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는 지구의 날을 하루 앞둔 4월 21일 “4대강 사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라는 주제로 2010년 정의평화세미나이자 제2회 가톨릭 에코포럼을 개최하였다. 나는 둘째 발제를 맡아서 "4대강 사업과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게 되었다. 먼저 이 포럼이 위치한 삶의 자리를 소개하기로 한다.
상충
한국 가톨릭 교회는 4대강 사업 현실을 생태 복음화와 생태 사도직의 지평에 비추어 식별하여 구체적으로 응답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이 위원회의 환경소위원회는 2008년 2월 13일 총회 때 정부의 대운하 계획을 듣기 위해 인수위원회에 입장을 설명해 줄 것을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식(2월 25일) 이후에 가능하다며 불참하였다. 환경소위원회는 다음달 7일 대운하 사업을 신학적으로 식별하여 복음적으로 응답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자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한반도 대운하 토론회’를 개최하여 찬성과 반대 입장을 듣고 토론하는 과정을 열기로 결정하였다. 특별위원회는 찬성 측 인사인 추부길 청와대 기획홍보 비서관과 반대 측 인사인 서울대 김정욱 교수 등으로부터 토론회에 참석할 것을 확인받은 후 3월 19일(수) 오후 2시 명동 가톨릭 회관에서 다음과 같은 주제로 대운하 정책 토론회를 갖기로 하였다.
발제 1 한반도 대운하 정책은 국운융성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추부길 청와대 기획홍보 비서관
발제 2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진정 나라를 위한 것이다!
김정욱 교수 (서울대학교 환경공학)
그러나 3월 13일, 정부 측 발제자가 갑자기 불참을 통보해 왔고, 이에 따라 정부 측 발제자 없이 이루어지는 정책 토론회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근본 취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한반도 대운하 정책 토론회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이후로도 특별위원회는 여러 차례 대통령과 정부 관계 기관에 정부의 대운하와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을 발표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정부에서 응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2월 3일에 개최된 정의평화위원회 임시총회에서 정부 측과 반대 측의 설명을 듣기 위하여 보낸 공문(정평위 제2010-003호, 2010년 1월 8일자)에 대하여 국토해양부가 정부 측에서 참석이 불가하다고 통보해 왔다. 이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소속 주교들은 2010년 2월 8일 회의에서 4대강 사업에 관하여 검토한 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리기로 결정하였고, 2월 22일에 열린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에서 4대강 사업이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하여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다시 찬성과 반대 양측의 설명을 듣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국토해양부에 4대강 사업 정책 설명을 요청하는 다음과 같은 공문(정평위 제2010-013호, 2010년 2월 23일자)을 다시 보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 2010년 1월에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4대강 사업 정책’에 대하여 정부 측과 반대 측 설명을 요청하는 공문(정평위 제2010-003호 2010년 1월 8일자)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정부 측으로 부터 참석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기에 반대 측 의견만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여 이번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주교님들이 모두 참석하시는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양측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사업 반대 의견을 설명하기 위하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가 참석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 정부 측 실무자가 참석하여 ‘4대강 사업 정책’의 필요성과 환경 단체 등이 제기하는 반대 의견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설명(30-40분 분량)을 해주시기를 요청하오니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회신은 2월 26일(금) 오전까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같은 토론 요청에 대해서 국토해양부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는 2월 25일(목) 오전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3월 4일(목)오후에 발표자가 홍형표 기획국장으로 바뀌었다가 3월 5일(금) 저녁에 설명자 참석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해왔다. 이에 주교회의 행정실에서 3월 6일(토) 오전에 국무총리실에 참석 요청 공문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설명회를 갖기로 한 당일인 8일 오전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에서 참석하겠다고 통보하면서 홍형표 기획국장을 발표자로 알려왔다가, 이날 오후 1시경 심명필 추진본부장이 발표자로 변경되었다. 이날 환경부 이병욱 차관과 4대강 추진본부 부본부장을 비롯하여 직원 5-6명 동반 참석을 확인하였다. 이리하여 주교회의는 2010년 춘계 정기총회를 시작하던 날인 3월 8일 오후 3시 주교회의 강당에서 4대강 정책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였다. 정부 측에서는 심명필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장이, 반대 측에서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가 40분씩 입장 발표가 있었고, 이어서 40분 동안 발표에 대한 질의 응답 과정이 있었다. 이런 절차를 거친 끝에 주교회의는 2010년 춘계 정기총회를 마치는 날인 3월 12일 오전에 생명과 4대강 사업에 대한 주교회의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로마 8, 22)
1960년대 이후 이 나라 정부는 단기간의 경제개발 효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겨냥하며 적극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였고, 1973년에는 낙태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도입하였습니다. 사실상 어머니 뱃속의 아기 생명에 대한 무차별적인 제거 수술을 허용한 것입니다. 그 이후 가톨릭교회는 거의 해마다 이런 반생명적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항의하고 시정을 촉구하여 왔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아동이 급감하고 있고 이대로 가다가는 이 나라의 발전은 말할 나위도 없고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다. 생명이 사라지면서 어둔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한 사람들 중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 중략 -
생명을 발전의 수단으로 삼고 파괴하는 행위는 자연환경에 대해서도 똑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연 생명이 파괴되면 그 자연을 호흡하고 섭취하며 살아가는 인간 생명도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춘계 총회에 모인 한국 천주교의 모든 주교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이 나라 전역의 자연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부 실무진의 설명을 들어보았지만,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를 국민적인 합의 없이 법과 절차를 우회하며 수많은 굴삭기를 동원하여 한꺼번에 왜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욕심으로 인한 경솔한 개발의 폐해가 우리 자신과 후손에게 지워질 때, 이 시대의 누가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회칙 ‘진리안의 사랑’에서 “환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로서, 이를 사용하는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와 인류 전체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 자연환경은 우리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원료 이상으로 소중한 창조주의 놀라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연에는 그것을 무분별하게 착취하지 않고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한 목적과 기준을 알려주는 ‘공식’이 담겨 있습니다.”(48항)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무분별한 개발로 단기간에 눈앞의 이익을 얻으려다가 창조주께서 몇 만 년을 두고 가꾸어 오신 소중한 작품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성찰과 회개를 촉구하며, 정부 당국자들과 국민 모두가 우리 자신과 미래의 세대에게 책임있고 양심적인 길을 택할 수 있기를 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일찍부터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보아라. 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을 너희 앞에 내놓는다. ....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너희나 후손이 잘 되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 (신명 30, 15.19)
2010년3월 12일
한국 천주교 주교단
이보다 사흘 앞선 3월 9일 전국의 사제 가운데 1,100여 명이 “이제 우리가 강의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사제선언”을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투신 방향까지 제시한다.
오늘 저희 사제들은 우리 시대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분명 저희 사제들이 느끼고 있는 오늘날 이 시대의 모습은 죄악의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걱정하고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자 젖줄인 4대강을 파헤치는 죄. 그 죄를 덮기 위해 실정법도 어겨가며 무리하게 진행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 그리고 그 사업에 동참 하고 있는 토건업자들의 죄. 국민들의 뜻은 외면하고 죽임의 사업을 마치 살림의 사업으로 이야기하고 동참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죄. 강을 죽이며 벌어지는 생태계, 문화재 등의 파괴 상황을 외면하고 오히려 돕고 있는 전문가들의 죄.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의 상황을 철저히 외면하고 보도하지 않고 있는 언론의 죄. 그리고 이 같은 죄의 상황을 느끼지 못하고, 마치 남의 일인 양 생각하고 무관심했던 우리 사제들의 죄를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 죄의 굴레를 끊기 위하여 전국 사제들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시대적 상황에 그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예언자의 소명이고, 스승 예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에제키엘 47,9) 구약의 에제키엘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절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시기였습니다. 참혹한 시기, 예언자 에제키엘의 메시지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자초한 이스라엘의 죄악에 초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에제키엘 예언자는 파멸이 아닌 이스라엘의 구원을 힘주어 선포했습니다.
오늘 저희 사제들도 에제키엘 예언자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 역사 상 가장 참혹한 자연의 죽음 앞에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새삼 깨달으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며 젓줄인 강의 말 못하는 고통을 대신 말하고자 모였습니다. 강가의 계곡이 포클레인으로 벗김을 당하고 있습니다. 강변의 오솔길이 대형트럭으로 짓밟히고 있습니다. 수 천 년 우리 곁에서 흐르던 강물이 만신창이로 파헤쳐 흙탕물 되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4대강의 죽어감이 바로 우리 모두의 무관심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리고 이것이 자연에 대한 우리 모두의 죄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생명임을 고백합니다. 이제 이 죽음의 상황을 끊어야 합니다.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 강의 죽음은 결국 우리에게 대재앙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그 고통을 피하려면 지금 당장 4대강 죽이기 사업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강을 지키기 위하여 강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상처 입힌 강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때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강의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제들이 강의 위로가 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다짐합니다.
첫째. 우리 사제들은 개발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는 4대강에서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과 사제들이 모여 ‘생명ㆍ평화미사’를 봉헌할 것입니다. 사제 개개인도 신자들과 함께 강으로 나갈 것입니다. 지금도 저희 사제들은 팔당 두물머리에서 유기농지보전과 강 살림을 위해 매일 오후 세시, ‘생명ㆍ평화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4대강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저희 사제들은 강에 머무를 것입니다.
둘째. 4대강 사업은 국가 재정법, 하천법, 환경영향 평가법, 문화재 관리법을 위반하는 불법사업이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사업이기에, 우리 사제들은 4대강 사업 전면 재검토를 위한 ‘국민서명운동’에 함께 할 것입니다.
