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계시된 교의의 원천이며 신앙의 원리를 가르치는 원천으로 인정하고 있는 성경은 명실공히 하느님의 말씀이다. 교회는 이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하도록 가르치고 특히 최근에는 성경통독, 성경필사, 성경공부 등 다양한 형태로 성경을 만나려는 신자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성경을 읽다간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아닌 엉뚱한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성경은 우리와 멀리 떨어진 문화권에서 우리와 다른 언어로 오랜 시간 속에서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또 신앙의 경전으로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성경을 올바른 신앙의 눈으로 읽지 않으면 그릇된 믿음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성경을 처음으로 접하는 많은 신자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성경에 많은 의문과 오해를 얻기도 한다. 왜 역사·과학적 사실과 차이가 나는지, 정말로 하느님이 직접 하신 말씀인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같은 성경이 왜 개신교회와 차이가 나는지 등 여러 궁금증 등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오해가 쌓이기 마련이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수많은 이단 때문에 평신도가 함부로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부터 '성경읽기'의 중요성이 주목받기 시작해 최근에는 성경을 읽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24~30일 제29회 성서주간을 맞아 신자들이 성경에 관해 오해하기 쉬운 궁금증을 풀어봤다. 이제 성경을 '오해'하지 말고 '이해'해보자.
■ 성경은 모두 역사적인 사실이다?
성경, 그 중에서도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이 이스라엘 민족이 겪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현대 역사서와 같은 엄격한 구성이나 증명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한 역사가가 작성한 독립적인 역사서가 아니다. 비록 성경이 대체로 시간의 흐름 순으로 배열돼 있기는 하지만 기록된 순서도 연대순이 아닐뿐더러 그 목적도 역사의 순서나 사건들을 안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들려주기 위해 기록한 성경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전승되고 편집되면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성경을 기록한 이들이 역사적 실체에 무관심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구약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역사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살아오는 과정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역사인 것이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로 모든 내용을 역사적으로 확증할 수는 없다. 예수에 관한 역사가 단순히 객관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은 나자렛 예수님의 역사적 삶과 행적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비춘 생생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 성경은 비과학적이므로 믿을 수 없다?
성경은 '과학적 진리'를 배우고 믿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진리'를 위해 읽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믿음에 과학적 사실이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과학이 사용하는 언어와 성경의 언어는 다르다. 두 언어는 진리를 추구하지만 성경은 과학이 탐구하는 진리가 아니라 궁극적·종교적 진리에 관해 이야기한다.
흔히 성경과 과학의 모순으로 여겨지는 '창조론'과 '진화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이 탐구하는 진리의 입장에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성경의 창조이야기는 '우주의 모든 천체와 생명체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존재를 얻게 되었고 하느님에 의해 존재가 유지된다는 것'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의 눈으로 신약성경을 읽으면 줄거리에 연속성이 없을 뿐 아니라 복음서 사이에도 모순들이 있어 확실성과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신약성경의 저자들도 예수의 행동 정황과 세부사항을 정확히 재구성하는데 관심을 두기보다 예수의 말씀과 행동의 의미를 부각하는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 성경은 하느님이 직접 쓴 책이다?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직접 성경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말이 아니다.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계시와 계약을 통한 하느님 체험을 기록한 구약성경은 주로 기억을 통해 구전으로 전승되다 1000여 년의 시간을 거쳐 그 시대와 문화의 배경 속에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됐다. 신약성경 역시 예수가 승천하고도 목격한 증인이 많았기에 굳이 글로 기록하지 않다가 후대에 예수의 말씀과 업적을 전하기 위해 약 반세기에 걸쳐 기록 작업이 이뤄졌다.
이렇듯 하느님은 인간들을 선택하고 그들이 자기 능력과 역량을 이용해 성경을 저술하게 하시면서 하느님께서 몸소 그들 안에 활동하시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기록해 전달하게 하셨다.(가톨릭교회교리서 106항) 성경은 인간의 손으로 인간의 글로 쓰였지만 하느님의 의지와 뜻으로 쓰인 하느님의 말씀이다.
■ 성경 말씀은 모두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경은 2000~3000년 전 오늘,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기록된 책이다 보니 글의 표현 양식이나 의미, 관용적 숙어 등이 우리말과 다르다. 번역을 했지만 문자 그대로가 원뜻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말 그대로의 의미로, 오늘날의 시선과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면 그 뜻을 잘못 이해할 수 있다.
또 성경의 저자들은 전승으로 내려오던 이야기에 그 시대에 쓰이던 문학 방식을 이용해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했다. 성경의 문학 유형을 이해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안에 담긴 참 의미를 알기 어렵다.
■ 성경 말씀은 모두 비유와 상징으로만 해석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비유와 상징이 풍성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모두 비유와 상징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성경 해석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병행해서 이뤄진다. 성경 해석 방법으로는 먼저 성경 본문이 말하는 '문자적 의미'를 밝히는 방법, 기록 당시의 시대와 문화, 저자의 의도에 따른 역사비평적 분석, 성경 본문 자체를 독립적으로 놓고 연구하는 구조 분석 등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성령의 영감을 받은 책이기에 성령을 통해 읽고 해석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성경 해석을 위해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이 기준은 하느님 구원 계획으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단일성에 유의하고,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聖傳)에 따라 읽으며, 성경의 신앙 진리들이 일관성을 지닌다는 '신앙의 유비'(類比)를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경 해석은 많은 연구와 노력이 요구되는 과정으로 해석이 필요하다면 주석 성경을 참고하면 좋다.
■ 제2경전은 제1경전에 비해 덜 중요하다?
교회는 제1경전과 제2경전 모두 신앙의 규범으로서 같은 가치를 지니는 정경(正經)으로 가르친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신약성경 27권을 똑같이 성경으로 읽지만, 구약성경의 경우 가톨릭은 46권을 인정하는 반면, 개신교는 39권만을 인정한다. 이 차이는 개신교가 유딧기, 토빗기, 마카베오기 상/하,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등 7권의 제2경전을 성?堧막?보지 않기 때문이다.
제1경전으로 불리는 39권의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전해 내려오던 것으로 팔레스티나 지방의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반면, '70인역'이라고도 불리는 제2경전이 포함된 구약성경은 알렉산드리아 지방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성경이다. 기원전 3세기경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에는 제2경전도 포함됐다.
그동안 제2경전은 그리스어로만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1947년 발견된 '사해문서'가 발견되면서 구약성경의 연구가 새롭게 이뤄졌다. BC 2C~AD 1C 사이에 에세네파 쿰란(Qumran)공동체가 작성한 '사해문서'에는 히브리어로 적힌 제2경전의 사본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 성경만이 하느님의 말씀이다?
교회는 성경과 함께 성전(聖傳)이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유산을 형성한다고 가르친다.(계시헌장 10장)
성경이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성전은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공생활에 함께하며 체험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업적, 그리고 성령을 통해 깨달은 하느님의 말씀을 후대에 전했고, 교회는 그것을 성전으로 전해왔다.
성경을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이 기록했듯이 성전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행된다. 성경을 해석할 때 성전에 따라 읽어야 하는 것도 성전이 그 안에 하느님 말씀의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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