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을도 갑오년 하지(夏至)치성 도훈:
증산 상제님의 눈물, 나의 눈물
2014. 6. 21(음력 2014. 5. 24 )
올해가 갑오(甲午)년인데, 갑오년 중에 벌써 하지(夏至)가 됐어요. 양기(陽氣)가 가장 충천한 절기이면서 일음(一陰)이 시생하는 절기가 하지 절기예요. 무덥지만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때이고, 그래서 여름의 무더위는 꼭 필요한 거지요.
우리가 드라마를 보던가 영화를 보게 되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인물에 동화(同化)가 되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특히 슬픈 장면이 나오면 자기도 모르게 몰입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고요.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상의 인물에 동화가 유독 잘되는 분이 있어요. 감정이입이 되어가지고 남의 얘기가 아니고 내 얘기인 것처럼. 남자들보다는 여성분들이 더 동화가 잘 되는데, 그 울음을 통해서 우리는 동질화라고 그럴까 동감이라고 그럴까 일체화를 느낀다구요. 가만히 있는 거보다 감정이입이 돼서 눈물을 흘리면 내가 크게 공감한다는 거거든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과연 우리가 상대방의 입장을, 상대방의 슬픔을 얼마나 공감하면서 살았는지, 그런 계기가 있었는지 가만히 살펴보면 그런 경우가 흔치 않을 거예요. 바쁘게 살다보니까 내 일 챙기기가 바쁜 거예요. 이해타산으로 살다보니까 계산이 앞서고, 이끗이 앞서다보니 상대방의 깊은 마음, 상대방이 갖고 있는 고뇌, 그거에 대해서 쉽게 공감해서 내 일로,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공감하는 경우가 극히 적다고요. 그만큼 감정이 메말라있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오늘 상제님 말씀을 보면, ‘강증산과 태을도’ 291 페이지 보면, 상제님께서 손사풍(巽巳風)을 불리셔서 급살병을 시험하는 공사를 보세요. "나의 도수는 더러운 병(病) 속에 들어있노라."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김갑칠이라는 분이 이렇게 얘기한다고요. "병든 자를 보시면 그 병을 낫게 하여주시며 앞으로 좋은 운수가 온다고 하시더니, 오늘은 어찌하여 더러운 병 속에 앞날의 운수가 있다고 하시나이까?"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상제님이, "예로부터 속담에 이르기를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을 못 들었더냐. 내 일이 그와 같으니라. 이 뒤에 이름모를 괴이한 병이 침입할 때가 있으리니, 그 때에는 사람들의 죽음이 새비떼(새우떼) 밀리듯 하리라." 전라도 말로 새우를 새비라고 그러지요? 새우를 새비라고도 그래요. 그러니까 새우떼 밀리듯 한다는 거에요. 이렇게 급살병을 통해 사람을 고쳐쓴다 이거예요. 상제님이 그러시잖아요, "이만하면 사람을 고쳐 쓸 만하다." 선천 상극 세상을 매듭짓고 후천 상생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급살병을 통과해야 된다는 거예요.
성장통에서 가장 큰 성장통이 급살병을 통과하는 거예요. 이 급살병을 견뎌내야지만 후천 상생의 새 인간으로서 재생신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선후천이 교체할 때는 상극의 사람을 상생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급살병이 반드시 발발하는데, 이 병이 새우떼 밀리듯 한다. 시장 난전에서 새우젓 파는 걸 보면, 조그만 새우들이 셀 수도 없이 착착 쌓여져 있잖아요. 시체가 이렇게 착착 쌓여져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라크라던가 이란이라던가 중동 테러 방송 나오는 것 보면 사람이 길거리에 죽어서 널부러져 있는 것 보이잖아요. 아니면 지진이 일어나서 쓰나미가 발생하면 그 대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시체가 쓰러져 있는 걸 볼 수 있다고요.
이런 상황을 상제님께서 보시고서 상제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강증산과 태을도’ 295 페이지 가운데쯤 보면, "대저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편할 지라. 오는 일을 아는 자는 창생의 일을 생각할 때에 비통을 이기지 못하리로다. 이제 천하창생이 진멸지경에 박도하였는데,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이끗에만 몰두하니 어찌 애석치 아니하리요." 또 그 다음 구절, ‘하루는 벽을 향하여 돌아 누우셨더니 문득 슬퍼하시며 가라사대 "전 인류가 진멸지경에 이르렀는데, 아무리 하여도 전부 다 건져 살리기는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아니하리오." 하시고 느끼어 울으시니라.’