셋째. 우리 사제들은 올 6월에 있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죽어가는 강을 살리고자 하는 후보들을 지지할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생명에 대한 사제적 양심의 선택입니다. 4대 강과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애쓰는 지역의 일꾼들을 지지하고 선택할 것입니다.
넷째. 오늘 우리 사제들의 선언과 다짐은 4대강 사업이 멈출 때 까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정부가 4대강 사업을 그만두는 그 때까지 전교구와 수도회의 사제들은 신자들과 한마음으로 끝까지 생명을 살리는 길을 찾고, 행동으로 옮길 것입니다.
2010년 3월 8일
전국 사제 1,500인 선언 참여자 일동
이 선언에는 “4대강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에 참여하는 다음과 같은 단체들도 연대하였다: 서울대교구환경사목위원회, 서울대교구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의정부교구환경농촌사목위원회, 인천교구정의평화위원회, 인천교구환경사목위원회, 인천교구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인천교구가톨릭환경연대, 수원교구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가톨릭농민회수원교구연합회, 원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대전교구정의평화위원회, 광주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 부산교구환경사목위원회, 부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마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대구교구평화연대, 안동교구생명환경연대,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수원교구공동선실현사제연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이런 상황에서 부산교구 김계춘 신부가 “천주교회가 왜 4대강 문제에 참견하나”라는 제목으로 위에서와 같은 입장을 발표한 사제들과 주교회의를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성직자들이 4대강 문제에 찬반을 주장하거나 집단행동을 보이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가 판단하기에 이번 일은 “전문가도 아니고 몰두하여 연구한 사람도 아닌 천주교 성직자들이”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먹여주는 재료에 의해 어떤 판단을 한 것으로 그리고 그런 신부들 말을 쉽게 믿은 다른 신부들이 동의하여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제나 주교들이 4대강 문제를 제대로 판단할 능력도 없으면서 “공산당들이 쓰는 상투적인” 여론 선동 방법에 호도되어 부화뇌동한 결과 이같은 일들이 발생하였다는 것인데, 아래에 그의 비판글 전문을 소개한다.
세종시 논쟁이 시작되면서 4대강 문제가 좀 자자드는가 싶더니, 최근 일부 천주교 성직자들이 느닷없이 이 문제를 들고일어났다. 내 자신은 4대강에 대해 지지하거나 반대할 입장이 아니다. 그 계통의 전문가도 아니고 그 문제를 위해 전적으로 시간을 낼만큼 한가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직자들이 4대강 문제에 찬반을 주장하거나 집단행동을 보이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교회가 자연을 보호하고 하느님의 천지창조의 뜻을 따라야 함은 당연하지만 어디까지가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자연훼손인가 하는 것은 전문가와 실무진의 식견과 양심이 달린 문제다. 이런 문제에 전문가도 아니고 몰두하여 연구한 사람도 아닌 천주교 성직자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 것은 뜻은 좋지만 선거를 앞둔 시점에 투표와 연계시켜 조직적으로 여론몰이 하면서 주장하는 것은 자칫 정치인들에게 이용할 당할 수 있다. 이번 일은 일부 순박한 신부들이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먹여주는 재료에 의해 어떤 판단을 한 것으로 그리고 그런 신부들을 말을 쉽게 믿은 다른 신부들이 동의하여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그 신부들이 얼마나 확신을 갖고 그렇게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4대강 사업에 꼭 의견을 내야 한다면 모든 사제들이 사회학적 신학적 토론을 거쳐서 결정해야 한다. 한국에 4천 명이 넘는 사제가 있고 1만 명이 넘는 수녀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일부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마치 대부분의 천주교 성직자와 수도자의 생각인양 내세우는 것은 천주교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천주교 신부들은 사랑과 정의감이 불타오르고 가족관계로 매인 곳이 없기 때문에 자타가 인정하는 양심의 보루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해야할 것은 사제의 양심이 만사의 진리이거나 모든 사람들이 수용해야 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천주교 사제는 남을 속이지는 않지만 속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똑똑한 신부가 누구보다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만큼 천주교 사제는 '믿는 것'이 '주특기'인 사람들이다. 자기의 지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말을 들으면 설마 거짓말을 하겠느냐면서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내 자신도 동정심을 앞세우다가 많이 속아왔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천주교회라는 간판 때문에 신부의 말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문에 신부들은 세속적인 일에 관한 자기 의견을 성경이나 교회의 권위를 이용하여 아전인수격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시국과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라면 성직자 모두가 참여하는 공의회에서 찬반의견을 듣고 통일된 주장을 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늘려서 모두의 생각인양 내세우는 것은 공산당들이 쓰는 상투적인 방법이다.
천주교 사제는 사제로 헌신하고 있는 한 모두가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사제이다. 특정 단체에 속한 사제만이 정의사회 구현에 애쓰고 나머지는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썩은 사제들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천주교 사제는 본질적으로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의 일을 대신 하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치고 황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쳐라” 라고 하셨듯이 사제는 세속적 권력과 세속적 논리에 근거하여 사목하는 것이 아니다. 사제란 그리스도의 참 정신, 즉 정의를 넘는 사랑을 토대로 진솔한 기도와 은총으로 세속에서 사랑의 기적을 이룩하고 평화를 심어야 하는 신분이다.
당연히, 천주교 사제는 만능도 아니며 UN경찰도 아니다. 세속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사제 못지않은 지식과 양심을 가진 인재들도 많다. 사제들 못지않은 진정한 애국자나 양심가들도 허다하다. 넓게 보면 인류는 각자 고유한 인격을 지닌 개인들로 구성되며, 인류 전체는 하느님의 계획대로 최고 최종의 진선미로 나아가고 있다.
요컨대, 나는 사제들이 정치적으로 시기를 맞춘 듯한 일에 너무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주교회는 교회의 권위인 ‘무류지권(infallibility = 無謬之權 = 절대 그르침이 없이 신앙과 윤리에 관하여 전하는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천주교 원로 사제 김계춘 도미니꼬 신부
김계춘 신부의 논리를 “뜻있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이라는, 가톨릭 신자들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비판 광고가 2010년 3월 25-26일 사이에 조선, 중앙, 동아일보와 문화일보 등에 실렸다. 광고 제목은 “성당에 가서 미사드리기가 무섭습니다”였는데,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4대강 사업 반대가 교회의 가르침입니까?
• 천주교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1000여명의 사제들이 ‘4대강 사업 반대’에 서명을 했다는 것도 사실입니까?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그렇다면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치산치수(治山治水)에 애쓰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반천주교적인 것이란 말씀입니까?
•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여론은 ‘찬성’과 ‘반대’ 그리고 ‘국민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추진’ 등이 혼재하며, 내용들을 잘 몰라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통계에 근거하여 “국민의 73%가 반대한다”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반대여론 부풀리기까지 마다하지 않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 누구나 무분별한 자연파괴에 반대합니다. 그럼에도 ‘자연이용’과 ‘자연파괴’를 구분하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지 교회의 영역이 아닙니다. 특히,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정부사업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을 보이는 것은 천주교 사제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선동적인 만화를 제작하여 전국 교회에 배포하면서까지 여론몰이에 나서는 것은 정치활동이지 교회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2. 이번에도 ‘정의평화위원회’입니까?
• ‘4대강 사업 반대’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주교회의의 ‘정의평화위원회’라고 합니다. 이 위원회는 작년에도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개입하여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가 웬말이냐”라면서 반대운동을 펼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그리스도의 응답”이라는 제하의 만화까지 만들어 “창조질서 거스르는 4대강 사업은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교님들이 하실 일입니까?
• 주교회의에 묻습니다. ‘정의평화위원회’란 무엇을 하는 기구이며, 이 기구가 표방하는 것이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입니까? 치산치수가 교리(敎理)와 계명(誡命)에 반한다는 것이 교회의 공식 입장입니까? 나라의 생명줄인 남방무역로를 보호하기 위한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고, 나라의 안보사업들을 저지하는 것이 교회의 공식입장입니까?
• 지금 평신도들은 피곤합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이란 단체의 일부 사제들이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무산시키기 위해 죽창을 들고 시위대의 선봉에 서는 것도 보았고, ‘쇠고기 파동’ 때에는 사제들이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도대체 천주교 사제들이 왜 이러시는 겁니까? 평신도들은 누구를 쳐다보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3. 성당에 다니기가 무섭습니다
• ‘자연보호’ ‘평화’ ‘생명존중’ 등은 거역할 수 없는 인류보편적 진리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이 진리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찬성하며, 필요한 경고음을 내는 것에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환경주의’와 ‘평화주의’가 좌익들이 즐겨 사용해온 위장 이데오르기라는 사실도 중시합니다. 이 이데오르기들이 교회에 파고들어 일부 성직자들을 좌경화시키고 있음을 개탄합니다.
• 주교님들에게 요청합니다. 인류보편적 진리를 존중하는 일과 좌경 이데오르기에 협조하는 일은 다른 것입니다. 일부 사제들이 좌경화되어 교회의 영역을 일탈하여 과격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막아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북한의 인권 유린 현장에 대해서는 침묵하시면서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평신도들은 미사 드리기가 무섭습니다. 강론을 듣기가 두렵습니다.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게 해주십시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와 이땅의 사제들 가운데 천명이 넘는 이들이, 그리고 수많은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현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아파하면서 이를 멈추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김계춘 신부와 “뜻있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이라고 말한 이들은 이런 입장을 “좌경 이데오르기에 협조하는 일”이라면서, “4대강 사업 반대가 교회의 가르침입니까?” 하고 묻는다. 이들은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이 “치산치수”로서 정당한 것으로 본다.
