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3지(三知)라 하여 매우 간결한 매화 관상 요령을 남겼습니다.
3지는 지색(知色), 지향(知香), 지형(知形)인 데,‘매화를 온전히 관상하려면 색과 향과 형태를 모두 알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매화는 일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이 시구는 매화가 상징하는 정신, 즉 인고(忍苦)와 지조(志操) 그리고 청진(淸眞)의 세계를 잘 함축하고 있습니다. 3지(三知)는 매화가 상징하는 정신 세계로 접근하는 배경이며 조건입니다.
매화타령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주제와 맞지도 않는 같잖은 언행을 조롱할 때 쓰는 말입니다. 매화는 속된 안목으로 아는 척 할 수 없는 나무여서 이같은 말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똥 싸고 매화타령’이란 속담은 아시는지요?‘제 허물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비위 좋게 날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매화만큼은 상대를 모른 채 섣불리 아는 척하지 마십시오. 자신도 모르는 새에‘똥 싸고 매화타령’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3지(三知)를 기준으로 꼭 알아야 할 매화 관상 요령을 살펴보겠습니다.
맑아야 하니 꽃은 붉은색보다 흰색을 선호하되, 꽃받침이 녹색인 녹악매(綠萼梅)를 으뜸으로 삼습니다.
향 또한 짙은 것보다 맑고 은은한 것을 귀(貴)하게 여겼습니다. 매화 향기를 암향(暗香)이라 하며, 그윽한 매화 향기(暗香)가 은근히 떠도는 것을 일러 암향부동(暗香浮動)이라 합니다. 그래서 매향은 한낮보다 동트기 전, 세상이 어렴풋이 드러날 때, 또는 달빛이 으스름하여 사물의 윤곽이 보일 듯, 가려질 듯할 때가 음향(飮香)의 적기라 합니다.
지형(知形)은 꽃, 가지, 줄기, 밑동의 생김새를 각각 나누어 살핍니다.
겹꽃보다는 홑꽃을, 큰 꽃보다는 작은 꽃을, 번잡하기보다 성글게 달린 꽃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 가지는 늙고 야윈 것이 귀하고, 줄기는 고태가 서리고, 수척하며, 흐름이 기이할수록 귀하고, 밑동은 풍상이 진하게 배어 있어야 하며 마르고 수척한 것이 귀하다 했습니다.
3지(三知) 이외에 꽃 피는 시기를 따지는데, 겨울 추위를 이겨내며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한매(寒梅)를 귀하게 여깁니다. 한매는 일찍 핀다 하여 조매(早梅)라 하고, 눈 속에서 핀 매화는 설중매(雪中梅)로 부릅니다.
누군가로부터 매화는 흰색, 홑꽃이어야 한다고 들었으니 붉은 꽃, 겹꽃을 막무가내로 무시한다면 이 또한 조롱거리가 됩니다. 맑은 것보다 화려한 것을 취하자면 흰색, 홑꽃은 오히려 어울리지 않지요. 매화를 통해 청진(淸眞/깨끗하고 거짓없는 마음)의 의경을 떠올릴 수 있을 때 비로소 홑겹의 백매를 입에 담아야 격이 맞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매(寒梅)가 귀하다 하여 초봄에 피는 춘매(春梅)를 마구잡이로 폄하한다면 이 또한 속된 안목일 뿐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문인이고 선비일 수는 없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천년학’의 촬영지인 광양 매화마을, 그곳의 매화는 3월 중하순에 피는 춘매지만 만개한 꽃잎이 바람에 휘날리는 장관에 경탄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요즘 젊은이들이라면 가지 끝에 성글게 핀 매화보다는 매화 마을의 매화처럼 빈틈없이 꽃으로 가득 찬 모습을 더욱 좋아하지 않을까요?
한국 분재의 효시인 고 손상현 선생의 저작‘분재인생’에는‘매화예찬’이란 글이 있습니다.
‘매화는 맑은 꽃이다. 목단이나 장미같이 화려함이 없다. 목단이나 장미를 도회지의 미인이라고 친다면 매화는 세속에 젖지 않는 깊은 산골의 수집고 때묻지 않은 처녀라고나 할까’
‘새하얀 꽃잎에 노오란 화심(花心) – 어느 미인의 웃음이 이다지도 아름다우리. 이른 아침 이슬을 함빡 머금고 이제 막 피어나려는 몽실몽실한 꽃망울을 어느 아가씨의 젖꼭지와 같다고 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이 대목을 읽으며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손상현 이전에 누가 있어 매화꽃을‘산골 처녀, 아가씨의 젖꼭지’라 표현하였던가. 선생을 만난 일 없지만 성품을 넌즈시 짚게 됩니다. 평생에 걸쳐 매화시 100수 이상을 남겼던 퇴계 이황 선생의 매화 사랑이 기녀 두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러브스토리가 있습니다. 속화(俗話)이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던 즐거움을 물씬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매화 관상의 요령을 알고, 매화를 사랑하며 예찬하려면 오랜 세월 숙성을 거쳐, 마치 숨을 쉬듯 일상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라 가늠해 봅니다.
알면 알수록 분매(盆梅) 한 수 들이기가 조심스러워 지시죠!!
우리 고유의 정서가 깃든 매화 하나 들이가가 쉽지는 않은 듯 합니다.
첫댓글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퍼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