천하창생이 진멸지경에 박도하였다는 거예요. 전 인류가 진멸지경에 이르렀다는 거예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끗에만 몰두해 가지고 이해타산으로만 움직인다는 거예요. 상극적인 방법으로 이끗 타산싸움에 매몰되다 보니까 천하 창생이 진멸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데 상제님은 이런 상황을 훤히 아시니까 창생의 일을 생각할 때 비통을 이기지 못한다 하신 거예요. 얼마나 비통하시겠어요. ‘아무리하여도 전부다 건져 살리기는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아니하리요. 아무리하여도.’
상제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시라고요. 삼계대권을 주재하신, 조화가 무궁무진하고, 수가 무궁무진하신 그 분이 ‘아무리하여도 전부다 건져 살리기는 어렵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에는 오죽하시겠냐는 거예요. 앞날을 훤히 내다보시고 급살병이 온다는 것을 훤히 아시고 삼계대권을 주재하시는 그 분도 다 건져 살리기는 어렵다. 그런 상제님의 마음, 그 마음을 한 번 느껴봤냐는 거예요. 단 1분이라도, 10분이라도, 1시간이라도, 밤잠을 설쳐가면서 상제님 그 마음을 깊게 느껴봤냐 이거예요. 드라마를 볼 때, 영화를 볼 때, 위기에 처했거나 슬픔에 빠졌거나 고난에 빠졌던 작중 인물에 대해서 우리가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졸이면서 느껴봄직한 그 애절한 마음, 간절한 마음, 애틋한 마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상제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 “천하창생이 진멸지경에 박도하였는데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이끗에만 몰두하니 어찌 애석치 아니하리오. 전 인류가 진멸지경에 이르렀는데 아무리 하여도 전부다 건져 살리기는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아니하리오.” 이 말씀의 뜻을 머리로, 가슴으로, 온몸으로 느껴봤냐 이거예요.
그 밑에 상제님이 이런 말씀도 하신다고요. "이 뒤에 괴병이 돌 때에는 자다가도 죽고 먹다가도 죽고 왕래하다가도 죽어, 묶어날 자가 없어 쇠스랑으로 찍어내되 신 돌려신을 정신을 차리지 못하리라." 우리 나라에서 사주를 가장 잘본다고 하는 도계 박재완 선생이 있어요. 사주를 많이 보다보니까 대략 인생이 보인다는 거에요. 사주를 보면 인생이 보이는데, 저 사람은 이 때에 가서는 반드시 이렇게 될 거 같은데 그것도 모르고 지금 사주 본다고 자기한테 와있는 거에요. 그거를 얘기해줄 수도 없고 안 해줄 수도 없고, 그 상황 속에서 고민이 되고 고뇌가 된다는 거예요. 어느 순간에 상대방 입장이 되어버려서, 자기한테 사주를 보러온 그 사람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결정적인 어떤 순간을 알았을 때에 사주쟁이로서의 어떤 그 안타까움, 그 맘이 절절해서 돌아서서 눈물을 흘린다는 거예요. 사주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고 정확성이 높아갈수록 자기가 아는 사실에 대한, 그렇지만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비통함이 생기더라는 거예요. 무속인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위험한 상황에 빠질 게 뻔한데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와서 상담을 하는 걸 보면 얼마나 애잔하겠어요.
