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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필드,브라운효과에 의한 반중력비행체
반중력 연구의 선구자, 타운젠트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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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텔레포테이션 실험으로 유명한,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를 담당하였던 실무 핵심 멤버 중 한사람으로 알려져있는 타운젠트 브라운은 최초로 전기장치를 통한 반중력 발생장치를 만든 과학자로 더욱 유명하며,미국의 민간 UFO연구단체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NICAP(인터넷 주소 nicap.dabsol.co.uk 혹은 http://www.li.net/rjcohen/nicap.html 참조)를 1956년에 창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반중력연구와 UFO연구에서는 반드시 거론되는 브라운의 일대기와 연구를 개략적으로 소개한다.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은 1905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자네스빌에서 태어났다. 1922년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에 입학하기 이전의 고등학생시절에 브라운은 이미 고전압장치를 통한 중력 조절현상을 실험적으로 발견하였다. 칼텍의 대학 신입생시절, 브라운은 자신이 발견한 '전기력에 의한 중력제어'라는 이 현상을 교수들에게 문의하고 다녔는데, 아마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전적으로 무시당하고 말았다. 그당시 칼텍에 재직중이던 노벨 물리학수상자인 로버트 밀칸박사는 이 당돌한 신입생에게 그것은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한 발상이니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점잖게 타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브라운은 자신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교수를 찾아 아예 대학을 옮겨다니기 시작했는데, 1923년에 인근의 케년칼리지로 전학했다가 다시 1924년에는 덴니선대학(Dennison Univ.)으로 옮겨갔다. 그는 여기에서 마침내 자신을 이해해주는 비필드교수를 만나게 된다.
폴 알프레드 비필드(Paul Alfred Biefeld) 박사는 1867년 독일태생으로서 스위스의 취리히대학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때 8명의 동창생 중 한 사람이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 박사이다. 비필드 박사는 독일에서 대학교수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와 당시의 덴니선 대학에 재직하면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는 한낱 풋내기 대학생인 브라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이로부터 비필드교수 연구실에서 4년간 이들의 공동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연구결과로서 이들은 최소한 1% 이상의 중량감소를 객관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었으며 이러한 실험결과를 1929년에 '과학과 발명(Science and Invention)'이라는 학술잡지에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중력을 제어하는 혁신적 방법(How I Control Gravitatio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논문은 그 당시의 과학계로부터 어떠한 주목도 받지 못하였다.
1930년에 브라운은 워싱톤의 해군연구소(Naval Research Lab)에 취직하는데 이때부터 1952년까지 20여년 동안, 그의 실제 관심사였던 반중력연구보다는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다양한 분야의 전문 기술자로 근무하면서 경력을 쌓게 된다. 해군연구소 근무시절에 는 레이다개발 관련업무에 주로 종사하였는데, 브라운은 이때 해군에서 실시한 세계 중력지도 작성(International Gravity Expedition) 프로젝트와 존슨-스미스니언 심해탐험(Johnson-Smithsonian Deep Sea Expedition)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연구와 탐사활동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1933년부터 이들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지원금이 중단됨에 따라 해군예비대에 소속되어 여러가지 잡다한 제반기술 보조업무를 맡게 된다. 1939년에 해군연구소를 퇴직하고 메릴랜드로 이사하여 잠시 민간기업체에 취직하였지만 바로 이내 군복무 징병이 실시되어 해군장교로 군복무를 다시 하게 된다. 해군장교로서 브라운에게 맡겨진 연구는 주로 전자기장이나 초음파를 사용하는 기뢰 제거작업을 연구하는 활동이었는데, 바로 이 시기인 1939년에서 1942녀까지의 기간 동안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관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2년에 브라운은 해군소령의 지위로서 버지니아 노폴크에 위치한 해군 레이다스쿨(Navy Atlantic Fleet Radar School)의 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얼마 후인 1943년에 심한 신경성질환을 앓게 되어 군의관의 권고로 결국 해군 장교생활을 퇴임했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영화와 책을 통해 소개된 이래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1940년경 미해군에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알려진 저 유명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그리고 이 사건의 증언자들이 주장하듯 타운젠트 브라운이 이 실험에 실제로 깊숙히 관여했는지 어떤지는 아직도 명백하게 규명되고 있지 않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브라운에게 이 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브라운 자신은 아주 간략한 몇마디 말 외에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책이 출간된 이후인 1980년대 초에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레이놀드에게 사적으로 말하기를, 윌리암 무어가 저술한 책은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부분이 많다고 간략히 언급하였다는데 정작 과장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회피하였다.
