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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행품(十行品) ▣
⊙ 합론
같은 이름을 가진 공덕림불(功德林佛)이 공덕림 보살에게 가지(加持)하사 바르게 십행의 말씀을 밝힌 분이라. 이 가운데 네 가지 문(門)을 밝혔으니 1은 삼매요, 2는 같은 이름의 부처님을 밝혔음이요, 4는 같은 이름의 모든 부처님의 오심을 밝혔음이라. 삼매의 이름을 밝힌 것은 삼매란 침도(沈掉: 침이라는 것은 어디에 빠져 있다는 뜻이니 삼독과 번뇌에 빠졌다는 뜻이요, 掉란 흔들림을 말함이다.)를 여읨이니 정(定)의 다른 이름이라.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지혜해행(智慧解行)이 같은 연고이며 복덕 공덕이 같은 연고이니라.
1. 공덕림 보살이 삼매에 드시니
경문 이 때에 공덕림 보살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 보살의 선(善) 삼매에 드셨다.
2. 부처님이 가피를 내리시다
이러한 삼매에 드시어 마치시니 시방으로 각각 만 불찰 미진수 밖을 지나서 만 불찰 미진수 부처님이 있으니 다 공덕림이라. 그 앞에 시현(示現)하사 공덕림 보살에게 말씀하시되, "착하도다. 불자야, 이는 시방에서 온 불찰 미진수의 같은 이름의 부처님이시니라. 한 가지 너에게 가피함이니 비로자나 여래의 옛날의 원력과 모든 보살의 선근으로 하여금 삼매에 들어서 법을 연설하게 함이니라.
이것은 불자혜를 증장케 함이니 법계에 침입(沈入)케 하는 연고이며, 중생계를 알아 깨닫게 함이며, 장애가 없게 함이며, 일체 지혜의 성품을 섭취(攝取)케 한 연고이며, 일체 모든 법을 깨닫게 한 연고이며, 일체 선근을 알게 하는 연고이며, 능히 일체법을 가져서 법답게 하기 위한 연고이니, 이른바 모든 보살의 열 가지 공덕을 일으킴이니라."
3. 설법의 가피
"선남자야 너는 마땅히 부처님의 큰 위신력을 받아서 이 법을 연설할지니라."
4. 뜻의 가피를 설하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모든 공덕과 무애지혜를 열어주시니 어찌 쓴 연고이뇨. 그것은 모두가 부처님의 삼매의 법을 쓴 연고이니라."
5. 몸의 가피를 내리시다
그때 여러 부처님께서 각각 오른손을 내밀어 공덕림 보살의 정수리를 만지시다.
6. 제 1 환희행(歡喜行) 보시바라밀을 닦다
보살은 모든 것을 다 베푼다
"불자들이여, 무엇을 보살 마하살의 환희행이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이 큰 시주가 되어 가진 것을 모두 다 보시하는데 그 마음이 기쁜 연고로 아낌이 없음이며, 은혜를 바라지 않음이며, 이름을 구하지 않음이며, 이양을 탐하지도 않음이니라."
보시를 행하여라
"불자들이여, 보살 마하살이 이 행을 닦을 때에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고 즐겁게 하려 함이니 이는 가난한 이가 있거든 원력으로 그곳에 태어나되 부귀하여 재물이 다함이 없으며, 가령 잠깐잠깐 동안에 가난한 이가 찾아와서 구함이 있거든 보살은 곧 보시하여 그로 하여금 환희하게 할지니라."
깨달음으로 회향하는 보시를 행하라
"불자여, 보살은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중생의 몸을 받아서 난 이 몸이 멸진(滅塵)함을 보고 생각하되, '어리석고 지혜가 없어 생사하는 속에서 수없는 몸을 받지만 내가 마땅히 부처님 배우신 것을 모두 배워서 온갖 지혜를 얻어 모든 중생을 위하여 그로 하여금 편안케 하리라' 하는 원력으로 이 보살은 환희하며 이 법을 연설하느니라."
