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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시인학교 문학특강에 초대된 김청수 시인
무의식을 체험한 기억 공간
―김청수 4시집『무화과나무가 있는 여관』을 중심으로
김동원 (시인)
1
김청수의 4시집『무화과나무가 있는 여관』은 크게 어머니의 죽음, 가난한 삶과 상처, 고향 정서를 중심 주제로 읽혀진다. 사람에게 누구나 고향은 자기가 때어나서 자란 곳이자, 부모 형제와 동무들을 첫 대면한 곳이다. 살면서 느낀 마음속 깊이 각인된 그립고 정든 터전이며, 천지만물의 온갖 이름과 자연 현상이 처음 몸에 배인 출발지이다. 옛 사람은 집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가향(家鄕) 또는 향리(鄕里)를 썼다. 타향에서 부모를 여의었거나 유랑생활에 병고라도 만나면, 왠지 고향산천만 떠올려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여우도 죽을 때는 제 머리를 고향으로 누인다고 했다. 고향을 떠나면 출향(出鄕)이요, 돌아가면 귀향(歸鄕)이다. 타의에 의하여 잃으면 실향(失鄕)이요, 객지를 떠돌다 도로 내려가면 낙향(落鄕)이다. 예나 지금이나 떠도는 자의 삶은 다 고달픈 타향살이요, 고국을 떠난 자 어머니를 잃은 자, 모두 모진 향수(鄕愁)병에 시달린다.
고향과 어머니는 인간에게 있어 정서적으로 가장 편안한 피신처로 인식된다. 그것은 고향이 모성의 품안과 동일시되는 심리적 현상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예술가와 문학가, 특히 시인들은 ‘고향․어머니․바다․집․길․자궁․우주’ 등을 표현할 때 상당한 부분에서 유사 이미지가 중첩되며, 표현코자 하는 주제의식이 같은 범주 속에서 작품으로 형상화됨을 목격한다. 고향과 어머니는 무의식을 체험하는 기억 공간이자 의식을 자각하는 발화점이다. 어머니가 안과 밖의 길이 배태된 곳이라면, 고향은 이승과 저승의 재생과 부활로 가는 ‘씻김’의 성소(聖所) 역할을 한다. 고향과 어머니는 인간의 첫 들숨과 날숨, 오감 체험과 무한한 우주의 신화적 상상력이 발아된 곳이다.
김청수 역시 예외일리 없다. 그에게 있어 고향과 어머니는 동일 이미지로 섞이며, 가난은 이 둘을 잇는 기억의 촉발지이자, 상처와 위안을 한축에 꿴 역설 공간이다.
동생은 세상에서 겨우
백 일을 살다가 갔지요
세상 더 먹은 나는 살아남아
철딱서니 없이 이 골목 저 골목 쏘다녔지요
어미는 꽃 피는 봄날,
꽃 따러 갔다가
꽃 따라 가버렸지요
우리 어머니
손놀림, 그렇게도 빨랐다더니
좋은 솜씨 칭찬도 자자했다더니
흰 명주 옷 입고
하느적 하느적 나비되어 날아가 버렸지요
병원 침대에 누워서
눈에 밟히는 어린 새끼들 남기고
그 새벽 어둠에 말려 가버렸지요
―김청수,「꽃 따러 갔다가, 꽃 따라 가버렸지요」전문
만약, 김청수의 내면 상처의 풍경을 잘 드러낸 한 편의 시를 선택하라면, 나는「꽃 따러 갔다가, 꽃 따라 가버렸지요」를 규정한다. 겨우 “백일” 밖에 살지 못한 어린 동생의 죽음도 아프거니와, 죽은 어미를 뒤로 한 채, 세 살 난 시인이 살아남기 위해, 이 골목 저 골목 떠도는 모습은 외롭고 슬픈 아이의 실존 그 자체다.
