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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종합학교 본관 옆에 위치한 최규식 경무관 동상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폭파하기위해 침투 했다가
발각되어 , 김신조만 남고 모두 사살,, 그과정에서 종로경찰서장 최규식이 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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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특수공작원 31명으로 부터 청와대를 지킨
최규식 경무관, 정종수경사
█ ‘청와대를 지켜라’ 종로서장 故 최규식 경무관
故 최규식 경무관은 1932년 9월 9일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였으며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61년 경찰관이 되었으며 1967년 10월 서울 종로경찰서 서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최규식 경무관이 종로 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이던 1968년 1월 21일, 게릴라전 특수 훈련을 받은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124군부대 특수부대원 31명이 정찰국장 김정태로부터 청와대 폭파와 정부 요인 암살에 관한 지령을 받고 청와대를 기습하는, 일명 1.21 사건(김신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한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기관 단총으로 무장하고 1월 18일 자정을 기해 군사 분계선(DMZ)을 넘어 서울까지 숨어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최규식 서장은 무장공비들이 파주지역에서 남하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22시 10분 경 CIC(미국 육군 소속의 방첩 부대)대원이라는 거동 수상자 30여명이 세검정에서 자하문 방면으로 도보 행진 중인데 검문에 응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수상히 여겨 타격대 및 병력을 배치하였습니다. 22시 35분 경 종로구 청운동의 노상을 빠른 속도로 행진하던 CIC대원 일당이 청와대 인근(현재 청운실버센터 앞)에 도착했을 때 최규식 서장은 그들을 검문하며 막아섰고, 이에 CIC대원으로 사칭한 김신조 일당은 검문에 불응하며 서장의 팔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최규식 서장이 이를 뿌리치고 현장에 배치되어 있던 8명의 경찰관들에게 이들을 체포할 것을 명령하자 뒤따라 오던 김신조 일당들이 외투 속에 감추고 있던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하면서 격렬한 총격전이 전개되었습니다.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 안에도 수류탄을 던져 귀가하던 많은 시민들 중에도 사상자가 속출했습니다. 최규식 서장은 교전 중에 가슴과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서도 “청와대를 사수하라”고 외치며 계속 현지에서 배치 경찰관을 지휘하였으며, 쓰러지면서도 간첩 1명을 사살하는 등 필사의 저지로 뒤따르던 간첩들을 분산 도주하게 하여 결국 이들의 청와대 기습을 완전 저지하였습니다.
▲ 당시 침투한 31명의 북한 특수공작원 중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
▲ 사살된 북한 특수공작원 시신들
최규식 서장은 즉시 경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사망했으며, 군경은 31일까지 소탕작전을 벌여 28명 사살, 1명(김신조)을 생포하였으며, 2명은 북으로 도주했습니다. 당시 김신조는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고 자백했습니다. 도주한 1명은 박재경 북한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 훗날 밝혀졌습니다. 북악산 호경암 등에는 당시 총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 50여발의 탄흔이 남아 그날의 긴박감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 호경암
최규식 경무관은 특정지역을 관할하는 치안 책임자로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투철한 사명감과 희생정신으로 임무를 완수하여 정부는 1968년 1월 25일 경무관으로 특진을 추서하고,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무장 공비의 침투를 몸을 던져 저지한 곳에 표석을 마련하고, 청와대로 가는 길이 바라보이는 이곳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창의문) 고개에는 그를 기념하는 동상과 추모비를 세워 드높은 충절을 기리고 있습니다.
경찰박물관에서 소장·전시 중인 '최규식 경무관의 순직 때 근무복'은 웃옷 오른쪽과 왼쪽 가슴 등 여러 곳에 총탄 자국이 뚜렷하고 왼쪽 팔이 찢겨진 상태로 보존되어,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하기 위해 향토 예비군이 창설되는 등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 위풍당당한 故 최규식 경무관 동상(좌)과 당시 그가 입었던 근무복(우)
█ “현장 경찰의 표상” 故 정종수 경사
당시 무장공비를 저지하였던 8명중 2명이 목숨을 일었는데, 한 명은 최규식 경무관 다른 한 명은 정종수 경사입니다. 정종수 경사는 1935년 7월 17일 경상북도 상주 출생으로 1960년 경찰에 투신하여 서울종로경찰서에서 형사과 재직 중 1.21사태 당시 최규식 서장과 함께 무장공비와 교전 중 순직하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1계급 특진시켜 경사로 추서하고 화랑 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아산시에 있는 경찰교육원은 지난 9월 20일, 故 정종수 경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강의동 정의관 501호를 '정종수홀'로 명명하고 청동 부조상을 만들어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정의관 501호는 경찰청 주관 워크숍, 특강 등 교육 빈도가 가장 많은 강의실로 고인의 업적을 가르치는 정규수업이 이뤄지는 곳입니다. 고인의 장남 창한(56)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역사 속에 잊히는 것 같아 소외감을 느꼈다. 아버지를 잊지 않고 이런 행사를 마련해 주어 맺혔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다. 유가족으로써 감동스럽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 故 정종수 경사의 청동 부조상
정종수 경사는 경찰교육원 정규수업에서 현장 경찰의 표상으로 소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종수 경사는 물론 최규식 경무관을 모르는 대원도 많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이들대해서 알고 자신을 희생하여 임무를 완수하는 고인들의 드높은 뜻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