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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암송해야 할 구절들 >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먹고 실행하면서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들은 말씀 따로 행동 따로 인격 따로 다중 인격의 소유자로 살아가는 것을 목도하면 우리는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들은 시중 잡배도 하지 않는 행위와 언어로 소위 교회 생활을 한다! 그들은 양심이 없는 사람인양 그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그들은 확실히 그리스도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닌가?
옆을 보라! 소위 그리스도인들이여! 목사는 돈에 눈이 어두어 사기, 횡령을 일 삼아 구속되고 형을 살고 있으며, 교인들은 리콜라파와 같은 행위로 교회 내의 분파를 일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는가? 그리고 자기 권위만 내세우는 위선자들이 보이지 않은가? 영적 지도자라고 내뱉으면서 성도를 우롱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은 이러한 것들을 미리아시고 경고하고 계신다.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라. ....그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마 7:15-23) 하신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1. 성별하라
고후 6:14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15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임이라.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 것이며 그들 가운데서 다닐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며
18 또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아들들과 딸들이 되리라. 전능하신 주가 말하노라.”고 하셨느니라."
모든 바른 성경를 믿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침을 주신다.
1) 그들을 '주의하라'(롬 16:17),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17절).
이 구절은 위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참으로 위대한 구절이다.
『너희가 배운 교리』란 바로 이 로마서 1장부터 15장까지를 통하여 배운 교리를 말한다. 바울이 로마서 1장부터 15장까지에 걸쳐 언급하지 않은 것이라면 또 모르되, 분명히 언급하고 밝혀 놓은 교리라면 반드시 그대로 따라야지 이에 『역행』함으로써 『분열을 일으키고』 배운 교리대로 행하는 사람들을 도리어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떠나라.』고 그는 충고한다.
배운 교리에 역행한다는 것은 곧 거짓 교리를 퍼뜨리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자들이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그 동기가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데 있음을 우리는 다음 18절에서 본다. 로마카톨릭 미사에서 종이 울리면 신부가 빵 한 조각을 높이 들어올리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하고 읊조린 뒤 그 빵을 위장 속에 집어넣는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소위 “성체 거양”이라는 것인데, 하나님을 자기들의 뱃속에 집어넣는 이런 괴상한 의식이야말로 거짓 교리의 표본이다.
바울은 지금 당신에게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로부터 떠나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잘못된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경계하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목사는 말씀대로 성도를 섬기지 않으며 권면과 교제도 없는 메마른 회사같은 상하 계급이 존재한다? 복종과 비굴만이 존재하는 교회라면 이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2) 그들을 '시험' 하라(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3) 그들을 '판단하라'(마 7:15-16),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라』
4) 그들을 '드러내라'(딤전 5: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책망하여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
5) 그들을 '거절하라'(딛 3:10),
"이단 종파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거절하라"
6)그들을 '꾸짖어라(딛 1:13),
『그러므로 너는 그들을 엄히 꾸짖어 그들로 믿음 안에서 건전해지게 하고』(13절).
여기에서 언급되는 대상들은 그리스도인들임을 주목해야 한다. 바울이 디도에게 이르는 말은 사람들을 엄히 꾸짖어 구원받게 하거나 회개하게 하거나 마귀의 올무로부터 빠져 나오게 하라거나 회심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엄히 꾸짖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안에서” 건전해지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사람들이 “믿음 안에” 있다 하더라도 믿음 안에서 건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은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두 “배교”를 구원받지 않은 자들에게만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13절에 나오는 “그들”을 16절에 나오는 “그들”과 같은 사람들로 묶어 버린다. 분명히 16절에서 말하는 “그들”은 15절에서 “더럽혀진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들을 엄히 꾸짖어』(13절). 데살로니가후서 3:15 에 있는 것처럼 친절하게 대하라고 하지 않았다. 데살로니가전서 4:9에 있는 것처럼 “사랑”으로 하라고 하지 않았다. 갈라디아서 6:1-3 에 있는 것처럼 온유하게 하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비껴가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수입을 걱정하는 사람이고 교인들의 출석, 기부금, 교인들의 등록, 재산 등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엄히”(sharply)라는 말이 나온다(고후 13:10). 엄히 꾸짖는 것은 예리한(sharpened) 무기로(계 1:16; 2:12, 히 4:12, 사 49:2) 꾸짖는 것을 말한다. 이 예리한 무기는 꿰뚫어 피를 낼 목적으로(렘 48:10) 고안되었다. 이 무기는 반박하는 자의 배를 찌를 목적으로(판 3:20-23) 만들어졌다.
