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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기록으로 살펴본 일등공신 전언(全彦)
전언(全彦)(?~?) :
본관은 정선(旌善)으로 충숙왕~충혜왕때 밀직부사·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료이다.
충숙왕이 원에 억류되었을 당시 왕을 시종한 공으로 충숙왕 13년(1325) 7월 찬성사(贊成事) 김이(金怡)·전영보(全英甫),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이능간(李凌幹), 밀직사(密直使) 박중인 등과 함께 시종 일등공신이 되었다. 감천군(甘泉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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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 11년(1324) 갑자년
• 2월
정묘일. 대호군(大護軍) 장공윤(張公允)이 왕이 내린 인사명령서를 가지고 원나라로부터 귀국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왕종(王琮)2)을 대광(大匡)·정안군(定安君)으로, 차칸테무르[察罕帖木兒]를 대광(大匡)·안산군(安山君)으로, 왕관(王琯)을 성안군(成安君)으로, 왕리(王理)를 부평군(富平君)으로, 왕주(王鑄)와 왕의(王義)를 함께 정윤(正尹)으로, 권한공(權漢功)을 예천군(醴泉君)으로, 최유엄(崔有渰)을 수첨의정승(守僉議政丞)·판선부사(判選部事)·대령부원군(大寧府院君)으로, 김심(金深)을 수첨의정승(守僉議政丞)·판총부사(判摠部事)로, 권준(權準)과 김이(金怡)를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 최성지(崔誠之)와 윤신걸(尹莘傑)을 삼사사(三司使)로, 임중연(林仲沇)을 추성양절공신(推誠亮節功臣)·첨의평리(僉議評理)으로, 임자송(任子松)을 직조언량익찬공신(直朝言亮翊贊功臣)·첨의평리(僉議評理)로, 원충(元忠)을 첨의평리(僉議評理)로, 이제현(李齊賢)을 밀직사사(密直司事)로, 박인간(朴仁幹)을 진성병의익찬공신(盡誠秉義翊贊功臣)·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최천장(崔天藏)을 추성좌명보절공신(推誠佐命保節功臣)·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김천보(金千寶)3)를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대사헌(大司憲)으로, 유인기(柳仁奇)4)를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로, 조경(趙瓊)·원선지(元善之)5)·전언(全彦)6)을 밀직부사(密直副使)로, 환관 이신(李信)을 수충보절동덕좌리공신(輸忠保節同德佐理功臣)·영월부원군(寧越府院君)으로 각각 임명했다.
정축일. 길창군(吉昌君) 권준(權準)이 원나라에 가서 연호의 개정을 하례했다.
[原文]
二月 丁卯 大護軍張公允賚批目, 還自元. 琮爲大匡定安君, 察罕帖木兒爲大匡安山君, 琯爲成安君, 理爲富平君, 鑄·義並爲正尹, 權漢功爲醴泉君, 崔有渰守僉議政丞判選部事大寧府院君, 金深守僉議政丞判摠部事, 權準·金怡僉議贊成事, 崔誠之·尹莘傑爲三司使, 林仲沇爲推誠亮節功臣, 任子松爲直朝言亮翊贊功臣, 並僉議評理, 元忠僉議評理, 李齊賢爲密直司使, 朴仁幹爲盡誠秉義翊贊功臣知密直司事, 崔天藏爲推誠佐命保節功臣同知密直司事, 金千寶同知密直司事大司憲, 柳仁奇同知密直司事, 趙瓊·元善之·全彦爲密直副使, 宦者李信爲輸忠保節同德佐理功臣寧越府院君. 丁丑 吉昌君權準如元, 賀改元. 以朴瑗爲右副代言. 壬午 以前三司使金元祥·趙延壽貳於瀋王, 並下巡軍, 籍沒其家, 杖流于島. 下延德大君塤于巡軍獄.
[각주]
6 전언(?~?) : 본관은 정선(旌善)으로 충숙왕~충혜왕때 밀직부사·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료이다. 충숙왕이 원에 억류되었을 당시 왕을 시종한 공으로 충숙왕 13년(1325) 7월 찬성사(贊成事) 김이(金怡)·전영보(全英甫),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이능간(李凌幹), 밀직사(密直使) 박중인 등과 함께 시종 일등공신이 되었다. 감천군(甘泉君)에 봉해졌다.
[출처] 국역 고려사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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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숙왕 13년(1326) 병인년
• 7월
정묘일. 왕이 다음과 같이 교서를 내렸다.
