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는 동물은 살아서 일을 많이 하고 죽어서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요리를 해 먹는데, 꼬리는 곰탕, 창자는 전골, 머리는 국, 뼈다귀는 탕, 가죽은 구도나 북, 갈비, 안심, 등심,제비츄리 등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서민적인 음식이 바로 소의 피와 내장으로 만든 "선지해장국"이다. 소뼈를 고아 낸 국물에 선지와 양지, 내장, 우거지 등을 넣어 끓인 뒤 뚝배기에 담아 먹는 해장음식인데 술 마신 다음날 먹으면 속이 풀리고 숙취가 가신다고 하여 인기가 대단하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선지해장국으로 유명한 청진옥이라는 식당을 소개한다. 이 식당은 1937년 처음 문을 열었고 3대에 걸쳐 성업 중이라 하니 자그마치 70년이나 된 식당으로 해장국의 메카 청진동에서도 당연히 터줏대감 노릇을 한다. 서울의 졸로에 위치한 청진동은 조선시대 한성부에 속했던 여? ?방(方)들 등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징청방과 수진방에서 각각 이름을 따 와 현재의 지명이 되었으며 의금부가 있던 자리이며 조선 말기에는 고관대작을 상대하던 기생들이 살던 기생촌으로 유명했다.
청진동은 북한산에서 남진한 용맥이 북악산으로 솟기전, 한 줄기 용맥을 삼청공원 쪽으로 가지 쳤고, 이 지맥이 다시 한가닥의 낮은 구릉을 남진시켜 청계천을 만나 지기를 응집한 평지룡이다. 또 청진동은 청운동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삼청동에서 흘러온 계류를 만나 마치 옥대를 허리에 찬듯이 금성수법으로 청계천에 합류되니 이런 물길을 가진 터라면 재물이 많아 부자가 난다.
청옥은 종로1가와 종로구청을 잇는 좁은 도로 중 서울관광호텔과 연이은 자리에 위치하는데, 북동방은 신진장이란 여관 건물이 뒤를 받쳐주고, 좌측에는 2층 상가 건물이, 앞쪽에는 고층의 삼공빌딩이 가로 막아 사방에서 청진옥 건물을 보호해 주는 형세이다. 해장국으로 유명한 이 도로가 예전에 피맛골로 불린 배경에는 원래는 고관들이 행차를 피하기 위해 생긴 뒷골목길이란 뜻이나, 어찌 생각하면 꼭 '소의 피 맛이 좋은 터' 즉 선지해장국이 유명한 골목이란 뜻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청진옥은 좁은 피맛골목 내에서 유일하게 앞마당을 가진 서울 관광호텔과 삼공빌딩이 우측과 전면에 자리해 식당 앞에 자연스럽게 기가 모이는 여유 공간을 넓게 가질 수 있었다.
서울 세종로에 있는 교보빌딩에서 종로를 따라 동쪽으로 걷다보면, 종각을 조금 못미쳐 농협이 나타난다. 농협 건물을 끼고 좌해전해 좁은 도로로 접어들면 곧 서울 관광호텔이 우측에 보이고, 그 건물 앞쪽에 '원조-청진옥 해장국' 이란 입간판이 내 걸린 2층의 허름한 흰색 건물이 나타난다. 1층은 출입문과 유리창이 도로를 향해 나있고, 2층은 삼각형의 창 지붕을 얹은 6개의 창문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이 집이 선지해장국으로 유명한 '청진옥' 이다. 건물 1층은 홀과 방으로 꾸며져 있고, 2층은 연회석이 있는 건물인데, 1959년에 옛집을 헐고 2층으로 신축한 것이라 한다. 청진동에는 청진옥 뿐만아니라 청일옥, 따로해장국전문집인 흥진옥 등이 있고, 1970년대에는 15~16 곳이나 해장국 집이 번성했다고 한다.
