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감춘 땅] 경남 양산 천성산 화엄벌,
하늘이 하늘 먹고 땅이 땅 먹는 생명의 바다
원효가 당나라 천 명의 제자 위해 곳곳 암자 지어
지율 스님이 목숨 걸고 지킨 초원 ‘자연의 축제장’
어느 날 당나라 장안의 대찰인 운제사에 소반이 날아들었습니다.
어디서 온지 모를 소반이 절 마당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대중들은 어떻게 소반이
허공을 날아다닐 수 있느냐면서 놀라워했습니다.
그러자 법회에 참석하러 법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마당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비행접시처럼 허공을 떠다니는 소반을 보느라 무려 1천 명의 대중들이
모두 구경하러 나오는 바람에 법당 안은 텅 비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법당 대들보가 휘청대더니, 법당 천장이 송두리째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만약 촌각만 지체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붕 아래 깔려 즉사했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그 희한한 소반 때문에 대중들이 모두 법당 밖으로 나와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대중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그 판때기를 잡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곳엔 글자가 씌어 있었습니다.
‘海東元曉 擲盤求衆’
(해동원효 척반구중·해동의 원효가 소반을 날려 대중을 구하다)
한순간에 떼죽음을 당할 뻔했던 대중들은 얼마나 대단한 고승이기에
수만 리 밖 해동에서 소반을 날려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지 참으로 믿기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가사의한 인물 원효를 찾아 동으로 동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해동에 와 그들이 물어물어 도착한 곳이 경남 양산 천성산이었습니다.
Indian Song - Two In one
자동차로 30분을 올라 암자 입구 천상 주차장..
행사날에만 찝차만 통과 허용.
근섭 영가 등이..
천광약사여래불..
得之本有득지본유
失之本無실지본무
空手來 空手去공수례공수거
얻었다 한들 본래 있었던 것이고,
잃었다 한들 본래 없었던 것이니라.
사람은 본디 빈손들고 와 빈손으로 가니라
개떡같은 세상 공수레는 무시기 공수레
만수레 만수거다..
그러나 ~
만수레를 한평생 돌리려면 공수레보다 고생이 과히 심하지.
수만 리 밖에서 소반 던져 목숨 구해준 원효 찾아 동으로 동으로
그곳엔 운제사 대중들이 그토록 만나보기를 고대하며 수만 리 길을 오게 한 원효가 있었습니다.
젊은 날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려다가 한밤중 달게 마신 물이
해골 속에 담겨 있음을 보고 구역질을 하던 중 ‘일체 모든 법이 마음 안에 있음’을 깨닫고 당나라행을 거둔 그 원효였습니다.
그 원효가 가려던 당나라 최고 사찰의 수많은 스님들이 오히려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러 그 먼 길을 온 것입니다.
원효는 당나라에서 온 천 명의 제자들을 위해 천성산에 수많은 암자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천 명의 대중들이 ‘입산’(入山)했습니다.
그 가운데 988명이 이곳에서 도를 깨우쳤고, 나머지 12명 가운데 8명이 가서 도를 이룬 곳을 팔공산(八公山)이라 하고, 4명이 가서 부처가 된 곳을 사불산(四佛山)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드디어 1천명의 성인이 나왔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입니다.
그 ‘성산’(聖山)에 입산합니다. 원효가 1천 대중을 제접했던 원효암은 해발 900미터 고지에 있습니다.
걷는다면 족히 두 시간 반은 걸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명산의 정수리가 으레 그렇듯이 이곳도 공군부대가 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군부대까지 길이 나있습니다. 공군부대의 허가를 받은 원효암 셔틀버스만이 갈 수 있습니다. 작은 셔틀버스 안엔 보살들로 가득합니다. 원효암에 가는 기도객들입니다. 좁은 산길을 30분이나 돌고 돌아 원효암에 이르렀습니다.
원효암 주위 바위들의 기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원효암 법당 뒤에 힘차게 서 있는 큰 바위는 마치 암자를 지켜주는 것만 같습니다. 아니나다를까. 호법신장 바위입니다. 법당 뒤로 돌아가니 그 호법신장 바위 아래 굴이 있는데, 그 굴 위에 전각을 세우고 미륵불을 모셔 두었습니다.
원효가 머물던 굴입니다. 이 굴에서 샘이 솟는데, 원효암 식구들은 이 물을 물탱크에 담아두었다가 마십니다. 원효가 마신 샘물이 몸을 적셔 잠자는 성자의 성품을 깨웁니다.
원효는 귀족인 의상과는 달리 육두품 출신입니다. 그는 천민과 서민과 육두품과 귀족과 왕족의 차별 없는 본성품을 보았지만, 세속인들은 겉볼안이었기에 그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의 딸 요석공주를 취하고, 또한 고승의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처님처럼 대우받는 ‘고승’이 산산조각이 난 것은 경주 남산의 걸인인 대안대사를 만난 뒤였습니다. 어느 날 원효가 가마꾼들의 어깨에 멘 가마를 타고 왕실로 가던 것을 본 대안대사가 거지꼴로 가로막고 서서 대거리를 했습니다.
“원래 위도 없고, 아래도 없으며,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는데, 누구는 비단을 걸치고 사람 위를 타고 다니며, 궁궐을 들락거리네. 그런데 누구는 누더기를 입고 집이 없어도 천지가 집이고 법당이어서 부족함이 없고 걸림도 없으니 과연 누가 대안(大安·크게 평안)한가.”
