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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여행 정리 ( 2011.01.06~02.02 날짜별 내용정리)
기본적인 것들 (인도에 대한 기본 여행 정보들)
* 환율 : 인도는 루피를 쓰는데, 환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1루피당 25.5원꼴로 환전한 셈이다.
* 카스트(계급제도) : 인도는 철저한 계급사회라는데, 외국인으로는 겉모습으로 짐작할 뿐이다. 인도인들도 집에서는 카스트를 지키지만, 직장에서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여행하는 동안 지켜보니 부모의 부에 의해서 자식의 삶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유학까지 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6살부터 10루피짜리 꽃을 파는 어린이도 있었다.
* 인도인 먹을 것 : 원래 인도인들은 채식과 육식으로 나뉜다. 기차를 타면서도, 식당에 들어갈 때도 둘을 구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육식이라도 다 먹는 건 아니고 닭고기를 주로 먹고, 달걀, 양고기, 물고기도 먹는 듯 하다.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매운 거랑 한국과 비슷한 점이 먹을 만하다. 나의 경우 중간에 중부지방에서는 힘들었지만, 가지고 간 고추장과 김을 먹을 일이 없었다. 기본으로는 밀가루로 만든 빵인 짜파티(서민음식)와 난(고급)와 쌀, 커리(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카레라이스와는 다르고, 카레에 야채나 고기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달(우리나라로 치면 된장이라 생각하며 콩으로 만든 국), 비리야니(우리나라로 치면 볶음밥), 길거리 음식인 도사(만두 비슷)등, 중국음식(초멘 등), 서양음식(빵, 토스트나 스파게티 등), 한국음식, 일본음식 등 정말로 다양하게 먹을만한게 많았다. 음식값은 나의 경우 한끼 3루피(보통 인도인들의 한끼 만두 비슷한 것 2개)에서 517루피(양고기 스테이크)까지 다양했다. 아무튼 여러 여행지(중국, 일본, 호주등을 가봤다) 중 먹기에 제일 좋은 곳이 인도다.
# 단, 물은 무조건 사먹어야 한다. 한번 식당에서 주는 물을 먹었다가 곧바로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해야했다.
# 술은 맥주만 먹어봤는데 한 병에 100루피쯤으로 다른 음식에 비하면 비쌌다. 그리고, 흰두교에서 술을 금지하다보니 술파는 가게가 따로 있으며, 흔하지 않다. 나는 술가게는 인도여행동안 4번쯤 보고, 비싼 음식점에서는 맥주 등을 팔았다.
# 짜이와 라시 : 짜이는 영국에서 들여온 홍차에 우유 등을 넣고 끓인 것인데 가난한 인도인들도 하루에 몇잔씩은 마시며, 보통 3~5루피쯤 한다. 나도 첨엔 잘 안먹었는데, 나중에 갈수록 길들여지며 맛있었던 거 같다.
라시는 요플레와 우유를 섞은 발효음료 생각하면 될 듯한데 인도에서 자주 어디에서나 있는 음료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플레인 라시, 바나나 라시, 커피 라시(먹고 뱉을 뻔했다), 다른 과일 라시 등이 있는데, 보통 30~50루피쯤 됐던 거 같다.
* 인도에서 당하기 쉬운 사기 : 인도사기유형 중 가장 흔한 것 - 그 곳 없어졌다, 기차표가 없다, 내가 싸게 잘 해주겠다, 내 가게인데 내가 잘해주겠다 --> 믿지 말고 직접 해결하면 된다.
* 인도 화장실 : 화장지가 없으며 (대신 수도꼭지와 컵이 있어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볼일을 본 후 왼손과 물로 닦는다) 매우 더럽다. 정말 더러운 곳은 문도 안닫히는 곳에 그냥 바닥만 있다 - 알아서 소변만 본 후 거기서 흘러가게 두라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에게는 더러워보이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더 위생적일 수도 있다.
* 인도인의 영어와 언어 : 북부의 경우 대부분 힌디어를 하고 영어사용자는 생각보다 적었다. 하지만, 여럿 있으면 그 중에 하나는(10명쯤 있으면 1명이상) 영어를 할 줄 알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기본영어는 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안된다. 그러나, 인도와 한국인의 영어는 매우 다르다. 쓰면 다 통하지만, 대화로 긴 영어회화는 소통이 안된다. 짧은 단어위주의 영어를 해야한다. 인도 언어가 몇 백개도 넘는다고 하는데, 인도가 개방이 되고 티브나 영화가 대중화 되면서 힌두어 사용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하지만, 남부지역에서는 흰두어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커서 남부와 북부 사람이 만나면 영어로 대화한다고 한다.
인도영어 예시. 8 -에이토, 21 - 투엔티원
필수영어 - How much, number(숫자), Hello, Thank you, Where ***, Left, Right,
+ 몸짓들
내가 배운 힌디어 : 나마스떼(안녕하세요), 단야왓(고맙습니다) ... 나머지 못 알아도 됨.
단 돈을 절역하려면 흰두어를 배우는 게 유리함. 깍아주세요(깜까지에), 숫자 등
* 인도에서 길묻기 - 서로 사용하는 영어가 다르며, 모르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는 인도인들 때문에 오히려 고생을 많이 한다.
예. 1) 질문 : 뉴델리 기차역 어디에요? -답변 : 직진해서 좀 가다가(보통 거리나 시간에 대한 기준이 없고 말해도 못알아듣는다) 왼쪽으로 돌아서 어쩌구 저쩌구
2) 질문 : (어느쯤 가다가) 기차역 어디에요? - 답변 : 직진해서 왼쪽으로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여러번 반복.... 짧으면 3번쯤만 물어서 해결, 잘못하면 더 갔거나 잘못 알려줘서 7번도 넘게 물어야 해결. 그러다보니 숙소든, 식당이든, 기차역이나 버스역이든 도착만 하면 기쁘다.
* 교통 : 장거리는 기차, 단거리는 오토릭샤가 기본이며, 다양한 카스트(계급제도)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교통수단과 요금이 있다. 예를 들어 뭄바이와 바라나시를 비행기로 이동하려면 우리나라 돈 20만원, 보통 기차로 이용하려면 1만원이하. 델리 시내서 붉은 성이라는 관광지로 가려면 오토릭샤 1300원, 불편하지만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면 200원 이하. 그리고, 인도의 도로는 혼란 그 자체이다. 선은 그려져 있는데, 소와 사람, 자전거, 오토릭샤, 오토바이, 버스, 트럭 모든 게 뒤섞여 먼저 가는 사람(차)가 우선이다. 6차로이건 2차로이건, 시골이든 수도인 델리든 상관이 없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느린 차가 우선이며, 도로 건너는 것도 눈치껏 알아서 해야한다. 처음엔 건너기가 어려워 (6차로로 되어있는데 신호가 없다고 생각해 볼 것) 인도인들만 따라 건넜는데, 나중에는 익숙해 졌다.
# 오토릭샤(보통 릭샤라 부름) : 인도와 중국에는 흔한데.. 우리나라로 치면 오토바이를 개조해 뒤에 3사람정도가 앉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당연히 문이 안닫혀 바람이 술술 들어오며, 인도인들은 7명이 타기도 한다. 인도인들도 자주 이용하지만, 외국인들도 시내를 이용할 때 자주 이용한다. 중요한 것은 흥정이다. 흥정을 해도 인도인보다 2~3배는 내야한다고 하는데, 흥정을 안하면 몇 배를 내기도 한다. 짧은 거리는 10루피 부터이고, 보통 30~50루피쯤 냈던 거 같다.
근데, 보통 여행객들이 오토를 싫어하는 게 너무 사람들을 쫓아다닌다. 안탈거라고 얘기하는 데도 얼마나 타라고 하는지, 아그라에서는 4번이나 안탄다고 얘기했는데도 계속 쫓아와서 가라고 소리까지 쳤다. 우리나라로 치면 택시 하나 세워놓고 자기네 택시 싸다고 타라고 계속 쫓아다니는 것이다. 인도여행 중 제일 싫은 게 오토릭샤의 호객행위였다. 그럼에도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하루 2~3번은 기본으로 타게 된다.
# 사이클 릭샤 : 영화 등에서 보이는 자전거 릭샤. 뒤를 개조해 2~3사람이 앉을 수 있는데 오토릭샤보다 느리며 요금이 싸다. 나의 경우 바라나시나 아그라에서 주로 이용했고, 10~ 30루피정도 했고, 20분이내의 거리에서 이용할만 했다.
# 지하철 : 델리에 있었고 2번 타봤는데, 지하철로 이동한 거리는 1, 2정거장 이었는데, 지하철 타기전과 후에 이동할 거리가 더 멀었고, 요금은 6루피쯤이었던 거 같다. 오토 릭샤 흥정하기 싫어 탔는데 릭샤가 더 효율적이다.
# 버스 : 시내버스(도시내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요금도 저렴), 시내서 교외로 가는 버스(1시간 내외로 가며 요금은 10~50루피쯤이었던 듯),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공영 버스(200키로쯤 이동하는 데 6시간 걸린다. 중간에 서기도 하고, 원래 차도 느리지만, 소와 릭샤 등 혼잡한 거리를 가다보면 엄청 오래 걸린다. 중간에 설 때 화장실을 가라고는 하지만, 너무 더럽기 때문에 여자들은 거의 포기하고 앉아있는다. 그러다보니 버스를 타기전후에는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 먹어야 한다. 요금은 매우 싸다. 아그라-델리가 6시간에 150루피 쯤이었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사설 버스 (대부분 침대가 있으며 다양한 버스에 요금도 다양하며, 기차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기차표 예약을 하지못한 사람들이 이용한다. 대신 기차에 비해 연착이 안되며, 시간은 정확하게 지키는 편이다. 화장실은 역시 최악이다.)등 다양한 버스가 있다.
* 기차 타기와 시간 보내기 : 인도에서 기차를 예약하고 탈 줄 알면 인도여행이 가능해진다. 예약은 주는 표에 영어 또는 흰디어로 해야하는 데, 쓸 게 많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단 서두르기는 해야 한다. 그리고 플랫폼도 많고(뉴델리 역은 20개), 차량도 많아서(칸 수가 20개는 넘어보였음) 최소한 1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큰 역의 경우 차가 30분쯤은 머물러서 문제가 안되는데, 작은 역은 5분쯤만 정차하다보니 미리 잘 확인해서 기차를 타야한다. 기차 연착이 많은데 방송으로도 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고 전광판에도 해준다.
또한 기차역에는 짐 맡기는 곳(클럭 룸), 식당, 숙소, 대합실 등 이용할 게 무지 많다. 참 거지(인도인들은 그렇겐 안부르는 데 마땅한 말이 없다) 들도 많다. 모든 역에 항상 가족을 포함 몇 백명은 자고있거나 돈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다. 안그래도 복잡한 기차역에서 항상 이 사람들을 피하면서 다녀야 하니 머리가 더 복잡해지고 항상 냄새가 난다.
기차에 타서는 시간을 잘 보낼 줄 알아야 한다. 나의 경우 짧은 경우 6시간, 긴 경우 19시간쯤 걸렸다. 사람도 구경하고, 음식도 먹고, 책도 읽고, 잠도 자고.. 그래도 시간은 무지무지 남는다. 나중에 보니 가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다른 기차와 엇갈려서 기다리는 시간, 역에서 정차하는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았다. 근데, 생각보다 시간은 잘 간다. 심심하면 인도인들과 안되는 영어하다보면 시간은 가게 되어있다.
* 기차 예약 : 최소한 하루 전에, 바라나시처럼 붐비는 구간은 1주일전에는 해야 예약이 가능하다. 또한 좌석 등급, 기차 이름과 번호, 날짜와 시간, 주소 등 쓰는 게 많다보니 외국인 배낭여행 객들이 겁을 먹는데, 외국인 전용창구(평일 8시~저녁, 주말 8시 ~오후2시까지만 운영)를 이용하면 친절한 직원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좌석이 없는 경우 외국인에 특별 배정된 것을 이용할 수도 있고, 탓깔표 (출발 이틀전 아침 8시 30분에 가면 100루피쯤 더 되고 슬리퍼 침대석을 구할 수 있다). 이걸 모르고 여행사 등에 맡겼다가 착한 여행사를 만나면 50루피의 수수료를 내면 되지만, 완전 바가지를 쓸 수도 있다. (나의 경우 400루피쯤 낼뻔)
* 인도 기차의 좌석 종류 : 20개쯤 되는 차량을 붙여놨는데 반쯤이 SL, 나머지는 화물칸, 좋은 칸, 싼 칸이 골고루 있다. 우리나라 기차처럼 칸에서 칸으로 이동이 안되며, 각 칸마다 화장실과 세면실이 있는데 매우 더럽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화장실 가기 싫어 기차에서 먹는 것을 꺼릴 정도이다.
@ Ⅱ : 좌석인데 번호가 지정안되고 좌석보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서서 가려는 각오로 타야하므로 6시간 이상을 이동하는 외국인이 타기는 거의 불가능한 듯 하다, 그래도 돈이 없는 인도인들은 짐 놓을 곳도, 설 곳도 부족한 이 기차를 탈 수 밖에 없다
@ SL : SLEEPER의 약자, 한 줄에 3개(밤에는 상중하 침대, 낮에는 중과 하가 합해서 좌석 3개가 된다.)의 침대가 있고, 에어컨이 되지 않는다(난 겨울이라 상관없었지만, 겨울 이외에 여행하면 엄청 더울거 같다.). 대부분의 배낭여행객이 이용하며 나도 거의 이것을 이용했다. 한 칸에 6개의 침대가 있어 마주보며 다닌다.
@ 3A( 한 칸에 6개의 좌석이 있고 에어컨이 되며 이불과 커텐이 배치되었다. 겨울이라 에어컨은 필요없었지만, 요금이 SL의 2배가 넘보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인도인이나 외국인이 이용하므로 훨씬 조용하고 깨끗했다)
@ 내가 안타본 차들 : 2A( 한 칸에 4개의 침대가 있고 에어컨이 된다. 요금은 3A의 2배가 넘는다)외 특별 열차나 비싼 좌석도 많다. 비싼 궁전열차는 비행기 값에 버금가는 듯한데 난 모른다.
☆ 인도기차 승차, 하차시 주의점 : 승차시 차 번호와 출발역, 도착역 등이 영어로 잘 보이는 곳에 쓰여있지 않다. 잘가온에서는 이것 때문에 기차를 놓쳐서 3일을 더 머물를 뻔한 적오 있었다.
하차시에는 더 주의해야 한다. 도착역에 대한 안내 방송도 없고, 표지를 세워놓은 것도 아니라 자기가 도착할 역을 알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기차 연착이 많으므로(1시간은 우습고 24시간 이상이 연착되어 취소된 적도 있었다) 출발시간과 도착시간만으로 승차역과 하차역을 알 수도 없다. 나의 경우 예정 도착시간을 일단 확인하고, 주위 인도인들에게 여러번 말해놓기도 하고(내리는 역을 말하고 내리는 역에서 알려달라고 말해놓으면 그 중 하나는 제대로 말해준다), 핸드폰(자동로밍을 해놓으니 도시가 바뀔때마다 핸드폰으로 표시가 되었다) 을 이용해서 내릴 수 있었다.
* 인도의 종교 : 대략 흰두교(80%), 이슬람교(10%), 나머지 10%(기독교, 자이나교, 시크교, 불교 등). 그리고 흰두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삶이다. 우리식의 기독교나 불교를 생각하면, 휜두교는 이해할 수 없다.
* 인도의 동물 : 흰두교는 모든 동물을 인간의 환생으로 보기 때문에 거의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 특히 소는 신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다보니 인도의 모든 곳은 동물의 세상이다. 수도인 델리를 비롯 큰 도시에도 소, 돼지, 개, 염소, 원숭이, 비둘기 등이 항상 존재하며, 사람들이 괴롭히지 않으므로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괴롭히지 않는 대신 주인없는 동물도 많아서 더러운 동물도 많다. 그 중 인도인들이 절대로 안먹는 것은 소(흰두교)이며, 닭과 양은 인도인들도 많이 먹는 편이고, 외국인들 식당에는 돼지도 있다.
세계 7대불가사의며, 세계문화유산인 타지마할에도 비둘기가 있고, 붉은 성에도 개와 소가 있다.
* 인도의 숙소 : 숙소도 카스트만큼 다양하다. 호텔 가격은 보통 2인실기준으로 한국돈 1만원내외인데, 비싼 호텔은 시설이 무지 좋은 대신 몇 십만원으로 한국보다도 비싸다. 싼 곳은 바퀴 나오는 것은 기본이고, 화장실이 쓰기 싫을 정도로 더러우며 난방시설은 전혀 없으므로 1월에 갔을 때는 춥다. 그나마도 최소한 저녁 전에는 미리 예약해야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밤에 늦게 도착하면 방이 없다는 핑계로 바가지 쓰기 일쑤다. 나의 경우 주로 싼곳을 썼는데 한 사람 기준으로 하루 200~400루피쯤 썼다. 당연히 수건 등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 안되고, 자물쇠 장치 없는 곳도 많다.
* 입장료
외국인 : 타지마할(750루피-19000원), 붉은 성과 꾸뜹미나르 등(250), 나머지는 100이하
인도인 : 타지마할(20루피-500원), 붉은 성과 꾸뜹미나르 등(10),
-- 나보다 먼저 인도에 가서 나에게 배낭여행지로 인도를 추천한 내 친구는 요금차이가 기분 나빠서 타지마할에 안 들어갔다고 한다. 어떻게 해석할지는 각자의 몫인데, 물가차이나 인도인들의 생활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고, 단순히 비교하면 내 친구처럼 기분나빠서 들어가기 싫어진다.
* 내 일행 : 초반 일주일 박미희(27살)와 김영임(47살. 큰언니라 불렀다)
중간 박미희(27살) 포함 여자 2명과 남자 3명(중학생, 20대 호주 휴학중인 대학생, 30살)
바라나시로 갈 때부터는 진짜 혼자
* 인도의 여성관 : 인도와 중국의 차이점 중 여성에 대한 부분이 많이 달랐다. 중국은 근대 이전에도 원래 남녀평등이 잘되어 있으며, 사회주의로 인해 그게 더 공평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잘못해서 남성이 성추행범으로 몰리면 감옥가야할 것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으로 불쾌한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인도는 원래부터 여자를 남성보다 낮은 존재로 보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흰두교의 유명한 절의 숭배대상은 링감(남자 성기)이다. 그 전에는 외국인에게는 개방도 안되던 바라나시의 황금템플, 바라나시, 엘로라 어디를 가도 중앙에 모셔진 것은 링감이다. 반대로 여자는 시집갈 때는 지참금을 내야 하는 존재(우리나라 혼수 비슷한데 생각보다 금액이 많아 심각한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아들을 낳기 전에는 사람으로도 인정 못 받는 존재, 심지어 30년 전까지도 남편이 죽을 때 따라 죽게 화장하는 사티라는 제도가 있던 나라이며, 현재도 과부나 결혼 안한 여자는 사람으로도 취급 못 받는 존재다. 아마도 이슬람 문화가 작용한 탓인 듯 하다.
그런 여성관에 같은 인도인 여자들에게는 엄격한 카스트와 관습을 적용해야 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외국인 여성들은 모든 사람을 자유러운 서양인들처럼 생각하다보니 외국인 여성에게 성적 농담을 던지거나 가끔은 성추행에 해당하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나이가 있어 덜했지만, 젊은 아가씨들은 가끔 좋지 않은 경험들을 했다.
1월 6일(목) : 혼자서 무사히 인도에 도착하고 일행 만난 후 인도 첫날은 공항 노숙
* 전날까지 조카랑 놀고 뒤척이다가 4시쯤 깨어 멀미할까봐 컵라면 하나 먹고 짐 다시 한번 점검한 후 10분쯤 영등포역으로 걸어가서 5시 공항버스 출발
* 6시경 공항 도착, 혼자라 겁먹었었는데, 막상 어려운건 없었고 8시 55분 비행기인데 시간도 많이 남았다. 2시간전 도착하고, 인터넷 비행기표 예약한 것과 여권, 비자만 있으면 문제 없다. 혼자라고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짐은 인천서 부치면 인도 델리 공항으로 도착하니 중간에 쓸 물건은 내가 챙겨야 한다.
시간도 남고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김치찌개 먹고도 (공항밥은 김치찌개도 9천원으로 비싸다) 시간은 많이 남았다. 인도 가서 걱정되어 멀미약과 감기약원도 샀다. 항공기 탑승은 40분전쯤에 했다.
* 상하이 공항까지 비행기타기 : 중국동방항공 비행기로 2시간쯤 걸려 상항이 공항갔다. 대부분 한국인 승객에, 한국인 승무원이 있어 겁은 전혀 안났고 문제도 없었다.
* 상하이 공항에서 : 인도 델리까지 타는 비행기 타느라 상항이 공항에서 잠시 머물렀다. 환승하는 곳에서 좀 해맸다. 미리 얻은 정보에서는 항공사에서 알아서 해줄거라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손님이 적어 안내가 없었던 거였다), 안내하는 사람이 없고 상하이 공항의 중국인과 나의 영어가 안통해 (중국인들은 공항에 근무해도 영어를 잘 못하는 편이다) 중간에 좀 해매다가 (그때는 이러다가 인도 못가는 줄 알았다) 비행기 타는 게이트로 갔다. 시차 차이가 있었는데 3시간쯤 있었던 거 같고 화장실 외에는 움직이지 앉았다.
* 인도 델리 공항으로 비행기타기 : 5시간 30분쯤 걸렸고 인도 시간 저녁 8시경 도착.
한국인들은 거의 없고 승무원도 인도와 중국인이고. 살짝 겁나기 시작했는데 옆자리 앉았던 호주 사람도움으로 인도 입국카드도 쓰고 식사도 먹을만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거의 잤다.
