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39보> - 중국전통놀이 콩주(空竹) 배우기
이번 학기가 벌써 중국어를 공부하게 되는 3학기 째가 되었다.
벗씨보다 7주 먼저 상하이에 들어온 나는 혼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난 학기와는 조금 다르게 오전에 듣기 공부, 오후에 또 듣기 공부, 그리고 저녁에도 또 듣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번 학기에는 어쨌든 말하기와 듣기가 자연스럽게 되어야 한다는 다부진 각오를 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주가 지나 이발소에 가서 머리도 깎아 보고, 또 한 주가 지나 슈퍼마켓에 가서 계란을 사 보고, 그리고 또 한 주가 지나 KFC에 가서 닭고기 햄버거 세트를 주문해 보아도, 말하기와 듣기 실력은 영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머리 깎은 모습이 한 번도 마음에 든 적이 없었고, 신선한 계란을 산다는 것이 우리 한국인은 먹을 수 없는 오리 알을 사 왔고, 그리고 햄버거 세트는 늘 맛없는 것을 고르게 되었으니깐.
이럴 때면 나는 늘 한국에 있는 벗씨한테 혹은 일본에 있는 큰아들 다래한테 하소연을 하곤 했다.
“나는 도저히 안 되는 것 같아. 아직 머리 하나 내가 원하는 대로 깎을 수 없고···. 계란을 산다는 것이 먹지도 못 하는 오리 알(피단, 皮蛋 - 향료를 넣어 삭힌 것)을 사지 않나···. 게다가 햄버거는 또, 살 때마다 왜 그리도 짠지 원···.”
이러고 나면 늘 그렇듯이 일본에 있는 다래가 제일 먼저 반응을 보내오곤 했다.
“아부지, 밖으로 나가시라니까요. 집안에서 혼자 공부하실 것 같으면 뭣 하러 중국까지 가서 고생해요? 차라리 한국에서 외국어학당 다니시는 것이 훨씬 낫지요.”
(아가씨 같은 아줌마의 묘기. 우리한테 시범을 보이고... 3개월이면 나도?)
물론 이런 말을 들어온 지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나 첫 학기는 학교에 등록했으니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고, 게다가 지난 학기도 과외 선생 두 명이 중국인이어서, 그들과 얘기하는 것만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이나 되었으니까, 굳이 밖으로 나가 활동하는 것이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학기는 낮에도 밤에도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서 중국인과 접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는 어떻게 해서든 밖에서 중국인과 접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 나서기로 했던 것이다.
먼저 1년 전 중국에 왔을 때부터 생각해 뒀던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최근 중국에 한창 퍼지기 시작한 교회에나 나갈까?
아니면 밤만 되면 백화점이나 은행 같은 넓은 광장에서 중국인과 같이 춤이나 배울까?
공원이나 길거리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장기, 카드놀이는 어때?
그것도 아니면 공원 내 연못에서 낚시하는 낚시 모임에 가입해?
아, 또 있지.
어린이보다 어른들이 더 즐긴다는 연날리기 모임···.
나는 별생각을 다 하다가 우리 집 근처에 있는 황싱(黄兴)공원에서 정말 멋진 광경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황싱공원 한편 잔디밭에서 5~60대 어른들이 즐기고 있는 중국전통놀이인 콩주(空竹)였던 것이다.
10여 명의 어른들 - 노인이라고 하기엔 좀 젊고, 그렇다고 젊은이라고 하기에도 좀 나이가 들었다 - 이 어른 두 주먹만 한 노란 팽이 같은 것을 왱왱 소리를 내며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난생 처음 해 보는 콩주 돌리기. 우리의 스승이랍니다. 너무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셔서...)
묘기는 참으로 대단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키만큼의 길이가 되는 질긴 실을 가지고 팽이(콩주)를 돌리기 시작하더니, 순간적으로 회전속도가 엄청 빨라지고, 급기야는 왱왱거리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그리고는 곧장 팽이를 하늘로 잽싸게 집어던졌다가 가뿐하게 받아내고, 이번에는 머리 위, 어깨 위, 혹은 가슴팍 앞에서 멈추었다가는 또 허공에 집어던지고, 심지어는 종아리 밑으로, 혹은 가랑이 사이로 빙빙 돌리며 날렵하게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바로 이것이다’ 하면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이걸 배우면서 중국인과 어울리고 소통을 하면서 생활회화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운동도 되고, 콩주 기술도 배워서 한국에 간다면 자랑거리도 생기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벗씨가 상하이로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벗씨는 나보다 7주나 늦은 지난주에 상하이로 들어왔다.
그리고 입국한 바로 다음날 황싱공원으로 걸음을 내달렸다.
“내가 좋은 걸 찾아 놓았어. 우리 같이 배우며 중국인과 어울려 보자꾸나. 콩주라는 것인데 들어봤어?”
“아니, 처음 듣는 말인데?”
“중국어 진뿌편(进步篇) 말하기/듣기 책에 나와 있어. 수천 년 된 중국의 전통놀이라고···. 일단 가보면 알 거야. 얼마나 재미있다고···.”
(3일 째 되는 날 드디어 하늘로 던지는 기술을... 폼 하나 쥑이죠? 히히)
그래서 안내한 곳이 황싱공원 내 한쪽에 모여서 즐기고 있는 콩주 구락부였다.
이 놀이는 그냥 일정한 공간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나 즐길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잔디밭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기는 봄 날씨인지라 따뜻했고 공원 내 꽃구경 온 사람들도 이 콩주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우리는 정말 멋있게 묘기를 보이고 있는 어른 중 한 명께 접근해서는 묘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붙였다.