7) 그들을 '책망하라'(엡 5:11),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관여하지 말고...』(11절). 일들은 그 일꾼과 연관되며(고전 6:9 참조), 그 일들이 책망받으면(11절), 그 일꾼들도 함께 책망받는다(12절).
8) 그들에게서 '따로 나와라'(고후 6:17),
17절은 교회에 대한 그 명령이다. 그것은 이사야 52:11을 인용한 것으로, 거기서는 성전의 그릇들을 날랐던 구약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이다. 그러기에, 영적으로 볼 때, 그 명령, 곧 『떠나라』, 『나오라』는 명령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것이다. 함께하지 말라! “탈퇴하라!” 교회는 불러냄을 받은 모임이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에게 “들어오라”고 명령하지만, 성경은 “나오라!”고 말씀한다. 그것은 고립주의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분리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따로 있고』(17절).
육체적 성별은 물론, 영적 성별도 있어야 한다. 나는 기독교 주간 학교들에 다닌 적이 있는데, 거기서 남학생들은 다 머리를 깍두기처럼 직각으로 깎아야 하고, 여학생들은 모두 수직으로 쭉 흘러내린 치마를 입고 다녀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마음은 내가 설교했던 차가운 감옥들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종신 징역수들보다도 더 메말라 있었다. 말하자면, 외적인 성별이 영적 성별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을 젊은 설교자에게 좋은 충고를 좀 하겠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설교의 문을 열어주시는 곳마다 설교하라. 남침례교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성결교회, 심지어 카톨릭교회일지라도 만일 주님께서 그 문을 열어 주시면 그곳에서 설교하라. 타협하거나 지름길로 갈 필요가 없는 한 어디서든 설교하라. 그렇지만 어리석어지지 말라. 고의로 죄를 짓지 말라. 지혜를 사용하라. 그러나 어떤 배후조종을 당할 것 같으면, 아예 발을 들여놓지 말라.
타협의 첫 표시로, 신사답게, 그러나 확고하게 말하라. “죄송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에 저는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야 어찌되든 개의치 말라.
본문 17절의 『더러운 것』은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이다(고후 7:1). 거기에는 담배, 알코올, 포르노, 신문지상의 거의 모든 것, 텔레비전 방송의 90%, 기독교 협의회, 목사들의 독선적이며 제왕같은 모습, 성도들의 거들먹거리는 추한 행동과 언어도 포함된다.
9) 그들에게서 '떠나라'(롬 16:17),
10) 그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5절).
예배드리는데 피아노도 있고, 강단도 있고 오르간도 있는데 성령께서는 계시지 않는다. 화려한 성가대도 있고, 강단에서 성경을 손에 쥐고 흔들며 제스처를 취하는 목사도 있고, 찬란한 조명 아래 두 손을 높이 들고 열광하는 회중도 있는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사람들이 만든 조명, 사람들이 만든 TV 카메라, 꾸며낸 웃음, 꾸며낸 악수, 꾸며낸 선수들이 꾸며낸 설교와 조화를 이룬다. 이들은 모래 언덕 위에 너부러진 쇠망치보다 더 싸늘하다. 물론 이들은 말을 할 줄 안다. “하나님께 영광을,” “주를 찬양하라,”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를,” “좋으신 하나님,” “모든 영광을 주님께,” “서로 나눕시다,” “서로 돌봅시다.” 이들은 노래를 부를 줄도 알고, 몇몇 구절들을 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작년에 죽은 새보다 더 싸늘하다.
