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문서’라는 말
구약성경의 제3부는 성문서[聖文書; 케투빔(Kethubim)]이다. 성문서란 ‘거룩한 문서’라는 뜻이다. 성문서에는 여러 종류의 문서들이 있다. 시편,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 애가,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 룻기 등 11권의 책이다. 이 책들은 거의 대부분 운문(韻文)들이며, 일부는 역사를 서술한 서사시들이다(다니엘서와 역대기 등). 시편은 150편이나 되는 찬송 시로써 종교적인 시이며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어서 시편의 경구(警句)는 일상의 지침서로 쓰일 만하다. 또한 욥(Job)의 책은 선(善)과 신(神)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고 있으며, 다섯 개의 두루마리(Megilloth; 메길로트)로 된 책인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서는 각각의 서로 다른 내용으로 다섯 절기에 읽혔던 책들이다.
2. 성문서의 배열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보존된 고대의 전승은 케투빔의 순서를 룻기, 시편,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 예레미야애가,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느헤미야 포함), 역대기로 배열하였다. 이런 순서는 랍비들이 각 책의 저자의 연대라고 생각한 그 연대순에 따라 배열한 것이다. 즉 룻기는 사사시대에 관한 이야기하면서 또한 다윗의 계보를 말함으로 끝을 맺고 있다. 시편은 대부분이 다윗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욥기는 랍비들 사이에서도 이 영웅의 연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했지만 시바여왕 시대로 귀착되었다. 그리고 잠언, 전도서, 아가서는 모두 솔로몬의 저작으로 알려졌고, 예레미야가 저술한 것으로 여겨진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포로생활의 시작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다니엘서의 주인공들은 그 포로생활을 종결시킨 페르시아 왕 고레스 2세 치하의 초기까지 활동했다. 에스더는 고레스의 통치시대보다는 후이고 에스라의 후원자인 아닥사스다 1세의 통치보다는 전인 크세르크세스 1세(‘아하수에르’ 또는 ‘아하수에로스’라고 불림)의 통치시대에 속하고, 에스라가 제일 늦은 인물로 에스라서와 역대기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3. 3편의 지혜서 - 시편, 잠언, 욥기
3편의 지혜서는 다른 말로 시가서(시와 노래의 책들)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시편과 잠언이다. 둘 다 노래와 시라는 유사한 형태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판이하다. 잠언은 형태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고대근동의 지혜문학과 매우 유사하고, 그 내용도 주로 현실적인 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들이 많다. 시편과 잠언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으나 그 기조는 사뭇 다르다. 시편이 하나님의 왕 되심과 그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진솔한 신앙고백이 주류를 이룬다면, 잠언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철학과 방법론을 제기하는 책이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할 것이다. 마치 신약의 로마서와 야고보서와 같다할 것이다. 그러나 시편과 잠언은 단순한 형식적인 차이를 넘어 본질적으로는 결국 둘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또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이 또 다른 시가서인 욥기다. 욥기의 주인공인 욥의 고난과 극복을 통해 그 주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욥의 고난은 “까닭 모를 고난”이다. 기존의 인과응보사상은 욥기를 읽을 때 철저히 부서지고 만다. 욥기는 그런 면에서 구약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책 중에 하나라 할 것이다.
4. 다섯 두루마리 - 아가,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더
① 다섯 두루마리는 아가,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더의 다섯 책을 말한다. 서로 다른 이 책들은 왜 하나의 묶음으로 묶였을까? 이 다섯 권의 책들이 모두 유대인의 중요 절기들에 낭송되는 “절기의 책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들은 다섯 절기의 책이자, 그 절기를 상징하는 핵심적 의미를 지니는 책이라 하겠다. 따라서 우리가 다섯 두루마리를 읽을 때, 그 책들과 절기들과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면서 읽어보면 더욱 의미가 분명해진다. 다섯 책들은 다음과 같이 절기와 연관되어 있다. 아가-유월절, 룻기-오순절(맥추절), 애가-아브월 9일(성전파괴일), 전도서-장막절(초막절), 에스더-부림절 등이다. 이 가운데 아브월 9일(성전파괴일)과 부림절은 철저하게 유대인들과 관련된 절기이기 때문에 오늘날 신약 성도들에게 큰 의미는 없다(하지만 영적인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나머지 유월절(무교절), 오순절(맥추절), 장막절(초막절)의 3대 절기는 구약뿐만 아니라 신약에 이르러서도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절기들이다. 이 3대 절기는 모두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유월절),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계약의 체결과 교회의 탄생(오순절),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회고와 전승(장막절)이라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② 다섯 두루마리를 읽을 때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왜 이것들을 각각의 절기에 낭송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룻기는 표면적으로는 이방여인에 불과한 룻의 짧은 에피소드 같지만, 그 내용은 이스라엘과 전혀 관계가 없었던 룻이 그녀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주제를 담고 있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룻이 예수님의 조상 족보의 4대 여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룻기는 하나님의 구원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혈연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신약의 교회는 실질적으로 오순절에 시작됨.
5. 나머지 3편의 기록들 -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 다니엘
① 이 나머지 3책들은 성문서 그룹의 역사서로 이해하면 쉽다. 그 중에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는 예언서 그룹에 속한 역사서(사무엘, 열왕기)와 비교된다. 둘 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기조에 있어서는 여러 면에서 다른 점들이 많다. 그것은 열왕기가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면, 역대기는 친 다윗왕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차이를 살펴보면, 열왕기를 비롯한 신명기 역사관의 역사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것을 가장 중요시 한다면, 역대기와 에스라-느헤미야는 다윗왕가에 내려진 하나님의 언약의 관점에서 다윗왕조와 그 뒤를 이어 나타날 메시아왕국에 대한 견해를 중요시 한다. 이 차이를 알고 잘 비교해서 읽다보면 예언서 그룹과 성문서 그룹에 나타난 역사서의 차이점과 강조점을 파악할 수 있다.
② 마지막으로 성문서 그룹에서도 가장 독특한 문헌은 다니엘서다. 다니엘서는 묵시문학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언서 형태를 띤다. 그래서 실제로 70인 역(우리 성경에도)은 다니엘서를 예언서 그룹에 포함시킨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다니엘서를 왜 예언서에 포함시키지 않았을까? 이것은 유대인들의 정서에서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다니엘은 누구인가? 바로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총리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분명 위대하고 대단한 신앙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유대인들은 자신의 왕국을 멸망시킨 나라에서 제2인자에 오른 다니엘을 예언자들의 반열에 올려놓기를 싫어했던 것이다.
③ 그래서 다니엘서는 끝까지 히브리인의 성경분류에서는 예언서의 반열에 속하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진통을 앓다가 결국 성문서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다니엘은 마음에 안 들지만 다니엘서가 가지고 있는 정경성과 예언성을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주로 헬라파 유대인들로 구성된(디아스포라 유대인) 사람들이 기록한 70인 역은 이러한 민족적 감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기에 다니엘을 예언서로 분류하는데 별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정경의 목록의 위치에 따라서도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작용한다는 것은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이 독특하다는 의미도 되겠다. 이것을 잘 이해한다면 우리가 각 성경의 목록들의 위치와 그 상징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결국 각 성경의 목록들의 [삶의 자리]를 찾아봄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