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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생 여러분 모두다 안녕 하시죠. 경주에 살고 있는 정태명 늦었지만 인사드립나다. 40주년 기념회를 경주서 시행한것이 얼마되지 않았는데 벌써 또 10 년이 지났는가 봅니다
지난세월을 되돌아보니 하루 하루는 지겹게 생각되지만 일년 십년은 빠르게 지나 갔네요 요즘은 지하철을탈때 아무말 없이 손만 내 밀면 표를주는것을 보니 할아버지임에 틀림없는가 봅니다 사실은 저가2002년 부터 파킨슨병 이란놈이 나를 찿아 왔습니니다
인터넷을 뒤저보니 5년내로 빳빳하게 굳어서 죽는 병이라고 쓰여있기에 조금 당황도 되고 심지어 우울증마저 동반하던군요 그러나 죽을힘을다해서 서울 을비롯하여 각곳으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같은약을 5 년이상 복용하면 약의 내성이 생겨서 약효가 없어진다고 하기에 병원과 민중 의술과함께 병행을하니까 어느곳의 효과인지는잘몰라도 겉으로보기에는 완치된걸로 말합니다만 머리속의흑질이란세포는여전히 망기지고있으니 삶의 정리를 하는것이 좋겠다고 생각이듭니다 그동안 만나지못한 여러분들도 보고십네요 건강은건강할때 지키자라고 말하지만 어째그렇게됩니까 그럼 혹시나 나와같은병으로 고생하시는분이 있다면 참고 하시라고 그동안의 경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불치의병 파킨슨 투병기 중간보고서(완치도가능할지?)
※ 나와 같은 병으로 고생 하시는 분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실제로 걸어온 길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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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추석날 우리가족들은 성묘를 하기 위하여 산으로 올랐다. 내가 앞장을 서고 둘째 아들 내외가 내 뒤를 따라왔다. 성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며칠 지나니 모든 가족들이 각각 자기들의 삶의 터전으로 가고 집안은 조용해졌다. 명절에 떠들썩하다 갑자기 조용하니 집안은 적막감이 돌고‘ 재롱을 부리고 아양을 떨던 친손, 외손, 모두가 보이지 않으니 그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니 부산에 살고 잇는 둘째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 아버지의 건강 검진을 받아 보려고 예매를 하였으니 00일에 부산에 오라고 하기에 쓸데없이 돈만 쓴다고 달갑지 않게 생각했으나, 약속한날 우리내외는 할 수 없어 약속이된 날에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들어서니 둘째의 내외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에 건강 검진을 마치고 신경과로 가자고 하였다.
나는 왜? 가자고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갔다 신경과 선생님은 계시지 않고 신경외과로 갔다 선생님께서는 여러 가지의 신체에 관한 질문을 하시더니를MRI를 찍어 봐야 알 수 있다 고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떤 병으로 생각을 하십니까하고? 질문을 드렸더니 MRI 사진을 찍어 보아야 알겠지만 파킨슨 혹은 자율신경 계통의 병으로 의심이 간다는 말씀을 하셨다. 보통 흥분하면 몸 전체가 모두 떨리는 것은 정상이나, 한쪽만 떨리는 것은 분명하게 병 입니다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건강 검진료 만 하여도 월급으로 생활하는데 너무 부담을 주는것 같은데 또 부담을 주기 실어서 거절을 하고 그날 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신고 다니는 구두의 뒤축을 살펴보니 왼쪽 구두의 뒤창이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 바깥쪽으로 마모가 되었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제법 오래 전부터 간혹 왼쪽다리가 약간 떨린 적도 있었다고 생각나고, 근간에는 보폭이 짧아졌고 허리가 꾸부려 진 것 같고,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긴장이 되고 하였으나 내 자신은 그것이 병이라고는 조금도 생각 한 적이 없었다. 그날부터 자세하게 관찰을 해 보니 신발의 뒤축모양이 너무나 다르게 되어있고 별것 아닌 일에도 긴 장이되고, 친구의 출판기념 행사 때 방명록에 주소와 성명을 적을러니 손이 이상하게 떨려 글씨의 모양이 내가 보아도 이상하였다
