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에 위치한 금성산은 해발 530m의 사화산으로 비봉산(해발 671m)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옛날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이 조성한 길이 2,730m, 높이 4m의 금성산성이 등산로 주변에 있으며 신라시대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 수정사와 산운을의 소우당을 둘러보면서
하루 일정의 등산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금성산의 본 이름은 천진산(天辰山)이다. 금성산이라 부르게 된 것은 처음 진나라가 도읍하면서
수도방위를 위해 이 산에다 성을 쌓고 쇠덩어리 같이 견고하다는 뜻으로 쇠울산성이라 이름한데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한문으로 표기하게 되면 쇠울(금성), 쇠울산성(금성산성), 쇠울산(금성산)으로 자리매김이
되었다고 한다.
지리서에 이르기를 중원(중원)에 장사오악(장사오악)하고, 동방에 삼태오악(삼태오악)이라 하여
동에 금강산, 서에 묘향산, 북에 백두산, 남에 지리산, 중앙에 삼각산을 오악 또는 오명산이라 한다.
삼태산이란 우리나라 중추를 가리키는 삼화산(삼화산)으로 북에 백두산, 남에 한라산,
중앙에 천진산을 말한다. 삼태산은 천상의 삼태의 현상으로 모두가 화산이므로 분화하다가 멈추게 되어 산마루가 함몰되어 오목한 것이 특징이다.
금성산의 전설
금성산은 영남에서 가장 많은 풍수 일화를 간직한 산이라 할수 있다.
그 산 자체에 대한 다양한 풍수 해석도 해석이려니와, 무엇보다고 그 방대한 산자락 골골마다에
들어앉아 있는 수많은 마을들이 지닌 각양각색의 명당설이 마치 풍수 전람회장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당설을 바탕으로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진기한 이야기가있다.
이 금성산 산정에 묘(무덤)을 쓴다면 석달동안 이 산을 둘러싼 지역 일대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갑자기 운수가 대통하여 큰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고종때 이 지방에 심한 한발이 든 적이 있었다.
나라를 통틀어 보아도 전국 각 지방에는 비가 내려 가뭄이 말끔하게 가셨는데 이 지방만은 빠뜨려 놓고 말았다.
그래서 논과 밭은 메말라 갔고 곡식은 타죽어 가니 농민들은 메말라 죽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비를 기다리다 지쳤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농민들은 금성산 산정을 향하여 모였다.
"금성산을 파헤쳐라" 고 외치며 모여든 인근 주민의 수는 수백이 넘었다.
사실 이산은 밖에서는 깎은 듯한 적벽으로되어있으나 산꼭대기에는 그 넓이가 600~700평이나 되는 모래밭이다.
진노한 주민들은 모래금을 찾듯이 산정을 뒤졌다.
그 결과 길이 10m의 땅속에서 조그마한 석곽을 발견하니 주민들의 울분은 한 순간에 폭발되고 석곽 속의 사람머리는 산 아래로 팽개쳐졌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진노하고 검은 구름이 사방으로 뒤덮어 버리고 그렇게도 목마르게 기다리던 단비가 산과 들, 논밭에 함빡 내려졌다고 한다.
무덤을 쓴 사람은 그 후 모 지역에 가서 재수 대통하여 무더기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되어 고향에서 논과 밭, 과수원을 사서 잘 살게 되었다고 하며 그 후 그는 그성산 음덕에 보답할 것을 결심하여 학교가 없는 금성면에 학교를 세우는 등 큰 사업을 하였다고도 한다.
*산행코스:산행기점-금성산-봉수대터-수정서갈림길-비봉산-산불감시초소-산행총점
*산행시간:5시간
첫댓글 덕하님 좋은산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