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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는 즐거움과 쓰는 괴로움
진융(金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고통스럽다. 고통의 첫 번째 이유는 강호에 와호장룡(臥虎藏龍)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만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진융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나름의 독자적인 견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진융을 화제에 올리면 최소한 한두 시간은 열띤 대화를 하게 마련이었다. 한국의 대표적 진융 사이트인 <곽양객잔>을 보면 그와 유사한 느낌이 든다. 그곳을 서핑하다 보면 상당한 공력이 들어간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처럼 수많은 고수들이 운집해있는 강호에 뭔가 새로운 것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진융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내가 여러 차례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과 틈틈이 떠올랐던 생각을 밝히고 그것들이 과연 가능한 ‘초식’인지에 대해 강호 고수들의 의견을 묻는 것일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움의 또 한 가지 이유는 글을 쓰려면 텍스트를 분석해 재구성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경외심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진융 연구에 발을 들여놓기 전 내 침대머리에는 항상 그의 작품집 가운데 한 권이 놓여있었다. 자기 전 1시간 정도 진융의 작품을 음미하는 즐거움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때론 보던 책을 누군가가 치워버리기도 하지만 태연하게 다음 권을 집어들 수 있었다. 이야기 줄거리를 파악한 상황에서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조급할 필요도 없었고 어떤 장을 읽어도 어려움 없이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절묘한 표현과 플롯을 접할 때의 즐거움은 횟수를 더해도 그 묘미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진융 연구를 시작하면서 그 즐거움은 사라지고 말았다. 시간에 쫓겨 과제를 완수해야 하는 대상을 잠자리에까지 가지고 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진융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려다 오히려 즐거움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진융 작품만큼 재미있게 그리고 꼼꼼하게 읽은 텍스트가 많지 않다. 때로는 주인공의 성장과정에, 때로는 지고지순한 사랑에, 때로는 문화화된 무협에, 그리고 중국적 표현에 매료되곤 했던 것이다. 매번 읽을 때마다 재미를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은 텍스트가 두텁다는 것이다. 진융의 작품은 ‘문화적 두터움(cultural thickness)’을 가진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복합적인 의미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2. 홍콩문학과 중국문학의 사이
우리가 ‘중국 근현대문학’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1950년대 중엽, 그리고 대륙에서는 사회주의 개조 및 건설의 메아리가 ‘반우파(反右派)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을 무렵, 홍콩에서는 ‘20세기 중국문학’의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중국의 연구자들조차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독자들을 확보한 이 문학혁명은 통속문학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학자와 평론가들을 강박해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융의 무협소설이었다. 식민지 홍콩에서 싹을 틔워 분단의 땅 타이완을 휩쓴 진융의 무협소설은 1980년대에 역으로 대륙에 상륙했다. 중국 대륙에 불어 닥친 ‘진융 열풍’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중국인이 거의 없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이제 진융의 무협소설은 ‘중국인다움(Chinese-ness)’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진융 문학의 탄생지인 홍콩과 관련해 진융의 작품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에게 홍콩문학은 생소하다. 더구나 1997년 중국으로 편입된 홍콩이기에 지금은 그 의미가 반감될 수 있다. 그러나 홍콩문학은, 독립 개념으로든 중국문학의 하위개념으로든, 분명 존재했고 지금도 그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홍콩문학에 대한 이슈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작품이 ‘홍콩의’ 문학인가 ‘홍콩에서의’ 문학인가 하는 공간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홍콩 본토의식’ 유무이다. 