그래도 그것이 어떠한 병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이 먹으면 자연적으로 오는 현상이라고만 생각 하였다
그 다음날 시내 있는 00신경과 병원에 가서 사실을 그대로 말씀을 드렸더니 하루분의 약을 처방해주셨다 선생님께서는 정확한 병명에 대한 말씀이 없었다. 무슨 약인지 궁금해서 약사님께 이약이 무슨 병에 먹는 약이냐고 질문을 하였더니 파킨슨에 먹는 약이라고 말씀 하셨다
그 다음날 또 병원에 가니 선생님께서 어떠냐? 고 물으셨으나 계속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아무런 변화를 느낀 것이 없었다. 고하니 또3일 분의 약을 처방하여 주셨다. 또 어쩠냐고 물으셨다 아무런 변화가 없고 불편한 곳 도 없었다. 그다음은 7일분을 먹었지만 특별한 반응이 없고 생활하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의사선생님 께서 대학병원에 가서 MRI 사진을 찍어오라고 하셨다 그때까지 파킨슨병의 이름은 들어 보았으나 어떠한 병인지 전혀 몰랐다
그때부터 파킨슨병이 무슨 병인지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에 처음으로 검색을 해보니 5년 내로 빳빳이 굳어져서 죽는 병이라고 설명이 나왔다. 조금 황당하고 당황이 되었다 그 다음날 00대학병원으로 갔다 선생님께서도 MRI 사진을 찍자고 말씀하시니 사진을 찍고 나서 사진을 보시더니 신경외과로 가 보라며 차드를 주셨다 점점 당황해지고 신경외과라고 생각하니 머리를 자르는 생각이 떠오르고 신경과에서 신경외과 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닌데 그날은 무척 먼 거리같이 느껴졌다
신경외과 선생님께서 사진을 한참 보시더니 사진을 보면 머리의 앞부분에 물이조금 고인 것 같아서 이쪽으로 보낸 것 같은데 연세가 그만하면 그 정도의 물은 모두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하며 차드를 돌려 주셨다 다시 신경과로 왔다
선생님 사람을 왜? 놀라게 합니까. 하니 확실하게 알아보아야 하지요 그럼 그다음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뇌가 쪼그려 들어서 그렀다 하고 처방전을 주셨다 1주일 분이였는데 그 약을 먹으니 병은 점점 더심 해지고 이젠 본격적으로 내가 환자이구나. 이렇게 가족들에게 고생시키지 말고 차라리 5년 세월을 기다릴 것 있나 조용하게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이제는 마음의 병까지 생겼다 병원 약은 자꾸 처방을 다르게 하지만 병세는 날로 깊어만 같다 그러자 연말이라 모임에 가니 평소에 좋아하던 술도 한잔 못하고 뒷전에 앉자 있으니 그 스트레스에 울고 싶은 심정이여서 그 후로는 모임에 참가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웃 간의 모임에는 내가 책임자가 되어서 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라 할 수 없이 참가하여 병은 자랑하라는 말이 생각나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러지 말고 서울 큰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고 컴퓨터로 서울의 3차 의료기관을 전부 뒤져서 한 가지 병만 보는 분이 최고 권위자라고 생각하고 서울00병원의000선생님을 선택하였다
드디어 예약일이 다가왔다 병원의 각종서식은 서울에 살고 있는 딸이 다니면서 정리를 하고 조금 있으니 자막에서 예진실로 오라는 글씨가 보였다
내가 지명한 의사가 아니고 다른 분인데 마침 이곳에서 찍은 MRI 사진을 가지고 같다 의사선생님은 사진을 한참보시더니 약30분 가까이 행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동작은 모두 시켜 보셨다
