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행품(淨行品) ▣
1. 불과(佛果)의 삼업(三業)이 원만함을 묻다
경문 저 때에 지수 보살이 문수 보살에게 물으셨다.
"문수 보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허물이 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해롭히지 않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깨뜨릴 수 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움직이지 않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수승한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청정한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물들지 않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나이까."
2. 열 가지 힘을 묻다
"어떻게 곳과 곳 아님을 아는 지혜의 힘과, 과거 미래 현재의 업과 과보를 아는 지혜의 힘과, 근기의 수승하고 하열함을 아는 지혜의 힘과 , 경계를 아는 지혜의 힘과, 일체의 곳에 이르는 지혜의 힘과, 선정삼매의 물들고 깨끗함을 아는 지혜의 힘과, 지난 세상에 머무름을 기억하는 지혜의 힘과, 걸림없는 천안을 아는 지혜의 힘과, 모든 악업을 끊는 지혜의 힘을 얻나이까?"
3. 일체 중생의 이익됨을 묻다
"어떻게 일체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의지가 되며, 어떻게 일체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구호가 되며, 어떻게 일체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횃불이 되며, 어떻게 일체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인도자가 되며, 어떻게 일체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두루 인도하는 훌륭한 인도자가 됩니까?"
4. 문수보살이 지수보살에게 답하다
저 때에 문수사리 보살이 지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십니다. 불자여, 그대가 이제 많이 요익케 하고 많이 안은케 할 바로 세간을 애민이 여겨서 천상의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하고자 할새 이 같은 뜻을 묻는구나.
잘 들으라, 불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그 마음을 잘 쓰면 곧 온갖 수승한 묘한 공덕을 얻어서 모든 부처님 법에 마음의 걸림이 없으며,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도에 머물며, 중생을 따라 머물며, 항상 버리거나 여의지 아니하며, 저 모든 법을 다 통달하여 온갖 나쁜 것을 끊고 모든 선한 것을 구족히 하여 마땅히 보현의 원력과 같이 하리라 한다."
⊙ 합론,소 해석한 가운데 먼저 지수보살의 물음이니 덕(德)을 들어 인(因)을 물음이요, 후는 문수의 답이니 덕을 표하여 인(因)을 보임이라. 물은 바가 20의 문이 있으니 모두 11단에 단마다 모두 10문이 있음일새 일백일십 종덕(種德)을 말씀하시었다. 제 1은 삼업을 여의고 덕을 쌓음을 말 함이요, 제 2는 보살의 행을 이 세상에 가득 채움을 말함이다. 열 번째는 중생의 요익〔衆生饒益〕을 위함이다.
☞ 해설
지혜가 뛰어난 보살이 지수보살입니다. 물론 문수보살도 지혜의 보살이라고 합니다. 지수보살은 업을 쌓는 일과 지혜를 일으키는 일과 선덕을 쌓는 일 등을 물었는데 지혜는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모든 사물을 보면서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 지혜일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보살님이 말하길 "스님, 저는 말입니다. 우리 남편에게 언제나 손해를 보고 살아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분 사이에 혹시 상거래를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손해를 본다고 합니까?" 라고 물었더니, 말은 다 못하지만 언제나 남편을 위해서 사는 부속물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보살님에게 이런 말을 해준 기억이 납니다. "손해를 보는 것은 곧 이익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조금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조금 손해를 보고 산다고 하면 모두가 만족할 것입니다. 부부간에 근본으로 돌아가면 손해고 손해 아니고 가 없습니다."
지수보살은 무엇으로 지수(智首)라 하는가. 그가 참으로 지혜스러운 보살이기에 지수라 하였습니다. 지수보살은 금강지(金剛智)를 가진 보살로 일체 모든 것에 대한 지혜가 뛰어나다고 하였습니다. 문(文)에 '훌륭하십니다.' 한 것은 지수보살을 칭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은 사람을 만나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합니다. 문수보살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기에 훌륭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남을 칭찬하고 찬탄하는 것을 덕담이라 합니다. 입만 열면 남을 헐뜯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평생 남을 헐뜯다가 인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또 문수보살에게 말씀하시길, 그 마음을 잘 쓰면 온갖 수승한 공덕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마음 뿐만이 아닙니다. 행도 그와 같이 하면 공덕이 될 뿐더러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사람은 멀쩡한데 그 말과 행동, 예의범절이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의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예의 바른 사람 앞에 있으면 언제나 편안한 마음을 얻는 것도 그 사람이 예의가 바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예의가 없는 사람을 만나면 웬지 불안하고 오래 있고 싶지 않습니다.