레이놀드는 1994년에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었던 타운젠트 브라운의 추모기념 페널 토론회에서 저명한 물리학자 엘리자베스 라우셔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이러한 브라운의 이야기를 재삼 언급하고 있다. 이 토론회에서 라우셔박사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대해 색다른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텔레포테이션과 시,공간 여행이 실제로 발생하였다기보다 이 실험에서 집단 환각상태가 발생하여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실제로 특수 전자기장은 인체의 두뇌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으로서 일지적인 기억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 라우셔박사는 이러한 현상과 마찬가지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 군함을 레이다에 포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강력한 전자기장을 발생시켰다면 이 전자기장의 영향에 의해 전체 승무원들이 일시적인 정신착란상태에 빠져서 마치 자신들이 실제로 시,공간 여행을 겪은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여하간 1940년경에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진행되었다는 바로 그 시기에 타운젠트 브라운은 실제로 해군의 레이다전문가로서 노폴크에서 근무하던 중이었으며, 1943에는 심한 신경성질환을 앓았고 이 때문에 군의관의 권고에 따라 해군복무를 은퇴하였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들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와 실제로 어떠한 관계였는가는 브라운 자신 또한 결코 언급한 적이 없으므로 여전히 미스테리일 뿐이다.
UFO와 같은 새로운 비행체 개발
1943년에 해군에서 은퇴한 이후로 브라운은 몇몇 민간기업체와 연구소 등에 레이다기술 자문을 해주는 것으로 생업을 삼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다시 반중력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 그가 발견하였던 고전압에 의해 반중력발생을 응용하여 새로운 타입의 비행체를 개발하는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1950년대에 이르자 실제로 소위 반중력 비행접시를 꿈꿀 수 있는 단계의 가시적인 연구결과들이 축적되었다.
1952년 미국에서는 로스웰사건이라고 명명된 외계인 비행접시 추락사건이 발생하였고, 이 사건의 진위 여부와 UFO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사회적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시기에 맞추어 브라운은 1952년에 오하이주의 클리블랜드에 정착하여 그가 윈터하벤 프로젝트라고 이름붙인 공중부양 비행접시 제작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이를 위해서 정부기관 및 여러 단체들에게 지원협조를 요청하는 안내문을 송부한다.
힌편, 50cm크기의 소형 원반형 장치를 제작하여 이 장치가 천천히 공중부양하는 모습을 1953년에 최초로 공개시현하였다. 50kW의 고전압으로 충전된 이 장치는 초속2m 정도의 속도로 공중으로 수직상승하는데, 이 당시의 공개 시현장면은, 당시 세계의 여러 잡지들에서도 상세히 소개되었다(스위스에서 발간된 항공전문지〈Interavia〉잡지의 1956년 봄 제6권 제5호에 브라운의 반중력연구 전모와 최초의 공개시현 장면이 가장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브라운의 시도와 노력들은 실질적으로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정부기관이나 연구소 등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브라운의 연구결과에 대해 비교적 냉담한 편이었던 것이다. 브라운과 관련이 있었던 미 해군연구소는 최초에는 관심을 가지고 브라운이 제시하는 프로젝트에 대하여 실효성 여부를 조사 검증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미 해군연구소 자체 조사팀을 구성했지만, 이 조사팀은 오히려 브라운의 장치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이것이 다른 정부기관 등에서도 브라운의 연구를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1952에 작성된 미 해군연구소(Office of Naval Research)의 자체보고서는 현재 공개되어 있다. 이 보고서에는 그당시의 브라운 연구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조사수록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브라운의 윈터하벤 프로젝트가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는 근거를 크게 두가지 점에서 지적하고 있다.