비록 거지꼴이었지만 대안대사의 그 불호령이 원효에겐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이었습니다. 법당 속의 불상으로 박제화하고 있던 원효를 산산조각낸 그 벼락일까요.
마른 번개가 2시간 동안 빚은 장삼 걸친 부처님 형상 바위
암자 옆 50미터쯤 건너편엔 뾰족하게 솟은 바위는 ‘천광약사여래’(天光藥師如來)바위입니다. 1991년 여름밤에 비는 오지 않는데 천둥번개가 2시간이나 사자봉을 향해 불기둥을 내뿜었는데, 번개가 그치고 보니 바위에 장삼을 걸친 부처님 형상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빛이 빚었다’는 뜻의 ’천광’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원효암에 온 지 1년이 된 주지 해오 스님은 천성산은 바위에 철분이 많아서인지 바위에 내려치는 소리가 뇌성벽력이 하늘을 울릴 정도라고 합니다.
하늘은 천년 넘게 불상과 법당을 깨고 또 깨고 있는 것인가요.
비가 올 듯한 날씨여서 번개가 치면 우산도 써서는 안되고, 휴대폰도 지녀서는 안된다는 해오 스님의 우려를 뒤로하고 산행에 나섭니다. 화엄뜰을 향해서입니다. 화엄이란 부처로 장엄된 만생명입니다.
부처 아님이 없는 만생명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산길을 접어들면서부터 경고 문구가 번득입니다.
이곳은 지뢰가 매설됐던 지역이니 길을 벗어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생명을 해치는 폭력과 살상은 천년 전에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엄과 명망을 떨친 수많은 고승대덕과 성인 달사들이 다녀간 이후에도 왜 생명의 두려움은 그치지 않는 것일까요.
현실적 ‘고승’이란 법좌에 안착할 수 있었을 원효의 틀을 다시 한 번 깨 만생명으로 깨어나게 한 것은 다시 대안이었습니다.
하루는 원효가 대안 대사가 머무는 동굴로 찾아갔습니다. 대안대사는 없고 동굴엔 죽은 어미 오소리 옆에서 새끼 오소리들이 낑낑대면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원효는 죽은 오소리를 위해 목탁을 치고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대안이 들어왔습니다. 원효의 얘기를 들은 대안은 혀를 끌끌 찼습니다.
“배고플 때는 밥을 주는 것이 염불이니라.”
그러면서 아랫마을에서 동냥해온 젖을 아기오소리들에게 물리는 것이 아닙니까. 화엄경을 설하면서도 진정으로 만생명을 부처로 여기지 못했고, 부처로 공양하지 못한 채 관념 속에서 머문 그에 비해 대안은 구체적이었고, 생명적이었고, 살아서 서로의 가슴을 깨웠습니다. 원효는 드디어 생명의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사자봉과 원효암쪽 바라보니 영락없는 거대한 코끼리 형상
원효암을 출발한 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요. 화엄의 생명의 바다가 드러납니다. 어떻게 산 정상에 이런 초원이 펼쳐져 있을까요. 희유한 일입니다.
지율 스님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면서 구하려 했던 바로 그곳입니다.
내원사에서 산을 지키는 소임인 산감을 맡고 있던 지율 스님은 어느 날 산 정상부까지 굴착기가 올라오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때 까닭 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은 좀체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산이 울고 있다고 느꼈고, 살려달라고 하는 애원의 소리를 들었으며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 뒤 그는 무려 400여 차례나 이곳에 올라왔습니다.
대승불교 보살은 동체대비의 화현입니다.
그는 이미 도롱뇽, 산개구리, 나비, 고란초, 일엽초 등 수많은 생명과
한몸이 되어버렸던 것일까요.
화엄벌 초입엔 소나무와 돌의자들이 있습니다. 마치 천성산이 화엄뜰에 온 객의 쉼터로 준비해준 것처럼. 인간을 위한 자연의 배려가 신묘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화엄벌을 따라가서 사자봉과 원효암쪽을 바라보니 영락없는 거대한 코끼리 형상입니다. 코끼리는 무려 천명을 배었을 불룩한 배입니다.
임신한 코끼리입니다. 그 코끼리의 긴 코는 화엄벌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거대한 초원은 그 코끼리의 밥이며, 생명입니다.
불교에서 코끼리는 부처의 다른 모습입니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부처님을 배태할 때 꿈에 본 것도 코끼리였습니다. 이 생명의 바다가 바로 부처이며, 원효이며, 1천 성인입니다.
이 풀이, 이 메뚜기가, 이 도롱뇽이….
화엄벌은 생명의 바다입니다. 습지에 여치와 메뚜기와 도롱뇽이 사는 곳입니다. 온갖 생명이 생명을 먹고사는 곳입니다. 하늘이 하늘을 먹고, 땅이 땅을 먹으면서 그 은혜와 감사로 충만한 곳입니다.
내가 너이며, 네가 나이고, 산이 나이며 내가 산이고, 내가 강이며, 강이 나인
그런 자연의 축제장입니다. 화엄뜰 너머로 펼쳐진 저 건설과 발전의 광야에서 아기 오소리들이 낑낑대는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