도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상의 인간이나 사바세계에 있는 인간들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바로 예의에서부터 시작됨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중생을 따라 머문다는 말을 문수 보살은 하십니다. 중생 곁에 있는 것이 편안하고 중생을 위하는 일이 편안한 삶을 얻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훌륭한 사람들은 모두가 다 남을 위한 일에 앞장선 사람들입니다. 부처님도 그래서 중생 곁에 계셨던 것입니다.
5. 어떻게 마음을 잘 써서 능히 온갖 수승하고 묘한 공덕을 얻음인가
경문
불자여, 집에 있을 때는
마땅히 중생들의 공덕을 관하라.
그리하여 그 핍박을 면케 할지니라.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되
마땅히 중생이 부처님을 잘 섬기듯이
외호하며 공양을 할지니라.
만약 오욕을 얻었을 때는
마땅히 중생이 오욕의 화살을 빼버리고
구경에 안은하기를 원할지니라.
6. 출가하여 계를 받는 스님이 마음을 쓰는 법
살던 집을 버릴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출가하여 걸림이 없고
마음에 해탈 얻기를 발원할지어다.
출가하기를 구할 때는
마땅히 중생들이 퇴전치 않는 도를
마음에 얻어서 장애 없기를 발원할지어다.
바르게 출가할 때는
마땅히 부처님과 같이 출가하여
온갖 것을 구호하기를 원할지어다.
구족계를 받을 때는
마땅히 중생이 모든 방편을 얻어서
가장 수승한 진리 얻기를 발원할지어다.
대소변을 볼 때는
마땅히 중생이 탐진치를 버려서
죄업을 깨끗이 없애기를 원할지어다.
고행하는 사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고행에 의지해서
깨달음 얻기를 원할지어다.
예절 바른 사람을 볼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선업의 갑옷을 입고
불도(佛道) 버리지 않기를 원할지어다.
걸식을 할 때에는
마땅히 중생이 깊은 법계에 들어가서
마음에 장애 없기를 원할지어다.
♧ 희(喜)
본생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수행자가 길을 가다가 금 덩어리를 주웠습니다. 그 수행자는 그 금 덩어리를 호주머니에 넣고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마음이 웬지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인에게 가서 묻기로 마음을 먹고 무우수나무 밑에서 정진하고 있는 선인을 찾았습니다. "선인이시여, 저는 길을 걷다가 주인이 없는 금을 주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못 합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하니, 선인은 " 그 금이 있던 자리에 놓아 두시오. 그러면 그대는 마음이 편안할 것이요." 하였습니다.
수행자 "그러면 누가 금을 가져 갑니까?" 하자, 선인이 말하기를, "금을 누가 가져 가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있는 대로 그대로 놓아두면 됩니다." 수행자는 선인의 말대로 그 금 덩어리를 그 자리에 갖다놓았습니다. 그 수행자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길을 걷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길을 걷다가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걷기 힘들어 하는 노인을 업고 산길을 내려 왔습니다. 업은 노인이 무거운 만큼 그의 마음속엔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해인사에서 살았습니다. 매일매일 강원에서 경전 공부하는 것이 마냥 좋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이 아주 많았습니다. 대중 스님들이 봄이 되면 절에서 짓는 논에 가서 모내기를 하고 가을이 되어서는 추수할 때 내가 심은 논에서 벼 이삭이 영 글어 가는 것을 보는 것도 기쁨의 하나입니다. 강원을 졸업할 때도 기쁨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기뻤던 것이 하도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기억하는 것도 있고 잊은 것도 많습니다.
제가 당부 드리건데, 하루에 한 번 기쁜 일을 하십시오. 만약 하루에 한 번 기쁜 일을 하면 일년이면 365번의 기쁜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10년이면 3650번의 기쁜 일을 할 수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매일 슬픈 일을 한 가지씩 만들면 그는 일년이면 365가지의 슬픈 일을 만들고 따라서 10년이면 3650번의 슬픈 일을 만들고 삽니다. 기쁨은 작은 것을 소중히 하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슬픔은 작은 것을 소홀히 하는 마음에서 생깁니다.