첫 번째로, 브라운의 연구결과가 과연 반중력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브라운이 만든 장치가 수직으로 공중부양하는 것은 반중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일종의 공기바람의 힘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뒤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브라운의 반중력현상이란, 고전압의 (-)극에서 (+)극쪽으로 미지의 새로운 추진력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미지의 새로운 추진력은 브라운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중력 제어현상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압의 (-)극과 (+)극 사이에서 공기층이 이온화되고, 이온화된 공기가 일종의 젯트형 돌개바람을 일으키면서 이 바람의 힘에 의해 장치가 위로 들어올려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조사팀의 결론이었다. 브라운의 공중부상 장치가 공기바람에 의해서 추진력을 얻고 있다는 첫번째의 결론이 사실이라면, 이 장치는 공기층이 희박한 높은 고도의 상공에서나 진공상태와 같은 우주공간에서는 추진력이 발생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주여행을 위한 새로운 비행체 제작원리로는 부적당하다는 것이 미 해군연구소 조사팀의 두번째 결론이었다. 또한 이 보고서는 당시에 새로운 비행 추진장치로서 한창 각광받기 시작한 화학연료 로켓엔진과 브라운장치를 서로 비교하면서, 공기층이 존재하는 대기권 내에서 비행한다 하더라도 브라운장치는 로켓엔진에 비해 그 효율성이 매우 뒤떨어진다고 결론짓고 있다. 미 해군연구소의 이러한 결론들은 다른 군당국이나 정부 관련기관들이 브라운에게 자금 원을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짓게 한 가장 커다란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두가지 결론이 모두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53년 이후 브라운은 잠시 미국을 떠나 1956년까지 주로 유럽을 돌아다니며 그의 연구결과와 장치를 소개하고 또한 이 시기에 더욱 진전된 자신의 연구 실험결과들을 발표하게 된다. 이때의 실험들은 미 해군연구소의 보고서를 의식하여 주로 공기가 전혀 없는 진공상태의 조건 하에서 자신의 장치를 실험한 것인데, 이 실험을 통하여 공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공중부양 현상은 여전히 발생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던 것이다. 따라서 미 해군연구소 조사팀이 주장하는 첫번째 결론 즉, 브라운효과가 단순히 이온화된 공기들의 돌개바람이라는 주장은 전혀 잘못된 것이며 실제로 중력제어와 같은 미지의 새로운 힘이 발생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두번째로 미 해군연구소 보고서에서 지적한 로켓엔진과의 효율성 비교측면 역시 브라운장치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쪽으로 이 당시의 몇몇 항공기술 전문회사들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세계의 항공기술 개발동향을 전문적으로 조사 수집하는 싱크탱크 연구소인 영국의 항공기술연구소(Aviation Studies Ltd.)가 1956년 초에 작성한 보고서가 극히 최근에 와서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이 보고서에는 미래의 가장 유망한 새로운 항공 우주기술로 브라운장치를 거론하면서 그 자세한 연구내용과 실험결과들에 대한 정보수집이 일찍이 추진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영국뿐 아니라, 당시 브라운에게 자금지원을 거절한 미국방성 또한 마찬가지였음이 밝혀지고 말았다. 미국방성에서는 1954년도부터 비밀리에 브라운효과를 이용하는 새로운 비행체의 제작을 계획하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56년 프랑스 항공기술연구소 SNCASO(La Societe Nationale de Construction Aeronautique Sud Duest)에서의 연구와 실험을 계기로 브라운은 세계적인 명성과 관심을 얻긴 했으나 실제적인 자금지원을 얻지는 못한 채 유럽을 떠나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온다. 