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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개관?
1. 저자와 기록연대
1) 저자
일반적으로 잠언서의 저자는 솔로몬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 이유는 잠1;1 잠10:1 잠25:1에서 본 서의 저자를 솔로몬이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서의 본문에 의하면 다른 저자들, 즉 아굴(잠30:1)과 르무엘(잠31:1)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말씀(잠22:17)이 언급되어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 잠언서 저작 문제에 대해서 세 가지의 극단적인 견해가 있는데, 솔로몬이 본 서 전체를 기록했다는 견해와, 솔로몬과 본 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견해 그리고 솔로몬이 본 서의 대부분을 기록했고, 다른 저자들의 작품들이 그것에 추가되었다는 견해 등이다. 따라서 학자들간에 잠언이 솔로몬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으나 성경 자체의 내용으로 판단해 볼 때 잠언은 솔로몬이 지은 대부분의 작품과 다른 저자가 지은 작품이 합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2) 기록연대
잠언의 기록 연대를 결정하는 데에는 두 가지의 문제들이 결부되어 있다. 첫째는 각 부분의 저작 시기에 관한 것이고, 그 둘째는 여러 가지 단원들을 한 책으로 수집, 또는 편집한 시기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학자들은 30, 31장을 제외하고는 본서의 잠언 저작 연대를 주전 10 C경, 즉 솔로몬의 통치 말기에 나온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잠언의 다양한 부분들이 한 권의 두루마리 책으로 집성된 것은 보통 주전 700-400년 사이에 이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비평적인 학자들은 솔로몬의 저작을 부인하면서 전통적인 견해의 연대보다 훨씬 후대의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본 서 전체의 집성 연대를 페르시아시대의 말기나 그리스 시대로 보고, 잠언의 최종적 편집 시기를 주전 5-4C로 잡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적인 발굴 물들과 언어학적인 발견들을 통해 비평적 견해들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것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지혜 속담들의 발견과 우가릿 문서 나타난 가나안 원주민의 언어적 유형들과 비교해 본 결과 잠언서가 포로 이전의 작품임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2. 기록 목적
1) 보편적인 목적
잠1:2-4에서 저자는 자신의 의도가 지혜와 참다운 분별력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솔로몬을 제외한 나머지 저자들에게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본 서는 매일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 인격적인 도덕성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설명하며, 명백한 생활의 지혜를 되풀이하여 강권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생활의 지혜는 철학적이면서 사변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 속에서 경험해 가는 실천적인 지혜라는 것이다. 따라서 잠언서는 개인의 건전한 인격과 성격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삶의 훌륭한 지침서가 된다.
2) 특정 계층을 위한 목적
이스라엘의 대부분 지혜 문헌들은 젊은이들을 훈육하거나 교육하는데 좋은 지침서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잠언서도 일반인들에게 생활의 지혜를 제공하며, 특히 젊은이들을 위한 가르침의 내용이 많다. 더 상세히 말하자면 잠언서는 젊은 여인들보다는 젊은 남성들 특히 상류층에 속하는 청년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훈육 지침서가 되었다. 그 이유는 상류층의 자제들일수록 본 서가 금하는 어리석은 행동에 빠지기 쉬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 서가 권장하는 많은 미덕과 베풂들을 실행할 수 있는 기회와 조건들을 많이 지니고 있었고 지혜를 가르치는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여건과 혜택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3. 특징과 구조
1) 특징
잠언서는 지혜 문학으로 분류된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사사나 왕에 의해서 통치되었으며, 제사장, 예언자, 서기관들에 의해서 인도되었다. 이러한 통치와 인도함의 원리들을 지혜의 양식으로 발전시켜놓은 것이 히브리의 지혜문학이다. 실제로 다윗과 솔로몬은 통치자이면서 지혜자였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지혜자들은 인생과 세상에 관한 자신들의 실제적인 지식을 그 민족에게 나누어 주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잠언과 같은 유형의 글은 이스라엘만의 독작적인 것이 아니었다.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논의되고 규명된 바와 같이 잠언과 유사한 지혜 문학들은 타민족에게도 많이 있었다. 이스라엘과 이방의 잠언들이 인간 생활의 윤리적 측면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이스라엘의 잠언은 하나님의 법을, 이방인의 잠언은 인간 생활의 평범한 진리를 그 관점으로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잠언의 두드러진 특징은 참다운 삶에 이르는 근본적인 원리로서의 실천적 철학을 하나님의 법에서 찾으며 인간들에게 제시한다는 것이다.