시는 언어 속에 핀 한 떨기 슬픈 꽃이다. 시어의 행간은 그 시인이 살아온 삶의 총체를 들여다 볼 있는 거울이다. 김청수는 잃어버린 기억 공간속에서 어머니의 안팎의 다양한 생의 무늬를 잘라 붙여 재구성한다. 나는 왠지 2연 시구가 곱고 서럽다. “어미는 꽃 피는 봄날, / 꽃 따러 갔다가 / 꽃 따라 가버렸지요” 꽃 따러 갔다가, 꽃 따라 가버렸다는 그 삶과 죽음 사이의 끝나지 않은 연속성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어머니의 부재를 실감케 한다. 어린 새끼를 두고 죽어간 어미의 눈빛을 생각하면, 순간 먹빛이다.
김청수 시를 관통하는 시적 트라우마는 일찍 죽은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으로 요약된다. 그는 이런 아픈 상처에 대한 기억 재생을 통해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 새벽 어둠에 말려” 가버린 어미의 마지막 숨결을 통해 시인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감동의 여운을 카타르시스로 끌어올린다.
2
김청수의「칼에 찔리다」는 “시의 꽃을 피우기 위한 도저한 역량이 그의 칼끝이 닿는 곳마다 번뜩”(박정원)인 수작이다.
마음이 아플 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처에 아파할 때
칼날을 바라보았다
칼날 위로 무지개가 뻗히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 칼을 빼어들고
마음의 통점에 찌르자
심장을 뚫고
눈 깜박할 사이
말뚝처럼 박힌 칼
근육이 칼을 물고 파르르 떨자
모든 통점이 사라진다
칼 아래 산과 강이 눕혀지고
세상이 고요하다.
―김청수,「칼에 찔리다」전문
좋은 시란 독자와 의사소통이 잘 된 시다. 시인의 체험이 미학과 만나 감동과 여운의 꼭짓점과 만날 때, 그 시가 좋은 시다. 체험시는 시어의 구체성을 담보하며, 타자가 넘볼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형상화 한다. 머리로 잘 다듬은 재기(才氣)의 시가 세월의 부침에 견디지 못하고 쉽게 허물어지는 이유는, 시어 속에 체험과 감동이 약하기 때문이다.
시,「칼에 찔리다」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시를 체화한 작품이다. “서사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방식이 아닌 사유 중심으로 형상화 된 시편이다.”(강경호) 청소년기 김청수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새벽엔 신문을 돌리고 한낮엔 구두 닦기, 야간엔 야학을 통한, 자신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던 시기였다. 밤마다 눈물 젖은 빵을 먹던 배곯은 시절이자, 도시의 비정을 역전 계단 밑에 웅크려 풍찬노숙으로 연명할 때였다.
시「칼에 찔리다」는, 시인이 또래 애들과의 패싸움을 통해 칼에 찔린 체험을 바탕으로 쓴 시다. 그에게 있어 ‘칼’은 어떤 극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좌절할 수 없는 이유를 촉발시키는, 견딤의 상징이다. 등쪽의 겨드랑이 근육에 꼽힌 “칼날 위로 무지개가 뻗히고 / 피가” 흘러내려 병원을 찾아 사경을 헤맬 때의 체험 기억은, 이 시의 위급의 절정이다. 그는 “심장을 뚫고 / 눈 깜박할 사이 / 말뚝처럼 박힌 칼 / 근육이 칼을 물고 파르르” 떠는 그 상황에서, 친구에게 꼽힌 칼을 빼라고 했다. 칼을 빼자 뚫린 심장은 숨이 가빠왔고 눈은 풀렸다. 뜨끈한 핏물을 몸이 느끼자 “모든 통점이 사라지”고 “칼 아래 산과 강이 눕혀”지는 “세상의 고요”를 체험한다. 죽음 직전 응급실로 들어간 김청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왔다. 이 죽음 같은 사건을 계기로, 시인은 전혀 다른 시안(詩眼)을 갖게 된다.
3
남평문씨 골품댁 할머니
열여덟에, 선산김씨 문중에 출가하여
일찍 길 떠난 지아비 기다리며
먹빛 기왓장 아래 무거운 그늘 하나 드리우다가
쓸쓸하게 길 떠났는데,
사대부가의 빈 집 앞마당에 들어서면
구석구석 먼지로 내려앉은 한숨 소리들
돌아오지 못할 것들에게,
되받을 수 없는 것들에게 편지를 쓰곤 했는데
그 옛날 남평문씨 할머니의
부치치 못한 서간문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린 시절 화장실에서 뒤 닦을 때
무엇인가 근적끈적하고 질척한 것들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 왔었는데
스멀스멀 내 몸을 타고 머릿속에 스며들었는데
그것들이 이제사 나를 슬프게 한다
백 년 세월의 비에 젖은 그 집에서
옛날처럼 아무도 모르게 수선화꽃 피었다가 지는 봄날
오랜 고요의 깊이에 한쪽 서까래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를 듣는다.
