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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소설가협회 회장 김현우 소설가가 <경남소설) 2017. 제12호에 소설 <혹>을 발표했다.
소설
혹
김현우
홍갑도 영감은 병원 문을 나서며 구시렁거렸다. ― 같잖은 ××에 뭐 물린 거 아이가? 하도 기가 막히는 일이 터져서인지 그는 어떤 생각도 나지 않고 다만 같잖고 별 거 아니라고 무시했던 개미 같은 뭐에 꼼짝 못하게 뭐가 물려버렸다는 말만 입안에서 뱅뱅 돌았다. 올해 설을 쇠어 예순아홉 살이 된 홍 영감은 초 정월로 들어서자 ‘아홉수가 나쁘다.’는 떠도는 말이 생각나서 아내에게, “나이 아홉 고비 넘기기가 다들 어렵다던데! 인자 내년이면 내가 칠십이 아이가? 올해 우째 넘겨야 할지 은근이 걱정되네.” 하고 한 마디 했다가, “별걱정 다 하네! 그래 할 일이 없으면 마당에 난 풀이나 뽑으소!” 하고 퇴방만 맞았다. 그런데 의사에게서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듣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아홉수가 나쁘다.’ 하는 것이었다. 사실 친구 영감들 사이에서는 그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았다. 환갑을 맞이하기 직전인 쉰아홉 살, 일흔을 넘보는 69세, 팔십 고비인 일흔아홉……을 잘 넘기려면 무사태평을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산천초목에든 사방팔방 빌어야 한다고 했다. 그저 만사조심, 전전긍긍 숨 죽여야 그 모두 아홉수를 무난히 넘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이에 매인 아홉수는 그때마다 흉수(凶手)여서 죽을병이 들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파산을 하거나 어쩌거나 간에 힘들고 고통스런 일, 즉 죽을 운수에 부닥치는데 아홉수만 잘 넘기면 육십 고개, 칠십 고개, 팔십 고개를 무난히 넘어 장수할 것이란 중론이었다. 사실 그 말에 곰곰이 따져서 돌아보면 일찍 저 세상에 간 친구들 중에 그 깔딱 고개를 못 넘긴 이들이 더러 있기도 했다. 의사가 그의 발을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한참 살펴보더니 별로 어렵지 않게 말했는데 홍 영감은 언뜻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큰 병원에 가 봐야겠습니다.” “…….” 의사는 반응도 없이 멍청해 하는 그에게 더 설명이 없었다. 한참 만에 되물었다. “뭐라꼬요? 뭐라 캤습니껴?” “큰 병원에 가시라고 했습니다.” “큰 병원요? 대학병원 말입니껴?” “예…….” 의사는 두 말도 않고 그렇게 진단을 내리며 몇 마디 추가 설명을 했으나 충격을 받아서인지 가는귀가 약간 먹어서인지 그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의사는 곧 곁에 서서 있던 간호사에게 다음 환자를 불러들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할 말을 잊은 채 밀려나야했다. 그는 진찰실을 돌아 나오며 또 물었다. “큰 병원이라면 저어 S병원 말입니껴?” “아, 예!” 의사는 더 설명하기가 귀찮다는 듯 크게 대답하면서 컴퓨터로 눈을 돌리고 말았다. 접수대로 돌아와 진찰비 계산을 하니 엑스레이 검사비는 받는데 약 처방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신경외과의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큰 병이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내모는 꼴이었다. 어깨나 팔 다리 허리가 아프면 자주 다녔던 단골 신경외과라 의사와도 제법 정이 붙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홍 영감의 발, 아니 콕 집어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왼발 엄지발가락보다 커지기 시작한 것이 하도 오래되어 대충 10여 년 전 쯤이었다고 의사에게 말했지만 그는 사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고 지냈다. “10년이 좀 넘었을 낍니다. 