2) 구조
잠언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어리석음과 죄악을 떠나 지혜를 구하라는 교훈(잠 1-9장)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는 교훈의 성격을 가진다. 지혜로운, 혹은 어리석은 행위들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잠10-29장), 특히 이중에서 여러 가지 의무와 규칙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잠22:17 -24:22). 덕 있는 여인에 대한 언급(잠 30,31장)을 하고 있다. 30장은 '아굴의 말'로서 그의 고백과 여러 가지 교훈들을 호소하고 있으며, 잠31:1-9은 르무엘의 교훈이고, 잠31:10-31까지는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서 덕 있고 현숙한 아내에 대해서 찬양하고 있다.
?[연구1] 인생무상(1장-2장)
인생이란 어떠한 것인가? 세상에서 주어지는 것들로 인해 인생의 평안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본문에서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잇다.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깨달은 전도자는 그 깨달음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다는 것이다(전1:2).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물질에 대해서도 전도자는 헛되다고 한다. 그러나 전도자는 인간의 참된 삶의 가치는 물질이나 지혜나 쾌락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때 주어진다고 한다.
1. 만물이 헛됨(전1:1-110)
? 저자는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한다(전1:2). 전도자는 인생을 자연 현상에다 비유를 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저자의 경험으로 바라볼 때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일이 잘되고 악한 일을 하는 삶들은 언제나 망하게 된다는 사고 방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정식은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가?
? 그리고 주어진 시간 속에 갇혀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은,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며, 그 삶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는가?
1)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됨
인간은 정해진 이치(히9:27)에 따라 오는 죽음으로 인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인생의 허무감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창3:6 -9).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 세대는 가고 다음 세대는 오지만 땅에는 변함이 없다(전1:4). 이것은 간접적으로 고등한 인간이 땅보다도 못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전도자는 인생의 무상함을 말하면서 태양과 바람에 비유를 하였다(전1:5,6). 하지만 이러한 것은 곧 식어지고 잔잔해지게 된다. 바로 인생도 이러한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을 때까지 채워지지 않는다고 말한다(전1:7,8). 다라서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에게 만족을 줄 수 없으며, 인생에는 죽음이라는 끝이 있는 것이다.
2) 인간 삶의 영속성
세상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인해 끝없이 만족을 누리며 살고 싶지(전1:3),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쌓아올린 무수한 업적도 죽음과 함께 땅속에 매장되어 버리고 만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 버리는 세상의 일에 미련을 두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참삶의 가치를 누리며 살아가는 현명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다.
2. 지혜도 헛됨(전1:12-2:17).
? 이 세상에서 온갖 부귀와 영광을 누리며, 가장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지혜로 말미암아 삶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가?
?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지혜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지혜는 인간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
1)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음
지혜있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히9:27). 물론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남들보다 좀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나(전1:13,14), 결국은 세월이 흐른 뒤 그것은 인간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인간의 전존재에 대해 깊은 허무를 느끼게 된다.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지혜와 지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더 깊은 근심과 고통 속으로 끌고 간다. 즉 세상의 지혜는 인간의 삶에 대해 많은 유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끝없는 문제의 심연을 이끌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한 자는 그 지식이 깊어지면 질수록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딤후3:15-17),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여야 할 것이다(욥36:26).
2) 겸손한 인생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이처럼 지혜와 지식으로 가득 찬 사람 일수록 겸손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전1:15). 그 한계를 깨달을 때 인간은 삶의 참된 방향을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혜와 겸손은 병행되어야 하지만 현실을 볼 때 역행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은 세상의 지혜와 지식보다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 지혜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3. 인생무상(전2:18-26)
? 전도자는 인간의 지혜로 삶의 참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자 다른 방향으로 시각을 돌린다. 철학적으로 인생의 규명에 실패하자 이제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참된 삶의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재물들과 세계적인 명성들(왕상 10:6,7)은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결과를 낳게 하는가?
? 그리고 인간이 추구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1) 심령으로 낙을 누려야 함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나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들의 쾌락을 즐기기 위하여 재물을 쌓아놓는다(전2:3-5). 전도자는 이 세상에서 오는 웃음과 육체적으로 느끼는 쾌락은 미친 것이며 인생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전2:2).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기 위하여 술을 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해 보아도 그것이 결코 인생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죽음은 인생이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일순간에 허물어 버리고 만다.