“근자에 역적의 무리들이 나라를 전복하려고 제멋대로 원나라 도성에 글을 올려 원나라의 예와 같이 행성(行省)을 설치할 것을 요청했다. 당시 모든 신하들이 마음과 힘을 합쳐 황제에게 건의해 이를 막았으니 국가를 재건한 그 막대한 공로는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이에 찬성사(贊成事) 김이(金怡)와 전영보(全英甫), 감천군(甘泉君) 전언(全彦), 평리(評理) 윤석(尹碩),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이능간(李凌幹), 밀직부사(密直副使) 박중인(朴仲仁)1), 좌상시(左常侍) 윤신계(尹莘係), 상호군(上護軍) 최안도(崔安道), 중랑장(中郞將) 손수경(孫守卿) 등을 일등공신으로 책봉해2) 토지와 노비를 내러주며 그 부모와 처자에게도 차등을 두어 작위를 주노라.”
[原文]
十三年 七月 丁卯 敎曰, “閒者, 亂賊之徒欲覆邦家, 擅呈都省, 請立省比內地. 于時諸臣同心戮力, 奏帝罷之, 再造邦家, 其功莫大, 帶礪難忘. 以贊成事金怡·全英甫, 甘泉君全彦, 評理尹碩, 知密直司事李凌幹, 密直副使朴仲仁, 左常侍尹莘係, 上護軍崔安道, 中郞將孫守卿等爲一等功臣, 賜土田臧獲, 及父母妻子爵, 有差.
[출처] 국역 고려사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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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고려사 : 세가
충숙왕 14년(1327) 정묘년
• 겨울 11월
무자일. 왕이 다음과 같은 교서1)를 내렸다.
“과인이 원나라 수도에 다섯 해 동안 머무를 때 간신배들이 다른 자에게 왕위를 넘기려는 음모를 꾸몄으나, 시종한 신하들이 충정을 다해 시종일관 한 마음으로 잘 보좌했으니 그 공적을 기려야 마땅하다.
이에 첨의정승(僉議政丞) 윤석(尹碩), 화평군(化平君) 김심(金深), 상당군(上黨君) 한악(韓渥), 서하군(西河君) 임자송(任子松), 찬성사(贊成事) 원충(元忠)·전영보(全英甫), 참리(參理) 안문개(安文凱)·이공(李恭)2)·최준(崔濬), 감천군(甘泉君) 전언(全彦), 풍양군(豊壤君) 조경(趙瓊), 밀직사(密直使) 손기(孫琦)·박중인(朴仲仁),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조석(曹碩), 밀직부사(密直副使) 김지경(金之鏡), 군부판서(軍簿判書) 이나해(李那海)3),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 이인길(李仁吉), 판선공시사(判繕工寺事) 장일(張逸), 우부대언(右副代言) 봉천우(奉天祐), 응양군(鷹揚軍) 상호군(上護軍) 최안도(崔安道), 상호군(上護軍) 신시용(申時用)4)·한계보(韓季輔), 상호군치사(上護軍致仕) 강언(姜彦), 호군(護軍) 전세정(全世貞)·박송(朴松)5), 중랑장(中郞將) 최손우(崔孫祐) 등을 일등공신으로 책봉한다.
도한 찬성사(贊成事) 정방길(鄭方吉), 밀직부사(密直副使) 정손영(鄭孫英), 내부시사(內府寺事) 나영수(羅英秀), 순창군(淳昌君) 임중연(林仲沇), 통화군(通化君) 김천보(金千寶), 정당문학(政堂文學) 박원(朴遠), 밀직부사(密直副使) 이규(李揆),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 조석견(趙石堅), 검교평리(檢校評理) 김부(金富), 민부전서(民部典書) 권겸(權謙)·정순(鄭順),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이조년(李兆年), 봉익치사(奉翊致仕) 배영지(裴英之)·이련(李連), 검교판서(檢校判書) 한영(韓英)6), 나주목사(羅州牧使) 장항(張沆), 상호군(上護軍) 최덕부(崔德符)·유방세(劉方世), 검교상호군(檢校上護軍) 박련(朴連)7)·윤길보(尹吉甫), 집의(執義) 정호(鄭瑚), 대호군(大護軍) 장영백(張英伯)·김언구(金彦丘)·홍찬(洪贊)·김재(金榟), 전 전객령(典客令) 박영림(朴永林), 호군(護軍) 오정인(吳挺仁)·송선장(宋善莊)·최창의(崔昌義)8)·이중양(李重陽)·이휘(李暉)·정인백(鄭仁伯)·윤안숙(尹安淑)·조보(趙甫), 전의부정(典醫副正) 김석(金碩), 평해부사(平海副使) 박현주(朴玄柱), 중랑장(中郞將) 최운(崔雲)·환윤전(桓允全)·백원태(白元泰)·김수(金壽)·김성걸(金成傑)·문성주(文成柱)·고종보(高宗甫)·김적(金迪)·박성서(朴成瑞)·김천경(金天鏡)·유양준(庾良俊), 밀성부사(密城副使) 유신계(劉臣啓), 낭장(郞將) 백인비(白仁庇)·김계(金)·한진(韓璡)·유춘(劉椿), 산랑(散郞) 김인경(金仁鏡)을 이등공신으로 책봉해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며 그 부모와 처자에게도 차등을 두어 작위를 내리노라.”
