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말
『 역사 섭리의 글을 쓰는 이유 』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사46:10)
20세기는 역사의 뒤편으로 훌쩍 물러가 버리고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여 벌써 2007년이 되었다.
인류역사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지난 한 세기동안도 열강들이 격돌하는 격동의 세월을 경험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우리들이지만 우리들의 경험과 상관없이 인류역사는 지금도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끓임 없이 지속되는 필연 속에 살고 있다. 필연적 역사의 흐름을 인류는 인정하면서도 미래사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현실의 삶을 희망과 긍정보다는 불안과 초조감 속에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오늘 우리들이 사는 이 세대는 과거 어느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로 인간의 지식이 발달된 시대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의 삶은 더 편리하고 더 안락함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너무나 엄청난 문제 속에 살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오늘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종교와 사회의 어느 곳을 보아도 희망을 찾기가 너무나 힘들지 않나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윤리와 도덕은 땅바닥에 떨어진지 이미 오래되었고, 극도의 사치와 방탕, 무절제, 폭행, 음란,(인터넷 강국, IT강국은 음란강국을 만들고 있다) 아직도 이념적 대립으로 인한 혼란의 양상이 사회 곳곳에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나는 현실이다. 이로 인한 국가경제의 어려움과 온갖 부정과 타락의 현상이 정치와 경제계를 막론하고 문화계 종교계까지도 깊이 물들은 현실 속에서, 스스로 우리들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의 답을 제시하고 있지만 믿을 수도 없고 믿어지지도 않는다.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세계를 양분했던 이념적 대립은 사라졌다하나 한국은 여전하고, 그들이 만들었던 가공할 원자무기는 지금도 인류를 위협하고 공포를 주고 있으며, 중동과 극동을 위시한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 받는 나라와 민족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한 세대가 가고 또 새로운 세대가 세계역사 위에 등장하면서 구시대의 체제와 사상과 이념이 물러가고 있는 것 같지만, 사단은 껍데기만 달리한 새로운 인간주의 이념과 사상을 다시 인류의 영혼들에게 올가미로 덧씌우고 있으며, 거기에 연하여 공허한 인류의 심령 속에 물질주의, 이기주의, 개인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타락한 문화만 심어주므로 말미암아 이전 보다 더 타락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는 오늘의 정치인들이나 지성인들이나 종교인들의 심정은 어떠한지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바른 사상과 양심을 가지고, 인류는 생명의 공동유기체적 관계 속에서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있다면 모두가 괴로워하고 탄식하며, 절규하는 심정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황혼 길에 접어든 이 지구성의 문제를 인간들 스스로 만들었고, 또 인간들 스스로 진단과 고발과 종말을 예고하며, 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쓰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행동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인본적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들의 이성과 심성은 그 한계를 벌써 드러내었고(인간 본래 모습) 또한 그 속에 생명의 하나님, 말씀의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은 과연 이 지구성 위에 펼쳐진 절박하고 처참한 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가?
우리 기독인들이라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지구성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과거나 현재나 미래까지 동일하게 쉬지 않고 인류역사를 주도하면서 섭리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계신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과 동사(同事)할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사역을 너무나 깨닫지 못하고 현실과 세속에 안주할까 염려가 된다.
