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횡단과 통섭을 위하여
1.
‘중국 근현대문학’은 세계문학사의 맥락에서는 제3세계문학에 속하는 주변부문학이고, 한국문학계에서는 비주류문학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문학을 업으로 삼다 보니 본업뿐만 아니라 중심부와 주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문사철文史哲을 근간根幹으로 하는 중국학sinology에 대한 공부 또한 게을리 할 수 없었고 나아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등의 사회과학에 대해서도 공부를 등한시할 수 없다. 이들 공부는 버거운 일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동서와 고금을 아우르는 총체적 관점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선택은 개인의 자유의지였지만 세계문학사와 한국문학계의 담론권력 구조에서 주변이자 비주류인 중국문학을 선택한 순간 내 공부의 운명도 결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문학 분야에서 중심은 영미와 프랑스 중심의 서유럽문학이었고, 한국문학계에서는 서유럽문학과 교배한 한국문학이었다. 중국문학은 2천 년이 넘는 연속적 흐름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학사와 한국문학계에서는 제3세계문학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나마 고대문학 작품 몇몇은 고전으로 인정되어 인구에 회자되기도 하지만, 근현대문학의 경우에는 한국문학계라는 콘텍스트에 부합할 때 잠시 주목을 받는 장신구의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문학은 문자 그대로 중국과 문학으로 구성된다. 전자에 방점을 두면 중국연구Chinese studies의 일부로서의 중국문학이 되고 이때 문학 텍스트는 중국 이해하기의 사례 또는 경로로 자리매김 된다. 문화연구에서도 그것은 서양 최신 이론의 가공을 기다리는 원재료이기 십상이다. 이를 돌파하는 방법으로 ‘지금 여기now here’가 거론되지만 그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니다. 후자에 중심을 두면 보편적인 문학 일반 가운데 특수한 중국의 문학이 된다. 중국 중심의 사유와 문학 중심의 사유가 중국문학 내부에서 화합하기는 쉽지 않아서 지금껏 중국문학은 중국과 문학을 아우르기보다는 양자의 교집합을 대상으로 삼아 연구를 진행해온 셈이다.
‘중국 근현대문학’은 여기에 ‘근현대’라는 범주를 추가한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중국’과 ‘문학’ 그리고 ‘근현대’의 교집합만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영역을 축소했다. 이제 그 울타리에서 나와 중국과 ‘비’중국, 문학과 ‘비’문학 그리고 근현대와 ‘비’근현대를 횡단하고 나아가 이들을 통섭하는 것을 공부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든 공부는 학문의 경계에 놓여 있다. 경계는 담론 권력의 바깥을 주변화 시킨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변의 관점에 철저할 필요가 있다. 주변의 관점은 우리에게 철저한 통찰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간 세계문학의 주변부였던 한국문학은 국내에서 중심부 서양문학과 손을 잡고 기타 문학을 다시 주변화 해왔다. 주변이 그 장점을 온존하면서 중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담론권력 구조에 균열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은 내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부분이 근현대적 분과학문 체계를 뛰어넘어, ‘예술과 학문과 사회 간의 수평적 통섭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인류 앞에 ‘통제사회와 문화사회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는 심광현의 주장을 음미해야 할 지점이다. 지역연구와 문화연구는 분과학문 체계에 갇힌 중국문학 연구에 학제간의 횡단 나아가 통섭의 가능성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2.