사주를 보는 사람이나 무속인이나, 상담하러온 그 사람이 살아가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대해 자기가 알았을 때의 그 마음, 상제님은 오죽하겠냐는 거예요. 천하창생이 우주 천리에 따라서 죽어가지만, 그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고 아무리해도 다 건져 살릴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이렇게도 얘기하고 저렇게도 얘기해보고. 이렇게도 달래보고 저렇게도 달래보고. 아무리해도 이해를 시켜서 살려낼 수 없다는 이 비통함, 애통함, 절절함. 삼계를 주재하는 상제님이 우셨다고요. 흐느껴 우셨다는 거 아니에요, 벽을 향해 돌아 누우셔가지고. 이런 심정을 한 번이라도 가져봤냐는 거예요. 상제님 성언 행적을 읽어보면서 단지 ‘아 좋은 말씀이구나, 참 기가 막힌 말씀이구나.’ 그런 거 말고. 상제님이 우리들한테 전해주고 싶은 그 애절한 마음, 간절한 마음, 애틋하고 절절한 당부, 신신당부하는 그 심정을 얼마나 이해해 봤냐는 거예요.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서 깊이 감동하면 그 여운이 오래가요. 상제님 말씀을 정말로 내 마음으로, 내 가슴으로 절절하게 받아들이면 인생을 그냥 대충대충 살 수가 없어요. 상제님이 급살병이 터져서 천하창생들이 다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 모든 것을 바쳐가지고 천하창생을 건지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시잖아요. 그것을 당신 제자들이 지켜봤다고요. 그 지켜본 모습이 이렇게 경전을 통해서 후인들한테 전해지는데, 이 속에서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의 유업을 온전히 받들어서 완수하려면 그 마음을 느껴봐야 된다는 거예요.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돼요. 단지 머리로만 이해하면 그 사람과 완전히 동화가 될 수 없어요. 일체가 안 된다니까요. 이성적으로도 이해하고 감성적으로도 하나가 되어야지 그 사람과 일체가 돼요. 이성적인 판단만 해서는 눈물이 안 나와요. 감성이 움직여야지, 가슴이 움직여야지, 먹먹하고 울먹울먹해야지 눈물이 나오지. 천지부모님이 천지공사를 하시고 천지공사를 감리하시고 우리한테 그 유업을 남기셨다고요. 그럼 도자들인 우리 입장에서는 천지부모님의 애틋한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해야 그 위업을 완수할 수 있지,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천지부모님의 유업을 제대로 이어받아가지고 완수할 수 없어요. 천지부모님의 심정이 되어봐야 그 분의 유업을 온전히 계승할 수 있다구요.
증산종단이 한 백 년이 넘어서는데, 백 년 동안에 과연 우리 선배 신앙인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정신으로 상제님 고수부님의 뜻을 받들어 왔는지 우리가 냉철히 살펴보고, 그 속에서 장점을 취해서 정말로 상제님 고수부님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그 애끓는 마음 절절한 마음을 내가 실천해내야 된다는 거예요,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울음을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은 내 일이 됐다는 거거든요. 상제님이 울어봤듯이 정말로 상제님 입장이 되어서 울어보지 않고는, 인위적인 눈물이 아니라 정말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 눈물을 흘려보지 않고는, 상제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부모님 마음을 십분의 일만 이해하고 실천해도 효자가 된다고 하잖아요. 상제님이 흘리신 이 눈물의 십분의 일이라도 우리가 흘려보면, 상제님한테 효도하는 정말로 일등도자가 될 거예요.
현재의 나를 한번 살펴봐야 해요. 상제님, 고수부님과 얼마나 동화가 됐는지. 상제님 일 고수부님 일 따로, 내 일 따로, 따로따로 있는 건 아닌지. 이해타산으로 내가 움직인 건 아닌지. 울음이라고 하는 건 이해타산으로는 같이 울어줄 수가 없어요. 그 순간에 하나가 됐을 때 울음이 나오는 것이지. 순간적으로 간격이 붙었을 때 울음이 나오는 거예요.
상극인간에서 상생인간으로 바뀌려면, 상제님이 누누히 얘기한다구요. 고수부님이 누누히 말씀하세요. 마음만 바꿔라. 마음을 바꿔서 니 행실을 고치면 급살병을 모면한다. 니가 바꾼 그 마음, 니가 바꾼 그 행실, 그것을 너 주변 사람들한테 전달하는 것이 포교다. 그것이 진정한 포교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을 바꾸지도 않고 행실을 바꾸지도 않고, 상제님 고수부님의 겉모습만 전한다고요. 내가 정말로 감동이 되어서 상제님이 우신 그 진한 울음에 담긴 마음으로 내 마음을 연단하고 내 행실을 바꾼다면, 그런 사람이 인연되지 않겠어요.
고수부님이 치성 때 제자들이 신도들을 많이 불러모아 놓으니까, 검불들 많이 모아놨다고 그러시잖아요. 상극에서 상생으로 독기와 살기를 빼지 않으면 검불이 될 수 밖에 없어요. 그건 내가 실천해야 될 문제에요. 다른 사람이 내 독기와 살기를 빼줄 수 없잖아요. 내 가슴에 박힌 독기와 살기는 내가 빼야 된다고요. 상제님, 고수부님은 그걸 하라고 누누히 말씀하시거든요. 천지의 환경은 새롭게 바꾸어놓으셨는데,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간 개개인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삼계 조화 권능도 있고 무소불위의 존재인 상제님 자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제자들에게, 세상사람들에게, 누누히 ‘마음 바꾸고 태을주를 읽어라. 마음닦고 태을주를 읽어라. 용서하고 사랑해라.’ 얘기하고 또 얘기할 밖에. 상제님 고수부님 얘기가 전부 그런 얘기에요.
