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 보니 벌써 네 시다. 대개의 경우 자명종을 따로 맞추어 두지 않아도 두 시간 전에는 일어났는데, 나름대로 늦잠을 잔 것이다. 서둘러 배낭을 꾸려 실내체육관 앞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를 하고 버스를 기다리려니 먼저 아이를 데리고 온 분(이팔만 님)이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사람들이 모여든다. 처음 정토산악회와 함께 하는 터라 아는 사람 없이 어색하게 서 있자니 버스가 와서 멈춰 선다.
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총무님이 경비를 걷고, 늑대산악회에서 준비해 준 떡을 나누어준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 터라 점심밥만 간신히 준비했기에 떡으로 아침 요기를 했다. 속을 채우니 이내 잠이 밀려온다. 증평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설핏 잠이 들었다.
잠을 깨고 조금 더 지나니 인삼 랜드 휴게소가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 수학여행 답사를 위해 지나간 곳, 수학여행을 오가며 지나간 곳을 또 지나고 있다. 휴게소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차에 올랐다.
정토산악회 홍성배(변호사) 회장의 김밥에 얽힌 무용담을 들으며 차는 다시 출발한다. 이어 유인물을 나누어주고 황매산과 인근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뒤쪽에는 지도까지 덧붙여 놓았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산행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조금 후, 까막산악회 회장(김광혁 님)이 내 자리로 온다. 까막산악회에 가입하긴 하였으나, 오늘이 첫 산행인데다 정토산악회 산행에 더불어 가는 길이니 이제야 첫 만남인 셈이다. 인사를 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여러 말씀을 듣는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이야기, 알프스 산행 이야기 등등. 관심이 가는 부분이 많다.
코스로 잡은 길이 낯설어 차가 꽤 여러 차례 에도는 바람에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다. 입구에서 내려 까막산악회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광택 대장님, 앙성중 박재붕 선생님 부부, 충주여고 엄태식 선생님 부자, 여상 한만성 선생님, 대원고 정왕용 선생님 등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탄금중 채희열, 북여중 조윤주 선생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9시. 이제 산행이 시작된다. 초반은 능선에 올라서기 위해 땀을 쏟아야 할 길이다. 모든 산이 다 그렇겠지만 처음 완만하던 경사는 차츰 가파르게 변해 간다. 그래 땀을 한참 쏟아내야 능선을 내 주게 된다. 약 1시간 쯤 후에는 떡갈재 합류 지점(너백이쉼터)에 도착하게 된다. 주변 철쭉 군락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을 걷는 등산객들은 철쭉이 꽃망울만 맺힌 것들이 많아 행여 꽃이 다 피지 않아 실망할 것을 염려하고 있다.
황매산 정상까지는 1.3km가 남았으니 40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으리라. SLRCLUB에서 보았던 황매산 철쭉 군락의 숨막히는 사진을 접하고 나서 가졌던 희망을 이루는 날인데,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구름이 저만치 보이던 황매산 정상을 가로막고 나선다. 하릴없이 발길을 재촉하여 산정에 오르니 바위 위에 사람들이 개미처럼 붙어 있다. 황매산 정상 표지석에서 기념 촬영을 하느라 방을 빼라느니, 내 차례라느니 하며 옥신각신한다.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무어 그리 의미 있으랴 싶어 한 뼘 조금 넘는 발자국을 남긴 것을 기념 촬영 삼고 발길을 돌렸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저 아래 목장이 있던 곳에 흐드러진 철쭉 군락과, 차일 군락, 승용차 군락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로 내려와서 사진을 몇 장 찍다 보니 회원들이 주욱 내려온다. 모델 하나를 세워놓고 남은 사람들이 주욱 늘어서서 셔터를 눌러대니 무슨 CF 촬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기분들이 들떠 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자리를 잡아 돗자리를 폈다. 각자 싸 온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정 선생님이 공부가주(孔府家酒)를 반주로 내어 놓는다. 거푸 두 잔을 받아 마시고 얼굴이 달아오르고 마음이 얼근해진다. 그러나 이것이 나중에 큰 후회의 원인이 될 줄은 이 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삼사오오 산행을 이어가는데, 눈을 돌리는 곳마다 장관이라 연신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키를 넘는 철쭉들이 빽빽이 들어찬 모습에 연신 감탄이 나오며 정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사라질 틈이 없다. 이러한 마음은 철쭉제를 지내는 제단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졌다.