* 인도 델리공항에서 : 입국 심사하는 데 겁 좀 먹고 시간도 걸렸지만 무사히 도착(기본 영어만 알면 되고 모르면 옆에 있는 한국사람들에게 물으면 된다). 짐도 잘찾고 까페서 같이 기다리는 사람들 만날 때까지 밥도 간단히 먹고 환전도 했다(당하는 사람은 공항서 환전할 때 사기도 당한다고). 그러고 나서는 공항 의자에서 3시간쯤 다른 일행들을 기다렸다. 인천 출발, 델리 일행 들 도착때까지 괜히 혼자 겁먹고 쫄았던 시간이었다. 배낭 없어질까봐 겁나서 배낭 가지고 다니면서 화장실까지 다녔고, 여행정보서 얻은 사기당한 경험들로 인해 처음 보는 인도인들이 나를 속일까봐, 혼자서 상하이나 델리서 무슨 일 당할까봐 무지 겁났다. 다행히 다른 비행기로 온 일행들 무사히 만났는데(밤 11시경), 그 사람들이 얼마나 반갑던지 몰랐다.
* 숙소 예약안하고 밤에 공항 나가면 숙소도 못 구하고 사기당한다고해서 공항 휴게실 의자에서 하룻밤을 세웠다. 호텔이나 한국식당의 공항 픽업서비스를 신청할 수도 있었는데, 박미희님 주장을 따르기로 했다가 인도 첫날부터 공항 노숙을 하느라 피곤했다.
1월 7일(금) : 공항서 하룻밤 새운 후 기차표 끊고 델리 숙소 잡은 후 간디 박물관 등 관광
* 모두가 인도가 초보인 한국인 여자 4명이서 새벽 6시쯤 프리페이드 택시 이용해서 뉴델리역으로 갔다. 택시는 좁고, 바깥 풍경은 첨이고, 기차역은 무지 크고 복잡하고, 우리를 부르는 호객군(주로 릭샤-오토바이에 손님태울 칸을 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은 너무 많고 첫날 델리는 혼란 자체였던 거 같다.무사히 가서 바라나시행 기차표를 구했다. 인도기차 예약을 하려면 여권, 기차 번호, 시간, 좌석종류, 숙소 주소등 다양한게 필요한데 다행히 외국인 전용에서는 날짜와 좌석종류만 정하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나중에 경험한건데 인도에서 기차표를 구하려면 미리미리 서둘러야 한다. 6일전에도 좌석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운좋게 기차표를 구한 거였다.
* 인도방랑기서 아점을 먹으면서 여행정보 파악을 했다. 처음오는 사람들끼리 인도를 해매다가 한국식당 가서 한국인들 보니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환전도 안했었는데 젊은 한국인 남자대학생 만나서 우리 밥값 내라고 한 후 환전소와 숙소도 안내하라고 했다.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맛은 한국과 거의 비슷했는데, 배추가 아닌 인도 무로 담근 김치였다.
* 간디 화장터 및 박물관 관람 : 첨으로 릭샤를 타고가서 간디 박물간과 화장터를 관람했다. 간디는 인도건국의 아버지인 사람이라 모든 돈에 간디 초상화를 넣을 정도인데, 박물관과 화장터는 생각보다 초라했다. 그리고 인도는 신발보관하고도 돈을 받는다. 원래는 0.5루피면 되는데, 이때는 잔돈도 없고 몰라서 10루피나 냈다. 신발을 보관해주고 얼마냐고 물어보면 외국인들에게는 원하는대로 내라고 한다. 그럼 대부분 0.5루피보다 훨씬 큰 돈을 낸다.
* 붉은 성 관람 : 간디 화장터 구경 후 1시간쯤 걸어서 붉은 성에 도착. 붉은 성 관람
붉은 성은 15세기쯤 인도를 통일한 무굴제국의 성인데 전체 넓이와 건물 크기는 크지만, 보존 상태는 좋지 않았다. 대부분 건물이 기둥과 겉만 남아있고, 속은 거의 텅 비어있었다. 그런데, 전날 공항서 노숙을 한데다, 간디 화장터네서 붉은 성 벽이 보여서 가까운 줄 알고 입구를 찾아 너무 오래 걸은지라 무척 피곤했다. 구경은 뒷전이고 배가 고파 식당을 찾는데, 겨우 하나있는 식당 찾아서 맛없는 밥 먹은 후 붉은 성을 관람했다.
* 코넛 플레이스 구경과 저녁 : 델리의 신시가지인 코넛 플레이스 구경하면서 지나다니는 노점에서 간단하게 저녁 해결
* 처음으로 간 인도 호텔 : 빈센트. 3인실 650루피인데 첨엔 따뜻한 물이 나온다 했는데 차갑지 않은 물이 나올뿐이었고, 창문은 유리가 깨져서 뭐라고 했더니 신문으로 막아줬고, 이불은 더러웠고 깨끗하지도 않아 가지고 간 침낭을 펴고 잤는데도 무지 추웠고 나중엔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잘때는 바깥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려 시끄러워서도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었다.
1월 8일(토) : 꾸뜹미나르와 후마윤 무덤 구경 후 바라나시 기차 기다리며 노숙의 길로
* 늦게 까지 잔 후 기차역에 짐을 맡겼다. 클락 룸이라는 명칭도 몰랐고, 구체적인 방법도 몰랐으며, 배낭을 매고 간 거리도 꽤 오래돼서 역시 쉽지는 않았지만, 짧은 영어로 성공은 했다.
* 코넛플래이스로 이동 후 좋아보이는 식당에서 인도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먹은 인도식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마살라 도사였던 거 같고, 커피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 꾸뜹미나르 구경하기로 하기 위해서 배낭여행 책 정보대로 버스를 타기위해 임페리어 호텔 앞에서 기다렸다. 반대편 쪽 차량을 3대나 보내고 겨우 505번을 탔더니 반대쪽 방향 버스를 타라고 해서 다음 역에서 다시 내린 후 원래 정거장 반대편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기다리니 1시간은 걸렸다. 뒷문은 열리고,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 1시간쯤 걸려서 꾸뜹미나르에 도착했다. 가는 데만 2시간 이상이 걸린 것이다.
시내버스를 타니 영어는 더 안통했다(다른 말은 안통하고 꾸뜹미나르 라스트 스테이션, 텔미와 하우머치만) 다행히 꾸뜹미나르가 마지막이라 잘 도착해서 구경했다.
* 꾸뜹미나르는 이슬람 국가인 무굴제국이 인도를 통일한 후 세운 승전기념비인데, 인도인교들은 그 승전비를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붉은 성도 영국과의 전쟁에서 대부분 파괴되었을 정도로 대부분이 흰두교인 인도인들은 무굴제국의 유물을 파괴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일제시대 건물들을 그대로 둔 것이다. 델리 외곽에 있어 조용히 관람할 수 있고 높이가 매우 높아서 볼만 했다.
* 다시 403번 버스를 타고 델리 시내로 들어왔고 안되는 영어로 내리는 곳과 길 물어가면서 어렵게 후마윤 무덤에 도착했다. 버스 차장 비슷한 사람에게 우리 후마윤 무덤에 내려달라고 하니 알았다고 했는데, 나중에 말없이 그냥 내려버렸다. 결국 버스 운전사에게 길을 물었는데, 내린 곳에서 30분쯤은 걸어야 후마윤의 무덤이었다.
* 타지마할의 전 무덤인 후마윤 무덤 관람하는데, 나중에 본 타지마할에는 못미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크고 멋졌다. 하지만, 그것도 몸이 피곤하니 대충대충 볼 수 밖에 없었다.
* 릭샤를 타고 다시 기차역 근처로 온 후 보통 인도인들이 먹는 식당에서 50루피짜리 탈리(인도식 백반. 밀가루 빵인 짜파티, 커리, 달 등)와 물로 식사를 했다.
* 다시 기차역으로 가 짐을 찾고 플랫폼을 찾아 (뉴델리 역은 플랫폼-철로-이 거의 20개쯤 이었던 거 같다. 말이 20개지 20키로쯤 되는 배낭을 가지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기차역 구조를 알아가며 플랫폼을 찾아가기도 쉽지는 않았다) 1시간전쯤 바라나시 행 플랫폼에 도착했다.
* 도착해서 플랫폼 맞느냐고 했더니 원래 기차가 저녁 6시쯤인데, 다음날 새벽 2시에 간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일행 3명은 사기치는 거라고 다른 곳으로 갔더니 진짜였다. 짙은 안개로 기차가 연기된 거 였다.
거기서 원래 일본인인데, 1950년대 티베트 불교를 믿었다가 달라이 라마와 함께 중국을 떠나 현재 네팔에 살고 있으면서 달라이라마를 보러 바라나시로 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 (형제분들 가족이라 7~8명쯤 됐던거 같다) 을 만났다. 릭샤꾼등에 벌써 몇 번은 당할 뻔하고 바가지도 쓴지라 현지 인도인들은 믿을 수 없었는데, 달라이 라마를 믿는 일본인은 믿을 수가 있었다. 다행히 그분들이 우리보다 영어가 잘돼고 흰두어도 조금은 해서 그분들 옆에 있으면서 기차 정보를 얻었고, 기차가 처음인 우리들은 그분들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우선은 2시로 연기된 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배낭을 놓고 그 위에 앉아서 잠을 잤다.
1월 9일(일) : 바라나시행 기차를 기다리며 뉴델리역에서 하룻밤을 꼬박새운 후 결국에는 기차가 취소되서 가지도 못하고 조디뿌르로 떠난 날
* 새벽이 되니 다시 또 연기되어 새벽 5시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달라이 라마를 믿는 그분들과 함께 기차 노숙을 했다. 기찻길 옆이라 바람을 그대로 맞아 날씨가 추워 있는대로 옷을 껴입고 인도인들이 담요덮고 자길래 우리는 침낭을 입고 숄을 둘러쑨 후 잤다(우리나라 기차역인데 엄청 더러운 곳에서 엄청 많은 사람들과 그대로 잤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인도인들에게는 그런 우리가 구경거리였는가 보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외국인들은 미리 정보를 얻어 숙소에서 자다가 나오거나 춥지않은 대합실에서 기다렸는데, 우리보다 고수라고 생각했던 달라이 라마 믿는 그 분들도 인도가 몇십만년 이었던 거다)
자다가 시끄러워 깨보니 총을 든 군인들이 우리를 보며 쑤근거리고 있다가 내가 다시 숄을 뒤짚어 쓰고 자니 다시 쑤근거리며 킥킥거린다.
방송은 흰두어와 영어로 연착시간을 알려주는데 절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플랫폼이 20개쯤이다보니 우리게 방송되고 있는지도 몰랐고, 정말이지 인도의 영어와 우리의 영어가 달라서 방송의 영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 달라이 라마를 믿는 그분들과 밤을 지새는데 이번에는 다음날 낮 12시로 연기되었다고, 아무래도 대합실을 가야겠다고 해서 따라갔다. 그것도 다시 10여개의 플랫폼 육교를 건너 반대편에 있는 곳이라 가깝지는 않았다. 근데, 1시간도 못되어 이번에는 기차가 아예 취소되었단다. 정말이지 미칠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인도가 원래 그렇다는데.
* 다시 외국인 전용창구 역으로 가서 바라나시 기차를 취소하고 다음 기차를 예약했다. 바라나시는 물론 우리가 가려던 자이살메르, 자이뿌르 등 모두 침대칸 자리가 없어서 결국엔 유일하게 기차표가 있는 조디뿌르 기차를 예약한 후 외국인 전용창구에서 쉬었다.
*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 쉬면서 우리 일행 둘은 기념품 등을 사러가고 난 짐을 맡고 있었다(하룻밤을 기차역서 노숙한지라 배낭을 모두 매고 델리를 구경하기에는 내 체력이 좋지않았고, 나중에 다시 델로로 들어올 거였기에). 맡는 김에 이탈리아 2명(사실은 몇시에 돌아온다는 말도 없이 우리 일행 중 1명에게 우리가는데 너희 여기 있냐고 하더니 그냥 가버렸다)과 한국인 2명(1~2시간쯤 걸릴거라길래 그전까지는 있을거라고 맡기라 했다)도 있을거면 짐을 맡아달라고 하길래 맡아 주었다.
* 그런데, 오후 2시가 되니 다 나가라는 거였다. 그래서 안되는 영어로 이탈리아인들이 짐을 맡겼는데,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뭐라고 하는데 대충 우리는 2시면 닫아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일행을 포함 7명의 짐을 갖고 나와(다행히 옆에 있던 한국인들이 짐은 옮겨 주었다) 외국인 전용창구 앞에서 기다렸다. 말이 외국인 전용창구이지 앞에는 인도 거지들이 엄청 많고, 엄청 더럽다. 더군다나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한국인이지만 이름도 모르고, 심지어 얼굴도 잘 기억이 안나는 외국인들이 짐을 찾으러 오기만을 기다리는 기분이란... 우리 일행에게는 문자를 했더니 그래도 1시간쯤 지나서 왔고, 1~2시간이면 온다는 한국인들도 우리가 돌아가며 밥을 먹고나서 1시간쯤 지난 후 왔고, 5시간이 지나도 오지않아 우리가 짐을 놓고 그대로 갈까와 식당에 맡기고 갈까를 고민하게 하던 이탈리아인들도 결국엔 돌아왔다. 아마도 닫힌 문 앞 배낭에 앉아 기다린 시간도 3시간은 됐던거 같다.
* 다시 저녁을 먹고 이번엔 조디뿌르 기차를 타러 올드델리 역으로 가야했다. 인도 릭샤꾼들을 상대로 흥정을 하고 싶지가 않아서 일행 중 김영임(이하 큰언니로) 큰언니의 의견을 들어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그런데, 인도에 쉬운 것은 없었다. 뉴델리역 지하철이라 가까운줄 알았던 지하철 역은 기차역 플랫폼 20개를 육교로 넘어 있었고, 입구도 3번은 물어야 탈 수 있었으며, 짐 수색을 받고, 다시 물어물어 지하철 표를 구입한 후, 또다시 여러번을 물어야 지하철을 타고 내리며 올드델리 역을 찾을 수 있었다. 또 입구서부터 타는 곳, 내려서부터 기차역까지의 길은 배낭을 매고 걷기에는 무척 힘든 길이었다.
* 올드 델리 역에 도착하니 저녁 6시쯤였고 조디뿌르행 기차는 저녁 8시쯤이었던 거 같다.
다행히 하룻밤의 경험으로 인해 기차를 타는 방법에는 익숙했다. 전광판 보고 플랫폼 번호와 출발시간도 알 수 있었고 쉴만한 장소도 찾을 수 있었으며, 역내 식당도 찾을 수 있었다. 또 너무 다행스럽게 조디뿌르행 기차는 안개가 끼지않아 연착되지도 앉았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또 연착될까봐 무지 걱정을 했고, 제대로 기차를 탔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밤 기차는 문이 그대로 열린 상태라 춥고 더러웠다. 특히 화장실은 얼마나 덜컹거리고 더럽던지 정말 가기 싫었다. 하지만, 졸리면 아무리 추워도 자게 되어 있는 법이다. 그리고, 결국 그날쯤부터 10일쯤 감기에 걸렸던 거 같다.
1월 10일(월) : 드디어 복잡한 델리를 벗어나 조드뿌르 구경
* 새벽 6시쯤 기차가 주드쁘르에 도착하여, 자이살메르 기차 예약한 후 아침 먹고 오토릭샤 하루 전세내어(150루피쯤) 조두뿌르를 구경했다
* 시장구경도 하면서 숄도 사고, 블루시티(성에서 보면 도시전체가 푸른색 집이다)도 구경하고, 메헤랑가르 성채(우리나라로 치면 백제같은 지방 왕족 성인데 큰 나라이니 규모가 매우 크다)도 구경하였다. 복잡한 도시 델리를 벗어나 지방으로 가니 그 자체만으로 좋았던 하루였다. - 내용은 사진으로
* 아침은 단 과자를 먹었는데 진짜 맛없었고, 점심은 고급스럽게 외국인 호텔 같은 곳으로 가서 치킨 케밥을 먹었는데, 그냥 치킨이었다. 저녁은 기차역에서 만난 인도인들이 추천해준 탈리집을 5번쯤 물어물어갔는데, 영어 간판도 없는 식당이라 오히려 종업원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너무 친절하게 물을 갔다주어 한 모금 마셨다가 그냥 설사를 하고 말았다.
* 기차역에서 만난 인도인들 : 다 구경하고 나니 오후 4시쯤, 기차시간은 밤 11시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중 다른 도시를 여행하려는 인도인 가족(어머니, 아들 2, 여자조카1)과 얘기를 하게 됐다. 안되는 영어로 반복하고, 말하고 때로는 써가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거 같다. 근데, 나눈 대화는 별 것 아니다. 어디서 왔냐? 어디 갈거냐? 가봤냐? 한국은 어떠냐? 돈 보여달라? 기차얘기, 종교얘기(자이나교를 믿었음), 인도에 대해 궁금한 것들, 한국 생활수준, ... 이때는 맘이 편했는데, 그 뒤에는 내가 여유가 없었던 듯 하다.
* 다행히 이날도 기차는 연착되지 않았고, 밤 11시 기차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1월 11일(화) : 사막도시 자이살메르에 도착하여 오래간만에 편히 쉬고 성 구경
* 새벽 5시쯤 낙타사파리를 할 수 있는 자이살메르에 도착하였다. 도착하니 타이타닉이라고 한국인들 전용으로 낙타리 사파리하는 호텔 주인이 나와 있어서 쉽게 호텔까지 갈 수 있었다. 다른 도시 가면 탈 거, 먹을 거, 숙소, 구경할 거, 볼 거 모든 게 우리가 해결할 일 이었는데, 자이살메르는 타이타닉 사장만 따라가면 모든 게 해결되었다.
* 호텔에 도착하여 우선 자고, 빨래(인도에서 처음으로 빨래를 했는데, 빨래할 수 있다는 사실로 좋았다)도 하고, 제대로 씻고(기차역 노숙 하루, 기차타고 이틀을 지나다보니 숙소에서 씻는 것도 이틀만이었던 듯), 간만에 맛있는 한국음식(아점-김치찌개, 저녁-신라면)도 먹었다.
* 걸어서 자이살메르 구경을 하면서, 인도 전통옷과 목걸이 등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결국 다른 곳보다 비싼 값으로 옷과 목걸이 등을 많이 구입했고.
* 밤에는 그동안 일행과 헤어질 듯 하며 인도에서 첨으로 맥주도 마셔봤다. 큰언니(김영임), 박미희, 김동민(일행은 아니지만 많은 도움 받고 4일쯤은 함께 한 대학생) 등과 자이살메르 성을 보며 기분 좋게 한잔했다. 타이타닉엔 손님이 모두 한국인이고, 사장과 종업원들도 어느 정도 한국어를 했고, 식당도 한국음식 위주에 말까지 한국어를 써서 정말 편하게 지내고 놀았다. 날씨도 그전까진 추웠는데, 사막 지역이라 다른 지역보다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덜 추운 것도 좋았다. 그전까진 낮에도, 밤에도 있는 옷 다 껴입고, 침낭이나 숄 등 있는 것 다 걸치고 자도 추워서 고생을 많이 했고, 감기도 걸렸었다.
그런데, 너무 기분 좋게 먹고 마신 나머지 다음날 설사에 걸려 모두 날라가 버렸다. 5일 사이에 내 위가 적게 먹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맥주도 먹고나서 얼마 안지나 그냥 신호가 와서 화장실을 오가야 했다.
1월 12일 (수) : 낙타 사파리 후 사막에서 별을 보며 하룻밤을
* 9시쯤 일어나 차를 타고 출발 (지프차 한 대에 10명씩) 해서 중간에 모래 유적지(자인템플-모래로도 뭐든 만들 수 있고 정교하기까지 하다)구경 후 사막입구에 도착하니 12시쯤 되었던 거 같다. 좀 기다리다보니 전날 사파리를 한 사람들과 낙타, 낙타 몰이꾼들이 왔다.
우리 일행은 한국인 관광갱이 39명이었다. 한국 기준으로 방학이라 가장 큰 성수기인 듯 했다. 여름엔 더워서 어렵고, 겨울이다보니 방학인 대학생들, 교사들(직장인 들 중에는 교사가 가장 많았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기는 사람들이 1, 2월에 몰릴 수 밖에 없다.
* 그 중 좋아보이는 낙타와 몰이꾼을 골라 올라탔다. 어려운 것은 낙타의 높이다. 말은 타본 적 있었는데 말 높이는 사람키보다 작은데, 낙타 높이는 사람 높이보다 훨씬 큰 듯하며, 일어설 때도 한꺼번에 일어서다보니 그 때 겁이 가장 많이 난다.
그리고 타고나서도 떨어질까봐 걱정돼어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처음이라 몰이꾼이 잡아주기는 하는 데, 2미터쯤 되어 보이는 높이에서 떨어질까봐 걱정되어 손잡이를 꼭 붙잡고 앞만 보며 1시간쯤 가다보니 잠깐 쉬느라 내리는 데 그때도 무서웠다. 몰이꾼과 우리는 별로 대화가 안 통해 갑자기 낙타가 앉는데 어찌나 겁이 나던지.
* 잠깐 쉬다보니 몰이꾼들이 준 바나나 2개와 짜파티(평소 식당서 먹던 짜파티에 비해 거친 밀가루로 사막에서 직접 구웠기에 거칠고 모래도 씹혔다), 간단한 커리로 점심을 해결했다.
* 다시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출발했다. 잠깐 적응 시간 줬다고 이번에는 속도가 빨라졌다.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낙타몰이꾼은 걸었으니 사람이 걷는거보다 느린 것이다. 하지만, 처음 타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떨어질까봐 겁나고, 엉덩이도 아프다 (다음날 보니 참석자 모두가 엉덩이에 살짝 피멍이 들었다.)
* 저녁 6시도 안되어 (실제로 낙타 탄 시간은 2시간쯤 이었는데, 아마도 더 탔으면 초보자들이 견디지 못했을거다) 우리가 하룻밤 묵을 사막에 도착했다. 사막이라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풀도 듬성듬성 있고, 우리가 잘 천막도 쳐있고, 주위엔 마을도 있어서 일부 낙타몰이꾼들은 집에 가서 잠을 잔 후 다음날 돌아왔다.