세상사는 방법 자체가 선천하고는 완전히 다르다는 거예요. 선천은 상극적인 방법으로 먹고 살았다는 거예요, 지금껏 위무(威武)를 행사해서. 그런데 후천개벽기에 위무를 행사하면 급살병에 걸려서 후천세상으로 들어갈 수 없거니와 후천에서 살 수도 없어요. 후천의 모습은 다른 사람을 많이 도와주는 사람, 많이 살리는 사람, 이런 사람이 상등사람으로 대접을 받는다구요. 선천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이 뺏는 사람이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후천에선 정반대라는 거예요.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그렇게 봐놓으셨다는 거예요. 상제님 가족들도 예외가 아니에요. 상제님 부모님이나 동생이나 예외가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상극의 이 마음을 고쳐 독기와 살기를 빼서 마음 속의 시천 태을을 밝혀서, 천주의 성품을 되찾고 태을 신성과 생명력을 회복해 가지고 본래 인간다운 진면목을 찾아서, 생활방식 생각방식 이런 것을 상생 체질로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급살병을 면하지 못한다. 이것을 누누히 애기하고 깨우쳐주고 알려주고 했는데, 선천식의 이해타산만 따져서 마음을 쓰고 행실을 하더라는 거예요. 이끗에만 몰두한다는 거지요. 그러니 증산상제님께서 “얼마나 애석하냐, 아무리하여도 전부 다 건져 살리기는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아니하리요.” 하신 거예요.
이제는 증산종단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해요,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광고에도 나오잖아요, 신문 방송에. 따지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상대방을 넘어서려면 내가 사랑하고 용서하면 넘어설 수 있어요. 진리가 깊어야지, 깨침이 깊어야지, 진정한 사랑과 용서가 나와요. 깨침이 깊지 않으면 절대 사랑과 용서를 못해요,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깨침이 깊어지면 사랑과 용서라는 게 위대하다는 것. 가장 큰 무기가 사랑과 용서라는 거예요. 스스로 알아요. 그래서 깨침의 길을 가는 사람은 상극의 길에서 상생의 길로 바꿔 나가요. 그래서 따지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거에요. 상제님이 제자들한테 얘기하는 게 항상 그 얘기예요. 몇 번을 용서합니까, 그러니까 상제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냐면 “무조건 많이 용서해라. 허물은 그 사람에게 있을지언정 덕은 용서해주는 너희들한테 있다.” 천지공사를 그렇게 봐놓으셨다는 거예요. 독기와 살기를 빼고 빼서 이 급살병에서 살아남으라 이거예요.
상제님이 비통해하시고 애통해하시고 흐느껴 우신 그 심정. ‘너희들이 용서하고 사랑만 하면 너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을 텐데, 왜 그 독기와 살기를 못 내려 놓느냐. 내가 보증한다, 사랑하고 용서해라. 이것이 급살병을 모면하는 길이다. 상대방을 넘어서는 길이다.’ 흐느껴 우시면서 ‘너희들 싸우지 말고 용서해라, 사랑해라.’ 우리 태을도인들이 정말로 그걸 앞장서야 돼요. 상제님의 그 흐느껴 우신 그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서로 용서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해서, 척과 살이 박혀가지고 죽어가는 천하창생들, 이것을 목도했을 때 기가 막힐 거 아니에요.
오늘 갑오년 하지인데, 다시금 상제님 고수부님이 왜 그렇게 우셨나, 이런 것을 정말로 가슴 속 깊이 느끼고, 자식된 도리로서 진리의 자식으로서 천지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해서, 심정을 이해해서, 의통성업에 전념하는 그런 태을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충담도인님! 녹취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의 간절한 마음을 다시한번 느끼게 됩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믿음을 깊게 해,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마음을 눅여서 사랑과 용서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도훈을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바쁘고 귀한 시간 쪼개어 녹취해주신 충담도인께 감사드립니다.
참례하지 못했는데 ᆢ녹취 도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