미국으로 와서 브라운이 가장 먼저 착수했던 일은 본격적인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스스로 조성하는 사업의 일환으로서 후원회 성격의 민간단체를 결성하는 일이었다. 브라운은 자신의 반중력연구에 많은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외계인 비행접시 장치, 소위 UFO를 연구하는 민간단체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한다. 그러나 NICAP(National Investigative Committee for Aerial Phenomena)라는 이름의 이 UFO조사 연구단체와의 인연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다음 해인 1957년에 브라운은 과격해지는 협회의 성격과 방만한 재정관리에 관해 다른 이사진들을 추궁하게 되고 결국은 브라운 자신이 창립한 이 협회에서 스스로 발을 떼고 만다. 하지만 이 단체를 설립하여 외형상 UFO연구를 표방하였던 사실 그 자체가 브라운을 정통 과학계에서 결국은 소외당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로서 UFO연구를 공식적으로 내세운 것은, 과학자로서의 그 자신의 명예를 공동묘지에 처박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이후부터 정통있는 미국 과학잡지에서는 브라운의 연구 자체를 잡지에 게재하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이러한 불행과는 달리 1957년은 브라운에게 행운의 해이기도 하였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꿈과 연구에 완벽히 동의하는 앤그뉴 밴슨이라는 기업가를 만나게 된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밴슨주식회사의 사장인 앤그뉴 밴슨은 개인적으로 우주여행을 마지막 소망으로 삼고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들었을 때, 이 사람의 연구야말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작업을 실제로 진행시키기 위해 밴슨사장은 자기 회사 내에 화이트홀-랜드 프로젝트(Whitehall-Rand project)라는 반중력비행체 개발프로젝트를 만들고 이 과제를 브라운에게 위임한다. 이로부터 몇년간 브라운-밴슨 연구실이 운영되었으며 이 기간동안 많은 연구결과가 가시적으로 진행되었다.
브라운과 밴슨은 초기 2년동안 자신들이 제작한 장치들과 그 작동 상황을 틈틈이 비디오로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는데, 이 필름은 아마도 반중력연구라는 테마를 통틀어 가장 최초의 비디오 영상자료일 것이다. 총 50여분 정도의 이 비디오 영상장면 가운데 1958년 1월17일자로 기록되어 있는 실험장면 하나를 살펴보자. 우산 형태로 생긴 전체 무게가 약60g의 장치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여기에 164kV, 1mA의 고전압 전기를 흘려보내자 이 장치가 서서히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이다. 만약에 바람을 이용하여 이러한 장치를 똑같이 공중으로 들어올리려면 적어도 초속 10피트의 풍속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장치가 공중부상하고 있는 연구실 내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공기흐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영상장면은, 브라운장치에서는 전기력에 의해 반중력과 유사한 새로운 힘이 발생하고 이 힘이 실제로 중력을 극복하여 공중부상시킨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활발히 연구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행운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는 못하였다. 1964년에 밴슨사장이 비행기 추락사건으로 갑작스레 사망함으로써 연이어 브라운의 연구도 된서리를 맞았던 것이다. 그 이후 브라운 자신이 직접 진행한 연구결과는 별로 없다. 1965년 당시 이미 브라운의 나이는 60세였으며 1985년에 80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기까지 브라운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다른 과학자들에게 소개하는 일만으로도 힘에 버거웠다.