“아저씨, 정말 멋진 묘기를 펼치시네요. 우리는 한국인인데요. 이것을 뭐라고 불러요?”
나는 이름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기 위해 운을 뗐던 것이다.
할아버지 같은 이 아저씨는 더듬거리며 말을 붙이는 우리 외국인에게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크게 뜨고는 신이 나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중국전통놀이인 콩주입니다. 튼튼한 실로써 이 콩주를 돌리면 이 콩주 속으로 바람이 들어가서 왱왱 소리를 내죠. 그리고 양팔을 휘저으며 운동하듯이 하면 멋진 묘기가 나옵니다. 이런 것 한국에도 있어요?”
“아뇨, 없어요. 저는 여기서 처음 봤습니다. 우리 부부도 배워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당연하지요. 3개월 정도만 연습하면 저처럼 됩니다. 물론 매일 두어 시간씩 연습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더니 그 아저씨는 저쪽에 있는 아가씨 같은 아주머니를 데리고 오더니 한 번 묘기를 보여 주라고 했다.
아가씨도, 여자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모두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놀이라면서···.
그 아가씨 같은 아주머니의 연기를 보고는 우리가 감탄해서 당장 배우고 싶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콩주 두 세트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건넸다.
콩주 한 세트는 채가 나무로 되어 있어서 110위안이고, 또 한 세트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서 100위안이라고 했다.
물론 교육비는 무료였다.
매일 오후 두 시에서 네 시 사이에 여기 이 장소에 모여서 연습을 하며 즐기고 있으니 시간 맞추어 나오면 된다고도 했다.
(오호, 이분 보세요. 이 분은 작은 항아리, 큰 항아리 할 것 없이 마구 돌립니다 그려.)
우리가 그 자리에서 가장 기초적인 콩주 회전시키는 방법을 배우자, 거기에 모인 회원들뿐만 아니라 구경 나온 사람들조차도 우리의 행동에 관심을 보이며,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이 놀이는 비록 역사가 오래되었긴 해도 그리 보급이 많이 안 되어 있는 편이라, 아직 중국인들한테도 생소한 놀이였으므로, 우리 같은 외국인 부부가 말을 더듬거리며 어설프게 배우고 있었으니 얼마나 신기해했으랴.
우리는 이걸 배우기를 정말 잘 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한테 관심을 가지고 서로 가르쳐 주려고 접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중국인들과 자연스럽게 사귀면서 말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무료하지 않은 중국 생활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중국인들과 접하다 보니 알게 된 일이지만 중국인들은 참으로 착했다.
이 낯선 이방인에게 너 나 할 것 없이 먼저 다가오고,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고, 그리고 먼저 도와주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우리가 소원했던 대로 되어가고 있다고나 할까.
참으로 오래 기다린 보람이었다.
그날부터 당장 연습을 시작한 우리 부부는 매일 오후 시간이 되면 같은 장소에 모여 콩주 연습을 하고 있다.
그래봐야 이제 1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우리는 그들과 친해져 있었고, 우리의 팽이, 아니 콩주 돌리는 솜씨도 점점 향상되고 있었다.
오늘 밤 당장 우리 아들한테 전화해서 자랑부터 해야겠다.
드디어 아부지, 어머니가 중국인과 어울리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3개월 후 우리나라에 돌아가면 멋지게 선보일 우리의 콩주 묘기를 기대하라고···.
2011년 4월 4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참고>
멋진욱 중국 상하이 직통 전화 : 159-0042-7896
한국휴대폰 요금 정도로 싸게 전화하는 방법 : 1688-0044 연결후 86-159-0042-7896-# 하면 됩니다.
그래도 연결이 안 되면 한국 로밍폰 011-530-1479로 문자 주세용.
비용 때문에 전화는 못 받아용.
제가 전화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이사님 제가 정말 오랜만에 들렸죠~~ ^^ 자주 방문은 못했어도 맘속에 이사님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오늘도 컴터 끄기 전 생각이 나고... 미루려다가(?) 또 미루면 완죤 ... 얼렁 들렸습니다. ^^
여전히 건강하신 모습, 밝은 모습이시네요~~ ^^
잘 지내세요 ^^
늘 고맙습니다. 제 주위에 손 선생 같은 분이 있다는 것에 너무나 큰 행복을 느낍니다. 우리 항상 이렇게 웃으며 살아갑시당. 히히.
하하하...이사님~~선글라스 낀 모습이 아주 인상적인데요!! 곧 상해가서 콩주 놀이~함 해봐야겠어요~^^
5월에 오는 거죠? 멋진 구경을 시켜 드릴게요. 혹시 5월 첫째 주말에 오면 좋은 구경 더 많은데... 히히.
힝~첫 주에 너무 가고 싶은데..첫 주는 어려울 것 같아요...(셋째주나 넷째 주 될 가능성이 커요...ㅠ.)
기다리겠습니다. 상하이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릴게요. 히히.
학원강의나가게돼 요즘 좀 정신없었어요. 여전히잘지내고계시는군요. 언니에게도 안부를..
바쁜 게 너무나 좋지요. 돈 많이 벌어서 좋은 데 많이 쓰세용. 히히.
ㅎㅎ 형님 중국사람 다되겠습니다
이미 다 되었습니다. 신호등 안 지키고 마구 다니는 것을 보면 말이죠.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