[原文]
冬十一月 戊子 敎曰, “寡人在都五年, 姦臣謀移國祚, 侍從之臣, 盡節輔佐, 終始一心, 其功可錄. 以僉議政丞尹碩, 化平君金深, 上黨君韓渥, 西河君任子松, 贊成事元忠·全英甫, 參理安文凱·李恭·崔濬, 甘泉君全彦, 豊壤君趙瓊, 密直使孫琦·朴仲仁, 同知密直司事曹碩, 密直副使金之鏡, 軍簿判書李那海, 判司宰寺事李仁吉, 判繕工寺事張逸, 右副代言奉天祐, 鷹揚上護軍崔安道, 上護軍申時用·韓季輔, 上護軍致仕姜彦, 護軍全世貞·朴松, 中郞將崔孫祐等, 爲一等功臣. 贊成事鄭方吉, 密直副使鄭孫英, 內府寺事羅英秀, 淳昌君林仲沇, 通化君金千寶, 政堂文學朴遠, 密直副使李揆, 判典儀寺事趙石堅, 檢校評理金富, 民部典書權謙·鄭順, 判典校寺事李兆年, 奉翊致仕裵英之·李連, 檢校判書韓永, 羅州牧使張沆, 上護軍崔德符·劉方世, 檢校上護軍朴連·尹吉甫, 執義鄭瑚, 大護軍張英伯·金彦丘·洪贊·金榟, 前典客令朴永林, 護軍吳挺仁·宋善莊·崔昌義·李重陽·李暉·鄭仁伯·尹安淑·趙甫, 典醫副正金碩, 平海副使朴玄柱, 中郞將崔雲·桓允全·白元泰·金壽·金成傑·文成柱·高宗甫·金迪·朴成瑞·金天鏡·庾良俊, 密城副使劉臣啓, 郞將白仁庇·金·韓璡·劉椿, 散郞金仁鏡, 爲二等功臣, 賜田及臧獲, 父母妻子爵, 有差.”
각주
1 교서 : 이번의 교서는 심왕파의 공세를 봉쇄하기 위해 충숙왕의 원도 억류 이래 충숙왕을 지지했거나 중립적 태도를 지녔던 인물들을 광범위하게 공신으로 책봉한 것이다.
김광철, 「고려 충혜왕의 왕위계승」 『부산사학』 28, 1992, 91~92쪽.
[출처] 국역 고려사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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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혜왕 즉위년(1330) 경오년
• 여름 4월
초하루 임오일. 호군(護軍) 조득규(趙得圭)가 원나라에 가서 왕에게, 상왕이 권정동행성사(權征東行省事) 김태현(金台鉉) 및 윤석(尹碩)·원충(元忠) 등을 투옥시키고 정방길(鄭方吉)을 시켜 행성의 사무를 임시로 맡아보도록 했다는 보고를 올렸다.
경인일. 김심(金深)을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으로, 임자송(任子松)·원충(元忠)·전언(全彦)을 찬성사(贊成事)로, 이능간(李凌幹)·이규(李揆)를 첨의참리(僉議參理)로, 이제현(李齊賢)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전영보(全英甫)·한악(韓渥)을 삼사사(三司使)로, 윤혁(尹奕)을 밀직사(密直使)로, 권겸(權謙)·김문귀(金文貴)·김지경(金之鏡)을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전신(全信)을 감찰대부(監察大夫)로, 한종유(韓宗愈)를 지신사(知申事)로, 이담(李湛)·윤안비(尹安庇)를 우·좌대언(右左代言)으로, 이군해(李君侅)를 우부대언(右副代言)으로 각각 임명했다.9)
갑오일. 왕이 백마(白馬) 81필을 바쳤다. 원나라 황제가 흥성전(興聖殿)에서 제왕(諸王)과 부마(駙馬)들을 모아놓고 술자리를 열고는 왕을 친속(親屬)의 반열에 앉도록10) 배려해 주었다.
무술일. 왕이 관서왕(關西王)을 위해 잔치를 열었다.