출입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 왼쪽의 카운터에서 젊은 주인이 '어서 오세요' 인사를 건넨다. 이 사람은 청진옥을 3대째 대물림하고 있는 최준용씨이다. 청진옥은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최동선씨(1984년 작고)가 처음 청진동에서 개업을 해 서민들의 속을 시원스레 풀어주었고, 1984년 그가 작고하자 부인인 이간난 여사가 맡아 운영했다. 그리고 슬하에 2남2녀의 자식을 두고 1987년 부인마저 돌아가시자, 장남인 최창익 씨가 직장인 시사통신사를 그만 두고 2대 주인이 되었다. 차남인 최창혁 씨 역시 청진옥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청일옥'이란 해장국집을 개업해 분가하였다. 그리고 2005년 2대 주인이 별세하자 그의 둘째 아들인 최준용 씨가 현재 3대에 걸쳐 운영 중이다. 식당 안쪽의 처마에는 창업주 최동선 씨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있는데, 사진 아래에는 가! 슴 뭉클한 유훈이 적혀있다.
'손님들이 인정해 주는 청진옥의 맛과 전통을 위해 국물은 절대 안 불리고 양념도 진짜로만 쓰며 우리 집 식구들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정성껏 국을 만들겠습니다.'
선지 해장국은 24시간 소뼈를 푹 고아낸 국물에 커다란 선지와 소양지, 소내장, 우거지 등 각종 재료를 넣고 뚝배기에 담아내는 음식인데 담백하면서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해장국은 본래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으로 출발했는데, 그 역사는 조선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종로 구청 부근에는 무악재나 동대문을 넘어와 나무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고, 새벽에 나무꾼을 상대로 술국집이 청진동 일대에 들어서면서 해장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청지옥도 처음에는 손님에게 국밥과 술국을 내놓았고, 술국은 안주로 생각해 공짜로 주었는데 해장국이란 말은 나중에 썼다고 한다. 근, 현대에 들어서는 밤새워 술을 마시며 인생을 토론하는 지식인들의 사랑방 역할도 담당했다. 왜냐면 해장국은 요기도 할 수 있고 술과 함께 먹기도 하는데, 알칼리성 식품에 가깝기 때문에! 소화흡수가 빠르고 과음으로 지친 속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소내장, 양곱창, 선지, 양지, 우거지, 콩나물, 마늘, 파, 등을 넣어 국물이 얼큰한 선지해장국은 금세 잡은 소 피를 한번 삶아두었다 우거짓국에 넣어 끓인다. 우거짓국에는 식이 섬유가 풍부해 굳이 선지를 넣지 않아도 소화를 돕고, 거기에 철분과 단백질이 풍부한 선지가 들어가면 영양도 두 배, 해장도 두 배의 효과를 낸다. 그런데 서지는 워낙 부드러운 음식이라 소화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선지의 단백질이 분해될 때 생겨나는 펩타이드 성분은 해독 작용이 강해 술독을 몸에서 빼내준다.
식당 안은 방과 홀로 나뉘어져 있는데 VIP를 모시는 특별한 공간은 없으며 의자는 여러 사람이 걸터앉을 수 있게 가로로 길게 만든 걸상이 놓여져 있다. 자리를 잡은 뒤 등받이조차 없는 의자를 타고 앉으면 주문을 받는데, 해장국과 따로국이 보통과 특별식으로 구분되어 있다. 해장국은 국물에 밥을 미리 말은 것이고, 따로국은 굴물과 밥이 별개로 제공되는 것이 다르다. 주문을 하자 1분도 못되어 해장국이 나오는데, 반찬은 약간 시큼한 깍두기가 전부이다. 뚝배기에 담긴 해장국 한 그릇에 작은 접시에 담긴 깍두기가 식사 메뉴의 전부이니 뭔가 단출하다 못해 홀대를 받는 다는 서운함을 지울 수 없다. 김치는 달라고 부탁을 해야 가져 다준다. 하지만 일체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된장으로 맛을 낸 해장국은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좋아 금방 식욕이 당긴다. 청? 貶좆〈?선지해장국 외에도 새벽에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새벽 따구국, 수육, 빈대떡, 고추전 등 각종 전도 맛볼 수 있어 입맛이 풍성하다.