이렇게 상충하는 현실에서 첫 발제자 김정욱 교수는 “4대강 사업 실태와 강 살리기”를 통해서 정부가 진행시키고 있는 사업의 실상과 진정으로 강 살리기가 되기 위하여 요청되는 것을 제시하였다. 토론 시간에는 이번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법률에 관하여 김영희 변호사가 검토해 줄 것이고, 나정원 교수는 4대강 사업이 오늘 우리의 민주 시민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이자 4대강 사업 저지 천주교 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계신 조해붕 4대강 사업을 복음에 근거하여 식별하여 이를 저지하고자 전개해 오고 있는 천주교 연대 활동의 현황을 소개해 줄 것이다.
나에게 맡겨진 역할은 주교회의와 사제들, 그리고 여러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현재와 같은 형태로 진행되는 4대강 사업을 멈추라고 말하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정당한가를 식별할 근거를 제시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나는 시민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복음적 응답을 이루어 가는 데 필요한 가톨릭 교회의 생태적 신학과 영성과 사도직의 지평을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근거하여 조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이 김계춘 신부와 “뜻있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이라고 밝힌 사람들, 그리고 이들의 입장에 동조하여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을 확인하여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게”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를 위하여 나는 베네딕토 16세의 2010년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를 기본 텍스트로 삼았다. 베네딕토 16세는 4대강 사업을 복음적으로 식별하여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근거하여 응답할 사회적 가르침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집중적으로 제시하고 싶었기라도 한 것처럼, 2010년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새로운 발전 모델"을 요청한다. 여기에는 레오 13세 교황 이래 100여 년에 걸쳐서 우리 교회에서 형성되어 온 사회적 가르침 가운데 가톨릭 신앙에 근거한 생태적 발전관과 실천 방향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1990년 세계평화의 날을 맞아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창조주 하느님과의 평화 온 창조물과의 평화"라는 주제로 메시지를 발표한 지 20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그동안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 형성된 생태 사도직의 지평을 정의와 평화와 공동선의 관점에서 통합하여 제시한 문헌이다. 이런 점에서 이 메시지는 오늘 우리의 주제와 가장 잘 부합하는 자료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래에서 먼저 이번 논의의 신학적 기초가 되는 자료들을 제시하기로 한다. 그런 뒤에 논의의 집중을 위하여 베네딕토 16세의 이번 메시지를 중심으로 가톨릭 교회가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식별하고 응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교회 가르침의 전거들
창세기 1장 28절: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느님의 창조와 인간의 창조계 다스림의 기준: 하느님의 창조와 살림
교회의 응답: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땅과 그 안에 담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세상을 정의와 성덕으로 다스리며, 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알고 자기 자신과 모든 사물을 하느님께 다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은 만물을 다스려 하느님의 이름이 온 땅에 빛나게 하여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5년) 사목헌장 34항
로마서 8장 18-23절: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온 창조계: 하느님의 살림과 다스림을 열망
콜로새서 1장 15-20절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하느님의 온 창조물을 다시 하느님의 다스림에 통합하신 예수 그리스도
사목헌장 69항: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 다양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민족들의 합법적인 제도에 적용된 소유권의 형태가 어떠하든, 언제나 재화의 이 보편적 목적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저 재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사물을 자기 사유물만이 아니라 공유물로도 여겨야 하며, 그러한 의식에서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구와 우주: 공동의 집이자 선물
민족들의 발전, 바오로 6세 교황, 1967년 발표
17항: 세대간 연대의 지평-동일 세대 내 연대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세대 사이의 연대
“모든 사람이 인류 사회 전체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사명을 띠고 있다. ... 우리는 전 세대의 계승자로서 동 세대 동료들의 협력으로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은 뒤에 인류 가족을 계속 융성케 할 후대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는 없다. 전인류의 상호 유대는 한 가지 사실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이익을 줄 뿐 아니라 또한 의무도 낳아 준다.”
사회적 관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1987년 발표, “생태적 관심”(26항) 명시적으로 표현
33항: 진정한 발전과 도덕적 수준
“본연의 개발과 인권의 존중 사이의 내적인 관계는 개발의 도덕적 성격을 다시 한번 밝혀 준다. 인간 각자의 자연적 역사적 소명에 상응한 인간의 진정한 고양은 재화와 서비스의 풍요만을 갈취함으로써, 또는 완전한 경제 기반(하부 구조)을 갖춤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을 두고 가정과 종교 사회를 위시해서 각 공동체의 고유한 정체에 기인하는 도덕적 문화적 정신적 요구를 엄정하게 존중하지 않을 때에, 그 밖의 모든 것─재화의 이용, 일상 생활에 응용되는 기술 자원의 풍부, 어느 정도의 물질적 복지의 수준 등─이 불충분함이 드러나고 끝에 가서는 경멸할 것으로 나타난다. 주님께서 가치들의 참다운 서열에 모두 주의를 기울이도록 촉구하신 말씀을 하실 적에 복음서에서 이것을 분명히 하셨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마태 16,26) 진정한 개발은 남자나 여자, 어린이와 어른 그리고 노인 등 인간의 특정한 필요를 유지시키는 가운데에, 이 개발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그 책임을 지는 사람들 편에서는 만인의 권리와각 사람의 권리의 가치들을 생생하게 의식하도록 요구한다.”
34항: 개발에서 창조물을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이유
“개발의 윤리적인 성격에서 자연 세계를 구성하는 제반 사물들, 일찍이 그리스인들이 그것을 특징짓는 ‘질서’ 를 의미하여 ‘우주’(cosmos)라고 일컬은 그 세계를 구성하는 사물들에 대한 존중이 제외되어도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그 세계도 또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 이것도 우리가 주의깊게 반성함이 유익할 것이다.
첫 번째 고찰은,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동물, 식물, 자연 요소들─다양한 종류의 사물을 인간이 자기 원대로만, 자기의 경제적인 필요만 좇아 사용할 수는 없으며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자각을 더욱 깊이 얻게 하는 적절함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는 각 사물의 본성과 그것이 질서 있는 체제, 정확하게 말해서 ‘우주’ 에서 차지하는 상호 연관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번째로 고찰할 점은 자연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자각─이 자각은 매우 시급한 것이다─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자원은 글자 그대로 재생이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을 마치 절대 고갈되지 않을 것처럼, 또 절대 지배권을 가진 것처럼 사용함으로써 그것들의 이용도를 위태롭게 만들며, 현세대에게만 아니라 다음에 올 세대에까지 그 이용 가능성을 해치게 된다.
세 번째 고찰은 산업화된 지역에서 ‘생활의 질’ 과 연관하여 발전시켜 온 개발 유형이 있는데 바로 그 후속 결과에 직결되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공업화의 직접 또는 간접 결과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빈번하게 환경의 오염이 조성되고 그것은 주민의 건강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여기서 개발, 그것을 관장하는 계획, 거기서 자원이 이용되는 방도 등에서 도덕적 요청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그 같은 도덕적 요청 가운데 하나가 자연 세계의 이용에 한계를 설정하라는 것임에 틀림없다.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지배는 절대권이 아니며, 따라서‘선용하든 남용하든 자유다’ 라는 말을 못할 뿐더러, 사물을 자기 좋을 대로 처분한다는 말도 성립되지 않는다. 태초부터 창조주 친히 설정하신 한계, ‘그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하시는 금령에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한계(창세 2,16-17 참조)는, 우리가 자연계를 대할 적에 그 생태학적인 법칙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법칙에 귀속됨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으로, 이를 위반할 적에는 반드시 징벌이 따르게 되어 있다.”
1990년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생태계의 위기가 요청하는 연대, 또 평화를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이 새로운 연대”를 “절대적 요구”라고 인식한다(10항).
6항: “우리는 생태계의 한 영역에 개입할 때에 그러한 개입이 다른 영역에 미치는 결과와 미래 세대의 행복에 대하여 모두 마땅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8항: “이 지구는 궁극적으로 공동 유산이며 그 소산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표현을 따르자면,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사목 헌장, 69항). 이것은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문제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소수의 특권층이 계속하여 과도한 재화를 축적해 가고 유용한 자원을 탕진하고 있는데 대다수의 민중들이 바로 생존의 최저 수준이라는 비참한 처지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불의입니다. 오늘날 생태계의 붕괴라는 이 비극적인 징조는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탐욕과 이기심이 창조의 질서, 상호 의존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창조 질서와 얼마나 상반되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5항: “생태계의 위기를 평화의 추구라는 한층 더 폭넓은 맥락에서 볼 때에, 우리는 지구와 그 환경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에 기울여야 할 관심의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지구가 우리에게 하는 말은, 곧 우주에는 마땅히 존중하여야 할 질서가 있으며 자유로운 선택의 역량을 부여받은 인간은 미래 세대의 행복을 위하여 이 질서를 보전하여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태계의 위기는 도덕 문제라는 말씀을 거듭 되풀이해 드리고자 합니다.”
