 이 지구상에 그래도 생명체다운 생명체가 살게 된 것은 쥬라기 시대부터입니다. 시생대는 말 그대로 겨우 생명이 살던 때를 말합니다. 쥬라기는 무엇인가. 그 시대는 '공룡의 시대' 라고도 하는데, 어마어마한 몸집을 가진 동물이 생겨나서 지구를 지배하던 시대입니다. 그 후 얼마를 지나다가 하늘을 날 수 있는 동물도 생겨났습니다. 또 얼마를 지나면서 아마도 거의 같은 시기에 네발 달린 동물이 지구를 지배하는 그런 시기가 왔습니다. 빙하기를 거치면서 또 몇 억 년이 지나면서 그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구에 생명체가 두 번이나 또는 세 번 정도 모두 죽고 마는 수난을 겪어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에 다시 생명체들이 태어났는데 그 때는 조금 완벽에 가까울 만큼 발전된 시기가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흘렀을까, 수 억에서 수천만 년을 그렇게 또 흐르면서 지구는 생물들이 잡아 먹고 잡아 먹히는 일들로 얼룩지게 됩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 지는 몰라도 만든 자가 있다면 그것은 실패작인 셈입니다. 아무도 만든 자가 없다면 왜 그런 먹이사슬이 생겨났을까. 아무도 그것을 모릅니다.
동물이 생겨나서 활동을 하는데 그 중에 인간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인간들은 벌거숭이 였습니다. 온 몸에 털이 나고 얼굴은 그렇게 잘 생기지도 못하고 매일 먹고 사는 일이 이만저만 고생이 아닌 그런 동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집단을 좋아했고 본능적으로 자기를 방어하는 기술을 습득할 줄 아는 동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날 산불이 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산불로 타 죽은 다른 동물의 시체를 뜯어 먹어보니 날 것 보다는 훨씬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불을 얻기 위하여 온갖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불을 만들 줄 아는 동물이 되었는데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 이는 굉장한 발전입니다.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자기방어의 일환이며 불을 만들어 낼 줄을 아는 것은 하나의 생존방식의 터득입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동물을 잡아서 구울 것인가.'
그러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풀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고. 풀을 뜯어 먹다가 독이 있어 죽은 자가 수없이 생겨나면서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풀을 알아냈습니다. 또한 나무열매를 따먹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나무열매를 따먹다가 다른 동물에게 잡아 먹히는 일이 허다하니 망을 보고 대처하는 일을 더욱 열심히 하지 아니 하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를 흘렀을까. 지구에는 망고 나무나 바나나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환경이 되고 모든 것이 풍성하게 되는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인간이 살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이 된 셈입니다. 인간들은 더욱 교묘히 동물들을 사냥하는 비법을 터득하기 시작할 때 이미 말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말의 수단은 인간들이 사는 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말을 하다가 그들은 말의 약속 같은 것을 정하게 되고 그리고 인간이 살 수 있는 움막 같은 것을 짓고 다른 맹수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를 강구할 줄도 알게 되면서부터는 대장이 나타나고 집단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가 흐르고, 인간은 또 글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되고 이렇게 정신적인 것을 생각하게 되고부터는 정신적인 사람이 우대 받는 시대를 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시대를 지나 우리들은 지금 물질의 시대에 삽니다.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국민소득 2만 달러니 3만 달러니 하면서 물질을 추구하는 데 열심입니다. 과거는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로 돌아온 것일까요? 동물적인 인간이었을 때에는 물질적이었다가 진보하여 그 후 정신적인 사람이 지배를 하다가 이제는 누가 더 많은 것을 갖는가라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인류가 이 지구상에 태어난 것은 겨우 수백만년에서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천만년을 넘지 못합니다. 모든 생명이 태어난 후 가장 늦게 태어난 것이 인간이라 할 수 있고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인간을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인간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하고 불을 만들고 음식을 만들고 집을 짓고 글을 만들고 하면서 번뇌를 일으키고 번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거듭거듭 발전해 왔습니다. 진보했다는 말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인간은 물질의 동물이 아니라 정신의 동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옛부터 많은 사람들이 도를 배우고 공부하는 것을 중히 여겨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물질을 만드는 일을 공부하는, 정신적인 것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만드는 일을 공부하는 사람이 더욱 존경 받고 두뇌들도 그 쪽으로 따라가고 있으니 큰 문제입니다. 정신적인 것을 쫓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쫓으면서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할까 하는 절박함에 쫓기고 있습니다. 이제 "조문도석사가야(朝聞道夕死可也),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말을 배워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반신반의(半信半疑)
우리들이 무엇을 성공시키고자 한다면,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 아니 됩니다. 확신은 자기 안에 있는 도화선에 불을 당기게 됩니다,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면 도화선은 중간에 꺼지고 말며, 자기 안의 무한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라든가 '글세' 라든가는 나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 주지 못합니다. '반드시' 와 '꼭 할 수 있다'가 그 사람을 성취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바로 인간은 신인(神人)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이 지구상에 태어나서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지혜다운 지혜를 낸 것은 불과 일만 년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확신은 마치 풍선을 부풀게 하는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신인(神人)입니다. 인간은 신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인간이 신입니다. 저 뉴욕에서 런던까지 대서양을 인류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린드버그가 되십시오.
불교를 믿는 마음은 항상 새로워야 하고 '나는 바로 불성을 가진 인간이다' 라고 믿는 것입니다. 불성(佛性)이 무엇입니까. 불성은 바로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저 피안에 인도해 줄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문입니다. 부처님의 법문만이 우리들을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삽니다. 지혜로 산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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