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문식 _ 교육문화공동체 결 상임위원
조선 성종 때 학자 성현이라는 분이 있다. 이 학자는 자연의 소리를 듣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는데 이른 봄 매화꽃이 필 무렵, 눈이 내리면 매화나무 아래에 앉아 눈 내리는 소리를 듣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그 소리에서 암향(매화꽃 내음)이 풍길 때까지 앉아 있곤 했다고 한다. 눈 소리를 듣는 것도 신기한데 그 소리에서 향기까지 맡다니, 신묘한 경지가 아닌가.
옛 선비들은 이렇듯 자연과 인간이 융합되어 어느 만큼이 자연이고 어느 만큼이 인간인지 구분 못하는 그런 경지를 터득하고 산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선현의 섬세한 감성이 멋스럽다.
여기저기서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을 알리고 있다. 무등산 증심사 초입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춘설헌 매화향기도 더 짙어지고 있다.
이곳 춘설헌은 예향 광주의 상징적 존재인 의재 허백련 선생이 머물렀던 곳으로 전국의 예인들과 사상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이들을 이끈 것은 성현과 같은 섬세한 감성과 자연을 사랑하는 선비이자 철학자이며 화가인 의재 선생이 무등산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예향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춘설헌은 “한 사발의 봄눈은 제호보다 뛰어나다”라는 낭만적인 시구에 바로 봄눈, 춘설(春雪)을 따와 의재 선생이 재배한 춘설차에 이름 붙였고 춘설헌까지 이어졌다.
선생은 올곧은 정신과 비범한 예술혼으로 1920년대에 최고의 남화가로 인정받는다. 선생은 일찍 이룬 예술가로서의 성공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등산 계곡에 은거하며 겸허하고 청빈한 사상가, 실천적 교육가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삼애사상의 실천이 그것인데, 차와 그 정신을 알리고, 우리나라가 잘 사는 길은 농업 부흥에 있다는 믿음에서 농촌지도자 양성을 위한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해 어려운 청소년에게 무상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렇듯 춘설헌은 한국의 고전 풍류가 모두 갖춰져 있고 정신세계를 담은 전통차인 춘설차가 있고 한국화와 글씨, 시, 그리고 민족 사상, 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는 근대 광주정신의 태실과 같은 곳이다. 향기로운 춘설헌 매화와 남종문인화의 그윽한 먹 내음, 그리고 무등산이 깃든 춘설차가 만든 향기로움이 예향 광주의 토대를 만들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호남은 옛 부터 학포 양팽손, 공재 윤두서, 소치 허련, 의재 허백련으로 이어지는 남종문인화의 산실이다. 이들은 자연주의에 터전하며, 차와 함께 예술세계를 맑고 깊게 했다. 활달하면서도 힘찬 필묵과 깊이 있는 동양사상, 부드러운 남도의 풍취와 시적인 흥취, 이런 모든 것이 의재 선생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이는 무등산을 통해 맺은 결실이라 할만하다.
이러한 전통은 1960~1970년대 광주가 예향으로 자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러한 예향의 현재적 구현이 광주를 문화로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고 창의 한국을 실현하며 창조도시를 만들어가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대한 계획을 추진 중이지만 광주의 현실은 문화생산자라기보다 문화소비자에 머물러 있고 광주의 역사와 문화에 자긍심을 갖기보단 중앙을 향하는 자세로 스스로 초라한 지방으로 격하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광주가 갖는 다양한 문화적 자산을 현재에 재창조할 정당성은 충분하고도 온당하다.
의재 선생과 친근하게 만날
어린이 교육 가이드북
이러한 지역민의 광주에 대한 외면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단순히 시민의 무관심의 문제가 아니라 광주의 인물과 친근하게 만날 교육프로그램이나 콘텐츠가 부족한 점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일반 시민과 어린이들에게 의재 선생이 역사 속 박제화 된 인물이 아닌 친근한 할아버지로 인식될 수 있는 문화적 마당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필요성을 느끼고 교육문화공동체 결은 2006년부터 광주의 문화적 자산을 발굴해서 활성화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의재문화재단과 함께 의재 선생의 예술혼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청소년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디자인 바이 수묵’, ‘저왔어요 의재쌤’, ‘다함께 의재로’ ‘의재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어린이도슨트놀이’ 같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운영 중이다. 얼마 전엔 초등학생을 위한 의재문화 체험가이드북인 <같이가요 의재쌤>을 발간하기도 했다.
“남보다 더 많이 살았고 남보다 더 많이 그렸다. 요 몇 해 동안 줄곧 건강이 나빠져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나를 따르던 제자들은 철을 가리지 않고 무등산 그늘로 병든 나를 찾아와 준다. 나는 그들에게 춘설차 한 잔을 권한다. 차를 마시고 앉아 있는 그들을 보며 내 한평생이 춘설차 한 모금만큼이나 향기로웠던가를 생각하고 얼굴을 붉히곤 한다. 50년 동안 원 없이 그리고 갈 때도 되었다. 죽어서도 화가로 태어나고 싶다.”
의재 선생 말년의 자기 삶에 대한 고백이다. 문인화의 기품과 정신을 잇고 차문화 보급운동을 펼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를 운영한 의재 허백련 선생. 그는 한국화가이자 차문화 보급운동가이자 교육자이며 사상가였다. 이러한 선생의 다양한 삶의 궤적을 하나로 묶기는 간단치 않다. 하지만 이를 아우르며 관통하는 것은 무등산을 사랑하고 춘설차 한 모금만큼이나 향기롭기 원했던 의재 선생의 삶에 대한 지향과 태도인 듯하다.
창조도시 광주를 문화의 숲으로 가꾸기 위해 갓 출범한 광주문화재단에 거는 시민의 기대가 자못 크다. 문화의 숲을 가꾸는 위대한 여정을 무등산 춘설헌에서 시작하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매화 꽃잎 지기 전에 광주정신이 응축된 춘설헌을 찾아 매화처럼 향기롭던 의재 선생의 정신을 만나길 많은 분들에게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