최근에 와서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이라고 명명되는 브라운의 전기-중력 조절실험은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을 뿐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활발한 연구 실험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혁명적인 과학적 발견과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이라는 천재적인 과학자의 이름은 그 어떤 과학교과서에서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비필드-브라운 효과
1924년경 덴니선대학에서 브라운과 비필드교수가 공동으로 연구를 진전시켰던 전기-중력 제어현상인 비필드-브라운효과(Biefeld-Brown Effect)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브라운은 고전압의 전기로 충전되어 있는 두개의 축전지(Capacitor)사이에는 (-)극 쪽에서 (+)극 쪽으로 밀어주는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을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다. 판대기 모양의 두장의 콘덴서를 사용하여 한쪽은 음극으로 충전시키고 다른 한쪽은 양극으로 충전시켜서 실로 매달아두면 음극쪽으로 밀려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을 수직선 상으로 위치시켜서 천칭저울로 실험해보면 결과적으로 중량의 증가(가중력현상)와 감소(반중력현상)라는 결과가 나타난다. (-)극이 아래쪽에 위치해 있을 때는,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중량이 감소하는 반중력현상이 나타나고, 이와 반대로 (-)극이 위쪽에 위치해 있을 때는,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가중력상태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을 브라운은 '비필드-브라운효과'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단순하게 보이는 현상들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1860년대에 미카엘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이후, 전기력과 자기력이라는 두가지 힘은 하나의 관계식으로 연결되어졌고, 현재는 전자기력이라는 용어로 통합된 상태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전자기력과 중력은 서로 관계가 전혀 없는 별개의 힘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들을 서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어떤 현상이나 관계식이 발견된 적도 없는 상태이다. 브라운은 자신들이 발견한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전기력에 의해 중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극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이 연구를 전기-중력학(Electrogravitics)이라고 호칭하였다.
브라운은 이 이론으로 UFO의 비행원리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나아가 실제로 UFO와 유사한 비행기를 제작하는 데에 평생을 바치게 된다. UFO가 중력에 반하여 서서히 수직상승할 때는, 원반형의 비행체 아랫부분은 (-)전기로 충전되고 윗부분은 (+)전기로 충전된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비필드-브라운효과에 의해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추진력이 발생하여 비행체는 중력에 반하여 수직상승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UFO가 공중에서 수평비행할 때는, 비행체 앞부분에 (+)전기가 충전되고 뒷부분에 (-)전기가 충전되는 상태로 변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수평적 추진력이 발생하여 비행체를 앞으로 밀어주게 된다. UFO의 비행원리라고 추측할 수도 있는 이러한 전기-중력 발생현상을 이용하여 UFO와 흡사한 형태의 새로운 자동차나 비행기를 실제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브라운은 생각하였다. 1929년에 '과학과 발명(Science and Invention)'잡지에 게재하였던 논문에서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중력 발생장치는 실제로 대단히 유용한 새로운 형태의 동력 발생장치이기도 하다. 현재의 대부분 전기모터 장치들이 전자기 유도현상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장치는 새로운 전기-중력 발생현상을 이용한다. 단순한 모양의 중력 발생장치에는 기존의 장치처럼 회전하는 기계부분이 전혀 없으며 장치 자체가 전체적으로 움직여 나간다. 따라서 기존 동력장치에서 필요한 기어나 동력전달축 그리고 프로펠러 등이 전혀 필요없으며 그러면서도 아주 효율적인 동력발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마찰부분도 전혀 없으므로 열발생이나 기계적 마모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또한 수직상승 비행이 가능하므로 비행 활주로도 필요없어진다... 수백톤 규모의 대형 여객선에서 자그마한 자동차와 비행기 등의 제반 동력장치들에 이르기까지 이 방법으로 대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환상적인 이야기인 우주 스페이스카도 가능할 것이며 이 스페이스카를 타고 화성으로 날아갈 날이 조만간 오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과학계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
1930년대 이후에 브라운은 주로 해군에서 레이다전문 기술장교로 복무하였으며,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1940년대 초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에야 다시 자신의 중력 발생장치 실용화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1952년에 브라운은 승무원을 탑승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공중부상 비행체를 제작하기 위한 윈터하벤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각계에 안내문을 배부한다. 그러나 이때 과학계에서는 브라운의 연구에 대한 공식적인 반박이 제기되었는데 이것을 자세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고전압의 (+)극과 (-)극 사이에서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브라운효과를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때 발생하는 추진력이 브라운이 주장하는 것처럼 반중력과 관계된 미지의 새로운 힘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으며, 브라운의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기존의 과학계에서 브라운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기한 이론이 바로 이온바람에 의한 추진력발생 이론이었다. 그림 5의 왼쪽은 브라운이 주장하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 가설의 개략도를 보여준다. 원반형 비행 접시의 아랫쪽에 (-)전기가 충전되고 윗쪽에 (+)전기가 충전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비행접시가 중력을 거슬러서 수직으로 공중부양하는 추진력이 발생한다. 이때 발생하는 추진력은 반중력과 같은 또다른 미지의 새로운 힘이라는 것이 브라운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찾아내었는데 그것이 오른쪽 그림으로 도식화된 이온바람(Ionic wind) 개념이다.