해지는 것과 모래 사막 구경하면서 기다리다가 다시 저녁으로 짜파티를 먹고 또 기다렸다. 구운 감자와 고구마, 추가로 시킨 바비큐 치킨을 먹었다. 사막과 별이 뜨는 하늘이 좋아 지루하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감기와 설사였다. 더 아플까봐 걱정돼 저녁때부터 낮잠을 한 번 잤고, 밤에도 11시부턴가 큰 언니에 이어 두 번째로 잠이 들었다.
* 구름이 많이 끼어 별은 생각보다 적었고, 모래 사막도 생각보다는 규모가 적었지만 사막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모든 사람을 감상에 빠지게 만들었다.
모닷불과 거기에 구운 감자, 고구마, 치킨, 맥주도 한 몫 했는데... 난 전날 걸린 설사 때문에 맥주는 1컵쯤으로 만족해야 했다.
1월 13일(목) : 사막에서 맞이하는 아침, 우다이 뿌르로 이동
* 사막에서 아침을 맞고 아침은 간단한 토스트(식빵을 굽기만 한 것)와 짜이를 먹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번엔 하룻동안 적응됐다고, 낙타몰이꾼도 같이 나랑 한 낙타에 타고 빨리 달렸다. 하지만, 그래도 여유가 생겨 손을 놓을 여유가 생겼다. 숄을 하나 낙타 등에 올려도 엉덩이는 여전히 아팠지만.
* 12시쯤 어제의 장소로 와서 다음 날 사파리 한 사람들과 교대하고 다시 지프를 타고 숙소로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여유있게 칼국수도 먹고, 짐정리도 하고 그전에 다니던 일행과 헤어지는 인사도 나눈 후 4시쯤 버스정유소로 갔다.
* 우다이뿌르라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 첨으로 침대 버스를 탔다. 말이 침대 버스이지 먼지로 뒤집어 썼고, 1층은 좌석, 천장이 침대이다보니 좁기도 무지 좁다. 창문은 열려있고, 커텐도 없으니 낮에는 햇빛을 받아가며, 밤에는 추위에 떨며 버스를 타야한다.
우다이뿌르라는 곳까지 걸린 시간은 13시간쯤. 떠날 때는 낮이었는데, 밤에 산길을 돌아돌아 호수도시인 우다이뿌르에 새벽녘에 도착했다.
그 전 일행과는 헤어졌지만 타이타닉에서 같이 출발한 사람이 7명 있어서 겁나는 것은 없었다.
* 중간에 들른 화장실은 인도에서도 최악이었다. 문도 없는 채로 대충 칸막이 해놓고는 빈 바닥에 싸고 대충 흘러가게 놓은 것이다. 물론 큰 것을 보면 안되고.
1월 14일(금) : 호수도시인 우다이뿌르에 도착하여 편하게 걸어다임
* 새벽에 도착하여 오토릭샤와 흥정 후 (4명에 60) 호수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 숙소를 4~5개 돌아다닌 후에야 겨우 숙소를 정했고 (2명에 400루피), 자이살메르에서 같이 낙타리를 사파리를 했던 대학생 박가람씨와 같이 숙소를 썼다. 우선 버스에서 못잔잠 보충하고, 모처럼 따뜻한 물로 씻고(호수도시라 물이 풍부해서 좋았다), 우다이뿌르 구경을 했다. 우다이뿌르는 호수도시라 인도에서는 드물게 깨긋하고 (이 얘기는 다른 도시는 항상 먼지가 날려 더럽고 물은 적고 산도 멀다는 애기다) 조용하고 좋은 도시다. 내가 만난 한국인들 중에는 우다이뿌르가 좋다고 일주일쯤을 그냥 거기서 머무르는 사람도 많았고, 나도 좋았다. 주로 혼자서 시장 구경, 호수 구경 등을 하며 걸었다. 음식맛도 좋았고, 숙소나 음식값도 저렴한 편이었다.
1월 15일(토) : 우다이뿌르는 좋았으나 숙소주인은 좋지 않았다
* 시티 팰리스 (우다이뿌르에 있는 지방 왕족) 구경했는데 혼자 여유있게 성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호수도 계속 봐도 좋았다. 본 것은 사진으로 대신.
더 있고 싶었지만 불교유적지인 아잔타와 엘로라를 꼭 보고싶어 혼자라도 가기로 마음 먹고 숙소 주인에게 물어 밤 버스표(우다이뿌르-아메다바드), 기차표(아메다바드-잘가온) 를 구했다. 처음엔 배낭여행 책에도 없는 정보에 고마웠는데, 나중에 보니 주인이 몇 마디 말해주고 취한 돈만 200루피(5천원이지만 보통 식사로 3끼도 가능하고, 하룻밤 숙박비보다도 많다) 였다. 엄청난 바가지지만 그것도 경험이며 덕분에 아잔타와 엘로라를 봤기에 큰 후회는 안하려고 한다. 그런데, 나랑 같이 잤던 대학생 박가람씨는 더 나쁜 경험을 했다. 식당 주인이 자꾸 추근대는 바람에 결국엔 숙소를 옮겨야 했다.
* 저녁엔 잠시지만 버스를 타러 가고 기다리는 중에 인도에서 첨으로 진짜 혼자가 됐다. 한국인 일행이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길이 혼자 릭샤를 타고(저녁에 30분쯤) 갈 때와 밤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기다리는 시간(처음에 있었던 한국인들이 가고 다음에 아잔타로 같이 갔던 일행들이 올때까지 실제로는 1시간쯤)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말로는 버스 정유소였는데, 공영버스가 아니라 사설 버스고 밤차라 이용객이 매우 적었다.
그리고 나중에 온 젊은 중학생 일행(남자 중학생1, 직장 그만둔 2인 여자, 휴학중이거나 직장 그만둔 남자2인) 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중에 확인한 사실인데 거기서 처음엔 그 버스를 탈 사람이 나 혼자였는데, 나중엔 그 중학생 일행히 합쳐져서 6명이 되었다.
1월 16일(일) : 밤에 버스타고 아메다바드로 간 후 12시간 기차타고 잘가온에 도착
* 그 중학생 일행들과 합쳐져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1시간쯤 지나도록 계속 기다리라더니 이번엔 다른 차로 바꾸어 타라고 했다. 더 좋은 차로 타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실제로 타보니 우리나라 관광버스쯤 되어 침대는 없는 대신 차는 좋고 속도도 빨랐다. 문제는 원래 도착하려던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는 것이다. 원래 6시에 도착할 버스가 3시쯤 도착하니 그 3시간 동안 할 일이 문제다. 다행히 일행이 있었기에 평소 하던대로 간단한 음료를 먹으며, 플랫폼에서 중학생 일행과 훌라(카드 놀이, 하다보니 대학때 하던 기억이 났다) 를 하며 기차를 기다렸다.
* 기차를 기다리면서도 중학생 일행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원래 밤버스를 혼자 탄 후, 새벽 3시에 모르는 곳에 도착해 릭샤를 탄 후, 외국인들 거의 없는 곳에서 또 기차를 탄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서웠던지. 인도 가서 느낀 것 중 가장 큰 게 한국인이 모두 친하고 좋아보인다는 거였다. 또 실제로도 많은 도움을 주고 받는다.
여행 정보도 나누고(숙소-음식 등 책과는 다른 정보를 한국인들과의 대화로 해결한다), 일행으로 같이 릭샤 타고 잠도 자서 여행 경비도 줄여주고, 또 안되는 영어를 해결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영어를 잘핸다고 해도 인도의 영어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긴 대화는 불가능하므로, 또 나같이 영어가 짧은 사람들은 좀 더 잘하는 옆사람들의 도움으로 모든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이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과도하게 겁먹은 것도 같다. 여행담에서 들은 사기사례와 릭샤꾼들로 인해 인도인들에 너무 겁을 먹고 나쁘게 생각했던 거 같다. 실제로 사기를 치는 인도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착했고, 외국인들에게는 지나친 관심과 친절을 배풀었다. 물론 혼자서 밤에 이동하는 것은 위험했다고 생각되지만.
* 아메다바드-잘가온 기차는 12시간쯤이었는데, 거의 계속 잤다. 전 날 버스에서 잔 시간이 1~2시간밖에 안된되다가 긴장이 풀려서인지 표검사할 때도, 다른 사람이 식사할 때도 계속 잤다. 자다가들으니 표검사(인도의 기차에서는 꼭 한번은 표검사를 와서 신분확인을 하며, 이 때 잘못되면 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으니 주위있던 인도인들이 표검사하는 사람에게 한국인(표에 나이, 성별, 국적이 써있다)인거 같은 사람이 와서 계속 자고있다고 말한 듯 하다. 내 좌석은 3층이었는데 잠시 일어나 과자와 과일을 먹은 후 또 잤다. 사실은 중간에 깨서 식사를 주문하고 싶었는데, 깨보면 이미 지나가있어 주문을 할 수가 없다가 나중에 하나남은 도시락을 겨우 주문했다. 중학생 일행은 나랑 기차표를 따로 예매해서 다른 칸이었는데, 중간에 2~3번 와보니 내가 계속 자고 있어 깨울 수가 없었고, 마지막에는 나를 깨우러 와서 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갔다.
* 잘가온은 전혀 여행정보가 없는 도시였다. ‘인도 북부에서 아잔타로 가는 경우 잘가온을 거쳐서 내려온다’가 나와 중학생 일행이 가지고 있는 잘가온에 대한 정보 전부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우리가 직접 물어서 해결했는데, 오히려 여행객을 볼수가 없어서 인도를 제대로 느끼기에는 좋은 도시였다. 여행객이 많으니 숙소도 별로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우리를 신기해 바라보고 (보통의 관광지에서는 어느 사람이냐고 물어보지 외국인들을 신기해할 정도는 아니다), 시장에서도 인도의 전통옷과 목걸이 등 장신구는 찾을 수가 없었다(다른 관광지에서는 일반용품을 찾을 수 없고 전통옷과 목걸이등 장신구만 있다는 얘기). 인도여행하면서 보니 거기 사는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청바지와 남방을 입는데, 여행객인 외국들이 오히려 인도 전통옷을 많이 입는다.
* 잘가온 숙소는 어렵게 구했는데 좋지는 않았다. 그전에는 기차나 버스 이동시 화장실이 좋지 않아 숙소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거긴 숙소 화장실도 더러웠다. 변기 뚜껑은 깨진 상태로 너무 더러워 앉아서 볼일을 볼 수가 어려웠다.
* 대신 잘가온에서 좋았던 것은 날씨였다. 사막이었던 자이살메르보다도 훨씬 남쪽(전체 인도로 보면 중부지방) 이었기 때문에 반팔을 입고다닐 정도여서 거기서부터 3~4일 지내면서 인도를 가서 계속 달고있었던 감기도 낳았다.
* 저녁은 좋아보이는 식당으로 가서 중학생 일행과 이것저것 시켰는데, 여행지가 아니라 음식이 외국인들에게 맞게 개량이 안된탓인지 좋지는 않았던 거 같다. 간이 맞지않으면서 밋밋했다고 할까. 아무튼 잘가온과 아잔타, 엘로, 아우랑가바드에서는 음식은 계속 별로 였다. 약간은 달고, 짜지도 맵지도 않은 느끼하고 달착치근한 맛이었다.
1월 17일(월) : 아잔타 석굴 휴일이라 잘가운에서 그냥 하루를 공치다
* 원래는 중학생 일행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잔타를 보기 위해 거의 24시간을 걸려 잘가온에 도착했는데, 도착해서 보니 그 날이 월요일인데 아잔타가 휴일이라고 했다. 상의 끝에 결국에는 하루를 쉬기로 했다. 그 일행들도 피곤했고, 나는 피곤도 했지만 바라나시 기차표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 잘가온 시내(진짜 관광지가 아니고 인도인들이 사는 시장이다보니 오히려 살것은 없었다. )구경 후 유일하게 맛있는 점심(이때도 7번쯤은 물어서 겨우겨우 찾았는데 다행히 맛있는 식당이었다 아마도 난과 커리를 먹었던 듯)을 먹었다.
* 그리고 다른 일행은 영화를 보러가고 나는 혼자서 바라나시 기차를 알아보러 갔다. 첨으로 외국인 전용창구 아닌 곳에서 표를 끊는데, 조그만 구멍으로는 서로 영어가 통하지 않아 결국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원래 표끊어주는 사람이 아닌 거기 책임자와 어렵게 대화했는데, 결국엔 다음날 아침 8시 30분에 와서 돈 100루피쯤 더내고 ‘탓깔표’라는 걸 구하라는 거였다. 안그러면 일주일이내에는 바라나시 가는 침대석이 없다고 했다. 인도인이 친절하다는게 웨이팅석(대기순번을 정해놓고 원래 예약한 사람이 취소하면 고정석을 얻을 수 있다)만 있다는 말에 처음보는 외국인이 난 무조건 고정석이 필요하다고 하니 (그 대화하는 데도 30분은 걸렸을 듯 하다) 다음날 오라는 말과 금액까지 써서 알려주었다. 결국 다음날 오라는 말을 하는데 줄서서 기다린 시간과 뭐라구요 하다가 그 답 듣는데 걸린 시간이 1시간도 넘게 걸렸다.
* 저녁은 느끼했던 것을 먹었던 듯 하다.
1월 18일(화) : 바라나시 기차표 끊은 후 아잔타 구경
* 전날 안내한 사람은 8시 30분이라고 해서 혼자서 릭샤타고 8시쯤 기차역에 도착했는데도 사람들은 이미 나와있었고, 직원은 9시가 돼서야 기차표 판매를 시작했다. 그 중간에도 탓갈표가 없어져 잘가온이라는 아무것도 없는 도시에서 1주일을 기다려야 되는건 아닌지하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몰랐다. 차라리 바가지를 쒸우더라도 여행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잘가온은 여행사도 없었다.
* 막상 기차표는 쉽게 구해졌는데, 아마도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렵게 구한 표일것이다.
* 다시 혼자서 릭샤를 타고 버스 정유소로 가서 아잔타가는 버스를 탔다. 중학생 일행들보고 기다리라고 했다가 일정이 틀어질까봐 먼저 가라고 했었는데, 난 그 일행보다 30분 늦은 버스를 탔다.
* 버스에서는 혼자라 못내릴까봐 겁은 났는데 계속 잠은 왔다. 우리로 치면 대천에서 미산쯤 가는 버스인데, 우리나라랑 같은 크기 버스에 좌석은 중앙 기준으로 왼쪽에 2줄, 오른쪽에 1줄이라 좌석이 매우 비좁았으며, 버스가 우리나라보다 2배는 느리고, 더군다나 아잔타가 산 속 중간에 있는데 도로 상태가 좋지않아서 잘가온에서부터 아잔타까지 가는 길도 1시간 30분쯤이 걸렸다. 그 좁은 버스에 배낭은 운전석 앞에 두고 (내 짐 누가 훔쳐갈까봐 마음을 조렸지만 놀곳이 그곳밖에 없었다), 외국인이라곤 나 밖에 없는 버스에서, 버스 차장(표값을 일일이 받는다)에게 아잔타에서 알려달라는 말만을 해두고 말이다.
* 다행히 무사히 도착했고 배낭 배고 주위 사람들 따라 걷다보니 아잔타였고, 짐도 맡기고, 간단하게 식사도 해결했다. 나중에 보니 짐 맡기는데는 4시간에서 5분인가 더 걸렸다고 2배로 받고, 화장실은 깨끗하다 했더니 유료였고. 그래봐야 합해서 500원쯤이지만, 그때는 아까웠다.
* 아잔타는 무지 좋았다. 내가 불교를 믿기도 했지만, 한가지 마음으로 한 사람이 평생에 거쳐 하나 만들기도 어려운 석굴이 진짜 많았다. 아잔타는 세계문화 유산으로 산 중턱 계곡 절벽에 조각된 불교사원군이다. 전체 만들어진 기간은500년, 석굴은 28번까지 있다.
엘로라와 다른 것은 기원전 1세기 ~ 5세기경 벽화가 채색된 상태 그대로 아직도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석굴 내부는 어두워서 사진이 안찍히고, 전체 외곽은 너무 커서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 꼭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유적이고, 관람하는데 3~4시간쯤 걸렸던 듯 하다.
* 그리고 다행히 중학생 일행을 만났다. 전날 내가 기차표 사러갔을 때 시장에서 파는 과일쥬스를 사마신게 탈이나 화장실을 가느라 늦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서도 여행이야 했겠지만, 20키로 넘는 배낭배고, 혼자 물어물어 걷고, 릭샤를 타고, 숙소를 찾아 흥정하기는 너무 피곤하다.
* 올때는 다음날 엘로라를 보기위해 아우랑가바드로 왔는데, 아침에 탔던 시내버스를 타고 3시간쯤 걸렸던 듯 하다. 더운 날씨에 아잔타를 보느라 여러 시간을 걸었기 때문에 나도, 중학생 일행도 흔들리는 버스에서 정신없이 잤다. 아침에는 앞자리 앉아서 몰랐었는데, 뒤에 앉아보니 차가 너무 흔들려 가끔은 벽에 부딪치기 까지 했다.
* 물론 아우랑가바드도 처음이었기에 언제 도착할지 몰랐고 저녁에 깜깜해서야 도착했다. 도착해서 미리 알아본 숙소를 가고자 30분쯤 걷고나서 그 숙소가 없어 다른 숙소를 찾고자 기차역 근처까지 릭샤를 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사실은 버스역 근처에 좋은 숙소가 많았다고 한다. 도착하니 밤 8시가 넘었었는데, 또 3~4곳의 숙소를 물어(방이 없거나 비싼 곳, 너무 더러운 곳은 우리가 묵을 숙소가 아니다) 어렵게 숙소를 정한 후 늦은 저녁을 먹었다. 숙소도 인도 여행 중 가장 더러운 화장실을 갖추었고, 음식도 밍숭맹숭한게 인도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이 없었다. 참 인도에서는 아무리 싼 숙소라도 숙박부 비슷한 걸 써야하는데 쓰는 게 많아서 이것도 20분쯤은 걸린다.
1월 19일(수) : 늦게 일어나 엘로라 구경한 날
* 전날 피곤한 탓으로 10시쯤 일어나서 또 맛없는 밥먹고 버스타고 엘로라에 갔다. 1시간쯤 걸렸던 듯 하다.
* 엘로라 석굴은 불교, 자이나교, 흰두교 석굴이 같이 있는 곳으로 (다른 나라라면 그전 석굴은 버렸을텐데 인도의 흰두교는 여러 종교를 다 흰두교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아잔타보다 늦게 만들어졌다. 그 중 최대의 석굴인 제16굴인 마하라쉬트라 사원은 높이가 33미터, 폭이 47미터로 인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세계에서도 엄청 큰 사원에 속하며, 세계문화유산이다.
* 첫 번째로 본 흰두석굴인 마하라쉬트라 사원은 정말 대단했다. 멀리서보면 사원밑의 구경하는 사람이 발밑의 신발처럼 보이며, 속에서 볼 때, 위에서 볼때 그 모습이 다 다르다. 역시 사진으로는 제대로 느낄 수 없고, 가서 직접 봐야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낄 것 같다. 대신 아잔타, 엘로라 보느라 총 5일은 보낸 셈이다. 인도 땅이 워낙 크니 잘가온가는데 하루, 일정안맞아서 하루, 아잔타 구경 하루, 엘로라 하루, 다른 도시로 가는데 하루.
* 마하라쉬트라 사원이 너무 압도적이라 다른 사원은 대충 봤다. (그나마 난 보기는 했는데 남자들은 배탈도 난데다 관심도 없어 그늘에서 흰두어 배워가며 놀고 있었다) 하지만, 1번부터 29번굴이라 불리는 그 굴 하나하나가 하나씩 따로보면 얼마나 크고 정성이 들어갔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석굴암이 30개쯤 있다고 표현하면 되려나. 석굴이라고해도 부처님을 모신 불교석굴도 있고, 그 옛날 강당(날이 더우니 바위 속 굴이 공부를 하기가 좋았을 것이다)으로 쓰였던 곳도 있고, 흰두교의 여러 동물신과 링감을 모셔놓은 석굴도 있었나. 자이나교는 보기는 봤는데 흰두교와 별로 구분이 안됐던 듯 하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여자 부처님의 유방이 조각되어 있기도 했고, 링감(남자 성기)와 소등 동물이 매우 많았다. 보존 상태도 달랐는데, 박쥐도 살고, 비둘기는 계속 날아다니고, 원숭이와 개도 있고. 들은 얘기인데 우리나라도 70~80년대에는 문화에 대한 보존 개념이 없었다니, 인도도 사회가 발전하면 좀 바뀔런지는 모르겠다. 참 안내를 해주며(흰두어나 영어로만 해줘서 난 신청한 적은 없었다) 돈을 받는 사람도 있었고, 손님들이 돈을 놓게끔 유도해 놓은 후 나중에는 가져가는 사람이 있는 것도 한국과는 다른 점이었다.
물론 가장 큰 차이점은 입장료. 외국인은 250. 인도인은 10. 그것만 생각하면 구경을 하면서도 아까웠다.
* 엘로라 구경 후 원래는 시내버스를 탈 예정이었는데, 집차가 한 사람당 30루피라고 해서 탔는데, 그것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는 바로 출발할 것 같았는데 계속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다른 차 타려니 차가 출발했다. 그런데, 한 5분쯤 가더니 이번에는 차를 바꾸어 타란다. 그래서, 우리가 내려 버스타겠다고 했더니 요금 더 내는 것 아닌데 왜 그러냐고 난리가 났다. 결국 거기있던 인도인들의 구경거리가 되며 몇 번 실랑이를 한 끝에 봉고차를 타고 아우랑가바드로 왔다. 인도에서는 차를 탄 후 멈추거나(식사나 화장실. 심지어 고장으로도) 다른 차로 바꾸어 타야하는 일이 많다. 버스도 그러니 개인이 잡아탄 승용챠야 말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 아우랑가바드에 도착해서 역시 또 맛없는 식사를 하고 그 중학생 일행들과 새벽 1시쯤까지 훌라(카드놀이)를 한 후 잠이 들었다. 참 맛없는 식사를 하다 자연스럽게 적게 먹다보니 설사는 저절로 나았는데, 그때부터는 변비로 고생했다.
