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병렬 지음
- 출판사
- 사계절 | 2000-11-15 출간
- 카테고리
- 아동
- 책소개
- 독도에 얽힌 안용복 장군과 홍순칠 대장 이야기가 우리나라와 일본...
이 책의 저자가 쓴 "백두산정계비의 비밀"에서도 1712년 청나라사신 목극동이 조선과의 국경선을 정하러 왔을때 우리나라의 역관
김지남이 끝까지 따라가 역사적사실을 기록하였는데 우리나라 신하들은 백두산까지 올라가지 않고 모든 것을 청나라사신에게
맡기려 할때 김지남이 59세라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악착같이 따라가 백두산의 정계비 경계선을 압록강에서 토문강으로 규정하였다고 저자는 이야기했다~~
지금도 이 토문강을 두고 두만강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주장과 토문강은 쑹화강이라는 우리측주장이 대립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국경문제는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살고 있던 곳 간도땅을 빼앗긴 지금 우리선조들의 안일한 자세가 지금도
계속된 국경분쟁을 가져오고 있는데 이를 보면 늘 관리들의 무사안일주의속에서도 민초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우리들의 영토가 지켜졌다고 볼때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풀뿌리민초들의 자신의 땅에 대한 사랑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이책에서 저자는 우리민초들의 영웅적활약상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어찌보면 삶의 터전에서 몸을 담고 피부로 느끼는 민초들에
비해 관리들은 높은 자리에서 그저 무사안일위주의 정책으로 많은 혼선을 야기하기만 한다.
울릉도를 지켜낸 어부 안용복과 독도를 지켜낸 어민 홍순칠의 행적을 따라가보자...
울릉도는 세종실록지리지 153권에 우산도(독도)와 무릉도(울릉도)를 일컫는 말이라고 적혀있다. 지증왕 12년 신라장군 이사부가
사자탈로 어민들을 위협하여 쉽게 울릉도를 신라에 복속시킨 이래로 우리의 영토였다. 고려시절에 공물을 납부하였다고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태조들어 태조에 반대하는 이들이 울릉도에 넘어가자 태종때 1403년 공도정책으로 섬을 비우게 되었다.
공도정책으로 섬이 비게 되고 임진왜란후 일본인 어부들이 와서 고기를 잡아도 아무도 제제하는이가 없었기에 1618년 도쿠가와막부는 '오타니'와 '무라카라'라는 어부에게 울릉도어업권에 대한 허가증까지 주게 되면서 일본인들은 그땅이 자기네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1693년(숙종19년,숙종실록) 동래어부 안용복이 40여명의 어민들을 데리고 나라 몰래 울릉도에 조업을 하러 갔다가
일본인들이 조업하는 것을 보고 이를 따지기위해 박어둔과 함께 일본의 오키섬으로 →호키슈 → 나가사키로 갔는데 태수가 막부의 장군으로부터 울릉도는 일본땅이 아니다라는 서장을 주었다. 그러던 중 대마도주가 이에 흑심을 품고 나가사키로 사람을 보내 안용복이 받은 서장을 빼앗고 대마도로 안용복을 데려와 고문한 후 다시 조선 동래로 돌아가 조정에 자기네 땅에 들어온 안용복을 벌주고 울릉도가 일본땅이라는 서약을 받아가려고 하자 조정에서는 이에 대해 논의가 있었고 전쟁이 일어날까 두려운 조정신하
특히 민암을 위시한 남인들이 울릉도에는 우리조선인들이 살고 죽도는 일본땅이라는 이상한 답장을 보냈다.
이에 대마도주는 죽도가 바로 울릉도이기에 울릉도에 대한 명칭을 없애고 죽도가 바로 일본땅이라는 답장을 다시 받아오라고
한다. 그후 조정은 남인이 물러가고 노론이 득세하면서 오히려 일본에 강경책을 쓰게되자 조정에서는 1차 답신이 오류라 이야기
하고 울릉도이며 죽도인 섬이 바로 조선땅이라고 서신을 보낸다.
그러던중 대마도주의 소환으로 일본사신이 돌아가고 도쿠가와막부의 명에 의거 울릉도에 일본인들이 들어가는 것이 금지된다.
"죽도땅이 일본에 속한다고 해도 아직 우리 일본인이 거주한 적이 없다. 태덕군 시대에 요나코의 상인이 그 섬에서 고기를 잡을 것을 청하여 이를 허용했던 것 뿐이다. 지금 그 거리를 재어 보건대 일본으로부터 160리 정도, 조선으로부터 40리정도이다. 따라서 그들의 땅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힘으로써 이를 빼앗고자 한다면 빼앗지 못할 바도 아니지만, 쓸모없는 작은 섬을 가지고 이웃 나라와의 우의를 잃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애당초 이섬을 그들로부터 빼앗은 것도 아니니, 이제와서 돌려준다고 할 것도 없다.
