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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 박상규 우희종
참 세월 빠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 정국이 벌써 1년 전 일이다. 그날의 기억이 뚜렷할수록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황당하고 허망하다. 작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이후 논란이 됐던 안전성 문제는 그리 개선된 게 없다.
우습게도 우리 정부가 내팽개친 먹을거리 문제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더욱 걱정하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가 그토록 안전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다우너 소(downer cow, 주저앉는 소) 도축을 금지시켰다.
맺힌 게 많아서인지, 아니면 '복수혈전'의 본보기로 삼기 위해서인지 검찰의 MBC <PD수첩> 수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미국산 쇠소기는 미국의 선물"이라고 했지만 정작 소비자인 국민들은 그 '선물'을 외면하고 있다. 미국 쇠고기 수입량은 지난해 10월 7369톤으로 최대를 기록한 뒤 11월 5530톤, 12월 4469톤, 올 1월 4468톤, 2월 3157톤 등으로 감소세가 뚜렷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소비자로서 애써 거부하면 뭘 하나.
이명박은 '복수혈전', 오바마는 다우너 소 도축금지
정부가 쉽게 열어 놓은 문으로 역시 광우병 위험에 노출된 캐나다와 EU의 쇠고기가 호시탐탐 우리의 식탁을 엿보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미국 SRM(광우병특정위험물질)은 되고 왜 본인들 SRM은 안되냐는 것이다. 하긴, 미국 SRM과 유럽 SRM이 뭐가 다르겠나. 사실 이런 문제, 모두 지난 촛불 때 시민들이 경고했던 것들이다.
이쯤에서 다시 우희종(51)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우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광우병 전문가로, 오랫동안 그 위험을 경고해 왔다. 그리고 작년 촛불 정국 때는 과학자로서 정부의 거짓말을 비판했고, 여전히 그 목소리를 줄이지 않고 있다.
우 교수는 "정부는 작년에 일본, 대만 등도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미국과 쇠고기 수입 협정을 맺을 것이고, 그들이 그렇게 안하면 우리도 재협상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정부는 작년 촛불의 주장이 옳았다는 걸 인정하고 당장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 교수는 "정부는 미국도 지키지 않는 국제수역기구(OIE) 기준을 마치 과학적인 것인양 주장했기 때문에 캐나다와 EU에서 쇠고기 수입 압력이 거세질 것"이라며 "정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이들의 압력을 피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또 우 교수는 검찰의 <PD수첩> 수사와 관련 "나도 정운천 전 장관과 정부를 비판했는데, 차라리 검찰이 나를 수사했으면 좋겠다"며 "<PD수첩> 수사는 한국의 언론을 말살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 교수는 "일부 과학자들이 과학적 사실 대신 청와대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과학자는 정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의 과학적 소신을 밝힐 줄 알아야 한다"고 부화뇌동하는 과학계에 쓴 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아래는 지난 27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우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 우희종 교수 ⓒ 박상규 우희종
- 최근 일각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이 확보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달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우너 소(downer cow, 주저앉는 소) 도축과 식품유통을 금지했다. 이는 결국 작년에 미국 (쇠고기 유통) 시스템이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한 사람의 말이 옳았다는 걸 증명한다. 또한 지금 미국에서는 30개월 이상 된 캐나다산 생우(生牛) 수입을 금지하려는 소송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30개월 이상 소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고, 빨리 미국도 강화된 사료조치를 시행하라는 것이다.
작년 촛불정국 때 우리 정부는 미국이 강화된 사료조치를 곧 시행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내 말은 모든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이야기 뜻이 아니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미국 사람들 수없이 먹는데 왜 자꾸 수입을 반대하냐'고. 그런 사람들에게 한 마디만 하고 싶다.
국제공항을 여행해 보라고. 공항에서는 외국의 농축산물 들여오는 걸 엄하게 금하고 있다. 미국, 유럽의 축산물이 다 위험해서일까? 아니다. 그럼에도 공항에서 외국의 농축산물 유입을 금지하는 건, 그것의 유입과 함께 들어올 질병 발생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 쇠고기 반대하는 촛불의 주장도 '미국 시스템이 안전하지 않으니까 더 엄격하게 수입하자' '왜 그렇게 문을 쉽게 열어 주느냐'였다. 그런데 수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 주장을 너무나 유치하게 받아들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 먹는데 왜 위험하다고 하느냐'식의 논리로 호도했다."
- 결과적으로 다우너 소 도축이 금지됐으니 더 안전해진 건 맞지 않나.
