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자린고비’의 유래
조선 인조 때에 충북 음성 고을에 조륵[1649~1724]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워나 가진 것이 없고 배운 바도 없어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고생고생 하다가 어느 날 계란 하나를 주웠습니다.
그 계란이 부화해서 병아리가 되고 암탉이 되고 또 그 닭이 낳은 계란을 팔아 돼지를 사고 돼지는 소가 되고, 여하튼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또한 근검절약이 타고난 성품이어서 늘그막에는 만석꾼의 거부가 되어있었습니다.
허나 근검절약이 도에 지나쳐 부자가 된 후에도 반찬은 달랑 간장 한 종지뿐인데 어느 날 점심 식사 중 파리 한 마리가 간장 종지에 날아들어 간장을 빨아 먹다가 날아가는데 분기탱천한 조 영감이 파리를 쫓아 단양까지 가서 파리 다리에 묻은 간장을 빨아먹고 돌아 왔대나 어쨌대나?
또 천정에 굴비를 매달아 놓고 밥 한술 먹고 굴비 한번 쳐다보고 하는데 한날 겸상을 한 아들이 굴비가 먹고 싶었던지 빤히 쳐다보고 있자 “야 이놈아 자꾸 쳐다보면 짜다!” 하고 면박을 줬대나 어쨌대나?
그런데 조륵이 회갑이 되던 해에 전라 경상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많은 백성이 기아상태에 처했을 때 그는 아낌없이 재물을 풀어 기근으로부터 많은 생명을 구했기에, 조정에서는 정3품에 해당하는 벼슬을 제수하고 도움을 받은 전라 경상도 주민들은뜻 을 모아 송덕비를 세웠는데 이를 가리켜 자인고비(慈仁考碑)라 하니 해석하면 낳아준 이가 부모라면 죽게 되었을 때 살려준 이도 부모라는 절절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 뒤 자인고비가 변하여 자린고비가 되고 그 뜻은 왜곡되어 지독한 구두쇠를 일컫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 선생은 공리(公利)를 위하여 치수(治水)사업에 힘쓰는 등 고생하며 모은 재물을 좋은 곳에 다 쓰고 자손에게는 재물이 아닌 정신만 물려주고 가시니 이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살아있는 정신이라 할 것입니다.
1995년 10월 후손들은 충주시 신내면 대화리 선생의 묘소에 그 정신을 담은 묘비를 세웠고 1998년 음성군은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자린고비 상을 제정하였습니다.
또 비슷한 말인 수전노(守錢奴)라는 단어를 해석해 보면 돈을 지키기 위해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재물이란 것이 선하게 쓰이면 사람을 살리는 이기(利器)가 될 것이나 잘못 쓰여 지면 사람을 해롭게 하는 흉기(凶器)가 될 터이니, 우리는 혹여 수전노가 되어 나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도 해롭게 하는 흉기의 소유자가 아닌지 깊이 성찰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