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찬의 올바른 이해
성찬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성례이다. 제2차 바디칸공의회 선언문을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례전적이다. 성찬은 하나님과의 내적인 연합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통일을 위한 표지요 도구이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찬식이 예배의 특별한 순서인 것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1년 52주 중 몇 번의 예배에 끼어드는 별개의 행사라고 생각하고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찬은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다. 예수님게서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던 밤에 말씀하셨다.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나의 몸이니 먹을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라." "이 잔을 마시라. 이는 죄 사함을 얻게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서 흘린 새 언약의 피니 이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여라." 초대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모일 대마다 떡을 떼며(행 2:42)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고 회상하였다. 주님께서는 성찬에 현존하시면서 우리가 성찬을 통해 주님의 사역을 기억하고 주님께서 에비해 놓으신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성찬은 예배의 특별한 순서가 아니라 예배의 자리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삶 속에 모시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에 이르게 된다.
1. 성찬과 유월절 식사
주님게서 성찬을 제정하신 곳은 마지막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한 최후의 만찬이었다. 이날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행한 최후의 만찬은 유대교 전통에 따른 유월절 식사였다.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로 유대력으로 1월 14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날이 유월절이었다. 바로 전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초후의 만찬을 가지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 붙잡히셨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9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오기 전날 밤 죽음의 사자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애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장자들과 심지어 가축들의 첫 새끼들까지 죽이게 되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는데, 양의 피가 묻은 집은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고 지나감으로써 생명을 구하였으며, 그 다음날 아침 출애굽 함으로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도착한 이후 모세를 통해 십계명 돌판을 포함한 율법을 받고 하나님의 이동 성전인 성막을 건축하였다. 그리고 출애굽한 지 1년이 되었을 때 첫번째 유월절을 지켰다. 이때부터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가 되었으며, 저녁에는 온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유월절을 기념하는 식사를 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오늘까지도 유월절 식사를 행하고 있다.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역사였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역사였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처럼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간에게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갖도록 하셨다. 출애굽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예표라면, 유월절 식사는 예수님게서 친히 제정하신 성찬의 예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찬의 본질적인 의미를 유월절 식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월절 식탁에는 양고기, 누눅을 넣지 않은 떡, 포도주, 쓴 나물 들이 있다. 주님께서는 이 식탁에 있는 떡과 포도주를 "나의 살, 나의 피"라고 선언하시면서 온 인류를 위한 화목제물이 될 자신과 동일시 하셨다. (마 26:26~29, 막 14:22~25, 눅 22:14~20) 2. 성찬의 식탁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1495~1497)이라는 그림이 떠오른다. 긴 테이블 가운데 예수님이 의자에 앉으시고 양쪽으로 제자들이 앉으신 모습이다. 이 '최후의 만찬' 그림은 최초의 원근법을 적용한 세계적인 명화이지만, 예수님 당시에 행한 유대인의 전통적인 식사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당시의 유월절 식사는 ㄷ자 형태로 의자가 없이 낮은 상을 배열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쪽에서 제자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거나 비스듬하게 누어 손으로 뻥을 뜯어먹고 포도주를 마셨다. 그렇다고 예수님 당시의 유월절 식사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낼 필요는 없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서구식으로 식탁을 가운데 두고 의자에 앉아 유월절 식사를 한다. 우리가 성찬을 행할 때 식탁의 모습은 성찬을 행하는 장소의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하는 것이 좋다.
