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 인천법소 2017년 우수치성 도훈
“가 보지 않은 길”
2017년 2월 18일 (음력 1월 22일)
오늘은 2017년 들어서 맞이하는 두 번째 절기인 우수입니다. 얼었던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인데요, 산과 들에는 봄기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오늘 인천법소 도훈은 ‘가 보지 않은 길’이란 주제를 가지고 제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길이 있죠. 집안에는 방과 방을 이어주는 복도나 통로가 있는데 집안에 배치된 가구나 물건에
따라서 사람이 다니는 길이 정해진다고 볼 수 있죠. 좀더 눈을 들어 보면 마을 주변에는 마을 길이 있고, 저 멀리 산에는 나무 사이로 등산길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잘 모르지만 산짐승이 다니는 그들 만이 다니는 길도 있습니다. 도시와 도시와 연결하는 국도,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사람과 물건이 옮겨가는 통로가 됩니다. 더
크게 보면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하늘길인 항공로가 있고 또 바다에는 해상로도 있습다.
크고
작은 모든 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가려면,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따라서 걸어 가거나 적절한 운송 수단을 이용해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는
크고 작은 길로 가득 차 있고, 또 이것은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길이 없거나 길을 알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눈을 감거나 달빛 없는 밤길을 걸을 때는, 길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 주고, 우리의 마음을
현실화 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고, 당연히 있어야 되는 것처럼 보였던 길이, 알고 보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 주는 소중한 생명길이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장 빠르고 가장 쉬운
길을 택해야 합니다. 길을 알지 못하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거나 원하는 시간에 맞추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에만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길이 있다고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여 마음의 의지를 발동시키면 즉 마음을 내면, 우리는
그 목적을 이루는 여러 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생각하는 그 방법이 바로 마음의 길이라 볼
수 있는 거죠. 길을 가면 반드시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막다른
골목을 가면 길이 막혀 다시 되돌아오는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등산로를 따라 산의 정상에 오르면 우리는
산의 정상에서 사방팔방을 조망하며 이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야간에 산에 오르거나
폭설로 길이 눈에 덥혀 길을 잃게 되면 심한 고생을 하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길을
잃어 낭패를 보는 것은 현실의 길이나 마음의 길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궁극적으로 보면 마음의 길에 의하여
현실의 길이 결정되지만, 현실의 길을 잘못 선택하게 되면 육신이 고달파 지고, 또 마음의 목표나 마음의 길을 잘못 선택하면 마음의 법칙인 인과율에 의하여 우리가 원치 않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마음의 길의 결과물은 금방 그 영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서서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죠.
길은
현실적인 길이나 마음의 길이나 매우 중요한 생명이 움직이는 통로이고 방법입니다. 이렇게 길이 중요하기에
길을 잘 알아야 하고 어떤 길이 즐겁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길인지를 공부를 해서 우리의 생명을
잘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공부가 바로 도를 닦는 공부이고, 깨달음을 얻는 수행의 길입니다. 선천 유불선의 공부가 마음의 길을
찾아 닦는 진리공부요 도를 닦는 공부라 볼 수 있죠. 선가에서는 생명이 생멸하는 조화를 터득하여 무병장수의
길을 찾았고, 불가에서는 마음을 잘 닦아 해탈에 이르는 길을 찾았습니다. 유도는 모든 관계 속의 예법을 닦아서 질서 있는 현실을 만드는 길, 방법을
공부하는 것 입니다.
선천에 인류가 닦아 온 길은 상극의 길이었다고요. 상극지리가 인간사물을 맡아 다스린 선천이었기에 선천의 도에는 상극의 부조화가 짙게 배어있습니다. 선천 유불선은 창도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극의 굴레가 씌워 있다고요. 인간이
유불선의 본래 목적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였다면 현실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선천은 운명적으로 상극의 운수이기 때문에 지금과 상황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 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 김형렬 성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강증산과 태을도 33페이지에 있는 말씀인데, 제가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 상제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이 열리나니 모 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라. 나는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서 천지를 개벽하고 불로장생의 선경을
열어 고해에 빠진 중생을 건지려 하노라” 하시고 혈렬의 집에 머무르사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신안을 열어주어 신명의 회산과 청렴을 참관케 하시니라. (대순전경 P20-21)
성구에 나오는 증산상제님의 말씀처럼, 말세의 시운 즉 세상이 망하는 시대운수를 따라서 증산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시어 무극대도를 내셨다고요. 지금 현세가 말세라는 얘기는 인류가 여태 것 살아온 생활방식 지식 종교가 이제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여태까지 생명의 법칙으로 여기고 살아왔던 종교라든가 생활관습, 도덕이 이제는 생명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 된다는 말씀이거든요. 그
죽음의 길에서 인류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삶의 길인 무극대도를 내셨다는 말씀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무극대도를 창시하셨기 때문에 이미 증산상제님께서는
무극대도를 깨달으신 사람입니다. 증산상제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은 증산상제님을 따라서 무극대도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요. 그러나 여태까지 증산신앙인들이 신앙하는 모습에 대한 일반인들의 평가를 보면, 사회적인 비난을 많이 받았고 또는 상식을 벗어난 일탈의 모습을 보였다고요.