고전압의 전기를 띠고 있는 물체 바로 주변의 공기층은 고전압의 전하에 의해 쉽게 이온화한다. 그림에서 비행접시형태의 콘덴서장치 아랫부분의 (-)전하는 주변 공기층을 (-)이온층으로 이온화시키는데,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윗부분의 공기층은 (+)이온층으로 이온화된다. 이러한 두개의 이온화 공기층이 존재하면 자연스럽게 (-)이온화 공기층이 (+)이온 공기층으로 흘러가게 되며 이것이 이온바람(Ionic wind)를 발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체는 위로 들려올려지게 된다. 이온바람의 개념을 따르게 되면 비행물체가 위로 부상하는 추진력은 이온화 공기층의 흐름 즉,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공기가 희박한 높은 고도의 대기층이나 우주공간과 같은 진공공간에서는 추진력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과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처음에는 상당히 설득력있게 보였다.(그리고 실제로도 이러한 이온바람 현상은 유사한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브라운은 실제적인 검증실험을 통하여 자신의 이론을 관철시켰는데, 이러저러한 많은 토론보다는 진공상태에서 직접 실험해보면 모든 것이 명약관화해지는 것이었다. 다른 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브라운현상이 이온 공기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면,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에서는 당연히 브라운현상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1955년경 유럽여행 중에 프랑스 파리의 항공회사연구소의 협조 하에 이러한 진공상태에서의 실험이 정밀하게 실시되었으며, 실험결과 진공상태에서 오히려 브라운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1957년과 1958년의 브라운-밴슨 연구소 시설에서도 두차례 진공챔버 속에서의 실험이 자체적으로 실시되었으며 1959년에 제너럴 일레트릭사의 스페이스센터에서도 진공상태에서의 브라운효과 실험이 실시되어, 공기가 없는 진공상태에서도 브라운현상은 확실하게 발생한다는 것을 검증해주고 있다.
브라운효과와 B-2 스텔스폭격기
UFO와 유사한 새로운 형태의 추진동력을 발생시키는 브라운효과는 1980년대 후반부터 많은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또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1980년대 말 미공군에서 직접 작성한 보고서 '21세기 신 비행기술의 개념(21 Century Propulsion Concept)'에는 21세기의 유망한 신 추진 동력장치로서 브라운효과 장치를 가장 먼저 손꼽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는 브라운장치에서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점은 거의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힘이 실제로 중력과 동일한 계통의 힘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많은 상태이다. 엄밀한 학술적 의미에서 정의한다면, 브라운현상이 브라운이 믿었던 것처럼 소위 반중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력장 제어시스템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브라운효과에서 실제로 미지의 힘이 발생하여 공중부상과 같은 추진력을 보여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 미지의 추진력이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브라운효과에 대한 용어로서, 브라운이 주창하였던 전기-중력학(Electrogravitics)이라는 용어보다는 전기-추진동력(Electric Propulsion)이라는 용어가 보다 합당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하간, 브라운효과에 의한 새로운 추진동력 발생시스템은 21세기의 신 비행기술의 원리로서 일반 과학자들에게도 각광받기 시작한 상태이다. 또한 이러한 공식적인 활동 이면에는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미공군에서 실제로 브라운효과를 이용한 새로운 비행체개발을 완료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B-2 스텔스(Stealth)폭격기라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 중에서 폴 비오렛박사가 1993년 제1차 뉴에너지 심포지엄과 그 뒤에 다른 학회에서도 계속 게재한 리뷰 아티클 '미국의 반중력 비행체(The U. S. Antigravity Squadron)'의 일부분을 그대로 소개하기로 한다.