―김청수,「남평문씨 할머니」전문
김청수는 1966년 고령 개실마을에서 태어났다. 1시집『개실마을에 눈이 오면』(2005, 만인사)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 2시집『차 한 잔 하실래요』(2007, 만인사), 3시집『생의 무게를 저울로 달까』(2008, 창작과 의식)를 출간했으며, 2014년 계간지『시와 사람』봄호에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의 본향인 개실마을은, 500여년 전 무오사화 때 화를 면한 영남학파의 종조 점필재 김종직 선생 (1431-1492년)의 후손들이 18대째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종택과 사당이 잘 보존 되어 있다. 선생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효관 ․ 계온, 호는 점필재(佔畢齋), 시호는 문충이다. 함양군수를 역임했으며, 김굉필, 정여창 등이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31년 밀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돌아 가셨다. 세조 때 ‘조의제문’을 지은 것이 화가 되어, 훗날, 1489년 연산군 때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무덤속 관을 꺼내어 시신의 목을 베는 형벌)를 당한다. 1507년 중종 반정으로 벼슬과 시호 등이 복권된다. 그 분의 16대 후손이 범관 김청수 시인이다.
위의 시「남평문씨 할머니」는 유가(儒家)에서 자란 시인의 개실마을 체험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슬픈 사연의 작품이다. 개실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평문씨 세거지가 있다. 그곳에서 시집온 앞집 “남평문씨 골품댁 할머니”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정서와 응시는 살뜰하다. 좋은 시인은 무엇 하나 사물의 내밀한 기색과 기미를 놓치지 않는다. “일찍 길 떠난 지아비” 기다리다 저 세상으로 간「남평문씨 할머니」가 연민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시인은 “사대부가의 빈 집 앞마당에 들어서면 / 구석구석 먼지로 내려앉은 한숨 소리들”이 들린다고 했다. 고인이 살지 않는 잡초가 무성한 이 폐가를 보자 시인은 슬픈 단상에 잠긴다. “그 옛날 남평문씨 부인”이 살아생전 저승 간 남편에게 써 둔, 차마 부치지 못한 한(恨) 서린 서간문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다. 어린 시절 시인은 그 사연도 모르고「남평문씨 할머니」의 서간문으로 뒤를 닦은 무지몽매함이 “스멀스멀 내 몸을 타고 머릿속에” 스며들어 “그것들이 이제사 나를 슬프게 한다”고 자책한다. 그 자책과 후회는 다음 연의 기막힌 명구를 얻었다. “백 년 세월의 비에 젖은 그 집에서 / 옛날처럼 아무도 모르게 수선화꽃 피었다가 지는 봄날 / 오랜 고요의 깊이에 한쪽 서까래 /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를 듣는다.”
4
옛집 헛간에
오래된 독이 하나 있다
쌀독이거나 물독이었거나
금이 가 철사로 얼기설기 엮은 독
오늘은 아무도 바라보지 않지만
독을 빚은 누군가의 마음을 본다
처음 옛집에 왔을 때
갓 시집 온 종부처럼 수줍어
반질반질한 웃음 감추려 해도 서방님께 들키던
궁둥이 큰 독
오래 되어 낡고 늙었어도
금간 마음 철사줄로 묶였어도
증조할머니나 할머니처럼 아들 쑥쑥 낳을 것 같은
여전히 궁둥이가 큰 독
오늘은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홀로 깊은 생각에 빠진 속이 깊은 독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다.