포도주 잔과 그릇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포도주 잔을 주로 돌로 만든 잔이나 유리잔을 사용하였다. 영화 인디아나존스 시르즈 3편 "잃어버린 성배를 찾아서" 마지막 장면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다는 포도주 잔이 나오는데 나무를 투박하게 깍아 만든 낡은 잔으로 되어 있는데, 유대인들은 포도주 잔으로 나무잔을 사용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율법에 따라 목는 정결한 음식을 코셔라고 한다. 음식을 담는 컵이나 그릇을 사용하다 보면 실수로 더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부정한 용기를 깨끗하게 하기까지 사용하지 못하는데, 특히 나무로 만든 잔의 경우 부정한 것이 스며들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보기 때문에 거룩한 식탁을 위한 포도주 잔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행한 마가의 집이 비교적 부유하였기 때문에 포도주 잔으로 유리잔을 자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 우리가 성찬을 행할 때 사용하는 용기는 다양하다. 쇠로 만들어진 그릇을 사용하기도 하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잔을 사용하기도 한다. 어느것을 사용하던지 반드시 깨끗하게 닦은 정결한 것을 사용해야 환다. 특히 여러 사람이 성찬에 참여하기 때문에 포도주 잔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입을 대는 것은 삼가는게 좋다. 이릉 휘해 개별적으로 작은 일회용 잔을 사용하기도 하고 떡을 떼서 포도주에 찍어 먹기도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잔을 사용하는 것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떡과 포도주의 의미
유월절 식사의 빵은 무교병(無酵餠)으로 히브리원어는 '마짜(Matzah)라고 하는데, 누룩이 없는 발효되지 않은 빵이다. 무교병은 거의 피자 크기 정도 되는 것을 손으로 뜯어서 나누어 먹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빵을 손으로 뜯어 나누어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무교병을 뜯어 서로 나누어 먹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온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시며 죽으셨다. 오늘낭 성찬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선찬용 빵이 공급되고 있는데, 감리교신학대학교 2013년 봄학기 '한국 문화와 예배'라는 수업에서 성찬식 때 한국의 전통음식인 떡(쑥떡, 팥 시루떡, 백설기등)을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였다.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술이 아니라, 날마다 식사 때 다른 음식과 함께 마시는 음료와 같았다. 성경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엡 5:18) 예수님께서 포도주 잔을 들고 "이 잔을 마시라"고 말씀하신 것은 날마다 포도주를 마시듯 늘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가슴에 담고 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포도주 잔을 들고 "이는 죄 사함을 얻게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린 새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포도주 잔의 핵심은 '술(알코올)'이 아니라 '구원'이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첫 번째로 행하신 이적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사건이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예수님의 이적, 그래서 마음껏 마시고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큰 기쁨과 소망을 주는 구원의 역사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값진 포도주를 우리에게 주셨다. 바로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이다. 모세는 애굽의 장자를 죽임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켰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돗생자이신 당신이 직접 십자가 위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온전하게 이루셨다. 그러므로 성찬을 행할 때에 반드시 알코올이 들어간 포도주일 필요는 없다. 특히 한국 기독교인들은 술을 먹는 것을 금하는데, 평소에 술을 전혀 먹지 않던 사람이 성찬식 때 포도주에 섞인 알코올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100% 포도즙으로 성찬을 대신하는 것도 좋다.
3. 초대교회의 성찬
성찬을 의미하는 '유카리스트(euchraarist)'는 감사를 뜻하는 헬라어에서 온 것으로 히브리어로는 축복을 뜻한다. '유카리스트'라는 말은 디다케(Didache)에 처음 등장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저녁때 성찬을 행하였는데, 주님께서 행하신 최후의 만찬이 저녁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성도가 적어 애찬(agape)이라고 불리는 친교적인 모임으로 행해지다가 교회가 확장되면서 성찬과 애찬을 분리하게 되었고, 성찬은 예전으로서 아침에, 애찬은 친교로서 저녁에 행하게 되었다. 3세기 이후부터는 성찬 예식이 발전되어 세례를 받은 사람만 참여하고 신입교인들은 제외되었다.
4. 로마 카톨릭과 종교개혁(개신교) 성찬의 차이점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찬에서 제일 먼저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이 떠오른다. '화체(化體)'라는 용어는 12세기 초 뚜르의 힐데베르트가 자신의 설교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화체'란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그 외양은 그대로 있으나 봉헌 직후 본질은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이신 예수의 실체인 살과 피로 변하였다는 뜻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이 말을 공식으로 채택한 것은 1215년 라테란 공회였다. 라테란 공회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뜻을 "성찬이 통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라고 규정하였다. 1551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는 화체설을 성찬에 관한 분명한 교리로확정하였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찬은 사제에 의해 드려질 때에만 효력이 나타나며 성찬의 주된 의무는 반복적인 희생제사이다. 갈보리 십자가에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적인 희생제사로 만족할 수 없고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드리기 위해 사제가 봉헌된 떡과 포도주로 제사를 반복적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종교 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성찬의 화체설 개념을 반대하였다. 마틴 루터는『교회의 바벨론 포로』라는 글에서 가톨릭교회의 성찬론에 대하여 세 가지 포로, 즉 잘못에 대해 비판하였는데, 첫째는 평신도에게 잔을 주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화체설이고, 셋째는 그릇된 희생의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루터에게 성찬은 근본적으로 희생을 드리는 시감이 아니라 유익을 받는 시간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누구려드리기 위해 그 분이 기뻐하실 그리스도를 아버지께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영생의 양식이신 그리스도를 받는 시간이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화체설에 반대하면서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제정된 것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밑에, 그리스도의 참 몸과 피가 있다'는 공재설(consubstatiation)을 주장하였다. 루터에 따르면, "이것이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는 제정사는 떡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당신을 주시겠다는 그리스도의 복음, 약속으로 이해해야한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미사가 성례전 중심인 것에 비하여 루터에게서 예전의 중심은 말씀의 설교이다. 존 칼빈의 성찬론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교제와 연합이 일어난다는 영적 임재설이다. 칼빈에게 성찬은 가톨릭교회의 화체설 같은 물질적인 실재론이 아니다. 칼빈이 말하는 성찬의 요소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표지(signification), 그리스도의 약속이다. 둘째는 실체(suvtantia)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다. 셋째는 효력(efficantio), 즉 위와 성황와 영생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얻게되는 축복이다. 칼빈은 물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성령의 사역으로 상징물이 그리스도의 본체와 연결되고, 이를 그리스도인이 받아먹음으로 그리스도와 합일되고 그가 하신 모든 은사가 우리의 것으로 되는 것이라 보았다.