본토의식은 홍콩문학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전자의 이슈에 대해 렁핑콴(梁秉鈞. 필명 也斯)은 화자와 관점에 주의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누가 어떤 위치에서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한 셈이다. 렁핑콴은 기존의 두 가지 서사―‘국제도시 서사’와 ‘중화 국민 서사’―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리고 홍콩에 관한 모든 서사는 홍콩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이 곳의 우리의 생각”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편입 이후 재국민화(re-nationalization)가 진행된 지 20년이 되어가는 현재 렁핑콴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화되고 있지만, 진융 문학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진융 텍스트는 홍콩 콘텍스트와 과연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진융은 1955년부터 약 16년간 ‘홍콩에서’ ‘12편의 장편과 3편의 중편’을 발표했다. 그러나 진융 문학은 홍콩에서 창작되고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의 텍스트들은 내용이나 배경에서 홍콩을 다루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앞의 논의에 따르면, 진융 작품은 ‘홍콩의’ 문학이 아니라, ‘홍콩에서의’ 문학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점은, 진융 소설이 ‘홍콩에서의’ 문학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중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이른바 ‘대중문화’를 자본주의의 퇴폐적 산물로 규정하고 모두 금지시킴으로 인해 영화와 무협소설로 대표되던 대중문화는 타이완과 홍콩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동아시아의 현대문화는 홍콩영화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으며, ‘홍콩문학’이라는 말이 이미 20년 전에 등장한 것처럼, 새로운 동아시아의 도시문학이 이곳에서 탄생했다”는 후지이 쇼조(藤井省三)의 말처럼, 홍콩 문화는 영화와 문학에서 대중성이라는 특성을 아우르면서 독특한 풍격을 갖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독특한 풍격은 “본지 작가와 외래 작가의 병존, ‘통속문학’(주로 대중적 취미를 근거로 함)과 ‘엄숙문학’(내용의 심화와 기교의 創新을 추구)의 병존, 좌파 작가와 우파 작가의 병존, 컬럼의 잡문(雜文)을 주요 장르로 함”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진융의 무협소설은 홍콩문학의 독특한 풍격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통속문학과 엄숙문학의 병존’은 최근 진융의 무협소설을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아속공상(雅俗共賞)’의 경지를 일컫는 말인데, 이는 홍콩의 개방적이고 혼종적(hybrid)적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할 수 있다.
3. 한족 중심에서 오족 공화로
중국 근현대 무협소설이 태동하던 시점에 ‘민족’은 네이션(nation)과 에스닉(ethnic) 두 층위로 해석될 수 있었다. 전자는 외적의 침입에 대한 중국 네이션(Chinese nation)을, 후자는 만주족에 대한 한족(Han ethnic)을 가리킨다. 사실 중국 문화라는 것이 한족 중심의 56개 에스닉의 혼성문화라는 것은 오늘날 상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근현대 무협소설의 태동기인 1910년대에는 반제(反帝)와 반만(反滿)이 착종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전자보다 후자를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했다. 이 두 가지는 쑨중산(孫中山)에 의해 삼민주의(三民主義)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민족주의’로 개괄되었다. 쑨중산 민족주의의 핵심은 중국 경내의 각 에스닉이 일률적으로 평등해지는 것’이었다. “종족 혁명에서 민족 자결로, 불평등 조약 승인에서 불평등 조약 폐지로, 오족 공화에서 각 민족의 일률적 평등으로, 쑨중산의 민족주의는 여기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다.” 요컨대 쑨중산은 일찌감치 에스닉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 중심의 중화 네이션의 국민국가(nation-state) 건설을 주장했다. 그리고 국민국가 체제로 제국주의에 대항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태동기의 근현대 무협소설에서도 ‘민족문화 고양’이 제기되었지만 그것은 중화 네이션으로까지 승화하지 못한 한족 중심주의(Han-centricism)를 크게 넘어서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융의 전기 대표작인 ‘사조삼부곡’도 한족이 북방 소수민족―만주족, 거란족, 몽고족―의 침입을 받고 그에 대항하는 과정을 그렸다. 여기에서 진융은 이민족에 대한 한족의 저항이라는 주제를 통해 한족 중심적 주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쑨중산의 ‘오족 공화’의 경지는 진융의 후기 작품에서 구현되고 있다.