⊙ 합론
어떤 것이 환희행인가 하면 단월(檀越)의 제도(制度)이니 대시주가 되어서 능히 은혜롭게 베푸는 것을 말함이라. 유가보살지(瑜伽菩薩地)에 보살의 육도(六度)가 각각 구문(九門)이 있으니 일(一)은 행의 존재체(存在體)요, 이(二)는 일체 의(義)이니 행을 갖춤을 말함이요, 삼(三)은 난행(難行 : 하기 어려운 일)이니 그 가운데에 따로 보임이요, 사(四)는 일체문(一切門)이니 실천의 차별을 이름이요, 오(五)는 선사(善士)니 요익(饒益 : 이롭게 함) 지음을 이름이요, 육(六)은 일체종(一切種)이니 (聖敎 : 부처님의 가르침)를 두루 포섭함을 이름이요, 칠(七)은 수구(遂求: 좇아서 구함)니 모름지기 원하는 바를 따라서 얻음이요, 팔(八)은 이세락(二世樂: 두가지 세상의 줄거움이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줌이니 현재에 큰 이익을 지어서 미래의 크고 큰 이익을 얻게 함이요, 구(九)는 청정이니 수승(秀勝)히 상을 떠나서 바라밀을 얻음이요, 이제 이 글은 구(九)를 섭하니 일(一)운 십주를 다 표시함이요, 이(二)는 응하지 않을 바를 여읨이요, 삼(三)은 뜻의 기쁨을 빛내니라.
7. 제 2 요익행(饒益行) 지계(持戒) 바라밀을 닦다
경문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이익을 위한 행인가. '보살은 깨끗한 계율을 수호하여 가지며, 부처님을 찬탄하고 평등한 정법을 지키리라.' 하느니라."
8. 제 3 무위역행(無違逆行) 인욕바라밀을 닦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어기지 않는 행인가. 이 보살은 항상 인욕을 하는 법을 닦아서 겸손하고 공경하여 스스로 행하고 남을 해하지 아니하나니 간탐, 아첨, 질투, 속임을 끊고 항상 평화로운 곳에 머물게 하느니라."
9. 제 4 무굴요행(無屈撓行) 정진바라밀을 닦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굽히지 않는 붙들어 행함인가. 오직 일체 번뇌를 끊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를 제거하고 정진을 행하고 오직 일체 중생의 마음으로 행함을 알기 위하여 정진을 행함이니라."
10. 제 5 무치난행(無癡難行) 선정(禪定)바라밀을 닦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여의는 행인가. 이 사람은 항상 바른 생각만을 하고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견고하여 동요하지 않고 청정하고 넓고 커서 미혹되지 않느니라. 이러한 보살은 온갖 지혜로 자재한 법을 듣느니라."
11. 제 6 선현행(善現行) 반야바라밀을 닦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선현행인가. 이 보살은 몸으로 짓는 업이 청정하고, 말로 짓는 업이 청정하고, 뜻으로 짓는 업이 청정하여, 진리의 자리에서 몸과 말과 뜻의 업을 보이나니 세 가지 업이 모두 없는 것인 줄을 알며, 허망함이 없으므로 얽매임이 없으며, 무릇 나타내 보이는 것이 성품도 없고 의지함도 없느니라."
12. 제 7 무착행(無着行) 방편바라밀을 닦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집착 없는 행인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은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생각마다 아승지 세계에 들어가서 아승지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되 모든 세계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보살이 집착 없으므로 보살이 보살의 수기를 받아 이렇게 생각하니, '범부가 우치하여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신심이 없고 이해가 없고 총명하고 민첩함이 없으며, 어리석어 생사에 헤매면서 부처님 뵙기를 구하지 않고, 밝은 길을 구하지도 믿지도 않아서 험난한 길에 들어가며, 탐착하여 법이 공함을 알지 못함이라.' 만약 집착함을 버리고 대비심을 일으키면 무착행을 이루느니라."
