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책읽기]
지난 2009년 10월 통계개발원이 내놓은 ‘한국의 차별 출산력 분석’에 따르면 30대 여성의 미혼율이 2000년 이후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출산연령대 여성의 급격한 미혼율 증가가 저출산의 핵심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혼여성 비율은 30~34세가 2000년 10.5%에서 2005년 19.0%로, 35~39세는 4.1%에서 7.6%로 5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5~29세의 미혼율은 같은 기간 39.7%에서 59.1%로 늘었다.
각자 어떤 이유에서건 독신은 우리 시대의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뉴스가 되질 않아서 그렇지 지금 이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 수많은 가정에서 성인이 된 자녀의 독신을 둘러싸고 부모-자식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독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프랑스의 역사학자 장 클로드 볼로뉴(Jean Claude Bologne)의 『독신의 수난사』(권지현 옮김, 이마고, 2006)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을 뿐 인류 역사 이래로 내내 독신은 모진 탄압을 받아왔다. 독신자를 탄압한 주요 이유는 늘 인구․풍속 문제였다. 독신자가 많아지면 인구가 줄고 풍속이 타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신자에게 벌금을 내게 하는 제도는 ‘기본’이었고, 각종 모욕과 탄압이 가해졌다. 전쟁을 많이 벌이던 스파르타에선 겨울에 독신자들을 강제로 벌거벗겨서 광장을 돌게 하는 모욕을 주고 독신자들이 법을 어긴 만큼 벌을 받아도 싸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일시적으로나마 독신자의 구세주는 1798년 『인구론』을 출간한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 1766-1834)였다. “인구의 힘은 인간을 부양할 지구의 힘보다 항상 훨씬 더 크다”는 주장은 공포감마저 불러 일으켰다. 출판사는 한정된 자원과 넘쳐나는 인구로 지구는 곧 멸망할 것이라는 포스터까지 등장시켜 홍보했고, 책을 날개돗친 듯이 팔려 나갔다. 맬서스의 인구억제론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에 명백한 한계는 있었지만, 한동안이나마 독신자들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인구 증가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면서 독신자는 다시 탄압의 무대 위에 올려졌다. 빌레르메라는 사람은 1850년에 발표한 글에서 독신자들이 가정을 타락시킬 수도 있으니 이들과 일체의 접촉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97년 『자살론』을 펴낸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 1858-1917)은 독신과 자살을 결부시키면서, 독신자의 자살을 ‘이기주의적 자살’로 비난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가족, 사적 재산, 국가의 기원』(1884)에서 자본이 인간관계를 가족관계로 축소시킨다며, 일부일처제를 버리는 것이 역사적 진보라고 주장했지만, 독신을 옹호하진 않았다. 그는 일부일처제와 유사하지만 사회경제적 이유보다는 감정에 기초한 사랑을 역설하면서 이런 관계가 매매춘, 불륜, 여성의 노예화라는 부작용을 낳지 않으리라 믿었다.
엥겔스의 주장이 시사하듯이, 사실 기존 가족제도의 문제점을 개혁해보려는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졌다. 예컨대, 19세기 초반 미국에서 생겨난 셰이커교(Shakers) 같은 종교단체는 출생으로 인한 고통과 위협, 그리고 영아 사망으로 인한 슬픔에서 여성을 구원하기 위해 독신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 신흥종교는 독신주의 교리 때문에 곧 쇠퇴하고 말았다.
20세기 들어 독신을 가장 탄압한 체제는 파시즘 국가들이었다. 1927년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남성 독신세를 신설했다. 무솔리니는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에 채찍질을 가하기 위해 이 세금을 활용한다”며 “9천만 독일인, 2억 슬라브 민족 앞에 겨우 4천만 이탈리아 인구가 말이 되는가?”라고 물었다. 무솔리니의 목표는 20세기 후반에 인구 6천만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히틀러의 독일도 마찬가지였지만, 독일은 ‘우등 인간’을 키운다는 우생학적 목표가 더해졌다. 히틀러는 1933년 집권하자마자 독신세를 통한 결혼의 권장을 최우선 정책 중 하나로 만들었다. 우생학적으로 허용된 결혼의 목적은 오직 다산(多産)이었다. 히틀러의 어머니 생일인 8월 12일에는 해마다 수천명의 산모가 메달을 받았다. 4-5명을 낳은 사람은 동메달, 6-7명을 않는 사람은 은메달, 8명 이상을 낳은 사람은 금메달을 받았다. 1943년경엔 모든 여성이 35세까지 순수 독일 인종이 남성들과의 사이에서 4명의 아이를 생산해야 한다는 출산의무제도가 도입되었고, 4명의 출산목표를 달성한 가장의 경우 다른 여성들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조항마저 포함되었다.
파시즘 체제는 아니었지만, 프랑스도 이미 1920년대부터 인구 증가를 위한 강력한 정책을 폈다. 1923년 폴 오리(Paul Haury)라는 사람은 『프랑스의 삶 혹은 죽음』이라는 연구로 정부의 상을 받았는데, 그는 프랑스를 죽인 살인용의자는 독신자라고 주장했다. “한 나라에서 독신자들과 자녀 없는 가정들은 과연 무엇인가? 전혀 번식하지 않는 세포들이다. 그들은 무엇을 남기는가? 무덤 하나, 그것이 전부이다.”
독신자 탄압에 대한 저항이 사회운동 수준으로까지 발전돼 나타난 것은 1960년대 미국의 히피 운동이었다. 히피들은 공동체 생활과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자유분방한 성관계를 가지면서 독신을 대안적 생활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독신자들은 굳이 저항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경제사회적 환경이 독신을 강요하는 쪽으로 급격히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독신자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사회경제적 불안이다. 날이 갈수록 살기가 편해졌다곤 하지만, 그만큼 치열해진 생존경쟁은 출산과 양육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게 만들었다.
오늘날 독신자를 위한 옹호운동은 사실상 대중문화와 소비여가산업이 대신 해주고 있다. 이 분야의 산업들이 독신자 인구의 막강한 구매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독신자는 기혼자들보다 영화관이나 식당에 두 배 더 자주 가고, 웰빙에 훨씬 더 관심이 있으며, 가족부양의 책임이 없어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밝혀졌다.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줄 일도 없으니 죽을 때까지 소비한다. 그러니 각종 소비산업이 어찌 독신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독신의 사회적 장점도 많다. 독신은 무엇보다도 혁신의 동력이다. 결혼이 폐쇄해버리는 미래의 가능성이나 직업선택․전환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기존 규범에 의문을 품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독신은 기존 가족중심적 인간관계의 문제를 완화시킬 수도 있다. 저자는 “독신생활은 탑에 홀로 갇혀서 통조림이나 냉동식품을 까먹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독신을 찬양하고 싶어도 인구 감소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는 애국자들이 많겠지만, 그건 독신자들에게 할 말은 아니다. ‘국가경쟁력’을 빙자해 자녀의 사교육에 목숨 걸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드는 현 입시전쟁 체제를 고수하거나 더 악화시키려는 사람들, 자녀 양육에 도움을 주려는 정책보다는 국론을 분열시키는 토건사업에만 ‘올인’하려는 사람들에게 따져야 할 문제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첫댓글 아하, 히틀러의 엄마와 부산인사모의 생일이 같았구나.
그런 사연이...?
오라버님이나 저같은 사람들이 은혜(?) 받을만한 글이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