1월 20일(목) : 아우랑가바드서 일어나서 잘가온으로 버스 이동 후, 바라나시 기차탄 날
* 10시쯤인가 일어나 또 맛없는 아점을 먹고 (식당이 그곳밖에 없었다) 릭샤타고 버스정유소까지 간 후 버스를 아잔타 갈 때 이용했던 버스를 탔다. 4시간이 걸렸고, 역시 외국인은 나 혼자였던 거 같다. 이때는 전날 잠을 푹 잔 후라 잠이 안와서 창 밖도 구경하고, 중간중간 서는 정거장에서 인도의 농촌도 구경했다. 버스 정유소마다 장사가 매번 있는 것도 인도의 특이한 점이었다. 물은 물론 바나나, 땅콩, 엿 등 여러 가지를 팔며, 급한 사람은 화장실도 이용한다. 그동안 벌써 세 번째나 탄 버스라 겁은 안났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 잘가온에 도착한 후 기차역 근처에서 괜찮아보이는 호텔 식당에 들어가서 오래간만에 고기(치킨)과 콜라로 식사를 해결했다. 지금 보니 8일만에 제대로 먹는 고기였다. 그동안 먹은 건 국수에 들어간 고기, 커리에 들어간 달걀, 한국에서 가져간 멸치 등이 내가 섭취한 단백질이다.
* 기차역에 가니 이번엔 너무 작아서 헷갈렸다. 항상 큰 역만 갔다가 타야할 플랫폼이 2번이라고 하니(나중에 보니 상행, 하행 두 개 뿐이었던듯) 그것도 의심스러워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다. 또 거기에도 기차역 입구는 거지들로 지저분했는데, 플랫폼 앞에 여성만을 위한 대합실이 있어서 좋았다. 화장실도 있고, 의자도 있고 인도에서 제일 깨끗한 기차대합실이었다. 그리고, 잘가온에 이슬람교가 많은지, 다른 곳에서는 주의깊게 보지않은 검은 히잡을 입은 이슬람 여성도 많이 보았다. 아무튼 2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아주 편하게 기다렸다.
* 문제는 바라나시행 기차를 타는 거였다. 기차는 많은데, 플랫폼은 2개뿐이니 기다리는 시간이 아주 짧았고(3분쯤), 기차번호와 도착역은 확실하게 표시하지 않아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내 표를 보여주며 ‘저 기차에요?’를 여러번 물으니, 내표를 들고 인도인들끼리 토론이 벌어졌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기차에서 내린 인도사람이 그 기차가 맞다고 하는 사이 이미 그 기차는 출발해 버렸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어떻게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며 출발한 기차를 타는 건 위험할 듯 하고, 어떻게 또 3일을 버텨야 할까를 고민했다. 아마도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한 것은 처음였을 것이다. 그런데, 옆에 있던 인도인들이 거의 나를 붙잡고 같이 뛰고 짐도 먼저 실어주며, 기차를 두드리고 기차를 잠시나마 세웠다. 그 덕분에 천신만고 끝에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표도 어렵게 구했지만, 기차를 그렇게 어렵게 타기도 처음이었다.
* 기차 타고 나서는 못탔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1시간쯤 놀란 심장을 진정시켰다. 정말이지 못탔으면 끔찍한 시간이었다. 외국인이라고는 찾을 수 없고, 화장실조차 가기싫고, 마땅한 음식점마저 없는 곳에서 나 혼자 3일은 버텨야 다시 기차를 탈 수 있었는데, 그 기차도 또 탄다는 보장은 없었다.
*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니 또 잠이 와서 미리 먼저 산 과일 등을 먹은 후 계속 잤다. 그때도 3층 침대였는데, 저녁 7시쯤 3층으로 올라가서, 아래는 화장실 갈 때만 내려오고, 다음날 12시까지는 안내려오고 잤던 거 같다.
1월 21일(금) : 기차타고 20시간쯤 걸려서 바라나시에 도착, 갠지스강 보고 숙소 정함
* 화장실을 가기 위해 먹는 것도 줄였다. 20시간 동안 과자와 포도만 먹었다.
* 도착할 때도 불안했다. 바라나시는 마지막 역이 아니라 도착 예정 시간을 기준으로 내릴 준비를 했는데, 제대로 출발한 열차였는데도 2시간쯤나 늦게 바라나시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인도인이 다음역이 라고 말해주었는데도 중간에 조그만 역 3개쯤을 지나서.
아무튼 잘가온을 갈 때와 벗어날 때 내가 탄 기차는 난 그 칸에 혼자뿐인 외국인이었는데, 난 잠만 자다가 겨우 도착역에 내렸다. 아마 인도인들은 한국인들은 기차에서 잠만 자는 사람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 도착한 바라나시 역은 전국에서 모여든 인도인들과 해외에서 모여든 외국인들로 엄청 붐비는 곳이었다. 우선은 정차해 논 오토릭샤와 사이클 릭샤와 호객행위에 질려버렸다. 또한 바라나시에 역이 4개라는데, 내가 도착한 역이 어디인지도 확실히는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도 이상한 숙소로 데려가 바가지를 쒸우려는 사이클 릭샤꾼을 물리치고, 무사히 지나가는 사이클 릭샤를 그것도 30루피의 저렴한 값으로 고돌리아(갠지스 강 입구)에 도착했다. 오후 2시쯤였던 거 같다.
* 기차에서 배가 고팠던지라 한국인들에게 길을 물어( 제대로 된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있으니 한국인에게 길을 물을 수 있는 자체가 행복한 거다) 숙소를 가다가 싼티라는 식당에 갔다. 간팔에 한글로 한국음식 된다고 해서 갔더니 일본인 부인을 둔 인도인이 운영하는 식당였는데 맛은 기대이상이었다. 잘가온과 아우랑가바드에서 맛없는 임도음식을 4~5일간 먹었기 때문에, 그 때 먹은 김치볶음밥은 정말 환상이었다. 가격도 다른 식당의 한국음식에 비해 그 이후로도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은 거의 하루에 한번 그 싼티라는 식당을 이용했다.
* 숙소는 모나리자라는 곳으로 정했는데, 가격을 흥정을 안하고 고정이라 좋았고, 대부분의 손님이 한국인이라 직원이 한국말을 잘하는 것도 좋았다. 대부분 다른 한국 관광객들은 사이클 릭샤에 끌려 비싼 숙소에 한 번 들린 후(예를 들면 내가 한국 배낭여행 책을 보고 옴으로 가자하면 원래 옴이 아닌 간판만 옴인 숙소로 데려다 준다. 그런데, 그 숙소는 간판만 같을 뿐 요금은 비싸고 숙소는 안좋으며 그 중 대부분은 릭샤꾼에게 간다) 그곳으로 온다는데, 난 그간의 경험으로 또 마침 방이 있어서 한 번에 숙소를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50루피를 깍고자 더 안좋은 싱글룸으로 옮겼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하루 1300원 아끼고자 내가 한 고생이 너무 큰 듯 하다. 나이 39살은 적당히 쉬며 여행해야 버티는 나이다.
* 숙소 정하고 짐을 논 후 곧바로 강가로 나가보았다. 인도하면 바라나시고, 인도인에게는 한 번 담그기만 해도 윤회를 멈추고 해탈의 경지(쉬운 말로 천국)에 이를 수 있는 어머니의 강이기에 갠지스강과 바라나시는 인도인에게도, 외국인에게도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인도에 대해 읽은 책이나 이것저것 생각하면, 인도라는 큰 나라에서 갠지스 강의 의미가 너무나 커서 (여러지역에 크기가 워낙 크다보니 갠지스 강이 없었다면 인도의 문화는 생길 수도 없었고, 지금도 갠지스 강이 없다면 당장 먹고 농사지을 물이 없어지는 사람이 억대는 된다.) 이런 흰두교의 전통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바라나시에서 본 갠지스강 (인도인들은 강가라고 부르며, 바라나시에서 본 갠지스 강은 강의 아주 일부일 뿐이다)은 생각보다 컸고, 워낙 신성시하는 인도인들이 많다보니 외국인인 나에게도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죽어서 시체로 와서 강에 담겨진 후 화장되기도 하고, 1살도 안된 어린이부터 나이 많은 노인들까지 항상 목욕하고 머리감는 인도인들로 넘쳐난다. 남자들은 간단한 속옷만 입고, 여자들은 옷을 입은체 들어가며, 수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바로 옆은 빨래터이고, 또 그 옆은 화장터라 타다 만 시체, 때로는 시체 그대로 돌에 묶여져 잠겨지기도 한다. 어린아이와 장애인 등은 화장을 안해도 그냥 갠지스 강에 잠기기만 해도 윤회를 멈추고 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첫날부터 보트도 20루피에 탔다. 나중에 보니 이 때 탄 보트값이 가장 쌌는데, 인도인들이 20루피에 타고 있었을 때, 내가 막 도착했기 때문에 인도인들과 같은 가격(인디언 프라이스라 부른다)으로 탔던 것이다. 그 뒤엔 40~60루피까지 주고 탔는데, 처음에 낸 20루피가 제대로 된 가격인 것 같아 몇 번을 안탔는지 모른다. 그것도 나중에 생각해보니 20루피도 500원 밖에 안되지만, 50루피도 1300원 밖에 안되고, 한국에서 타면 최소 5천원내지 1만원이나 주어야 하며, 바라나시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 저녁이 되어 저녁을 먹고 (금액을 보니 인도식을 먹었던 거 같고 벌써 내 기억엔 없다), 그동안 살 수 없었던 식빵, 토마토, 화장지, 코일(물끓이는 것), 빨랫비누와 가루 등을 신나게 산 후 숙소에 가서 빨래를 했다. 한국인이라면 빨래는 세탁기와 엄마에게 맡기는데, 손빨래를 해서 말릴 수 (겨울인데 습기가 많아 빨래가 마르지 않으며, 날마다 숙소가 다르기에 젖은 빨래를 매고 다니지 않으려면 아무 때나 빨래를 하면 안된다. 바라나시는 햇빛도 좋은데다가 첨부터 7일을 머무를 생각이어 ) 있다는 것으로 행복했다.
* 여행을 하다보면 좋은 점이 기본적인 의식주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손빨래를 해서 말리다 보면 세탁기의 좋은 점을 안다.
그리고, 미리 식당의 종류를 정한 후 주위 사람에게 물어 좋아보이는 곳으로 갔는데도 맛은 장담할 수가 없다. 인도인들이 워낙 느리다보니 도착해서 주문한 후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보통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과일도 맛있어보여 샀는데, 맛없으면 버릴 수도 없고 난감하다. 과자나 빵 등 간단한 음식도 한국에서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경우도 많다.
숙소도 날마다 씨름해야 할 대상이다. 여행책에서 얻은 숙소는 없기 일쑤고, 바로 저기라는 숙소인데 30분 이상을 헤매기도 한다. 또 어렵게 얻은 숙소지만, 더럽거나 비싸면 20키로 넘는 배낭을 매고 5개층을 오르내렸는데도 미련없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여행에 돌아와서 며칠간은 김치와 기본적에 밥에 반찬만 있어도 맛있고, 내 방에서 잠들 수 있다는 것으로도 행복하다. 여행에서 느끼는 가장 큰 것이 ‘집이 가장 좋다’라는 말은 매번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 어려운 여행을 하는게 또 여행의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1월 22일 (토) : 같은 숙소에서 방 옮기고, 화장터 구경한 날
* 숙소의 주인이 운영한다는 식당이 있어서 커리와 난을 먹었는데 그냥 그랬다. 아우랑가바드처럼 맛없어서 못먹겠다도 아니고 싼티나 우다이뿌르 호텔처럼 맛있는 것도 아니고.
* 그리고 한가롭게 거리를 구경하며, 시장도 보았다. 바라나시에서 갠지스강은 좋은 대신 장사꾼도 많아 호객행위는 진짜 싫었다.
* 점심은 인도식당에서 수제비를 먹었는데 맛은 별로였던거 같고, 저녁은 시체냄새 맡은 후 식욕을 잃어 밤늦게서 전날 산 식빵과 잼을 먹었다.
* 오전엔 숙소를 옮기느라 한참 기다렸다가 (원래 일찍 나간다던 한국인 손님이 배가 아파 늦게 가는 바람이 숙소에서 4~5시간은 그냥 기다렸다), 오후엔 화장터에 나갔다.
* 화장하는 과장은 우선은 아파서 곧 죽을 것으로 예상되면 바라나시로 와 갠지스 강 옆에서 죽음을 기다리다가 (죽은지 24시간안에 화장터로 옮겨와서 화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죽으면 들것에 실려 화장터로 옮겨와 강에 담근다.
그리고 물기를 조금 말린 후 일꾼들이 장작을 준비해 시체를 장작 위에 올린다. 천으로 간단하게 쌓여진 상태이며, 몸은 다시 장작으로 덮히지만, 발은 장작사이로 삐져나온다. 머리도 천으로만 덮혀있어 조금 타다보면 눈과 입 탄 자국이 그대로 보인다.
그리고 나서는 흰두교 의식을 치루고 시체를 태우기 시작한다. 1시간 이상 타다보면 머리 타는 것도 보이고, 다리는 타고 발만 남는다. 숨만 안쉴뿐 똑같은 사람이 훨훨 타는 모습과 냄새(어릴때 개 잡을 때 나던 냄새랑 똑같다)를 맡으며 2시간쯤 있었던 거 같다. 타다보면 대막대기로 저으며 잘타도록 섞는다. 시체가 한 순간에 타는 것이 아니므로, 타다만 살과 뼈가 보이는데, 냄새나 모습이나 사람과 고기는 차이점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3시간쯤 타다보면 거의 남은 게 없게 되고 (이때까지 남으면 강물에 버리는 것 같았는데, 그걸 또 주위에 있던 개들이 서로 먹으려고 난리였다) 남은 재를 강에 뿌리고, 남은 장작과 숯은 다시 팔고자 서로 가져가려고 난리다.
첨엔 무섭기도 했고, 사는게 허무하기도 했는데, 있을수록 무덤덤해 졌다. 오히려 죽는 것과 사는 것은 별로 다른 게 없다는 생각도 하고. 그 뒤 시간 날 때마다 화장터 구경은 했는데, 첫날만큼 느낌이 크지는 않았다.
* 저녁에는 인도 처음에서 같이 다녔던 큰언니(김영임)을 만났다. 우리랑 헤어진 후 우다이뿌르에서 한 5일 머물다가 아그라에 들려 타지마할도 구경안하고 바라나시에서 묶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랑 헤어진 후부터 계속 설사와 감기로 제대로 먹지도 고생한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나보다 영어가 뻔히 안되는 것과 해외 여행 자체가 처음이면서 인도에 대한 정보도 없어서 뻔히 고생할거라 생각했는데, 나랑 안맞기도 하고(영어는 안되면서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솔직히 나를 피곤하게 하고, 시간있으면 책을 보는 등 각자 노는 우리와 다르게 계속 얘기를 하는 것도 좋지 않았으며, 사막에서 잘때는 12시 넘어서 떠든다고 다른 젊은 사람에게 뭐라고도 했다), 보고싶은 지역도 달라 헤어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뒤도 몇 번은 찾아갔는데 2, 3번쯤은 만났고, 언니는 언니대로의 여행을 했던거 같았다. 유적지는 거의 안보고, 마음에 안드는 젊은 사람에게는 싦은 소리를 하면서, 김치랑 밥도 해먹고, 어린이들과 인도인들과 친해지면서 하는 여행. 우리는 정보는 많은 반면 마음을 안열고, 그 언니는 정보도 없고 영어도 부족하지만 마음을 열고. 그리고, 내 느낌도 눈치챘는지, 같이 다닐 때 너무 고마웠다 (처음 일주일간 세명이 같이 다니던 때는 영어가 되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나중에야 필요한 말만 하다보니 47세인 언니도 불편함이 없었다고 했지만 그때는 숙소 구하고, 길 묻고 할 때 대부분 내가 말했다)고 하며, 지리산(귀농해서 지리산에 산다)으로 꼭 놀러오라는 말도 하고, 바라나시를 떠날 때는 남은 물건도 주었다.
1월 23일(일) : 바라나시 3일째. 기차표 구하다 바가지 쓸뻔한 날
* 식사는 여거저기 골라가며 골고루 했고, 낮잠을 잔 후 갠지스 강을 많이 걸은 날이었다. 남쪽으로는 가트끝까지, 북쪽은 화장터까지(강이 크다보니 이쪽 가트끝에서, 반대편 가트 끝으로 걸어가면 2시간 더 걸린듯). 그리고 그전에는 주로 남쪽을 갔었는데, 첨으로 북쪽으로 가서 거기서 나름 유명한 블루라시집에서 라시도 먹고, 황금사원 근처도 가보았다.
가트는 예전 돈이 많거나 왕같이 권세가 높던 사람이 쉬기도 하고 흰두교 의식도 행한 곳으로 한국으로 치면 절이나 교회같은 곳으로 바라나시에 있는 가트의 수만도 여러 개다. 건물이 연속해서 있으니 딱 셀수는 없었고, 지도나 사람들의 안내로 구분할 수 밖에 없었다.
* 이날 해프닝은 기차표 구하기였다. 28일 출발 기차라 당연히 좌석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여행사에 기차표를 문의했더니 웨이팅침대(기다려서 취소하는 사람이 있으면 구할 수 있는 표) 만 있다면서, 특별히 자기네가 기차표를 구해주는 대신 비싸다는 거였다. 그게 100루피쯤이면 내겠는데, 원래 가격보다 2.5배는 넘는 가격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비밀로 하라면서. 그간의 경험으로 속임수일 가능성이 많아서 한국인들에게도 물어보고, 다른 여행사에 물어보니 사기였다. 외국인 배당이 따로 있어 그 표를 구해주면서도 자기네가 미리 끊어놓은 표를 특별히 주는 것이라고 한거다. 내가 물어봣던 한국인들은 숙소 주인에게 1000루피에 구했다는데, 내가 구하려고 한 표에 숙소 주인이 챙기는 몫까지 더낸 것이었다. 결국 720루피에 원래 구하려던 SL이 아닌 3A표를 구했다. 그래도 여행사 몫 50루피는 더낸 것이었다. 이 때, 느낀 건데 인도에서는 나중에 취소하더라도 무조건 도착하자마자 기차표부터 구해야 한다.
저녁에는 갠지스 강과 뿌자 의식(흰두교 행사)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뿌자의식은 흰두교의 전통행사니 한번쯤은 볼만했고, 해질녁의 저녁 강가가 좋았던 거 같다.
* 참 바라나시가 조용하고 깨끗하고 숙소나 음식값, 기념품 가격도 싼데 비해 나쁜 것은 정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정전이 되고, 어떤 때는 단수도 되는데, 문제는 그 시간을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화장실을 쓰고 나서 물이 안나오기도 하고, 머리감고 목욕하려고 준비했는데 전기가 나가 온수기가 안되 따뜻한 물이 안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나온 따뜻한 물의 상태와 청결상태에 비해, 바라나시 숙소의 물이 따뜻하고, 화장실이 깨끗했기에 참을만 했다.
1월 24일 (월) : 새벽 강가 구경
* 7시에 일어나 아침 강가를 느끼고 싶었는데, 조금 더 깨끄하고 신성한 느낌은 있었지만 더 특별한 건 없었다. 경치도 중요하지만, 졸린 상태로 일어나서는 아무리 멋진 것이라 해도 잠이 우선이었다. 또 내가 일찍이라고 생각한 7시도 이른 시간이 아니었다. 인도 전체가 같은 시간대를 쓰다보니 델리에서는 7시 정도로 해가 뜨려면, 바라나시에서는 6시쯤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 날은 새벽에 일어나서 보트를 타기로 마음 먹었다.
* 점심은 북쪽으로 가서 메구까페라는 일본인 부인을 둔 인도인이 운영하는 일본 식당에서 먹었다. 보는 한국인들마다 추천하던 곳이었는데, 난 맛에 비해서 값이 너무 비싼 것 같았다. 대신 한국에서도 일본 것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한국보다는 훨씬 산값으로 일식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아했던 거 같다. 메뉴는 돈까쓰우동, 튀김우동, 튀김밥, 김밥, 생강치킨 등이었다.
* 그리고 황금템플을 구경했다. 이전에는 한국인에게 개방을 안하던 곳인데 개방한지가 얼마안되어 그렇게 아는 외국인들이 많아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또, 내가 전날 구경갔다가 짐맡기는데만 100루피인가 내라고해서 그날은 맡길 짐 다 놓고 다시 간거여서 도대체 어떤 곳인가 하는 생각인가 하는 궁금함이 컸었다.
그런데, 탑 등 일부가 진짜 황금으로 만든 사원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검문소만 10여군데가 넘고, 몸수색을 하고 들어가고, 사진을 못찍도록 핸드폰과 카메라는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신발을 입구 훨씬 전부터 벗어놓는 것도 당연하다. 외국인은 여권을 제출하고 방문록 쓰는데도 20분은 걸렸다.
황금템플이 대단하기보다는 분위기이고 믿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건 흰두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나 믿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도인들은 그곳 황금탑 밑에 있는 링감 한번 만지고 꽃과 우유를 뿌리고자 서로 들어가라고 난리였다. 난 인도인들 따라서 줄서 있었는데 거기 스님인 듯한 사람이 와서 특별히 빨리 구경하도록 해주고 주문도 따라하게 해더니 돈을 내라고 했다. 최소한 100루피는 내야 내가 행복할 거라는 거였는데 (이런 영어는 확실해서 영어못하는 외국인도 빨리 알아듣는다) 20루피만 내고 나왔다.