13. 제 8 난득행(難得行) 원(願)바라밀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얻기 어려운 행인가. 이 보살은 얻기 어려운 선근과 굴복하기 어려운 선근과 가장 수승한 선근과 깨뜨릴 수 없는 선근과 헤아릴 수 없는 선근과 자재한 선근과 큰 위덕이 있는 선근과 부처님 성품과 같은 선근을 성취하느니라."
14. 제 9 선법행(善法行) 역(力)바라밀을 닦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법을 잘 말하는 행인가. 이 사람은 하늘, 사람, 범천, 바라문, 건달바 등을 위하여 청량한 법의 연못이 되어 바른 법을 거두어서 부처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함이라."
15. 제 10 진실행(眞實行) 지혜바라밀을 닦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진실한 행인가. 보살은 제일되는 진실하고 참된 말만을 성취하여 말한 대로 능히 행하고 행한 대로 능히 말하느니라."
"이 보살은 삼세의 부처님들의진실한 말을 배우며, 삼세 부처님들의 종성에 들어가며, 삼세의 부처님들과 더불어 선근을 심어서 여래를 따라 배워서 지혜를 성취하였느니라."
☞ 해설
이상으로 십행의 지위를 배웠습니다. 원문은 이것보다 열 배나 많으나 여기에서는 시간 관계로 간략히 뽑았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본뜻에 어긋남이 없이 하였습니다. 합론소에, "이 십행은 바로 보살의 지위요, 무착(애착이 없는 것), 무난(어려움이 없는 것), 무치(어리석음이 없는 것)를 몸에서 뽑아내어 진경계(塵境界 : 진경계라 함은 번뇌가 가득하여 근심과 걱정이 있고 티끌과 같은 세상을 말함)에 처해 있으되 물들지 않으므로 보살의 지위를 얻는다." 하였습니다.
경문에 얻기 어려움을 얻는다 라든가 무착행 이야말로 보살의 지위며 참는 마음이 크므로, 뜻에 따라 성취한다 하였으니 이것은 큰 공덕입니다.
♧ 작은 것을 살피면 큰 것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2년여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날 나는 대불법회에서 법문을 마치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서울서 왔다는 젊은 보살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이냐"고 묻자, 보살이 말했습니다. "저는 강화도에 살고 있습니다. 마음도 쉴겸 겸사겸사 조용한 산사를 찾으려고 하는데, 어젯밤 꿈 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부산으로 내려가 보라고 하여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와 범어사로 갔더니, 한 젊은 스님이 여기는 대중스님도 많고 기거할 방사도 없다고 하여 다른 절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니, 동명불원에 가면 방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여 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잘 왔다고 하면서 동명불원에서 며칠 쉬어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 저는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릅니다."라며 운을 뗀 보살은 지나온 과거지사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살은 두어 시간 족히 말을 하고 나서, "스님 저는 강화에서 남편과 함께 봉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제는 종업원들도 보기 민망하고, 글을 배웠으면 합니다. 스님, 저에게 글을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물었습니다. "글을 모르면서 그 동안 어떻게 돈을 계산하고 지불했냐?"고 하였더니, 그 보살이 대답하기를, "스님, 그런 것은 하나도 걱정이 안 됩니다. 그날그날 돈을 번 것을 다 기억하거든요." 하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나는 신기한 생각이 들어 "정말로 한글을 모르며, 1. 2. 3. 4…도 모르냐?"고 하였더니 숫자는 다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글씨를 써보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옆에서 누가 말을 해주면 숫자를 모두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이 보살님의 얘기를 들어보면 모든 계산을 머리로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보살이 말하기를, "스님, 저는 그동안 있었던 일이나 또는 전화번호부나 직원들이 말한 세세한 것까지도 일단 들었다 하면 기억해 내고, 거의 모두를 알아 맞춥니다. 그런데도 종업원 여덟명을 데리고 봉제 공장을 운영하려니, 글을 모르는 불편함으로부터 오는 그 어떤 압박감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또 직원들이나 남편이 자신이 글을 모르는 무식한 여자라고 조롱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결혼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데요?" "8년 되었어요." "그동안 한 번도 들키지 않았어요?" "남편은 저를 천재로 알아요. 