‘근현대문학’이란 개념에 처음 생각이 미친 것이 벌써 15년이 넘었다. 20세기중국문학사 담론의 제출과 확산 과정을 보면서 담론에 작용하는 권력을 인지했고 그것이 텍스트를 선택하고 지배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를 이 책에서는 ‘타자화othernization’라 이름했다. 이 지점에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의 만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책을 관통하는 방법론이 있다면 그것은 푸코에게 빚지고 있다. 처음부터 푸코를 독파하고 내면화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 근현대문학의 연구 현장에서 가졌던 문제의식들을 헤쳐 나오다 보니 어느 지점에선가 푸코를 만나게 되었다. 푸코의 담론 개념은 ‘배제exclusion’를 전제하고 있다. 그의 기본적인 가설은 이렇다.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재하는 일련의 과정들―담론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담론의 우연한 사건을 지배하고, 담론의 무거운, 위험한 물질성을 피해 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배제의 과정들’이라 일컬었다. 회의주의와 비환원적 태도를 특징으로 하는 푸코의 시선을 통해 보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문학 등의 근현대 분과학문과 대학 제도라는 관행의 이면에 무엇인가 작용해왔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푸코는 그것을 ‘권력’―‘훈육 권력’, ‘지식 권력’, ‘담론 권력’ 등등―이라 일컬었고 푸코의 학문적·실천적 삶은 권력의 작동 방식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스트주의postism 또는 포스트학postology이 출현하면서 그 이전, 즉 근현대시기에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그)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수도 없이 반복 낭독하고 청취하다가 무의식에까지 각인된 ‘민족nation’도 ‘상상된imagined’(Anderson) 것이고, 오래 전에 형성되어 면면히 흘러내려와 반드시 수호해야 할 것으로 알았던 전통tradition도 ‘만들어진invented’(Hobsbawm and Ranger) 것이며, 심지어 ‘이성’과 함께 근현대를 열었다고 일컬어지는 ‘주체subject’도 ‘구성된consisted’ 것(Foucault)이다. 근현대 분과학문 체계도 포스트주의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속(after, 後)’과 ‘발전(de-, 脫)’의 의미를 절합하는 ‘포스트’의 방법론을 온전하게 전유할 때 중국 근현대문학은 ‘중국’과 ‘문학’ 그리고 ‘근현대’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횡단과 통섭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푸코 및 포스트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빌어 중국 근현대문학사의 관행을 파헤치고 새로운 문학사의 구성을 위해 몇 가지 지점을 점검하는 것이다.
3.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총론으로, 이 책의 대주제인 담론과 타자화의 두 가지 사례를 「20세기문학과 두 날개 문학」 및 「근현대문학사 기점과 범위」로 나누어 고찰했다. 전자는 ‘신문학’, ‘셴다이문학’, ‘진셴다이近現代 100년문학’, ‘20세기문학’, ‘셴당다이現當代문학’, ‘두 날개 문학’ 등 계속 미끄러져온 기표를 일단 ‘근현대문학’으로 고정시키고, 5·4 이후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온 ‘근현대문학사’에 관한 담론을 고찰하는 동시에 그 내부에 온존하고 있는 ‘타자화의 정치학politics of othernization’을 규명했다. 후자는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 중국 근현대문학사의 기점과 범위에 초점을 맞췄다. 기점 면에서 첸리췬 등의 20세기중국문학사가 1898년을 기점으로 제시했고 판보췬은 1892년으로 앞당겼으며 옌자옌은 1890년으로 설정하고 있다. 왕더웨이에 따르면 1851년 태평천국太平天國 시기로 앞당겨진다. 문학사 범위도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삼분법 시기의 셴다이문학사는 좌익문학사였지만, 20세기중국문학사에서 우파문학을 복권시켰고 ‘두 날개 문학사’에서 통속문학을 복원시켰다. 21세기 들어 중국 근현대문학사는 초국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중국문학Chinese Literature’으로부터 ‘중어문학漢語文學. Chinese Literature’으로 그리고 ‘중국인문학華人文學. Chinese Literature’으로 자기 변신하고 팽창하면서 재구성 단계에 들어섰다.
제2부에서는 중국 근현대문학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관건이 되는 몇 가지 주제를 선택했다. 먼저 「언어와 장르」에서는 5․4백화문운동에서 제기된 구두어의 실체와 문제점, 5․4식 백화를 비판하며 전개된 대중어운동과 라틴화운동을 고찰했고, 고대 장르에서 근현대 장르로 전변하는 과정에 대해 고찰했다. 「대중화와 실용이성」은 그동안 배제되었던 통속문학을 고찰하는 핵심어다. 중국 근현대문학 대중화의 허실을 검토한 후 무협소설과 대중화의 관계를 고찰하고 리쩌허우의 실용이성을 빌어 진융 무협소설에 나타난 위군자의 권력욕망과 진소인의 생존본능을 분석했다. 「동아시아 문화 횡단과 공동체의 가능성」에서는 중국 근현대문학사를 보기 위한 동아시아 시야와 관련해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유동과 횡단, 반한과 혐중, 포스트한류와 한국문학, 동아시아 공동체 등을 고찰했다. 마지막으로 「중체서용과 지식인의 문화심리구조」는 문사철 전통이 승한 중국에서 근현대 지식인이 전통의 창조적 계승과 외래의 비판적 수용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기본적인 문화심리구조에 대해 논했다. 주로 중체서용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 민두기의 새로운 해석 그리고 리쩌허우의 서체중용 등을 통해 고찰했다.