참 황금템플에 들어가서 나를 가장 놀랬던 것은 원숭이였다. 먹이를 주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많은 원숭이가 사람이 먹이주기만을 기다리다가 가끔은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는데, 내가 지나갈 때 원숭이 중 한 마리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사실은 원숭이가 무서웠던 게 아니라 원숭이가 옮긴다는 병(잘못하면 원숭이나 개체 물려 죽기도 한다는 말이 배낭여행 책에 있었다) 이 무서워던 것인데 별일은 없었다.
들어간게 아까워 몇 번을 둘러보고 그래도 황금템플을 실제로 본 몇 안되는 외국인이라는 자체로 만족하고 황금사원을 나왔다.
* 황금템플을 구경하고나서는 라시를 먹고 한국인 1명 만났는데 같이 보트(배) 타자고 하길래 같이 보트를 탔다. 첫날 20루피에 타고, 그 이후에는 50루피이상을 불러 그동안 보트를 안타다가 탄 거였다. 사람은 언제나 판단이 중요하다. 비행기 값이 100만원이 넘었고, 바라나시에서 보트타기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날마다 하는 중요한 체험이었는데, 난 천원도 안되는 돈 때문에 보트를 안탄 것이었다.
같이 탄 한국인은 직장 그만두고 2달째 인도를 여행중인 40대의 남자였는데 말도, 행동도 평범하지는 않아서, 그런 사람도 있는가 보다 했다. 우리는 보트의 호객행위에 시달리는데 그 사람은 ‘보트야 와봐라’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영어로 해서 인도인들을 이해시키고자 하는데 그 사람은 그냥 한국말로 편한 대로 말하였고, 상대방인 인도인도 분위기상 말뜻을 아는 것 같았다. 숫자만 영어로 했다. 또 보트를 탔을 때 매기 비슷한 물고기를 파는 소년이 있었는데, 남들은 사서 강에 놓아주는 물고기를 숙소에 가져가서 키운다고 했다. 계속 혼자 있으니 심심하다나. 아무튼 독특한 사람이 많으며, 꼭 똑같이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오래 만날 사람도 아니고.
* 저녁은 다시 싼티까페가서 한국식을 먹었던 거 같다.
1월 25일(화) : 새벽 보트타고 영화 본 날
* 새벽 (6시쯤. 진짜 해뜰때) 엔 한비야가 이름지어주고 무한도전도 만났다는 철수네 보트를 탔는데, 한국말로 조금 안내를 해준 것 말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날 둘이 보트 하나 타는데, 한 사람당 40루피를 냈는데, 4명이 타고서도 60루피를 냈기 때문이다. 한국인 관광객들 말로는 철수네 보트는 40루피로 일정하다 했기 때문에 흥정을 미리하지 않아 내라는 대로 낼 수 밖에 없었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참 돈 낼때는 그랬지만, 새벽 보트에서 해가 떠오르는 강은 다른 느낌은 좋았다.
또 내가 읽은 책과 사람들을 보며 내 혼자 생각한 강이었는데, 인도인이 강과 가트에 대해 설명을 해주니 인도인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너무 돈벌이에 급금한 철수(모두 그렇게 부르니 계속 그렇게 부른다. 나이는 나보다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고, 당연히 보통의 인도인인데 한비야가 인도에 처음갔을 때 인연이 되었고, 그 뒤 한국말을 열심히 배웠을 뿐이다)는 그 좋았던 느낌을 다 없애버려 그 뒤에는 철수네가 운영하는 가게에도 잘 가지 않았다. 철수네 가게는 한국인의 바라나시 사랑방 같은 곳인데, 항상 한국인들이 있었다. 인도 악기도 배우고, 대화도 나누고. 그런데, 난 짜이 마실 때나 물을 거 있을 때 빼고는 가지 않았고, 그것도 보트 비싸게 탄 이후에는 가지않았다.
* 새벽 보트 후 아침은 인도인들만 있는 곳에서 먹었다. 영어 메뉴 없는 곳에서 10루피에 마살라 도사(영어 메뉴로 된 곳은 최소한 40루피다), 길거리 음식 4루피, 짜이 5루피 등.
메뉴도 몰라서 다른 사람들 먹는 것 보며 ‘that same'. 원래는 계속 인도식을 먹으려 맘은 먹었는데, 막상 맛난 한국 식당이 보이면 거기로 가는 마음을 막을 수가 없다.
* 오후엔 인도 영화를 보러가기로 했다. 숙소 직원과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영화관 이름을 알아낸 후 싸이클 릭샤에게 영화관 이름을 말한 후 30루피로 흥정을 하고 영화관에 갔다.
가는 동안 역시 불안은 했는데 (혼자 릭샤를 타고가다 보면 어디론가 끌려가 죽을 뻔 했다는 얘기가 꼭 떠오른다) 그냥 인도인들을 볼 수 있었다. 바라나시 숙소와 강가 근처에서는 관광객과 장사꾼만 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집에 있는, 거리를 오가는, 장사를 하는 인도인들을 본거다. 그런데, 언제 봐도 보통의 인도인들은 항상 평안한 표정이다. 우리눈으로 가난하고 지저분할텐데... 그러다보면 자꾸 제대로된 인도를 알고 싶어진다.
* 영화보기도 모험이었다. 관광지가 아니고 영화보는 방법이 한국과 다르기에 이것도 복잡했다. 첨엔 물어물어 3층 영화관으로 갔더니 매표소는 1층이라 했다.
1층으로 가니 영화명이 정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영어도 아니었다. 표파는 직원은 영어도 잘 몰랐다. 그래서, 내가 주위 인도인 도움을 받아 내가 선택한 방법은 시간을 고르는 거였다. 어짜피 흰두어니 알아들을 것도 아니고, 혼자서 2~3시간을 기다릴 수도 없으니. 아무튼 영화관 도착 후 30분만에 표를 구하니 기뻤던 거 같다.
점심은 맥도날드에서 먹었다. 치킨버거세트(119루피)를 먹었는데, 인도에 가난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영화비 125루피와 치킨버거 119루피는 보통 인도인들에게는 큰 돈인데, 깨끗한 복장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즐겼다. 그것도 대부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아니라 잘사는 부모를 둔 자녀들이었던 거 같다.
인도는 형제가 형은 어머니와 살며 캐나다에 살고, 동생은 사기꾼인 아버지와 인도에서 살다가 만나는 얘기였다. 거의 모든 얘기가 흰두어지만 중간에 영어가 끼기 때문에 대충 분위기는 짐작할만 했다. 인도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중간중간에 이유도 없이 노래와 춤을 춘다는 것과 무조건 해피엔딩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영화에서 아버지와 동생은 학교건물에 간판을 가리고 일반 건물로 속여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는 사람들인데도 끝은 해피엔딩이다. 여기서 인도 영화의 특징(해피엔딩, 여자는 이쁘고 착한데 사기꾼같은 못생긴 남자와 사랑에 빠짐) 과 인도의 문화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사기꾼은 나쁜 사람이지만, 인도에서 장사꾼은 사기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러니, 항상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가 끊이지 않으며, 단속도 잘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 공항 환전소에서 돈을 환전해주는데 가짜 돈을 주거나 장수를 속이겠는가?
* 영화를 보고나서 이번에도 싸이클 릭샤를 타고 고돌리아 (바라나시 강가 입구)로 와서 이번엔 인도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탈리였는데, 맛은 큰 차이가 안나지만 종류가 다양했고 가격은 보통 식당 탈리의 2배 이상이었다. 세금은 이미 포함되었기에 팁은 주지 않았는데, 직원이 3번이나 물어봤다. ‘이대로 내면 팁안주는 건데 맞느냐’고. 또 ‘맥주나 음료 맛있는데 안 마실거냐’고. 팁은 음식도 맛없고 특별히 친절하지 않아서. 맥주는 비싸서 먹지 않았다. 맥주는 최소 100루피를 받을 텐데 그 돈이면 맛있는 김치볶음밥 먹고도 남고, 릭샤를 3번을 탈 수 있는 금액이며, 한국에서와 비슷한 금액이기 때문이다. - 이 때는 이랬다. 2500원 아낄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앞으로 진짜 한국에서도 그걸 안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 그리고는 시장 구경도 하고 기념품도 샀다. 그 전에는 조카선물만 챙겼는데, 바라나시가 물건값이 가장 저렴한 편이며, 바라나시 이후에는 아그라와 델리만 남아있는데, 거기는 물가가 매우 비싸기 때문이었다. ‘로빈’네 가게서 샀는데 한국인 인도 가이드 도움을 받으며 기분좋고 저렴하게 샀다. 로빈네 가게는 평범하고 깔끔한 옷 한 벌 250루피, 고돌리아 화려한 가게서는 비싸면 천루피 이상인데 너무 화려해서 입을 수 있을거 같지도 않았다.
* 저녁에는 모나리자 숙소 옥상으로 가 별도 구경하고, 옥상에 올라와있던 거기 직원이랑 한국인 여행객과 대화도 나누었다. 강가에 나가 보트소리를 계속 듣는 것보다는(강가를 걷다보면 지나는 인도인 3명중 1명은 뭔가를 사라고 말을 한다) 조용히 바라나시와 별을 보는 게 좋았다.
1월 26일(수) : 하룻동안 멍때리며 가능한 아무것도 안하기 - 생각은 많이 함
* 그동안 인도를 와서 너무 하려고만 애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천천히 살고자 인도에 왔는데, 인도에서도 무엇을 볼까, 어디를 갈까만 고민하고 최대한 돌아다닌 것이다. 그래서 이날은 밥만 먹고 최대한 아무것도 안해보자 결심했다.
* 아침은 메구 까페란 일본 식당으로 갔다. 그렇게 많은 젋은 한국인들이 좋아하면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해서. 그런데, 처음엔 매뉴를 잘 못고르고(밥인줄 알고 시켰는데 우동만 있었다), 두 번째건 느끼하고 배불러서 비싼 돈 (210루피면 보통 먹은 한끼 식사의 3배)에 비하면 좋지는 않았다.
* 밥 먹고 나서는 화장터 보다가 황금사원 근처 가게를 구경했다. 사람이란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데 사실은 진짜 아는 게 별것 아니라는 것을 그 때 느꼈다. 그 날이 바라나시 6일째 였는데, 황금사원 근처 가게를 처음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는 고돌리아 근처 화려한 가게와 숙소 근처 저렴하고 조그만 가게가 바라나시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낭여행 책에서도 그 가게들을 설명은 했었는데, 내가 안보니 없다고 생각한 거였다.
물건을 마니 산 건 아니었는데 그동안 내가 못본 물건들이 많아 좋았다. 인도온지 20일만에 빨간 점(관광객도 인도인들도 대부분 하고 다닌다, 그 전엔 없었던 것인지 내가 안본것인지는 모르겠다) 파는 데를 첨으로 보고 샀으며, 팔지도 샀다 -- 확인해 보니 이 날은 구경만 하고 다음에 샀던 거 같다. 흰두교 기념품은 구경만 했다.
* 그리고 배낭여행 책에 나오는 가게서 500루피라는 거금을 주고 인도 펀자비도 샀다. 전에 ‘로빈’네 가게서 산 건 평상복, 이 날건 외출용 옷. 그런데, 사고 집에 와서 보니 너무 비쳐서 실제로 입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인도 옷인건 그렇다 치고 여름 옷인데 속이 너무 비친다. 이 때도 느꼈는데 물건살 때 나 성격 급한 건 진짜 고쳐야 한다. 난 오래간만에 안 가본 가게에 가면 내가 이 돈 없어서 못사랴 싶어서 긴 생각없이 저지른다. 물론 내가 가게를 마니 가는 편은 아니고 특별히 럭셔리 물품에 관심있는 건 아니라 사치하는 것은 아니다. 크게 안비싸고 마음에 든다고 정말 필요한지는 생각안해보고 사는 집에 쌓여있는 물건들이 많은 것이다. 앞으로도 이 옷 보면서 그 생각 계속하며 반성할 거다.
*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그냥 인도인들을 구경했다. 장사하는 사람들과 강. 그 전엔 관광객으로 장사꾼을 보니 너무 사라고만 해서 귀찮았는데, 관광객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되고 하루에 얼마를 벌지가 걱정이었다. 그 뒤에도 한 장사꾼을 계속 보다보면 사라고는 계속 하는데 1시간이 지나도 한 가지도 못파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인도인들 표정은 급하거나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다. ‘언젠간 팔리겠지’, ‘못팔면 내일팔지’, ‘그래도 계속 사라고는 해야지’, ‘안산다고 말했지만 살수도 있잖아’, ‘그래도 팔면 우리 가족이 잘 먹을 수 있을텐데.’ 이런 표정들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나를 비롯한 관광객은 급하고 짜증난다. ‘왜 안산다는데 계속 뭐라고 하나?’, ‘저런 걸 사는 사람이 있나’
참 가방 5~7개쯤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파는 장사꾼도 봤는데 바라나시를 끝나는 날까지 궁금했다. 멀쩡하게 제대로 차려놓은 가게가 있으며, 가방은 대부분 미리 사올텐데 강가에서 5개를 놓고 파는 먼지가 쌓인 가방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우리나라로 치면 한강옆에서 배낭이나 큰 짐 가방 5개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라는 것이다. 입구에 큰 가방 가게가 있는 데도 말이다. 그래도 그 인도인은 걱정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자기 수준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가게할 돈은 없으며, 남의 가게 직원으로 가기는 싫거나 실패한 것이니 (사람이 너무 많으니 직장 구하기도 어렵다) , 언젠가 팔릴 때까지 팔아보는 것이다. 그 돈 모아서 나중에 더 잘될거라 생각하면서.
1월 27일(목) : 하루 8시간쯤 걸은 날
* 아침에 일어나서 거기서 나름 유명한 베이커리서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맛은 한국과 비슷했고, 가격은 인도치고는 비싼 편이었다.
* 그리고 나서는 전 날에 이어 천천히 구경하며 걷기가 목표였다. 전에는 1시간이면 갔던 길을 사람 구경하며 3시간쯤 걸려서 걸었다. 장사꾼 구경, 빨래하는 사람 구경 ( 시체태우는 옆에서 빨래를 해서 바닥에 말린다), 크리켓 (야구 비슷한 인도 운동경기)하는 청소년들 구경, 강구경, 가트 구경, 보트 구경, .... 내용은 위에 썼으니 생략
* 걷다보니 강가 끝이 나왔고 좀 더 걸으니 ‘바라나시 흰두대학’이 나왔는데 거기서도 걸었다. 배낭여행 책에도 너무 넓어서 사이클 릭샤를 타라는 대학을 식당을 찾으며 대학생들과 관광객 구겅하며 또 걸었다. 잔디도 앉아보고 건물과 나무와 꽃도 구경하면서. 1월인데도 피어있는 꽃이 있었고 건물은 소박하고 먼지는 많았다. 대학생들은 검소하며 소박해 보였다.
그리고 인도대학에서 내가 급한 것은 점심 해결과 화장실이었다. 식당엔 화장실도 있을거 같아 우선 식당을 찾았다. 역시나 10번은 물어 (뭐라구요. 모른다. 없다-정식 식당인줄 알고. 직진해서 좌회전 등) 어렵게 구내 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이번엔 주문이 문제였다. 다른 식당처럼 앉아서 주문하고 음식나오면 먹고 주무하는게 아니었다. 영어도 없었고, 식당도 3군데도 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착한 남자 대학생(나 따라다니며 음식 시켜주고 갔다) 도움으로 주문하는 곳에 가서 보이는 것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아는 도사와 짜이로 주문을 하고, 도사와 짜이를 받았다. 가격은 도사 2개 4루피, 짜이 3루피. 우리 돈 250원도 안되는 돈으로 나는 약간 양이 적어서 아침에 남긴 빵도 같이 먹었다.
그런데, 인도 대학생들은 그 돈도 아까워 도시락을 싸와서 식당에서 먹었다. 물론 식당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었다. 200루피가 넘는 돈으로 햄버거 먹고 영화를 보는 대학생. 3루피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오는 대학생. 모두 인도인들이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직원도 도시락을 싸오는 것 같았다.
* 화장실은 식당에 없었다. 화장실 어디냐고 묻기도 어색 (웬지 내가 찾고싶기도 했고 금방 찾을 수 있을텐데 어디냐고 물어보면 웃길것도 같았다)해 한 건물을 들어가보니 건물마다 층마다 있었다. 그동안 내가 지나친 건물이 무척 많았을텐데 직접 들어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묻기 싫어서 계속 참으며 물도 안마시고 걸어다닌 것이다. 그 때도 사람은 어리석다는 생각을 했다.
*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걸었다. 우선 대학 중심에 있는 사원을 구경했는데, 이 때도 사원 자체보다는 사원을 바라보는 인도인들과 승려들을 아주 천천히 봤다. 그리고, 대학과 학생들을 더 구경하고 싶어 더 걸었다. 이번에는 건물도 들어가보고 수업하는 것도 잠시나마 구경했다. 물론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야 없었지만. 그리고 길까지 해맸기 때문에 진짜 많이 걸었다. 아마 대학구내만도 2시간 이상은 걸은 거 같다.
* 그리고 이번엔 강에서 멀리로 보이던 다리와 성을 찾아 걷고 싶었으나 보는 사람마다 불가능하다고하여 싸이클 릭샤를 타고 입구까지 갔다. 가보니 평상시 머리위 하늘로 보이던 다리가 아니라 강가에 돌맹이 비슷한 걸 놓고 그 위에 놓은 다리였는데 금방 건너갈 수 있을 듯하여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헐.. 지나가는 차들로 다리는 흔들거리지, 먼지는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지, 짧아보였던 거리는 길지, 중간에 뭐를 탈수도 없지, 외국인은 커녕 인도인들도 걷는 사람은 없지, 날씨는 덮지, ... 정말이지 포기할 수 없어 오기로 걸었다. 실제로는 20분쯤이었을텐데 느낌은 1시간도 넘게 걸은 거 같았다.
* 강가를 건너보디 강 건너도 내가 예상하는 광경이 아니었다. 보트를 타고 건넜던 강건너는 모래 언덕에 조용한 곳이었는데, 거기는 정말이지 먼지(계속 먼지가 날고 있었음)와 더러움(강에서 나온 잉어를 팔고 있었는데 냄새도 싫고 피가 그대로 보이며 씻지도 않아 그 걸 먹을 수 있을지 걱정) 자체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내 목표는 거기를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거였다. 그전까진 그게 나의 목표였는데 그사이 180도 변한 것이다. 그래도 성은 보고가야 될 거 같아서 음료수 하나 사먹고 성을 향해 갔는데 이번엔 똥이 사방에 가득했다. 물론 그전에도 동물과 사람의 똥을 수도 없이 본 나였지만, 거기만큼 사람똥이 많은 곳은 그 이후로도 못보았다. 그리고, 입구까지는 갔는데 (가는데 인도인들이 말리기도 했던거 같다) 안으로 들어가도 별게 없을 거 같아 인증샷만 찍고 나왔다.
* 나올 때 걷기 시작했는데 까마득했다. 그 먼지와 소음을 겪으며 다시 그 강을 건너야 하다니.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것도 10루피에 강을 건너주겠다는 오토릭샤가 있어 인도인들과 함께 탔다. 대학에서 다리를 올때는 건너주지는 못하고 입구까지만 30루피인가 였는데, 거꾸로 갈 때는 다리를 건너주고 대학입구까지 10루피인 것이다. 이렇게 인도의 계산은 다르다. 왜냐하면 어짜피 인도인들을 태운 상태서 나는 덤으로 1명 더 태우기 때문이었다. 그 먼지와 더러움을 벗어나게 해준 오토릭샤꾼이 고마웠던 것도 잠시. 어디까지 태워준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디까지인지를 알지 몰라 불안했다. 도착해보니 바라나시 흰두대학 앞이었는데, 그전에는 다른 곳으로 갈 거 같았다. 불안한 이유중 하나는 운전사를 비롯 거기 탄 손님 인도인들 중 영어되는 사람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강가, 고돌리아 등 아는 명사 다 동원에 다행히 바라나시 흰두대학 앞에 도착했다.
* 거기서부터는 아는 길이라 여유롭게 릭샤를 잡아 고돌리아로 왔다. 정말이지 장소를 알 때와 모를 때의 감정은 천국과 지옥이다. 하교하는 학생들과 인도인들 보면서 천천히.
* 그리고나서는 황금템플 근처 가게로 가 전날 봐두었던 기념품을 샀다. 길이 어찌나 복잡한지 전날은 되돌아가도 찾을 수 없었던 가게를 이 날은 다행히 잘 찾아갔다. 충동적으로 물건 구매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더 싸고 좋은 물건이 있을 거 같아 주저하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걸 느꼈다. 조카 현이 줄 팔지는 이쁘고 화려해서, 내가 가지고 싶었던 금 팔지는 고급스러워 진짜 맘에 들었는데 깍아달라고 했는데 안깍아주어 그냥 돌아나왔다. 그런데, 다음에 가보니 찾을 수 없었고 다른 가게는 더 비쌌으며 살 때보니 그 가게는 진짜 정찰제였다. 내거와 조카거를 합해 그것도 여러번을 말해서야 겨우 10루피 깍았을 뿐이다. 인생에서도 다음에 또 있겠지 하다가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 그리고나서는 아침과 점심 모두 밀가루였기에 또 싼티가서 돈까스+김치볶음밥을 먹고 푹잤다. 인도여행서 가장 고마웠던 곳이 식당 싼티와 이 메뉴였다. 그리고, 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병난 이유가 이 날 너무 걸어서인 듯하다. 아무리 걷는 게 좋아도 적당해야 한다. 지기 체력의 한계를 생각하며 걸어야 한다.
1월 28일(금) : 바라나시를 떠난 날
* 12시 체크아웃이라 마지막으로 바라나시를 떠나기 전 깨끗하게 씻고 짐정리도 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물도 안나오고 전기도 안나왔다. 결국 기다리기만 하다가 배가 고파 밥을 먹으러 나왔던 거 같다. 배낭은 숙소에 맡기고.
* 점심은 내가 제일 좋아하던 싼티에서 제일 마니 먹었던 김치볶음밥+돈까스로. 주인도 자주 와서인지 오늘 떠나냐고 물어본 후 밥도, 돈까스도, 김치도 엄청 마니 주었다. 그 뒤로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몰라 다 먹었다가 소화시키느라 힘들기는 했지만.