진융은 처녀작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에서부터 에스닉 문제를 의제화하고 있다. 만주족 황제 강희(康熙)는 이미 공식적으로 한족 혈통이 50퍼센트 섞여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강희의 손자인 건륭(乾隆)이 한족 대신의 아들이었다는 민간 전설을 바탕으로 쓴 『서검은구록』은 네이션 개념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에스닉을 풍자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청나라의 기반을 안정시킨 강희제는 재위기간이 60년에 달했다. 당시 강희제의 아들들은 황태자 자리를 차지하려고 알게 모르게 쟁투를 벌였다. 그러나 강희제는 황태자 선정에 신중하여 황자들의 능력뿐만 아니라 황손의 됨됨이까지 고려했다. 강희 58년 8월 13일, 넷째 황자 윤정(允禎, 훗날 雍正帝)의 측비가 해산했다. 윤정은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자 매우 실망했다. 며칠 후 한족 대신 진세관(陳世官)이 아들을 낳자 사람을 시켜 데려오라 했다. 그런데 안고 들어간 것은 아들이었는데 데리고 나온 것은 딸이었다. 진세관의 아들이 바로 건륭이라는 것이다. 『서검은구록』에서 반청(反淸)단체인 홍화회의 우두머리는 진세관의 둘째 아들인 진가락이다. 그러므로 청 황제 건륭과 당대 반청조직의 우두머리인 진가락은 부모가 같은 친형제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중국 네이션의 개념이 없다. 오직 한족과 만주족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동생은 형에게 오랑캐 황제를 관두고 한족 황제를 하라고 핍박하고 형은 그러마 했다가 자신이 없어 결국 동생을 배신하고 만주족 황제로 만족한다. 우리는 유전학적으로는 한족인 청 황제가 자신이 한족임을 확인한 후에도 만주족을 선택한다는 줄거리를 통해, 역으로 ‘에스닉’도 구성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작품 연대기로는 『서검은구록』보다 나중이지만 시대 배경은 그보다 앞선 『천룡팔부』는 그 제목부터 상당히 모호한 작품이다. 그 시간배경은 북송 철종(哲宗) 시기다. 그리고 윈난(雲南)의 대리(大理)국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한족의 북송, 거란족의 요, 돌궐족의 서하, 그리고 선비족 모용가의 비전으로서의 연까지 오족의 오국이 공간배경을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북송이 중심이지만 1094년은 북송의 멸망(1126년)까지 30년 남짓 남은 시점으로 북송과 요의 갈등은 극단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작품의 제1 주인공이랄 수 있는 교봉은 무림의 최대 조직인 개방 방주로 등장한다. 한인으로 자란 교봉은 알고 보니 거란족 출신의 소봉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사실 30년 넘게 한족으로 살아온 교봉이 자신을 거란족 소봉으로 조정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처음의 황당함은 점차 포기로 바뀌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양부모와 사부를 해친 대악인을 추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출신에 관계없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아주를 죽음에 몰아넣게 된다. 교봉은 우여곡절 끝에 거란족 소봉의 정체성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거란족처럼 한족을 미워할 수는 없다. 이제 새로운 고민이 그의 앞에 놓여 있다. 한족으로 ‘살아본’ 경험은 무고한 한족을 무조건 해칠 수 없게 하고 거란족으로 ‘살아가는’ 경험은 한족이 거란족을 해치게끔 방관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갈수록 첨예해지는 한족과 거란족 사이의 존재론적 갈등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소봉은 요의 침공을 막으려 하지만 결국 요의 황제에게 감금되는 신세가 된다. 다행히 의형제 단예와 허죽의 도움으로 탈출하지만, 마지막에는 요 황제를 협박하여 군대를 철수시킨 후 자진하고 만다. 교봉으로 자라서 두 개의 네이션/에스닉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다가 결국 소봉으로 죽는 그는 여전히 다음의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다. ‘한인 중에서 선한 사람이 있는 반면 악한 사람이 있고, 거란인 중에도 선한 사람이 있는 반면 악한 사람이 있다. 왜 한인과 거란인으로 나뉘어 서로 살상을 서슴지 않는 것일까?’ 그의 죽음은 요의 침략을 막지만 결국 북송은 망하고 남쪽으로 옮겨간 남송은 원(元)에게 멸망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소봉의 문제제기는 결국 개인 차원에서 해소되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천룡팔부』의 시대 배경인 송 시절은 아직 네이션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다. 그런데 교봉/소봉은 그 출생의 특이함으로 인해 요와 송 양국의 네이션 정체성을 경험하게 된다. 『서검은구록』의 시대 배경인 건륭 시절도 그렇고 아래에서 살펴볼 『녹정기』의 배경인 강희 시절도 마찬가지로 네이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연하게 두 개의 네이션/에스닉 정체성을 경험한 교봉/소봉은 시대를 앞선 인물이었고, 그러므로 그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진정한 비극적 영웅의 캐릭터에 부합한다.