―김청수,「독」전문
올 봄 김청수 시인의 안내로 가야산과 낙동강을 낀 고령 대가야 문화를 탐방할 기회는, 필자를 두 번 놀라게 했다. 대가야에 대한 나의 무지와 잘 보존된 오백년 개실마을의 전통가옥과 유가(儒家)정신의 발견이 그것이다. 필자는 그때까지 대가야를 고대국가가 성립하기 전 소읍쯤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필자가 그날 김 시인으로부터 들은 대가야 역사와 현장 체험은 실로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다. 일찍이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던 자랑스런 대가야는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대가야박물관에서 본 예술성과 실용성이 뛰어난 토기문화와 갑옷 투구 고리칼 등의 철기문화는, 필자의 좁은 식견을 절로 부끄럽게 했다. 특히 대가야 왕릉이 모여 있는 주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대가야왕릉전시관’과 ‘대가야역사관’은 보고(寶庫)였다.
봄비가 내린 고령산림녹화숲속을 둘러보며, 김 시인에게 들은 유물 사랑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격조 있는 시담(詩談)은 놀라웠다. 벚꽃잎이 가랑비 속에 젖은 수목원의 고적한 풍경도 고왔거니와 시비(詩碑)에 새겨진 이하석의 시「대가인들」, 문무학 시조「숲은 읽다」, 권영세 동시「이 숲에서 함께 뛰놀자」는, 고령이 시향(詩香)의 고장임을 짐작케 했다. 특히 수십 기의 고분군 위에서 바라본 봄비 속 고령읍의 아름다움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그날 봄비 그친 고풍스런 개실마을은, 늘 필자가 살고 싶어 꿈꾸든 그런 곳이었다. ‘개실마을’ 이름은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점필재 선생의 5대손이 1650년경에 이 마을로 피신 와서 은거하며 살 때, 꽃이 피고 골이 아름다워 아름다울 가(佳), 골 곡(谷)을 써서 가곡이라 칭했다, 그것이 음이 변하여 ‘걔애실’ ‘개실’이 되고 ‘개실마을 중 아랫마을은 ’아릇개실‘ 또는 하가곡(下佳谷)이라고 부른다.
김 시인과 필자는, 후학 박희봉(朴熙鳳)의 행서체로 문충세가(文忠世家) 현액이 걸려있는, 점필재 선생의 종택 청마루에 앉아 그 분이 사신 지난한 삶의 궤적을 끝없이 이야기 했다. 공(公)의 유물 사진 보존각인 서림각(捿林閣)도 둘러보았으며, 진품 교지와 사후의 삶은 대가야박물관에 소상히 기록 보존되어있음을 확인했다.
필자의 요청으로 김 시인의 본가를 구경했다. 소박한 한옥과 함께 인상적인 풍경은, 대문 앞에 서 있던 엄청 큰 자두나무였다. 그날 골목을 돌아 나오다, 김청수의 시「독」이 태어난 현장을 목격하는 행운을 누렸다. 허름한 “옛집 헛간에” “금이 가 철사로 얼기설기 엮은 독”이 그곳에 “증조할머니나 할머니”처럼 늙어 있었다. “갓 시집 온 종부처럼 수줍게” 앉은 궁둥이가 아니라, “홀로 깊은 생각에 빠진 속이 깊은 독”처럼 “무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시인 김청수는 그때 필자에게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내 젊은 날 파란만은 삶의 굴곡 속에서도 탕아가 되지 않은 것은, 바로 개실마을의 저 둥근 독의 부드러움 때문이다.’
5
김청수는 4시집『무화과나무가 있는 여관』을 쓸 무렵,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욕구인, 시의 기양(技癢)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왕성한 시작(詩作)활동으로 정평이 나 있다. 수 백 편의 시가 쌓여있으며, 메모광일 뿐 아니라, 틈만 나면 훌쩍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통해 모은 아름다운 이미지는 그의 시 그릇 속에 오롯이 재구성된다.
시 작품의 아름다움은 근본적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형상화된다. 작품이 일정한 예술적 원리와 질서를 지니고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이 탄생하듯, 김청수는 일상에서 일어난 찰나의 편린들을, 어떻게 한 편의 시 속에 모을 수 있는지 끝임 없이 사물의 ‘안’과 자연의‘밖’을 내응하면서 시어로 갈고 다듬어 탐색한다.