청지옥의 영업방침은 '년중 무휴, 24시간 영업'이다, 그것은 70년이란 식당의 역사만큼 온갖 사연을 가진 손님들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찾아주기 때문에 그들과 애환을 함께 하고자 한 창업주의 결심이었다. 그렇지만 통행금지가 있을 때는 밤12시까지 영업을 했고 통금 해제까지 새벽 네 시간은 공백이 있었다. 정부의 퇴폐업소 단속에 걸린 적도 있었는데, 해장 국밥은 퇴폐음식이 아니자만 막걸리등 주류를 파는 것이 불법에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풍을 이어받아 이간난여사는 유언으로 '자신의 죽음을 숨기라'라고 부탁하면서 상중에도 식당의 문을 닫지 못하도록 당부하였다. 그래서 발인 때만 문을 잠깐 닫았다고 하며, 명절 때도 물론 평상시처럼 장사를 한다. 청진옥은 오직 해장국이란 한 가지 메뉴로 장사를 해 왔고, 경기가 불안하다고 하여 다른 메뉴로 음식을 ! 바꾸거나 또는 업종을 변경하겠다는 생각은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단 한사람의 손님이 오더라도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청진옥으로 소문났고, 오늘날 우리나라 현대사와 그 시간을 함께 한 문화재 수준의 식당이 된 것이다.
해장국을 받아들고 뚝배기 안쪽을 살펴보니, 맑은 소뼈국물에 우거지, 콩나물, 양곱창, 선지, 마늘, 파 등과 걸쭉하게 담겨져 있다. 우선 후추를 적당히 치고, 고추 다데기를 넣어 풀어주니 약간 붉은 빛이 돌면서 간이 알맞게 석였다. 그 다음은 숟가락, 젓가락이 가는 대로 밥과 건더기를 번갈아 가며 떠먹고, 목이 마르다싶으면 국물을 먹는 마지막 국물 한 모금까지 맛이 개운하다. 해장국 맛의 승부는 쇠뼈 국물을 어느 정도의 화력으로 우려내느냐와, 우거지나 집에서 담근 된장을 얼마만큼 푸느냐에 좌우되는, 현재는 세명의 주방장이 교대로 가마솥을 지키고 있으며, 십 년이 넘는 노련한 종업원들이 성심으로 그들을 돕는다고 한다.
선지해장국의 선지에는 철분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우거지와 무, 콩나물 등은 비타민과 무기질, 펙틴, 섬유소가 풍부해 피로한 몸에 활력을 주고 주독을 풀어준다. 그리고 콩나물 속에 함유된 아스파라긴은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생성을 돕고, 또 숙취에 탁월한 효능이 꼬리 부분에 많다고 한다. 하지만 선지는 콜레스테롤 함량이 많아 많이 섭취하면 변비가 염려된다고 한다. 가격은 7~8년째 그대로인데, 해장국 보통이 5,000원, 특식이 6,000원이며, 따로국은 보통이 5,500원, 특식이 6,500원이다. 새벽 따구국은 15,000원이고, 빈대떡은 10,000원인데, 인심이 후하기로 소문난 집인 만큼 먹다가 국물이 모자라면 얼마든지 더 준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풍부한 영양과 푸짐함은 해장국을 즐겨 찾는 사람들에게 더 할 나위 없이 만족감을 선사해준다.