이들에게는 거리에서 설교할 능력이 없다. 이들에게는 바티칸 조직이 잘못된 것이라고 소리 높일 능력이 없다. 이들에게는 새로 나오는 성서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사실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이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가 될 능력이 없다. 거짓말하지 않을 능력이 없다. 정치 참여를 중단할 능력이 없다.
속이지 않을 능력이 없다. 움츠러들지 않을 능력이 없다. 아첨하지 않을 능력이 없다. 타협하지 않을 능력이 없다. 이들에게는 구원받지 못한 의사들, 변호사들, 은행가들에게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래야 고작 담배를 끊는 능력, 술 마시지 않을 능력, 춤추지 않을 능력이다. 이들의 마음은 온통 시커먼 색으로 도배되었고 자신들이 마치 유명 배우나 되는 듯이 거들먹거린다(행 4:13, 엡 6:10-15 참조).
또한 바른성경이 손에 들려 있다고 모두 성실한 그리스도는 더욱 아니다. 거짓교사나 거짓목자의 혀가 있다면 그 열매를 보고 '돌아서라' 믿음의 행보는 정확히 주님께 향하라!
11) 그들을 '멀리하라'(살후 3:6),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하노니, 무질서하게 행동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라 행하지 않는 모든 형제를 멀리하라.
7 너희가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인지를 너희 스스로가 아나니 우리는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였으며 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먹지 않고, 도리어 주야로 수고하고 애써 일하여 너희 가운데 아무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도록 했노라.
9 이는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요 다만 우리가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하였노라. 11 우리가 들으니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여 전혀 일하지 아니하고 참견 잘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제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런 자들에게 명하고 권하노니 조용히 일하고 자기 양식을 먹으라』.
7구절 모두가 일하는 것과 게으름을 피우는 것과 소문을 내는 자들과 『참견 잘하는 자들』(“busybodies”)에 대한 내용이다(11절). 성경은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롬 16:18)으로 교육받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속이려는 자가 나타날 때 분리하라고 명령할 뿐만 아니라, 본문의 경우에 있어서도 분리하라고 말씀하신다. (롬 16:18의 주석과, 이를 고후 10:10과 행 4:13의 주석과 비교해 보라.)
『무질서하게 행동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라 행하지 않는 모든 형제를 멀리하라』(6절).
그러므로 게으름은 술 마시는 것, 음행, 착취, 간음 등과 동급의 죄인 것을 알 수 있다. (고전 5:11을 보라.) 1964년 이후로 TV나 강연회에서 유명 설교자들이 이런 주제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6,7,11절에서 말하는 『무질서하게』라는 용어는 “고장이 났다”는 의미다. 즉 일하지 않는 자는 망가진 세탁기, 고장난 자판기, 작동되지 않는 발전기와 같다는 뜻이다. 이는 고장난 사람이다.
게으름에 대한 이야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12) 그들을 '집에 영접하지 말라'(요이 1:10),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오되 이 교리를 가지고 오지 아니하면 그를 집에 영접하지도 말고 그에게 문안하지도 말라.』
2. 은혜로 구원
엡 2:8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8절은 성경에서 죄인이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가르치는 가장 친숙한 구절이다. 사도행전 2:38, 마태복음 24:13, 야고보서 2:26, 로마서 8:24은 본문의 조명아래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본문은 신약의 구원을 경험한 신약 이방인 성도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구절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8절). 모든 것이 분명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본문에는 아무런 복잡한 것도 없고, 심오하거나 어려워서 본문을 설명하기 위해 사도행전 2:38, 마태복음 24:13, 야고보서 2:26, 로마서 8:24로 달려갈 필요도 없다. 거듭나지 못한 성경 교사들은 분명한 구절(본문)을 부인하기 위해 즉시 어렵고 난해한 구절로 달려간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항상 행위가 강조되는 구절들에 친근감을 느낀다(계 12:7 참조>.