16항: “모든 사람을 위하여 건강한 환경을 보전하려는 신앙인들의 투신은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서 직접 뻗쳐 나오는 것이며, 원죄와 본죄의 결과에 대한 인정에서 그리고 그리스도께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에서 직접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또한 인간과 더불어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부름 받은 다른 모든 피조물에(시편 148; 96[97] 참조)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진리 안의 사랑, 베네딕토 16세, 2009년 발표
48항: “환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로서, 이를 사용하는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와 인류 전체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 따라서 완전한 인간 발전을 위한 계획들은 차세대를 유념해야 하고, 환경, 법, 경제, 정치, 문화의 다양한 분야를 고려하면서 연대와세대 간의 정의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교회는, 더디고 미진하다고 생각될는지 몰라도, 이렇게 깊게 응답해 오기도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것만 보더라도 현대 교회가 발전과 하느님의 창조 세계에 대해서 복음에 근거하여 자신의 입장을 발표해 온 것이 45년이 넘는다. 이 전통을 모르면서 교회에 속한 신앙인으로서 주교들과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자연과 생태 현실에 대해서 응답하는 것을 보면서 김계춘 신부가 보인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이 일본 식민지배 세력에 의하여 처형되었을 때,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하느님께 그를 받아주시기를 청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동일한 때에 같은 신자들 가운데서도 그의 죽음을 이토를 죽인 것에 대한 정당한 처벌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1974년 7월 6일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 하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하여 지학순 주교가 납치당하여 감금되었을 때, 많은 사제와 주교와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정부의 불법과 불의를 비판하면서 정의를 구현하고자 헌신하였다. 하느님은 정의이시라는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같은 시기에 지학순 주교가 이유 없이 체포되었겠느냐면서 도리어 정부의 불법을 옹호하고 정의를 외치는 주교와 사제와 수도자와 평신도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운 신자들이 있었고, 사제들이 있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광주 시민들에게 칼을 겨누고 총을 발사하였을 때, 광주 시민들이 겪는 고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헌신하는 신자들이 있었고, 이들과는 달리 광주 시민을 폭도로 일컬으면서 도리어 정부의 발포를 정당한 행위로 옹호하는 사제와 신자들이 있었다. 김계춘 신부는 그때 어디에 있었는가? 그때 소위 “뜻있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에 속한 이들은 어느 쪽을 선택하였을까?
2010년 3월 26일 안중근 토마스가 순국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날을 복음적으로 충실하게 기억하며 그의 뜻을 기린 행위를 그 많은 기념식에서 발견하기 힘들었다. 주교회의 주교들이야말로 역사와 민족과 세계 앞에서 민족 사랑과 하느님 정의와 평화를 증거한 안중근 토마스의 정신을 오늘 이 시대의 삶의 자리에서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한 구체적 투신을 보여주었다고 믿는다.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서 지학순 주교가 증거한 세상에 열린 신앙 실천에 부합한, 참으로 숭고한 신앙 실천을 우리 교회와 민족에게 선물하였다고 믿는다. 또한 30년 전 1980년 5월 광주 민주 시민들의 민족 민주 민중 사랑에 응답하여 윤공희 대주교를 비롯해서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누어져 준 위대한 투신을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어 가는 한 구체적 실천을 여기서 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면 아래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2010년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를 통하여 좀더 자세하게 그 이유를 함께 보기로 한다.
나.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2010년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
시작
2010년 1월 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평화를 일구려면, 창조계를 보호하십시오”(If You Want To Cultivate Peace, Protect Creation)라는 제목으로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를 발표한다. 이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 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는 평화”를 발표한 지 20년이 된 해를 맞으면서 가톨릭 교회의 “생태적 자각”을 보다 더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한 표지이다.
아래에서는 먼저 베네딕토 교황의 이 메시지에 나타난 생태 이해와 실천 방식을 검토하기로 한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창조계를 하느님의 “선물”로 인식함이 갖는 의의에 근거하여 오늘 이 시대에 요청되는 생태 이해와 살이에서 요청되는 패러다임의 전환 형태를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창조와 구원의 틀에서 요청되는 생태적 연대
베네딕토 16세는 하느님의 창조에 대한 전통적 신뢰를 바탕으로(2, 10, 12항) 그리스도의 구원에 온 창조계가 통합되어 있다는 믿음 위에서 생태 평화를 접근하고 설득한다(13-14항). 또한 창조 안에서 인간 존재의 의의와 역할을 그리스도 신앙 전통에 따라 복음적으로 인식하고 구현할 과제를 직시하도록 초대하는 가운데(2항, 13항), 하느님과 인류와 창조물에 대한 책임과 연대를 호소한다(4-6항 등 여러 곳).
베네딕토 교황은 온 창조물에 대한 존중을 하느님의 다스림과 연결지어서, 이것이 인류의 평화에 필수불가결하게 요청되는 것임을 강조한다(1, 14항). 교황에 의하면, 창조계 자연은 온 인류가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에 따라 선물받은 공동의 바닥이자 생명의 원천으로서, 미래 세대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사용할 때 온전한 인간 발전을 이룰 수 있다(2, 5-7, 9-11항).
생태 파괴의 윤리적 성격과 현상들
교황은 이런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생태 위기가 인간의 존재 방식과 맞물려 있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생태계의 파괴와 훼손이 “윤리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4-5항). 인간은 하느님께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원천으로서 지구를 일구고 돌보며 다스리도록 불리었는데, 이 명령의 참 의미는 착취가 아니라 책임에 있다(6항). 하지만 인류 사회는 이 명령을 이기심에 지배받게 하여 “인간의 지배보다 더욱 폭력적인 자연의 반란을 불러오고 말”(같은 항)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면서, 위기의 일단을 이렇게 열거한다.
기후 변화, 사막화, 광활한 농촌 지역의 황폐화와 생산량 감소, 하천과 지하수 오염, 생물 다양성의 상실, 자연 재해 증가, 적도와 열대 우림 지역의 남벌과 같이 현실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어찌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 서식지의 파괴로 주거지와 흔히는 재산까지도 잃고 강제 이주의 위협과 불안으로 내몰린 “환경 난민들”의 현상이 증대하고 있음을 우리가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습니까? 자연 자원 이용을 둘러싼 실질적 잠재적 갈등 앞에서 어찌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생명, 식량, 건강, 발전에 대한 권리와 같은 인간의 권리 행사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입니다(4항).
교황은 말한다. “위기 증대의 징후들이 보이고 있는데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것입니다”(4항).
새로운 발전 모델 요청
이러한 위기 현실에 직면하여 교황은 평화를 이루려면 하느님의 온 창조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새로운 발전 모델을 갖출 것을 요청한다.
생태계 위기를 다른 관련 문제들과 분리하여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발전의 개념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관, 인간 상호 간의 관계와 인간과 나머지 피조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발전 모델을 장기적으로 깊이 재검토하고, 아울러 경제의 의미와 경제 목표를 고찰하여 그 역기능과 오용을 바로잡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5항; 2항과 9항 등도 참조).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 교회의 신앙 진리에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 속하며,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피조물을 맡기시며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셨”다고 말한다(6항). 새로운 발전 모델은 바로 이 진리 위에서 기획되어야 할 것인데, 이것은 창조계를 책임있게 돌볼 의무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전이 될 것이다.
교황은 근본적으로 생태 위기를 “진리 안의 사랑에 합당한 가치로 촉발된 피조물에 대한 존중과 온전한 인간 발전을 위한 세계적인 개발 모델을 지향하는 공동 실천 계획을 마련하는 역사적인 기회”로 인식한다(9항; 14항 참조). 이런 기본 취지에 따라서 교황은 창조계가 특히 미래 세대에게도 공동으로 주어진 선물임을 환기하면서 경제 발전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이렇게 진술한다:
환경 파괴는 흔히 장기적인 정책들의 결여나 근시안적인 경제 이익 추구에서 기인하고, 결국 이는 피조물에 비극적이고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려면, “모든 경제 결정은 도덕적 결과를 가진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따라서 환경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경제 활동이 요구됩니다. 자연 자원을 이용할 때 우리는 그에 대한 보호와 발생할 수 있는 전체 비용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그에 수반되는 환경적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국제 공동체와 각국 정부들은 환경 남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올바른 신호를 보낼 책임이 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자연 자원과 기후를 보호하려면 명확하게 정의된 법칙에 따라, 또한 법률적 경제적 관점에 따라 행동하여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세계의 빈곤 지역들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미래 세대들에게 마땅히 보여 주어야 할 연대를 고려하여야 합니다(7항).
새로운 발전 모델에 요청되는 시간적, 공간적 연대
교황은 위에서 인용한 7항 끝에서 이미 세대간 연대와 세대 내의 연대에 대해서 피력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새로운 발전 모델과 생활 방식과 연결하여 이러한 전환에 필요한 지구적인 연대 방향을 시간과 공간 범위를 아우를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그리하여 창조 현상과 과정 전체를 포용할 언어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교황은 먼저 시간상으로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책임있는 연대, 곧 “세대간 연대”(sense of intergenerational solidarity) 가 요청된다고 말한다(7-8항). 둘째, 공간상으로는 같은 동일 세대 내에서, 교황 자신이 “우리의 공동의 집”으로 표현한, 지구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로서, 특히 개발도상국과 선진 산업국 사이에서, 쇄신된 연대를 실현할 과제를 명시한다(8항). 교황은 후자를 “(동일) 세대 내 연대”(intragenerational solidarity)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것은 동일 국가 내에서도 국가 영토를 공유하는 시민들 사이의 연대는 물론, 동일 지역 사회, 그리고 동일 가옥 내에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까지 포함한다.
교황은 먼저 시간적 연대 맥락에서 세대간 연대차원과 관련하여 직접 이렇게 말한다.
세대 간의 더 큰 연대 의식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공동의 환경 자원을 우리가 써버리고 그 대가를 미래 세대에게 전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전 세대의 계승자로서 동 세대 동료들의 협력으로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갚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은 뒤에 인류 가족을 계속 융성케 할 후대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적 연대는 우리에게 이익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이며, 개별 국가만이 아니라 국제 공동체와도 관계되는 책임입니다(8항).
교황은 여기서 자연 자원의 사용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의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할 것을 강조하면서, 이 과정에서 “사유 재산의 보호가 재화의 보편적 용도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도록” 할 것을 요청한다(8항).