* 그리고 기념품을 샀다. 남들이 다 좋다는 히말라야 화장품은 여성용으로. 오빠만 안주면 서운할 거 같아 오빠는 여름에 집에서 입을 시원한 인도 옷으로.
* 그러고나서는 기차 시간이 엄청 남았지만 배낭을 매고 숙소를 나섰다. 마지막으로 강을 보고자 배낭을 매고 강을 천천히 걸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무리였던 듯 하다. 그리고, 능숙하게 사이클 릭샤를 타고 바라나시 기차역으로 갔다. 출발시간은 3시간도 넘게 남았었듯 한데 인도를 혼자 돌아다니다보면 이게 편하다. 밥을 기차역 근처 식당에서 먹으려고 마음 먹었는데 집 없는 거지들만 많을 뿐 식당은 보이지가 않아서 포기했다.
* 그 전에 기차역에서 어려움이 많았기에 전광판을 보고 플랫폼을 찾은 후 직원에게 재차 확인하고 8번 플랫폼에 갔다. 아마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가 출발 2시간도 전이었을 거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플랫폼에 내가 갈 기차가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누구는 모른다하고, 누구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아직은 알 수 없다고 다시 전광판있는 곳으로 가라하고. 그래도 그 때가서 아니면 그 때 옮겨야지 하는 맘으로 기다렸다. 내가 탈 기차 위치(3A) 확인해 놓고 저녁으로 떼울 물과 과자도 사놓고.
* 젊은 인도부부 옆에 내 배낭깔고 앉아서. 난 또 구경거리였고, 돈 없는 사람에겐 구걸의 대상이었다. 구경꺼리라는 건 내가 묻지도 앉았는데 어디가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고. 구걸의 대상이었다는 건 몸이 불편하거나 갓난 아기를 데리고 온 어린이 등이 끊임없이 돈을 달라는 것이다. 다른 때는 동전이 있으면 주곤 했는데, 그 날은 웬지 주기가 싫어 끝까지 버텼다. 마음은 1살쯤 되는 갓난 아기를 안고 다니며 돈을 달라는 6살쯤 되는 여자어린이 바로 옆에 그렇게 구걸을 시키는 부모가 있다고 해도 주고 싶었으나 한 번 안준다고 했는데 마음을 바꾸기가 싫었다. 몸 불편한 사람도 마찬가지였고 서로 남는 건 시간뿐이었기에 돈달라고 10번도 더했는데 끝까지 버텼다. 그러다보니 그 사람들 없나 보면서 몰래 사탕을 먹었다. 사실은 구걸도, 돈 주는 것도 다 자기맘인데.
* 기차는 인도에서 제일 편하게 탔던 거 같다. 출발역이라 연착도 안되고, 타보니 한 칸 6명 중 3명이 한국인이었다. 큰 역이라 출발하는 역서 30분이나 기다리고. 처음으로 탄 3A(그 전에 탄 기차는 모두 슬리퍼. 가격은 3A가 슬리퍼의 2배 이상) 라 조용하고 깨끗한 것도 좋았다.
나빴던 것은 맞은 편에 앉았던 스페인 여성 2이었다. 서양인들은 예의를 잘 지킨다는데 스페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새벽 1시인가 내가 그녀들이 화장실 간 사이 불을 끈 이후까지도 남들이 자건말건 계속 큰 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그래도 하룻밤 샌 후 취소된 기차, 잘가온에서 기차를 못탈번 했던 기억, 3층에서 거의 한마디도 안하며 12시간 이상을 보냈던 기억, 조디뿌르 갈 때 추었던 기억, 그 전의 더러웠던 화장실과 기차안을 생각하면 아주 행복한 신경질이었다.
1월 29일(토) : 아그라 도착, 아그라 성 관람, 아그라 장사에게 질려버린 날
* 새벽 7시쯤에 아그라 역에 도착. 예정시간을 2시간이나 넘겼지만, 주위에 한국인들이 많았기에 불안함은 없었다. 오토릭샤 흥정도 적당히 했고, 숙소(산티로지. 옥상서 타지마할이 보이는 곳)도 생각보다 싼 가격에 구했다. 숙소는 원래 기차에서 만나 사람과 같이 묵기로 해 구했는데, 그 사람이 ‘파테뿌르 시크’라고 14년간이다 수도하다가 물이 없어서 버려진 곳이 좋다고 가버려서 또 혼자 돌아다니고 잤다.
* 아침은 타지마할이 보이는 곳에서 우아하게 먹었다. 정말 책에 나온 그대로 타지마할이 보이니 신기하긴 했는데, 진짜로 사진과 똑같으니 감동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 기차에서 스페인 여자들 때문에 못잔 잠 보충한 후 타지마할 입구는 가본 후 아그라 성에
갔다. 가는 동안 본 아그라 성의 장사꾼들 호객 행위는 질릴만큼 싫었는데, 이건 다른 한국인 관광객도 마찬 가지였다. 장사꾼들 입장에서야 아그라에 먹고살건 타지마할 구경온 관광객뿐인건 알겠는데, 분명히 안산다고 했는데도 10번이고 20번이고 계속 같은 호객행위(옆서 사라, 기념품 사라, 릭샤 타라) 를 들어야 하는 관광객은 정말이지 귀가 멍멍하다.
* 아그라 성(무굴제국의 수도였을 때의 성)은 좋았다. 델리에서 붉은 성만 볼 때도 이게 뭐냐 시시하다라는 맘이었는데, 모든 것을 천천히 느끼면서 거기에 어떤 사람이 살았고 어떻게 건물을 지었을까를 느끼면서 천천히 보자고 마음 먹으니 볼게 많았다. 바라나시서 일주일을 혼자 버틴 후 느낀 소중한 경험 덕분으로. 그리고 아그라 성 구경하는 인도인들 구경도 좋았다. 그러다보니 또 많이 걷기는 했다.
제일 크게 느낀 건 거기서 본 타지마할과 샤자한이었다. 샤자한은 무굴제국 번성기의 황제인데, 사랑하는 아내(얼마나 사랑했는지 둘 사이 자녀가 15명쯤)를 위해 22년간 엄청난 거금을 들며 아내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지은 후 (형에게 왕위를 물려줄까봐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힘센 아들이 왕이 된것이다)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아그라 성의 포로의 탑이라는 곳에서 유폐되어 멀리서 타지마할을 보며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 아그라 성을 본 후엔 오토릭샤 꾼을 물리치고 (안탄다고 계속 고개를 저었는데도 계속 쫓아와서 우리말로 ‘가’라고 소리쳤다) 또 어서오라는 식당의 호객행위에 시달린 후 탈리를 먹고 자마마스지드(이슬람 모스크-탑) 을 구경하기로 했다.
* 문제는 책에는 걸어서 갈 거리라고 나와있고 실제로 아그라의 자마 마스지드를 보는 관광객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길을 물었는데 금방이라고 해서 걷고, 금방이라고 해서 또 걷고 좀 헤매다보니 길을 거꾸로 들어 한참을 걸은 후에야 자마 마스지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간에 아그라에서 본 유일한 시장도 있었는데 내 목적이 자마 마스지드라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막상 본 자마 마스지드는 책 사진 그대로이며 헤메일 때 멀리서도 봤던 그대로였다. 더구나 비둘기가 너무 많아 신전의 느낌은 더 안들고, 흰두사원에서는 흔한 신자들조차 몇 명되지않아 더 실망스러웠던 거 같다.
* 자마마스지드를 구경하고나서도 또 걸었다. 첨엔 타지마할까지 얼마 안될거라고 생각되어, 릭샤꾼들에게 질려 걸었는데 가도가도 끝이 안나오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처음엔 나에게 릭샤를 타라는 사람들을 계속 거절하다가, 마지막에 10루피 (이건 진짜 릭샤의 최저 값이다 5루피 단위로는 별로 돈을 세지 않는다) 라고 하길래 못이기는 척하고 탔다. 그런데, 싼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나중에 내릴 때 릭샤꾼도 요금을 너무 적게 받았다고 생각해서인지 타지마할 입구에서 훨씬 먼 곳에 나를 내려주어 또 걸어야 했다. 그래도 이 때 싸이클 릭샤를 탄 건 천만 다행이었다. 아마 그 길을 다 걸었으면 걷다가 지쳐 울고싶었을지도 모른다.
* 타지마할 입구 (숙소에서 걸어서 5분거리) 에 와서는 밖에서 타지마할 구경도 하고, 가게도 구경했는데 장사꾼들에 질려 최소한 살것들만 사고 오후 4시부터인가 숙소로 가서 잤다. 자고나서 배고파 50루피에 신라면 (옆 가게는 100루피. 당연히 김치가 있다) 판다는 가게가 있어 갔더니 다른 사람이 시킨 요리에는 머리카락이 있고, 식당엔 벌레가 돌아다니고, 내가 시킨 라면엔 김치가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다 먹고 타지마할 보며 맥주 한잔 하고 싶어 맥주도 산 후 숙소로 갔다.
* 원래는 옥상에서 탄두리 치킨과 맥주 한잔 하고자 했으나 달빛이 안좋아 8시쯤에도 타지마할이 안보여 숙소에서 먹었다. 그 게 인도에서 두 번째로 먹은 술이었는데, 다음날 또 설사를 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 때는 술 끊기로 마음 먹었었는데, 한국에 와보니 또 설사를 하는데도 먹게 되었다.
* 참 인도에서 생활습관은 뭐든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는 고기(며칠에 한번은 먹어줘야 한다), 커피(하루에 2번이상), 김치(난 라면도 김치없이는 안먹는다), 술(운동하고 나서나 모임에서는 꼭 먹어줘야 기분이 좋아진다) 등을 끊을 수 없다 생각했는데, 인도에서 생활해보니 모두 끊을 수 있었다. 고기는 바라나시에서 돈까스만 실컫 먹었고, 닭고기조차 3번인가 밖에 못먹었다. 커피는 한국에서 간 커피믹스 20개 중 9개는 남 주고 2개는 남겨왔다. 내가 가져간 건 끓여 먹을 방법이 없어서 (갈때는 코일로 가능하다 했는데 내가 산 코일마다 불량품이라 몇 개 못 끓여 먹었다) 남고, 인도거는 맛없어서 몇 번 안먹었는데, 안먹다보니 생각도 별로 나지 않았다. 술은 맥는 2병 (한국보단 크다) 먹고 두 번다 설사로 고생했다. 김치나 한국반찬도 없는 게 좋지는 않았지만 못견딜쯤은 아니었다.
*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혼자인 것을 즐기고 내 성격탓인지 일행이 있으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불편하다. 난 내가 안따지는 것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하다. 대신 내가 기준을 정해서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건 꼭 그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혼자이다 보면 어렵고 외롭다. 이건 인생의 계속된 숙제인 거 같다.
혼자 맘대로 살것인지, 서로 맞추어가며 같이 살 것인지. 꼭 결혼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가족이든, 직장이든, 친구든 마찬가지인 듯 하다. 그 중 나는 엄마랑 지금 같이 사는 것조차 불편한 혼자인 것이 굉장히 편하고 익숙한 사람이고.
이런 생각하며, 타지마할에 대한 설레임도 가지며, 한국에 돌아갈 날이 멀지않음에 기뻐하며 늦게 잠이 들었던 거 같다.
1월 30일(일) : 타지마할 관람 (진짜 멋지다) 후 어렵게 델리에 도착
* 아침 일찍 일어나 타지마할을 보며 토스트 커피와 아침을 먹었다. 인도에서 인도 커피를 먹은 건 몇 번 되지만 괜찮다고 느낀 건 델리에서 한번 뿐이었다. 내 입맛은 100원짜리 맥심커피믹스 맛이다.
* 아침을 먹은 후에는 짐을 정리해서 맡기고 숙소에 맡긴 후 타지마할로 갔다. 인도에서 1가지만 본다면 타지마할이라고 할 정도로 가장 볼만한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이고, 요금만 750루피 (19,000원 가량)이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세계최고의 건축물이다. 높이는 67미터, 가로 250미터, 세로 350미터의 크기를 자랑하여 멀리서보면 사람이 작은 인형으로 보이고, 22년간 세계 각지에서 막대한 보석을 모아 완성했다고 한다.
* 멀리서 보아도 멋있으며 가까이 갈수록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앞에 만든 정원도 멋지다. 가까이서 하나씩 보면 하나하나가 대리석으로 새긴 조각이며, 대칭구조도 좋다. 첨엔 책의 평가를 다 인정할 수 없었지만, 4시간쯤 가까이서, 멀리서, 돌아가면서 보다보니 왜 세계최고의 건축물인지, 세계 7대 불가사의인지 알 수가 있었다.
평상시 나같으면 ‘어 사진하고 똑같고 크네’ 하고 나왔을 테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세운 타지마할을 세운 황제와 그 명을 받아 2년간 타지마할을 만든 수많은 사람들, 무덤의 주인인 왕비를 생각하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무덤의 주인은 좀 시끄럽고 안좋을 듯 하다. 이슬람 세계의 천국으로 갔을지도 모르지만, 타지마할을 찾는 관광객이 너무 많으니 말이다.
* 타지마할의 감동은 컸지만, 전날 겪은 아그라는 나를 아그라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게 했다. 점심은 건너뛰고 버스를 타기위해 릭샤를 탔다. 마지막까지 아그라는 나에게 실망을 주었던 것이 내가 타고가려던 릭샤가 다른 릭샤로 바꾸어 타라고 해서 (자기네 일 있으면 손님에게 바꾸어 타라는 게 인도식) 그냥 내려버렸다. 그리고 다른 릭샤를 다시 타고 델리행 버스를 탔다. (어짜피 나에겐 똑같았는데 내 마음이 짜증나니 그렇게라도 하고싶었다)
* 버스는 쉽게 탔다. 책에 의하면 3~4시간이라고 했기에 화장실을 안가기 위해 먹는 것만 줄였고 기다리는 시간도 얼마되지 않았다. 아침부터 타지마할 보느라 일찍 일어난데다 전날 먹은 맥주가 탈이나 배는 안고프고 피곤해서 잠도 잘 잔 것 같다.
문제는 2시간쯤 자다가 일어나보니 발생했다. 갑자기 다른 차로 바꿔타라는 것이었다. 역시 외국인은 나뿐이었고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갑자기 버스를 바꾸어타라니... 무슨 일이냐고 묻기는 했는데,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 버스에 손님이 너무 작아 다음 버스에 손님을 넘긴 거 같았고, 인도인들 따라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갈아탈 버스는 금방 왔는데 문제는 손님이 많아 좌석도 없을뿐더러 설자리도 부족하며 배낭도 바닥에 그대로 둔채 서서 가야했다. 피곤도 하고, 배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아파 죽겠다고 바닥에라도 주저앉아 울고싶은 상태지만 어쩔 수 없어 1시간쯤 버티니 바로 내 앞 사람이 내려 자리가 생겼다. 너무 고마워하며 버스를 타고 과자를 먹어가며 배고픔을 달래던 것도 잠시.
도대체 이 버스가 얼마나 오래걸릴지 알 수가 없었다. 책대로라면 벌써 도착했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한참 넘겨 도착할 생각을 안하고 밖은 깜깜해졌다. 옆에 영어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저녁 7시 (출발 후 6시간도 더 지나서) 쯤 코넛플레이스에 도착할 거란다.
* 아무튼 점심도, 저녁도 거른채 7시도 넘어서 거기 가득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리고 마지막 정거장에서 내렸다. 난 거기가 친절한 인도인 말대로 당연히 코넛 플레이스로 생각하고 오토릭샤를 잡았는데 나중에 보니 한참 외곽이었다. 그 바람에 아주 어렵게 오토릭샤를 잡았다. 릭샤꾼들이 200루피인가를 불렀는데 난 코넛플래이스라고 생각했으니 50루피에 가자고 하니 릭샤꾼들이 쳐다도 안 본 것이다. 그 때도 짧은 순간이었지만 겁이났다. 코넛플래이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안보이고 밖은 깜깜한데 보이는 릭샤꾼들에게 얼마냐고 물어보니 (내가 50루피에 가자했기 때문에) 대답도 안했다.
그러다보니 아픈 것도 생각안나고 정신이 번쩍 들어 열심히 오토릭샤를 찾았고 다행히 100루피 (6시간 온 버스 요금이 150루피니 절대로 싼 건 아니지만, 150루피에서 100루피깍느라 난 그 릭샤를 타지 못할 것을 각오해야 했다) 에 숙소가 있는 빠하르간지로 갈 수 있었다. 밤에 혼자서 릭샤를 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릭샤를 타고나서도 겁이 났지만, 별일은 없었다. 무사히 도착하고서야 어느 나라나 운전사들은 돈을 버는게 목적이고 사기꾼들은 재수없으면 걸리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 빠하르간지 (처음에 델리갔을 때 4일간 머문 델리의 저렴한 숙소가 모여있는 곳) 에 도착하니 이번엔 숙소가 문제였다. 8시가 넘은 시간 혼자라서 방이 없을까봐, 바가지 쓸까봐, 두 끼 굶고 아픈 상태서 배낭매고 잘 다닐 수 있는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아파도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생기고 숙소도 3~4개 돌아다니다보니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숙소는 몸상태도 안좋고 어짜피 돈 남는다고 싸가고 다닐 것도 아니기에 좀 좋은 곳으로 잡았다. 그리고, 그 때 인도도 비싼 숙소는 화장실도 깨끗하고 뜨거운 물도 잘 나온 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래봐야 하루 1만원쯤이었는데, 난 지난 인도여행기간 하루 천원~오천원을 아끼고자 그 고생을 한 것이다.
* 늦은 저녁은 숙소를 잡아놓은 후 한국 식당가서 죽으로 떼웠다. 아파서 다른 건 먹을 수가 없었고, 7시간쯤에 만난 한국인이 반가웠고, 공항나갈 정보도 구했다.
1월 31일(월) : 아파서 고생한 날
* 그동안 걷느라 저렴한 숙소에서 고생한게 이 때 탈이 제대로 났던 거 같다. 아침부터 아팠고, 먹기도 겁나서 적게 먹어가며 최대한 쉴 수 밖에 없었다. 아침은 숙소 옥상 식당에서 토스트와 라시를 먹고 그렇다고 인도까지 가서 숙소에서 있을 수만은 없어 늦게 잔타르 만타르라는 천문대로 갔다. 그런데, 거기 갔는데도 더 걷고싶은 마음은 없고 그렇다고 햇빛도 안드는 숙소로 들어가기도 싫어 천문대 잔디밭에서 쉬었다. 심지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자기까지 했다. 이날 델리에서 본 건 그 천문대가 전부였다.
* 점심은 코넛 플레이스 중국 호텔급 식당으로 가서 해산물 스프를 먹었다. 오징어나 조개같은 것을 넣은 간단한 스프인데 175루피(평상시 식사의 2~3배)로 비쌌지만, 내 상태로는 그것밖에 먹을 수가 없었고, 식당이 깔끔하고 친절한 것에 만족했다.
* 참 중간에 영화를 볼까도 했으나 카메라 있어서 영화못본다 (다른 영화관은 그런거 없었는데 그렇다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게 인도다. 우리식이라면 보관이라도 해주어야 할텐데 그런 곳도 없고. 그렇다고 숙소까지 와서 카메라 놓고 다시 가기엔 내 몸상태가 너무 안좋았다 ) 고해서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 저녁은 아파도 양고기를 먹으리라 마음 먹었다. 한국에 있는 인도식당에 가서는 양고기를 두 번이나 먹었는데 26일간 양고기를 한 번도 안먹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삽겹살이나 불고기를 한 번도 안먹었다면 이해가 가려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말로 양고기는 잘못 요리하면 먹을 수가 없다고 하기에 이왕이면 비싼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호텔급 식당으로 양고기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내가 묵은 가장 비싼 숙소 하루 숙박비보다 비싼 517루피였지만 맛도 좋았고 한국보다는 싸니 만족했다. 저녁을 먹고서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쉬었다. 아픈 것도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있었다.
2월 1일 (화) : 인도 안녕
* 다음 날 새벽 3시 비행기이기에 이 날은 숙소 근처인 빠하르 간지나 구경하고 말기로 했다. 아침은 인도에서 처음으로 탄두리 치킨(이것도 인도의 유명한 음식)을 먹었다. 아픈게 다 나은건 아니었지만 인도 28일간 있으면서 양고기와 탄두리 치킨은 꼭 먹어봐야 할 것 같아서였다.
* 남은 시간은 헤나(인도식 문신) 를 했다. 시작할 때는 10루피라고 해서 했는데, 나중에 돈낼 때는 1인치당 10루피라 전체는 150루피라고 했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목소리 더 크면 안내도 된다는 걸 알기에, 50루피밖에 안되는 것을 알기에 나도 큰 목소리로 우겼다. 난 10루피밖에 낼 수 없으니 다시 지워버리라고. 잘못 말했다고 미안하면서 100루피, 50루피 깍는데도 버티니 마지막이라면서 30루피내고 가라해서 못이기는 척 내고 왔다.
인도는 마지막까지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 그리고 나서는 빠하르간지에서 안다니던 곳을 구경했다. 생각해보니 델리에 며칠을 있어도 관광객들만 다니는 늘 다니던 길만 다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찾으려고보니 전에는 안보이던 인도인들 다니는 길이 바로 옆에 보였다. 거기서 보통 인도사람들과 가게를 구경했다. 말하자면 그동안은 서울서 인사동 거리만 다닌 것인데, 그 날은 그냥 종로의 거리를 거닐은 것이었다. 살거는 없었지만 채소시장도 그 때 처음 보았다. 참 그 때 제대로 우리나라만 토마토가 과일일뿐 외국은 채소라는 사실을 알았다. 당연히 요리재료이기에 채소가게서 판다. 어렸을 때 토마토가 과일이라고 하는 걸 이해가 가지 않은 상태로 그냥 외웠던 적이 있는데,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 또, 진짜 마지막이었기에 남은 돈으로 히말라야 화장품, 현이 줄 장식 등 기념품도 샀다.
