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 안동김씨(安東金氏) ★ | ||||||||||||||||||||||||||||||||||||||||||||||||||||||||||||||||||||||
[유래] 시조 김숙승(金叔承)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김은열의 둘째 아들로 공부시랑, 평장사를 지냈다. 중시조(1세) 김방경(金方慶, 충렬공)은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원종 때의 명장으로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하여 정란정국공신으로 벼슬이 시중,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판전리사사, 도원수에 이르고 상락군에 봉해졌다. - 김방경의 향사는 음력 10월 9일에 한다.
[계 파] 김방경의 6세손대에서 21파로 분파되어 그 중 13파만이 현존하고 있다. [ 대표적 인물 ] - 김선 : 김방경의 아들.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를 지냈다. [ 족보 발행 ] - 경진보 : 1580년(조선 선조 13년)
[항렬표]
|
★ 신 안동김씨(安東金氏) ★
[유래] | ||||||||||||||||||||||||||||||||||||||||||||||||||||||||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말 경애왕때 고창(안동)의 성주로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930년(경순왕 4년)에 권행(安東權氏의 시조), 장정필(安東張氏의 시조)과 함께 향병을 모으고 고려 태조를 도와 고창(안동)군에서 견훤을 토벌하여 병산대첩의 전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왕건이 고려를 개국할 무렵 고려에 귀순하여 개국공신이되고 벼슬이 태광태사(太匡太師)가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으며, 조선 중기에 도정을 지낸 김극효(金克孝)를 중시조(1세)로 하고 있다.
[계 파] 지철파, 원수파, 열파 등 3파가 있다.
[ 대표적 인물 ] - '신안동'을 가리켜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이라고 하여 큰 벼슬을 많이 내었다는
[기타] [인구] 21,554명이 있다.(1985년)
[집성촌] 경기도 고양군 중면 일원 충남 논산군 일원
[명인] 조선 중기(광해군) 이후 약 300년 동안에 15명의 정승과 6명의 대제학, 1명의 호당, 1명의 청백리, 9명의 장신(將臣), 그리고 3명의 왕비를 배출하였다. 가문으로서 대명문(大名門)을 이루었다.
[항렬표]
|
|
첫댓글 구안동김씨는 김좌점이라는 한 개인으로 인해 그 후손들이 근 300여년간을 숨을 죽이고 살았던 비운을 겪기도 했고 신안동은 세도정치로 유명한 가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