5. 집례자와 회중
성찬은 안수 받은 목사가 집례한다. 감ㅁ리교 목사는 안수를 통해 말씀과 성례의 사역으로 파송된다.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행하라." 안수 받은 목사에겐 두 가지 과제가 있는데, 하나는 설교를 하는 것이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우리와 세계의 구원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지금 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우리와 세계안에서 이루시려 하는지 증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례를 행하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거듭나는 세례를 행하고, 거듭난 자들의 성화를 향해 더욱 완전해져 갈 수 있도록 주님의 명령에 따라 성찬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을 집례하는 목사는 회중이 성찬의 의미를 잘 알고 진실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찬 교육을 잘 해야 한다. 회중은, 성찬은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약속 있는 명령이며 주님의 말씀에 따라 믿음과 순종의 자세로 성찬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 구원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한 삶을 산다는 분명한 의식을 갖고 성찬에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집례자는 회중이 성찬을 통해 주어지는 은총의 힘으로 점차 성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존 웨슬리는 회중에게 성찬이 거룩한 삶을 위한 은총의 샘임을 강조하면서 성화로의 여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성찬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6.성찬의 자격
기독교 역사를 보면, 주후 3세기경부터 이미 세례를 받은 이들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도승전(215년)에 다르면, 세례를 받고 첫 성찬에 참여한 자들에게 떡과 포도주 외에 우유와 꿀을 섞어 마시게 했다고 한다. 물을 건너(세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홍해를 건너지 않고 약속의 다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세례를 받지 않고 젖과 꿀 그리고 떡과 포도주를 먹을 수 없다고 보았다. 칼빈의 경우 세례를 받지 않은 자뿐만 아니라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그 삶의 질이 충실하지 못한 자를 성찬상에서 제외시키기도 하였다. 웨슬리는 성찬에서 사람을 회개시키고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복음적 기능을 보았다. 웨슬리도 성찬 자격에 대해 엄격하였지만, 누군가 성찬상에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간절히 받기 원하는 경우에는 성찬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미연합감리교회는 모든 자에게 성찬을 열어놓고 있다.
7. 성찬식 후 남은 음식의 처리
화채설을 받아들이고 있는 로마 가톨릭의 경우 성별된 것 중 남은 포도주는 사제가 다 먹도록 되어있고, 빵은 소위 성체 보관함에 보관하였다가 다음 성찬 때 축성없이 다시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성체 보관함 옆에 초나 전등을 두어 성체 보관 유무를 알리도록 하였는데, 성체가 있을 경우 그 앞을 지나는 사제나 회중 모두 그곳에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하도록 되어있다. 미연합감리교회의 경우 남은 떡과 포도주의 처리 방식에 세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그 자체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아니므로 예배 후 교인들이 떡과 포도주를 경건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다. 둘째, 공동체의 사랑과 관심을 표하는 도구로 이용되어 병원, 장기요양원, 집에 누어있는 교우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셋째,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자연이므로 자연으로 돌려보내도록 한다. 개신교에서는 화체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남은 포도주를 성직자가 다 마실 필요는 없지만, 어떤 방식이든 성찬의 남은 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시험드는 사람이 없도록 경건하게 잘 처리해야 한다.
「kmc 신앙과 교육」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