3. 빛 가운데 행하라
요일 1:7 "그러나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스도인은 이미 빛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가 빛 가운데 있기 때문에 또한 빛 가운데서 행하라는 것이다(살전 5:4-8).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자면,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눈을 눈가리개로 혹은 썬글래스 등으로 가리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피기를 의지적으로 거부할 때만 어두움 가운데서 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현상을 언급하는 것이 요한복음 1:5,9-10이다. 즉 고의적으로 소경이 되는 것이다.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져서 그들의 귀는 듣는 데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그들이 어느 때라도 눈으로는 보지 못하고』(마 13:15).
<한글킹제임스성경>으로 요한복음 9:39-41을 읽으라. 새로운 역본이나 헬라어 교수가 없어도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빛 가운데 행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를 가지는 중에도 죄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주의해서 보라.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그리스도인의 새롭게 된 삶에 적용하면 그 피는 그리스도인을 깨끗게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백 년 전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을 때부터 그 피는 영원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그 피가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생활에서 그를 실제로 깨끗게 하기 위해서 하나의 조건이 있다. 히브리서 9:14에서 이 피를 현재 우리가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함을 주목하라. (히 9:14 참조) 이 구절은 히브리서 1:3의 과거의 정결케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정결하게 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현재적인 정결케 됨은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죄를 자백할 때 그에게 적용된다(요일 1:9). 성경 또한 그리스도인을 죄로부터 정결케 할 수 있다(시 119:9,11). 『이제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 말을 통하여 깨끗해졌느니라』(요 15:3).
이 말씀은 9절이 과거의 그리스도인의 구원이나 정결케 됨이나 깨끗게 됨이나 의롭게 됨이나 구속(골 1:14)과는 전현 관계없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9절은 조건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현재적인 거룩하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9절).
4.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이 있는 칼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
13 그 어떤 피조물도 그분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나니, 오직 만물이 우리가 회계해야 하는 그분의 눈 앞에 벌거벗은 채로 명백히 드러나게 되느니라.
1) 이제 우리는 “기록된 말씀”의 권위에 관한 한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구절을 대하게 되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이다. 특별히 기록된 말씀이 칼로 비유되는 것에 관한 관련구절들은 시편 149:6과 에베소서 6:17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12절). 여기서 “살아 있다.”라는 말은 영어로 “quick”인데 이 말은 베드로전서 4:5에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에서 쓰인 말과 같다. 이와 비슷하게 에베소서 2:1-5에서는 “살리다.”라는 뜻으로 “quicken”이라는 말이 쓰였다. 이 말은 “어떤 것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이 있는 칼 정도가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예리하다. 양날이 번뜩이게 선 칼을 맨 손으로 잡고 장난치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만일 이 칼을 5분 정도만 갖고 놀면 그 손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칼은 잘 쓰게 되면 사람을 살리고 잘 쓰지 못하게 되면 사람을 죽인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신학교에서는 이 칼을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맨손으로 이 칼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손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도 위태롭게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다루지 못하고 마구 휘둘러댈 때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12절). 혼과 영이 분리 될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이 둘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에서도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 바, 혼과 영은 서로 다른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몸과 영혼으로 되어 있다는 이분설은 옳지 않다. 성경은 분명히 인간이 몸과 혼과 영으로 되었다는 삼분설을 말하고 있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한다면(딤후 2:15)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혼은 몸과 같이 생긴 존재이다(창 2;3장 주석참조,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창세기, 1995, 말씀보존학회 간>). 그러나 영은 바람이나 공기 같은 것으로, 형체가 없다(골 2:11 주석 참조,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골로새서, 1996, 말씀보존학회 간>). 누가복음 16:23,24의 지옥에 간 부자의 실례에서 볼 수 있는 것같이 혼은(지옥에 간 것은 그 부자의 혼이다.) 눈과 혀와 입을 가졌다. 그는 눈으로 아브라함과 그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아브라함에게 말했다. 또한 그는 뜨거움도 느꼈다. 즉 혼이란 몸이 갖고 있는 것들을 갖고 있는, 몸과 같은 존재(bodily shape)라는 것이다.