속을 푼다는 해장국은 몸에 해로운 독을 속히 제거하고 안주로 먹은 음식을 빨리 소화시키는 작용이다. 술 마신 다음날 속이 쓰린 것은 독한 술이 위장으로 들어가 위염을 일으키고, 이것이 반복되면 위궤양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음했다면 속을 뒤집어 줘야 하는데,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고 배설하면 숙취도 함께 사라진다. 해장 음식에는 선지해장국, 콩나물국밥, 복어탕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소화를 돕고 해독 능력이 뛰어난 식품을 재료로쓴다. 그래서 술을 먹은 다음날 이런 음식들을 먹으면 알코올이 빨리 분해되고 소화가 촉진 되어 배설을 돕는다.
선지해장국은 먼저 골수가 없는 뼈를 푹 고운 뒤 국물을 체에 밭쳐 맑은 국물을 만든다. 풋배추를 데친 것, 시래기 삶은 것 등을 삶아놓고 국이 끓을 때 큼직한 숟가락으로 선지를 떠 넣고 국을 끓이면 맛이 잘 어울린다, 해장국은 한국 특유의 서민 음식의 하나로, 애주가들이 숙취를 푸느라고 아침에 마시던 것이 요즘은 안주 겸 아침 식사로 정착되었다, 청진옥이 한국의 대표적인 해장국 집으로 소문이 나자 전국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들도 고국을 찾을 때면 꼭 찾아와 포식한다고 하는데, 주인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손님은 전남 지사를 지냈던 이을식 선생이다, 그는 1947년 김구 선생을 모시고와 해장국을 들게 했는데, 그 후로 김구 선생이 가끔 드나들었다고 한다. 해방 전에 이광수, 최남선 등 문인들이 자주 찾았고, 김정구, 현인 등 가수들도 소주 한 잔에 해장국을 들! 면서 피로를 풀었다. 식당 입구에는 1962년 배우 엄앵란에 얽힌 조선일보 기사가 스크랩되어 붙어있는데, 촬영으로 밤을 새우고 이른 새벽에 먹는 해장국 맛이 천하일미라는 것이다. 가수 조영님과 코미디언 이주일 씨도 오랜 고객의 명단에 올라있고, 세검정에서 왔다는 60대 후반의 한 남자는 '이 집에서 해장국을 먹은 지 아마도 20~30년은 됐을 것입니다. 냄새가 없고 시원하며 입맛에 맞아 가끔씩 찾는다.'라고 말했다.
해장국에는 70년 노하우가 숨어있다. 청진옥 해장국이 기름기도 없고, 느끼하지도 냄새도 나지 않는 비결은 다름 아닌 음식에 대한 정성이고, 다음은 식재료를 외부에서 납품받거나 위탁하지 않고 주인이 직접 청량리 시장에 나가 골라오기 때문이다. 선지도 식감이 좋고 고소한 맛을 내는 찰선지만을 고집하는데, 예전에는 마장동 도살장에서 서지를 가져왔다. 하지만 현재는 도살장들이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 오산에 있는 도살장에서 구해온다고 한다. 출선지란 물을 섞지 않고 원피만을 받아 막걸리로 발효시킨 선지를 말한다. 여기에 전통 방식대로 큰 가마솥을 이용해 사골과 양지, 소 등뼈, 양을 넣어 12시간 이상 고아 육수를 만든 뒤 우거지, 콩나물, 대파, 쪽파를 듬뿍 넣어 다시 끓여낸다. 이때 불조절도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 최씨는 '이문을! 남기기 위해 싼 재료를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식구가 먹는 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정성껏 만들고 있다'며 '연중 24시간 영업을 하다 보니 솥에 국물이 마르지 않고 불리지 않아 항상 좋은 품질을 유지 할수 있다.'라고 하였다.