♧ 노(怒)
남을 슬프게 하면 자신도 슬픔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남을 기쁘게 하면 자신도 그 사람으로 인해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절에 들어오다 보면 분노한 얼굴의 사천왕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천왕은 분노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분노 같지가 않습니다. 진실로 성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생을 걱정하는 나머지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마음으로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성낼 때는 분노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남의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제가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를 할 때 아침 공양을 하고, 공부를 마치면 나무를 할 때도 있고 밭에 나가서 일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젊었을 때라서 일하기가 때로는 귀찮고 싫어질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노스님이 호미를 들고 나가시는데 어떻게 젊은 사람이 빈둥거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할 수 없이 밭에 나가곤 했는데 하루는 노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하기가 싫지, 나도 일하기가 그리 좋지는 않아. 이제 늙었거든. 그런데 밭에 채소를 심어서 대중의 아침 저녁 공양상에 오르는 것을 보면 즐거운 일이 아닌가. 내가 가꿔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대중도 먹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즐거운데 일할 때는 힘드니까 싫어진단 말이야. 그리고 나는 저 산천초목이 나를 보고 게으르다고 할까 봐 걱정이야." 이렇게 말씀하실 때 우리들은 숙연해졌습니다.
"무슨 산천초목이 우리들을 게으르다고 할까. 무슨 말을 한다고" 하며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억지로 일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를 먹고 보니 그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억지로 할 때는 속상해 하고 그런 것은 수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또 이러한 마음은 잘못하면 마음으로 분노를 갖게 되어 몸을 상하게 만들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을 가지면 그에게는 즐거운 일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성내는 마음을 갖고 살면 그 사람에게는 화낼 일이 자주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애(哀)
인도 신화에 나오는 비슈누 여신의 이야기입니다. 그 여신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골탕 먹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느날 어떤 집을 가보니, 그 집은 음습하고 온 집안 식구들이 얼굴엔 웃음기가 하나도 없으며 무엇인가 낙담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도 없으니 무엇인가 낙담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 보니, 슬픈 일이긴 해도 그다지 많이 슬퍼할 일은 아닌데 그렇게 슬퍼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겐 슬픈 일이 하도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형제가 죽는 일, 자식이 죽는 일, 부부간에 사별하는 일 등 그 가지 수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심술궂은 비슈누 여신은 그것을 좋은 기회로 삼아서 중생들에게 슬픔을 증가 시킬 방법을 그 여신의 부하들에게 강구하라고 하였답니다.
그렇게 강구된 것이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나오도록 하여 소리 내어 울고 울어서 도저히 미래를 스스로 열어가지 못하고 자신에게 항복하고 기도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인간에겐 슬픔도 때로는 미래로 도약하는 힘이 되는데,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비심(悲心)이 있으십니다. 가련한 마음을 통하여 무상(無常)의 진리를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 락(樂)
무엇이 즐거운 일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나에게 있어서 무엇이 진정 즐거운 일일까. 때로는 나에게 즐거운 일도 남에게는 즐겁지 못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잘 아는 스님이 계셨는데 그 스님은 하루 종일 분재에 매달려서 나무들을 손봅니다.
그 나무들을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어떤 것을 보면 그야말로 거대한 소나무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또 어떤 나무들은 숲을 이루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나무들은 저 높은 바위 언덕에 매달려 있는 듯하기도 하고, 이렇게 제각기 나무들이 여러 가지 모양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 스님이 모두 만든 작품들입니다. 스님은 분재가 재미있고 즐겁다고 합니다. 또 어떤 스님은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하여 글을 아주 잘 씁니다. 그 스님도 자신의 즐거운 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어떤 도반 중에 선객이 있는데 그는 참선을 하면서 고요히 자신을 참구하면서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모두 자신이 갖고 있는 즐거운 일들입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을 지나가다 보면 산새들이 지저귑니다. 사람들은 그 새소리를 듣고 짜증내거나 화내지 아니할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이 날 것입니다. 도회지를 벗어나 푸른 숲을 보면서 산길을 걷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일 것입니다. 비록 가진 것은 적더라도 마음이 풍요로워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할 줄 알아야 즐거움이 생깁니다. 추수의 감사, 거두어들임의 감사입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 부처님에 대한 감사, 사물에 대한 감사, 참으로 감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을 나의 즐거움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끼는 마음이 곧 고마워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쓰던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쓰던 것일수록 더 정감이 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새것은 새것대로 좋지만, 언제나 새것만을 고집하면 낭비가 될 것입니다. 물건을 아끼는 마음은 사물에 대하여 경외심을 갖는 마음입니다. 쌀 한 톨이라도 아끼고 농부의 공력을 생각하는 마음은 복이쌓인다고 합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끼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이든지 아니면 사물에게든지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즐거운 마음이 난다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산다고 하는데 저는 사실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나도 때로는 속상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마음이 상해서 속상한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일에 대하여 속상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스트레스까지 받을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