이어서 교황은 생태 위기는 시간과 공간을 포용하는 연대(solidarity which embraces time and space)의 절박함을 드러낸다면서, 동일 세대 안의 연대(intragenerational solidarity), 특히 개발도상국과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들 사이에서 쇄신된 연대 의식이 절박하게 요청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지구라고 하는 “공동의 집”에서 물리적 거리는 물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간격을 넘어서 하느님의 다스림 안에서 서로 하나로 이어져 있음에서 비롯되는 연대 요청이다. 교황은 이것을 국제적 연대 차원과 연관지어 이렇게 진술한다. “국제 공동체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착취를 규제하는 제도적 수단을 찾고 그러한 과정에 가난한 나라들도 참여하게 하여 미래를 함께 계획해 나갈 절실한 의무가 있다”(8항).
이와 동시에 교황은 산업화한 나라들과 덜 산업화된 나라들이 생태 위기에 직면하여 서로 협력할 과제를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현재의 생태 위기의 원인들 가운데 선진 산업국들의 역사적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개발 국가들과 특히 개발도상국들도 피조물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점진적으로 효율적인 환경 법과 정책들을 채택할 의무가 그들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원조와 지식 공유와 친환경적 기술 이전에서 사리사욕을 덜 부린다면 이는 좀 더 쉽게 달성될 것입니다(8항).
시간과 공간의 연대를 주목하게 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요청한 “새로운 연대”와 자신이 역설한 “지구적 연대”를 위한 정책의 전환을 에너지 개발부터 시작하여 빈곤 극복을 위한 대안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이렇게 진술한다.
태양 에너지의 엄청난 잠재력을 활용하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한 연구를 촉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물 부족 문제와 지구의 물 순환 체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기후 변화로 자신의 안정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지상의 생명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소농들과 그들의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적절한 농촌 개발 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삼림 관리, 쓰레기 처리, 기후 변화 대처와 빈곤 극복의 관계를 강화하는 적절한 정책 이행도 모색해야 합니다. 특히 중장기적으로 중대한 혜택을 가져다 줄 국제적 노력과 더불어 담대한 국가 정책이 요구됩니다(10항).
생활 양식의 변화
이어서 교황은 인류 사회의 생활 양식을 생태 위기와 통합하여 변화시킬 것을 요청한다. 교황은 말한다: “피조물을 존중하고 모든 이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농업과 산업의 생산 형태를 촉진하려면 순전히 소비중심적인 심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10항). 이것은 교황 자신이 생태 위기는 윤리의 문제라고 지적해 온 맥락과 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황은 “현재의 위기들”을 “이전의 성공한 경험들에는 의지하고 실패한 경험들은 단호히 버리는 새로운 참여 방식과 형태를 통한 연대와 절제의 생활 방식”을 선택할 기회로 인식한다(5항). 실제로 오늘의 생태 위기는 특히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생활을 복음적으로 전환하라는 부름으로 작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생태 위기에 응답하는 이유와 방식을 보다 더 건강하게 식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교황은 우리가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투신할 이유를 하느님의 사랑과 공동선에 비추어 좀더 거시적으로 바라보도록 이렇게 진술한다: “단지 환경의 황폐화라는 무서운 전망이 가시화되었기 때문에 생태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적인 동기는 사랑과 정의와 공동선의 가치로 고취되는 참다운 세계적 연대의 추구이어야 합니다”(10항). 교황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생활 양식과 오늘 우리 사회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생태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인류 사회가 바라는 평화를 복음적으로 사는 한 결정적인 길이라는 것을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황은 이 사명에 참여할 주체들을 폭넓게 그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환경의 황폐화 문제가 사회와 환경, 나아가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지속될 수 없는 우리의 생활 양식과 현재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진선미의 추구가, 그리고 공동 발전을 위한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가 소비와 저축과 투자를 결정하게 되는” 새로운 생활 양식에서 나오는 진정한 시각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평화 교육은 개인과 가정과 공동체와 국가의 담대한 결정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환경을 보호하고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보조성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이 개별 이익을 앞세우지 말고 제 자리에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 생태학”을 존중하는 생태적 책임을 확산시키기 위해 적극 헌신하는 현대 시민 사회의 여러 단체와 비정부 기구는 의식 고취와 교육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역시 이와 관련하여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모델을 제시할 책임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환경에 대한 관심은 세상을 바라보는 폭넓은 세계관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국가 이기주의를 넘어서 언제나 모든 민족들의 요구에 열려 있는 전망을 향해 나아가는 책임 있는 공동 노력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황폐화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사회 단체와 국가의 관계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존중과 “진리 안의 사랑”의 특징을 지녀야 합니다. 이러한 넓은 맥락에서 우리는 국제 공동체가 점진적인 군비 축소와 핵무기 없는 세상을 보장하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촉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핵무기의 존재만으로도 지구의 생명과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지속적인 온전한 발전이 위협을 받습니다(11항).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정신을 계승하여 자연 생태학과 인간 생태학과 사회 생태학이 새 하늘 새 땅을 지향하는 평화 생태학에서 서로 불가분리한 형태로 교직되어 상호 작용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11-12항). 이런 맥락에서 여기서 말한 새로운 생활 양식에 대한 언급이나 앞에서 살펴본 새로운 연대와 지구적 연대에 관한 내용들은 이 기본 관점을 다양하게 진술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에게서 자연 창조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유에 의하여 생겨나서 존재하는 것이다(2, 6, 10항). 그러므로 이것은 사랑과 정의와 공동선의 가치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세대 내에서는 물론 세대 사이에서도 공유되어야 할(10항)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2, 6항)이자 생명의 원천이며 공동 찬양의 원천이요 동반자(13항)이기도 하다.
자연 숭배의 극복 요청
지금까지 본 것처럼, 교황은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피조물을 책임지는 청지기와 관리자의 역할을 맡기시며 당신의 작품에 새겨 넣으신 ‘원칙’을 존중하면서 이 문제에 균형을 갖춘 방식으로 접근”할 것을 역설한다. 그렇지 않고 “인간의 능력과 기술을 절대화”하는 것은 단순히 “자연뿐 아니라 인간 존엄 자체도 심각하게 공격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13항).
그러나 이것은 자연을 절대화하거나 인간의 존엄을 자연에 종속시킨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교황은 인간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연 만물과 관련하여 부여하신 “역할을 남용해서는 안 되지만 포기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밝힌다. 교황이 이 메시지의 맺음부에서 다음과 같이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면 자연을 절대화하거나 인간보다 더 중시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교도권이 생태중심주의와 생물중심주의로 촉발된 환경 개념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는 그러한 개념이 인간과 다른 생명체 간의 정체성과 가치의 차이를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의 “존엄”에 대한 이른바 평등주의적 관점을 명분으로 한 그러한 개념은 인간의 정체성과 탁월한 소명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또한 그러한 개념은 인간 구원의 원천을 순전히 자연주의적 차원에서 이해된 자연에서만 찾는, 새로운 우상숭배에 물든 새로운 범신론에 빠지게 됩니다(13항).
맺음
모든 그리스도인은
첫째, 하느님의 계시의 빛에 따라서
둘째, 교회의 전통에 충실하게
온 창조계를 보전하여 참 발전과 평화를 이룰 사명을 부여받았다(14항). 교황은 절박하게 온 교회, 온 인류에게 호소한다. “평화를 일구려면 창조계를 보호하십시오.”
요약
새로운 발전 모델의 신학적 토대
“하느님의 선물”로서 “우리의 공동의 집”인 지구
진리 안의 사랑에서 샘솟는 정의와 공동선
새로운 발전 모델의 요청
사회적, 생태적 비용: 사회 정의와 생태 정의
시간적 연대: 세대간 연대로서 정의와 공동선
공간적 연대: 동시대인들의 연대로서 정의와 공동선
정의justice를 포용하는 연대solidarity 비전:
교황은 “세대간 정의”라는 개념을 “세대간 연대” 개념으로 전환시켜 간다. 정의가 “균형”이라면, 연대는 “서로 안음”이다. 지구를 “우리의 공동의 집”으로서, 하느님께 받은 하나의, 그래서 공유해야 할 선물로 인식하는 교황의 지구관에 비추어 볼 때, 연대는 정의를 포용하면서 “집”의 표상과 사랑의 실체에 보다 더 잘 부합하는 신학적, 영성적, 사목적 언어라고 하겠다. 특히 연대는 “주어진 존재(the given)”요, “불린 존재(the called)”로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온 창조물과 이어져 있음을 보다 더 충실하게 진술한다. 하느님의 창조로서 지구와 우주라고 하는 하나의 공동의 집에서 발생하는 존재 현실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언어를 빌어서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공동의 집에서
종의 번성
땅의 공유
시간적 연대 solidarity in time
공간적 연대 solidarity in space
세대간 연대 intergenerational solidarity
세대내 연대 intragenerational solidarity
교황은 “위기 증대의 징후들이 보이고 있는데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4항)이라고 명백하게 진술하였다. “모든 경제 결정은 도덕적 결과를 가”지며, 그러므로 모든 경제, 정치, 신앙 활동의 주체들은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환경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경제 활동이 요구”된다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에서 확인해 온 것처럼, “장기적인 정책들의 결여나 근시안적인 경제 이익 추구에서 기인하”는 생태 파괴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훼손하고 자연을 신음하게 하며 앞으로 올 세대에게 불의를 범하고 동시대의,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에게 고난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 자원을 이용할 때 우리는 그에 대한 보호와 발생할 수 있는 전체 비용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그에 수반되는 환경적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여” “명확하게 정의된 법칙에 따라, 또한 법률적 경제적 관점에 따라 행동하여야” 한다. 또한 모든 개발 행위의 주체들은 “빈곤 지역들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미래 세대들에게 마땅히 보여 주어야 할 연대를 고려하여야” 한다(7항).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정의와 공동선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세대간 연대와 세대내 연대를 구체적으로 요청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성찰을 토대로 그러면 우리는 베네딕토 16세의 2010년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로 대변되는 가톨릭 교회의 생태 비전에 근거하여 정부가 시행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다. 4대강 사업의 목표와 현황 식별 창조 질서 보전 사명에 부합한 "새로운 발전 모델"에 비추어본 4대강 사업에 대한 교회의 응답을 위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평화를 일구려면 창조계를 보호하”라고 말한다. 교황의 이같은 요청은 우리에게 4대강 사업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민족 사회 시민들과 함께 낙동강과 한강과 금강과 영산강을 어떻게 지키고 보호할 것인가를 질문하고 응답할 사명을 더욱 더 분명하게 일깨워 준다. 이같은 사명에 부응하여 오늘 우리는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복음적으로 식별하여 신앙의 기준에 따라 응답할 실천력을 높이고자 이같은 나눔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먼저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현황을 간략히 개관하고 여기에 근거하여 교회가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를 보면서, 우리가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복음적으로 응답할 것인가를 보기로 한다.
