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이순신에 관한 영화 '명량'을 보고 왔습니다. 몇 년전 김명민 주연의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정말로 이순신의 현신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감동이 너무 컸기에, 오히려 '명량'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신문의 영화소개 기사에 살짝 흥미가 끌렸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는 유명한 상소를 왕에게 올렸던 전투가 명량해전이고, 그걸 그린 영화에서 나온다는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라는 이순신의 대사가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명량해전은 한산도대첩 · 노량대첩과 함께 이순신의 3대 대첩 중 하나로, 이순신이 죽음을 맞이한 노량대첩 한 해 전의 전투입니다. 임진왜란 6년째인 1597년(선조 30) 7월 누명을 쓰고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를 맡은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 수군에 대패하여 해상권을 잃게 되자, 조선 조정에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하여 패전후 남은 13척의 전선과 수군을 정비하여, 9월에 12척의 배로 명량 울돌목에서 왜 수군을 쳐부순 유명한 싸움이지요. 지난 패전의 손실을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는지라, 싸우기 하루 전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에게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라고 한 말은 지금까지 세간에 회자될 만큼 유명하지만, 사실은 상황이 그만큼 비관적이었다는 의미이지요. '명량'이라는 영화에서도 비관적인 상황이 조선 수군 진영 전체의 두려움이 되어 병사의 도주, 장수의 배신 등이 속출합니다. 이순신은 뛰어난 지략과 침착한 대응으로 울돌목 물길을 십 분 활용하고 전투에 앞장서서 혼신을 불태우는 투혼으로 수군 전체의 두려움을 필사즉생의 용기로 바꾸어 승리를 이끌어냅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해상권을 다시 회복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 해 11월, 이순신장군은 노량 앞바다에서 왜 수군과 마지막 해전을 치르면서 장렬히 전사하고,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7년에 걸친 조선과 왜의 싸움도 끝이 납니다. 이순신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했던 그 노량대첩입니다.
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에는 소리가 너무 커서 귀를 막고 보았는 데, 막바지에는 몰입해서 소리의 압박을 잠시 잊었더랬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데, 자꾸 눈물이 나왔습니다. 지난 우리의 역사 중 조선의 역사를 접할 때마다 유달리 제 가슴을 저리게 하는 인물이 둘 있는 데, 그 중 한 명이 이순신입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지키기 위해, 구체적으로는 조선의 바다를(정확하게는 조선의 백성이겠지요) 지키기 위해 하늘이 내린 인물. 영웅이라 부르기도 부족해 우리들이 '성웅(聖雄)'이라 부르며,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호칭으로 우리 옆에 두고 싶어하는 인물.
항상 이순신을 접할 때마다 우리에게 너무 과분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런 이순신이 임진왜란과 함께 등장했다 임진왜란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이순신은 임진왜란을 무사히 넘겨 이후의 조선 300년을 잇기 위해 하늘이 내린 카드일지도 모릅니다. 조선 300년을 지켜내는 왜와의 7년싸움을 위해 이순신은 치밀하게 준비하여 23전 23승이라는 믿기지 않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오죽하면 러일전쟁의 승리를 이끌었던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 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 번 승리를 끌어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라고 했을까요. 자랑스러워해야 할 지, 인물을 몰라본 조선을 부끄러워해야 할 지...(임진왜란을 겪고도 정신을 못차린 조선은 병자호란을 당하고, 일본은 이순신의 전술을 철저히 연구해 최강의 해군으로 거듭나 러일전쟁 때 도고 제독이 이끄는 일본 해군은 혁혁한 승리를 거두지요-.-)
영웅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왕조시대에, 선후천교차기라는 어마어마한 상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임진왜란 7년과 조선의 300년을 위해 하늘은 그토록 비범한 인물을 준비했는데, 전대미문의 선후천 교차기인 지금, 급살병을 맞아 의통성업을 집행하고 도성덕립의 후천 세상을 열려고 하는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준비가 되어있는 걸까요. 분명 하늘이 준비한 카드는 '우리'일 텐데 말입니다...
첫댓글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기에 희망이 있고 그리고 성공을 확신합니다.
현실적 부족함과 부조리함을 극복한 현실적 성취이기에 눈물겹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