2)『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12절). 하나님의 말씀이 혼과 영을 나눈다는 것은 별 무리 없이 들린다.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의 죽었던 영은 살아나고(거듭남) 그의 혼은 구원받는다. 그러나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른다는 말은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인간의 관절과 골수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갈라지는가? 이 구절은 욥기 40장에 적용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욥기 40:15-19에 연결시킬 줄 모른다.
아무리 헬라어와 히브리어와 라틴어를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구절을 그 관련구절로 연결시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 단어의 헬라어 의미를 아무리 잘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공부하지 않는 한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본문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 적용된다.
욥기 40장을 보라. 『이제 내가 너와 함께 만든 비히못을 보라. 그가 소처럼 풀을 먹는도다. 이제 보라, 그의 강함은 그의 허리에 있고 그의 힘은 그 배의 중심에 있도다. 그는 그의 꼬리를 백향목같이 움직이고 돌들로 된 그의 힘줄은 함께 얽혀 있도다. 그의 뼈들은 강한 놋 조각들 같고 그의 뼈들은 철 빗장들 같도다. 그는 하나님의 길에서 으뜸이며 그를 만든 이가 자신의 칼로 하여금 그에게 다가가게 할 수 있느니라』(욥 40:15-19).
사탄(비히못)의 뼈는 “강한 놋 조각들” 같고 “철 빗장들”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칼이 그에게 다가가 그를 찌른다. 여기서 “그를 만든 이의 칼”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칼이 사탄의 뼈들을 가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 입에서 칼이 나와 원수들을 치신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전혀 어색할 것이 없다(계 19:15).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것은 기록된 구약 성경이었다.)으로 물리치셨다(눅 4:1-10).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찔러 쪼개야 한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칼이라고 부른 이유이다(엡 6:17).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에 그렇게 많은 신학자와 그렇게 많은 원어 학자들이 있었지만, 지난 500년 동안 미국이나 유럽 어디에서도 욥기를 히브리서 4:12 본문의 관련구절로 가져온 저작물은 하나도 없었다.
3)『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12절).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간행동의 동기를 안다. 만약 죄인이 악한 의도로 성경을 다룬다면 그는 말씀에 실족하여 넘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는 학자들이 성경을 다룰 때 그 말씀은 그들을 넘어뜨릴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들을 속이신다. 그들이 악한 의도로 성경을 다룬다면 그들은 결코 성경을 깨달을 수 없을 뿐더러 오류에 오류의 꼬리를 물어 결국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때때로 하나님은 선지자를 속이신다(겔 14:1-11). 하나님이 속이실 때는 그들이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을 때이다. 하나님께서 속이신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속여 그를 파멸시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되이 다루면 하나님의 말씀도 그를 그릇되이 다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속이려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속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혼미케 만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라. 그 말씀이 당신을 다루시는 방법에 두려워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의 판단자가 된다. 그 말씀은 심판날에 죄인을 심판할 것이다(요 12:48).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고, 이 부분은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이 말씀 앞에서 판단받을 것이다. 어떤 개인이든지, 교회든지, 신학교든지 그들이 행하는 것들의 옳고 그름을 이 말씀으로 판단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비추어서 많은 자유주의, 보수주의, 근본주의 학자들과 신학교들을 비성경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든지 그들을 판단할 것이다.
성경은 또한 분별자이다. 성경은 나누고 분리한다(신 32:8, 행 17:26). 성경은 서로 다른 어떤 것도 같게 취급하지 않고 분리한다(왕상 3:9,고전 2:14, 욥 6:30). 어떤 것이 사실인지, 어떤 것이 옳은 교리인지 성경은 스스로 분별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기록된 목적이다(딤후 3:16). 성경 기록의 첫째 목적은 죄인들에게 무엇이 그렇고 무엇이 아닌지 그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5. 하나님은 나를 돕는 분이시다
히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기를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
6. 반드시 알아야 할 말씀
요일 2:15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17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 성경의 가장 위대한 본문 중의 하나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암송해야 할 본문이며, 다른 구절들 전에 암송해야 할 말씀이다.
예상한 대로 88% 부정적인 내용이다.
