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1453년)
서구 로마의 적통임에도 오늘날까지 유럽에겐 이질적이고 잊혀진 제국
오지 않을 원군 기다리며 투르크 대군에 맞서 싸운 비잔티움 시민 영웅담.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우리는 세계사를 얼마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요? 대부분은 일본이 받아 들였던 서구중심주의 시각을 그대로 답습하여 해방이후 지금까지 교과서에 그 내용 그대로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비잔틴제국의 역사를, 서유럽사나 서유럽 황제와 로마 교황과의 권력 다툼 조명에 밀려 비잔틴제국의 역사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습니다. 세월로 치면 서로마가 망한 후 1000년의 세월을 로마의 이름으로 지속된 나라인데도 말입니다. 다음의 서평을 통하여 잘려지고 왜곡되어 온 세계사의 한 주류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바랍니다.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표지
1453년 5월 28일, 비잔티움 제국 곧 동로마제국 그 자체인 항구도시 콘스탄티노플은 7000명의 병력에 의지하며 8만 명에 이르는 오스만 투르크의 대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스인들을 주축으로 하는 콘스탄티노플 사람들은 7주가 넘도록 용케 이슬람 군단의 집중 포화를 견뎌내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형제 기독교 국가들의 원군이 도착할 것이란 믿음으로 자신들의 기독교 국가를 지켜내고 있었다.
권좌에 오르자마자 콘스탄티노플의 점령에 모든 것을 걸고 공격을 시작한 투르크의 술탄 메메드 2세로선 조급해지기 시작할 시점이었다. 그러나, 기습공격을 마치고 돌아온 비잔티움 돌격대원 하나가 성벽 모서리의 비상문 빗장을 잠그는 것을 그만 깜빡 잊고 말았다. 이를 눈치 챈 투르크군은 성의 내부로 진격하기 시작했고, 이튿날인 29일 도시는 마침내 점령당했다.
1000년 대제국은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독일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저서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다뤘던 바로 그 장면, 동로마제국 최후의 모습이다. 동로마제국은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최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이름과 비슷한 사람이 될 것”이란 예언처럼 콘스탄티노스 황제 대에 멸망했다. 정복자의 향연이 끝난 뒤 술탄은 동로마제국의 옛 수도에 찬란한 새 수도를 건설했고, 도시는 기독교의 도시에서 무슬림의 도시로, 그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스탄불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바뀌지 않았다.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황제
츠바이크의 말처럼 동로마제국의 멸망은 콘스탄티노플 정복에 그토록 집착했던 정복자 술탄 메메드2세의 ‘광기’와, 비상문을 잠그는 것을 잊은 돌격대원의 실수라는 ‘우연’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또한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볼 때 당연하고 또한 사소한 사건일 수도 있다.
한 때 이 도시의 멸망으로 중세라는 역사 단계가 끝났으며, 동로마의 소멸로 학자들이 이탈리아로 건너가 르네상스가 시작됐다고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요즘 역사 관점에서 볼 때 비잔티움 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쇠락해 어차피 망할 나라였고, 르네상스 역시 동로마제국 몰락 이전에 이미 진행 중이었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콘스탄티노플의 최후는 그저 식물인간이 된 제국의 입에서 산소호흡기를 떼어버린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최후의 순간에 펼쳐진 이야기까지 그저 그런 옛이야기였을까? 그 속에 들어있는 인간 군상의 드라마는 역사 속 수 많은 전쟁 이야기의 하나였을 뿐일까?
오스만 투르크의 황제 술탄 메메드 2세가 1453년 5월29일 근위대와 대신들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고 있다. 프랑스 화가 벵자맹 콩스탕의 그림.
동로마제국은 그동안 ‘잊혀진 제국’이었다. 역사적 의미를 떠나 서구 유럽은 그 당시에나 지금에나 무려 1000여 년 넘게 애써 이 제국의 존재를 외면해왔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로마의 적통을 유일하게 계승한 것이 동로마제국이었음에도 서구의 눈으로 볼 때 동로마는 유럽보다는 아시아에 가까운 이질적 존재였다.
같은 기독교를 믿었지만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가톨릭과는 다른 정교회를 고집하는 분리주의자들이라고 동로마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이후 지금까지 이어졌다. 에드워드 기번 같은 로마사 전문 역사가들은 비잔티움을 역사의 막간극 정도로 치부했고, 이런 서구중심 역사관은 세계로 뻗어나가 동로마제국의 역사적 존재감을 지워버리고 있다.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킨 메메드 2세
지은이 스티븐 런치만(1903~2000)은 이같은 서구 관점에서 벗어나 동로마제국이란 주제를 다룬 영국의 역사학자다. 런치만은 비잔티움 최후를 그린 이 책에서 서유럽이 비잔티움 문명을 시기했으며, 베네치아 등 비잔티움제국의 동맹국들과 교황 등 형제 기독교 세력들이 비잔티움제국의 위기를 외면해 동로마는 결국 홀로 처절하게 저항하다 사라졌다고 역설한다.
또한 이 도시를 저버린 세력들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지만 결국 잊어버리는 쪽을 택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오지 않을 원군을 기다리며 외롭게 투쟁한 콘스탄티노플 사람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는 백성들을 독려하며 헌신한 동로마 황제와 투르크 제국의 존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야만 했던 술탄의 대결이자 기독교와 무슬림의 대결, 그리고 그리스 사람들과 투르크 사람들의 대결에 대한 장렬하고 드라마틱한 서사시다. 영화를 연상케 하는 생생한 포위전 이야기는 제국 최후의 시민들의 용맹이 왜 정복자 술탄마저 감동시켰고, 술탄이 질서가 회복된 뒤 그리스 백성을 좀더 공정히 대하게 되었는지를 절로 깨닫게 만든다.
첫댓글 담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