그러면 왜 이러한 길을 걸어왔느냐? 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극대도는 모든 사람이 가보지
않은 처음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많이 할 수 밖에 없고, 또 무극대도의 길을 가려면 증산상제님과
같은 심법을 가져야 되는데 그런 심법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증산상제님과 같은 길을 가지 못한 겁니다. 다른
한가지는 지금이 해원의 시대인데, 이 해원의 시운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원한을 풀기에 몰두하다
보니까 무극대도와는 거리가 먼 길을 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가는 길이기에 두려움도 있을 것이고 시행착오도
반드시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선천 상극과는 반대의 길을 가는 상생의 길이기
때문에, 무극대도를 가는 사람에게는 많은 좌절과 충돌과 고통이 뒤따르는 형극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극대도는 모든 사람과 다 통할 수 있는, 벽이 없는 상생대도인데도
불구하고 세간의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결국 증산신앙인들이 무극대도의 길을 올바로 가지 못 했다는 얘기죠.
각 종단 안에서도 신도와 지도자간에 상생의 관계가 형성되어
아무런 갈등이 없어야 하고, 밖으로는 다른 종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도 충돌이 없고 상통할 수 있는 것이 무극대도이거든요. 증산신앙인들이 무극대도라는 말에
걸 맞는 무극의 마음을 닦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는데, 상제님께서 무극대도를 전해주신
지 100년이 지났지만 증산신앙인들이 아직도 무극대도의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1998년 4월에 출범한 태을도를 통해서 증산상제님께서 걸으신
무극대도의 길의 확연히 밝혀졌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 인간으로서 남기신 언행과 자취는 증산상제님께서 당시의
현실 속에 남기신 마음의 궤적입니다. 증산상제님의 마음이 그 때의 그 현실 속에서, 그러한 말씀과 행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요. 증산상제님의 마음과 심법을
이해하고 당신의 심법을 계승하여 닮는다면 우리는 증산상제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증산상제님과
같은 심법을 가지면 증산상제님과 같은 깨달음을 이루어서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과 같은 상생의 태을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올바르고 정확한 무극대도의 길을 태을도가 계승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길이기에 외로고 고독한 무극대도, 태을도의
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의 종교 관습 가치를 따라서 가야 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극대도의 입장에서 보면 그 길은 상극의 길입니다. 무극대도인 태을도에서는
그와는 반대의 길을 가라고 합니다. 사랑과 용서해라. 아버지를
죽인 원수도 용서해 주어라. 이렇게 요구하거든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사람들은 무극대도의 길이 현실적으로 손해 보는 길이고, 자신의 생명 유지에 아무런 득이 없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극대도는
사랑의 도이고 자비의 도입니다. 무극대도의 길을 제대로 가려면, 현실
속에서 상극의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태을도인들은 심신이
피곤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도 않고 박수쳐 주지도 않는 길이 때문이죠. 그렇지만 생명의 이치로 보았을 때, 무극대도인 태을도 만이, 사랑과 자비만이, 내 생명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을 영생시킬 수 있고
모든 사람을 잘 살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일심이면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하신 증산상제님의
말씀으로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열풍뇌우불미하며 그 길을 묵묵히 가려고 하고 또 태을도인들이 그 길을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수절을 맞이해서 산과 들에는 따사로운 봄기운이
감도는 것 같습니다. 좀더 있으면 꽃도 피고 잎도 펴서 약동하는 봄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계절인데요, 이러한 계절을 맞이하여 겨울의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고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각오로 열심히 살아 가면서 상제님께서
걸으셨던 무극대도의 길인 태을도의 길을 모두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가정에 봄기운처럼 따뜻한
희망이 솟아나기를 바라고 또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며 인천법소 도훈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