긍정적인 단어는 영어로 11개밖에 되지 않는다. 즉 80개의 단어에서 오직 11개만 긍정적이며, 이 11개의 단어는 편지에 추신을 달듯이 덧붙여져 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 『사랑하지 말라』 : “도둑질하지 말지니라”와 “간음하지 말지니라”처럼 부정적인 명령이다. 이는 “새 계명”이며(요 13:34), 모세의 십계명 중의 하나가 아니다.
(2) 세상이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왜냐하면 『사람들 가운데서 크게 높임을 받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스러움』이기 때문이다(눅 16:15).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사라져 버린다(고후 4:18). 보이지 않는 것만이 영원하다(히 11:27; 12:26-28).
(3)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기 때문이다.
a. 악하다(갈 1:4).
b. 멸망할 것이다(벧후 3:8-14).
c. 하나님을 반대하고 성경을 반대한다(딤후 4:1-6).
d. 세상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다(요 17:9).
e. 사탄이 통제하고 다스린다(눅 4:6, 고후 4:4).
이는 A.D. 90년부터 현재까지 지상에서 살았던 헌신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세상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뉴스 미디어와 입장이 다름을 의미한다. 1800년 이후로 모든 뉴스 미디어는 세상을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게 제시한다.
『그들은 세상에 속하였으므로 세상에 관한 말을 하나니,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요일 4:5).
설교자들 중 일부는 “성별”과 “정결한 삶”에 대해서 설교하면서도, 그들 스스로는 절대 진리가 상대적이며 최종권위는 그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의 의견들과 선호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듀웨이, 러셀, 제임스, 헤겔, 마르크스, 콩트, 칸트, 아인슈타인, 간디, 아라팟, 테드 케네디, 리 오스왈드, 존 고티, 밥 존스 3세, 프랭클, 융, 파블로, 찰스 스탠리, 해롤드 윌밍턴, 흄, 니체, 제임스 화이트, 알 카포네, 데이빗 코레쉬 등도 동일한 방식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코스모스”(kosmos) 즉 “세상 제도”(world system)이다.
(4)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15절).
위에 필자가 거명한 사람들 중에는 구원받은 배교자들도 있다. 그들은 구원받기 전에도 하나님의 원수들이었고(롬 5:10), 구원받고 난 후에도 세상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원수들”이 되었다(약 4: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내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는 기도하지 아니하고 다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 이는 그들이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니이다』(요 17:9).
『내가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더니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나이다.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옵니다』(요 17:14).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사옵니다』(요 17:16).
『오 의로우신 아버지시여, 세상은 아버지를 몰랐지만 나는 아버지를 알았으며, 또 이들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았사옵니다』(요 17:25).
『만일 누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하고, 또 누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처럼 하라. 이는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권세가 영원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오 느부캇넷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께 담대히 말하나이다』(단 3:16).
(느부캇네살이 세 명의 유대인 청년들에게 그들의 생명이 달린 “민감한 질문”을 했다.)
2) 셈은 『생의 자랑』에 해당한다. 야펫은 『안목의 정욕』에 해당하고, 함은 『육신의 정욕』에 해당한다. “인류의 어머니”인 이브가 받은 시험도 함께 비교해 볼 수 있다. 『육신의 정욕』은 『먹음직하고』에 연결되고, 『안목의 정욕』은 『보기에도 즐겁고』와 일치하며, 『생의 자랑』은 『현명하게 할 만큼 탐스러운』과 관련이 있다(창 3:6).
놀라운 우연의 일치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세 가지 근본적인 죄들은 동양인과 백인과 흑인을 규정한다. 유대인들은 동양인이다. 아랍인들은 반은 동양인이고 반은 흑인이다(이스마엘과 하갈). 인간은 그 인종을 막론하고 세속적이다.
또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과도 일치한다. 『육신의 정욕』 : 『이 돌들에게 명하여 빵이 되게 하라』, 『안목의 정욕』 : 『세상의 모든 나라들과 그것들의 영광을 주께 보여 주며』, 『생의 자랑』 : 『뛰어내려 보라』. 이 세상의 신이(고후 4:4) 우리 주님께서 히브리서 4:15을 성취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3)『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1901년부터 미국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1933년 이후로 특히 1965년을 기점으로 그리스도의 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교회는 세상 제도로 완전히 전향했다. 그리스도인들이 광고하고, 사고 팔고,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형성하고, 권위를 행사하고, 성공을 판단하고,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대하는 모든 면에서 세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다. 심지어 성경을 보는 방식에 있어서도 세상과 일치한다.