선지 해장국을 만드는 과정는 우선 선지를 뜨거운 물(90도)에 큼직하게 떠 넣어 30분간 익히는데, 절대 끓이지 말 것이며 서서히 익혀야 한다. 그래야 속까지 골고루 익이며, 만약 끓이면 같은 딱딱해지고 속은 설익어 비린내가 난다. 무 시레기는 연하게 익을 때까지 삶아내는데 소다를 넣어 삶으면 좀더 빨리 삶아진다. 그리고 소 지방을 달군 냄비에 넣고 볶아서 기름을 만들어 놓고, 소고기는 소금간을 약하게 한 물에 1시간정도 삶아 식힌다. 소고기 삶은 물은 육수로 쓴다. 해장국에 들어가는 각종 채소도 맛과 영양에 중요하다. 애기 배추는 살짝 대쳐서 길게 찢어 놓고, 무는 얇게 썰어 놓는다. 쇠뼈는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다음 냄비에 물을 충분히 붓고 푹삶아 뽀얗게 국물이 우러나올 때까지 끓여 준비한다. 쇠뼈를 삶은 국물에서 건져내고 된장을 체에 걸러 넣고 끓? 見? 우거지는 푹 삶아 마늘, 고춧가루, 후추에 무쳐 놓고, 콩나물은 꼬리를 다듬고, 대파는 콩나물 길이만큼 썰어 준비한다. 냄비에 국물이 끓으면 콩나물과 준비된 우거지를 넣고 끓인 후 대파를 넣어 다시 어우러지게 끓여준다. 콩나물은 전문 업자가 새벽마다 매일 납품하며, 배추우거지는 청량리 야채 시장에서 주인이 직접 눈으로 골라 사와 바로 삶는다. 어우러진 국에 응고된 선지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고 맛을 낸뒤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그릇에 담아낸다.
청진옥이 입지한 정진동은 조선시대에 임금의 어명을 받들어 죄인을 신문하던 의금부의 뒷골목이다. 의금부는 현재 제일은행 본점 자리에 있었는데, 이곳은 대역죄인을 다스리던 곳이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고 그래서 언제나 원혼이 떠도는 곳이었다. 1987년 신축한 제일은행 건물은 ' 옛 의금부 터라 원혼이 서린곳'이라 해외 매각1호 은행으로 거론되었다. 애기의 진원지는 금융감독원인데, 이헌재 부총리는 지난 98년 "감독기관에 딱 맞는 명당이지만 은행 터로는 좋지않다"며 제일은행 측에 매각을 요구했다. 하지만 제일 은행은 이를 거부했는데, 사실 제일은행 본점은 조선시대 의금부 자리였으며 일제 치하에선 종로 경찰서가 위치해 터가 넨 곳이다. 하지만 선지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해장국은 어차피 피 비린내가 가까이 나는 곳이 입지로? ?제격인데, 서울에서 청진동 말고 명륜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서울 명륜동은 응봉 아래 위치하는데, 매는 육식을 주로하는 새이다. 그래서 지덕을 발동시키기 위해 한양 밖의 푸줏간을 이곳으로 옮겨와 문묘제사에 바치는 고기를 파는 푸줏간이 많았다고 전한다.
청진옥이 입지한 터는 우선 좁은 도로 내에서 우측과 전면에 숨이트이는 여유 공간이 있어 생기가 응집될 수 있는 조건이 되고, 또 사방에서 다른 건물이 청진옥의 건물을 보호하는 형세를 취하고 있다. 우측에는 서울관광호텔이, 앞쪽에는 삼공공빌딩이 버티고 있어 청진옥 건물을 사방에서 보호해 주는 형세이다. 하지만 앞산의 높이는 높으면 눈썹이고 낮으면 심장 사이가 적당한데, 아산에 해당하는 삼공빌딩이 눈썹보다 높은 압혈의 기가 있어 흉하다. 풍수는 안산이 압도하면 장님이나 불구자가 태어난다고 한다. 청진옥의 주출입문은 건물 전면의 중앙이 아닌 우측에 치우쳐 현관을 냈는데, 이것은 집을 두 동강으로 갈라놓지 않아 길하다. 그리고 간판에 '원조-1937년 개업'이란 글자가 써 있어 오래되고 유명한 식당이란 기를 사람들에게 심어주며, 식당 안에(해장국) 부? ?원조집 지정패를 걸어두어 신뢰를 높였다.