진융의 마지막 장편인 녹정기는 그 제목부터 풍자적이다. 제1회에서 해설하고 있는 것처럼 ‘축록중원(逐鹿中原)’과 ‘문정(問鼎)’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천하의 주인이 되려는 것이다. 그러나 녹정공(鹿鼎公) 위소보는 평천하(平天下)의 큰 뜻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가 어려서부터 품었던 ‘큰 뜻’은 여춘원(麗春院) 옆에 여‘하’원, 여‘추’원, 여‘동’원을 열어 주인이 되는 일이었다. 그는 모십팔을 만나기 전 12-3년 동안 ‘여춘원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왔다. 여춘원은 기방이다. 기방이란 여성의 육체와 남성의 금전이 만나는 곳이다. 특히 위소보에게 있어 그곳은 생존투쟁의 현장이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들어간 황궁도 위소보에겐 기방과 다를 바 없었다.
『녹정기』 결말 부분은 네이션과 에스닉 차원에서 볼 때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강토를 안정시키려는 만주족 황제 강희와 반청복명(反淸復明)의 천지회 사이에서 거취를 정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일곱 부인과 함께 퇴출하는 위소보는 마지막으로 어머니 위춘방을 찾아간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자신의 생부에 대해 물어 보니 위춘방의 대답이 걸작이다. 당시 자신을 찾는 손님이 많아서 누구의 씨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녀에 따르면 위소보는 한(漢)․만(滿)․몽(蒙)․회(回)․장(藏) 가운데 하나이겠지만, 작가는 위소보를 마치 오족 공화의 합작품인 것처럼 그리고 있다. 앞당겨 말하면, 작가는 여기서 리얼리즘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희 시대에는 네이션 개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소보를 오족 공화의 산물, 다시 말해 중화 네이션의 상징으로 내세운 것은 작가의 의식을 작중인물에 불어넣은 것이다. 더구나 위춘방은 ‘러시아놈이나 서양놈은 없었냐’는 위소보에 질문에 화를 벌컥 내면서 ‘그놈들이 여춘원에 왔더라면 빗자루로 쫓아냈을거다’라고 답한다. 이는 오늘날의 상황에 견주어보면 이해가 될법하지만, 위소보는 만주족이 한족을 학살한 ‘양주(揚州) 도살’(1645)이 일어난 지 10년 후쯤 태어난 것으로 추정 가능한데, 양주 기방에서 일한 위춘방이 만주족보다 외국인을 더 증오했다는 것은 리얼리즘에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진융은 『녹정기』에서 에스니시즘을 고의로 국가주의로 전환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융 소설은 1950년대 신문에 연재되면서부터 수많은 중국인들이 그의 작품을 애독하고 끊임없이 연속극과 영화로 재생산되고 있다. 