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의 성령 운동은 방언과 치유를 중생이나 성령세례의 표적으로 앞세운다”
유해무 박사(고려신학대학원 조직신학)는 지난 6월 15일 서울 반포동 고신 총회회관에서 ‘빈야드적 현상들에 대한 장로교 신학적 입장 도출’이란 주제로 열린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이단사이비 대책위원회(위원장 최병규 박사) 세미나에서 “‘고전적’ 성령운동은 성령세례와 방언을, 빈야드와 이와 유사한 운동은 ‘치유’를 포함하여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령의 모든 은사들이 지금도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유박사는 “고전적 성령운동은 성령의 모든 은사들이 지금도 교회 안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보면서 은사들 가운데 특히 방언을 성령 세례의 가시적 증거로 제시하며, 사도행전 2장, 19장을 예라고 말한다”면서, 우리는 “사도행전 등에 기록된 특별 은사들은 사도시대에 교회 설립과 설교의 확립을 위해 필요했다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특별 은사들은 구속 역사의 진전을 알리는 증거이다”고 전제하고,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구원역사의 진전을 이스라엘에게 공표하는 표적이다. 또 19장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의 방언은 이 구체적 집단이 성령님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연합되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시위이다”며 “이와 같이 하나의 교회가 되었다는 구원 역사적인 진전의 표시로 방언이나 예언이 증거로 주어졌다”고 강조했다.
유박사에 따르면 빈야드 운동은 오순절 운동이나 은사 운동보다는 더 전통적이며, 대부분의 교리들을 따른다. 가령 중생과 구별되는 성령세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치유나 사역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다고 주장하며, 예언의 은사 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계시 이해에 문제를 안고 있다”는게 유박사의 지적이다. 즉 이들은 표적과 기사는 직통계시라고 주장한다는 것.
유박사는 “그런데도 이들은 이런 계시나 은사가 성경을 대치하거나 동등한 권위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은사들은 성경 말씀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전통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며 “그러나 이들이 은사에 나타나는 표적과 기사를 강조하고, 체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성경 말씀이 지닌 판단적 권위는 항상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들이 추구하는 집회는 감정을 앞세우며, 직접 계시를 갈망하는 열광주의적 경향을 수반한다. 성경이 아니라 체험이 판단적 권위를 장악할 위험이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유박사에 따르면 빈야드 운동은 근본적으로 성령운동에 의한 복음 전파와 교회 성정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들은 방법론적으로 교회의 수적 성장을 겨냥한다. 즉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표적과 기사는 계속 일어나며, 이를 동반하는 복음 전도의 능력을 강조한다. 이들은 설교를 통하여 영적인 각성을 하는 기존의 전도 방법에 만족하지 않는다. 설교보다는 표적과 기사를 강조하고, 이것을 체험한 자들이 행하는 감정적인 표현이나 간증을 중시한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표적과 기사를 능력 대결로 보며, 예배와 집회에서 나타나는 통곡, 파안대소, 경련과 만취에 가까운 쓰러짐의 현상, 각양 동물소리등을 능력대결의 증거라고 말한다.
빈야드 운동에 이은 신사도 운동은 빈야드 운동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고 믿는 운동이다. 이적, 신유, 귀신축출, 죽은 자를 살리는 일 등 초자연적인 것과 초대교회에 번성했던 방언, 예언, 통역 등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이 그것이다.
유박사는 “금이빨 변화 현상은 오순절 운동이나 은사운동 등에서 나타났다는 보고는 없으며, 유독 빈야드 운동이나 이와 유사한 운동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넘어짐(쓰러짐)이나 금이빨 변화는 성경의 신유적 은사라고 보기 어렵다. 성경적인 은사목록에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알파코스를 관장하는 알파 코리아의 여러 집회에서도 금이빨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한국 교회 역사의 초기부터 성령님의 역사들이 많이 일어났다. 즉 이런 역사들은 오순절 운동 및 은사운동과 제3의 물결이 주도하는 전유물은 아니었다”고 전제하고, “이런 운동들이 단지 교회 성장을 위한 방법론에 불과하다면 이는 성령님의 자유를 훼방할 수 있다”며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교회와 성도는 십자가와 부활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 위에 성령님이 표적과 기사를 더해주실 수는 있지만, 성령님의 자유를 방법론적 훈련으로 제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박사는 “한국교회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거나 교회와 성도들이 무능하고 부패하여 실력을 올바르게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체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권세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백성과 교회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유박사는 또 “지금도 성령님의 주권에 따라 은사들이 교회의 덕과 유익을 위해 주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언급된 ‘모든’ 열광적 은사들이 지금도 나타난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중단됐다”며, “그러나 덕을 세울 수만 있다면 고린도전서 12장의 방언에 대해서는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교회에 나타나는 은사들 중에는 교회를 세우기보다는 도리어 파괴하는 사단의 역사도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이런 역작용 때문에 일부 은사들이 사라졌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은사들이 지금도 주어진다고 확언할 수 없다. 선물인 은사들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자유에 속하므로 허용적이다”며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사건의 구속사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재현 가능성만을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욕을 보임(히6:6)에 비견되는 성령님의 자유를 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박사는 또 “은사는 교회의 표지가 아니다”고 전제하고, “현대 교회가 무능력하고 침체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원인을 은사가 아니라 참된 복음 설교의 부재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며, “교회들의 관심이 은사 문제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 교회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고 능력 있게 설교되며, 우리가 그대로 살고 있는가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관심있게 살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특히 유박사는 “무분별한 성령, 은사 운동들이 보여주듯이 교회의 질서를 깨거나 특정 은사나 또는 그것에 입각한 교리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울 사도의 교훈에 위배”된다(고전14:40)며, 이는 “성령님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은사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교회를 단조롭게 만들 뿐만 아니라, 특정 은사를 얻기 위한 방법론의 횡포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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