현관은 그 집의 얼굴로써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니 현관은 밝고 깨끗해야 복이 들어온다. 따라서 조명을 밝게 하고, 신발들은 가지런히 정돈하고, 바닥은 청소를 깨끗이 하거나 고급스런 매트를 깔으면 길하다. 또 우산이 쓰러져 있으면 흉하고, 죽거나 시든 나무와 꽃을 두면 음기를 불러들여 흉하다. 청진옥 현관은 문 위에서 형광등이 밝게 내려 비추도록 해 입구가 환하며 밝아 생기가 강화되었다. 식당의 공간중심에서 현관이 속한 방위는 신방(申方)이고, 계산대가 위치한 장소는 미주(未主)이다. 그리고 주방의 출입구는 간방(艮方)이다. “양택삼요”에 따르면 계산대는 곤문곤주(坤門艮主)의 복위택(伏位宅)이라 ‘초년에는 부를 누리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주방는 곤문간조(坤門艮灶)라 생기 부엌이라 길하다. 나아가 찬을 저장하고 내놓는 찬방은 ? 旋?丑主)라 역시 곤문간조(坤門艮灶)라 생기택에 해당되어 길하다.
집의 외부 환경을 풍수적으로 살피는 가상(家相)에서 청진옥은 벼랑 아래의 집이 아니라 길하고, T자형의 막다른 집이 아니라 길하고, 대문 앞에 큰나무가 없어 길하고, 북서방에 큰 건물이 있어 길하고, 전저후고의 집터라서 길하다. 식당 내에는 그동안 매스컴에 보도된 것들을 스크랩이나 액자에 담아 전시했는데, 모두 청진옥이 대를 이어 맛을 전하는 뼈대있는 식당임을 알리고, 나아가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사들이 음식에 대해 예찬한 글들로 이것저것을 읽다보면 재미도 있고 또 음식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청진옥 내부와 외부 환경을 풍수적으로 살펴본 결과 이 집이 줄을 서야 밥을 먹는 유명한 식당이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청진동은 예전 피맛골에 위치하는데 피맛골은 ‘소의 피맛이 좋은 터’ 즉 선지해장국이 유명한 골목이란 뜻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2. 청진옥은 좁은 골목 내에서 유일하게 여유 공간이 있는 곳에 자리해 생기가 모일 수 있다. 3. 신진장이란 건물이 뒤를 받쳐주고, 좌측에는 2층의 건물이, 우측에는 서울 관광호텔이, 앞쪽에는 삼공빌딩이 있어 사방에서 보호해 주는 형세이다. 4. 현관의 조명을 밝게 해 출입문에 항상 생기가 느껴지도록 하였다. 5. “양택삼요”로 보아 계산대, 부엌, 찬방의 위치가 복위택과 생기택으로 길한 곳에 자리하였다. 6. 가상에서 특별히 흉한 점이 없다는 것은 이 집에 어떤 흉한 징조가 서려 사람의 마음을 불안케 하는 요소가 없다는 뜻이다. 7. 벽마다 가득 찬 빛바랜 사진과 기사들은 이집이 오래되고, 진실되게 장사를 하며, 맛이 좋다는 신뢰를 손님들에게 무언의 기로 전달해 준다. 8. 하지만 전면의 삼공빌딩이 압혈로 버티고 있는 것은 비보의 지혜를 기울여 방살(放殺)해야 한다.
출처: 대동풍수 고재희 원장의 줄을 서야 밥을 먹는 식당과 풍수(2008년 1월 27일,대동풍수지리학회)
이승노 회원편
- 매곡 경매연구소/풍수지리연구소 소장 - 씨유부동산사무소 대표 공인중개사 - 서울 신도림 대한고시 등 각종 학원 경매교수 - 서경대 풍수지리 석사과정 - 저서 :실전 경매실무 1.2.3 ( 대한고시연구원 출판사 ) - 굿옥션 토론방에서 활동(id:snyh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