지금도 TV에서 지속적으로 재방송되는 것을 보면 그의 작품이 ‘중국인다움(Chinese-ness)’의 어떤 부분을 잘 파악해 형상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륙과 홍콩, 타이완 그리고 여러 지역의 화인(華人)들을 통합(integration)시키는 기제의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아울러 1990년대 동아시아에서 환영을 받았던 한류가 이제 포스트한류를 고민하고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동아시아에서 광범하게 수용되고 있는 문화 횡단의 시대에, 진융의 작품도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관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때 진융 텍스트가 근현대적으로 해석한 중국 전통문화의 두터움은 동아시아 문화를 풍부하게 만들 콘텐츠이기도 하지만, 자칫 중화주의 서사와 ‘중국 상상’ 또는 ‘전통의 부활’을 강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고찰한 오족 공화 서사를 통한 국가주의 표상은 독자들에게 또 다른 대국으로 부상하고 제국으로 나아가는 중국을 합리화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주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 [ASIA] 35호(홍콩 특집, 2014, 겨울)에 게재된 글
改编影视(바이두 참조)
电影
影片名称 上映年份 制片方 导演 主要演员
飞狐外传 1980年 邵氏电影公司 张彻 钱小豪,黄敏仪,郭追,鹿峰,江生
1984年 邵氏电影公司 刘仕裕 黄日华,惠英红,戴良纯,万梓良,梁家仁
1993年 嘉禾电影公司 潘文杰 黎明,李嘉欣,张敏,卢伟义
雪山飞狐 1964年 峨嵋电影公司 李化 江汉,欧嘉慧,上官玉
连城诀 1980年 邵氏电影公司 牟敦芾 吴元俊,白彪,廖丽玲
天龙八部 1977年 邵氏电影公司 鲍学礼 李修贤,恬妮,林珍奇
1982年 新世纪电影公司 萧笙 徐少强,汤镇业,黄日华
天龙八部之天山童姥 1994年 永盛电影公司 钱永强 林青霞,巩俐
射雕英雄传 1958年 峨嵋电影公司 胡鹏 曹达华,容小意
1977年 邵氏电影公司 张彻 傅声,恬妞,李艺民
东成西就 1993年 泽东电影公司 刘镇伟 张国荣,梁朝伟
东邪西毒 1994年 学者电影公司 王家卫 张国荣,梁家辉
鹿鼎记 1983年 邵氏电影公司 华山 汪禹,刘家辉
1992年 寰亚电影公司 王晶 周星驰,温兆伦
笑傲江湖 1978年 邵氏电影公司 孙仲 汪禹,施思
1990年 金公主电影公司 胡金铨 许冠杰,叶童,张敏
笑傲江湖Ⅱ东方不败 1992年 金公主电影公司 程小东 李连杰,林青霞,关之琳,李嘉欣
东方不败风云再起 1993年 金公主电影公司 程小东 林青霞,王祖贤
书剑恩仇录 1960年 峨嵋电影公司 李晨风 张瑛,紫罗莲,容小意
1981年 邵氏电影公司 楚原 狄龙,白彪
1987年 银都机构 许鞍华 张多福,刘佳,阿依努尔
神雕侠侣 1960年 峨嵋电影公司 李化 谢贤,南红
杨过与小龙女 1982年 邵氏电影公司 张彻 傅声,郭追,黄淑仪
1983年 邵氏电影公司 华山 张国荣,翁静晶
《古墓奇缘》、《襄阳风云》、《十六年之约》 2003年 香港无线
侠客行 1982年 邵氏电影公司 张彻 郭追,文雪儿
倚天屠龙记 1963年 豪华电影公司 张瑛 张瑛,白燕
1965年 扬子江电影公司 杨工良 林家声,陈好逑,陈宝珠
1978年 邵氏电影公司 楚原 尔冬升,井莉,余安安
魔殿屠龙 1984年 邵氏电影公司 楚原 尔冬升,万梓良,钟楚红
倚天屠龙记之魔教教主 1993年 永盛电影公司 王晶 李连杰,张敏,黎姿
碧血剑 1958年 峨嵋电影公司 李晨风 曹达华,上官筠慧,陈翠屏
1981年 邵氏电影公司 张彻 郭追 ,文雪儿,龙天翔
新碧血剑 1993年 永盛电影公司 张海靖 元彪,张敏,李修贤
鸳鸯刀 1961年 峨嵋电影公司 李化 林凤,周骢
1982年 邵氏电影公司 鲁俊谷 惠英红,孟元文
电视剧
剧名 上映年份 制片方 导演 主要演员
雪山飞狐 1977年 香港佳视 卫子云,白彪,米雪,李通明
1985年 香港无线 王天林 吕良伟,谢贤,周秀兰,曾华倩
1991年 台湾台视 李朝永 孟飞,龚慈恩,伍宇娟
1999年 香港无线 李添胜 陈锦鸿,黄日华,佘诗曼,刘晓彤