[原文]
夏四月 壬午朔 護軍趙得圭如元, 白王曰, “上王囚權省金台鉉及尹碩·元忠等, 以鄭方吉, 權行省事.” 庚寅 以金深爲都僉議中贊, 任子松·元忠·全彦爲贊成事, 李凌幹·李揆爲僉議叅理, 李齊賢爲政堂文學, 全英甫·韓渥爲三司使, 尹奕爲密直使, 權謙·金文貴·金之鏡爲密直副使, 全信爲監察大夫, 韓宗愈知申事, 李湛·尹安庇爲右左代言, 李君侅爲右副代言. 甲午 王獻白馬八十一匹. 帝御興聖殿, 會諸王·駙馬, 置酒, 勑王以屬序坐. 戊戌 王宴關西王. 上王遣張沆如元, 請太醫. 仍以書論王曰, “聞俗儒有冒進者, 王其勿用.” 癸卯 王享右丞相燕帖木兒于其第, 酒半, 丞相起舞, 王亦起舞, 獻酬劇飮
[출처] 국역 고려사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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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24권
충숙왕(忠肅王)
갑자 11년, 원 태정제(泰定帝) 원년
○ 2월에 대호군 장공윤(張公允)이 비목(批目)을 가지고 원 나라에서 돌아왔다. 최유엄ㆍ김심(金深)을 수첨의정승(守僉議政丞)으로, 권준(權準)ㆍ김정미(金廷美)를 첨의찬성사로, 최성지ㆍ윤신걸(尹莘傑)을 삼사사로, 임중연(林仲沇)ㆍ임자송(任子松)ㆍ원충(元忠)을 첨의평리로, 이제현(李齊賢)을 밀직사사로, 박문충(朴文忠)을 지밀직사사로, 최천장(崔天藏)ㆍ김천보(金千寶)ㆍ유인기(柳仁奇)를 동지밀직사사로, 조경(趙瓊)ㆍ원선지(元善之)ㆍ전언(全彦)을 밀직부사로 임명하였다.
문충은 곧 인간(仁幹)이다. 박원(朴瑗)을 우부대언(右副代言)으로 임명하였다.
일찍이 심왕의 당이 왕을 무고하여 도성(都省)에 상서하려 할 때, 연흥군(延興君) 박전지(朴全之)를 핍박하여 서명하라 하니, 전지가 분노하여 말하기를, “개 같은 놈들이 감히 나를 더럽히려 하느냐." 하고, 드디어 그의 아들 박원(朴瑗)을 왕의 처소에 보내어 알렸다.
이때에 이르러 박원을 대언에 임명하여 전선(銓選)을 맡기고, 박전지도 기용하여 일을 보게 하니, 늙었다는 이유로 굳이 사양하였다. 그래서 첨의정승을 제수하여 치사하게 하고, 추성찬화공신(推誠贊化功臣)의 호를 하사하였다.
[原文]
[甲子十一年 元 泰定帝元年]
○二月,大護軍張公允,賫批目還自元,崔有渰,金深,守僉議政丞權準,金廷美,僉議贊成事,崔誠之,尹莘傑,爲三司使,林仲沇,任子松,元忠,爲僉議評理,李齊賢,爲密直司使,朴文忠,知密直司事,崔天藏,金千寶,柳仁奇,同知密直司事,趙瓊,元善之,全彥,爲密直副使,文忠,卽仁幹也,以朴瑗,爲右副代言,初,瀋王之黨,誣王以罪,上書都省也,逼延興君朴全之署名,全之憤然曰,狗奴敢汙我耶,遂遣其子瑗,聞于王所,至是拜瑗代言,任銓選,起全之視事,以老固辭,乃授僉議政丞致仕,賜號推誠,贊化功臣。
[출처]: 고려사절요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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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제24권
충숙왕(忠肅王)
경오 17년, 원 지순(至順) 원년
○ 김심(金深)을 도첨의중찬으로, 임자송(任子松)ㆍ원충ㆍ전언(全彦)을 찬성사로, 이능간(李凌幹)ㆍ이규(李揆)를 첨의참리(僉議參里)로, 이제현을 정당문학으로, 전영보(全英甫)ㆍ한악(韓渥)을 삼사사로, 윤혁(尹奕)을 밀직사로, 권겸(權謙)ㆍ김문귀(金文貴)ㆍ김지경을 밀직부사로, 전신(全信)을 감찰대부(監察大夫)로 임명하였다.
[原文]
[庚午十七年 元 至順元年]
○以金深,爲都僉議中贊,任子松,元忠,全彥,爲贊成事,李凌幹,李揆,僉議參理,李齊賢,爲政堂文學,全英甫,韓渥,爲三司使,尹奕,爲密直使,權謙,金文貴,金之鏡,爲密直副使,全信,爲監察大夫。
[출처]: 고려사절요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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