오른발 발가락이 굵어지기 시작한 것이…… 간혹 많이 걷거나 볼이 좁으면서 내 발에 딱 맞는 구두를 신으면 아팠거든요. 사실 별 거 아이라꼬 생각하고 오늘 날 꺼징 왔는데 요즘 내가 좀 열심히 걷기운동을 했는데…… 요새 좀 심하게 아프고 해서…… 뭐 뜨거운 물에 족욕도 해 보고 안티푸라민 같은 연고도 발라보고 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습디더.” 단골 의사를 만나자마자 양말을 벗고 오른발을 내밀며 그간의 고통을 떠듬떠듬 얘기했다. 그러자 엑스레이 사진부터 찍자고 했고 사진을 보고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거두절미 ‘큰 병원에 가시라.’는 한 마디였다.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도 그저 같잖은 개미에 뭐가 물렸다는 억울한 생각만이 뇌리에 감돌았다. 큰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환자들이 많이 몰린다는 S병원보다는 차라리 집 가까운데 있는 B병원 정형외과에 가기로 마음먹기는 이틀이 지나서였다. 대형병원은 아니지만 종합병원이라 네 명의 정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B병원이었다. 홍 영감은 진료시간 30분 전에 가서 접수를 했는데도 족부전문 의사를 만난 시간은 오전 10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진료 받고자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어찌나 많은지 진료실 앞 좁은 의자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의사를 만났다. 단골 신경외과 의사에게 말했던 그대로 그는 중얼중얼 자신의 병세를 설명했다. 의사는 그의 발가락을 손끝으로 이리저리 쑤셔보고 만지작거리더니, “상당히 오랜 되었구먼요? 우선 검사를 해 봅시다. 엑스레이도 찍고 초음파 검사도 해야 합니다.” 했다. 그도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때 옆에 지켜 서서 있던 좀 뚱뚱한 간호사가 한마디 했다. “어머! 발가락 끝에 혹이 생겼네.” 홍 영감은 간호사의 말에 움찔해서 발가락 아래를 잘 볼 수 있도록 당겨 들여다보니 정말 발가락 끝에 살덩어리가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그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위에서 보면 항상 발가락이 퉁퉁하게 굵어져 있었기에 발가락 밑바닥이 어떤지는 관심 밖이었다. 사실 발가락 아래쪽을 보려면 고개도 숙여야 하고 발가락도 비틀어야 했기에 소홀한 것은 당연했다.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면서 간호사의 이야기는 그만 잊어버렸다. 대수롭잖은 증상인 듯해서. 검사를 하면 다 알게 될 듯도 했고……. 한참 후에 진료실로 불려 들어가니 엑스레이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던 의사는 이틀 전 단골 신경외과 의사가 말과 비슷한 소리를 했다. “발가락뼈에 뭐가 생겼군요. 여기 검은 부분이……. 좀 큰 병원에 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엠알아이 검사를 해야…….” 의사는 사진의 약간 검은 부분을 가리키며 한참을 얘기했으나 홍 영감은 낭패감에 휩싸여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큰 병원에 가라.’를 말이 충격적으로 받아 들여졌고 거기다 비싸다는 MRI 사진을 찍어봐야 확실한 진단을 하겠다니 앞으로 큰돈이 들 것이라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그런데 의자에서 일어나니 의사가 한마디 더 했다. “최악의 경우에 엄지발가락을 잘라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홍 영감은 그 소리가 총알처럼 그의 가슴을 후비고 지나갔지만 도저히 실감나지 않았다. 진료실을 나서니 또 뚱뚱한 간호사가 한마디 했다. “가족들과 상의해서 엠알아이 검사를 받으러 오세요.” 최악의 경우에 엄지발가락을 잘라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충격을 받은 그는 간호사 말에 콧방귀를 뀌고 돌아 서 버렸다. 