2)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
인간의 욕심은 인생의 즐거움과 여유를 앗아간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동체에 필요한 사랑과 봉사와 교제의 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바꾸려는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참된 인생의 가치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인생의 최대 목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은 헛되다. 인간들이 맛볼 수 있는 물질적, 육체적, 영적인 참된 즐거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한다(약1:17). 이 세상이 주는 것은 유한하여 결코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죽음 뒤에 오는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연구2]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3장)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삶을 조화롭게 통치하신다. 그래서 인생 속에 슬픔과 기쁨, 출생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도록 하셨다. 전도자는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온 우주에서 보여지고 있는 극히 작은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관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겸허한 자세로 나아오도록 하기 위한 모습도 보인다. 시간이라는 한정된 테두리 안에 인생도 한정되어 있음을 말하면서, 참된 삶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선을 행할 때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세세한 곳까지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의 인생도 그분께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1. 시간이라는 한정된 테두리(전3:1-10)
? 인간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주어진 시간 속에서 생활을 하게된다. 이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있는 모두 만물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 그렇다면 이 시간은 무엇이며 그것은 영원한 것인가?
?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과 똑같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인생도 영원한 것인가?
? 인생 가운데 보여지는 질서 정연한 시간들은 인생에게 참다운 유익을 가져다주는가? 그리고 그것이 주는 목적은 무엇인가?
1) 모든 만물에게는 한계가 있음
시간이라 '인간의 행동이나 상태, 과정이 지속되거나 존재하는 것을 측정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결국 이것은 제한성을 가지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모든 것에는 제한성이 있는 것이다(히9:27). 인생의 제한된 이러한 삶은 인생에 있어서 참다운 유익을 줄 수 없다(전3:9). 왜냐하면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서는 인생이 참 의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전3:10). 인간 스스로의 수고와 노력은 무익한 것이며 인생의 진정한 목적 상실하게 된다.
2) 인생의 한계성
인생사에 보여지는 모든 현상들은 인간들 마음대로 해결할 수 없다. 인간도 다른 피조물들과 다를 바 없이 제한된 운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어떠한 수로고 인해 얻어지는 인생의 유익을 바라고 있지만(전3:9), 그것조차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세상 만사의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다라서 하나님을 떠나서는 삶의 진정한 목적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최고의 아름다운 삶(전3:11-15)
? 하나님께서는 질서 정연하게 모든 것에 때와, 기한을 주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인간들에게 늙어서 죽어야 하는 순환의 과정들을 주셨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셨을까?
? 또한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기한을 주시면서도 참된 삶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이유는 무엇이며, 인생의 가장 훌륭한 삶은 무엇을 말하는가?
1) 선을 행하는 삶
인생에게 때와 기한을 주신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쉽게 생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전3:11), 둘째로는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삶 속에서 주어지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이다.(전3:12,13). 그리고 인간에게 한계성을 주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전3:14).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3:11),즉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 언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한 삶이라고 전도자는 말한다(전3:12).
2)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
인간은 인생 속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노력할 수 있어야 하며,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의지하여야 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여야 하는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불 신앙하기 때문에 모든 비극은 시작된다. 그러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며,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3. 불공평해 보이는 현실(전3:16-22)
? 이 세상은 가끔가다가 불공평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즉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잘 안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일은 잘 해결되는 것을 보게된다. 전도자는 이러한 인생사에 대해 말하면서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로를 받을 방법은 없는가?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어제까지 계속되어질 것인가?
1)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함
전도자는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져야 할 법정에서 악이 성행한다고 묘사한다(전3:16). 이것은 죄악에 물든 인간들에 의해 생겨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성도들은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세상의 법정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은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전3:17). 이 땅에서 행해진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게될 때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전도자는 악이 성행하는 현실 속에서의 인간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전3:18). 그러면서도 구별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잇다(전3:21). 결국 인간은 특별하게 창조되었으며 (창2:19),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삶이 결코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2) 자기 일에 즐거워함
결국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께 달려있다. 인간은 스스로 이세상의 문제들을 제어할 수 없을 분 아니라 이 세상의 어떤 것들로도 죽음을 당해야하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 다라서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야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소유하여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일이 불공평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가운데 미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 삶의 모든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서리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음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인류의 전역사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계획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철학적 관점으로 볼 때 다른 피조물과도 특별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겸허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연구3] 인간의 헛된 노력(4장-5장)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때로는 불공평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들끼리 서로 도와주며 협조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유익이 있음을 전도자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며, 인간들이 부를 목적으로 하고 살아서는 안됨을 본문은 시사하고 있다.