삼십 년 전 성당 못 벤치에 앉아
사료로 잉어를 유혹한 적 있었네
배가 고파 잉어를 팔아 밥을 사 먹었네
그때 나는 잉어였네
온 몸에 붉은 불을 켠 적신호였네
이 물살 저 물살 펄쩍펄쩍
흐린 물을 일으켰네
세상이 불근하여
뜨거운 몸 식히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얼음 불구덕을 찾아 다니기 위해
깡소주로 푸른 하늘 향해 나팔을 불다가
내가 지은 유치장에서 밤을 새곤 했네
푸른 하늘 연못으로 보이는 가을날
성당에서 뛰쳐나온,
아직도 살아서 꼬리치는
성질머리 죽지 않은 잉어 한 마리를 보네.
―김청수,「잉어」전문
‘기억’을 들추면, 그 속에는 천태만상의 시의 씨앗이 있다. 필자와 김 시인이 개실마을을 떠나 저녁 무렵 도착한 곳이, 시「잉어」가 태어난 성당 못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쓰라린 상처도 아물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시 바라보는 상처는 쓰라리고 아프다. 그래서 김청수 시인의 시는 여전히 아프게 읽힌다.”(강경호)
앞에서도 말했듯, 김청수의 4시집『무화과나무가 있는 여관』은 크게 어머니의 죽음, 가난한 삶과 상처, 고향 정서가 중심 주제이다. 시「잉어」는 유년 시절 김청수의 삶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이 한 편에 다 녹아있다. 성당못이 바라보이는 벤치에 앉아 그가 “배가 고파 잉어를 팔아 밥을 사 먹”은 장면을 이야기할 땐, 어느새 눈가에 얼룩이 져 있었다.
“여기에서의 ‘잉어’는 자신이 팔아먹은 잉어가 아니라, 마치 금붕어처럼 ”온 몸에 붉은 불을 켠 적신호이다. 주지하다시피 적신호는 젊은 시절의 ‘오기’ 또는 ‘객기’ 등의 부정적인 정서쯤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화자는 “이 물살 저 물살 펄쩍펄쩍 / 흐린 물을 일으켰”던 것이다.(강경호)
한 마리 잉어가 되어 “뜨거운 몸 식히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 얼음 불구덕을 찾아” 비정한 세파를 헤쳐 나온 소년 김청수를 생각하니, 필자의 가슴이 뭉클했다. “깡소주로 푸른 하늘 향해 나팔을 불다가” 자신이 지은 감옥 속에서 몸부림친 한 마리 고독한 ‘잉어’는 “아직도 살아서 꼬리치는 / 성질머리 죽지 않은 잉어 한 마리”가 되어, 지금은 “푸른 하늘 연못”을 물끄러미 바로 볼 여유도 가졌다.
김청수는 지천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 주목할 서정 시인으로 탄탄한 대로(大路)에 들어설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지금까지 그가 추구한 서정 세계인 ‘가난’의 축을 내려놓고, 중후반은 사회적 저변인식이 깔린 보다 확장된 시 세계를 펼치기를 주문 한다. 필자는 믿는다. 결코 가난에 휘둘리지 않는 도저한 그의 시심으로 보아, 충분히 극복하리라고 확신한다. 그는 언제나 역경의 불구덩 속에서 오히려 담금질되어 한 시인으로써 우뚝 솟아올랐다. 이밖에도 4집 속에는「돌탑」,「공벌레」,「목숨」,「무화과나무가 있는 여관」 등 실로 주옥같은 서정시가 빼곡하다. 벌써부터 그의 5시집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댓글 김청수 시인 특강 -- 공감 온도 100도 C, 학생들의 진지한 눈빛, 시인의 저 천진한 웃음,
잉어도 칼날도 불타는 무화과 꽃분홍 열매로 벙글고 있습니다.
귀한 시간 놓쳐 너무 아쉬웠는데 시천선생님의 농익은 해설로 깊이 시의 속살에 가 닿습니다.
김청수 시인이 자작시를 읽을 때 가슴이 미어져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가 시를 접하고 처음 겪는 감정이었습니다.
해맑은 미소 뒤의 어두운 시...
꼭! 뵙고 싶었는데...
출판기념회라도 가고 싶은 마음...
6월 16일 저녁 7시 출판기념회겸 시 낭송회가 있다 합니다.
시천 선생님께 여쭤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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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했습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