4대강 사업의 목표
먼저 4대강 사업의 기본 목표를 정부측 자료를 통해서 보기로 한다.
문제 인식:
우리나라 4대강의 현재 관리 체계로는 기후 변화에 따른 물 부족과 가뭄 현상에 대비하기에 역부족이고 홍수에 취약하며, 강의 오염도가 높다. 그러므로 치수 차원에서 4대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대안:
4대강 준설을 통하여 5.7억m³의 모래를 파내어 수심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제방을 쌓고 16개 이상의 보를 설치하여 물을 저장함으로써 물 13억m³ 확보
효과
강물 효과: 수량 증대로 물 부족과 가뭄 대비, 수질 개선, 보 건설을 통한 홍수 조절 기능 강화
개발 효과: 4대강 사업과 4대강 유역 개발을 통한 생태 복원과 일자리 창출, 지역 경제 활성화, 국가경쟁력 제고, 기후변화 대비 (녹색 성장)
예산22.2조원
기간 현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 종료
국토해양부는 2009년 7월에 <4대강살리기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이 사업의 취지와 목표, 전략을 이렇게 제시하였다.
비전: 생명이 넘치는 강, 새로운 대한민국!
목표: 기후변화 대비, 자연과 인간의 공생, 국토 재창조, 지역균형발전과 녹색성장 기반 구축
전략: 사후대책에서 벗어나 사전예방 종합대책 수립, IT, ET, GT 기술을 선도하는 첨단 수변 네트워크 구축
과제: 홍수피해와 물 부족을 근본적으로 해결, 수질개선과 하천복원으로 건전한 수생태계 조성, 국민 여가문화 수준 및 삶의 질 향상, 녹색 뉴딜 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견인, 물관리 글로벌 리더로서 국가 위상 제고
목표의 정당성 점검
정부는 4대강 사업의 목표를 위에서 본 것처럼 물 확보와 홍수 조절, 생태 복원,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 국가 경쟁력 제고 등으로 제시하였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적 합의나 이 사업의 예산 마련을 위한 절차의 정당성이라고 하는 핵심 사안은 토론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이 점이야말로 논의의 핵심 사안이라는 것을 언급하는 데서 그치기로 하겠다. 그러면, 정부가 4대강 사업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선택한 사업 방식이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할 것인가? 김정욱 교수의 분석을 통하여 드러난 것처럼, 정부가 설정한 4대강 사업의 목표와 방법에는 근본적인 불합치 현상이 나타난다.
물 확보?
위에서 보았듯이, 정부는 물 확보로 물 부족과 가뭄을 대비하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하여 보를 설치하고 강바닥을 준설하며 제방을 쌓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것은 진정으로 물 확보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수로를 위한 것인가?
2009년 6월에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이 발표되었을 때다. 조선일보 박은호 기자는 2008년 12월에 정부가 발표한 내용과 2009년 4월에 발표한 내용을 최종 발표안과 비교하면서 보의 개수와 규모 등을 논거로 4대강 사업이 대운하 계획과 유사한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피력한다. 강 바닥을 저렇게 깊게 파서 수심을 4-11미터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역시 단순히 물 확보를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4대강 살리기를 표방하며 2008년 12월에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박은호가 표로 제시한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준설 대상지도, 준설 후 수심도 모두 최종안과는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낙동강의 경우 안동댐 아래로 건설되는 댐의 규모를 보면 이같은 의구심은 더욱 짙어지는데, 낙동강 유역 8개 보 가운데 가장 낮은 곳이 높이 9m이고 가장 높은 곳은 13.2m에 달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보의 규모가 아니라 댐 수준의 규모이다. 독일 칼스루에 공과대학 건축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독일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실측조사와 발굴연구를 하고 있는 임혜지 박사는 “홍수와 지하수 고갈의 원인이 과거에 강바닥을 파고 둑을 쌓은 공사에 있다는 것을 독일에선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친다고 말한다.
홍수 예방?
정부는 홍수 예방을 또 다른 한 목표로 설정하였다. 그런데 재해통계연보에 의하면, 1970년부터 2003년까지 홍수로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곳은 4대강 본류 지역이 아니다. 재해통계연보에 나타난 시군구 단위 최대 피해지는 양양, 정선, 고성, 화천, 삼척, 양구, 철원 같은 강원도 산간 지역이다. 홍수 피해를 줄이려면 4대강 본류가 아니라 지천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홍수를 막기 위해서 보를 설치하고 강바닥을 파헤치는 방식으로 준설하고 제방을 쌓아서 강 깊이를 확보하는 방법은 서구 선진국들에서 이미 포기한 낡은 방식이다. 선진국들은 오히려 건설했던 댐과 보를 해체하고 강폭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자연 친화적인 홍수 조절법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 복원을 또 다른 한 목표로 설정하였으나, 부르기는 “보”라 하지만 실제로는 “댐”을 건설하고 강 바닥을 몇 미터씩 파내는 식으로 준설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강의 생태를 복원한다는 것은 모순에 지나지 않는다.
수질 개선?
정부는 오염을 방지하고 수질을 개선하기 위하여 4대강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환경부가 발간한 2008년 환경백서에 의하면, 1997년 이전의 경험을 거울삼아서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수질을 개선해 온 결과 수질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997년 이전까지 악화 추세에 있던 4대강 주요 지점의 수질이 4대강 대책 추진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추세를 보여 한강은 1급수에 근접하고 있으며, 낙동강은 안정적으로 2급수를 유지, 금강과 영산강도 1급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전국 하천 194개 구간의 목표수질 달성률이 1994년 13.8%에서 2005년은 42.3%로 향상되어 전반적으로 물관리 대책으로 인해 수질이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다.”이것은 환경부가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 수반으로 존재한 시기에 발표한 환경백서에서 4대강의 수질을 22조가 넘는 예산을 투입하여 수질 개선에 나서야 할 만큼 나쁜 상태에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현 정부는 이러한 강물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하여 어떤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가? 정부는 위에서 본 것처럼 수질 개선을 위해서 물의 양을 확보하는 방법을 택하고, 이를 위하여 말로만 보인 댐을 세우고 강바닥을 파서 깊게 만들며 제방을 쌓는 것을 택하였다. 김좌관 교수는 이 가운데 특히 보와 수질의 관계에 주목하여 구체적으로 낙동강에 설치할 보들이 수질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김좌관 교수는 낙동강의 경우 안동댐에서 하회보, 구담보, 상주보, 낙단보, 구미보, 칠곡보, 강정보, 달성보, 합천보, 함안보를 거쳐 낙동강 하구둑에 이르기까지 10개의 보와 안동의 선도지구 사업계획에 포함된 옥수보(가칭)까지 모두 11개의 보가 설치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이 보들을 지날 경우 현재 낙동강이 하구에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9.247일에서 191일로 10배 이상 길어진다. 안동댐에서 낙동강 하구둑까지 설치될 수중보에 물이 머무는 시간이 현격하게 길어지기 때문인데, 이럴 경우 물의 총량이 아무리 는다고 하더라도 수질이 나빠지는 것을 자연적으로 막을 길은 없다는 것이 김교수의 결론이다.
강 유역 개발?