2007年 香港佳艺电视台 王晶 聂远,黄秋生,朱茵,钟欣桐,安以轩
连城诀 1989年 香港无线 邱家雄 / 郑兆强 郭晋安,黎美娴,谢宁
2004年 中国大陆 王新民 吴樾,何美钿,舒畅
天龙八部 1982年 香港无线 萧笙 梁家仁,汤镇业,黄日华
1990年 台湾中视 刘俊杰 惠天赐,关礼杰
1997年 香港无线 李添胜 黄日华,陈浩民,樊少皇
2003年 中国大陆 周晓文 胡军,林志颖,高虎
2013年 中国大陆 赖水清 钟汉良,金起范,韩栋
射雕英雄传 1976年 香港佳视 萧笙 白彪,米雪,梁小龙
1983年 香港无线 王天林 黄日华,翁美玲,苗侨伟
1988年 台湾中视 李朝永 黄文豪,陈玉莲,潘宏彬
中神通王重阳 1992年 香港无线 潘嘉德 郑伊健,梁艺龄
射雕英雄传之九阴真经 1993年 香港无线 潘嘉德 张智霖,姜大卫,梁艺龄
射雕英雄传之南帝北丐 1994年 香港无线 苏万聪 郑伊健,魏骏杰
射雕英雄传 1994年 香港无线 李添胜 张智霖,朱茵,罗嘉良
2003年 大陆 于敏 李亚鹏,周迅,周杰
2008年 大陆 李国立 胡歌,林依晨,袁弘
白马啸西风 1979年 香港丽的 杨盼盼
鹿鼎记 1977年 香港佳视 文雪儿,程思俊
1984年 香港无线 李添胜 梁朝伟,刘德华
1984年 台湾中视 周游 李小飞,周绍栋
1998年 香港无线 李添胜 陈小春,马浚伟
2000年 台湾华视 王晶 张卫健,谭耀文
2008年 大陆 于敏 黄晓明,钟汉良
2014年 大陆 赖水清 韩栋,魏千翔
笑傲江湖 1984年 香港无线 李鼎伦 周润发,陈秀珠,戚美珍
1985年 台湾台视 刘立立 梁家仁,刘雪华,应采灵
1996年 香港无线 李添胜 吕颂贤,梁艺龄,陈少霞
2000年 台湾中视 赖水清 任贤齐,袁咏仪,陈德容
2000年 新加坡 霍志揩 马景涛,范文芳,李锦梅
2001年 大陆 黄健中 李亚鹏,许晴,苗乙乙
2013年 大陆 胡意涓 霍建华,袁姗姗,杨蓉,陈乔恩
书剑恩仇录 1976年 香港无线 郑少秋,汪明荃,余安安
1984年 台湾台视 游天龙,森森,杨丽音
1987年 香港无线 许鞍华 彭文坚,任达华,罗慧娟,梁艺龄
1992年 台湾台视 鞠觉亮 何家劲,沈孟生,刘雪华,傅娟
1994年 大陆 黄海冰,王卫国,王菁华,杨雅娜
2002年 大陆 卫翰韬 、黄伟明 、冯柏源等 赵文卓,陈昭荣,关咏荷,颜颖
2009年 大陆 谭友业、温伟基、何振华 乔振宇,郑少秋,周丽淇,颖儿
神雕侠侣 1976年 香港佳视 萧笙 罗乐林,李通明
1983年 香港无线 萧笙 刘德华,陈玉莲
1984年 台湾台视 何东兴 孟飞,潘迎紫
1995年 香港无线 李添胜 古天乐,李若彤
1998年 新加坡 马玉辉 李铭顺,范文芳
1998年 台湾台视 赖水清 任贤齐,吴倩莲
2006年 大陆 于敏 黄晓明,刘亦菲
2014年 大陆 李慧珠 陈晓,陈妍希
侠客行 1985年 台湾华视 莫少聪
1989年 香港无线 伍润泉 梁朝伟,邓萃雯
2001年 大陆 王新民 吴健,周莉
倚天屠龙记 1978年 香港无线 招振强 郑少秋,汪明荃,赵雅芝
1984年 台湾台视 陈明华 刘德凯,刘玉璞,喻可欣
1986年 香港无线 王天林 梁朝伟,黎美娴,邓萃雯
1994年 台湾台视 赖水清 马景涛,叶童,周海媚
2001年 香港无线 庄伟建 吴启华,黎姿,佘诗曼
2003年 大陆 杨韬 苏有朋,贾静雯,高圆圆
2009年 大陆 于敏 邓超,安以轩,刘竞
碧血剑 1977年 香港佳视 陈强,文雪儿,李通明,石天
1985年 香港无线 黄日华,庄静而,毛舜筠,苗侨伟
2000年 香港无线 李添胜 林家栋,欧子欣,佘诗曼,江华
2007年 大陆 李翰滔、赵箭 、黄祖权 窦智孔,黄圣依,孙菲菲,焦恩俊
越女剑 1986年 香港亚视 王心慰 李赛凤,岳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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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용의 팬인데요! 전 그가 나중에 동양의 셰익스피어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