철쭉 군락을 지나면 다시 평범한 산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골짜기로 내려서면서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들은 솟는 땀을 훔치며 잠시 후 만나게 될 비경을 떠올리며 급한 숨을 쉬고 있다. 올라오는 사람들도 내려가는 사람 못지않게 많아 서로 일방통행 인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들을 높였다.
한참을 골짜기로 내려가다가 다시 고개를 땅에 묻고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좀 전에 올라가던 사람들의 땀방울을 딱하게 여기던 마음이 이제는 내 처지가 되어 땀방울 쏟아낸다. 얼마를 올랐을까. 일행은 모산재에 도착한다. 암봉으로 되어 있어 이름도 없이 지내다가 근처 모산재에서 이름을 얻어 봉우리 이름이 되었다는 곳이다. 회장님은 도막난 표지석을 부둥켜 안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까마득한 절벽이 펼쳐진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순결 바위로 가는 길과 황포돛대 바위로 가는 길이 있어 고민들을 하다가 기왕이면 좀 더 험한 코스가 낫지 않겠냐고 입들을 모아 방향을 틀어쥐었다. 혹자는 순결성 테스트를 해 보아야 한다느니, 이미 어려서 순결을 잃었다느니 하면서도 발의 방향은 황포돛대를 향하고 있다.
조금 돌아나오니 앞쪽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가로막고 있고, 아래로는 좁은 철사다리길이다. 한 선생님은 중국 장가계, 원가계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아담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동행한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지체되고 여기저기 짜증 섞인 목소리들이 새고 있다. 이제까지 이 사람들이 느꼈을 감동스런 장면이 지금의 이 기분 하나로 금세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사다리를 내려오면 황포돛대 바위가 우리를 기다린다. 아마도 이번 산행에서 사진을 찍는 마지막 지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즐겁고 행복한 사람의 표정은 잘 들어오지 않고, 다리를 저는 사람에, 푸념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정작 산꼭대기에 두고 와야 할 것을 아직도 가지고 온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하산길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조금씩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서둘러 하산하여 입구로 내려오니 이 선생님이 쫒아와 차가 주차된 곳을 일러준다. 그렇지않아도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던 대형버스 군락을 보며 우리 차량을 어찌 찾을까 걱정하던 차였는데 고맙기 그지없다.
차량에 돌아오니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 기다리는 사람들은 쌔똥(왕꼬들빼기)을 뜯기도 하고, 미나리를 캐기도 하며 무료함을 달랜다. 그렇게 기다린 시간이 두어 시간. 어느 덧 시간은 다섯 시를 넘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고 차가 출발하였다. 앞으로 충주까지 네 시간은 족히 걸리리라.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황매산을 만나 수줍게 웃고 있는 철쭉 낭자들의 모습에 내 얼굴조차 붉어졌었다. 간혹 아무렇게나 뿌려진 종이 꽃가루나, 인공의 흔적들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여도 아름답고 행복한 느낌만은 그대로 가져갈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돌아가 황매산에는 철쪽 낭자들의 수줍은 웃음이 번지고 있었노라고 집사람에게 전해야겠다.
함께 동행해 준 까막산악회 회장님, 대장님, 엄 선생님 부자, 박 선생님 내외, 정 선생님, 조 선생님, 그리고 정토산악회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멋있는 황매산 시진 한컷이 빠진듯 심네요.수정해서 1개만 올리세요
바로 그 점을 말씀드리려는 건데요. 공부가주 두 잔에 마음이 취했는지 후반부 사진이 노출 과다로 희끄므레해져서 보정을 해도 그 감동을 전할 수가 없네요. 흑흑.
제가 메일로 보낸 사진에서 찾아서 그럼 올려 보세요
사진 파일 정밀 분석 결과 노출 과다가 아니고, 화인트밸런스가 안 맞아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해서 반가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사진 찍어 주셔서 감사합니다.^_^.
제가 최대한 사진을 보정해 보겠습니다. 원체 맨정신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송구스럽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발갛게 타네요....부러움도
뒷맛이 개운한 글이 황매산 풍광을 다시보듯 주마등처럼 기억이 됩니다. 사진도 글도 너무 감동입니다. 자주 올려주셔서 또한번 등산하는 재미를 베풀어주시는 기회를 많이 주세요..감사....
멋진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