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보내는 노래, ‘꽃인 듯 눈물인 듯’
손 경 찬
점심식사를 하고서 사무실로 돌아와 사진첩을 정리하려는데 잠이 쏟아진다. 어쩔 수 없이 소파에 앉은 채로 잠시간 눈을 붙였으나 봄기운 탓인지 머리가 띵하기만 하다. 정신 차리려고 다기를 내놓고 차를 끓여본다. 얼마 전까지는 식사 후에는 꼭 커피를 마셨으나 요즘은 직접 차를 끓여 마시니 이것도 즐거운 일상의 하나다. 사무실 탁자에 다기를 마련해 놓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니 지인들이 맛이 좋다며 ‘무슨 차냐’고 묻기 일쑤다.
여느 날처럼 차를 만들어 한잔 마시고 나니 차 향기가 감싸 돈다. 입안에 남아 은은한 것도 나의 기분을 좋게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이 쏟아지고 머리가 띵했는데 차 한잔 마시고나니 거짓말처럼 증상이 없어졌다. 최근에 커피 대신 차를 끓여 마시는 다도에 푹 빠졌으니 그 멋과 맛이 인생삼락(人生三樂)에 견줄 바는 아니나 이 또한 내게는 작은 즐거움이다.
맹자의 인생삼락은 다분히 고전적인 면이 있다. 첫째가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하며, 둘째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라 설파했으니 인생의 즐거움을 꼭 여기에 견준다면 내 삶의 즐거움은 빈털터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고, 하늘보기가 부끄러우며, 곁에 천하 영재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차 한 잔을 음미하는 즐거움은 단지 내 생활의 작은 일부분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그 생각에 젖어 있는데 슬픈 소식이 전해져왔다. 평소 알고 지내는 장두익 형이 67세의 나이로 영면했다는 것이다. 봄빛이 천지를 감싸던 지난 3월 중순경에 혈육인 장사익 공연을 보고 싶다며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서도 충북 음성에서 열린 공연장까지 힘들게 왔던 분이 아닌가. 그때만 해도 맑은 눈빛으로 삶의 의지가 남달랐던 분이었는데 봄이 미처 다 가기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니 비통한 마음뿐인데 이 비보가 생시인지 꿈인지 도무지 느껴지지가 않는다.
나의 마음이 이러한데 그의 친 혈육인 장사익 선배의 심정은 어떠하겠으랴. 장 선배가 내게 일일이 말은 안했지만 고인이 된 동생(장두익)과의 형제애는 너무나 진했다. 동생이 투병생활하면서도 형님 공연을 보고 싶다고 하자, 그는 직접 공연기획을 만들고 충북 음성군과 인연이 돼 지난 3월 18일 장사익 소리판 ‘꽃인 듯 눈물인 듯’ 공연을 가진 것이다. 평소에 장사익 선배가 부르는 ‘꽃구경’ ‘찔레꽃’ 노래는 애절했지만 그날 부르던 노래는 어쩌면 사랑하는 동생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노래가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인지 더 슬퍼하며 혼신을 다해 열연했다.
공연장에서 동생의 건강회복을 간절히 기원하며 부르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그 당시에 소리꾼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사정을 알고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형제애에 대한 깊은 사랑이 노래에 담겨져 더 깊은 비통으로 이어졌던 그날은 참여했던 관객과 공연에 함께 나선 인간문화재 춤꾼 하용부 선생 등을 위시한 소리꾼이나 연주가들도 비통함의 열연을 보이면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지 모를 장두익 형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훌륭한 무대를 꾸몄던 것이다.
하늘나라 가는 길이 행여 외로울까 싶어 서울의 강남 성모병원 영안실에서 그날 공연한 팀이 다시 모였다. 장사익 선배를 따르는 후배나 지인들이 모두 모여 피붙이 장두익 고인을 위해 한판 공연을 벌렸다. 빈소에서 공연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지만 비통의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의식, 사랑하는 동생을 그래도 하늘나라 좋은 곳에서 영면하기를 바라는 형님의 마음과 고인을 잘 알던 예술인들이 그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몸짓의 애달픈 행사였다.
비록 마흔 여섯 늦은 나이에 소리꾼으로 데뷔했지만 장사익은 대한민국의 가장 으뜸가는 소리꾼이다. 그 데뷔작은 1995년 1집을 낸 ‘하늘가는 길’이다. ‘간다간다. 내가 돌아간다./ 왔던 길 내가 다시 돌아를 간다/ 어허아 어허야 아 어허아 어허야 아/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잎진다 설워마라/ 명년 봄이 돌아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한번 간 우리인생 낙엽처럼 가이 없네/ 어허아 어허야 아 어허아 어허야 아/ 하늘이 어드메뇨. 문을 여니 거기가 하늘이라/ 문을 여니 거기가 하늘이로구나/ 어허아 어허야 아 어허아 어허야 아 (이하생략)
어쩌면 장사익 선배가 만든 첫 곡의 제목인 ‘하늘가는 길’은 세상 사람들이 결국엔 다 공유하는 길이긴 하지만 그 노래를 어머니에게 바쳤고, 이번에는 애달피 사랑하는 동생에게 바쳤다. 또한 동생의 소원이었던 꽃이 피어 천지가 화사한 계절에 항상 자랑스럽게 여겨왔고 따랐던 형님의 마지막 무대 공연을 직접 보고 싶어 한 그 바램을 들어 화려한 봄날에 음성에서 마련한 무대, ‘꽃인 듯 눈물인 듯’은 동생의 ‘하늘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한 것이었으니 두 분 형제애의 깊고 애틋함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애절한 마음으로 불러보는 고인이시여. 국민소리꾼이 된 장사익 형님을 존경한다던 형제애 넘쳐나는 그 담담한 목소리는 이젠 들어볼 수 없으나 자랑스럽게 여기던 생전의 모습을 흠모합니다. ‘하늘나라에서 부디 편안히 영면하소서’ 비통한 마음을 꾹 눌러 참고서 고 장두익 형의 명복을 빌어본다. 그리고 돈독한 형제애가 돋보였던 장사익 선배에게도 한 마디 위로를 드리노니, 동생이 하늘나라 가는 길은 ‘꽃인 듯 눈물인 듯’했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난 3월 18일 장사익 소리판 ‘꽃인 듯 눈물인 듯’공연을 가진 것이다. 평소에 장사익 선배가 부르는 ‘꽃구경’ ‘찔레꽃’ 노래는 애절했지만 그날 부르던 노래는 어쩌면 사랑하는 동생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노래가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인지 더 슬퍼하며 혼신을 다해 열연했다.
고)장두익 선배님과 살아생전 마지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