소염진통제 처방전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서니 갑자기 중환자 신세가 된 기분이라 온 몸의 기운이 쏙 빠져 버린 듯했다. 이제 찾아 갈 곳은 서울 쪽의 대학병원 밖에 없다는 절박감에 딸과 아들에게 연락했다. “큰 병원에 가라하니 어디 대학병원에 예약 좀 해라.” 금방 죽을병이 아닌데도 홍 영감은 조급증으로 몸부림을 쳤고 아들은 급하게 서울 어느 대학병원에 예약을 했고 사위가 인터넷을 뒤져 P족부전문병원을 찾아냈다면서 그곳을 권했다. “대학병원에 예약을 하니 한 달 후가 아닙니까? 장인어른. 그보다 이 족부전문병원은 정말 발만 전문적으로 보는 정형외과라 치료받을 만 합니다. 그리고 예약을 하면 3, 4일 안에 의사를 만날 수 있답니다.” 사위의 말에 그는 당장 그 관악구에 있다는 정형외과 병원 가장 발 수술을 잘하는 의사에게 예약을 하라고 당부했다. 이후 사위의 주선으로 족부전문의를 만나기는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고 그는 세 번째로 중얼중얼 의사에게 자신의 병세를 말했다. 그리고 큰돈이 든다는 MRI 검사를 거쳐 3일 후 수술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의사가 까맣게 변한 엄지발가락 MRI사진을 보여주면서 ‘장무지굴곡건 주변 종양’이니 ‘거대 세포종 의증’이니 하고 전문적인 의학용어로 설명했는데 가는귀가 약간 먹은 홍영감은 알아들었는지 어땠는지 무표정이었다. 진료실을 나와서 그는 아내에게 물었다. “의사가 뭐라 카더노? 병명이…… 무슨 종양이 어쩌고 카던데?” “아이고. 당신이 똑똑하게 들어야지.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하도 어려운 말이라서…….” “어허! 낭패네. 나는 수술을 하더라도 다시 재발할지도 모른단 선생님 소리에 기가 막혀서 그 후에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어.” “오늘 검사비 계산하면서 창구 아가씨에게 물어 봐요.” 결국 창구에 가서야 그의 병명이 뭔가 알아들었다. “할아버지! 발가락과 발바닥 두 군데에 종양이 생긴 거예요. 다행히 양성 근종이란 거예요. 쉽게 말씀드리면 일종의 혹이예요.” “혹이라꼬?” 그는 집근처 B종합병원의 간호사 말이 얼핏 생각났다. ― 그 뚱보 간호사가 진짜 박사네. “종양이 악성이 아니라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수술하면 종양 일부를 떼어 악성인지 아닌지 조직검사를 해야 돼요.” “악성이면 그게 뭔가? 암이 아닌가?” “…….” 창구 아가씨는 신용카드로 결제하느라 더 대답하지 않았다. 홍 영감은 또 다시 먹구름이 몰려와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술을 해도 재발될 수도 있다는 것과 악성인지 아닌지 또 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에. 누구나 생기는 사마귀나 여드름 같은 별거 아닌 혹 때문에 이리 마음고생을 해야 한다니! 하고 같잖은 ××에 뭐가 물렸다는 생각을 끝내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사흘 후, 1시간 반이 걸리는 수술을 받고 5일간 입원한 끝에 퇴원을 했으나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는 간이 조마조마했다. 2주일 후에 수술부위 실밥을 제거하러 갔더니 의사가 아주 반가운 소리를 먼저 해주었다. “조직검사 결과 이상 없습니다. 안심해도 됩니다.” 그는 목에 매인 올무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
김현우 : 1964년 <학원> 장편소설 당선. 장편소설 <하늘에 기를 올려라> 소설집 <욱개명물전> <먼 산 아지랑이> <완벽한 실종> <그늘의 종언>, 동화집 <산 메아리> 외 다수. 한국문협,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경남문인협회 이사(소설분과위원장), 경남소설가협회 회장, 마산문인협회, 경남아동문학회 고문, 황우문학상, 경남도문화상, 시민불교문화상(문학부문) 수상
소설이 실린 <경남소설> 제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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