배교다. 디모데후서 3:1-8과 디모데전서 4:1-8에 기록된 배교다.
미국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그리스도인들 중 90%가 세속화되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도 본 적 없는 “전문 축자 영감받은 무오한 원본”처럼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하늘 나라, 지옥, 새 예루살렘, 삼위일체와 이와 같은 성경적 계시들은 그들에게 이상적이고 모호한 것이 되어 버렸다.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17절).
또한 세상과 항상 함께 동행하는 동반자인 “정욕들”도 사라질 것이다(벧후 3장). 여기서 “세상”을 특정한 “시대”에 있어서 세상의 “질서”를 말하거나 “지표면”을 의미한다고 성경을 다시 번역한다고 하여도 어떤 차이도 없다. 성경은 둘 다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7절).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이 다음 구절에 제시되어 있다. 바울은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그것을 깨닫기를 기도했다(엡 5:17, 골 4:12).
로마서 12:2에는 하나님의 세 가지 뜻이 있다. 우리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처럼 많은 선한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한 일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 더 좋게 느끼기” 위해 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에 따른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일들을 할 수도 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을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라고 한다. (로마서 12:2 참조)
4)『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 감이라』(고전 7:31). 데이비 크로켓이 누구인가? 그는 사라졌다. 루돌프 발렌티노는 어떤가?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시나트라처럼 여자들을 흥분시킨 자였다. 브론코 내고스키와 짐 똘프는 어떤가? 이들도 사람들의 망각 속에 사라져 버렸다.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이것이 NKJV, ASV, NASV, NIV 등의 200개가 넘는 변개된 성서들이 골로새서 3:1-3에서 “마음”(affection)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생각”(mind)이라는 단어로 대체한 이유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먼저 요한복음 6:29에 순종한다. 그것이 베드로후서 3:9에 나와 있듯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도 그분의 아들을 거부하거나 그렇게 하여 멸망하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산 시대보다 훨씬 더 오래 살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거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영원히 거할 것이라는 말씀은 그가 현재의 하늘과 땅이 없어져 버린 뒤에도 존재할 것임을 의미한다(계 21:1-4). 그는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영원히 거할 것이다(계 21-22장).
7. 헌금
고후 9:7 "각 사람은 미리 마음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1) 『각 사람은 미리 마음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기술적으로 말하면, 베푸는 데 있어 신약적 최소 한도는 없다. 자, 내 말을 오해하지 말라. 나는 십일조를 믿는다. 나는 은혜 아래 있는 신약의 어떤 그리스도인도 율법 아래 있는 구약의 유대인이 하는 만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창 14장)과 야곱(창 28장) 안에서 십일조의 예들을 보여 주셨다고 생각한다. 내가 구원받은 후 주님께서 재정적인 축복을 내려주기 시작하신 것은 십일조를 드린 후부터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해석해 보면, 신약적 베풂은 당신과 주님 사이에 있다.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지 주님과 함께 마음에 결정을 내려야 하며, 주님은 당신과 주님이 그 일을 어떻게 성취했는지에 따라 당신에게 보상해 주실 것이다. 내 생각에, 그 비결은 당신이 얼마나 많이 주고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2)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7절).
이 주석서를 읽는 목사 친구에게 내가 경험에서 나온 좋은 충고를 하나 해주겠다. 십일조를 내라고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말라.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막 8:36)는 말씀을 믿는다는 것을 안다. 당신은 그것을 믿고 있다. 당신은 그 혼이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다는 것을 믿는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7절).
기쁨으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사랑하신다. 기쁨으로 드리는 자는 자기 돈을 아무렇게나 무식하게 던지지 않는다. 그는 드리고 남는 것이 얼마인가에 대한 걱정 없이 주님께 그것을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다.