그중 두 가지가 내 생각과는 다른 행동으로 나타났다 한참 있으니 자막으로 대기 하라는 글씨가 나왔다 진찰실로 들어가니 연세가 있으신 분 같은데 아주 친절하고 평소에 알고 지네던 분 같이 친절하였다 예진 때 잘되지 않는 부분만 시켜 보더니 선생님은 정확하게 나를 똑 바라보시면서 당신은 정통적인 파킨슨병입니다 그러나 1기부터 5기로 나누면 1 기에 와서 천만다행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파킨슨 환자가 많은데도 약80 %의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못하고 중풍이 살짝 지내 같다고 생각하고 다른 약을 쓰고 있으니 한참 심하여 지면 그때서야 병원을 찾아옵니다. 당신은 다행히 초기에 찾아 왔으니 처방해 주는 대로 약만 부지런하게 먹고 운동만 열심히 하면 앞으로 20년은 더 살도록 하여 주겠다며 똑뿌러지게 자신에 찬 듯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연말모임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첫마디의 질문이 술도 먹어도 됩니까? 예 아무거나 가리지 말고 아무것이나 잡수세요. 괜찮아요. 20년간 보증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자리에서 50%정도 병이 호전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병은 뇌속에 있는 흑질 이라는 세포가 약40 %이상 죽어지면 그때야 증세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완치라는 것은 불가능하고 죽어가고 있는 세포를 천천히 속도를 낮추는 것뿐입니다 불치의 병이지만 부지런하게 운동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있다면 계속 일을 하라는 당부의 말씀도 계셨다 그날은 너무 기분이 좋았다 마음의 병도 없어진 것 같고 평소에 밥만 보아도 짜증이 나고 하던 것이 그날 저녁에는 밥한 그릇을 비웠다
이병은 약물 조정이 어려우니 약 1주일 정도 입원해서 약이 당신에게 딱 맞게 맞추어서 퇴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유를 받고 원무과에 입원신청서를 접수하니 병실이 없으니 집에 가서 조금 기다리면 연락을 하겠다는 말이다
그날은 입원이 안 되고 며칠이지나 입원 을하고 투약의 적정선을 찾기로 하였다 약을 너무 과량으로 먹으면 무도 병이라 하여 몸이 건들거리고 모자라 게먹으면 심한증세로 나타나고 여러 가지 부작용이 동반되니 정말의사선생님도 힘든 병인 것처럼 말씀하셨다.
다음날은 아침에 회진을 오셨을 때 지난밤에 질문할 내용을 하나하나씩 질문을 드렸더니 제법오랜시간동안 상세하게 설명을 하여 주셨다 그곳은 파킨슨 전문 간호사가 따로 계셨고 매우자상하고 친절하였다. 그러고 4일째 되는 날 이제는 퇴원하여도 되겠으니 퇴원하라는 명령이 나왔다. 약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찹찹한 마음을 누구에게 하소연 할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1개월에 한번 씩 다니다 몇 달이 지나니 3개월분의 약을 처방하여 주셨는데 3년 정도 지나니 이제는 많은 경비를 써서 서울까지 오지 말고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충분히 처방을 할 수 있으니 지방에서 치료를 하고 일 년에 한번정도 오면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그 다음은 지방00의원에 가서 그 처방전을 그대로 6 개월 정도 먹으니 차차 증세가 악화되기 시작하여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시작 하였다
예약을 인터넷에 클릭하니 3달 후라야 일정을 잡을 수가 있었다. 주치 선생님께 예약 을하고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다른 선생님께 또 예약을 하니 약20 일후에 진료 일정이 잡혀서 병원에 가보니 지금의약은 함량이 부족하여 그렇다며 50 %정도로 증량하여주셨다 조금생활하기가 좀 좋아진 느낌이었다. 의사선생님이나 모든 분들이 열성적으로 도와 주셔서 겉은 약으로 증세를 감추나 병은 세포가 서서히 하나 둘씩 죽어 간다니 이제는 모든 것을 준비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서울00병원 들어가면 파킨슨센타가 따로있으니 그곳은 파킨슨환자들 뿐이니까 서로가 몇 년 되었나. 증세는 어떠한가를 묻고 어떤 사람은 거름을 한참 있어야 발이 떨어지는 사람 참 어려움이 많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아서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의 말과 어떤책에보면 똑같은 약을 5년간 계속 복용하면 약물의 내성이 생겨서 약의 효능이 떨어져서 수술방법 밖에 없다 고하니 당황되고 초초한 마음이 들기 도 하였다 그때부터 병원이 아닌 대체의학 쪽으로 살펴보기로 하였다 대체의학에서는 지구상에 병이 있으면 찾지를 못하였을 따름이지 약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기억어렴푸시 생각이 났다 마침 그때 울산지원 부장판사로 계시는 황종국판사(현제 변호사)님 께서 쓰신 “”의사가 못 고치는 병은 어떻게 하나요.” 