그리고 짐을 싸고 다시 정리하고 델리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파스타로 한 후 공항과 비행기에서 먹을 것도 사서 공항행 차를 탔다.
* 마지막 공항으로 가는 차에서도 약간의 사기를 당할뻔 했고, 바가지는 썼다. 숙소 밑에 여행사가 있어 공항픽업 신청을 받는데 내가 신청하겠다고 했더니 다음날 새벽 3시기차를 타기 위에 전날 낮 12시에 오라는 것이다. 이해가 안돼서 저녁 6시에 가도 가는 시간과 수속 시간이 충분할텐데 왜 12시에 가냐는 말을 5번도 더하니 (첨엔 직원들, 나중엔 사장) 그때서야 6시에 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막상 그날 6시에 가니 계약서를 안썼으니 그건 계약한 게 아니라면서 그 때서야 택시를 불렀고, 그것도 2명이서 같이 이용했다. 택시 하나가 택시비를 2군데의 여행사에서 따로따로 받은 것이었다. 그때야 12시에 오라는 것도 이해가 되었는데 두 사람에게 요금을 받고 한 택시를 부르려고 했는데 내가 싫다하니 골탕이나 먹이자고 예약도 안해놓은 것이었다. 그럴줄 알았으면 내가 그냥 택시를 불렀어도 됐는데 흥정에 자신이 없고 제대로 데려갈지도 알 수 없어 남들하는대로 하다가 또 당한 것이었다.
* 공항에서도 걱정은 했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영어는 제대로 안통했지만 구경하고 자기나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대신 7시에 도착했는데 비행기는 다음날 3시였으니 엄청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는건 인도에서 잘 단련된 거였고 다음날이면 한국으로 갈거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친절한 인도인들을 만났으면, 숙소에서 충분히 쉰 후 천천히 공항으로 가 (공항으로 가는 건 밤 늦게는 문제가 아닌 듯 했는데 그것도 몰랐다.) 조금만 기다리고 비행기를 탔을 테지만 말이다.
2월 2일 (수) : 무사히 한국으로
* 수속 밟은 후나 전이나 시간은 남고 졸려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리고,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비행기에 탔을 때도 인도에 실망했다. 어찌된 일인지 앞자리는 텅텅 비었는데도 내가 있던 뒷자리만 사람이 꽉찼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라면 편한 앞자리부터 태우던지, 골고루 태우는게 당연할텐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갔다. 승무원들 잘 자리를 남긴거든지, 늦게 올 높은 사람을 위해서 남겨논건지, 특별히 달라는 자리 없으니 그냥 아무것이나 준 것인지. 다른 한국인들 말을 들으니 좌석줄 때 몸이 안좋으니 좋은 자리 달라고하면 준다는 것이었고, 다행히 나는 화장실 가다가 앞에 좌석 빈 것을 보고 자리를 옮겨서 편히 잤다. 뒷자리는 좌석이 꽉 찼는데, 앞에는 좌석을 3개 차지하고서 옆으로 누워자는 사람까지 있었고, 난 늦어 3자리는 아니고 2자리를 차지하고 잤다.
* 상하이 공항에 도착해서는 물가 비싼 것과 졸린 것 말고는 별 문제없이 잘 잤다. 갈 때는 한국에서 작은 비행기를 타서 내가 혼자서 환승 (비행기 갈아타는 것)해야 했지만, 올 때는 인도에서 큰 비행기를 타서 안내하는대로 따라만 가면 환승수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탈 비행기 앞 게이트에서는 밥 먹는 시간과 면세점 둘러보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잤다. 그래도 명색이 공항인데 옷하나 덮고서 중간에 잠깐 깨면서 6시간은 넘게 잔 것이다. 여권과 돈 잃어버리면 큰일이라 그건 잘 속에 두고서 창피한 것 없이 잘 잤다. 어쩌면 세계에서도 가장 큰 공항 중 하나인 상하이 공항에서 난 가난한 나라의 돈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배낭여행을 맨 사람조차 별로 없는데, 그러고 일행도 없이 혼자 의자에 누워 자고 있으니.
* 상하이서 인천 오는 비행기 타서는 여행객 대부분이 한국인이며, 승무원도 한국인이라 아무문제도 없었다. 시간도 연착되지 않았고, 줄도 잘 서서 지하철 잘 타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설 전날인데다 조금 늦어지다보면 마지막 지하철을 놓쳐 비싼 택시를 타야하고 (최소 5만원은 넘음) 공항-영등포 지하철을 타는 것도 첨이라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막차를 놓치지 않았다. 서울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쯤 됐던 거 같다.
그리고 집이라는 사실로, 한국이라는 사실만으로 무지 행복했다.
후기 : 일기를 쓰다보니 나쁜 것 위주로 썼는데, 좋은 게 훨씬 많았다. 인도라는 나라를 직접 느낀 거, 타지마할 등을 본 것, 무엇보다 인도인의 여유와 느림을 본 것, 다른 문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 ..... 그래서 언젠가는 모르겠지만, 인도를 좀 더 제대로 알러 또 인도로 갈 것이다.
# 인도여행 결산1- 원래 계획과 준비
원래 계획
◆ 예상 일정 : 2011년 1월 6일(목)~ 2월 2일(수) 총 28일 여정
◆ 예상 루트 : 인천(6) - 델리In(7,8) - 바라나시(9~14) - 카주라호 (15,16) -
오르차(17) - 아그라(18, 19) - 자이뿌르(20, 21) - 자이살메르(22-24) - 조디뿌르(25)
- 우다이뿌르(26, 27) - 아잔타, 엘로라 (28~ 30) - 델리(31~2.1) - 인천(2.2)
: 김영임, 박미희와 어느 정도 같이 가다가 나중에 따로 가기로 함
◆ 예상 경비 : 총 190 (만원)
- 비행기(100), 침낭 등 준비(30), 현지생활비(90)
- 예비비(50) : 도난이나 분실, 질병 등에 대비 통장에 넣고 갔던 돈
◆ 준비 : 영어 일상 회화는 가능하도록 익히기, 지역 정보 파악하기, 인도 책 읽기
◆ 준비물 :
구 분 |
품 목 |
내 용 |
비 용 |
구입처 |
In-Out |
여권 |
복사본 4장 준비 |
- |
- |
비자 |
비자 신청 |
100,000 |
티티코리아 | |
항공권 |
복사본4장 |
1,030000 |
인터파크 투어 | |
여행자 보험 |
1개월 |
22,000 |
한화보험 | |
현금카드 |
국제체크카드 2장 -쓸 돈. 비상비 90만원 입금 |
|
시티은행 | |
여권사진 |
분실대비용 6장 |
18,000원 |
- | |
합계 |
|
|
1,170,000 |
|
Bag 등 |
배낭 |
중국갔을 때 쓴거 |
|
|
침낭 |
Tavel Mate 350g |
68,000 |
Tavel Mate | |
보조가방 |
소지품 휴대 |
60,000 |
Tavel Mate | |
복대 |
여권 등 필수품 지참 |
7,500 |
Tavel Mate | |
자물쇠,와이어 |
배낭 잠금장치 Set |
10,000원 |
Tavel Mate | |
맥가이버 칼 |
병따개, 칼 등 |
10,000원 |
Tavel Mate | |
|
|
- |
- | |
합계 |
Tavel Mate |
인터넷 구입 합계 |
176,000원 |
|
Wear |
입고간 옷 |
바지1, 레깅스1, 상의 3(겹쳐입는 옷), 속옷 |
|
|
상의 |
긴팔1, 반팔1 |
- |
- | |
하의 |
긴바지1, 츄리닝 1벌 |
- |
- | |
양말 등 |
양말4, 속옷, 수건1, 장갑 |
- |
- | |
운동화 |
나이키(전에 구입) |
- |
- | |
슬리퍼 |
현지 구입 |
- |
인도 | |
모자 |
있던거 |
- |
- | |
여름옷 |
현지구입 |
- |
인도 | |
인도옷 |
현지구입(바지, 상의) |
- |
인도 | |
숄(보온용) |
현지구입 |
- |
- | |
|
|
- |
- | |
생활품, 음식 |
씻을거 |
빨래비누, 세수비누, 샴푸, 린스, 치약, 칫솔 |
제외 |
있던 거 |
음식 |
고추장, 멸치, 김, 쵸콜릿, 컵라면 |
제외 |
슈퍼 | |
필기구 |
수첩, 볼펜2, 형광펜 |
- |
- | |
책 |
배낭여행책 |
- |
- | |
기타 |
깜빡이, 카메라, 충전기 |
제외 |
있던 거 | |
핸드폰 |
자동로밍, 문자만 이용 |
- |
- | |
환전 |
570달러 환전 |
- |
농협, 시티은행 | |
기타 |
물휴지, 화장지 |
제외 |
있던 거 | |
기타 |
크린백, 지퍼백 등 |
제외 |
있던 거 | |
|
쇠컵 |
제외 |
있던 거 | |
|
|
- |
- | |
합계 |
|
|
130만원 |
1 |
여행준비
2010년
결심 : 2월쯤 3학년 담임 끝난 후 (다른 학년은 보충이 있어서 가려면 눈치보인다) 다른건 못해도 이번엔 인도가자 결심
왜 배낭여행인가? : 40전 혼자서 꼭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왜 인도인가? : 역사도 길고 땅도 넓고 영어면 여행은 가능하다 하고, 무엇보다 뭔가 정신적 무언가가 있을거 같았다.
영어회화 공부 : 원어민 교사인 크리스틴과 2009년부터 1주일에 1시간씩 2년간 영어회화를 했는데, 잊어먹은게 너무 많았다.
깜빡이 : 5월에 거금 36만원 주고 구입했다. 중학교 기본 필수 단어부터 있으니 뭐부터 시작해야 될지를 알 수 있었고, 들으면서 단어를 익힐 수 있어서 좋았고, 틈날 때 할 일없을 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고등학교 내신 단어까진 공부하고 갔고,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도 책 읽기 : 2010년 -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인도 바로 보기, 신도 버린 사람들, 인도기행 (법정스님) , 대학생의 인도 배낭여행담, 지구별 여행자 - 류시화 아주 예전에
11월 24일 : 친구들과 술 먹다가 인도가려면 비행기표 예약 서둘러야 한다고 해서 다음날 거금 103만원이나 주고 비행기표 예약. 몇 달전 예약했으면 싼 방법이 많았는데 100% 다주고 구입했다 - 혹시 배낭여행 가려는 사람은 최소한 3달전에 비행기부터 저지르기를. 그러면 최소한 2~30만원은 절약 가능하다
12월 15일쯤 : 까페에서 인도 갈 사람들 찾아서 직접 만남. 첨엔 혼자 가려했는데, 막상 가려니 겁이나서 인도방랑기에서 나보다 8살 많은 김영임 언니, 나랑 12살 아래 띠동갑인 박미희님과 같이 가기로하고 서울서 모임을 가졌다.
12월말 : 준비물 구입, 침낭, 크로스 백, 자물쇠, 배낭여행 책(론니 플래닛 영어판, 인도 100배 즐기기) 등
12월 31일 : 10만원 주고 인도 당일 비자 신청했다. 늦게 신청하고 하루 550명으로 제한하는 바람에 잘못하면 인도 비자 없어서 못갈뻔 했다. 택시타고 9시전에 갔는데 이미 그날 550명이 끝나버렸는데, 25,000원쯤 더 주고 당일 비자 신청했다.
2011년
1월 3일 : 카드 신청(인도에서 돈 뺄 수 있는 카드), 달러로 환전 (우선 달러로 바꾼 후 그 돈을 인도 루피로 바꾸어야 함), 그 밖의 준비물 - 김 등
짐싸보기 : 5번도 넘게 짐 점검하면서 점점 짐 줄이기. 옷, 샴푸, 침낭 등 생활필수품, 배낭여행 책, 읽을 책, 카메라, 여권과 항공권 복사본, 고추장과 김 등 한국음식 등 다 넣다보니 너무 무겁고 배낭에도 다 안들어가서 최소한으로 짐을 줄였다. 김도 조금, 읽을 책은 안가져가고, 배낭여행 책은 잘라서 내가 갈 장소만, 양말과 속옷도 최소한으로, 겉옷도 입는 것 빼고 1벌씩만 더. 비누나 치약도 작은 것으로. 여러번 줄이다보니 그때야 배낭매고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가서 배낭무게가 전생의 죄만큼이라고 할 정도로 짐은 줄이고 봐야 한다. 안그러면 배낭 무게 때문에 여행이 싫어져서는 안된다.
2. 인도 돈 정리 (지출 총 합계 - 215만원 가량
- 가족 선물, 침낭 구입비 등 모두 포함)
* 환전 내역
날짜 |
내용 |
금액 |
비고 |
12.29 |
농협환전(1달러당 1157원) 550달러 |
636,370원 |
달러당 30원손해. 환율 비교하며 우대금리 적용받기 또는 외국어 직접 인출하기 |
1.3 |
시티은행 환전(1달러당 1126.5원) 50달러-국제 체크카드 만들어 우대금리 |
56,330원 | |
|
600달러 |
692,700원 |
공항이라 매우 비쌈 |
1.6 |
공항 환전(1달러당 40RS)-20달러 |
800RS |
공항이라 매우 비쌈 |
1.7 |
델리 환전(1달러당 44.8RS)-100달러 |
4,480RS |
|
1.9 |
델리 환전(1달러당 45RS)-150달러 |
6,750RS |
|
1.16 |
우다이뿌르 환전(1달러당 44.5RS)-100달러 |
4,450RS |
|
1.23 |
바라나시 환전(1달러당 44.5RS0-200달러 |
8,900RS |
|
|
570달러(647,600원어치) |
709,180RS |
|
* 지출 내역
* 실제 지출 (준비-한국돈, 지출-인도돈, 달러(한국돈으로 계산), 한국돈)
* 공동은 3~6명이 함께 걷어서 지출한 돈. 나중을 위해 가능하면 1개씩 적으려고는 함
날짜 |
내용 |
지출액(한국돈) |
비고 |
11.26 |
비행기(중국 동방항공) - 카드 |
1,031,000원 |
|
12.1 |
인도 배낭여행 책 |
14,000원 |
|
12.7 |
침낭, 크로스 백등 |
176,000원 |
|
12.16 |
인도가기 모임 기차표 |
21,000원 |
|
|
인도 모임 음식값 |
14,000원 |
|
12.20 |
비자신청용 사진 |
18,000원 |
|
|
비자비(당일비자 추가료) |
100,000원 |
|
|
택시비(비자신청하러갈 때) |
10,000원 |
|
|
여행자 보험 |
22,000원 |
2010년 |
1.6 |
공항버스 |
9,000원 |
2011년 |
|
멀미약, 감기약 |
9,000원 |
|
|
물(상하이 공항)- 2달러 |
2,300원 |
내 평생 제일 비싼 물 |
|
아침-인천공항 |
9,000원 |
|
2.2 |
점심(상하이 공항) -320元(중국돈-오빠) |
56,000원 |
|
|
지하철 |
4,300원 |
|
|
준비 합계, 한국. 중국 공항 지출합계 |
1,495,600 |
준비 음식은 제외 |
* 인도 지출내역 (RS-루피, 1RS=25.5원꼴) 400RS 남고, 647,6000원정도 쓴 셈)
일의 자리는 대충 계산하고 주기도 많이 함
날짜 |
내역 |
지출액(인도돈) |
비고 | ||||
1.6(목) |
간단한 저녁, 물-공항 비쌈 |
150 |
소계 150 | ||||
1.7(금) |
택시비 340 4, 숙박비 550 3, 릭샤 비 등 공동 |
300 |
|||||
델리 |
아침(한국식당. 김치찌개) |
180 |
| ||||
|
점심(비리야니-인도볶음밥)과 커피 |
135 |
| ||||
|
붉은 성(무굴제국 성) 입장료 |
250 |
인도인은 십 | ||||
|
저녁(지나가다 사먹을 수 있는 간단한 것) |
50 |
| ||||
|
슬리퍼 |
100 |
| ||||
|
숄(잘때는 이불로, 추울때는 덮는 것으로 이용) |
200 |
| ||||
|
릭샤(붉은 성과 간디박물관 오갈 때) |
50 |
소계 1265 | ||||
1.8(토) |
릭샤비 3, 짐보관, 꾸뜹미나루 오갈 때 버스비 등 |
100 |
| ||||
델리 |
아침(도사-누룽지 비슷한 것에 속에 야채가 있음와 커피-맛 없음) |
146 |
| ||||
|
꾸뜹미나르(무굴제국 승전기념비) 입장료 |
250 |
역시 인도인은 쌈 | ||||
|
후마윤(무굴제국 황제) 무덤 - 타지마할 전 무덤양식 |
250 |
| ||||
|
저녁(탈리), 물(보통 10~15) |
65 |
소계 811 | ||||
1.9(일) |
아침(빵, 커피) |
10 |
| ||||
바라나시 |
유료 화장실 2회 |
3 |
대신 깨끗 | ||||
기차기다리다 |
점심-탈리(기차역 식당) |
49 |
| ||||
연착 후 |
저녁-기차역 탈리 |
22 |
| ||||
결국 취소됨 |
기차비(조디뿌르SL)-바라나시 취소한거 환불받고 다시 끊음 |
300 |
소계 384 | ||||
1.10(월) |
조디뿌르 공동지출 (릭샤, 물, 과일, 아침, 짐 보관 등) |
200 |
| ||||
|
숄(스카프 비슷하게 햇빛 가리는 것) |
150 |
| ||||
|
블루시티(옛날 인도 지방왕족의 성) 입장료 |
50 |
| ||||
|
점심(탄두리 케밥) |
260 |
| ||||
|
바지(추위 대비 내의 대신) |
280 |
| ||||
|
빗, 악기연주, 물 |
45 |
| ||||
|
과자(쵸코바 등) |
20 |
| ||||
|
헤나(인도의 물감으로 그리는 문신) |
100 |
| ||||
|
기차(조디뿌르-자이살메르SL) |
155 |
| ||||
|
메헤랑가르 성채-뒷문으로 들어가서 |
0 |
소계1,320 | ||||
|
저녁(탈리) |
60 |
| ||||
1.11(화) |
옷3(인도 전통 바지2, 윗옷1) |
700 |
| ||||
|
가방(인도 전통 주머니, 얼마나 약한지 여행중 튿어져 버리고 왔다) |
200 |
| ||||
|
화장지(두루말이 화장지 파는 곳도 이곳이 처음)-40, 물 |
50 |
| ||||
|
아점(김치찌개-무우로 만듬) |
150 |
| ||||
|
목걸이 등(조카 기념품) |
120 |
| ||||
|
포도(날씨가 따뜻하니 과일은 싸고 좋다. 포도는 매우 비싼 편. 한근) |
100 |
| ||||
|
라시(요플레 비슷한 것으로 인도에서 일상적으로 먹는다) |
35 |
| ||||
|
저녁(신라면과 밥) |
150 |
| ||||
|
맥주(1병) |
100 |
| ||||
|
숙박-1인당 계산 |
100 |
소계 1,705 | ||||
1.12(수) |
낙타 사파리(낙타 타기, 간단한 1박 2일간 식사, 사막에서 잠, 팁 등) |
720 |
| ||||
|
치킨 바비큐(반마리. 치킨은 우리나라보다 엄청 작다) |
85 |
| ||||
|
아침(토스트, 물, 라시 등) |
70 |
| ||||
|
자인템플 구경-사막에 있던 모래 유적지 |
30 |
소계 905 | ||||
1.13(목) |
저녁(칼국수), 화장지, 커피 |
160 |
| ||||
|
버스(자이살메르-우다이뿌르 슬리퍼 버스) |
400 |
소계 605 | ||||
|
모름(잔액 안맞는 것) |
45 |
| ||||
1.14(금) |
릭샤(60 4. 버스-숙소) |
15 |
| ||||
|
과자, 화장지(두루마리 40) |
55 |
| ||||
|
코일-물을 끓일 수 있는거였는데 한번도 안쓰고 고장났다 |
35 |
| ||||
|
아침 -라시와 라이스(말그대로 쌀밥인데 쌀 종류가 달라 날아갈 거 같으며 여기에 한국에서 가지고 간 고추장, 멸치를 먹었다) |
80 |
| ||||
|
코코넛, 물, 과자 |
40 |
| ||||
|
점심(에그커리와 난, 라시)-인도식 중 가장 맛있었던 식사 |
205 |
| ||||
|
저녁(라이스)-역시 고추장과 멸치로 |
40 |
| ||||
|
인도 반팔옷(바가지 였는데, 다음에 이동할 지역이 인도의 더운 지역이라 꼭 필요했다) |
350 |
| ||||
|
숙소(300 2) |
150 |
소계 990 | ||||
1.15(토) |
버스(우다이뿌르-아메다바드) |
550 |
숙소 주인에게 믿고 맡겼다가 나중에 보니 수수료만 이백루피, 식당도 비쌈 | ||||
|
기차(아메다바드-잘가온SL) |
325 | |||||
|
아침(토스트.쥬스) |
70 | |||||
|
시티 팰리스 입장료 |
60 |
| ||||
|
점심(감자 수제비) |
85 |
| ||||
|
오렌지(1근 4개 50), 과자(저녁과 다음날 아침) |
70 |
| ||||
|
인터넷-1시간 |
30 |
| ||||
|
릭샤-1인(버스 정유소까지) |
40 |
| ||||
|
릭샤 등 공동 |
85 |
| ||||
|
라시-3명 (내가 배낭여행 책 잃어버렸는데 도중에 만난 한국인이 배낭여행 책을 주어 답례로) |
120 |
소계 1520 | ||||
|
감기약 |
85 |
| ||||
1.16(일) |
점심(기차-비리야니) |
40 |
| ||||
|
숙소(300 3) |
100 |
| ||||
|
저녁(공동) |
100 |
소계 240 | ||||
1.17(월) |
아점(공동) |
100 |
| ||||
|
물, 과자, 릭샤 (공동) |
115 |
| ||||
|
저녁(공동) |
100 |
| ||||
|
숙소(300 3) |
100 |
소계 415 | ||||
1.18(화) |
릭샤(숙소-기차역) |
30 |
| ||||
|
버스비 등(잘가온-아잔타) |
70 |
| ||||
|
기차표(잘가온-바라나시.20일이용SL) |
440 |
| ||||
|
아잔타 입장료 |
250 |
| ||||
|
아점(샌드위치, 라시) |
90 |
| ||||
|
숙소(400 3) |
140 |
| ||||
|
공동(릭샤, 저녁, 물등) |
110 |
소계 1,130 | ||||
1.19(수) |
엘로라 입장료 |
250 |
| ||||
|
숙소 |
130 |
| ||||
|
공동(버스, 식사, 릭샤 등) |
200 |
| ||||
|
물, 포도, 엿, 옥수수 등 |
160 |
소계 740 | ||||
1.20(목) |
아점, 커피 |
73 |
| ||||
|
릭샤(아우랑가바드. 숙소-버스) |
30 |
| ||||
|
릭샤(잘가온. 버스-기차) |
25 |
| ||||
|
버스(아우랑가바드-잘가온. 4시간) |
122 |
| ||||
|
저녁(치킨, 콜라 등) |
136 |
| ||||
|
포도(반근 50), 물 |
65 |
소계 490 | ||||
|
기타(잔돈은 달라는 사람 주거나 화장실 등에 이용, 안맞음) |
39 |
| ||||
1.21(금) |
사이클 릭샤(바라나시역-고돌리아) |
30 |
| ||||
|
짜이(기차) |
5 |
| ||||
|
점심 (싼티-일본 식당. 김치볶음밥+돈까스 75. 처음 먹은 돼지고기), 콜라 |
90 |
| ||||
|
식빵, 물 |
30 |
| ||||
|
토마토(한근15), 화장지(50), 돼지코일(30) |
95 |
| ||||
|
보트 |
20 |
| ||||
|
저녁(인도식이었던 듯) |
55 |
소계 325 | ||||
1.22(토) |
아침(에그커리, 난) |
60 |
| ||||
|
빨래비누, 가루, 목욕타월 |
35 |
| ||||
|
오이35, 음료 30, 잼 40, 구아바 20등 |
120 |
| ||||
|
점심(수제비) |
85 |
| ||||
|
인터넷 |
20 |
소계 320 | ||||
1.23(일) |
아침(스파게티) |
70 |
| ||||
|
점심(싼티 김치볶음밥) |
60 |
| ||||
|
저녁(이스라엘식 식사) |
90 |
| ||||
|
라시, 과일, 콜라, 물 |
60 |
| ||||
|
기차표(바라나시-아그라.28일거 3A) |
720 |
소계 1000 | ||||
1.24(월) |
황금템플 꽃, 낸돈 |
30 |
| ||||
|
점심(메구까페. 생강 치킨) |
110 |
| ||||
|
물, 보트탐, 짜이 |
70 |
| ||||
|
저녁(싼티 김치볶음밥+돈까스,짜이) |
80 |
소계 290 | ||||
1.25(화) |
새벽 보트 |
60 |
| ||||
|
아침(마살라도사 10, 만두 4, 음료 15) |
29 |
|
|
과일 |
31 |
|
|
점심(맥도날드의 치킨버거세트) |
119 |
| ||||
|
영화 |
125 |
| ||||
|
릭샤(영화보는곳가지 왕복) |
50 |
| ||||
|
저녁(호텔 같은데서 남이도식 탈리) |
138 |
| ||||
|
인도옷(펀자비 한벌, 바지 1) |
350 |
소계 902 | ||||
1.26(수) |
아점(메구까페. 우동+생강밥) |
210 |
| ||||
|
펀자비(고급-한복같은 느낌) |
500 |
| ||||
|
물, 짜이 등 |
30 |
| ||||
|
저녁(이날도 싼티인듯) |
75 |
소계815 | ||||
1.27(목) |
아침(베이커리서 빵과 커피) |
70 |
| ||||
|
전화 20, 옆서 15 |
35 |
| ||||
|
점심(대학 구내식당. 사모사2-만두, 짜이) |
7 |
| ||||
|
릭샤3회(흰두바라나시대학, 람나가르성) |
50 |
| ||||
|
음료, 라시 |
40 |
| ||||
|
기념품(팔찌 내꺼, 조카꺼, 빨간점) |
160 |
| ||||
|
히말라야 화장품(선물할거) |
276 |
| ||||
|
저녁(또 싼티. 돼지고기 생강구이, 짜이) |
70 |
| ||||
|
화장지 |
25 |
소계 733 | ||||
1.28(금) |
숙소 (싱글룸6일. 더블룸1일) |
1450 |
| ||||
|
아침 (빵+그동안 산 거) |
30 |
| ||||
|
점심 (김치+돈까스. 싼티 마지막) |
75 |
| ||||
|
기념품(오빠 옷) |
200 |
| ||||
|
히말라야 화장품 (엄마, 동생등) |
384 |
| ||||
|
릭샤(고돌리아-기차역) |
30 |
| ||||
|
과자, 물 |
30 |
소계 2,199 | ||||
1.29(토) |
숙소(350 2) |
180 |
| ||||
|
아침(타지마할 보이는 옥상에서 비리야니와 짜이) |
85 |
| ||||
|
릭샤 3회(기차역-숙소, 숙소-아그라성, 아그라성-타지마할근처) |
60 |
| ||||
|
콜라 |
20 |
| ||||
|
점심(탈리) |
70 |
| ||||
|
아그라 성 관람 |
300 |
| ||||
|
맥주 |
110 |
| ||||
|
포도 |
60 |
| ||||
|
저녁 (신라면 김치가 없어 쌉다) |
50 |
| ||||
|
물 20, 과자 30, 오이 등 20 |
70 |
소계 1005 | ||||
1.30(일) |
아침(커피, 토스트) |
50 |
| ||||
|
타지마할 관람 |
750 |
| ||||
|
릭샤 (아그라. 숙소-버스역) |
40 |
| ||||
|
버스(아그라-델리) |
150 |
| ||||
|
릭샤 (델리. 버스역-빠하르간지) |
100 |
| ||||
|
저녁 (죽120, 짜이30)-한국식당이라 비싼것임 |
150 |
| ||||
|
숙소 (2일거 혼자 선불)-가장 비싸고 좋았음 |
800 |
소계 2030 | ||||
1.31(월) |
아침(토스트, 라시) |
70 |
| ||||
|
땅콩, 음료 |
35 |
| ||||
|
지하철 |
8 |
| ||||
|
잔타르 만타르(천문대) 관람 |
100 |
| ||||
|
점심 (중국고급 식당. 해산물 스프, 음료수, 세금, 써빙) |
172 |
| ||||
|
릭샤(빠하르간지-코넛플레이스) |
20 |
| ||||
|
바나나, 물 |
25 |
| ||||
|
저녁(양고기 스테이크395, 콜라50, 세금 등 72)- 가장 비싸게 먹은 거 |
517 |
소계 967 | ||||
|
양말-한번 신고 버림 |
20 |
| ||||
2.1(화) |
헤나 |
30 |
| ||||
|
오렌지(너무 커서 맛없어 버림) |
50 |
| ||||
|
과자, 음료 |
30 |
| ||||
|
히말라야 화장품(친척들까지) |
595 |
| ||||
|
아침 (탄두리치킨) |
276 |
| ||||
|
화장지, 음료, 토마토 |
69 |
| ||||
|
점심 (파스타) |
95 |
| ||||
|
장식품(조카꺼) |
40 |
| ||||
|
택시(숙소-공항) |
230 |
소계 1,415 | ||||
2.2(수) |
과자-원래는 30받았던 감자칩 |
50 |
| ||||
|
쵸코바 |
35 |
| ||||
|
히말라야 립밤(돈 남아서)-같은 가격 |
200 |
| ||||
|
준 돈 |
34 |
소계 309 | ||||
|
루피 지출 합계 |
24,980 |
24,980 |
3. 인도 돈 정리 (지출 총 합계 - 215만원 가량
- 가족 선물, 침낭 구입비 등 모두 포함)
* 환전 내역
날짜 |
내용 |
금액 |
비고 |
12.29 |
농협환전(1달러당 1157원) 550달러 |
636,370원 |
달러당 30원손해. 환율 비교하며 우대금리 적용받기 또는 외국어 직접 인출하기 |
1.3 |
시티은행 환전(1달러당 1126.5원) 50달러-국제 체크카드 만들어 우대금리 |
56,330원 | |
|
600달러 |
692,700원 |
공항이라 매우 비쌈 |
1.6 |
공항 환전(1달러당 40RS)-20달러 |
800RS |
공항이라 매우 비쌈 |
1.7 |
델리 환전(1달러당 44.8RS)-100달러 |
4,480RS |
|
1.9 |
델리 환전(1달러당 45RS)-150달러 |
6,750RS |
|
1.16 |
우다이뿌르 환전(1달러당 44.5RS)-100달러 |
4,450RS |
|
1.23 |
바라나시 환전(1달러당 44.5RS0-200달러 |
8,900RS |
|
|
570달러(647,600원어치) |
709,180RS |
|
* 지출 내역
* 실제 지출 (준비-한국돈, 지출-인도돈, 달러(한국돈으로 계산), 한국돈)
* 공동은 3~6명이 함께 걷어서 지출한 돈. 나중을 위해 가능하면 1개씩 적으려고는 함
날짜 |
내용 |
지출액(한국돈) |
비고 |
11.26 |
비행기(중국 동방항공) - 카드 |
1,031,000원 |
|
12.1 |
인도 배낭여행 책 |
14,000원 |
|
12.7 |
침낭, 크로스 백등 |
176,000원 |
|
12.16 |
인도가기 모임 기차표 |
21,000원 |
|
|
인도 모임 음식값 |
14,000원 |
|
12.20 |
비자신청용 사진 |
18,000원 |
|
|
비자비(당일비자 추가료) |
100,000원 |
|
|
택시비(비자신청하러갈 때) |
10,000원 |
|
|
여행자 보험 |
22,000원 |
2010년 |
1.6 |
공항버스 |
9,000원 |
2011년 |
|
멀미약, 감기약 |
9,000원 |
|
|
물(상하이 공항)- 2달러 |
2,300원 |
내 평생 제일 비싼 물 |
|
아침-인천공항 |
9,000원 |
|
2.2 |
점심(상하이 공항) -320元(중국돈-오빠) |
56,000원 |
|
|
지하철 |
4,300원 |
|
|
준비 합계, 한국. 중국 공항 지출합계 |
1,495,600 |
준비 음식은 제외 |
* 인도 지출내역 (RS-루피, 1RS=25.5원꼴) 400RS 남고, 647,6000원정도 쓴 셈)
일의 자리는 대충 계산하고 주기도 많이 함
날짜 |
내역 |
지출액(인도돈) |
비고 |
1.6(목) |
간단한 저녁, 물-공항 비쌈 |
150 |
소계 150 |
1.7(금) |
택시비 340÷4, 숙박비 550÷3, 릭샤 비 등 공동 |
300 |
|
델리 |
아침(한국식당. 김치찌개) |
180 |
|
|
점심(비리야니-인도볶음밥)과 커피 |
135 |
|
|
붉은 성(무굴제국 성) 입장료 |
250 |
인도인은 십 |
|
저녁(지나가다 사먹을 수 있는 간단한 것) |
50 |
|
|
슬리퍼 |
100 |
|
|
숄(잘때는 이불로, 추울때는 덮는 것으로 이용) |
200 |
|
|
릭샤(붉은 성과 간디박물관 오갈 때) |
50 |
소계 1265 |
1.8(토) |
릭샤비 ÷ 3, 짐보관, 꾸뜹미나루 오갈 때 버스비 등 |
100 |
|
델리 |
아침(도사-누룽지 비슷한 것에 속에 야채가 있음와 커피-맛 없음) |
146 |
|
|
꾸뜹미나르(무굴제국 승전기념비) 입장료 |
250 |
역시 인도인은 쌈 |
|
후마윤(무굴제국 황제) 무덤 - 타지마할 전 무덤양식 |
250 |
|
|
저녁(탈리), 물(보통 10~15) |
65 |
소계 811 |
1.9(일) |
아침(빵, 커피) |
10 |
|
바라나시 |
유료 화장실 2회 |
3 |
대신 깨끗 |
기차기다리다 |
점심-탈리(기차역 식당) |
49 |
|
연착 후 |
저녁-기차역 탈리 |
22 |
|
결국 취소됨 |
기차비(조디뿌르SL)-바라나시 취소한거 환불받고 다시 끊음 |
300 |
소계 384 |
1.10(월) |
조디뿌르 공동지출 (릭샤, 물, 과일, 아침, 짐 보관 등) |
200 |
|
|
숄(스카프 비슷하게 햇빛 가리는 것) |
150 |
|
|
블루시티(옛날 인도 지방왕족의 성) 입장료 |
50 |
|
|
점심(탄두리 케밥) |
260 |
|
|
바지(추위 대비 내의 대신) |
280 |
|
|
빗, 악기연주, 물 |
45 |
|
|
과자(쵸코바 등) |
20 |
|
|
헤나(인도의 물감으로 그리는 문신) |
100 |
|
|
기차(조디뿌르-자이살메르SL) |
155 |
|
|
메헤랑가르 성채-뒷문으로 들어가서 |
0 |
소계1,320 |
|
저녁(탈리) |
60 |
|
1.11(화) |
옷3(인도 전통 바지2, 윗옷1) |
700 |
|
|
가방(인도 전통 주머니, 얼마나 약한지 여행중 튿어져 버리고 왔다) |
200 |
|
|
화장지(두루말이 화장지 파는 곳도 이곳이 처음)-40, 물 |
50 |
|
|
아점(김치찌개-무우로 만듬) |
150 |
|
|
목걸이 등(조카 기념품) |
120 |
|
|
포도(날씨가 따뜻하니 과일은 싸고 좋다. 포도는 매우 비싼 편. 한근) |
100 |
|
|
라시(요플레 비슷한 것으로 인도에서 일상적으로 먹는다) |
35 |
|
|
저녁(신라면과 밥) |
150 |
|
|
맥주(1병) |
100 |
|
|
숙박-1인당 계산 |
100 |
소계 1,705 |
1.12(수) |
낙타 사파리(낙타 타기, 간단한 1박 2일간 식사, 사막에서 잠, 팁 등) |
720 |
|
|
치킨 바비큐(반마리. 치킨은 우리나라보다 엄청 작다) |
85 |
|
|
아침(토스트, 물, 라시 등) |
70 |
|
|
자인템플 구경-사막에 있던 모래 유적지 |
30 |
소계 905 |
1.13(목) |
저녁(칼국수), 화장지, 커피 |
160 |
|
|
버스(자이살메르-우다이뿌르 슬리퍼 버스) |
400 |
소계 605 |
|
모름(잔액 안맞는 것) |