당신은 헌금함이 옆에 와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지폐 몇 장이 잡혔던 적이 있는가? 당신은 액면 금액이 얼마인지 모르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믿고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을 내는 것이 어떠냐?”
때때로 돈을 드리되, 그것을 장부에 올리거나 세금 면제를 받지 않고 드리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것을 드리기 전에, 주님께서 그것을 어디에 드리기 원하시는지 주님께 여쭈어 보라. 당신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것의 쓰임새에 관해 분명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후 그것에 관해 기록이 남든 안 남든 그것을 내어드리고, 주님께서 그것에 대해 당신을 축복하시는 것을 지켜보라.
3)『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사랑하시지만(요 3:16), 하나님의 사랑에 정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님은 열두 제자 중 주님의 “측근 그룹”으로 셋을 두셨고, 그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었다.
또한 주님께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던』(요 13:23) 특별한 제자가 있었는데, 바로 요한이었다. 주님은 열둘 모두를 사랑하셨지만, 더 친밀한 특정 제자들이 주님과 가까이 지냈으며, 그들은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맛보았던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특별하게 사랑해 주시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돈을 건네 드리기” 시작하라. 당신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여기 있는 것이다.
당신이 기쁨으로 드릴 때 몇 가지 일이 일어난다.
① 당신은 드린 것보다 더 돌려받는다(고후 9:6).
② 당신은 당신이 베풀어 준 사람에게 개인적인 축복이 된다(12절).
③ 당신은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고, 그들은 그것을 기도 응답으로 여긴다(11,14절).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당신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④ 응답된 기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신다(11,12,15절).
4) 위대한 구절들 중 하나에 이르렀다. 이와 어깨를 겨루는 유일한 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로마서 8:28이다.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은 로마서 8:28은 무조건적이고, 고린도후서 9:8은 조건적이라는 것이다.
9. 하나님과 화해하라
고후 5:21『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위대한 구절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에는 살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들을 지셨을 뿐만 아니라(벧전 2:24), 하나님께서 실제로 주 예수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죄와 너무도 밀접하게 동일시되셨기 때문에 주님은 스스로를 사탄, 곧 ‘장대 위의 뱀’으로 비유하신다(요 3:14).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모욕과 수치와 고통을 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을 속죄제로 만드셨다. 주님은 ‘인격화된’ 죄가 되셨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장차 사탄에게 부어질 것처럼 주님께 부어졌다. 예수님께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범해진 (마귀의 죄까지 포함된) 그 모든 죄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신 것이다.
그것이 속죄의 핵심이다. 존 R. 라이스와 커티스 헛슨은 그것을 놓쳤다. 친애하는, 연로하고 자상하고 ‘경건한’ 존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에서 또는 그 후에라도 “그 잔”(요 18:11)을 마시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는 시편 75:8과 예레미야 25:15-17에서 죄에 부어진 하나님의 진노가 “그 잔”으로 정의되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내세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참으로 들이키신 것이 틀림없다(요 18:11). 라이스와 헛슨은 모두 복음주의자였다! 하지만 성경적 “학식”면에 있어서는, 그들 중 아무도 훌륭한 “학생”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셨기에(갈 3:13), 죄 때문에 한 잔 가득 부어진 하나님의 진노를 마셨던 것이다!
여러분! 주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시고 영생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예수님을 당신의 구세주로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그렇게하신 분은 주님을 영접하신 것입니다).
신약적 구원 체계를 설명하고 있는 지극히 간명한 서술이지만, 이것을 지극히 분명하고도 알아듣기 쉽게 천명하고 있는 위대한 말씀이다.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당신이 구원받기 위해 할 일은 이처럼 간단하고 쉽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주이심을 입으로 시인하되 부활의 능력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또 마음으로 믿되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된다.
◆ 요한복음 1:12 말씀은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거듭나 구원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느냐 여부는 당신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되는 일은 결코 아니지만,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시고 아들로 삼아 주시는 것이다.
[출처] < 꼭 암송해야 할 구절들 >|작성자 셋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