4대강 사업과 같이 우리 민족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개발 사업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기본 연대, 시간적, 공간적 연대 위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 사업은 단순히 우리 세대의 삶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의 삶의 질에 역시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유형의 것이다. 그러므로, 베네딕토 16세가 탁월하게 집약한 것처럼, 우리는 강과 강 유역 개발을 세대간 연대 차원에서 보다 더 신중하고 충실하게 검토하고 실행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과 사업의 규모와 성격에 부합하게 충실한 준비를 갖출 것이 요청된다. 이를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보다 더 자연 친화적이고 자연을 훼손하더라도 그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작년 말에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김문수, 정두언, 박희태, 정몽준, 오세훈 등과 함께 4대강 사업 A급 찬동 인사 가운데 한 인물로 꼽힌 정운찬 국무총리는 최근에 자연에 대한 존중의 수준을 드러낸 적이 있다. 그는 2010년 4월 3일 경남 함안보 공사 현장을 돌아본 뒤에 양산시 물금취수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현장에서 그는 강을 어항에 비겨 말한 적이 있다. “어항이 커야 물고기들이 깨끗한 물에서 자랄 수 있다,” “지금이 작은 어항이라면 4대강 사업이 완료되면 우리 강들은 큰 어항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물 관리 중심으로 기획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을 인간의 통제 대상으로 보는 관념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은 보이는 방식으로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도 존재하면서 인간의 삶에 매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쳐 왔다. 이 면에서 현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핵심 인사들은 베네딕토 16세를 비롯한 가톨릭 교회와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현대의 생태적 감수성과 식별력을 갖춘 선진 과학자들과 정치인들의 자연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자연에 대한 이같은 개발주의형 관계 설정은 4대강 사업을 자연에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시켜 가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강 유역 개발이 아니라 도리어 강 유역 재난 유발을 귀결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한 예를 수리모형실험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보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한겨레신문 허종식 기자는 경기도 연천군에 건설 중인 임진강 군남 홍수조절지와 낙동강 지역에 건설 중인 함안보와 강정보, 합천보를 비교하여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의 보도에 의하면, 군남 홍수 조절지는 저수량 7160만t인데, 기본·실시 설계에 2년 5개월이 걸렸고, 공사 기간은 3년 8개월로 예정되어 있다. 또한 수리모형 실험을 끝낸 상태에서 공사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합천보는 저수량이 이보다 적은 5400만t이지만, 함안보는 저수량이 1억1000만t이고 강정보는 1억t인데도 4대강 사업 기본·실시 설계에 7개월이 소요되었고, 공사 기간은 2년 2개월로 예정되어 있다. 더군다나 수리모형 실험이 끝나기도 전에 이 보들은 공사를 시작한 상태이다. 허종식은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이렇게 서둘러 실시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이렇게 집약해서 진술한다.
“부실 설계의 위험성은 한탄강 상류에 건설했다가 2000년에 철거한 연천댐이 증명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때 건설한 연천댐은 부실 설계 등으로 1996년과 99년 두 차례나 무너져 하류 지역에 큰 물난리를 일으켰다.”
댐을 부실하게 건설할 때, 그 부실 공사의 댓가로 가장 결정적으로 희생을 치르는 것은 댐이 들어선 지역의 산하와 전원, 논밭,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다. 유역 개발을 진정으로 이루고 싶다면, 규모와 가치에 부합하는 준비를 갖추는 충실이 요청된다. 이것은 단순히 갖추어도 되고 안 갖추면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 지역민들과 산하, 전밭, 수많은 생명들의 생사가 걸린 절대 필수 과제인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특히 4대강 사업과 같이 현재의 전국민과 앞으로 올 우리의 후손들의 생명이 걸린 대규모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는, 베네딕토 16세의 비전을 빌어서 표현하자면, 진리 안의 사랑이 요청하는 정의와 공동선을 충실하게 통합해 들이는 인내와 지혜가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이 다섯 측면으로 나누어 제시하였는데, 우리는 토론 과정에서 이 가치들을 좀더 폭넓게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1. 국민의 합의: 국민 주권
2. 민주적 절차: 민주성과 적법성
3. 올바른 예산 집행-공사 과정: 장단기적 효율과 합리
4. 사회 정의: 예산의 공공성과 균형-교육, 사회복지, 청년실업, 소프트웨어 산업
5. 생태 정의: 세대간 책임과 연대
이래도 4대강 사업을 해야 하는가
오늘 우리 시민 사회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하여 일정하게 갈등을 겪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은 22조가 넘는 막대한 예산을 앞세워서 공사를 강행하고 있고, 4대강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이같은 예산 집행을 옹호하면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사람들을 좌파나 무지한 사람들로, 혹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산업의 발목을 잡는 부류로 비판하고 있다. 2010년 3월에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사제단과 한국천주교 주교단이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때 “뜻있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이라는, 가톨릭 신자들의 이름으로 3월 25-26일 사이에 조선, 중앙, 동아일보와 문화일보 등에 “성당에 가서 미사드리기가 무섭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주교와 사제들을 비판하는 광고를 게재하였는데, 이것은 이같은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부류의 시민들은 정부가 하는 일이니까 믿고 기다려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반대만 하는 사람들 말 들을 것 없다는 식의 독단적 입장을 피력한다. 또한 경부고속도로도 했고 청계천도 했으므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1월에 4대강 사업을 설득하기 위하여 텔레비전 방송에서 로봇 물고기를 소개한 이후 수질 개선을 위한 과학적 대응 능력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제시한 것과 말한 것과 보여준 것, 그리고 대통령과 정부가 한 것은 검증을 필요로 한다. 위에서 4대강 사업의 기본 계획과 목표를 보고 이를 식별할 논거들을 살펴본 데 이어서 아래에서는 청계천, 물고기 로봇, 그리고 공사 현장에서 나타난 오니토와 관련한 사항들을 중심으로 과연 4대강 사업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 보기로 한다.
녹색을 약속했으나, 녹조가 낀 어항으로 변질되어 가는 청계천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기간에 청계천을 복원한다면서 대대적인 사업을 벌인 적이 있다. 아래 사진은 2005년 10월 1일 청계천 사업을 완공하고 물을 흘려보내는 식을 마친 뒤에 이명박 시장이 물속에 들어가서 누군가에게 들어오라며 손짓해 부르는 장면인 듯하다. 지금부터 4년 5개월여 전이다.
이 청계천 사업이 마무리되자 수많은 사람이 생태 복원이라며 환호하였다. 그런데 당시에 이미 이 사업이 어떤 유형의 것인지를 알고 복원되었다는 이 청계천의 운명을 예고한 사람이 있었다. 청계천 사업이 완공되던 바로 그날, 조명래는 “청계천은 복원되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썼다.
복원 청계천의 정체성 규명이나 실질적인 관리에서 핵심 쟁점은 한강에서 하루 평균 12만t의 물을 양수해 흘러 보내는 유지용수 방법이다. 하천으로서 청계천이 스스로 확보한 물을 흘려 보내는 방식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또한 점진적으로 강구하는 복원 방법을 찾기보다, 한강에서 전기모터로 끌어 올린 엄청난 양의 물을 흘려 보내면서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물이 찰랑이는 아름다운 하천의 모습을 연출해내는 방법의 선택은 하천의 생태적 복원 문제를 그만큼 가볍게 생각했거나 아니면 말로써만 고려했음을 의미한다. 청계천은 본래부터 건천이다. 물이 많이 흐르는 하천이 아니라는 뜻이고, 이는 청계천이 갖는 생태적 특징의 첫 번째에 해당한다. 이를 부인하고 한강에서 퍼온 물이 출렁이면서 흘러가는 것으로 생태 복원이라 부르면, 이는 기만이고 사기다. 그것이 기만과 사기로 인식되지 않는 것은 물에 의해 연출되는 스펙터클(환영)에 시민들이 모두 도취되어 있기 때문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시민들의 생태적 감수성과 도심생태성의 복원기회가 박탈당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요컨대 한강에서 양수한 것으로 유지용수를 활용하는 방법이 그에 따른 수많은 파생적 문제를 낳고 있는 점이고, 이는 곧 복원 청계천의 지속가능성을 가로막고 나아가 반(反)생태적인 것으로 규정하게 되는 것의 근본 원인이 된다. 12만 톤의 물을 24시간 내내 양수하여 흘러 보내기 위해선 엄청난 전기 및 기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에너지의 이러한 사용이 곧 지구 온난화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물 값도 끊임없는 논란꺼리가 되어, 경우에 따라 이 문제 하나만으로 한강 원수를 끌어들여 물을 흘러 보내는 현재의 복원방식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조명래는 “청계천이 스스로 확보한 물을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콘크리트로 처리하고 그 위로 전기모터로 끌어 올린 물 12만 톤이 흐르게 하면서 청계천을 복원하였다고 하는 것은 “기만이요 사기”라고 하였다. 원래 청계천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조성된 천이었다. 이것은 청계천의 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려와 형성되어 어디로 가는지조차 잘 모르게 강으로 바다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땅 밑으로 소리없이 흐르고 흐르는 살아 있는 실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의 청계천 물은 양수 방식으로 제공되는 것으로, 보이는 물을 보이게 하기 위하여 끌려온 물이다. 여기에서는 물의 생명력도, 자연 치유력도 제대로 보존되기 어렵다. 조명래가 위의 글에서 언급한 “청계천의 지속가능성”이 깨어졌을 때 발생할 결과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여기에 소개한 사진은 청계천에 녹조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서울시가 2009년 12월에 민주당 조정식 의원에게 제출한 청계천에서 시기별로 조류가 발생한 현황에 관한 자료에 의하면, 녹조가 “3~5월 및 10~11월 청계천 전체에 분포” “6~9월 상류 중심 부착성” “12~2월 부분적 분포” 현상을 보인다. 이것은 단지 2009년의 일이 아니라, 청계천 사업이 끝난 지 1년도 안된 시점부터 지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2005년 10월 청계천이 개통된 지 1년이 지난 2007년부터 집중적인 녹조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녹조 제거를 위해 2007년부터 최근까지 연인원 2147명, 8308만원이 투입됐다. 2007년 3회, 2008년 8회, 2009년 9회 등 18회에 걸쳐 청계천 바닥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청소작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하천 생태계가 훼손되고 물이 탁해지며 오염물질이 발생하는 등 부작용은 컸지만 녹조 제거에는 효과가 없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마사토(산모래)가 동원됐다. 서울시는 올 3월에 이어 이달에만 마사토 20t을 집중 살포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기되는 물음은 이것이다. 녹색을 말한 사람들, 그들이 지금도 다시 저 청계천에 들어가서 사람들보고 들어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물고기 로봇을 제거한 재정부의 정책 결정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11월 27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4대강 사업을 설득하기 위하여 청와대 관계자의 말로 “비장의 카드”로 물고기 로봇을 소개하였다. “이것이 강변에 다니면서 수질이 나쁜 데가 있으면 바로 중앙센터에다 보고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여기에 응답하여, “특히 이번에 로봇 물고기를 보신 분들이 4대강 사업이 단순 토목공사가 아니라, 최첨단 공법과 IT기술이 접목된 사업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실제로 이 방송 이후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지지도가 상당한 정도로 높아지기도 하였다.