45 |
|
1.14(금) |
릭샤(60÷4. 버스-숙소) |
15 |
|
|
과자, 화장지(두루마리 40) |
55 |
|
|
코일-물을 끓일 수 있는거였는데 한번도 안쓰고 고장났다 |
35 |
|
|
아침 -라시와 라이스(말그대로 쌀밥인데 쌀 종류가 달라 날아갈 거 같으며 여기에 한국에서 가지고 간 고추장, 멸치를 먹었다) |
80 |
|
|
코코넛, 물, 과자 |
40 |
|
|
점심(에그커리와 난, 라시)-인도식 중 가장 맛있었던 식사 |
205 |
|
|
저녁(라이스)-역시 고추장과 멸치로 |
40 |
|
|
인도 반팔옷(바가지 였는데, 다음에 이동할 지역이 인도의 더운 지역이라 꼭 필요했다) |
350 |
|
|
숙소(300÷2) |
150 |
소계 990 |
1.15(토) |
버스(우다이뿌르-아메다바드) |
550 |
숙소 주인에게 믿고 맡겼다가 나중에 보니 수수료만 이백루피, 식당도 비쌈 |
|
기차(아메다바드-잘가온SL) |
325 | |
|
아침(토스트.쥬스) |
70 | |
|
시티 팰리스 입장료 |
60 |
|
|
점심(감자 수제비) |
85 |
|
|
오렌지(1근 4개 50), 과자(저녁과 다음날 아침) |
70 |
|
|
인터넷-1시간 |
30 |
|
|
릭샤-1인(버스 정유소까지) |
40 |
|
|
릭샤 등 공동 |
85 |
|
|
라시-3명 (내가 배낭여행 책 잃어버렸는데 도중에 만난 한국인이 배낭여행 책을 주어 답례로) |
120 |
소계 1520 |
|
감기약 |
85 |
|
1.16(일) |
점심(기차-비리야니) |
40 |
|
|
숙소(300÷3) |
100 |
|
|
저녁(공동) |
100 |
소계 240 |
1.17(월) |
아점(공동) |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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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과자, 릭샤 (공동) |
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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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공동) |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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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300÷3) |
100 |
소계 415 |
1.18(화) |
릭샤(숙소-기차역)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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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비 등(잘가온-아잔타) |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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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잘가온-바라나시.20일이용SL) |
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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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타 입장료 |
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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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점(샌드위치, 라시) |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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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400÷3) |
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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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릭샤, 저녁, 물등) |
110 |
소계 1,130 |
1.19(수) |
엘로라 입장료 |
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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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
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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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버스, 식사, 릭샤 등) |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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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포도, 엿, 옥수수 등 |
160 |
소계 740 |
1.20(목) |
아점, 커피 |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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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아우랑가바드. 숙소-버스)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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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잘가온. 버스-기차) |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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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아우랑가바드-잘가온. 4시간) |
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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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치킨, 콜라 등) |
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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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반근 50), 물 |
65 |
소계 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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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잔돈은 달라는 사람 주거나 화장실 등에 이용, 안맞음) |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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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금) |
사이클 릭샤(바라나시역-고돌리아)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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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이(기차)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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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싼티-일본 식당. 김치볶음밥+돈까스 75. 처음 먹은 돼지고기), 콜라 |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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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물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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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한근15), 화장지(50), 돼지코일(30) |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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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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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인도식이었던 듯) |
55 |
소계 325 |
1.22(토) |
아침(에그커리, 난) |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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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비누, 가루, 목욕타월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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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35, 음료 30, 잼 40, 구아바 20등 |
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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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수제비) |
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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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
20 |
소계 320 |
1.23(일) |
아침(스파게티) |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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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싼티 김치볶음밥) |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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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스라엘식 식사) |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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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 과일, 콜라, 물 |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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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바라나시-아그라.28일거 3A) |
720 |
소계 1000 |
1.24(월) |
황금템플 꽃, 낸돈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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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메구까페. 생강 치킨) |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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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보트탐, 짜이 |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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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싼티 김치볶음밥+돈까스,짜이) |
80 |
소계 290 |
1.25(화) |
새벽 보트 |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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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살라도사 10, 만두 4, 음료 15) |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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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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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맥도날드의 치킨버거세트) |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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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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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영화보는곳가지 왕복)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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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호텔 같은데서 남이도식 탈리) |
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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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옷(펀자비 한벌, 바지 1) |
350 |
소계 902 |
1.26(수) |
아점(메구까페. 우동+생강밥) |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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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펀자비(고급-한복같은 느낌) |
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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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짜이 등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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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날도 싼티인듯) |
75 |
소계815 |
1.27(목) |
아침(베이커리서 빵과 커피) |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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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20, 옆서 15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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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대학 구내식당. 사모사2-만두, 짜이)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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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3회(흰두바라나시대학, 람나가르성)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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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 라시 |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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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팔찌 내꺼, 조카꺼, 빨간점) |
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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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화장품(선물할거) |
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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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또 싼티. 돼지고기 생강구이, 짜이) |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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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지 |
25 |
소계 733 |
1.28(금) |
숙소 (싱글룸6일. 더블룸1일) |
1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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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빵+그동안 산 거)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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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김치+돈까스. 싼티 마지막) |
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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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오빠 옷) |
200 |
|
|
히말라야 화장품 (엄마, 동생등) |
3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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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릭샤(고돌리아-기차역)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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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자, 물 |
30 |
소계 2,199 |
1.29(토) |
숙소(350÷2) |
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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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타지마할 보이는 옥상에서 비리야니와 짜이) |
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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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 3회(기차역-숙소, 숙소-아그라성, 아그라성-타지마할근처) |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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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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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탈리) |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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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그라 성 관람 |
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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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 |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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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 |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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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신라면 김치가 없어 쌋다) |
50 |
|
|
물 20, 과자 30, 오이 등 20 |
70 |
소계 1005 |
1.30(일) |
아침(커피, 토스트) |
50 |
|
|
타지마할 관람 |
750 |
|
|
릭샤 (아그라. 숙소-버스역) |
40 |
|
|
버스(아그라-델리) |
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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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릭샤 (델리. 버스역-빠하르간지) |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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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죽120, 짜이30)-한국식당이라 비싼것임 |
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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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 (2일거 혼자 선불)-가장 비싸고 좋았음 |
800 |
소계 2030 |
1.31(월) |
아침(토스트, 라시) |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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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콩, 음료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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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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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타르 만타르(천문대) 관람 |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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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중국고급 식당. 해산물 스프, 음료수, 세금, 써빙) |
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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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빠하르간지-코넛플레이스) |
20 |
|
|
바나나, 물 |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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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양고기 스테이크395, 콜라50, 세금 등 72)- 가장 비싸게 먹은 거 |
517 |
소계 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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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한번 신고 버림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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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
헤나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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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너무 커서 맛없어 버림)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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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음료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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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화장품(친척들까지) |
5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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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탄두리치킨) |
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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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지, 음료, 토마토 |
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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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파스타) |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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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품(조카꺼) |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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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숙소-공항) |
230 |
소계 1,415 |
2.2(수) |
과자-원래는 30받았던 감자칩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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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코바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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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립밤(돈 남아서)-같은 가격 |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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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돈 |
34 |
소계 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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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 지출 합계 |
24,980 |
24,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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