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譬喩)
달이 중봉에 숨으면 부채를 들어서 비유하고
바람이 허공에서 사라지고 나면 나무를 흔들어서 알려준다.
月隱中峰 擧扇喩之 風息太虛 動樹訓之
월은중봉 거선유지 풍식태허 동수훈지
- 금강경오가해
이 글은 금강경오가해에서 금강반야는
범부도 성인도 측량하기 어렵다고 찬탄한 데 대해서,
측량하기 어려운 것을 어떻게 짐작이라도 해야 하는가를 설명한 말이다.
금강반야는 지극히 유현하다. 지혜나 지식으로도 알 수 없다.
옛 사람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금 사람들도 모른다.
다만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금강반야라고 거짓 이름을 했을 뿐이다.
그러면 방편에 의해서 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나온 말이다.
매우 기묘한 표현이며 그리고 유명한 게송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이 많다.
또 들리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도 많다.
또한 느끼지 못하면서 존재하는 것도 많다.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이 한 물건인 금강반야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달을 묘사하는 데 부채를 들어 비유하듯이,
이 한 물건은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 꽃을 들어 보이기도 하고,
손가락을 세워 보이기도 하고, 주먹을 먹여 알려주기도 하고,
몽둥이로 두들겨서 알려주기도 하고, 고함을 쳐서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나무를 흔들어 바람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디 바람인가. 부채가 어디 달인가.
그것들이 어디 그 한 물건인가. 그것이 어디 금강반야인가.
하지만 그런대로 근사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