전화번호나 기타 어떤 것도 묻기만 하면 대답을 하니까요."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보살의 머리입니다. 어떻게 그와 같이 기억력과 총기가 그렇게 좋은가라는 것입니다. 선천적인 것도 있겠지만 그것은 순전히 글을 모르는 데에서 시작된 머리 운동의 하나입니다. 자신을 숨기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외우려고 하는 노력과 그로 인하여 그 분야에 무한한 발전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 보살에게 묻자, "한글을 배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로 쉬운 일인데, 왜 아직 안 배웠는냐?"고 묻자, 보살이 말했습니다. "처녀 때는 일하느라고 글을 배우지 못했고, 결혼을 하고 나니 창피해서 글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 분은 어릴 때엔 오지의 벽촌에서 살았기에 너무 가난하여 못 배웠고,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이 글을 모르는 무식한 여자라고 할까봐 무슨 말을 물어보면 등에서 식은 땀이 난 것도 여러 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그 보살이 생각해낸 것이, '내가 이러이러한 숫자는 절대로 잊어 버리지 말아야지. 그래야 남편이 내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모를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 보살은 무엇이든지 머리 속에 집어 넣으려고 하였고, 그것이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남편이 부인을 천재라고 말하며, 사람들에게도 자랑한답니다.
보살이 다시 "스님, 저를 이곳 동명불원에서 사흘만 있게 하여 주시고, 글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졸라댔고, 그 보살은 이곳 불원에 사흘간 있으면서 한글의 맞춤법과 글의 구조를 완벽하게 깨우치고 강화로 떠났습니다. 그 후 그 보살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스님 덕분에 글을 읽게 되어 어찌나 즐거운지 모른다고 하면서, 지금은 신문도 읽을 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실은 인간은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려고 하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이 안 된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것이 병이라면 병입니다. 마음 먹은 것을 절대 절명의 절박한 심정으로 한번 해보십시오. 믿지 않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지, 안 되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보살이 글을 배우지 않고 암기할 수 잇는 능력을 더욱 더 확대해 나간다면 그 분야로 또 다른 어떤 위대한 발견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 눈으로 못 보면 귀로 듣는다
부산 기장에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대신 귀에 대고 흔들어 보고, 이 테이프는 누구 노래가 든 테이프라고 알아 맞히는 것입니다. 어떤 테이프를 가지고 물어 봐도 한 번 흔들어 보고 들어본 노래 테이프는 흔들어 보면 금세 알아 맞힌다고 하니, 얼마나 기막힌 능력입니까.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이와 같은 능력을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못한다' 라든가 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에 너무 의존한다거나 한쪽 방향으로만 생각을 하니 모든 기능이 점차로 소멸하여 가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입맛입니다. 간사하다고 할 정도로 입맛은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전에는 잘 먹던 것들도 언제부터인지 그 맛을 잃고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입맛뿐만 아니라 눈맛도 마찬가지이며 귀맛도 같습니다. 듣고도 감각이 무뎌졌다고나 할까, 하여간 우리의 기능은 날로 퇴화하여 가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물론 그와 비례하여 다른 기능은 늘어나겠지만, 어떠한 기능은 쇠퇴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어떠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분야로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도 앞의 세계, 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오늘 시간을 내시어 하루에 1시간씩 1개월만 노력하여 보십시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화엄경백일법문(華嚴經百日法門) -장산 저- 불광출판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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