이런 사업을 정부에서 시행할 때 예산이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당연히 여기에 필요한 절차를 지켜야 할 것이다. 이 사안은 다른 전문가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저렇게 여론을 돌려 세우는 데 이용한 이 물고기 로봇 프로젝트를 2010년 현정부가 원천적으로 지켜 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전자신문 보도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앞장서서 4대강 사업의 과학적 관리를 홍보하기 위하여 내세운 물고기 로봇 연구 개발 사업에 필요한 250억원이 예산으로 잡혀 있었으나, 2009년 재정부 예산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4대강에 물고기 로봇은 없다는 말이다. “국토부는 예산이 삭감된 사실조차 모르다 전자신문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이를 인정했다. 안시권 국토부 4대강 추진본부 정책총괄팀장은 ‘솔라 LED트리 사업과 로봇 물고기 사업이 지난해 기재부에서 반려된 것이 사실로 확인됐다’며 ‘지경부 등 유관 부처 사업 규모는 해당 부처에서 결정할 일’이라며 한발 뺐다.”
정도를 외면한 사람들이 서두르는 공사에 직면하여
앞에서 정운찬 총리가 강을 거대한 어항이라고 말한 것을 보았다. 여기에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과신과 강과 물에 대한 인간의 통제욕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과신과 욕망은 강에 대한 존중을 가로막는다. 이것은 조급한 공사를 유발시키기가 그만큼 쉽게 하는데, 이런 속에서는 강이 현재 도달해 있는 자연 상태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강에 손을 대는 공사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이를 외면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실제로 2010년 1월 21일 대구 달성군 논공읍 달성보 가물막이 구덩이에서 3m 깊이 정도 형성된 오염된 퇴적토가 대규모로 발견되었다. 창녕군 길곡면 함안보 공사 현장에서도 1월 22일 강바닥 아래로 3m 파내려간 지점에서 오니층이 발견되었다. 정부는 이같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김진애 의원에 의하면, “국토해양부는 4대강마스터플랜을 만들면서 준설토(오염토)처리에 대해 내부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마스터플랜에서는 아예 삭제해버렸”다. 이 선행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준설토에 대한 기본조사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 “오염토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 “준설토는 폐기물법에 의해 처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내용들에 관하여 다룬 7쪽 분량을 마스터플랜에서 완전히 빼버린 것이다.
대구 달성군 논공읍 달성보 건설현장함안보 공사현장에서 나온 오니토가 쌓여 있다
그러면 이렇게 발견된 오염토들의 상태는 어떠하였는가? 낙동강국민연대는 민주당 4대강 사업저지 특별위원회가 낙동강 함안보 건설 현장에서 1월 31일 채취한 오염토의 성분을 동의과학대학에서 분석한 자료를 부산가톨릭대학교 김좌관 교수가 해석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유기 할로겐 화합물에 속하는 독성의 무색 휘발성 액체로서 발암 가능 물질인 디클로로메탄이 1리터당 0.414mg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하천 수질환경 기준치 0.02㎎/ℓ의 20.7배에 해당한다. 또한 부유물질은 2127.6㎎/ℓ, 총질소는 32.07㎎/ℓ로, 각각 기준치의 85배, 80배를 넘은 것으로 알려졌고, 중금속 검사에서는 6가크롬, 시안 등 8개 항목이 검출되었다. 낙동강국민연대는 4대강 함안보 사업이 계속되면 오염토 퇴적층이 마구 파헤쳐져 식수원 오염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수생태보전팀은 3월 3일 수공 수돗물연구센터에서 1월 31일, 함안보 가물막이 내의 물을 채수하여 수질오염공정시험기준에 따라 측정한 결과 디클로로메탄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해명하였다. 낙동강국민연대의 조사 결과는 “함안보에서 퇴적토를 채취하고 이것을 에탄올로 녹인 후 분석한 것으로서, 수질오염공정시험기준에 의한 하천환경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퇴적토에서 오염물질이 검출되었다고 해서 하천에서 검출되는 것은 아”니고, “퇴적토 용출시험의 경우에 비해 하천에서는 용출된 물질을 희석할 수 있는 물의 양이 훨씬 많”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면 700m3에 달하는 저 오염토들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국립환경과학원 등에 의뢰한 퇴적토 분석 결과를 보면 토양오염 우려 기준을 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함유 수분 역시 낙동강에 희석돼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하였다. 이에 따라 이들은 “강바닥에서 모두 파낸 퇴적토 700m3는 함안보 주변 공사 성토용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확인하였다. 마창진환경운동연합 등에 따르면, 이들은 실제로 곧바로 그동안 현장에 쌓아 놓았던 퇴적토를 인근 강변 공사 등에 사용하였다.
오염토 성분을 분석하기 위하여 시료를 채취할 때, “홍희덕 의원은 토질 오염을 파악하기 위해 왼쪽 언덕의 시커먼 퇴적층에서 시료를 채취했고, 한국수자원공사측은 오른쪽 중자이가 있는 곳, 즉 상대적으로 깨끗한 흙을 채취했”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의 말대로 이 지역의 물을 분석했을 때, 실제로 퇴적토에서 나온 것과 같은 발암물질들이나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이 기준보다 높게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저 오염토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함안보가 설치되는 지역의 강물을 기준으로 오염물질이 기준보다 과도하게 검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저 오염토를 성토용 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공사에 사용되었을 때, 물의 순환 과정에서 그 지역의 흙과 물을 재차 오염시키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제가 발생해도 멈출 줄을 모른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데는 그에 필요한 정상적인 과학적, 공학적 절차를 따라야 하는데, 이것은 곧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4대강사업을 주관하는 관계자들은 이명박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 이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과 나라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다면, 사업의 중대성과 규모, 그리고 의의에 맞갖게 충실한 검토와 준비와 실행 과정을 지켜 가야 할 것이다. 베네딕토 교황은 참으로 오늘 우리 정부에게 말하기라도 하는 듯이 이렇게 권고한다. “환경 파괴는 흔히 장기적인 정책들의 결여나 근시안적인 경제 이익 추구에서 기인하고, 결국 이는 피조물에 비극적이고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 자연 자원을 이용할 때 우리는 그에 대한 보호와 발생할 수 있는 전체 비용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그에 수반되는 환경적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라. 마치면서
선물의 영성
나는 베네딕토 16세의 2010년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특히 “선물”의 영성을 주목한다. 오늘의 생태 현실에 대한 인식과 건강한 생태 살이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에서 이것이 갖는 의의는 깊고도 크다. 하느님의 창조계를 선물로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로 창조계를 종속시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하느님과 온 창조계 앞에서 인간의 인간임에 대한 고백과 책임과 연대가 솟아오른다고 믿는데, 이것은 기존의 저항 중심 생태 운동 패러다임을 포용 중심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한 영성적 토대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창조에 대한 찬양과 그분의 계속되는 창조에 동참하는 믿음의 수용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에 대한 생태적 증거의 수락에서 비롯되는 기쁨과 평화를 그린다.
아래에 감사의 원천으로서 창조계-생태계와 만나서 함께 사는 패러다임의 특성을 기존의 것과 대비하여 제시하면서 이 성찰을 맺고자 한다. 이 전환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판단하여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실천한다는 까르댕 추기경의 청년노동자 운동의 원리를 기초로 삼고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
1. 문제에서 현실로: 보지도 않고 하는 매도형 비판 극복과
어떤 죄나 고난의 현실도 하느님의 사랑에 앞설 수 없다는
신뢰 위에서
2. 저주에서 포용으로
3. 단죄에서 공부로
4. 조롱에서 균형 비판(均衡批判)으로
5. 비판에서 기도로
6. 탄식에서 감사로
7. 저항에서 축제로
8. 협박에서 격려로
9. 훈계에서 실행으로
10. 개인에서 지구적 연대로
나-우리-교회의 응답 방식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복음적 전환을 위하여 지금 가장 절박하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인가? 4대강 사업을 찬성하고 이를 추진하는 편에 서는 것도, 4대강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이를 멈추게 하려는 것도 모두 그 자체로 단죄되어서는 안된다. 양측 입장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에 근거하여 복음적으로 식별하고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실천하는 것일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다울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런 전통에 충실하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권고한다.
“우리의 발전 모델을장기적으로깊이 재검토하고,아울러 경제의 의미와경제 목표를 고찰하여그 역기능과오용을 바로잡는 것이현명할 것입니다.”(베네딕토 16세, 2010년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 5항)
나는 교황의 이같은 입장이 복음의 살림과 가치에 부합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정부가 조급하게 자연에 폭력적이고 미래 세대와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부응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주교회의와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사제단이 서두에서 본 것과 같은 중단 요청을 정부에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우리 존재의 바닥 지구는 우리보다 먼저 있어 왔다. 바닥은 언제나 그 위에 있는 존재보다 먼저 있다. 먼저 있다는 것은 그것이 선물이라는 뜻이다. 선물을 선물로 감사할 줄 모를 때, 자기보다 먼저 있어 온, 자기를 안고 품고 길러 온 어머니 같은 바닥에 감사할 줄 모를 때, 어둠 속에서 탄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첫댓글 파일로도 함께 올려 주시면 좋은데... 감사합니다.
나누어서 올리면 더 좋겠습니다, 집중력도 떨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