책을 연속으로 3권을 출판하셨다 자신이 병을 고친일이나 그 외 저명한분들의 성함을 거론하면서 법에 제지를 받아서 몰래 환자의 처방이나 시술을 하고 있고 각종 병의 말기 환자들이 찾아오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옛날 이재마 선생은 의사면허가 있었나. 1961년에 박정희 대통령시대 구악을 일체 없앤다는 차원에서 정리된 법이고 내가 누구에게든지 내 몸에 병을 고쳐서 편한 삶을 유지할 권리가 있는데 현제 의료법은 사람들의 행복 추구권을 빼앗아 같다는 것이 황판사님과 대체의학을 하는분들의 이야기다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손자가 배 아프면 손으로 손자의 배를 쓰다듬어 주시기만해도 병이 없어 졌다 고한다. 그것이 민중의술을 연구하는 분들의 이야기다 지금은 동양의학이 점점 없어지고 서양의학 쪽으로 기울의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다 나와 친하게 지내든 서울의 000씨도 목 디스크를 병원에서 수술을 할까 망설이다 대체의학쪽으로 가서 얼마 되지 않아 완치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대체의학쪽에 있는 그분이 쓰신 책도 여러권 있었다. 나는 천의선도(天醫仙道) 란책을 읽어보니 황당하기 만 하였다 비록 제도권의 의사는 아니나 병을 호전시키거나 완치시키면 환자로는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그분이 민중 신문에 명의 열전에 연속기사가 나오고 십 수 년을 한곳에 있었다니 별 부작용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여 발을 들여 보았다 병원은 병원대로 예약한날 다니고 대체의학은 대체의학대로 열심히 다니고 운동은 열심히 서천 강변을 걷고 그다음은 체조를 연속으로2번하고 집사람은 뒤 따라오면서 보폭이 짧으면 발 하고 팔이 흔들리지 않으면 팔 하고 명령을 하면 다시 교정을 하고 이런 생활이 약3년을 계속하였다 병원 대체의학 운동 이 세 가지를 병행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완치된 것 같아도 아직까지는 내 자신의 느낌은 완전하지는 못하다고 생각이 되나 거의 대체의학쪽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운동과 병원은 죽을 때까지 다녀야하지만 대체의학 쪽은 어떻게 할까? 그것이 고민이다
냉정하게 생각하여보면 이론상으로는 그대로 현상을 유지하는 것도 최선의 방법인데(병원측의말) 자타가 외관상으로 현저하게 얼굴과 움직이는 모습에서 완치된 걸로 말씀을 하시고 격려해주시는 것에 많은 힘을 얻은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이글을 통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은 병원 측 의약을 조정 해 보기 위해서 가장 흡수가 적은 쪽 즉 식후 바로 그 자리에 서약을 바로 먹어본다. 왜냐 하면 입으로 투약되는 약의 흡수율은 식전이 제일 좋고 그다움이 식후 30분 뒤 식후에 바로 먹으면 담백질과 같이 혼합되어 겔 현상이 되어 흡수율이 제일 낮다 고하니 고의 적으로 약물이 적게 흡수 될 때의 현상을 관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느 분의 도움인지 잘 모르겠으나 추한 꼴을 보여 드리지 아니 하기 위해서 힘닿는 데까지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
2008년 3월에 병원에 가는 날이다 선생님께서 또20년은 더 살도록 해주겠다고 하여 5년전에
20년 하셨으니까 20에서 5년은 지났으니 정답은15이라야 맞지요 한바탕 웃었다