"오래 전부터 미국이 전자 레이다망에도 잡히지 않는 최첨단의 비행체를 극비리에 개발하여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는데, 이 소문은 1988년 11월 사실로 판명되었다. 이때에 미공군은 B-2 스텔스폭격기라는 최첨단 비행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으며, 이 비행체의 외형이나 역할 그리고 레이다 탑재장치 등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매스컴에 공개했을 뿐, 대부분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뒤 몇해가 지난, 1992년 3월에 '스페이스 테크놀로지' 잡지에 이 비행기의 모습과 비행원리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것은, B-2 스텔스폭격기는 화살모양의 날개 앞면과 뒤쪽의 꽁무니부분에 강력한 전기장을 생성시켜 이로 인해 추진력이 발생한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타운젠트 브라운의 브라운효과 즉, 전기-중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텔스전투기에 대한 이 정보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비행기가 반중력에 의한 수직상승비행까지 가능하리라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1952년에 브라운은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정부기관에 제안서를 송부하였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미, 새로운 반중력비행체는 수직 이,착륙뿐 아니라 마하3의 초음속비행까지 가능할 것임을 국방성에 제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안서를 받고난 그해, 미공군의 유력 장군이 브라운을 직접 방문하여 그의 실험실에서 18인치 크기의 알루미늄 디스크로 제작한 모형 반중력비행체의 공중부상 장면을 견학하였으며, 이듬해인 1953년에는 여러명의 미공군 장교들과 항공기술회사 기술자들 앞에서 3피트 직경의 모형 비행접시 장치의 공중부상 공개시현이 행해졌던 것이다. 1956년에 영국의 항공기술연구소에서 대외비로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1954년 11월 이전에 미공군 내에서는 브라운이 제시한 윈터하벤프로젝트를 응용하여 실제 비행체제작을 위한 연구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미공군의 스텔스전투기 개발연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B-2 스텔스전투기의 외형과 비행원리는 1962년 이전에 브라운이 이미 제시한 바 있는 몇가지 제안들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림6은 브라운이 1950년대 말에 제시한 것으로, 비행체의 추진력을 더욱 강하게 얻어내는 방법으로서 비행체의 외형을 우산형태로 제작하여 (+)전하를 앞부분에 넓게 분포시키고 (-)전하를 꽁무니에 좁게 분포시키면 화살방향으로 추진력이 더욱 강력하게 발생한다고 밝혀놓고 있다. 그림7은 1962년에 다시 새롭게 제시한 것으로서 (-)전하를 비행체꽁무니에 충전시킬 필요없이 제트엔진을 통하여 (-)전하를 가스상태로 분출시키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비행체의 전체 무게를 더욱 가볍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커다란 추진력을 효율적으로 발생시키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림8은 B-2 스텔스전투기의 외형과 비행원리를 도식화한 것인데 누가 보아도 그림6과 그림7의 브라운의 방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라운의 연구는 반중력연구의 첫 출발점이 되기도 하였지만, 실제로 반중력을 발생시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로켓이나 자동차 등에 사용하는 방법처럼 화석연료나 화학연료를 태워서 그 힘을 이용하여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기존의 기술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형태의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러한 새로운 기술은 육상교통수단으로서 나는 자동차를 개발할 수도 있고 또한 우주공간을 비행하는 우주선의 추진동력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펌]☞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AWqG&articleno=4613526#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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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반콘덴서를 들고 있는 T.T.BROWN
날기 어려운,비 항공역학적 디자인으로 제작된 B-2스피릿 스텔스 전략폭격기.
전파반사율이 기존 B-52 대형폭격기의 100분의1 수준으로 각종 폭탄과 미사일 16톤가량 탑제후,
6000마일 무급유 항행 가능.어마어마한 가격 20억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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