한국교회는 벌써 오래 전부터 회개의 눈물과 거룩함과 능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주님이 사용하시는 주의 사자들을 통하여 들어왔다. 우리는 겸손하게 이 소리를 하나님의 소리로 들어야 한다. 교회내부 깊숙한 곳까지 물질주의와 세속주의 그리고 인간주의와 교권주의에 물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정말로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말씀의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와야 된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소리에 영의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계 2:7)
하나님의 소리(말씀)가 내 영혼 속에 들려지기 시작할 때에, 탄식하고 절규하는 영혼들의 소리도 들리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불신 영혼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밀려오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심정이 될 때에 오늘의 역사 속에 보이는 모든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요 우리 교회들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하나님이 교회와 성도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자 주님의 보좌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 하나님의 역사 계획 속에 살고 있는 이 시대 성도들의 사명은 무엇인가 ? 』
역사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믿는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이 질문을 드림이 “ 하나님의 역사 섭리”를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하나님은 인류역사의 시작이 되시고 역사의 진행자이시며 역사의 결말이 되신다.(계22:13) 그리고 결말 곧 역사의 종말은 역사를 섭리(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완성되는 시대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근본 목적이 완성될 종말의 역사를 위하여 부단 없이 역사의 전 과정을 섭리로 진전 발전시키신다. 하나님은 어떠한 목적을 향하여 오늘도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며 섭리하고 계실까?
하나님의 목적을 나의 소원으로 삼고 주님과 동사자의 삶을 살고자 하는 성도들의 심령 속에는 이미 말씀 하나님께서 분명한 답을 주셨다.
바라는 마음은 이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 섭리를 분명하게 아는 영적지각 속에서 이 시대 성도의 사명을 확실하게 붙잡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계획을 말씀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성도들에게 주의 성령께서 성도의 의지를 통치하사 사명을 확실하게 붙잡게 하신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부르심을 받고 성령으로 사명을 확실하게 붙잡은 성도는 역사를 바라만 보는 방관자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 계획의 실현화에 동사자의 복된 삶을 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영원 전에 세우신 그 목적(구원과 하나님 나라 건설)을 향하여 쉬지 않고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동역하는 동역자의 복된 삶이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사역에 동역자를 찾고 계신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행 13:22)
하나님의 역사 섭리 도표는 필자가 주님의 은혜로 1984년 4월에『하나님의 역사 섭리 시대구분도』라는 제목으로 수작업 한 것을 다시금 컴퓨터로 재편집 하면서 그 내용을 수정하고 증보하여 만든 것이다. 처음 편집할 때는 엄청난 기도와 노력으로 만들어 많은 주의 종들과 교회 성도들과 함께 은혜를 받았었다. 그러나 교회를 개척하면서 상당한 기간 잊어버리고 계속 발전적으로 이어가지 못하다가 97년 가을쯤 정덕진 목사님이 주최한 종말론 집회 때 제가 1984년도에 편집한 그 도표를 많은 주의 종들에게 보여주시는 그 현장에서 마음에 큰 자극을 받아 다시금 재편집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원래 이 책은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고 도표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주님의 역사 계획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확실한 종말의 사명을 붙잡게 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기록된 글은 편집자의 영적 수준에서 깨달은 “역사 섭리”에 대한 개념 정도로만 이해하시고 보시기 바란다.
재편집을 다 끝내놓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부분이 무척 마음에 걸리고 아쉬워 “경륜” 부분을 더 자세하게 말하고 싶은 소원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것도 포기했다. 어디까지나 이 책은 역사 섭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차후에 다른 목사님들이 이 책을 통해 자극을 받고 새롭고도 더 깊은 “경륜과 섭리”에 대한 말씀을 기대해 본다.
한 가지 더 말씀 드릴 것은 왜 글을 필자 자신이 쓰면서 저자라 하지 않고 편집자라고 하느냐 하면, 어느 날 주님의 감동이 “주님의 것을 가지고 주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글을 쓰면서 어찌 네가 저자가 되느냐 너는 편집자에 불과하다”라는 강한 감동이 왔기 때문이다.
편집자로 글을 쓰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 미흡하기가 한이 없고 부족하기가 한이 없는 마음을 도무지 감출길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제게는 주님의 큰 은혜이었다.
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님들이 이 책을 디딤돌 삼아 더 깊은 하나님의 역사 섭리의 세계로 들어가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계획이 실제화 되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존귀한 주역들로서 모두가 쓰임받기를 주님의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주님께 영광 !
2007년 10월 일
광주 용봉동에서 강병태 목사 |
첫댓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샬롬!!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