1. 절망적인 삶(전4:1-6)
?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다. 나름대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그것은 곧 허무와 좌절을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전도자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 이 세상을 향하여 인간들은 한탄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인생은 어떤 인생을 말하는가?
? 그리고 왜 사람들은 이웃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으며 살아야만 하는가?
1) 위로받지 못하는 자
전도자는 이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억압과 압제의 현상들에 대하 말하고 있다. 이러한 억압은 권세 있는 제국주의나 강자의 잔인성으로 인해 나타나게 될 것이며, 학대받는 자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전4:1). 그래서 전도자는 출생하지 아니한 자가 더 복되다고 말하고 잇다(전4:3). 이 세상에서의 삶이 그 만큼 모순과 불의 속에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폭력이 난무하는 이 세상을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권세로부터 학대받는 사람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위로자'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현실이다(전4:1), 그러므로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오직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나친 욕심을 갖는 것은 우매한 짓일 뿐이다(전4:6),
2)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자
인간에게는 꿈이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들을 한다. 그 꿈을 인생의 참된 목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부를 얻고도 계속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어리석은 사람(전:8)은 인생에 있어서 결코 만족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일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니요, 돈의 노예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2. 세상과 나(전4:7-16)
? 현대인들의 가장 심각한 병인 이기심에 대해 전도자는 새로운 삶의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 방법은 어떠한 것이며, 또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 이 세상의 권세는 스스로 있는 것인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나는 것인가? 그리고 그 권세는 무한히 존재하는 것인가?
1) 개인주의에서 탈피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낫다(전4:9)고 전도자는 말한다. 이 말은 결혼에 국한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독보적인 삶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갈6:2). 전도자는 곡 이웃이 필요하다는 것을 세 가지 주제로 피력하고 있다. 즉 연약해졌을 때 서로 격려할 수 있으며(전4:10), 상처받거나 외로울 대 서로 의지 할 수 있고(전4:11),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서로 보호해 줄 수 있다(전4:12)는 것이다. 한편 이 세상의 권력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음을 말하면서(전4:14 롬13:1), 그 권세의 유한성을 말한다(전4:16). 이것은 세상의 유한성에 의지하지 말고 무한하신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함께하는 삶
성경에는 더불어 살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룻과 나오미(룻 1장), 다윗과 요나단(삼상18장), 엘리야와 엘리사(왕상19장)등을 들 수 잇다 .오늘날 처럼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시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삶의 모습들이다.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결국은 혼자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혼자가 되는 것 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다. 서로 베풀며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한 삶의 지혜인 것이다.
3. 인생인 만족(전5장)
? 사람들은 자신에게 있어 가장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중 어떤 사람은 부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인간의 삶에 만족을 가져다주는가?
?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에게 삶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1) 하나님을 경외함
전도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전5:7). 즉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삶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가식적인 모습을 보인다(전5:1-6). 사람들은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아니하며, 실현하지도 못할 서원을 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 이것은 죄악이다(행5:4), 이 세상에서 가장 부한 사람은 인간이 가지고 잇는 생명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외적인 조건의 것으로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전5:19,20).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는 만족을 주지 못한다(전5:12).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온전한 삶의 만족을 누려야 할 것이다.
2) 하나님과 재물
인간은 피조 세계에서는 삶의 만족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예배할 때 얻을 수가 잇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참된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없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물질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사용하여야 한다.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이기적인 온갖 노력은 헛된 것이다. 특히 권력의 약용 인한 사회적인 폐단은 인간을 더욱 악화시키며 고독하게 한다. 그렇다고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 수는 없다. 서로 사랑하며 협력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치있는 삶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임을 깨달아야 한다(전5:7). 이 세상을 향한 삶의 추구는 결국 헛된 것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신의 삶에 감사 할 줄 아는 삶이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삶인 것이다.