다만 지금부터 죽도출입을 금지하기만 하면 된다.
막부의 뜻이 이러하니 작은 섬을 가지고 서로 다투어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보다는 서로 평안함이 상책이다. 이러한 취지를 조선국에 통보하라.."(일,조선통교대기- 도쿠가와막부 -)
3년후 1696년 5월 12일 안용복은 다시 울릉도를 향해 출발한다.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로 관리복을 꾸며입고 배에는 '조선의 울릉도.자산도 감독관의 기"라고 붙여 조선의 관리로 행세하면서 울릉도에서 조업을 하고 있던 일본인들을 꾸짖어 돌려보낸후 그들이
독도에서 왔다는 말에 독도를 향하다 길을 잃고 오키섬으로 가서 오키도주에게 그간의 일을 꾸짖고 호키슈로 태수를 만나 따지러
간다. 이일을 알게된 대마도주는 자신이 막부의 명을 이행치 않음이 발각될까 두려워 서둘러 안용복일행을 조선으로 돌려보낸다.
호키슈에서 머물던 안영복일행은 부태수가 모든일을 처리하는데 1년이 걸린다는 설득에 강원도 양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대마도주는 더이상 울릉도조업을 하다가는 막부에게 들켜 집안이 망하게 되리라 생각하고 조선의 정부에 더이상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막부의 뜻을 뒤늦게 서장(1697년 1월)을 통해 알린다.
우리쪽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일본의 "공문록"에 그당시 서장을 가지고 온 사람이 안용복이 조선관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답장에 써달라고 애걸하여 써주었다고 쓰여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안용복이 울릉도와 독도(자산도) 모두를 조선땅이라고 주장했는데도 조정에서는 울릉도만 잘받았다고 써줌으로서 지금도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강원도로 돌아온 안용복은 많은 포상이 아닌 오랏줄에 묶여 두가지 죄목 "울릉도에 들어간 죄, 국경을 넘어 일본에 간죄"로 고문을
당했다. 그후 안용복은 귀양을 갔고 울릉도는 계속 방치된 채 두어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건너와 살고 있다는 사실을 고종이 알게 되어 1882년 9월 9일 울릉도도장에 전석규를 임명하고 백성들을 울릉도로 이주시키게 된다. 그리고 칙령 제 41호를 공포하여 울릉도를 군으로 승격시키고 을릉군수에게 울릉도 전체와 부속섬인 죽도,석도(독도)를 관할토록 하였다.
1905년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로 자신의 땅으로 편입하였다가 해방후 맥아더장군에 의해 울릉도와 독도는 다시 우리땅이 된다.
그런데 강화조약시 5차까지 독도가 우리땅이었다가 일본인들의 주장에 의해 6차시 일본땅으로 표시하게 되었고 그후 방침이
바뀌면서 대만,팽호제도등 큰 것만 넣게되면서 독도는 일본이나 한국 어느곳에도 표기하지 않게 되었지만 이일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인식이 미국인들사이에 팽배해졌다.
1951년 강화조약후 일본인들이 독도에 와서 조업을 하게 되자 전쟁(6.25전쟁)와중에 홍순칠이라는 울릉도어민에 의해 독도수비대가 만들어져 50여명의 젊은이들이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키게 되었다. 홍순칠의 할아버지가 거금 300만원을 내어주어 그 돈으로 무기와 군복, 식량을 대구에 올라와 몰래 구입하여 독도를 향해 떠난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지만 끝까지 남아 독도에서 일본 경비정을 몰아내고 독도를 사수하게 된다. 처음 서도에 정착한 그들은 서도가 적을 방어하기에 적합하지 않음을 알고
동도로 옮겨 막사를 짓고 3년 8개월동안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이 외롭고 기나긴 밤을 깍다귀에 물려가면서 독도를 지켜냈다.
하지만 그들도 더이상 자력으로 독도를 지킬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며 경찰에 독도수비업무를 부탁하여 인계하고 울릉도로 돌아간다. 이일로 홍순칠은 전 재산을 다 써버렸으나 나라에서는 그들에게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았다. 10년후 그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을 뿐, 하지만 그들은 어떤 댓가보다 독도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으로 자신을 스스로 위로해야 했고 그러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늘 안타까운 것은 애국이라는 것이 어떠한 댓가를 바라고 한 일을 아니지만 그 후에라도 그들의 공적에 대해 깊이 감사를 느껴야하는 것이 우리후손들의 몫인데도 이러한 이들에 대한 감사함을 가르치는 공교육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조국을 지킨 이들에 대해 잘 알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애국의 첫걸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앞으로는 다시는 우리의 땅을 빼앗기는 불운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첫댓글 이책 한들도서관에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