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타령이 있습니다. ‘십리 절반 오리나무, 십리 두 배 시무나무’ 하면서 재미나는 말과 나무이름을 한 데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오자마자 가래나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가 래나무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가래나무와 같이 가래나무과(科)에 드는 형제로는 굴피나무와 호 두나무가 있습니다. 가래나무는 우리나라에 저절로 나서 자라는 자생수종입니다. 중부와 북부 지역의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습 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알고보 면 둘레에 아주 많을 뿐 아니라 사람들 실생활과 이것보다 더 한 게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데도 말입니다. 보기를 들겠습니다.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詩經)을 찾아보면 “ 부모님이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까지도 공경하거늘 하물며 부모 님을 공경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처럼 옛날 에는 무덤가에다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뽕나무 는 길쌈을 하고 누에를 치기 위해 심었다 치면 되겠는데, 가래나무 는 왜일까요? 가래나무가 널이나 장롱 따위 가구를 만드는 데 요 긴하게 쓰였기 때문입니다. 가래나무는 목재가 아주 좋습니다. 심재(心材)는 회갈색, 변재(邊 材)는 회백색으로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나갈수록 빛깔이 옅어 집니다. 고가구는 물론이고 60~70년대 기계와 맞물리게 하던 기 계재로도 쓰였습니다. 또 군대 가면 누구나 만졌던 M1 소총 개머 리판도 이 가래나무로 만들었고 결이 좋고 단단하기 때문에 나무 조각을 하는 데도 많이 씁니다. 언젠가 창덕궁에서 방상시탈이 발견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가 래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방상시(方相氏)탈이란 커다란 눈이 네 개가 달린 탈인데 옛날 국장(國葬)이 나면 이 탈을 쓴 사람을 수레 에 태워 앞장세웠다고 합니다. 가래나무는 해발 100~1500m에서 자라는 잎지는 큰키나무로 잎이 아까시나무처럼 나는데 잎자루 하나에 작은잎이 7장에서 17 장까지 홀수로 달립니다. 한자로는 추자(楸子)라고 하는데 충청도·강원도·경기도 같은 지 역에 가면 이 ‘추’자가 들어가는 마을 이름이 아주 많습니다. 충남 홍천군 두촌면에 가면 추평마을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가래뜰 쯤이 되겠는데, 곳에 따라 가래골이라 하는 데도 꽤 됩니다. 마을 우물가에 가래나무가 심겨 있었습니다. 과거 보러 서울 가던 선비가 지나가다가 목이 말라 우물에서 물을 한 바가지 마셨습니 다. 그런데 그 길로 머리가 맑아져서 여태까지 공부했던 모든 게 머릿속에 되살아나서 바로 장원급제를 했답니다. 가래나무는 이처럼 한방 약재로도 쓰입니다. 가래나무껍질(楸皮) 은 기침을 멎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합니다. 지난해에는 열매가 항암 작용을 하고 항균 활성화 기능도 한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아마 신약 개발도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열매는요, 길쭉한 호두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른바 견과, 딱딱한 과일인데 호두처럼 깨어서 먹기도 하고 가래알 두 개를 손안에 넣 고 주물러 손바닥에 자극을 주는 데도 쓰입니다. 아마 치매가 예방 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가래나무는 나무와 열매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임산자 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학명(Juglans mandshurica)에 만주라 는 땅이름이 들어갈 만큼, 만주 같은 추운 데서도 잘 자라니까 많 이많이 심으면 좋겠습니다. 최송현(37·밀양대학교 조경학과 조교수·학교숲 가꾸기운동 경남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