"그렇다면 작년에 미국 쇠고기 시스템이 안전하지 않다는 지적을 다 만족시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의 불안정한 것 중 하나가 개선된 것뿐이다. 우리가 수입하는 입장에서는 과학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국제수역기구(OIE) 기준은 통상 기준이고, 과학적인 기준은 EU에 마련돼 있다. EU에는 'EU 기준은 과학기준이고 모든 회원국은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명문화 돼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은 2010년까지 변경 못하도록 못 박아 놨다. 거기 보면 지금 우리가 수입하게 돼 있는 창자들은 다 SRM(광우병특정위험물질)이다. EU에서 (창자는) 쓰레기로도 못 버리고 완전히 소각해야 한다. 멕시코도 미국에서 창자는 수입하지 않는다. 바로 옆 나라도 수입 안하는 걸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볼 수 없다. 왜 1년이 지금 시점에도 일본이나 대만은 여전히 (미국 쇠고기 수입에) 옛날 기준을 적용하는데도 WTO 제소를 안 당하는지, 그리고 바로 옆 나라인 멕시코도 왜 창자를 수입하지 않는지 생각해야 한다.
바로 올해 2009년 스위스에서 나온 문서를 보면 창자 전체가 왜 SRM인지 과학적 기준이 다 나와 있다. (이런 과학적 기준이) 미국에 적용되지 않는 한, 수입 조건은 여전히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다. 다우너 소를 도축하지 말자는 건 굉장히 부분적인 것이다.
우리가 수입하는 입장이라는 게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한우도 안전검사 제대로 안 하는데 왜 수입 쇠고기에만 뭐라 하느냐'고. 나는 그런 사람은 정말 주인의식이 없는 사람 같다. 자기 집에 상한 음식 있다고, 또 돈 주고 상한 음식 사와야 하나?"
"자기 집에 상한 음식 있다고, 또 돈주고 상한 것 사와야 하나"
- 최근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부진하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동안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반짝 올랐던 적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이미 수입됐다가 검역 문제 때문에 풀리지 못했던 것들이 유통되면서 나타난 효과다. 또 정부가 정책적으로 미국 쇠고기에 대한 (우호적) 여론 조성을 했던 분위기도 작용했다고 본다.
하지만 안정기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제대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 같다. 실제로 시중 식당을 가 봐도 미국 쇠고기를 쓴다는 식당을 거의 볼 수 없다. 다 예상했던 상황 아닌가. 미국 쇠고기 판매가 줄어드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이 분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2008년 6월 10일 저녁 서울 세종로네거리, 태평로, 청계광장을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100만 촛불대행진
- 촛불의 영향도 있지 않겠나.
"당연하다. 이야기했듯이 미국 쇠고기가 다 위험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입하는 입장에서 보면, 과학적 수준에 맞는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건 건 확실하다."
- 캐나다가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라며 우리나라를 WTO에 제소했고, EU도 미국과 동등한 기준으로 쇠고기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는데.
"작년 촛불정국에서 우리가 염려했던 것들이 그대로 지금 현실화됐다. EU도 그런 요구를 충분히 할 수 있다. 정부가 OIE기준을 마치 과학적 기준인 것처럼 주장했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겠다. 영국도 광우병 통제국이다. 만약 어떤 악덕업자가 소각해야 할 창자를 수출하겠다고 했을 때, 한국은 그걸 막을 길이 없다. 왜? 우리는 이미 괜찮다고 이야기했으니까."
-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나.
"내가 봤을 땐 정부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정부는 잘못된 협상을 인정 안하고 지금까지 끌고 왔다. 하지만 정부에게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우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기준은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했을 때, 그것이 첫 번째 시정의 기회였다. 하지만 정부는 시정하기는커녕, 안전성이 보장됐고 과학적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기회는 작년 촛불이 처음 시작됐을 때였다.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았나. 정부는 보완책 마련한다고 했으면서도 기회를 놓쳤다. 명박산성을 쌓고 그냥 밀어붙였고, 촛불을 무조건 좌파로 매도했다.
그리고 지금이 세 번째 기회다. 쇠고기 수입을 요구하는 캐나다 관점은 간단하다. OIE 기준에 따라, 그리고 미국과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다. 결국 OIE 기준이 과학적인 게 아니라는 걸 정부가 인정하고, 과학적 기준은 EU의 기준을 따르겠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정부가 작년 미국과의 협상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정부가 그렇게 할지 모르겠다.
한편 다른 방법으로는 현재 미국이 캐나다에 이야기하는 논리를 우리도 그대로 쓰면 된다. 두 나라 모두 광우병 통제국이지만 미국은 캐나다 것 한국식으로 무조건 수입 안한다. 만약에 OIE 기준 적용한다면 캐나다에서 다 수입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소송 내고 그러한 수입을 저지하려고 한다. 우리만 바보처럼 OIE기준으로 다 수입하고 있지만.
캐나다는 미국보다 훨씬 더 강화된 사료조치를 하고 있고, 광우병 통제 시스템이 잘 돼있다. 하지만 현재 광우병 발생국이다. 우리는 광우병을 차단했다는 효력이 인정될 때 수입하겠다는 논리로 나가야 한다. 이번에 단추를 잘 끼우지 않으면 전체가 어그러지고 나중에 조정하려면 모든 단추를 다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