제3부는 각론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성찰적 글쓰기와 기억의 정치학」에서는 문화대혁명에 대한 글쓰기를 상흔 글쓰기와 성찰적 글쓰기로 나누고, 그 가운데 성찰적 글쓰기에 대해 고찰하면서 폭력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아울렀다. 그리고 가오싱젠의 작품을 통해 기억의 정치학을 ‘고통의 기억, 기억의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했다. 「포스트사회주의시기의 문학지도」에서는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인 포스트사회주의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한 후 이 시기의 문학지도를 그려보았다. 「포스트냉전시기 타이완 문학/문화의 정체성」에서는 계엄 해제 이후 타이완의 문학/문화의 정체성을 포스트냉전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했다. 먼저 아시아의 냉전과 포스트냉전에 대해 검토한 후 최근 중국 근현대문학사의 타이완문학 기술의 변화를 분석했다. 그리고 계엄 해제 이후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이 문제가 여전히 타이완문학과 문화에 중요한 논점임을 확인했다. 「홍콩문학의 정체성과 포스트식민주의」에서는 포스트식민주의의 관점에서 홍콩문학의 정체성을 논했다. 먼저 홍콩문학을 바라보는 기존의 두 가지 시선을 검토한 후 새로운 시선으로서 포스트식민주의를 제시했다. 「무협소설 전통의 부활과 근현대성」에서는 개혁개방시기 유행한 신파 무협소설이 사실은 1949년 이전에 흥성했던 구파 무협소설과 연계되어 있음을 밝히고 무협소설의 근현대성을 애국 계몽과 상업 오락, 한족 중심과 오족공화, 다양화와 혼성성에 초점을 맞춰 고찰했다. 「도시문학과 상하이 글쓰기」는 포스트사회주의 시기 급속히 진척된 도시화에 초점을 맞춰 도시문학과 상하이 글쓰기에 대해 논했다. 주로 상하이 도시공간에 대한 담론에 중점을 두었다. 아울러 왕안이의 『장한가』를 ‘상하이 민족지ethnography’로 설정해 문학인류학의 가능성을 점검했다.
보론 「한국의 중국 근현대문학 연구」에서는 1970년대까지를 연구의 전사(前史)로, 1980년대를 개척기로, 그리고 1990년대 이후를 발전기로 설정하되, 1990년대 이후의 현황을 중심으로 그 주요한 흐름을 따라 간략하게 정리하고 몇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부록에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20세기 중국문학을 논함」은 1985년 발표되자마자 국내외의 호응을 얻었던 글이다. 「통속문학과 두 날개 문학」은 바로 순문학과 통속문학의 두 날개가 ‘20세기 중국문학사’를 제대로 날게 할 수 있다면서 통속문학을 근현대문학사에 편입할 것을 주장했다. 두 편의 글은 각각 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 발전의 전환점이 되었던 ‘20세기 중국문학’ 담론과 ‘두 날개 문학’ 담론의 선언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느지막이 읽고 쓰는 일에 재미와 의미를 부여하고 한 걸음 씩 걸어가는 사람을 묵묵히 지켜보며 성원해주는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동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읽고 쓸 수 있는 근거와 조건을 제공해준 목포대학교와 그간 함께 해온 동료 교수들 그리고 내 강의를 경청해준 학생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뒤늦게 조우한 『문화/과학』의 동인들은 횡단과 통섭의 안내자이자 동반자다. 생산적이고 치열한 만남을 다짐해본다. 끊임없이 차이를 반복함으로써 불편한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아내 유세종은 나를 되비치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부디 건강을 회복해 더불어 반복의 차이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흔연히 출판을 수락해주신 문학동네 강병선 대표님과 인문팀의 고원효 편집장 그리고 송지선 선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함께 하지 못한 시공간에 대한 작은 보상의 의미가 되길 기대하며 은영과 하영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 책은 한국연구재단(구 학술진흥재단)의 인문저술사업의 지원을 받았고, 지금까지의 공부를 일단락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가고픈 열망을 담았다. 강호 제현의 질정을 기대한다.
2013년 3월
임 춘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