?[연구4] 인생의 종말론적 관찰(6장)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욕망이 있다. 그런데 이 욕망은 끝이 없어 인간들로 하여금 빗나가게 마든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부할 지라도 그러한 것들로 인해 삶이 풍요로울 수는 없다. 본문은 한 인간의 노년기에 접어든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지나온 뒤안길을 돌아보았을 때 너무나 무익한 삶을 살아왔던 회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도자가 파헤치는 적나라한 모습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해 아래에서의 폐단(전6:1-6)
?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이 세상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인간들에게는 물질적 풍요에 따른 폐단이 나타났다. 그 폐단은 무엇인가?
? 그리고 전도자가 말하는 악한 병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악한 병은 치유되었는가?
1) 물질적 풍요는 일시적인 행복
전도서 기자로 알려진 솔로몬은 엄청난 재물을 가지고 있었다(대하1:1,12). 그러나 그는 그에게 있는 물질로 인해 만족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대신 그 풍요를 누리기 때문이었다(전6:2). 전도자는 사람에게 '중한 것'을 보았다고 한다(전6:1). 이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폐단을 말하는데(전6:2-6), 이 폐단을 악한 병이라고 한다. 인간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재물을 모으고, 자녀들을 낳아 기르지만 이러한 일련의 소유조차도 결국은 하나님의 소유이지각 개인의 영원한 소유는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라서 전도자가 말하는 이 세상에서의 폐단은 물질적 풍요로움은 결코 인간들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물을 올바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중한 병에 걸린 것이다(전6:2).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 보편적인 비극의 요소가 된다.
2) 주어진 복을 누릴 줄 아는 자
인간들은 복은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려고 하는 데서 오는 착오라고 할 수 있다(롬 11:36).온전한 복은 위에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는 모든 물질적인 요소들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주어진 상황에 대해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2. 부한자, 낙태된 자, 가난한 자(전6:7-9)
? 인간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한다. 그리고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끝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정해 놓은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그곳에 그대로 머물며 살 수 있을까?
? 전도자는 죽음 뒤에 오는 인간들의 모습을 말하면서 낙태된 자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말하는가? 지혜롭고 부유한 사람들은 모두 삶의 궁극적인 문제들을 해결 받을 수 있는가?
1) 만족할 줄 모르는 인생
인간이 어떠한 살아가든 그들 앞에는 무덤이라는 막다른 집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많은 자녀와 장수하는 삶을 살더라도 그것이 결코 인생에 만족감을 주지는 않는다(전6:7). 인간들은 항상 좀더 나은 것을 추구하며, 현실에 만족할 줄 모른다. 이러한 모습은 지혜로운 자든, 어리석은 자든 동일하게 적용된다(전6:8). 한편 전도자는 낙태된 자를 말하면서(전6:3), 이 세상에서의 삶의 중요성보다는 죽음 후에 오게 될 심판에 대비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왕상22:29-36). 즉 물질로 인해 오는 만족보다는 영적인 평안함을 누리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다. 결국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의 모든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허망한 것임을 전도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전6:9).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올바른 답변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행동들 심지어 먹는 것, 마시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고전10:31). 육적인 것으로 인해 영적인 축복을 상실한다면 그 사람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결코 참 평안과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다.
3. 인간의 종말(전6:10-12).
? 인간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 수는 있지만 앞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죽음 후에 오는 인간의 상황은 미지수로 남게된다. 전도자는 순간 순간 살아지는 인생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인간에게 있는 낙은 무엇인가? 또 죽음 후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1) 그림자 같은 인생
인간들이 하는 일에는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일이 많다(전6:11).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순간 순간들은 그림자처럼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전6:12), 절대로 거기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의 낙은 하나님의 품안에서 떨어지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품을 떠난 삶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요15:1-8). 인간들은 미래에 대해 불완전하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처럼 유한한 존재이며, 무한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삶을 살 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주어지는 것이다.