2009.02.26 정태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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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태명 형 반갑고 고맙소!! 동기 카페에 늦게 너무 오셨구려!! 그 동안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었으니 늦었겠구려. 지금은 좀 나은 듯 보이니 불행 중 다행이구려. 생자필멸인 생의 순리를 누가 거역하리오. 조용히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 하는 그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지 않소.늙으면 저마다 병을 안고 사는데 어쩌겠소? 윤수동형과 오늘 경주에 가니 정형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 병의 작은 고통으로 나날을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modory 형 감사합니다 한참 답답하고 밥이넘어가지 않을때 는 소주3잔이 약이고 내마음대로 미친듣이산에올라가 고함을 지르면 속이 좀 시원해 졌습니다 오늘 반갑게도 희망적이고 조금더 생각을 다르게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위안을 받았을 때 정말 고마웠습니다 자리를 같이한분 정말 고 마웠습니다
카페가 있어서 이렇게 얼굴 보듯 반갑구려. 뿔뿔이 흩어져서 사노라 경황없다가 이 곳에서나마 만나, 자네의 병상일기를 읽게 되었네. 칠십년 써먹은 몸뚱이 이젠 고장날 때도 되었제. 병을 안고 살고 있는 셈이네. 자네는 일찍 발견하였기에 섭생하면서, 우리 함께 늙어가세나. /자네 목소리 듣고 글 남기네.
근간에 만나지 는 못하였으나 이런 공간을 이용하여 용기를 주고 진한 애정으로 보살피고 걱정을 해준 모든 동기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래만에 만난것도 행복이지만 형들의 격려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노력 하겠습니다
정태명형!! 오늘 정말 반가웠고 고마웠소. 살아있다는 것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니오? 오늘 밤 9시경 대구에 도착하여 또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과 소주 두병 마시고 왔는데 당신의 답글이 있어 취했지만 답을 하오. 윤수동형이 고맙고 고마웠고 아직은 건강한 형이 모습과 장총장이 고마웠소. 오래 좀 더 버티며 삽시다.
정 형, 몸이 편치 않다는 소식은 이미 접했지만 나 자신이 살아가는 것 조차 힘든 세상이라 안부 한 번 전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친구의 부족함을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투병 생활의 자세한 정보를 전해 주신 걸 감사하게 생각하며 하루속히 健康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김도생 씀.
정태명형, 어제 저녁 서정호형과 잠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정형 소식을 듣게 되었네. 방금 까페를 열어보고 정형이 그간 투병해온 내용들을 자세히 알게 되었어, 부모님의 조그만 변화에도 관심있게 병원으로 모시는 자녀들의 효심이 있고 형의 치료에 대한 강인한 의지가 있으니 정말 다행일세 나이를 먹어가니 아픈데가 자꾸 나타나고 병원가는 날이 잦아지니 형의 자세한 병상 일기가 오히려 큰 도움이 되네. 서정호형이 전한바로는 정상에서 조금도 벗어난것 같지 않더라니 정말 다해일세 용기를 가지세 . 송정헌 보냄 09.3.1
정태명형,몇년이 흘렀는지조차 기억이 안나네만 언젠가 팔공산 갓바위 산행길에서 우연히 서로 교차하면서 만나 인사만하고 헤어진 후로는 못만나다가 오늘 형의 투병일지를 읽게 되었네.그 동안의 투병 의지와 노력으로 보아 건강을 되찾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할수 있을것으로 확신하네.가벼운 마음으로 생활하고 건강 관리를 잘하길 바라네.
정형! 오랫만에 경주에서 만나 반갑고 고마웠네, 서정호 형도 동행해 주어서 고마웠고... 그 날 경주에 가는 차 중에서 정형의 소식을 듣고, 걱정했는데 막상 만나고보니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 하니 다행이였네. 경주에서 돌아 오는 즉시 카페문을 열어 정형의 투병기를 읽어 본다는 것이 오늘에서야 읽게되어 미안하네. 그동안 힘든 투병 생활을 하느고 고생이 많았겠구나, 하루속히 병마에서 벗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네. 윤수동
설송형 정말고맙소 어두운 밤길 걱정이 되었는데 무사히 잘갔으니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