2) 인생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며,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이 땅에서의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이라고 하였다. 전도자의 이러한 깨달음을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하나님을 대치할 수 는 없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망각하려고 한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오는 것은 영원한 죽음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름대로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뒤를 돌아보면 후회할 것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많은 재물이 있으나 그것을 한번도 사용해 보지 못하는 인생, 끊임없는 욕망으로 이해 생겨나는 불만족은 결코 하나님을 인생의 주권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든 인생들은 결국 헛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부요함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그것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느니 분도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말아야할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미래에 대한 산 소망이 있으며,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연구5] 참된 삶의 원리(7장-12장)
전도서의 후반부에 속하는 7-12장에서는 이제까지 나열되어 왔던 암울하고 절망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새로운 소망의 빛을 비추고 있다. 그 빛은 지혜라는 단어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지혜에 대하여 전도자는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전 7-10장), 본 연구에서는 전도자가 말하는 지혜란 어떤 것이며, 또 전도자가 이 세상에서 참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방식대로 살아갈 때 인간들은 사람의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으며, 소망찬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1. 지혜자와 우매자(전7-10장)
? 전도자는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들은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인간에게 주어진 지혜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 있는 지혜를 활용함으로써 오는 결과들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1) 하나님의 지혜
인간들은 자신들의 삶 가운데서 무엇보다도 지혜를 구해야한다. 그것은 지혜가 인간 활동 가운데서 오는 모든 함정으로부터 인간들을 구해주며(전7:11,12),인간의 마음에 항상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신다고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전7:13,14). 그러나 이러한 지혜로는 하나님의 섭리 하 심을 온전히 통찰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다만 자신의 뜻을 인간들의 찾도록 지혜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지혜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며(전7:15-18), 무한한 능력을 주고 (전7:19-22), 인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통찰력을 부여한다(전7:23-29).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에는 인생들이 미칠 수 없다는 진리를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롬11:33). 인간의 지혜로는 한정된 사고밖에 할 수가 없다(욥16,17).인간의 지혜는 유한하며, 오직 하나님의 지혜는 광대하신 것이다(전8:16,17).
2) 참지혜자의 삶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 지혜로 인간 역사의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행하여야 한다. 그런데 때로는 인간의 지혜로 세상의 모든 풍파를 파헤쳐 나가려고 하는 우매자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지혜로 세상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전817).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겸허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참된 지혜자이다.
2. 우직한 인생(전11장)
? 노년에 접어든 전도자는 삶의 실천적인 면을 부각시키면서 독자들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알지 못한 인생이라고 해서 모두 불행한 인생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삶이 지혜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실천적 삶이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 전도자는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가?
1) 믿음을 소유하지 아니한 우매자
인간의 삶은 자신들이 소망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망을 향하여 묵묵히 전진하며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없다면 그는 우매자인 것이다(전11:1-6). 우매자는 사소한 일로 근심 걱정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전11:7-10). 젊을 때는 자신의 소견대로 쾌락을 추구하면서 살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사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와 구제를 행하는(전11:2,3)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할 수 있다면 그는 우매자가 아닌 것이다(겔7:19).
2)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삶
인간의 삶은 지식만 가지고 이루어질 수 없다. 지식에 버금가는 실천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자는 구제와 봉사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있다(전11장). 이것은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면서 삶의 가치를 추구하여야 함을 말한다. 즉 매사에 적극적인 삶을 살면서 미래를 준비함으로써 장차 오게 될 심판에 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 충실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간다면 밝은 미래가 올 것이다.
3. 창조자를 기억하라(전12장)
? 전도자가 보여 주는 메시지의 핵심으로 "슬픔과 좌절과 고통이 있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인간들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 도리는 세상이 주는 어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유가 타탕하다면 그 법칙대로 살아야하는가?
1) 하나님을 경외하고 명령을 지킬 것
전도자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결론짓는다(전12:13). 이것은 인생사에 나타나는 모든 일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으며, 하나님이 친히 모든 일에 대해 심판주(전12:14)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그분만을 의지할 때 삶의 참된 가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존재해야 할 가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롬11:3-6).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닐 것이다.
2) 하나님 중심적인 삶
세상의 인본주의나 세속주의, 철학적인 조류에 따라 방황하는 인생은 헛된 인생들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은 진정으로 복된 삶이다. 자기 중심주의에서 탈피하여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당연한 이 사실이 현실에 얼마나 적용되어 지구 있는가? 인간이 하나님이 피조물이라는 인식과 본분을 망각하고 있을 때 그 당연한 사실은 현실 속에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참된 삶의 원리는 인간의 삶이 하나님 중심적이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있다. 이럴 때 그 인생은 영원한 것이다(요일2:17).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부조화와 불균형의 연속처럼 보일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사람을 사용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첫댓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샬롬!!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